FUSION 과학

제 1492 호/2011-12-05

이봉주와 우사인 볼트는 근육 색깔이 다르다?

근육의 색깔 하면 빨간색이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빨간색이 아니다. 근육도 고유의 색깔을 갖는다. 붉은색 계통이지만 연한 핑크빛에서 검붉은색까지 일련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한 위치의 색깔을 나타낸다.

근육이 붉은색을 띄는 이유는 피 때문이다. 특히 혈액 성분의 적혈구는 대부분이 헤모글로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헤모글로빈은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근육의 붉은색이 유지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근육의 붉은 색은 적혈구나 헤모글로빈 때문이 아니라 미오글로빈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이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을 가진다면 근육에서는 미오글로빈이 산소 운반을 책임진다.

헤모글로빈이 붉은색을 띠는 이유는 간단하다. 철분에 산소가 합쳐진 꼴이기 때문이다. 못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깨끗한 못을 마당에 내어 두어 비를 맞고 햇볕을 쐬면 녹이 슨다. 처음에는 진한 청색을 띠던 못이 시간이 지날수록 녹이 생겨 붉은 빛으로 변한다. 이렇듯 철분에 산소가 합쳐지면 붉은색을 띤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어린 아이들이 추운 겨울날 문밖으로 나가 한동안 활동하면 입술이 파래진다. 보통 추워지면 입술이 파래진다고 한다. 산소를 많이 가진 헤모글로빈은 마치 녹슨 못과 같아 붉은 빛을 띠지만 산소가 모자란 헤모글로빈은 붉은색에서 청색 쪽으로 색깔을 변형시킨다. 마치 녹슨 못이 다시 새 못으로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근육은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 때문에 붉은 빛을 띤다. 미오글로빈은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으로부터 산소를 받아 근육에 산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산소를 많이 가진 근육들은 자연스럽게 더 붉은색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근육이 더 붉다는 뜻은 더 많은 산소를 가졌거나 더 많은 미오글로빈을 가진, 또는 더 많은 미오글로빈들이 최대한으로 산소를 함유하고 있다는 뜻과 같다.

이로써 연한 핑크빛의 근육과 검붉은 근육들은 서로 다른 미오글로빈의 양과 산소의 양을 가졌을 것이라는 자연스런 가정이 설정된다. 그렇다. 근육의 색깔은 산소를 가진 미오글로빈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연한 핑크빛의 근육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가장 흔한 예로는 닭고기가 있다. 이보다 조금 더 붉은 고기로는 돼지고기를 들 수 있다. 돼지고기보다 더 붉은색의 고기로는 소고기가 있다. 직접 볼 경우는 드물지만 고래 고기는 아주 붉다. 붉다 못해 검붉다. 미오글로빈이 무지하게 많다는 의미다.

고기, 즉 근육이 붉다는 의미가 산소를 많이 함유할 수 있다는 의미라면 위의 동물 중 어떤 동물이 근육에 산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 고기 색깔이 검붉은 고래다. 고래는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잠수로 수 십분 이상을 버틸 수 있다. 숨을 쉬지 않고도 이미 근육 속에 저장돼 있는 산소를 이용해 오랜 시간동안 잠수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닭은 숨을 못 쉬게 하면 빠른 시간 안에 기절한다.

인간은 다양한 색깔의 근육을 갖는다.

인간도 다른 포유류들과 유사한 근육 색깔을 갖는다. 굳이 비교하자면 돼지와 소고기 색깔의 중간 정도다. 물론 인간들은 부위에 따라 다른 색깔을 보이기도 한다. 산소가 많이 필요한 부위의 근육은 더 붉은색을 띄며 산소가 덜 필요한 부위의 근육은 핑크빛 쪽으로 치우쳐 보인다.

사람들 간에도 서로 다른 근육의 색깔을 보인다. 산소를 많이 이용하는 근육을 가진 사람들은 근육이 붉고 산소를 덜 이용하는 근육을 가진 사람들은 핑크빛을 보인다. 산소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마라톤 선수들은 붉은색의 근육을 가진다. 반대로 산소를 이용하지 않고 단번에 힘을 발휘하는 근육을 가진 사람들은 핑크빛의 근육을 가진다. 대표적인 예가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이다. 마라토너 이봉주의 근육이 100m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의 근육보다 붉다는 의미다.

밝은 핑크빛의 근육은 힘을 내는데 적합하고 진한색의 근육일수록 지구성에 유리하다. 밝은색 근육은 힘을 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큰 덩어리를 유지한다. 여러 가닥의 고무줄이 한꺼번에 뭉쳐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근육이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 많은 고무줄들을 한꺼번에 잡아당겼다가 튕겨 주는 이치다. 그러나 쉽게 지치는 단점이 있다. 반면 진한색의 근육은 쉽게 피로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진다. 근육이 가진 산소를 이용해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힘을 내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때문에 지구력이 강한 근육은 얇고 가늘다. 이봉주와 우사인 볼트의 근육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그림 1] 밝은 핑크빛의 근육은 순발력과 파워가 강하고 진한 붉은빛의 근육은 지구력이 강하다.
우사인 볼트(좌)는 밝은 핑크빛 근육의 소유자, 이봉주(우)는 진한 붉은빛 근육의 소유자. 사진 출처 : 동아일보

근육의 색깔은 사람들 간에도 조금씩 다르지만 신체 부위별로도 조금씩 다르다. 다리 근육과 손 근육, 안면 근육의 색깔은 서로 다르다. 허리와 다리 근육의 색깔은 진한 편이고 안면근육은 밝은 편이다. 기능도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허리 근육과 목 근육은 자세를 지속적으로 곧게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때문에 계속적인 긴장이 필요해 금세 피곤해지면 안 된다. 그래서 붉은 계통의 색깔을 보인다. 하지만 안면 근육은 지구력이 필요하지 않아 밝은색의 근육을 가진다.

근육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

가끔 궁금하다. 나도 이봉주나 우사인 볼트처럼 될 수 있을까. 답은 ‘그럴 수 없다’. 이들은 자신의 근육 색깔을 가지고 태어났다. 운동선수는 타고난다는 말은 이 때문이다. 그럼 또 궁금하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개조할 수는 없는지 말이다. 이에 대한 답 역시 ‘그럴 수 없다’이다. 근육의 색깔은 근육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이 정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오글로빈이 많은(=산소를 많이 가진, 지구력이 강한, 비교적 얇은) 근육은 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대뇌로부터의 운동신경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경을 바꾸면 가능할지 또 궁금해진다. 그렇다. 신경을 바꾸면 근육은 바뀐다. 그렇다면 신경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 부분이 바로 ‘유전’이라는 것이다. 어떤 근육이 만들어질지는 바로 어떤 신경을 가지고 태어나는지에 달렸다. 즉 훈련, 또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도 근육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100m 달리기와 마라톤에서 함께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글 : 이대택 국민대학교 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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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2-09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대문에 붙박이 공장장님 밀어내고 올라온 저 처자는 누구랍니까?ㅋㅋ

순오기 2011-12-09 03:22   좋아요 0 | URL
이뻐요~~~~~~ 난, 공장장님 보는 거 보다 이 처자를 보는 게 더 좋아요!^^

마노아 2011-12-10 00:16   좋아요 0 | URL
통화연결음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곡을 설정해 놓아도 전화거는 다른 사람만 감상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요. 내가 좋아하는 공장장님 사진을 걸어놓으면 나만 만족하고 다른 사람들은 반응이 현저히 떨어져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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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93 호/2011-12-05

12월은 유독 시간이 빨리 흐른다?

우리는 재미있는 일을 할 때나 매년 12월이 되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고 인식한다. 흘러간 물리적 시간의 길이를 실제보다 주관적으로 과소 추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 지속에 대한 인식은 주로 뇌의 기저핵이나 두정엽과 같은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만일 시간 흐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물리적 시간인식을 담당하는 뇌 센터라고 간주되는 기저핵과 두정엽 등의 통제만 받는다면 사람들이 시간 흐름을 인식함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다른 경우가 많다.

한 심리학 실험에 의하면, 두 사람이 마주 보는 상태로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는 상대편 사람이 친절하고 미소를 짓는 경우보다 화내고 분노한 표정을 짓는 경우에 더 오랜 시간이 경과한 것으로 인식했다. 살아있는 거미를 동일한 시간동안 본 경우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꼈다. 거미를 혐오하는 사람은 거미에 대한 혐오감이 없는 사람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거미를 봤다고 느낀 것이다.

다른 심리학 실험의 예를 살펴보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시간의 흐름을 알려 주지 않은 채 3분 동안 소리 듣기 실험을 실시했다. 컴퓨터로 울리는 ‘삐익-’ 하는 소리가 한 집단에는 5초에 한 번씩 울렸고 다른 집단에는 2초에 한 번씩 울렸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실험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흐른 시간이 몇 분 몇 초인지 추정하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 같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2초에 한 번씩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5초에 한 번씩 소리를 들은 사람들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다고 추정했다. 사람들은 시간 흐름의 절대적인 양보다는 시간 흐름 내에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자주 발생했는가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인식했다. 사건들이 더 많이, 자주 일어났으면 더 긴 시간이 흘렀다고 인식한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절대적, 물리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정보처리를 해 재구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인식함에 있어서 모종의 추가적인 정보처리를 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 길이 중심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채운 사건이나 대상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적 반응이 좋았는가, 싫었는가, 사건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가 등이 우리의 시간 인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우리 뇌에는 두 종류의 시계가 있다.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고도 하루주기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바로 빛을 기준으로 삼는 ‘하루주기성 시계(Circadian clock)’가 있기 때문이다. 대개 정상적인 아이나 어른의 하루주기성 시계는 지구의 자전에 맞춰 24시간 11분(±16분) 경을 하루로 설정한다.

뇌의 또 다른 시계인 ‘시간간격 시계(interval timer)’는 짧은 시간동안 하나의 사건이 시간적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를 잰다. 이 시계는 어떤 사건에 뇌가 반응할 때 뇌의 관련 부분들이 반응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뇌의 시간 담당 영역들에는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또는 메트로놈)가 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조합돼 리듬이 다양해진다. 결국 사람은 리듬의 변화로 시간의 변화를 인지한다.

인간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관계성과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생존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인지능력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물들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관계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더불어 사물들이 서로 원인과 결과의 인과적 관계에 놓여 있음을 파악하거나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은 동물에게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점은 아마도 이런 시간적, 공간적, 인과적 관계성을 부여하는 능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돼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관계성을 자기 나름대로 그럴싸한 에피소드들의 연결로 엮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를 엮는 구성적 능력도 있다.

자신의 경험적 에피소드들은 기억에 저장돼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삶의 에피소드에 대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함에 있어 물리적 시간의 흐름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기억’을 동원해 실제 시간 경과의 길이 판단에 적용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이 오랜 진화 역사 과정에서 적자생존하기 위해 획득한 일종의 적응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즉 한 달이나 몇 년과 같이 긴 시간의 흐름을 살아가는 우리는 물리적 ‘시간’ 그 자체보다는 그와 관련된 주관적 ‘기억’에 바탕을 두고서 시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 인식에 대한 정보처리 심리학 이론 중 하나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매년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은 다른 달보다 더 짧다, 더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의 흐름을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데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그 시간 내에 일어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가, 어떤 종류의 사건들이 일어났는가, 그 사건들이 자신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체험적 사건들인가, 그 사건들을 자신이 마무리 지었는가 아니면 끝내지 못하고 중단해야 했는가 등이 우리로 하여금 실제 시간 길이와는 다른 정보처리를 하게 하고, 다른 기억을 하게 한다.

12월, 해가 저물기 전에 여러 일들을 끝내고 마무리 져야 하는 시점이다. 오랜만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사를 나누는 모임도 많다. 참석하거나 인사해야 할 일들,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은 많은데 시간은 제한돼 있다. 하지만 수많은 에피소드가 생기는 달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여러 에피소드들을 압축해 정보처리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12월은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달로 인식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들을 효율적으로 정보처리 하는 인지적 기술이나 전략(사회적 기술 포함)을 개발한다면 이런 현상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이정모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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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88 호/2011-11-28

삼각팬티도 특허였다고?! 별난 발명이야기
“이거 또 오디션 열풍이구만! 매회 시청률이 10%를 훌쩍 넘는다던데? 우리는 뭐 색다른 거 없나?”

KHBS 제작팀의 분위기가 또 심상치 않다. 경쟁사들이 금요일 저녁에 방송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때 천진난만하기로 소문난 허특 PD가 자신만만하게 기획안을 내놓는다. 제목은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이다.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 이거 뭐야? 이젠 경쟁사 프로그램 이름까지 따라해? 허 PD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여기저기서 이럴 줄 알았다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오늘 허 PD 때문에 기획회의로 밤을 샐지도 모르겠다.

“예, 국장님! 발명이나 특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려고요. 프로그램 제목은 뭐 바꾸셔도 될 것 같고요. (긁적긁적) 여하튼 발명이야기 재미있습니다!”
“뭐가 재밌다는 거야?!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재밌지,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발명을 알고나 싶어 하겠어?”
“아, 저는…. 그러니까 우리가 편하게 쓰고 있는 것도 특허 받은 제품이 많고, 또 특허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 이야기도 꽤 재미있어요.”

허 PD의 해맑은 표정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김 국장도 두 손 들고 말았다. 우선 들어나 보자.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는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발명이나 특허라고 하면 전화기나 전구의 발명처럼 굉장히 거창하고 유명한 이야기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먹는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 또 일회용 밴드, 삼각팬티, 옷핀(안전핀)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사용하는 것도 발명품입니다.
“그래?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도 발명품이었어?”
“네. 원뿔형태의 아이스크림콘은 1903년 12월 13일에 이탈리아 사람인 마르치오니(Marchiony)가 특허권을 획득한 것인데요. 이 사람은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였고, 수레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답니다. 처음에는 그릇에 담거나 종이에 둘둘 말아서 아이스크림을 줬는데 뒷처리가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와플조각 같은 빵 과자로 아이스크림 아래를 감싸는 콘을 생각해 냈죠. 마르치오니는 아이스크림콘에 대해서 곧바로 전매특허를 내고 아이스크림 세계에 새 역사를 열었던 거예요. 어때요? 다들 잘 모르셨죠?”

이이스크림콘처럼 간단한 것에 특허가 있을 줄은 잘 몰랐다. 하지만 특별한 사례 하나만 가지고 방송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김 국장은 다른 것은 없냐고 허 PD를 보챘다.

“물론 있죠! 삼각팬티와 일회용 밴드, 옷핀이 발명된 이야기들은 좀 감동적이에요. 우선 삼각팬티는 1951년 일본에서 특허출원 됐어요. 발명자는 놀랍게도 손자를 돌보던 사쿠라이 여사였어요.
“할머니가 삼각팬티를 발명을 했다고? 왜?”
“사쿠라이 여사는 늘 손자를 돌보고 있었는데요. 무더운 여름날 손자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입고 있는 걸 본 거예요. 당시에는 속옷이 반바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겉옷 입기에도 불편하고 더운 여름에는 특히 더 불편했다고 해요. 손자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사쿠라이 여사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죠!”
“그게 뭔데?”
“속옷은 단지 가리기만 하면 된다.”

풉!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굴할 허 PD가 아니었다.

사쿠라이 여사는 데드론이라는 천으로 만든 헌 자루를 싹둑 잘라 다리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만 내고 꿰매서 삼각팬티를 만들었어요. 가볍고 편리한 훌륭한 속옷이 탄생한 거죠. 사쿠라이 여사는 이 팬티의 특허를 받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삼각팬티로 갈아입었어요. 손자에 대한 사랑이 대히트를 친 거예요!”
“정말 대박특허가 됐겠구만. 아이디어는 작은 거였지만 말이야.”

일회용 밴드는 아내에 대한 사랑 덕분에 탄생한 거였어요.
“아내에 대한 사랑?”
“네, 1920년대 미국에 얼 딕슨(Earle Dickson)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요. 딕슨의 아내는 유난히 요리에 서툴러서 손을 많이 다쳤다고 합니다. 딕슨이 그때마다 붕대와 반창고를 가져와서 한바탕 소동을 피웠죠. 하지만 자신이 없을 때 아내가 다칠까봐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혼자서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반창고를 만들기로 했답니다. 아내의 손에 붕대와 반창고를 붙였던 경험을 살려서 치료용 테이프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그 안에 거즈를 작게 접어 가운데 부분에다 붙였습니다. 그런데 치료용 테이프가 너무 끈적끈적해서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고 깨끗이 떨어지지도 않았죠.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오랫동안 수소문한 끝에 나일론과 비슷한 종류의 직물인 크리놀린을 찾아냈습니다. 표면이 매끄러워 테이프가 깨끗이 떨어지고, 빳빳해서 보관하기도 좋았어요. 결국 이 아이디어는 당시 딕슨이 다니던 회사인 존슨앤존슨에서 상품화하게 됐어요. ‘밴드에이드(Band-Aid)’라는 이름으로요.
“허허. 그거 참 대단한 아내 사랑이구만.”

“에이, 그 정도는 대단한 게 아니에요. 특허권으로 벌 돈보다 애인을 선택한 ‘로맨스 발명’도 있는 걸요!”
“특허권과 애인을 바꾸다니? 대체 어떤 발명품인가?”
“바로 옷핀이에요. 1840년 12월 영국에 월터 헌트(Walter Hunt)라는 청년이 옷핀을 발명한 사람인데요. 그는 헤스타라는 아가씨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해요. 헌트는 헤스타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찾아갔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한 자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헌트는 물러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두뇌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헤스타의 아버지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제안? 발명품 만들라는 건가?”
“아뇨. 10일 안에 1,000 달러를 벌어 오라는 거였어요. 헌트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눈앞이 막막했죠. 밤새 궁리해도 특별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진 손재주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살을 찌르지 않는 안전한 핀’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갑자기 웬 안전한 핀인가?”
“당시 미국인들은 부활절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늘 핀으로 리본을 꽂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바늘 핀은 리본을 단단하게 고정시키지도 못하고, 찔릴 위험도 있었어요. 헌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철사와 펜치를 가지고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9일째 되던 날 헌트는 안전핀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는 헤스타의 손을 잡고 특허출원을 마치고 리본가게로 안전핀을 팔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1,000 달러를 받고 특허를 팔았죠.”
“저런…. 안전핀 특허를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훨씬 부자가 됐을텐데!”
“헌트에겐 특허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했던 거죠. 결국 두 사람은 약속대로 결혼했고 안전핀을 사들인 리본가게 주인도 백만장자가 됐다고 해요.”

허 PD가 말을 마치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박수가 나왔다. 발명과 특허 뒤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허 PD, 재밌게 잘 들었네. 결국 ‘필요’가 아니라 ‘사랑’이 발명의 어머니였군. 이런 이야기를 잘 소개할 수 있는 포맷은 없을까? 그거 고민해서 가져와. 그러면 설날 특집으로 한번 만들어보자고. 자네도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 발명해야 할 거 아닌가? 허허허.”
“와! 정말요? 국장님, 감사합니다!!!!”

눈치 없기로 유명한 허 PD가 도움이 되는 날도 다 있다. 김 국장은 회의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발명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쓰는 그대는 모두 발명가가 아닌가 말이다. 기특한 허특 PD 덕분에 사람들이 ‘자기만의 발명’을 꿈꾸게 되면 좋겠다. 퇴근하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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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87 호/2011-11-28

모든 수염엔 이유가 있다!

“아! 아! 아파요!! 따갑단 말야!! 제발 다른 벌을 내려주심 안 돼요?”

“당연히 안 되지. 이거보다 재밌는 벌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든!”

아빠는 까끌까끌한 턱으로 태연의 보드라운 볼때기를 마구 비벼대고 있다. 심부름을 거역한 죄로, 태연에게 가해지는 형벌 가운데 가장 고통스럽다는 부비부비형에 처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오히려 벌을 준다기보다 사랑하는 딸과 볼을 맞대고 있는데서 행복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태연의 표정은 상당히 고통스럽다.

“아빠는 가해자라서 몰라. 이게 얼마나 아픈지 알아요? 다음날까지 얼굴이 따끔거린다고요. 도대체 남자 어른들 수염은 왜 생겨난 거야? 급할 때 무기로 쓰라고 하나님이 주셨나? 차라리 깎지 않고 내버려두면 내가 잡아당기면서 놀기라도 하지, 이건 고문이 따로 없다고욧!”

수염이 왜 생기냐고? 그건 남성호르몬 때문이란다. 사춘기 이후에 남성호르몬의 작용으로 수염이 돋게 되지. 제 2차 성징의 하나로 남자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남성호르몬은 머리털 성장을 억제하는 대신 수염과 털의 성장을 촉진시킨단다. 반대로 여성호르몬은 수염 등의 성장을 억제하는 대신 머리털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거지. 요즘엔 대부분 깔끔하게 수염을 깎지만 백 년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남자들이 수염을 길렀어. 이집트에선 상류층 남자들에게만 수염을 기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도 했단다.”

“아, 그러니까요. 그걸 귀찮게 왜 자꾸 깎냐고요. 길러서 땋고 다니면 남자들도 편하고, 또 예쁘고, 아이들은 고문을 당하지 않아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냐고요. 그런데 아빠, 세상 만물 가운데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수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면서 생겨난 것일까요?”

“넌 심히 짜증날 때마다 순간적으로 똑똑한 말을 하는 습관이 있더구나. 놀라운 내 딸. 암튼, 원래 모든 털은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단다. 체온을 외부로 빼앗기는 것을 막고, 마찰이나 충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지. 예를 들어 흑인의 곱슬머리는 뜨거운 열대 태양으로부터 두피가 상하는 것을 막아준단다. 동물의 경우 사자의 갈기는 적의 이빨로부터 목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말이나 소의 꼬리털은 해충을 막아 몸을 보호하고….”

“아, 그러니까요. 그런 것들은 다 역할이 있는데 남자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턱수염은 왜 생겨나서 절 괴롭히는 것이냐 이 말씀이에요. 제 얘기는.”

“글쎄다. 아직까지 정확히 수염의 역할이 무엇인지 밝혀진 바는 없지만 동물들의 수염 역할을 알아보면 뭔가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싶구나. 수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고양이란다. 고양이 수염은 일종의 안테나 역할을 한단다. 길고 딱딱한 고양이 수염의 끝에 뭔가가 닿으면 고양이는 매우 민첩하게 움직인다고 해. 고양이의 눈은 가까이 있는 물체를 잘 보지 못하기 때문에 윗입술, 눈 위, 뺨, 턱 아랫부분에 나 있는 수염을 가지고 근처에 있는 사물을 인식하는 거지. 특히 먹잇감을 물었을 때, 까딱 잘못하다가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먹잇감에 물릴 수 있기 때문에 이때는 예민한 수염을 적극 사용하곤 하지. 또 쥐 같은 설치류도 수염을 일종의 센서로 이용한단다. 특히 쥐는 수염 한 올 한 올이 마치 곤충의 섬세한 더듬이처럼 사물을 느끼면서 움직이는데, 그 덕분에 어두운 밤에도 재빠르게 잘 활동할 수 있는 거지.”

“헉, 그러면 남자의 수염도 가까이 다가오는 적을 감지하기 위한 안테나였을까요? 어떤 적? 혹시 못생긴 여자를 피하기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하고…! 또 다른 경우를 살펴보자면, 바다표범 같은 경우 물속에서 수염만으로 최대 180m 밖에 있는 사물의 움직임까지 밝혀낼 수 있단다. 초음파로 사물을 추적하는 돌고래의 감지 범위가 110m인데, 그것보다 훨씬 먼 곳을 감지할 수 있다는 거지. 수염이 초음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게 대단하지 않니?”

“아~ 그러니까 이번엔 남자의 수염이 180m 밖에 있는 미녀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감지하려고 생겨났다는 말씀?”

“우리 태연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삐딱하실까? 아직까지 남성 수염의 역할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보통 더 남자답고 멋져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단다. 새의 볏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것처럼, 남성의 덥수룩한 수염도 강한 남성의 매력을 여성한테 어필하기 위한 것이란 얘기지.

“음…, 그건 확실히 맞는 얘기인 것 같아요. 전 정말이지 수염이 긴 남자만 보면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니까요~. 그러니까 아빠도 한 번 길러보시는 게 어때요? 차승원보다 백배는 멋질 거 같은데.”

“저, 정말? 그럴까? 내가 워낙 기본이 되는 얼굴이니까 수염을 기르면 더 멋지겠지? 그럼 까끌까끌한 턱으로 태연이 볼때기 비비기 딱 삼천 번 만 더 해보고 길러봐야겠다!”

“꺄악~~!!”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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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74 호 / 2011-11-14


장수의 비결을 꼽을 때 항상 ‘소식(小食)’이 거론된다. 음식을 적게 먹으면 정말 오래 살까? 최근 칼로리 섭취를 줄이면 노화가 지연되는 이유를 밝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의 세포분자생물학 교수 미카엘 몰린 박사는 칼로리 섭취를 줄이면 세포노화에 따른 유전물질 손상 억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가 활성화된다고 밝혔다.

‘페록시레독신-1’이라고 불리는 이 효소는 세포가 노화되면서 점차 활동성을 잃게 된다. 하지만 칼로리 섭취량을 줄이면 이 효소를 고치는 다른 효소가 증가하면서 페록시레독신-1 효소가 비활성화 되는 시간을 지연시켜준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의 과학전문지 ‘분자 세포(Molecular Cell)’ 최신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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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1-17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ㅠㅠ
그런데 증거가 너무 말이 되네요 ㅠㅠㅠㅠ

마노아 2011-11-17 06:19   좋아요 0 | URL
나이가 지긋해지면 식욕이 자연스레 줄어들까요? 오래 살고 싶어요...;;;;;

sweetrain 2011-11-17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웬만한 남자분들보다 많이 먹는데...ㅠ.ㅠ
게다가 전 지금 성장기때보다 더 많이 먹는걸요. ㅠ.ㅠ

마노아 2011-11-17 10:47   좋아요 0 | URL
아아, 가을이 되어서 더 땡기는 것도 있어요. 날이 추워지면 식욕도 같이 올라가요..ㅜ.ㅜ

자하(紫霞) 2011-11-1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밥먹는 양을 줄이려고 과일이랑 샐러드를 먼저 먹고 나서 밥을 먹어요.
칼로리 섭취를 줄이려고 생각한 건데...아~근데 몸무게는 안 주네요.ㅜㅜ

마노아 2011-11-17 10:48   좋아요 0 | URL
과일도 당분이 높아서 은근히 다이어트엔 방해가 되더라구요.
쉬운 게 없어요. 쿨럭...;;;;

무스탕 2011-11-1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훌륭한 과학자 의사 수학자 정치가 법관등등이 탄생해서 많이 먹어도 오래 사는 비결을 발견하고 발명해 줬으면 좋겠어요. 빨리빨리!! ^^

마노아 2011-11-17 10:48   좋아요 0 | URL
더불어 많이 먹고도 살이 안 찌는 비결도 같이 만들어주었으면 해요.(>_<)

순오기 2011-11-18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요즘 많이 먹어서 걷는 것으로 줄어든 몸무게가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타요.ㅜㅜ

마노아 2011-11-18 09:04   좋아요 0 | URL
저는 변비 때문에 오락가락해요. 게다가 수영까지 일주일 정도 빠지면 2kg 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