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1503 호/2011-12-19

좋은 소음도 있다? 백색소음 효과

소음이란 듣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말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듣는 사람의 처해진 환경이나 심리상태에 따라서는 그 소리가 방해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례로 애타게 보채고 있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엄마나 아기에게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소리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그런데 이런 소음 중에도 좋은 소음이 있다. 어떤 소음이 좋은 소음일까?

소음의 유형에는 특정 음높이를 유지하는 ‘칼라소음(color noise)’과 비교적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white noise)이 있다. 백색음이란 백색광에서 유래됐다.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7가지 무지개 빛깔로 나눠지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를 합하면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 된다. 백색소음은 우리 주변의 자연 생활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생활환경에 따라 주변소리가 다르듯이 백색잡음도 다양한 음높이와 음폭을 갖는다.

우리 생활주변에서 들리는 백색음으로는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있다. 이들 소리는 우리가 평상시에 듣고 지내는 일상적인 소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소리가 비록 소음으로 들릴지라도 음향 심리적으로는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듣게 된다. 또 항상 들어왔던 자연음이기 때문에 그 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자연의 백색음을 통해 우리가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호감을 느끼게 돼 듣는 사람은 청각적으로 적막감을 해소할 수 있다.

이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백색소음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반적인 소음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우리는 다년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음도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먼저 사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백색소음을 평상시 주변소음에 비해 약 10데시벨(dB) 높게 들려주고 일주일을 지냈더니 근무 중 잡담이나 불필요한 신체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한 달 후 백색소음을 꺼버렸더니 서로들 심심해하면서 업무의 집중도가 크게 떨어졌다. 즉 백색소음이 없는 것보다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시켰다.

여름에 해변가에서 텐트를 치고 있노라면 불어오는 해풍에 시원하고 쾌활한 느낌이 들지만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깊은 잠을 자게 된다고 한다. 특히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해변의 파도소리를 CD에 수록해 팔고 있는데, 도심의 슬리핑 캡슐 등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때 숙면 유발용으로 아주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이는 파도소리에 숨겨져 있는 백색소음이 인간 뇌파의 알파파를 동조시켜 심신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의 백색음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면 학습효과가 크게 개선된다. 남녀 중학생을 대상으로 서울 노원구 소재의 한 보습학원에서 영어단어 암기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일상적인 상태와 백색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상태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고교 2학년 수준의 영어단어를 5분간 암기하도록 했는데, 평소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35.2%나 개선됐다.

또 다른 실험으로 독서실에서 백색소음을 들었을 때 집중력이 얼마나 개선되는가를 알아봤다. 각자의 책상 위에 백색소음이 발생되는 장치를 부착하고 공부하면서 옆 좌석에 고개를 돌리거나 주변에 관심을 갖는 횟수를 시간 단위로 비교 파악했다. 이 경우에도 백색소음이 들렸을 때 주변에 관심을 갖는 횟수가 약 22% 정도 줄어들었다.

실험 결과를 좀 더 명확히 입증하기 위해 백색소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뇌파반응을 검사해 봤다. 한 의과대학의 도움을 받아 피 실험자에게 백색음을 들려주고 뇌파를 측정했더니 베타파가 줄어들면서 집중력의 정도를 나타내는 알파파가 크게 증가했다. 이는 뇌파의 활동성이 다소 감소되고 심리적인 안정도가 크게 증가했다는 의미다.

또 다른 실험으로 우리 주변의 자연음을 들려주었을 때 집중력의 변화를 관찰했다. 5분 단위로 주변의 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주고 10대, 20대, 30대 등 연령대 별로 공부 중 신체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10대와 20대 피 실험자는 약수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소나기 내리는 소리 등 비교적 넓은 음폭의 소리를 선호했고, 이때 공부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한편 30대는 작은 빗소리나 큰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등 중음 폭의 백색소음을 더 선호하면서 업무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한편 생후 3~4개월 미만의 신생아가 우는 경우 태아시절에 들었음직한 심장박동소리, 숨 쉬는 소리, 엄마 아빠의 목소리 등을 녹음해서 들려준다면 과연 아기가 안정을 취할까? 하지만 실험 결과 아기는 점점 더 불안해하고 엄마의 품을 찾아 더 애타게 울먹일 뿐이었다.

이때 TV의 빈 채널에서 나오는 쉬이익 거리는 소음을 들려주면 울던 아기가 금방 울음을 멈추고 안정감을 찾는다. 어떤 부모는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울던 아기가 안정을 찾았다고 하고, 부드러운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면 아기가 금방 밝은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신생아를 달래는 이런 소리 역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백색소음이다.

백색소음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실생활에 활용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소음으로 소음을 잡아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이다. 백색소음은 넓은 음폭을 가지기 때문에 목소리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은행이나 보험사 등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쓰일 수 있다. 즉 개인적인 주민등록번호나 계좌번호 등의 숫자를 말하게 되면 옆 사람이 알아듣고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이때 백색소음이 일정한 레벨로 들리게 하면 옆 사람은 숫자의 발음 차이를 잘 구분할 수 없게 사운드마스킹(sound masking)이 된다. 때문에 목소리를 통한 개인정보의 유출이 보호될 수 있다.

이렇듯 듣는 사람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소음이라도 백색소음은 우리 생활 주변의 자연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소리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가 첨단화될수록 사회 요소요소에 백색소음의 수요가 점차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청각과 촉각을 만족시키는 백색소음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진행돼 인간에게 두루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길 바란다.

글 :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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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02 호/2011-12-19

반짝반짝 금모래 만들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거리는 떠들썩하게 빛났습니다. 작은 제비의 입에 물려 있는 금조각의 빛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작은 금 조각이 시청 앞에 서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왕자님’ 동상이 마지막으로 벗어던진 최후의 조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비는 지친 날개를 재빨리 저어대며 날았습니다. 날씨는 너무 추웠고, 매일 밤 날아다니느라 기력도 쇠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제비의 머릿속에는 오직 마지막 금 조각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디작은 뇌를 달콤하게 지배하던 따스한 이집트에 대한 향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작고 쓰러져가는 오두막의 창가에 내려앉은 제비는 떨리는 부리를 조용히 열어 금 조각을 떨궜습니다. 창가 앞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가난한 과학도의 눈에 띌 수 있는 정확한 위치에 말입니다. 깜짝 놀라 반짝이는 조각을 집어 든 과학도는 조심스레 조각을 깨물어 보고 주위를 휘휘 둘러본 뒤 그 자리에 꿇어앉았습니다. 과학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는 생활고를 잊고 자신의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과학도는 눈물로 얼룩진 눈을 들어 창가를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누구신가요, 이런 고마운 성탄 선물을 주신 분은!”

제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과는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까요. 그저 떨리는 날개를 모아 쥐고 비틀대는 다리를 어렵게 유지한 채 고개를 갸웃댔을 뿐입니다. 제비를 본 과학도는 다시 한 번 부르짖었습니다.

“오오, 네가 전해준 거였구나!”

제비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댔습니다.

“그래, 창가에 앉아 추위에 떨지 말고 잠시나마 들어오지 않겠니? 너를 통해 이러한 선물을 주신 분께 변변치 않지만 작은 선물이나마 돌려 드리고 싶어서 그런단다. 아주 잠시만 기다리거라.”

제비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왕자님의 보석이며 금을 온 마을에 뿌려왔지만, 보답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조심스레 발을 들이밀어 창가의 작은 촛불 옆으로 간 제비는 온몸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 사이에 부스럭대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던 과학도가 작은 시험관을 내밀었습니다. 제비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가루들이 아름답게 춤추고 있었거든요. 이리도 금이 많다면 애초에 나누어 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왕자님의 마지막 사랑을 이런 곳에 던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깊은 후회와 분노에 몸을 떨기 시작한 제비 앞에서 과학도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오해하지 말렴, 작은 제비야. 이건 진짜 금이 아니란다. 요오드화납이라는 물질의 작은 결정일 뿐이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다시 한 번 따스한 공기에 몸을 맡긴 제비를 보며 과학도는 조용히 미소 지었습니다. 촛불 불빛을 받은 시험관은 아까보다 훨씬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마치 햇빛 속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왕자님의 몸처럼 말이지요.

“네가 몸을 녹일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으니 짧게나마 설명을 해 주마. 내가 넣은 건 질산납 용액과 요오드화칼륨 용액이란다. 이 두 물질을 물에 녹여 섞으면 요오드화납이 만들어지지. 요오드화납은 아주 강한 노란색을 띠고 찬물에 녹지 않아. 그래서 처음에는 노란 가루들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지. 이 용액을 다시 한 번 가열하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물에 점점 녹아들어가면서 용액이 다시 투명해진단다. 그 용액을 찬물에서 재빨리 식히면 요오드화납 가루가 다시 나타나지. 그래, 찬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말이야. 이때는 결정이 자라날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마치 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아주 작은 가루들이 만들어지지. 반대로 천천히 식히면 결정이 커지고 달라붙어서 원래의 노란 덩어리가 나타나게 될 거야.”

말을 마친 과학도는 시험관을 가로로 내밀었습니다. 살짝 날아올라 발끝으로 시험관을 붙잡은 제비는 다시 한 번 과학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눈가에 하얗게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환한 촛불 불빛 속에서 마치 은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입니다.

“진짜 금은 줄 수 없지만, 어쩌면 싸구려 눈속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빛나는 계절에 이 작고 초라한 사람 하나를 구원해주신 분도 함께 빛났으면 하는 마음에 드리는 거란다. 어쩌면 그 분께 이런 걸 드리는 것부터 누가 될지 몰라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는구나. 혹시라도 너무 무겁거나 들기 버거우면 중간에 버리고 가렴.”

제비는 고개를 저으며 날아올랐습니다. 확실히 아무리 작다고는 하지만 물이 가득한 시험관은 지친 제비가 감당하기에 많이 무겁고, 또 미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제비는 마지막 힘을 짜내 발끝에 잔뜩 모으며 시험관을 단단히 그러쥐었습니다. 소중한 마음은 절대 떨어뜨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법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거리는 여전히 떠들썩하게 빛났습니다. 제비 다리에 끼어 있는 시험관 속의 빛은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작은 금가루가 시청 앞에 서 있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왕자님’ 동상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따스한 보답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비가 알고, 왕자님도 조만간 알게 되실 겁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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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직전 껌 씹으면 성적 ↑

 

제 1496 호/2011-12-12

시험 직전에 껌을 씹으면 뇌가 활성화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세인트로렌스 대학의 서지 오나이퍼 심리학과 교수팀은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했다. A그룹은 시험 직전 5분간, B그룹은 시험을 치는 동안 내내 껌을 씹게 하고 나머지 C집단은 껌을 씹지 않았다. 시험 문제는 분별력, 판단력을 검사하는 인지적 과제였다. 그 결과, A그룹의 성적이 나머지 두 그룹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결과는 신체 활동을 약간만 해도 인지 능력 시험의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시험 도중에 껌을 씹는 것은 효과가 없었다. 오나이퍼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씹는 일과 인지 과제 처리에 두뇌활동이 분산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2011년 12월 ‘식욕(Appetite)’저널에 발표됐다.

 

 

인간이 일으키는 지진이 있다?

제 1495 호/2011-12-12

 

 

자연재해로만 알고 있는 지진. 그런데 인간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 인간은 석유나 가스, 기타 광물자원들을 얻거나 댐과 같은 큰 건축물들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판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인공 지진을 연구하는 크리스찬 클로스는 인간 활동 때문에 지난 160년간 발생한 규모 4.5 이상의 지진만 200건이 넘는다고 전했다.2008년 중국 쓰촨성의 지핑푸 댐으로 인해 생긴 지진이 대표적인 예다. 지핑푸 댐에는 1조 1,970억L의 물이 저장돼 있다. 이 엄청난 규모의 물이 규모 7.9의 강진을 발생시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핑푸 댐에 있는 3억 2,000만 톤 무게의 물이 지하 단층선을 눌렀고, 그 힘은 지진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응력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댐이 완공된 후 2년 만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점, 진앙이 댐으로부터 불과 5km 떨어진 곳이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밖에 수 km 깊이의 지각 밑 암반을 파서 에너지원을 찾는 지열발전소 건설, 석탄 채굴 등도 지진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현재까지 인간이 일으킨 지진 중 댐이 일으킨 지진은 76건, 채굴작업으로 발생한 지진은 137건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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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98 호/2011-12-12

수많은 희생 끝에 탄생한 ‘미터법’

1999년 9월, 화성 궤도에 진입하던 미국의 ‘화성 기후 궤도선(Mars Climate Orbiter)’이 대기와 마찰을 일으켜 파괴됐다. 이 탐사선을 제작했던 미국 기업 록히드 마틴은 야드파운드법을 기준으로 제작했는데, 탐사선을 실제로 운용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계기에 표시된 숫자들을 미터법 단위로 이해해 조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진력 수치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탐사선은 화성에서 예정보다 100km 아래인 60km 지점의 낮은 궤도에 진입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지대에서는 과속으로 인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 미국의 속도 단위는 마일(mil)이고 캐나다의 속도 단위는 킬로미터(km)로 다른데, 국경을 넘어서면서 단위 변화를 무심코 과속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단위들. 그런데 국가별로 다르게 사용되는 단위들로 인해 자칫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단위의 통일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중 길이를 재는 단위, 미터(meter)는 현재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미터법이 제정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미터법은 1799년 12월 10일, 프랑스에서 도입됐다. ‘미터’라는 용어의 어원은 ‘잰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메트론(metron) 혹은 라틴어 메트룸(metrum)에서 유래됐다. 18세기 말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는 시민 혁명이 한창이었다. 혁명을 이끌어낸 계몽사상가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척도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실제로 그 당시 프랑스에는 약 800개의 이름으로 25만개나 되는 도량단위가 쓰이고 있었다. 이를 통일하려는 시도는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측정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었고, 여러 측정 장치들이 개발되고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다양한 양들에 대해 정밀한 측정을 시도했다. 과학이 정성적 단계에서 정량적 단계로 발돋움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유럽 과학의 중심지였던 파리 과학아카데미에서 주도했다. 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은 과학사의 잠재력을 국가를 위해 유익하게 쓸 수 있는 예로써 도량형의 개혁을 주장했다.

과학아카데미의 회원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했던 새로운 도량형 체계는 임의적이지 않고 표준 원기(原器)를 잃어버리더라도 쉽게 재생이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단순해서 사용하기 편리하며 합리성, 보편성을 갖춰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10진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는 최종적으로 ‘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子午線) 길이(90도)의 1,000만분의 1을 새로운 단위 미터로 한다’고 공표했다. 이 결정에 따라 프랑스과학아카데미가 선발한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장바티스트조제프 들랑브르(Jean-Baptiste-Joseph Delambre, 1749∼1822)와 피에르프랑수아앙드레 메솅(Pierre-Francois-Andre Mechain, 1744∼1804)은 측량원정을 떠났다. 이들은 정확한 자오선 길이의 측정을 위해 1792년 6월 각각 파리의 북쪽과 남쪽으로 떠난다. 정치적 대변혁기에 이뤄진 그들의 측량원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그림 북극에서 적도까지 정확한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던 천문학자들. 좌측이 들랑브르, 우측이 메솅.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들랑브르는 싣고 가던 관측기구들이 고성능 무기로 오인돼 민병대로부터 몰수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넉 달간 겨우 64km 밖에 전진하지 못할 정도의 악천후를 만나기도 했다. 남쪽 원정대장 메솅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가 넘어야 했던 피레네 산맥은 사람을 공격하는 늑대는 물론 총기를 불법으로 거래하는 밀수업자, 산적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또 바르셀로나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늑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또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전쟁이 터지면서 남쪽 원정대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원정대원들이 파리로 돌아오고 나서도 정확한 수치를 가져오는 데는 7년이나 걸렸다. 그 이유는 메솅이 숨진 뒤 들랑브르가 그의 측량노트를 검토하면서 밝혀졌다. 메솅은 자신의 데이터를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자오선 측량작업을 조작했던 것이다. 그는 결벽에 가까울 만큼 정확성을 중요시했다. 그런데 측량노트를 작성하면서 오류를 발견한 것이다. 귀국 후 프랑스 최고 천문가로 대접받은 메솅이지만, 자신의 실수로 인해 자살을 시도할 만큼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1m가 탄생했다. 프랑스는 1799년 6월 미터법을 국가 표준으로 할 것을 법령으로 공포했다. 하지만 미터법은 보급되기까지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프랑스에서는 1840년 강제로 법령을 집행하기에 이른다. 이후 1870년 8월에는 파리에서 국제 미터법 위원회가 발족됐고 1875년 5월 20개국 참가국 중 17개국이 미터 협약에 서명했다.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쳤지만 이제 미터법은 미국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사용하는 ‘만물의 척도’로 자리 잡았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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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97 호/2011-12-12

가습기 관리, 어렵지 않아요~

엄마 아빠와 태연이 가사분담을 주제로 가족회의 중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일을 덜 맡을까, 치열한 두뇌싸움과 눈치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자, 이제 각자의 주장을 들어봤으니까 최종적으로 내가 결정을 내리겠어요. 태연 엄마는 주방에 관한 모든 것, 즉 요리와 설거지를 일임해 주세요. 나는 퇴근 후에도 할 수 있는 빨래와 청소를 맡을 테니까. 아무래도 이런 건 힘센 남자가 더 잘 하는 분야인 데다가, 당신의 가냘픈 허리가 힘든 청소 땜에 다치는 건 정말 싫고… 기타 등등….”

아빠는 또 다시 엄마에 대한 무한 애정공세에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짜증이 난 태연은 버럭 큰소리를 낸다.

“아, 그러니까 전 뭘 하냐고욧!”

“넌 몽몽이 화장실 청소와 목욕, 그리고 온 집안의 가습 관리를 맡는 게 어떻겠니?”

“어머머, 정말요? 넵, 열심히 하겠습니닷!!”

뭔가 엄청 귀찮은 일을 떠맡을 줄 알았던 태연, 이게 웬 떡이냐~ 싶다. 여태 하던 몽몽이 관리에 겨우 가습 하나만 추가되다니…!!

“자, 그럼 저는 가습을 하러 가겠습니다. 가습기통에 물만 떨어지지 않게 하면 되는 거죠?”

“음, 그것 말고 주의할 게 몇 가지 더 있단다. 지난 봄 임산부들 사이에 집단 발생해서 5명이나 사망했던 폐 손상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세정제) 때문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살균제에 들어있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포스페이트’를 비롯한 4가지 화학약품은 샴푸나 조리기기 세척제, 곰팡이 제거제 같은 용도로 쓰이는 독한 성분이야. 당연히 사용한 뒤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 몸에 남아있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물질들이지. 그런데 이걸 가습기에 넣어 수증기와 함께 공기 중에 퍼지게 하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에 직접 닿게 되고, 당연히 폐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왜 임산부들만 더 피해를 본 거예요?”

“임산부들은 외출을 잘 못하잖아. 그래서 방안에 있는 시간이 길었고, 뱃속의 아기를 위해 특별히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려고 가습기 살균제를 꼭꼭 챙겨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단다. 게다가 임신 8개월 이상이 되면 숨이 가빠지면서 평소보다 호흡량이 30%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독성물질에 똑같이 노출돼도 흡입량은 더 많을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렇구나. 정말 안타깝네요. 그런데 그 사건이랑 제가 가습기 물 채워 넣으러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아, 제가 세척제 쓸까봐 그러세요? 에이, 제가 아무리 무식해도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세척제 대신 온몸으로 철저한 세척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그래. 첫째, 가습기에 넣는 물은 매일 갈아주되 끓였다가 식힌 물이 가장 좋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정수기 물을 넣어야 해. 아빠가 명하노니, 넌 꼭 끓였다 식힌 물을 쓰도록 하여라. 둘째, 가습기 통은 일주일에 한번 씩 청소해줘야 한단다. 물통의 경우 1/4정도 물을 남긴 후 마구 흔들어서 세척한 다음 밤새 바짝 말려야 하고, 본채 안쪽은 부드러운 청소 브러시를 이용해서 구석구석까지 아주 꼼꼼하게 닦아줘야 해.

셋째, 가습기를 무조건 계속 틀어놓으면 오히려 실내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세균이나 집먼지진드기, 곰팡이가 생길 수 있으니까 잠들기 한 시간 전부터 켜고 아침에 일어나면 꺼야 해. 가습기를 끈 다음엔 꼭 환기를 해주는 것도 잊지 말도록! 아,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티트리 오일도 한 두 방울 꼭 가습기 통에 떨어뜨려 주겠니? 상큼한 아로마 향도 맡을 수 있는데다, 원래 티트리 오일이 강력한 살균효과가 있거든. 그래서 여드름이나 상처, 세균질환 같은데 발라도 아주 좋아. 가습기통에 넣으면 당연히 물도 소독되니까 꼭 잊지 말아라. 암튼, 부탁해~~!”

“머, 머가 이렇게 복잡해요! 초등학생한테 이렇게 과중한 일을 시키시다니, 이건 아동학대라고요!”

“정 그렇게 힘들다면, 가습기를 대체할 방법들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구나. 방에다 빨래 널기, 숯에다 수시로 물 뿌리기, 수족관에 물고기 키우기, 키가 크고 잎이 넓은 관엽식물 키우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단다. 한 가기만 해가지곤 가습기를 대체하기 힘들 것 같고, 빨래 널기랑 물고기 키우기 정도만 하면 어떻겠니? 어항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지만 빨래는 매일 해야 해.”

“빨래는 원래 아빠 담당이잖아요!!”

“어허? 그랬나? 네가 가습을 담당한 덕분에 아빠가 해야 할 빨래까지 도와주게 됐구나. 이런 착한 것 같으니. 이참에 찌인~하게 효도 한 번 한다는 셈 치고 열심히 빨래를 널어보렴~!”

“아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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