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들의 행방 1
이마 이치코 지음, 이은주 옮김 / 시공사(만화)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이마 이치코 단편 세트를 샀더니 그 안에 이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단 제목에서 호감을 팍팍 주는데,

어릴 적 내가 보았던 그 설레임 넘치는 키다리 아저씨는 절대 아니었고...(게다가 '들'이지 않은가.)

내용도 야오이물... 그런데, 성장 만화란다. 으하하핫.

만약 우리나라 만화였다면 '성장만화'라는 타이틀은 절대 못 걸었을 것 같다.

뭐, 변태물이라던가 뭔가 사회적 질서를 헤치는 내용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금기시 되어 있는 소재가 일본에선 너무 버젓이, 그리고 이토록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할 뿐이다.  뭐, 그렇게 만드는 게 이마 이치코의 힘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자신이 고아라고 첫 시간에 말하고, 그 짝꿍이 아버지가 자주 바뀌어버린 이야기를 뱉어버리자, 세번째 자기 소개한 학생이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죄송하다고 말한 부분은 엽기중에서 최고 엽기이며 가학 개그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 설명하기 까다롭지만 엄청 웃겼었다.  이런 식의, 본인은 진지하지만 남이 보면 웃긴 류의 개그를 좋아한다.

키다리 아저씨들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에도, 기대를 엄청 벗어난 진실이었지만,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애썼던 그들의 모습은 조금이나마 존경스러웠다.

짧은 내용인데, 그 안에서도 완결된 이야기 구조, 거기다가 반전에 코미디까지 결합하는 이마 이치코의 재주가 부럽고 사랑스럽다.  뭐, 아직도 야오이 물은 잘 적응이 안 되지만, 이젠 오히려 즐기고 있는 지두.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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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4-0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리뷰입니다! 생각보다 너무 금방 달려왔어요.
뭐랄까, '왜 더 없는거야~' 하는 아쉬움? ^^;
있죠, 저는 소유욕이 없는 녀석인데,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소장하고 싶은 만화책은 무조건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 -_-) 그런데 가끔은 멍청한 짓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리니지] 만화책중 9권이 없다거나, [월명성희] 만화책은 8권이 없다거나...
살 때 빼놓고 구매한 결과인게죠...=_= 그나마 [월명성희]는 지금이라도 구할 수 있지만..[리니지]는..ㅜ_ㅡ

마노아 2008-04-03 14:36   좋아요 0 | URL
와, 엄청 빨리 도착했어요. 저도 깜짝이에요^^
만화책을 책장에 꽂아 놓아야 비어있는 권이 눈에 보이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저도 놓칠 때가 종종 있어요. 당최 생각이 나야 구매를 제대로 하는데 말예요. 리니지는 중고샵을 찾아야겠군요. 알라딘 말고도 다른 곳을요. 전체 한질이 아니라 한 권이라는 게 좀 난감하긴 하네요.^^

L.SHIN 2008-04-03 14:58   좋아요 0 | URL
아? 모두 묶여 있는 '한 세트'를 한국어로 '한 질'이라고 하는군요! (덥썩,새로운 단어 무는중)
우후후훗, 이러니까, 꼭 제가 마노님 뒤에서 대기중이다가..마노님이 댓글 달면 후다닥 답글
쓰는거 같은.(사실 그렇게 되어버렸지만,웃음)
아, 이제 그만놀고 나가야겠어요~ 또 봅시다, 마대감.ㅎㅎㅎ

마노아 2008-04-03 15:55   좋아요 0 | URL
물건을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단어가 참 다양하죠. 묶음이란 표현도 재밌어요^^
거의 한시간 전에 다녀갔군요. 헤헷, 저도 일하다가 잠시 늦었어요. 이제 곧 퇴근이에요.
또 보자구요. 엘대감^^
 
내 남자친구 이야기 1 - 애장판
야자와 아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입소문 많이 들었지만 정작 내 타입 아니란 선입견에 선뜻 보지 못했다.  친구 집에 갔다가 그 집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읽기 전까지는...

너무 매니악해서 내 취향 아닐 것 같던 그림체가 오히려 너무 매력적이어서 흡인력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나이 또래 청소년들의 고민과 꿈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감동을 받고 말았다.

놀랍게도, 작품의 배경이 80년대 정도로 설정되어 있던데, 난 요즘 이야기라고 착각하고 읽었다.  그만큼 감각적으로 그렸다는 이야기.

독특한 교장 선생님의 학생들 기운 북돋아주기도 인상적이었고, 남다른 어머니 아버지들의 모습, 친구들...

자립하고자 애쓰며 벌써 어른의 책임감을 익힌 그 아이들 앞에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내 남자 친구 이야기'라는 제목은 너무 고전적이지만, 그 안의 주제도 익히 진부하지만, 진부한 것을 결코 진부하지 않게 그려내고 써내는 능력이 야자와 아이에게 있었다.  사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특별한 것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의 후속편도 있었다.  이들이 자라서 그 다음 세대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현재 우리고 살고 있는 이 시점이다.

개인적으로는 파라다이스 키스(후속편)보다는 내 남자친구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그림만 따진다면 파라다이스 키스가 더 매력적이었지만. 아무래도 이야기의 흡인력이 전편이 더 나았던 것으로 보인다.

상자까지 갖춰서 갖고 있는 친구가 부러워 지름신 다시 강림할 뻔 했지만. 참아야지, 참아야지... 금년들어 책에 들어간 지출이 너무 과하여 사버린 책을 남의 집에 맡겨두는 일도 발생.... 어흑, 그렇게 참다가 어느 날 또 다시 내 손이 무슨 짓을 할 지 몰라...ㅡ.ㅡ;;;;

아무튼, 수작은 수작^^ 많은 팬들이 찾는 이유를 알겠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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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 카인 시리즈 박스 세트 - 전8권
유키 카오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어쩌다가 이 책을 처음 찾게 되었는지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우연히 책방에서 제목에 끌렸는데, 그림체가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조금 망설여졌다.  그래도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는데, 집에 와서 읽어보니 너무 재밌는 것이다.

연재를 시작한 지 한참이었는데 중간에 오랜 공백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 때 천사금렵구를 완결했던 것이 아닐까.

하여간, 오랜 공백을 깨고 돌아와 다시 쓴 작품은, 그림체가 확 바뀌어 있었다.  선이 보다 간결해지고 깔끔해 보이기는 한데, 좀 더 진홍빛, 핏빛, 질척한 느낌은 사라졌다.  나름 발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쉽기도 한 점.

배경은 19세기의 영국. 대대로 毒을 잘 다스려온 백작 가문에서 새로이 작위를 이어받은 카인. 17세의 소년

이쯤 되면 이미 순정만화 전형적 틀은 나왔다.  고귀한(?) 혈통의 미소년, 게다가 냉혈한이기까지 하다.  적당히 도도하고 건방진, 그러면서 모성애도 자극하는 가느다란 선을 가진 젊은(어린) 백작.

그러나, 이런 설정으로만 울궈먹었다면 이 작품이 그토록 사랑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 라인이니까.

타롯카드를 교묘하게 짜맞춘 것이나, 과학 기술의 응용이라던가, 당시의 패션, 문화 등등을 엿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누가 진짜 범인인지 맞추기 어려운 추리물의 구조, 그리고 반전의 반전...

그러니 작품이 오래도록 연재가 되지 않고 완결이 늦어져도 손을 놓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 이전의 다른 팬들도.

작품이 너무 궁금해서 이곳저곳을 뒤져 보니 일본판을 먼저 보고서 후기를 남겨놓은 글이 있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엔딩을 미리 보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이...;;;;

그렇지만 완결편이 나오고 나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새롭게 읽었다. 그리고 역시 안타까운 엔딩에 가슴이 저며서 어흑흑을 외쳤으니....;;;;

그래서, 기념으로 전권을 다 구입했다. (내가 샀을 때는 이런 박스는 없었단 말이다.ㅡ.ㅡ;;;;;)

작품의 전체 줄거리는 하나의 큰 흐름을 흐르지만 각 권마다 작은 에피소드, 그래서 소제목이 따로 붙는데, 그 이야기의 진행들이 참 맘에 들었다. 특히 마더구스편이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랄까. 예수를 배신한 유다에게도 이유가 있었을 것을... 작품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상처를 치료받고, 누군가는 상처에 함몰되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는 거듭해서 사람을 배신했지만, 그래도 그 마음 한구석에 단 하나 지키고 싶었던 신의는 있었다고 이해해줄 수 있었던 것에, 어쩐지 내가 고마워지는 기분.

마지막 씬의 카인의 그 웃음은, 정말 하트 백만 개는 날리고도 남을 만큼 사람 홀릴 수준이었다.  아마 그건 작품을 직접 겪고 느껴봐야 이해할 수 있을 듯.

보너스 사진. 엔딩 사진은 아니지만 어디선가 퍼와서 내 홈에 걸었던 아이콘~!

이 작품을 보고서 천사금렵구를 보았는데, 만족도가 이 시리즈에 비해서 많이 떨어졌다. 여전히 탐미주의 성향은 계속되었지만. 스스로를, 나 아름다운 것 좋아해. 이쁘잖아? 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 같아서 왠지 반해버림. 유키 카오리한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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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않는 인어
이마 이치코 지음 / CloverBooks(현대지능개발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백귀야행으로 만난 이후 이마 이치코는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다.  거의 대부분은 보았거나 구입했거나 둘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름만 보고 내용은 전혀 모른 채 구입을 하고 나서 책을 펴들면 놀랄 때가 많다.

작가의 동인지심(?) 때문이다.

사실, 백귀야행은 요괴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동성애 쪽 이야기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 이마 이치코의 이런 성향 작품을 무심코 접했다가 많이 놀랐었다.

그런데, 그때 보았던 단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그런 작품이 나온다는 것.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나는 이마 이치코 단편 시리즈 7권을 구매했는데, 모두 동성애 관련 내용이었다.  아마도 작가는 일본에서 이런 종류의 내용을 실은 잡지에 연재를 한 게 아닐까 싶다.

소시적(?)에는 이런 내용은 감히 쳐다도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사실 얼굴 붉힐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본다. 특별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특별히 거부하지도 않는달까.

게다가 이마 이치코는 선입견을 없애고 대한다면 스토리 라인이 아주 훌륭한 작가다. 상상력도 그렇거니와 그림도 꽤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아주 화려하거나 예쁘장한 그림은 아니지만 묘하게 매력적이다.  요괴 이야기를 많이 보아서인지, 조금 괴기스런 느낌도 나고 때로 '색끼'가 흐르는 그림도 눈에 띈다.(아, 표현이 너무 선정적인가??ㅡ.ㅡ;;;)

이 작품은 네 개의 단편이 실린 책인데, 일단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난 이번에도 제목이랑 작가만 보고 책을 샀다가 뒤늦게 얼라, 또 야오이? 하고 알아챈 경우다.

이 책은 구입한 지 꽤 되었는데 바쁘단 핑계로 계속 보지 못했다. 오늘 우연히 손에 들었고, 내친 김에 다 보았다. 역시 이마 이치코야~ 라는 감탄도 함께.

웃지않는 인어, 푸른 수염의 친구,한여름의 성,회유어의 고독이란 제목인데, 첫번째와 네번째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는 내용이다. 시간을 건너 뛰어서 그 미소년이 이런 얼굴의 장년이 되었다는 것이 조금 슬펐지만(ㅡㅡ;;;)

그리고 한여름의 성은 이미 읽었던 "낙원까지 조금만 더"의 원본(?)격인 내용이다. 낙원까지 조금만 더는 한여름의 성의 5년 전 이야기지만 이야기의 구성은 여기 실린 한여름의 성이 먼저다. 사실 "낙원까지 조금만 더"는 최근에 3부로 완결되었는데, 구입하고 아직 못 봤다..;;;;(요것도 어여 봐야겠다>_<)

네 개의 시리즈 중 세번째 "한여름의 성"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실 자극적이기도 했다...;;; 설정 자체가.

그리고 작품의 배경이 된 낡은 호텔, 습한 날씨, 한 여름의 소나기... 이런 아이템 들이 상상력을 어찌나 잘 충족시켜 주던지..(작가가 의도했나 보다.) 그런 날씨에선 누구라도 좀 미치지 않을까.^^;;

그런데, 이마 이치코의 장점이자 단점은, 작품을 가볍게 보아서는 내용 이해가 바로 안 된다는 점이다.

반드시 과거로 돌아가 되새겨 보아야 할 구성을 갖추고 있는데, 그래서 집중해서 보아야 하고, 다 본 다음에는 앞으로 돌아가 주인공이 그때 왜 그런 독백을 했었는 가를 꼭 확인하게 만든다. 이건 백귀야행에서 익히 보아온 구성이지만 단편에서도 예외가 없다.

그래서,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난 이 점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만화라는 장르가 쉽고 재밌고 가볍게~ 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난 가급적 진지하고 성실하고 의미있는 내용을 담은 책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야오이'라는 겉포장을 쓰고 있지만, 낱말의 사전적 의미대로 쓸모 없고 의미 없는 책은 절대 아닌 이마 이치코의 스타일이 근사해 보인다.(야오이 아니어도 좋다. 아닌 작품은 그런데 요괴 작품이다.ㅋㅋㅋ)

이 책은 꽤 재미 있었지만, 이전에 보았던 작품보다 더 빼어난 작품은 아니고 작가의 평균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별 넷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그나저나 백귀야행 다음 편 나올 때가 됐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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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뜸의 거리
코노 후미요 지음, 홍성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인상적이었던 리뷰를 보고는 덜컥 구입을 했는데, 정작 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룬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무거운 주제를 접하기에 준비가 필요했던 듯...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 폭탄... 원폭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에 선뜻 손이 가지 못한 것은, 일부러라도 미워하고픈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될까 봐서 심리적으로 거부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역시, 읽고나서 조금 힘들었다.  작가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지만 어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고 담담히 받아들여질 이야기던가.

너무 아픈 사람들, 앞으로도 계속 아플 사람들... 대를 이어 뿌리치지 못할 굴레를 안고 살아야 할 사람들..

그들은 평화롭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잿더미가 된 사람들이다.  죽은 사람은 죽어서 가혹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아서 가혹하다. 뿐이던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후대에까지 그 피해가 이어지니, 저주의 굴레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잠시 숨 좀 고르고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 작품은 해설까지 포함해서 103페이지다. 몹시 얇은 책인데, 그 안에 연작시리즈로 세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원폭 10년 후인 1955년, 그리고 원폭 2세대가 태어난 1986년, 그리고 그 2세대마저 성장한 2004년의 이야기.

그림체는 전혀 정교하지 않고, 학습만화에 나올 법한 정도의 그림체이다.  글씨가 세로로 써진 내용이 많아서 읽기에 부자연스러워 조금 불편했다.  게다가 과거 회상 씬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처음에는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고 헤매기도 했다.  나중에 이해를 하고서 다시 보니 회상씬은 그림이 조금 흐리게 인쇄를 했다.  똑같은 장소의 옛날 모습으로 사악 변하는 장면은 꼭 뮤직비디오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 내용을 가지고 한시간짜리 드라마를 만들면 특집 프로그램으로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한 미나미는 원폭 십년 후 23세의 직장인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하지 않고 살아지지만 마음 속엔 늘 짐이, 의문이 담겨 있다.  설레이는 사랑이 다가와도 두려움이 앞서고 내가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의문을 갖는 여자다.  직장 동료와 다리 위에서 첫키스를 했을 때, 배경으로 깔리는 수많은 시체 더미는 섬뜩할 정도로 무서운 풍경이었다.  도망치듯 달리는 그녀에게 애써 지우려고 했던 옛 생각들이 떠오른다.  담밑에 깔린 반친구를 외면했던 일,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여동생도 죽고, 언니도 죽었다.  한달동안이나 얼굴이 부어서 눈을 뜨지 못했던 엄마와 살아남았고, 남동생은 고모댁에 보내어 양자 삼게 하였다. 

숱한 고민과 번뇌 끝에 그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달라고 연인에게 말한다.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미안해지지 않도록...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에 행복감을 느끼며, 안심하고 돌아온 그녀는 그날로부터 일어나지 못한다. 밥을 넘기지 못하고 눈을 뜨지 못한다.  죽어가면서 그녀는 십년 전에 죽었던 언니를 떠올렸다.  오래 살고 싶다라는 말을 차마 남기지 못했던 그 언니, 그 마음을 이제 그녀가 갖게 된다.  그리고 끝내, 눈을 감는다.

죽으면서 그녀는 한탄스럽게 생각한다. 

기쁜가요?

10년이 지났지만 원폭을 떨어뜨린 사람은 나를 보고 "해냈다! 또 한 명 죽였어!"

하고 잊지 않고 생각해줄까?

그녀의 마지막 절규를 들으며 나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그 원망스런 전쟁을 떠올려본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던, 그리고 서로 등돌리게 했던, 우리에게 분단의 아픔을 남겨주었던 그 전쟁들을 말이다.

두번째 이야기와 세번째 이야기는 같은 제목에 1.2 번호만 붙여서 나왔는데, 고모댁에 양자로 보냈던 그 남동생의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남동생이 늙은 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간에 과거 회상씬이 삽입되어 있는데, 원폭 피해로 머리가 나빠진 어느 여성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 그녀에게 해준 말이 인상적이다.

"모든 것을 원폭 피해로 돌려선 안 돼!"

그 말이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던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싸움에 결국 지원군은 자기 자신들, 그리고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싸매주는 '사람'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의 화자는 원폭의 직접 피해자이니 그 어조가 서러울 수밖에 없지만,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들의 화자는 아무래도 원폭의 2차 피해자 혹은 간접피해자인 까닭에 그 목소리가 조금 더 담담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약하나마 절망에서 희망으로, 현실의 거부에서 현실의 인정으로 마음이 굽어지는 것 같아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후기에서 일본에서조차 히로시마에서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라는 이야기가 꽤 뜻밖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비극을 단순히 '비극'으로만 기억할까 봐 나는 또 두렵다.  그 속에 뼈아픈 반성과 참회는 없는지, 그들 피해자가 아닌 일본 국민 모두에게 묻고 싶다.  그들이 역사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작품의 제목이 '저녁뜸의 거리'인데, 저녁뜸이란 바다와 육지의 기압이 비슷해지는 아침과 저녁에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데 그 시간대를 아침뜸, 저녁뜸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첫번재 이야기의 미나미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저녁뜸일 거라고 짐작을 했는데 사실은 아침 뜸이었고, 그 아침뜸이 끝날 무렵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죽었다.  멈춰 있는 바람과 다시  부는 바람.  그 안에서도 작가는 그들의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암시한 것이 아닐까.

마음은 무겁지만 좋은 작품을 만난 것은 기쁜 일이다. 

덧글 하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원폭투하를 앞두고 고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엄청 역겨웠던 기억이 난다. 한국전쟁 때 맥아더하고는 왜 다퉜는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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