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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짜장면
안도현 원작, 최규석.변기현 만화 / 행복한만화가게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사실, 안도현씨 글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상투적이라 느끼기 때문.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만화'라는 매체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르겠다.
입소문은 들어서 궁금하지만 길게 읽고 싶지 않았던 내게, 행간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해 주는 이 책은 딱 적절한 선택.
열일곱 나이. 어른이 된 것처럼 장성한 느낌이지만 사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이. 머리와 몸은 자랐지만 사회적 신분은 애매한 순간. 주인공은 그 열일곱 나이에 가출을 해서 짜장면 배달부로 취직을 한다.
반항의 의미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기도 했지만, 성장과정에선 소위 '문제아'는 아니었다. 오히려 1등을 딱 한 번만 놓쳐본 수재였던 아이.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주인공에겐 최고의 후원자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오토바이 타는 법을 손수 가르쳐주셨을 정도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입장은 그 가정 내에서 '파출부' 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에겐 다정다감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겐 왜 그리 모질게 구셨는지, 원작은 어땠을 지 모르지만 이 책에선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아이가 자신의 잘못으로 어머니가 아버지께 손찌검을 당하고 난 뒤 비겁하고 부끄러운 자신으로부터 뛰쳐나오는 과정도 자세히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은 그저 아이의 방황과, 지금 느끼는 마음과, 혼란스러운 그 열정을 있는 껏 보여주는 데에만 치중한다. 그래서 그 사이사이의 사연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작품이 무책임하게 '생략'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부분들을 적절히 채워주는 것이 바로 '그림'의 힘 같다. 아이의 '과거'와 아이의 '반성'은 올곧이 독자의 몫으로 남아버렸지만, 아이의 '현재'만큼은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실컷 우는 장면은 몹시 의미심장했다. 매미가 오랜 시간을 기다려 그 속울음을 토해내는 것처럼, 아이는 이제 성장할 준비를 마쳤다. 비록, 그 아이가 살아낼 세상이, 바다를 무한한 '푸름'으로 표현한 그림을 이해해주지 않고 주입식 교육을 강요했던 미술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가득찬 곳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아니... 포기할 수 없게 다시 기회를 준 그 세상은 한껏 살아볼 가치가 있는 곳일 테니까.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이제부터 아이의 몫이다. 더는 아이로서 살 수 없는 그와, 우리 모두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