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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4 - 잊을 수 없는 맛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3년 11월
평점 :
장기 연재를 하는 작품들을 볼 때, 일관성 있는 그 흐름을 유지하면서 독자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신선한 재미를 주는 것이 신기했다. 창작의 고통이 뒤따르기에 가능하겠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작가의 감각과 함께 작업하는 사람과의 호흡, 그리고 발로 뛰는 현장 취재의 땀이 모두 작품을 완성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지난 번 이야기에는 전체 책 한 권을 "소고기 전쟁"이라는 타이틀 아래 유기적으로 엮었는데, 이번 이야기는 청국장, 소금 이야기, 콩국수, 천렵, 삼계탕이라는 소제목으로 묶었다.
청국장의 진한 맛을 꽤 좋아하는데, 어릴 적 TV나 책 등을 보면 '청국장'에 관한 에피소드는 늘 챙피한 일을 겪거나 무시를 당하는 등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청국장의 맛을 알기도 전에 '선입관'부터 갖기 일쑤였다. 하지만 실제로 맛을 보았을 때의 청국장은 냄새가 진하긴 했지만, 그토록 야멸찬 대접을 받을 음식이 아니었다. 깊고 짙은 그 맛을 못 즐기는 사람이 안타까울 만큼. "청국장"편의 모델이 된 그 집은 언니의 가게에서 가까운 곳이다. 직접 먹어보진 못했지만, 지나가다가 본 적은 있다. 괜히 내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 청국장으로 인해 한이 맺힌 딸이 청국장집을 결국 다시 이어가는 이야기 구조는 어찌 보면 충분히 예상되는 전개였지만, 그 자연스러움과 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힘으로 감동도 함께 전해준다. 1400년 전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역사 깊은 우리 음식이라는 것에도 자부심이 느껴진다.
소금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독백으로 전개되는데, 글자의 폰트마저도 다르게 표기하여 더 옛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얼마든지 가볍게 돈을 쓰던 사람들이 진짜 소금을 못 알아보고 몇 천원 아끼겠다고 나 몰라라 가버리는 장면은 답답하면서도 남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중요한 것에서 써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외면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지 돌아볼 일이다.
콩국수 편에서는 목욕탕 씬이 인상적이었는데, 성찬이 이 닦을 동안은 물 잠그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붙이는 장면에서 뜨끔했다. 물 아껴 쓸 생각하지 않고 댐만 만들면 뭐하냐는 그의 일침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반성과 변화를 촉구할 일.
천렵에서는 맛있는 술이 등장하는데, 수박의 꼭지를 도려내고 숟가락으로 속살을 저민 뒤 소주와 꿀을 넣어 계곡물에 담갔다가 먹는 것이라고 한다. 술을 먹지 못하는 나지만, 대단히 군침이 돌았다. 수박화채보다 톡 쏘는 맛이 나지 않을까^^;;;;
삼계탕에서도 새로운 지식을 얻었는데, 흔히 "영계"라고 하는 말이 잘못된 표기이고 "軟鷄(연계)"라고 써야 맞단다. 부드러운 닭이라는 뜻. 알을 낳기 전까지 키운 닭이라고 자운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다^^
재미와 감동과 교훈을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작품을 이어나가는 작가의 노고에 두루두루 고마움을 느낀다. 앞으로 볼 거리가 아직 많이 남아서 더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