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드 ˝신의 길에서 행하는 투쟁˝


지하드Jihad, 즉 신의 길에서 행하는 투쟁jihad fi sabil allah˝ 은 항상 논란이 되는개념이다. 쿠란에서 말하는 지하드는 예배와 인내, 경건하고 신실한 삶 등 신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하지만, 적과 불신자에 맞서 싸우는행위가 특히 강조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세 무슬림 법학자 대부분은 지하드를 물리적인 전투와 전쟁과 관련하여 이해했다. 지하드는 정복전쟁을 단순한 약탈이 아니라 신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는 성스러운 행위로 만들었고 목숨을 잃더라도 천국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주었다.
지하드는 아마도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 등 오늘날의 극단 이슬람주의 무장조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일 것이다.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는 그들에게는 성스러운 전쟁이다. 비무슬림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불신자로 규정한 무슬림들에 대한 테러 또한 신의 길에서 수행하는투쟁으로 정당화된다. 지하드에 관한쿠란 구절, 불신자에 대한 전쟁을 지하드로 규정한 법학자들의 전통적인 해석이 극단 이슬람주의 무장조직의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내면의 악과 싸우고 선행을 추구하는 지하드, 즉 대 지하드를 무력을사용하는 지하드인 소지하드와 구분하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진정한지하드는 대 지하드이다. 따라서 극단주의 무장조직이 말하는 지하드는
‘진정한 지하드에서 벗어난, 지하드의 왜곡된 형태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대 지하드‘라는 개념이 10세기 이후에야 등장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무함마드가 전투에서 돌아온 무슬림에게 ˝소 지하드에서 대 지하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알바이하키Al-Bayhaqi (1066년 사가 수집한 전승에서 처음 나타나며, 수니파 법학자 대부분은 이 전승을받아들이지 않는다. 데이비드쿡David Cook은 대 지하드와 소지하드의 구분과 비폭력적인 수단을 통한 지하드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존재하기는했는지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군사적 지하드가 곧 무분별한 폭력과 끝없는 전투를 의미하는2728것은 아니었다. 이슬람 법학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지하드를 포함한 군사행위에 관한 규범도 점차 정립되었다. 지하드는 언제 선포되어야 하는가?
지하드는 곧 이슬람의 땅을 넓히기 위한 공격 행위를 말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수프얀 알사우리Sufiyan al-Thawri (778년 사망), 말리크 이븐 아나Malikibn Anas (795년 사망)와 같이 무슬림 공동체가 외부의 위협을 받을 때에만 지하드가 무슬림의 의무가 된다고 보는 법학자들도 있었다. 극단 이슬람주의 조직의 이념에 큰 영향을 미친 이븐 타이미) Ibn Taymiyyah(1328년 사망마저도 지하드는 불신자들이 먼저 공격할 때 방어를 위한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쿠란에서도 무슬림은 공격을 받을 때만 맞서 싸워야 하며, 그럴때도 결코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2장 190절). 쿠란주석학자들은 이 구절을 무슬림이 먼저 공격하는 것을 금지하는 의미로 이해했다. ˝무슬림이 먼저 비무슬림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금지하는구절들이 폐기되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모든 학자가 이에 동의하는 것도아니었다.
법학자들은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고 고의적인 파괴와 약탈을 금지하는규범에 따라 이루어지는 정당한 전쟁인 지하드와 무차별적인 파괴와 폭력을 수반하는 히라바hirabah를 구분했다. 이에 따르면 지하드는 오직 적법한절차를 거친 통치자만이 선포하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31은 전쟁은 히라바에 불과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극단주의 조직이 자행하는 테러 공격은 이슬람법 샤리아의 기준에서도 정당한 지하드가 아니라 불법적인 히라바인 것이다.
쿡의 주장과는 다르게 인내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행위도 지하드라는 인식이 무슬림 사이에서 존재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대 지하드‘라는 말은 없었을지 몰라도 ‘칼로 수행하는 지하드jihad al-say‘와 구분되는 ‘영혼으로 수행하는 지하드ihad al-nats‘ 라는 개념도 중세 이슬람권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신학자 알가잘리Al-Ghazali (1111년 사망), 법학자 알자우지Al-Jawziyyah 1350년 사망)는 내면의 싸움과 인내를 최상의 지하드로 보았다.˝
이슬람은 폭력을 조장하는 종교인가? 쿠란은 비무슬림에 대한 폭력과적의를 말하는가? 지하드는 무슬림이 비무슬림을 상대로 벌이는 끝없는전쟁인가? 어떤 점에서는 맞다. 쿠란과 이슬람 전통 내에는 분명히 타자에대한 폭력과 적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극단주의와 테러를 ‘진정한 이슬람‘에서 벗어난 왜곡된 모습으로 치부하는 것은 이슬람을 폭력과 야만의 종교로 단정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해석이다. 결국 두 관점 모두 이슬람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성격과 해석 중 원하는 것만을 선택해서 그것이 이슬람의 ‘본질‘
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슬람의 방대한 전통에는 알카에다와 IS의 테러를 정당화하는근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 간 평화와 공존, 관용과 대화를 가능하게하는 해석과 견해도 있다. 이슬람에 대한 편협하지 않은 이해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슬람 내에 다양한 해석과 견해, 관점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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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마시는 보이차 - 북촌 다실 월하보이의 차생활 이야기
주은재 지음 / 시공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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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마시는 편이다. 물은 차가운 상태로 마셔야 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지만 차를 마실때는 따뜻하게 해서 마실 수 있고 카페인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조금 과한 양을 마셔도 되는 것이 차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딱히 좋은 차의 맛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그러니까 물 대용으로 차를 마시곤 할 뿐이어서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비루한 미각을 가졌다고 해도 역시 좋은 차는 마실 때 그 향과 맛과 목넘김조차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서 한번 좋은 차 맛을 느끼고 나면 그걸 쉽게 잊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간을 마시는 보이차'는 북촌에서 월하보이라는 다실을 운영하고 있는 주은재님의 차와 관련된 일상의 이야기를 곁들인 차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차의 종류나 맛있게 우리는 방법, 다관의 종류뿐 아니라 부록으로 사계절에 맞춰 계절에 어울리는 티 큐레이션을 담고 있어서 일상의 에세이뿐만 아니라 보이차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차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할 수 있는 길잡이 책으로도 좋은 책이다. 


차를 마시는 여유로움과 몸의 피를 맑게 해 준다거나 몸을 따뜻하게 하여 건강에 좋다는 등의 이야기에 앞서 정식이라고 말하면 좀 그렇겠지만 차 예절에 포함이 되는 다구에 대한 설명과 중국의 골동다구와 일본에서는 최고품으로 인정받는 이도다완 - 우리나라의 막사발로 알려져있는 도자기인 이도 역시 골동품으로 그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 그 이도다완 같은 다구를 보고 있으면 소박한 아름다움 이면에 내가 선뜻 다가서기 힘든 고급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차 입문자들에게 최상의 도구는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다시백이라는 글을 읽고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선물받은 보이차도 있고 아는분이 새로운 다관을 마련했다며 쓰시던 것을 주셔서 앙증맞은 자사호와 다기, 차판도 갖고 있지만 보이차를 마시려고 할 때 가장 편한 건 역시 다시백이었으니 나 혼자만의 감성이 아니라는 걸 알고 왠지 마음만은 같은 차동호회같은 느낌이 들어 좋았다. 


"와비사비라는 말이 있다. 완벽하지 않은 것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로 온전한 완벽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이가 나가고 티끌이 묻은 다구도 저마다의 매력으로 내 눈을 사로잡는다. 곧게 뻗은 대나무도 아름답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비틀어지고 굽은 소나무를 볼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샘솟는 것처럼."(88)


보이숙차와 보이생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것도 1년정도밖에 안되었고 보이차와 흑차의 맛도 구분할 수 없지만 그래도 좋은 차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맛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이후 계속 좋은 차에 대해 알고 싶은 욕심이 들고 있지만 차 세상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고 있다. 어린시절 차를 마시던 꼬마 이야기부터 할아버지가 차를 만들고 손주가 그 차 맛을 보게 되는, 오랜 시간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보이차는 경매에 올라가는 이득을 위한 재테크용이 아니라 오래 발효시켜 가족이 기념하며 마시는 그런 차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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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자사의 와비사비


내가 아끼며 소장하고 있는 자사호 중 요변으로 인해 호의곁면이 우둘투둘하고 색도 고르지 못한 데다 한쪽 면에 노란 큰 점까지 자리한 못생긴 자사호가 하나 있다. 겉모습만 보면 투박하다.
고 말할 법도 하지만 보랏빛을 띠는 이 요변자사는 뜨거운 물을 부으면 기공 사이에 숨은 공기들이 수면 위로 바삐 올라오는 모습이경이로워 자꾸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자사호가 살아 숨쉬듯 기공 사이의 공기가 밖으로 나오는데, 물을 붓고 귀를 기울이면 ‘샤아악 하는 기공이 내는 소리가 들린다. 대부분이 추구하는완벽한 아름다움에 반하는 자사호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장작가마에서 자사호를 소성을 하다 보면 뭉그러지기도 하고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기도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연이 빚어낸 아름다움 때문인지 그런 요변자사가 내 눈에는 예뻐 보이고 특별해 보이니 콩깍지가 쓴 것 같다. 그런데 이 콩깍지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벗겨지지 않는 걸 보면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하다.
와비사비라는 말이 있다. 완벽하지 않은 것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로 온전한 완벽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이가나가고 티끌이 묻은 다구도 저마다의 매력으로 내 눈을 사로잡는다. 곧게 뻗은 대나무도 아름답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비틀어지고굽은 소나무를 볼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샘솟는 것처럼.
이 주먹만 한 요변자사는 볼 때마다 가슴 뛰게 한다. 어느 면에서 감상해도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고 매끄럽지 않은 표면은 자꾸만져보고 싶게 만든다. 미운 오리 새끼가 사실 백조였듯이 작은 자사호가 나에게 우아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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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을 위한 축구 교실
오수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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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축구일까?

2대1 패스를 할 수 있는 운동이 축구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혼자 드리볼하면서 골을 넣을 수는 없는 운동이 축구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해 볼 수 있는 운동이 또 축구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무튼 그런 느낌이다. 

'지구인을 위한 축구교실'을 읽고나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왜 축구일까?'라는 물음이지 않을까.


대형마트 식품 창고에서 일하는 욘 올슨은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얻어 식사를 해결하며 무너져가는 집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일요일이면 친구 리오를 만나 함께 낚시를 하고 돌아오면 다시 되풀이되는 생활을 하는 욘에게 특별한 일이 생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에게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지구에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이다. 뜬금없이 지구에 등장한 외계인들이 지구인들과의 축구시합을 제안하며 온 지구에 축구열풍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구인의 능력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는 외계인들은 축구팀이 만들어져 시합을 제안하면 그 팀과 똑같은 능력치를 가진 외계인들이 팀을 이뤄 축구시합을 하게 되는데, 지구인은 단 한번만 시합에 나갈 수 있으며 경기에 이기면 그 어떤 소원이든 - 물론 감정적인 부분을 마음대로 바꿀수는 없으며 그런 부분을 제외한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외계인과의 축구시합에서 이겨 소원을 이룬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축구열풍이 불기 시작하는데, 전직 축구선수였던 욘 올슨은 다리 부상으로 직접 축구시합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축구교실을 열어 축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뭔가 되돌이표처럼 비슷한 이야기들이 게속 반복되는 것 같은 이야기가 뜻모를 수다처럼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일까,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할때쯤 각각의 인물들의 삶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의미없는 수다가 아니라 그 길게 반복되며 이어진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욘의 친구 리오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초반부터 짐작을 할 수밖에 없으며 - 그의 놀랄만한 복사능력은 대놓고 그의 정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실 놀랄만한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축구교실에 모인 구성원 각각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야 그 의미를 느끼며 감동에 젖어들 수 있으니 그것이 반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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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움에 처해서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어요.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죠. 이건 내 생각인데, 그런 사람들은 얼굴에 그게 드러날거예요. 해야 할 이야기가 잔뜩 있다는 것이 어떤 사람들은그런 걸 그냥 지나치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죠."
"착한사람들이요?"
그보다는 자기도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거나, 아니면그런 어려움을 겪는 게 어떤 건지 뼈저리게 아는 사람들이겠죠"
"그런데 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 대신 자기 이야기를먼저 꺼내는 거죠?"
"글쎄요. 심리학은 잘 모르지만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건 너뿐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아니면 내 어려운 이야기를 할 테니 너도 네 어려운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는 거든가."
"꼭 패스처럼요."
"그러게요. 꼭 패스 같네요."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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