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후의 인간 1 ㅣ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1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아고라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책 제목에 이미 '최후의 인간'이라는 단서를 붙여놓고 있지만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던 나는 이 책이 종말문학에 속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2073년이라는 숫자도 오타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길 정도였다. 물론 그 숫자로 인해 책의 앞뒤를 살펴보다가 과거 1900년대에 씌여진 이 글이 21세기의 미래를 그린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다른 미래공상소설과는 달리 이 책에는 로보트라거나 과학문명의 발달에 대해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중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왕정에서 공화제로 넘어가는 이야기라거나 전염병에 의해 수많은 인류가 죽어가는 이야기가 나와 미래소설이라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뜬금없이 이야기가 시작되어 황폐해진 도심을 무작정 지나치는 부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코맥 매카시의 로드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가 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황폐함속에서도 등장하는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면 최후의 인간은 삭막하게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인간성을 찾고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지성인들의 노력과 제도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73년의 영국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뀌어 있다. 난봉꾼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오넬과 퍼디타 남매는 고아로 자라지만 아버지와 전 국왕의 인연으로 인해 전 국왕의 아들인 에이드리언과 그의 여동생 아이드리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최후의 인간은 라이오넬 남매와 에이드리언 남매, 그리고 정치적인 야심가 레이먼드와 그리스의 공주인 에바드네의 서로 엇갈리는 인간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는 라이오넬의 시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이 책 '최후의 인간' 자체가 바로 라이오넬의 기록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엇갈리는 남녀의 사랑과 애증, 정치적인 권력과 야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면 후반부에는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전염병으로 인해 피폐되어가는 세상의 모습과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부는 최후의 인간을 이야기위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신분의 차이, 사랑과 명예, 민족과 전쟁... 실상 최후의 인간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의 모습을 착실하게 보여주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특히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제도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황폐해져가는 세상의 모습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낸 가상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자꾸만 우리의 현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이 글이 한세기도 더 전에 씌여진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네. 우리 스스로가 먼저 바라야 해. 우리가 사는 이곳이 천국이 되기를 말이네. 인간의 의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죽음의 화살촉도 무디게 만들 수 있고, 질병이 머무는 곳도 위로할 수 있으며, 크나큰 고통의 눈물을 닦아낼 수도 잇다네. 하지만 인간이 그토록 뛰어난 힘을 동포들을 돕는 데 쓰지 않는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내 영혼의 불꽃은 희미해져버렸고, 내 체력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바닥나고 말았어. 그럼에도 나는 내게 남은 지성과 힘을 모두 한 가지 일에 바칠 거라네. 그건 내 사명일세. 힘이 닿는 한 나는 인류를, 내 동포들을 이롭게 할 거란 말이네!"(1권 137)
종말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점차 희망이 사라져가는 듯 하고, 최후의 인간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최후의 인간만이 남아있게 될 것이라 예상하게 되지만 이야기의 곳곳에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저자의 이상향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또 이상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전염병으로 무너지고 황폐해져버린 영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어느 곳이든 전염병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여 죽음을 기다리거나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모든 광기와 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21세기가 되면서 세상의 종말을 외치며 신을 찾아 부르짖던 사이비 종교인들이 실제로 있었는데 최후의 인간에서도 역시 광기어린 맹목적인 믿음으로 무너져가는 이들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최후의 인간은 과거에 씌여진 미래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시점에서 미래의 시점인 지금, 책에서 그려낸 미래보다는 과거인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유사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서 저자 메리 셸리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탄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 절친의 죽음 이후 홀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소설로 재현해내었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주인공들의 꿈이 갑작스러운 전염병에 의해 좌절되는 과정은 프랑스 혁명 이후 당대 사회 현실에서의 진보주의에 대한 의문과 완벽한 사회에 대한 의문, 자연앞에 선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물음을 도전적으로 던지고 있다고 한다.
최후의 인간은 여러 관점에서 다양한 내용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앞서도 말했든 인간의 본성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느낄 수 있다. 세상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끊임없이 비극으로 흐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 결코 희망의 끈을 놓치는 않는다. 사실 메리 셸리가 백여년 전에 그려낸 미래의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는 흔해져버린 현실이 되어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진리는 결코 옛것이라 묻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인류의 수는 엄청나게 감소했지만,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엄청난 역병은 몇 년 내에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전례가 없는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것이 명백했다. 이대로 놔둘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역병을 막아야만 했다. 역병이 수천, 아니 수만 명을 더 학살하기 전에, 인류가 역병의 지독한 장난으로 말살되기 전에 우리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사람의 목숨이 이제 진정한 값어치를 가지게 되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소위 왕들이 지녔던 보물보다 소중했다. 한 인간의 생각이 깃든 얼굴을 보라. 그 우아한 육신과 장엄한 얼굴, 놀라운 생명의 신비를 보라. 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이 부서진 배처럼 한편으로 밀려나서는 안된다. 인류는 지켜져야 한다. 우리의 자식들과, 그 밑의 자식들의 최후의 시간까지 인류의 형태와 이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2권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