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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평점 :
평소처럼 출근하고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 창밖을 봤더니 어둠이 화악 덮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출근길을 비추던 해가 갑자기 사라지고 사방이 어두컴컴해진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왠지모를 불안감이 덮쳐드는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의 표지는 어느 순간 내게 그런 두려움을 느끼게 하곤 했다. 아무래도 나는 호러는 아닌가봐,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으려고 머리맡에 뒀다가 책을 뒤집고 다른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혹시 이 책을 갖고 있다면 깊은 밤에 가만히 표지를 들여다보시라. 조금은 묘한 느낌과 두려움이 밀려들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테니, 그때는 가만히 책을 덮어두고 햇살이 기분좋게 내리쬐는 날 이 책을 읽기 시작하시길.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든다고 이 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심약한 나조차도 책을 뒤집어 엎어놓은 다음 날 읽기 시작해서 도무지 중간에 멈추지 못해 한밤중에도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미즈치,란 나라지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모시고 있는 물의 신을 일컫는다.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며 기담을 채집하고 추리 소설을 쓰는 소설가 도조 겐야와 출판사의 편집자 소후에 시노, 민속학자 아부쿠마가와 가라스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아부카마가와 가라스는 나라 지역의 한 시골마을인 하미땅에 형성된 사요촌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우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곳에서는 미즈치님을 모시는데, 십삼년전의 기우제 의식에서 사망자가 나왔고 그 원인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알 수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요촌으로 도조 겐야와 시노는 민속탐방을 가게 되고 마침 거행되는 사요촌의 제의에도 참석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또다시 신남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엄청난 공포와 마주한 듯 눈을 부릅뜬 채 사망한 신남, 그는 정말 제의 중에 미즈치님의 산제물이 되어 죽은 것일까? 그는 제의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도저히 누군가 그를 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죽임을 당했다. 가슴에 미즈치님의 뿔을 박은 채.
그리고 계속해서 하미 지역 각 마을의 신사를 책임지는 이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은 기담과 미스터리가 합쳐져 추리소설을 읽는 색다른 재미를 갖게 한다.
나는 어릴 때 속칭 '배고픈 다리' 근처에서 살았었다. 기둥없이 다리가 놓인 곳이어서 비가 많이 내리면 물에 잠기는 그런 짧은 다리였는데,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동네 꼬마들이 모두 근처에서 놀고 있을 때 친구 하나가 소용돌이치는 물속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손을 집어넣었는데 갑자기 쑥 빨려들어가는 것을 봤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어른이 달려왔는데 잠시 후 그 친구는 다리 건너편으로 물에 빠진채 모습을 보였고 다행히 어른에 의해 건져올려지고 그 이후 어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무사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물에 손을 넣었더니 갑자기 누가 잡아챈 것처럼 물에 빨려들어간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리 밑에 물길이 있었고 비가 많이 내린 후 바다로 흘러가는 급물살에 소용돌이가 생겨서 몸집이 작은 어린 친구를 끌어당긴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물살이 아주 강력해서 그 친구가 물속에 잠겨있지 않고 다리밑을 지나 건너편으로 몸이 떠올라 살아난 것일테고. 아무튼 내 기억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으로 미심쩍은 부분을 다 지워냈다.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에도 이처럼 물에 빠진 사람이 한참 후에 다른 곳의 연못으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같지만 그래도 결국은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즈치님을 모시는 신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역시 결국은 그렇게 해결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이 음산한 사요촌에 얽힌 과거의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는데...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밝혀지고 또 새로운 의심과 증거가 나오고... 책을 읽는 동안 이 이야기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라는 궁금증에 무서움과 호기심과 나름대로 사건을 추리해보려는 생각들이 얽히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과 빨리 결말을 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뒤엉켜버렸었다.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을 읽을 때에는 기담에만 생각이 몰렸었는데 이번은 왠지 글 전체의 구성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가 사는 동네는 용담인데 어릴때 놀던 바닷가는 용연이라 칭해지는 곳이다. 기암괴석처럼 돌이 깎여있고 마치 용이 지나간것처럼 고불고불한 물길이 나 있는데 바닷가 저 멀리로 가면 사람들이 용신과 바다신에게 제를 바친 흔적들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 것일까? 기담이 황당무계한 이야기이기만 해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고 흥미를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미쓰다 신조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시작과 과정이 잘 짜맞춰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전쟁당시 일본의 모습과 징집을 피해 도망간 사람들,을 대하는 분위기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과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그것이 무엇일지 새삼 다시 궁금해지고 있다. 도대체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그것은 무엇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