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발견 - 식물 원예의 기초부터 정원 만들기까지 오경아의 정원학교 시리즈
오경아 지음 / 궁리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도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다. 며칠째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날이 계속되고 있으니 봄을 맞이할 꽃생각이 간절해진다. 코딱지만한 마당이지만 여름에 밥반찬으로 뜯어먹을 찬거리라도 장만하려면 이미 씨앗을 뿌렸어야 하는데, 지난번에 묻어둔 단호박씨와 2,3년을 묵혀둬 싹이 틀지 모를 씨앗들을 건성으로 뿌려놓고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서 이제 다가올 여름철 마당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지고 있기도 하고.

3년정도 혼자 집을 지키며 어머니 계신 병원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마당은 커녕 실내에 있던 화분들마저 관리를 하지 못해 유일하게 꽃을 피우던 바이올렛 화분들이 다 얼어죽어버리고 그 후로 집안에는 꽃이 사라져버렸다. 마당에 있던 어여쁜 꽃화분들도 지난 가뭄에 시들어가다가 겨울의 혹한에 결국 죽어버렸는데다가 어머니가 퇴원하고 난 후 관리도 안되고 보기 싫은 화분들 다 정리한다며 싸그리 갖다 버려서 지금 마당은 횡하니 비어있다.

사실 나는 어릴적부터 전셋집을 전전하고 다녔지만 이사다니던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이사를 다녔던 집의 마당만큼은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게 사시사철 꽃들이 피어있고 꽃나무들을 보면서 자란탓인지 유난히도 꽃을 좋아한다. 거기에 더하여 비밀의 화원을 읽고난 후에 내 소망은 '마당이 넓은 집'에 사는 것이 되었지만 정원관리라는 것이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타샤의 정원을 보면서 타샤가 얼마나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정원을 손질하는지 알아챘고, 신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꽃을 피우는 줄 알았던 우리집 마당의 꽃들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하나 둘 시들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나는 식물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세심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손길을 줘야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황폐해져버린 마당을 다시 예전처럼 멋진 정원의 모습으로 만들고 싶어졌는데 무엇부터 해야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마침 '정원의 발견'이 눈에 띄었다. 식물 원예의 기초부터 정원 만들기까지,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정원학교 교재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내게 필요한 바로 그 책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며 정원을 만드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은 너무 큰 공력이 들어가 망설여질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식물에 대해 알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내게는 기초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책이 필요했다. "식물을 어떻게 키우고 가까이 할 수 있는지, 실용적이고 다양한 원예의 방법과 이해하고 있어야할 정원의 역사와 의미, 식물의 이름과 자생지를 이해하는 것이 왜 원예의 기본이 되는지, 정원의 바탕이 되는 흙을 이해하는 과정" 등이 알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다. 이론적인 부분들은 딱딱하게 느껴질수도 있는데, 그림과 실제의 정원 모습을 담은 사진이 어우러져 설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또한 책을 펼쳐보는데 아름다운 정원 사진들이 눈에 들어와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사실 몇년동안 화분을 키우다 죽이고 또 들여놓고 키우다 죽이고를 반복하다보니 조금씩 식물의 특성에 대해서 알게 되고 식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감도 생겨났다. 그런 경험들이 정원, 식물, 흙과 거름 이야기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처음부터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서 책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고 정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주제별 정원이라거나 실내정원으로 정리하여 설명해주고 있어서 내 코딱지만한 마당을 어떻게 활용하고 사계절동안 꽃을 보기 위해 어떻게 가꿔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정원가꾸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무성하게 자라는 허브와 온갖 야생화들이 저절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심한 계획과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담겨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되기도 했다.

 

마지막 장에는 정원과 식물관리가 정리되어 있어서 물주기부터 영양분 공급, 잡초 관리, 지지대를 세우면서 미관까지 고려하는 방법, 정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원 도구가 다양해지는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소품처럼 미적인 감각까지 고려되고 있는것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당장이라도 정원 만들기에 투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일단 따뜻한 날이 계속되고 있으니 비라도 한번 내리고 나면 오랫동안 묵혀뒀던 마당의 흙을 한번쯤 뒤집어줄까 생각중이다. "정원의 발견"은 또 하나의 의미에서 내게 '발견'이 기쁨을 안겨주고 있는 책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300 단어로 네이티브처럼 말한다 (MP3 무료 다운로드 + 온라인 학습자료 9종 포함)
박지우 지음 / 넥서스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 이 책을 완전히 다 훑어본것은 아니지만 300단어로 네이티브처럼 말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충분히 깨닫고 있다. 300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적은 수의 단어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정말 기본적인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300단어는 책을 한번 쓰윽 펼쳐보기만 해도 외울 필요가 전혀없는 가장 기본적인 영단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300단어로 '네이티브처럼'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회화만을 늘어놓고 생색내기처럼 광고를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상회화에서 기본중의 기본인 인삿말을 비롯한 소개, 시간, 날씨 등등의 문장을 건너뛰고 다른 기본을 찾는것도 뭔가 어색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그렇게 기본중의 기본을 넘어서면 정말 일상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 표현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물론 거의 다 아는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이다.

알고 있는 표현들이 많이 나오지만 한꺼번에 눈으로 그냥 훑어버리면 또 내 안에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아 하루에 유닛 하나씩 읽고 지나가고 있는데 그냥 유사표현으로 같은 뜻의 말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우리말의 반말처럼 격의없는 말뜻을 갖고 있어서 격식을 차려야 할때에는 쓰면 안된다든지 하는 새로운 팁도 알게 되었고, 응용표현을 익히면서 짧고 간결한 문장을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본적인 단어로 구성된 회화체라서 이미 어느 정도 영어로 대화가 되는 사람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거나 나처럼 외국인앞에서는 말문이 막혀버리는 사람에게는 쉽고 간단하게 익힐 수 있고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이 책이 꽤 도움이 될 듯 하다.

 

기본중의 기본이라 했지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표현이 아니라면 도무지 무슨 뜻일까 싶어지는 문장들도 눈에 띈다. 마침 책장을 펼쳐보니 What's eating you?라는 문장이 보인다. 아주 오래전에 개봉되었던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의 원제목이 바로 What's eating Gilbert Grape였는데 원어민 선생님이 그 뜻을 알려주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뜻이었다. 이처럼 기본적이고 쉬운 단어로 구성되어 있고 알고 있는 단어의 뜻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는 상황에 따라 또 다른 숨은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300단어로 네이티브처럼 말한다는 것은 이처럼 쉽고 간단한 단어만으로 의사전달을 충분히 할 수 있고 소통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말을 할 때는 외국어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할 때도 그런것처럼 쉬운 말로 표현하는 것이 더 명확한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영어회화는 눈으로만 보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대화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하며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표현이 바로 나올 수 있어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옛버릇을 고치기 힘들어서인지 여전히 머리로 생각하고 눈으로 확인하면서 영어공부를 하곤 했는데 이제 이 책으로는 습관처럼 표현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늘상 들여다보며 되내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시마다 소지 지음, 이윤 옮김 / 호미하우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시마다 소지라고 하면 독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던진 작가,라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이야기 전개과정에서 논리적인 사고를 요하고 사건해결을 할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시마다 소지의 작품은 처음 읽을때부터 꽤 꼼꼼하게 읽게 되는데 이 작품은 추리와 논리적인 사고를 하며 집중하여 읽기보다는 내용이 담아내고 있는 의미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이야기의 시작은 살인사건이다. 하지만 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되는 고글 쓴 남자에서 원자력의 위험에 대한 경고의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이야기 구성력이라 하지 않을수가 없다.

최근들어 원전몇기가 가동중단되고 전력난이 예상되며 여름이면 전력대란이 일어날것이라는 엄포를 놓으며 원자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방송광고가 많아지고 있는데 사실상 원자력의 파괴력과 위험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내용을 딱딱하지 않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 시마다 소지의 이 책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스미요시화연은 원자로의 연료를 생산해내는 회사인데, 국책사업을 하는 그 회사가 개발이 안된 마을 근처의 숲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은 조금씩 변화되어간다. 그 변화라는 것이 개발로 인한 도시화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짐작이 가는 것이지만 이 책에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하며 방사능의 위험이 얼마나 큰지 새삼 인식하게 된다.  원자로가 폭주하고 방사능에 피폭되고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 이상으로 원자력회사가 들어선 곳의 숲이 황폐해져가고 근처 강의 물도 오염되어 더 이상 뛰어노는 아이들도 없고 괴담처럼 떠도는 이야기들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보면 모두 방사능으로 인해 암에 걸리고 기형아가 출산되는 현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 그렇다고 이 책이 원자력과 방사능의 폐해만을 이야기하는 인문학책은 아니니 괜히 딱딱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면 안된다. 실제로 이 책은 금세 읽힌다. 어렵지않게 쓰여졌을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구성이 꽤 흡입력있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안개가 낀 날 밤, 인적이 드믄 외곽지역의 한 담배가게에서 주인 노파가 둔기에 머리를 맞고 살해당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현금을 노린 단순 강도 살인으로 추정하고 범인을 찾아나서는데 노파의 사체 밑에 깔려있는 노란색 선이 그어진 5천엔짜리 지폐와 바닥에 흩뿌려진 필터없는 담배들, 사건 당일 근처에서 목격된 고글 쓴 남자의 정체가 확인이 안되면서 사건은 단순강도 살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거기에 더하여 노란색 선이 그어진 지폐는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담배가게에서도 발견되는데...

 

이야기의 결말을 생각하면 고글 쓴 남자의 정체와 살인사건의 연관은 꽤 멀리 돌아 이어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괴이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연관이 비약적인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며 읽혔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마다 소지는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있었고 방사능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고 하지만 실제 피부로 느껴지는 경각심은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그게 무슨 큰일이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주위에 많은데 방사능 피폭의 문제가 현재를 살고 있는 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대로 이어지면서 심각한 기형을 초래하고 암과 같은 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함을 강조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소처럼 출근하고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 창밖을 봤더니 어둠이 화악 덮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출근길을 비추던 해가 갑자기 사라지고 사방이 어두컴컴해진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왠지모를 불안감이 덮쳐드는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의 표지는 어느 순간 내게 그런 두려움을 느끼게 하곤 했다. 아무래도 나는 호러는 아닌가봐,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으려고 머리맡에 뒀다가 책을 뒤집고 다른 책을 먼저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혹시 이 책을 갖고 있다면 깊은 밤에 가만히 표지를 들여다보시라. 조금은 묘한 느낌과 두려움이 밀려들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테니, 그때는 가만히 책을 덮어두고 햇살이 기분좋게 내리쬐는 날 이 책을 읽기 시작하시길.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든다고 이 책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심약한 나조차도 책을 뒤집어 엎어놓은 다음 날 읽기 시작해서 도무지 중간에 멈추지 못해 한밤중에도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미즈치,란 나라지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모시고 있는 물의 신을 일컫는다.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며 기담을 채집하고 추리 소설을 쓰는 소설가 도조 겐야와 출판사의 편집자 소후에 시노, 민속학자 아부쿠마가와 가라스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아부카마가와 가라스는 나라 지역의 한 시골마을인 하미땅에 형성된 사요촌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우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곳에서는 미즈치님을 모시는데, 십삼년전의 기우제 의식에서 사망자가 나왔고 그 원인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알 수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사요촌으로 도조 겐야와 시노는 민속탐방을 가게 되고 마침 거행되는 사요촌의 제의에도 참석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또다시 신남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엄청난 공포와 마주한 듯 눈을 부릅뜬 채 사망한 신남, 그는 정말 제의 중에 미즈치님의 산제물이 되어 죽은 것일까? 그는 제의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도저히 누군가 그를 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죽임을 당했다. 가슴에 미즈치님의 뿔을 박은 채.

그리고 계속해서 하미 지역 각 마을의 신사를 책임지는 이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은 기담과 미스터리가 합쳐져 추리소설을 읽는 색다른 재미를 갖게 한다.

나는 어릴 때 속칭 '배고픈 다리' 근처에서 살았었다. 기둥없이 다리가 놓인 곳이어서 비가 많이 내리면 물에 잠기는 그런 짧은 다리였는데, 비가 많이 내린 다음 날 동네 꼬마들이 모두 근처에서 놀고 있을 때 친구 하나가 소용돌이치는 물속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손을 집어넣었는데 갑자기 쑥 빨려들어가는 것을 봤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어른이 달려왔는데 잠시 후 그 친구는 다리 건너편으로 물에 빠진채 모습을 보였고 다행히 어른에 의해 건져올려지고 그 이후 어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무사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물에 손을 넣었더니 갑자기 누가 잡아챈 것처럼 물에 빨려들어간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리 밑에 물길이 있었고 비가 많이 내린 후 바다로 흘러가는 급물살에 소용돌이가 생겨서 몸집이 작은 어린 친구를 끌어당긴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물살이 아주 강력해서 그 친구가 물속에 잠겨있지 않고 다리밑을 지나 건너편으로 몸이 떠올라 살아난 것일테고. 아무튼 내 기억은 이렇게 이해하는 것으로 미심쩍은 부분을 다 지워냈다.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에도 이처럼 물에 빠진 사람이 한참 후에 다른 곳의 연못으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같지만 그래도 결국은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즈치님을 모시는 신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역시 결국은 그렇게 해결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이 음산한 사요촌에 얽힌 과거의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는데...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밝혀지고 또 새로운 의심과 증거가 나오고... 책을 읽는 동안 이 이야기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라는 궁금증에 무서움과 호기심과 나름대로 사건을 추리해보려는 생각들이 얽히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과 빨리 결말을 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뒤엉켜버렸었다.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을 읽을 때에는 기담에만 생각이 몰렸었는데 이번은 왠지 글 전체의 구성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가 사는 동네는 용담인데 어릴때 놀던 바닷가는 용연이라 칭해지는 곳이다. 기암괴석처럼 돌이 깎여있고 마치 용이 지나간것처럼 고불고불한 물길이 나 있는데 바닷가 저 멀리로 가면 사람들이 용신과 바다신에게 제를 바친 흔적들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 것일까? 기담이 황당무계한 이야기이기만 해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고 흥미를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미쓰다 신조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시작과 과정이 잘 짜맞춰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전쟁당시 일본의 모습과 징집을 피해 도망간 사람들,을 대하는 분위기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과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그것이 무엇일지 새삼 다시 궁금해지고 있다. 도대체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그것은 무엇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말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그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어느쪽으로 진행이 되었든 자꾸만 모든 상황이 교묘하게 짜여진 틀처럼 틀어지며 우리의 역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 온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시각으로 바라 본 승자의 기록에 의한 이야기일뿐이었다. 내가 신화가 아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오래 전 인디언들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의 모습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역사만큼이나 우리의 역사도 뒤집을수록 더 많은 '사실'들이 터져나온다. 역사를 이야기할 때 사실과 진실의 경계에서 과연 '사실'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본적이 있는데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 실록,은 그 제목에서부터 '실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사실'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한홍구의 '유신'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이제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세계관으로 역사적 사실속에 담겨있는 '진실'을 찾아내야 하는 것임을.

 

'대한민국 대통령 실록'은 우리의 현대사를 간략하게 훑어보기에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미 다른 책들을 통해 - 그것이 역사서이든 소설이나 영화, 다큐멘터리, 구전 이야기이든 아무튼 그렇게 들은 이야기들을 요약정리해주고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은 내 느낌보다 아직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해방 이후 근 육십여년간의 세월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어린 친구들은 우리의 현대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가 더 궁금하다.

학창시절에 선생님께서 무장독립투쟁에 대해 잠깐 언급하시면서 일본의 항복으로 갑작스레 맞이하게 된 해방은 그냥 주어진 것처럼 느껴져버리게 되었는데 우리의 독립군과 임시정부의 활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임을 강조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는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과 활동, 친일청산의 역사를 더 깊이 파고들어 가기보다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분단이 되고 전쟁이 일어나고 군사독재가 자행되고...

해방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본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독일과는 달리 친일행적에 대해 철저히 파고들지 못했다는 것과 위안부, 강제징용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은 커녕 일본은 전범자들을 합사해놓은 야스쿠니를 신성시하고 있다는 얘기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사실기록으로 정치, 이념적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권력을 잡기 위해 정적을 숙청하는 방법으로 이념과 사상을 꼬투리잡고, 정치자금 확보를 위해 친일행적의 과거를 덮어줘버리고,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소수 독점자본가만 살리며 서민의 삶은 무너져만 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만족할만큼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시대의 흐름은 알 수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유신시대 하나만을 이야기하기에도 책 한권으로는 모자랄 지경인데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 실록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건들이 요약될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역사서로서의 한계도 있겠지만 우리 현대사의 입문용 정도로는 알맞지 않을까 싶다. '실록'이기에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쟁점이 되었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는 짧아지고 있어서 아쉽지만.

반면 현재로 가까워질수록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한 주요 사건들을 요약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언급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조금은 만족을 할 수 있겠다.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는 관점보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데 촛점을 맞춰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 재임기간의 활동 등을 언급함으로써 파생되는 정치,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아쉽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릴적부터 외국에서 살아 우리의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자란 조카에게는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