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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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김민정은 시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출판사의 편집자이기도 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시는 읽어본 기억은 없다. 지금 그녀의 산문집을 읽고나니 그녀가 쓴 시는 어떤 느낌을 줄까 무척 궁금해진다. "내가 내 무릎을 찍게 될 때마다 그 구부러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빈번히도 불러다앉힌 말이기 때문에" "자주 쓰는 말이라 함은 결국 자주 필요한 말이라는 뜻"도 되는 [각설하고]는 그렇게 산문집의 제목이 되었다고 하는데,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각설하고'의 말 속에는 군더더기뿐만 아니라 구차한 변명조차 늘어놓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의 표현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산문집을 읽고 저자의 시가 궁금해지는 것은, 시적인 감성이 궁금하다기보다는 그 시 안에 담겨있는 보편감성이 궁금해졌다는 이야기이다. 나와는 생활방식도, 여건도 많은 것들이 다르고 실제로 글에서 풍겨나오는 삶의 모습도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어쩐지 그녀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인 것만 같고 내 친구인것처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한 것마냥 느껴지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살아온 세대가 달라서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약간씩 교차점을 이루며 빗겨가기도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은 큰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사고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단상을 가감없이 적어내려간듯한 산문들은 그 당시의 느낌들을 하나씩 떠오르게 하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 끄집어내고 싶은 이야기를 쏙쏙 뽑아내어 간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내가 느끼는 이 묘한 공감은 나의 서투룬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 것들을 그녀의 짧은 글은 굵고도 강렬하게 드러내놓고 있어서 너무 술술 읽어버렸던 것 같다. 이 산문 안에는 어떤 글이 담겨있었는지, 정리하면서 떠올리려고 했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단지 분노하고 공감하고 연민을 갖고 마치 나의 이야기인냥 고개를 끄덕이며 읽은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은 왠지 편하고 좋은 느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글의 내용만으로 보면 마냥 편한글은 아닌데 말이다.

 

시인이자 편집자인 김민정의 산문을 읽고나니 그녀의 시를 읽고 싶어졌다고 했는데 비단 그녀의 시뿐만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의 시를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꽤 오랫동안 시를 읽지 않고 지내다가 얼마 전 시집 두 권을 샀는데 여전히 시집을 펼쳐들고 한글자씩 새기면서 시를 읽어나갈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그나마 근래에 시집을 좀 샀기때문에 시인들을 걱정하는 저자의 마음에 내 마음이 시리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고양이 엄마인 황인숙 작가의 이야기나 어느덧 예순이 되어가는 최승호 시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가 친근하게 들리기도 하고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확실히 시인들에 대한 애정이 더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마음이 그저 강요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내게도 스며들어버려 이제 좀 더 짙은 애정을 갖고 시를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되는 것이, 그냥 좋다.

그녀의 산문은 그러한 힘을 가진 글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마음이 그냥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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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2
메도루마 슌 지음, 유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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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키나와에서만 쓸 수 있는 문장을 쓰고 싶다. 신화, 전설, 역사, 현실의 정치가 얽힌 복잡하고 환상적인 소설을, 오키나와 역사를 근거로 쓰고 싶다."

 

메도루마 슌의 이 한마디 말은 그가 쓴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키나와가 단순히 일본의 영토라는 것만 알았을때는 물론 이런 말이 와 닿지 않았겠지만 제주 강정 마을의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져나왔을 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가 오키나와의 미군철수 운동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부터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다.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에서는 전투가 없었는 줄 알았는데 유일하게 지상전이 있었고 오키나와에서 수십만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전쟁도발국인 일본에서 전쟁의 피해를 말하는 것은, 나치 독일이 유태인에게 자행한 학살을 뒤로 미뤄두고 독일국민들의 전후 비참한 생활상을 가엾이 여기는 것과 같은 불편함으로만 인식되어왔었는데 오키나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이 소설들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조금 거창하게 말한다면 반전반핵평화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 되겠다.

 

사실 오키나와에서의 전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제주를 병참기지화하기 위해 제주의 이곳저곳에 굴을 파 놓은 것은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슬포의 비행장터, 바닷가의 절벽에 인공동굴을 만들고 커다란 위장용 바위문을 만들어놓은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더구나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거문오름에도 일본군의 흔적은 남아있다. 거문오름을 오르면서 만일 일본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오키나와가 아니라 제주도가 전쟁터가 되었고 핵폭탄이 터지게 되는 전쟁터의 최전선이 되고 제주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친구는 나의 이런 비약적인 상상을 어이없다며 웃어넘기지만, 제주 앞바다의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설립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웃고 넘길 수 있는 상상만은 아니라는 심각성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제주의 역사와 오키나와의 역사는 같다고 할 수 없지만 그 특수한 환경과 생활,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좀 닮은 꼴이라는 생각을 해보곤했다. 독립된 국가였다가 일본으로 귀속된 오키나와는 미국과의 전쟁 후 미국의 영향아래 놓여있게 되고 일본 본토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주둔하고 있는 미군과의 갈등과 마찰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범죄와 악행이 드러난 사건들을 떠올려본다면 오키나와에서의 실상도 그리 다르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메도루마 슌의 소설들은 실제의 전쟁에 대한 참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전쟁이 실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 행간에 의미가 뚜렷이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방울'은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부어오르면서 엄지발가락 끝에서 끝없이 물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병명은 커녕 이유도 알 수 없고 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데, 도큐쇼의 눈에는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병사들이 찾아와 그의 발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마시며 갈증을 해소한다. 그 병사들은 전쟁당시 퇴각을 할 때 동굴에 버려지듯 남겨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밤마다 찾아와 물을 마시며 살아가고 있고, 도큐쇼의 친척 세이유는 낮에 흐르는 물을 받아 기적의 물이라며 사람들에게 판매를 하며 살아간다.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의 전개는 뜻밖의 결말을 맞게 되는데...

이야기의 전개도 독특했지만 전후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이의 고통과 죄의식이 조금은 해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 책에 함께 실려있는 '바람소리'와 '오키나와 북리뷰'를 통해서도 전쟁의 비극은 끝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고 있는데, 전후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죄의식뿐만 아니라 전쟁이 허망함과 비극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그리고 메도루마 슌이 '오키나와에서만 쓸 수 있는 문장을 쓰고 싶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더 느낄 수 있게 된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앞에서 펼쳐지던 참극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증언이란 무엇일까. 하나의 거대한 흐름에 몸을 실었다가 가로놓인 바위에 부딪힌 무수한 사람들의 삶의 국면이 언어로 정착되어 복원된것. 그것은 역사의 무수한 단편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하나가 나를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은, 거기서 숨 쉬고 살면서, 당하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슬퍼하던 사람들의 아비규환이 또렷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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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예술견문록 - 중국 현대미술을 탐하다
김도연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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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도립미술관에 다녀왔다. 특별히 전시회를 보러 간 것은 아니었는데 마침 교과서에서 만나던 작가전이라던가, 아무튼 현대미술을 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 슬슬 돌아다니며 전시회를 보고 있었는데 제주에서는 좀 자주 볼 수 있었던 변시지의 작품이라거나 김영갑의 사진작품을 도립 미술관에서 보게 되니 좀 새롭긴 했다. 그래도 가장 반가웠던 것은 만화로 친숙한 최호철의 작품이었고 역시나 그 친근하고 절로 미소가 나오게 되는 그림들이 맘에 들었다. 현대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청동조각작품도 맘에 들었고 추사의 세한도를 비디오로 만들어낸 작품도 재미있었다. 예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소박한 생각을 하면서 전시회를 좀 더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때마침 북경 예술 견문록이라는 신간도서가 나왔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아니 사실 이 책의 표지가 팡리쥔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나는 차마 감히 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것이다.

 

이 책의 표지는 팡리쥔의 작품으로 1993년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이런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고 그저 이 작품이 궁금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중국현대미술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왠지 이 작품을 보니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러고보니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책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모든 이야기가 생소하기만 한데 그와중에서도 어디선가 본듯한 작품이 눈에 띈다. 펑쩡지에의 중국초상 작품들이다. 나는 이 그림을 어디선가 봤을까?

물론 이것도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제주의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시회도 했었고 저지예술인의 마을에 작품활동공간을 만들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낯설지 않은것이었을까.

아무튼 그외의 모든 작가와 작품들, 중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것이 다 새롭고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었는데 본격적인 이야기전에 프롤로그를 통해 중국의 현대미술을 이루게 되는 초석이 되는 현대사에서의 예술가들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부분을 통해 잠시 잊고 있었던 중국의 문화혁명과 민주화를 외쳤던 천안문사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중국의 현대미술의 역사도 그리 길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1부에서는 중국 현대미술의 생성지라고 할 수 있는 북경의 798 예술구와 차오창띠의 형성과정과 그곳에서 제 역할을 해내며 꾸준히 인재를 배출하고 작품을 전시하는 화랑등과 미술관들을 소개하고 있다. 2부에서는 중국의 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작가들을 작품과 더불어 소개하고 그들과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그리고 3부에서는 현재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인터뷰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작가와 작품소개뿐만 아니라 직접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좀 더 심도있게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활동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이 책은 처음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현대미술, 아니 예술이라는 분야 자체에 대해 잘 모르고 큰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북경예술견문록은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현대미술은 우연히 들리게 된 도립미술관에서, 그것도 '교과서' 속에서 볼 수 있다는 미술전을 통해 한걸음 다가서게 되었는데 중국의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북경예술견문록이라는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어쨌거나 이번의 기회를 통해 현대미술에 대해 좀 더 친근함을 느끼고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을 하겠다. 그리고 왠지 자꾸만 시선을 잡아끄는 팡리쥔의 작품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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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인도 - 아무도 없는 그러나 누구나 있는 인도 잡화점
이상혁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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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인도에 관한 책이 날아왔다. '어느날 인도' - 아무도 없는 그러나 누구나 있는 인도 잡화점.

 

나는 이상하게도 인도를 떠올리면 왠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통속적인 표현이 먼저 떠오른다. 내 주위에는 인도와 묘하게 어울리는 분위기를 가진 친구와 전혀 인도에는 관심이 없어보이는 친구가 있는데 그들 모두가 인도를 다녀오고난 후 인도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것 뿐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내 머리속으로 떠올리게 되는 인도의 이미지는 절대 긍정적일수가 없다. 모든 것이 다 뒤죽박죽이고 기본적인 룰도 없이 그냥 흘러가는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어버리는 그 곳, 인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다들 반해버리고 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은 이제 더이상 갖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인도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인도의 모습이 어떠할지 알것만 같은 느낌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나의 상상일뿐 실제의 인도와는 같지 않겠지.

 

어느날 인도,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왔던 인도의 수많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인도의 모습에 온전히 빠져들어 좋은 모습만을 부각시키려 노력하지도 않고, 뭔가 심오한 깨달음을 얻었다며 깊이있는 척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도의 추악하고 틀을 벗어난 자유분방함만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이들이 느낀것이 모든이의 느낌과 같을수없고, 모두의 관점에서 다양한 모습을 바라볼수도 없는 것이지만 왠지 나는 이 책에 실려있는 글들과 사진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인도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골목이 기대를 낳고 기대는 신비를 품은 나를 낳았지. 인도는 미지의 세계를 믿던 어린 시절의 나를 호명했고 말이야. 기대와 공포가, 설렘과 실망이 공존하는 생성의 공간. 돌아왔을 때 뭔가가 변했다는 감각만이 존재하더라"라는 말에 묘하게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없다. 인도를 가보지도 않은 내가.

 

각자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보이면서 나의 느낌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자신이 갖고 있는 내면의 시선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편견이 아닌 공감을 하게 되어버리고 만다. 엊그제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서 마주친 버려진 개들의 으르렁거림이 섬뜩함을 느끼게 했던 기억과 순진무구해야 할 어린 꼬마의 표정에 깃든 영악함이 두려워질 때를 기억하고 있는 나는, 우리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어쩌면 똑같을지도 모르는 인도의 수많은 모습들에 공감을 하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많은 이야기들이 다 마음을 울리며 기억에 남지만 특히 똥에 대한 단상은 더러움이 아니라 그 짧은 찰나의 시선속에 담겨있는 심오함으로 더 기억에 남는다. "이곳의 똥은 징후야. 징후. 이 세계에 물들게 될지 아닐지에 대한 징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말에 격하게 동의할지도 몰라.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니 어느날 문득 인도가 떠오른다면 이 책을 펼쳐보기를. 이곳이 인도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인도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의 말이니 온전히 믿지는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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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 - 엄마 없이 먹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맷 매컬레스터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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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만에 설 명절에 만두를 빚어먹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명절에 서울로 갔었지만 3년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내내 병원에만 계시다가 석달전에 퇴원을 하신 어머니는 꼼짝없이 집에 계셔야 했는데 그래도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설을 맞이할 수 있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릴때는 명절때마다 온식구가 모다들어서 만두를 빚곤 했는데 형제들이 하나둘 떠나가도 여전히 만두빚기는 계속됐었기때문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어머니가 만드시는 만두는 두부와 달걀과 맛있는 김치만 있으면 된다. 아무튼 팔을 못쓰시는 어머니를 감독관으로 옆에 앉혀두고 장장 이틀에 걸쳐 만두속을 만들어놓고 빚어서 만두국을 완성했는데 김치도 집에서 만든것이 아니라 별로 맛없었고, 두부도 좋은게 아니었지만 오랫만에 어머니는 국 한그릇을 뚝딱 드셨다. 예전맛이 아니라면서도 내리 만두국을 잘 드시는 걸 보니 좀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조만간 다시 한번 만두를 빚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

 

정말 마음아픈 이야기지만... 사실 아버지가 약간의 치매증상을 보이시다가 결국 병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콧줄을 끼우고 손목까지 묶게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삶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었다. 아버지 수발로 어머니마저 병드시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엉망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즈음 어쩌면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는 죄책감이 마음을 짓누르는데 겨우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단지 '죽음'을 바란것이 아니라 좀 더 편안한 삶의 마감을 생각했었던 것이라는 것.

엄마의 죽음 이후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그토록 멀리하고 싶었고 지워버리고 싶었던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죽어가는 처참한 전쟁터의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생존의 순간들을 지내다보면 엄마를 잊어버리고 살게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방랑하듯 살았지만 그런 생활 후 엄마의 죽음은 지독한 상실감과 괴로움을 남긴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에야 비로소 엄마를 그리워하고 제발 살아돌아와주길 바라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부모의 죽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상실감이 어떠한 것인지 모를것이라는 말에 공감할수밖에 없다. 햇볕을 쪼이며 편안한 얼굴을 하다가도 멀리서 찾아 온 손주들을 보면서 그들이 누구인가 라는 표정으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떠오른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괴로움이 무엇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나 역시 몹시 후회하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괴로움과 상실감은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면서 옅어져갔고 그것을 더 흐리게 만들어준 것은 어머니에게 정성을 쏟으면서이다.

어머니의 말, 행동, 습관...예전에는 맘에 들지 않으면 타박하고 화를 내곤 했었는데 이제는 어머니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온전히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신기하게도 저자가 엄마와 보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있는 시간들의 기억은 내게도 그러한 추억이 있음을 기억해내게 했고, 저자의 엄마가 들여다보던 프랑스 전통요리책의 설명은 우리네 엄마들의 요리설명처럼 정확한 레시피가 아니라 뭉뚱그려 음식을 만들고 맛을 내는 각종 양념들에 대한 설명과 대충 어림짐작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다. 요리책을 들여다보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은 내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진짜 요리를 해 먹는다고 한다면 책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내 어림짐작과 손맛으로 음식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저자의 엄마가 진짜 요리를 하라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저자는 엄마의 요리들을 다시 재현하면서 조금씩 마음속에 묻어두고 꺼내기 두려워했던 엄마의 과거를 찾게된다. 알콜중독으로 망가져버린 엄마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던 저자는 조금씩 엄마의 기록들을 찾게 되면서 기억하지 못하던 엄마의 모습, 알지 못하던 엄마의 모습을 찾게 되는데...

그저 마음아픈 이야기일것이라고만 생각해서 이 책을 읽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오히려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지금도 알게모르게 엄마의 부엌에서 수많은 값진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닫는다. 아버지의 죽음이후 나를 짓누르던 괴로움이 왠지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될까, 싶지만 지금 한순간에 좋아지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괴로운 기억들만이 아니라 좋았던 추억들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될 것 같아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얻게 되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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