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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인
쇼다 간 지음, 홍미화 옮김 / 청미래 / 2021년 6월
평점 :
고속도로 갓길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남자는 41년 전 유괴 살해된 아동의 아버지로 밝혀진다. 41년 전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아동 유괴 살해 사건의 피해자 아버지가 어째서 41년이 지난 후 시체로 발견된 것일까. 더구나 그 장소는 41년 전 납치범이 몸값을 건네받기로 했던 곳이다. 남자의 죽음과 함께 41년간 묻혀 있던 아동 유괴 살해 사건의 충격적인 전모가 드러난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쇼다 간의 '진범인'은 한 편의 잘 짜인 범죄 수사극이다. 이 소설에는 불가능한 살인도, 기막힌 트릭도, 명쾌한 추리도 없다. 비교하자면 에드 맥베인의 '87분 서 시리즈'와 무척 닮았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경찰들의 치열한 탐문 수사 과정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다. 한 남자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41년 전 유괴 사건 당시와 26년 전 시효 1년을 앞둔 상황, 그리고 현재의 시점 이렇게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현재와 과거가 왔다 갔다 해서 처음엔 조금 산만하게 느껴지지만, 결국 이 이야기는 두 번째 과정, 시효 1년을 앞둔 상황에서 형사들의 치열한 재수사 과정을 다룬 대목이 주 스토리다.
오래전 본 미드 '콜드 케이스'가 문득 떠오른다. 살인사건에 공소시효 따윈 없다고 말하는 콜드 케이스 수사관들의 끈질긴 탐문 수사는 이 책 속 형사들과 닮았다. 시효를 1년 앞둔 상황에서 급하게 조직된 특별 수사반 대원들은 각자의 신념과 수사 방식을 총동원해서 어떡해서든 범인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들에게 있어 과거는 현재다. 14년이 지나 모두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그 과거가 형사들에겐 놓을 수 없는 마지막 진실의 끈인 셈이다.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그리고 각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해서 남은 시간 전까지 최후의 투혼을 불사르는 형사들의 분투는 그 자체로 묵직한 재미와 감동을 자아낸다.
'콜드 케이스' 얘길 했지만, '실종 사건 전담반'이라는 미드와도 닮았다. 그리고 로스 맥도날드의 소설과도 스타일이 비슷하다. 현실 속 사건은 그런 법이다. 명탐정이 나타나 놀라운 추리로 단번에 범인을 잡아내는 것은 책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 속 송강호처럼- 현실 속 사건은 두 다리가 아프도록 달려야 한다. 끝없이 탐문수사를 하고 작은 실마리 하나에 희망을 걸고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한다. 범죄는 일어난 그 시점부터 과거가 된다.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난다. 형사들의 피와 땀은 그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힘겨운 몸부림이다. 그 속에 피해자의 아픔과 진실의 절규가 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형사의 사명이다.
낯선 작가, 낯선 제목의 책이었지만 대단히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저력이 만만치 않은 작가였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출간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