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클롭스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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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안내서를 쓰는 작가와 그의 심부름꾼, 그리고 책방 주인 딸- 이렇게 서로 잘 맞지 않는 세 명이 팀을 이뤄 일본 시골 마을 곳곳에 숨겨진 미스터리한 일에 휩쓸린다는 옴니버스 작품집. 작가 야마시로 아사코는 오츠이치의 다른 필명이다. 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작가인데, 이번 작품 '나의 사이클롭스'는 전작 '엠브리오 기담'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 기대치가 하늘을 찔렀다.


표제작 '나의 사이클롭스'는 책방 주인 딸이 산속에서 길을 잃어(이 소설은 거의 모두 길을 잃으며 시작한다) 외딴 집에 사는 정체 모를 거인을 만나는 이야기다. 표제작이라 그런지 가장 재미있었다. 사실 이 거인과의 테마는 고전 영화 '킹콩'에서 가져온 듯하다. 오래전 읽은 양영순의 만화 '천일야화'의 한 에피소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킹콩의 변주 이야기는 이제 꽤 익숙하지만 그래도 어떤 감성으로 다가가느냐에 따라 언제나 또 다른 비애와 감동을 안겨준다.


표제작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또 하나의 수록작은 '네모난 두개골과 아이들'이라는 작품이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일행은 해골이 널린 폐허 마을에 당도한다. 이상한 것은 두개골이 원형이 아니라 깎아지른 정사각형 모양이라는 것이다. 이 정사각형 두개골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비밀과 가슴 아픈 스토리는 끔찍한 공포와 함께 긴 여운을 남겼다. 이 외에도 코를 베어 가는 연쇄 살인마에게 잡혀 생지옥을 경험하는 '코 베어 가는 절'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전작인 '지옥'과 꽤 흡사한 전개였다. '지옥'이 워낙 걸작이었는데, 한 번 더 슬쩍 우려먹는 느낌이었다.


괴담과 기담을 바탕으로 공포와 잔혹 고어가 어우러져 있는데도 그 모든 것을 우아하게 감싸고 있는 독특한 미스터리다. 오츠이치가 다른 필명으로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하다. 다만 모든 수록작이 전작 '엠브리오 기담'에는 살짝 못 미쳤다. 본작도 충분히 재미있고, 무섭고, 끔찍하지만- 묘하게도 전작에서 느낀 마음을 파고드는 향수와 전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전작과의 비교만 없다면 겨울밤에 읽기 딱 좋은 고품격 호러 미스터리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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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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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 소년 자이는 마을 아이들이 하나둘 실종되는 사건에 의문을 품는다. 단짝 친구들 파리, 파이즈와 함께 소년 탐정단을 만들어서 실종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사라진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고, 중앙 시장과 골목을 돌며 탐문 수사를 한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보라선 열차를 타고 먼 곳으로 모험을 강행하기도 하지만 수사는 늘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다. 그러던 중 한 소녀가 또 실종된다.


'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은 2021년 에드거 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과 아동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소년 탐정단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하지만 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소년 탐정단의 활약'이라는 기대는 조심스럽게 접어야 했다. 이 소설은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 탐정 칼레'처럼 아이들의 유쾌한 모험을 그린 미스터리 활극이 아니다. 인도에선 하루에 180명의 아이가 실종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런데도 인도의 부패 권력과 경찰은 이를 손놓고 있다. 빈민가를 뿌옇게 덮은 스모그처럼 인도의 아이들에겐 희망도 미래도 불투명하다. 작가가 천진한 아이의 시선을 가져온 것은 인도 빈민가의 어두운 현실을 보다 생생히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작가의 경쾌한 필력이다. 아홉 살 소년 자이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빈민가의 일상을 눈에 보이듯 세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입체감 넘치는 캐릭터들, 허를 찌르는 표현력, 감칠맛 넘치는 대화, 생생한 묘사와 풍성한 서사. 이 마법같은 필력에 푹 빠져들어 초중반은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가독성이 조금씩 약해지는데 이유는 이 소설이 실종-탐문-실종-탐문으로 이어지는 병렬식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뒤로 갈수록 서사가 힘을 잃는다. 다만 이 소설을 미스터리 소설로 볼 게 아니라 추리의 색을 띤 빈민가 소년의 성장기로 본다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지옥 같은 현실에 굴하지 않는 아이들의 유쾌한 발걸음에 작은 희망을 품는다.


아이들은 미래다. 아이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미래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미래가 사라진다는 것은 종의 멸망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렇게 고속 열차처럼 멸망의 길을 향해 내달리고 있음에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마냥 손 놓고만 있다. 소설 속 어른들은 무기력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활기차다. 어설프지만 탐정단을 만들어 아이들을 찾고자 노력한다. 소설 속에서 내내 언급하는 정령은 어쩌면 이 아이들의 눈물을 보듬어줄 위로이며 환상이다. 그것이 서글프다. 환상에 기대지 않고는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숨이 턱 막히는 시간을 버티는 아이들이 전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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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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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던 꼬마 시절- 아이들은 선입관이라는 적과 싸운다. 그래서 커닝을 하고, 미술관의 작품을 훔치고, 영웅에 관한 소문을 만들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유명 야구 선수가 탄 차를 뒤쫓는다. 그렇게 단단하고 커다란 벽을 무너뜨린 후 아이들은 그들만의 싸인을 만든다. 먼 훗날 어른이 된 자신들에게 보내는 마법 같은 메시지를...


이사카 고타로 데뷔 20주년 기념작 '거꾸로 소크라테스'는 다섯 편의 중편을 담은 소설집이다. 모두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어른 세계가 만든 선입관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이야기다. 내 안의 몽상가와 현실주의자, 둘 중 어느 쪽도 실망하지 않을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아이들의 무용담을 담고 있지만 그 모든 모험은 현실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다. 그렇다고 해도 이사카 고타로는 뼛속까지 판타지를 꿈꾸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현실주의자 보다는 몽상가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고 이 점이 만족스러웠다.


돌아보면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한 일본 작가는 이사카 고타로였다. '러시 라이프'로 이 작가의 팬이 되었고 그 후로 '중력 삐에로', '칠드런', '명랑핸 갱이 지구를 돌린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오듀본의 기도', '사신치바' 등의 작품을 연속으로 읽으며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판타스틱 한 세계관에 푹 빠졌다. 이 작가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경계의 벽을 허물며 자유로운 창작관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법은 이후 일본은 물론 국내 젊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골든 슬럼버'의 대성공 이후 조금 주춤한 느낌이 들었지만 최근 발표한 '화이트 래빗', '서브머린', 'AX', '후가와 유가'등에서 다시 예전의 재기 발랄함을 되찾은 듯해 기쁘다.


'거꾸로 소크라테스'는 초창기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보는 것처럼 시종 보석처럼 번뜩이는 재미로 가득하다. 다섯 편 모두 재미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표제작인 '거꾸로 소크라테스'와 농구 소년들이 무차별 살인마와 대결하는 이야기를 다룬 '언스포츠맨라이크'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문득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때 어째서 세상이라는 벽에 부딪쳐볼 엄두도 내지 못했을까? 좀 더 용기있게 달려보지 못했을까? 그때만 가능했던 많은 이야기를 써 나가지 못했을까? 아이 때 더 많은 모험을 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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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저택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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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 마을 외진 연구소 옆에 오래도록 버려진 두 개의 드럼통. 민원 제기가 들어와 면사무소 직원은 연구소를 방문한다. 어딘지 기분 나쁘고, 뒤틀린 듯한 집 깊숙한 방에서 소장을 만난다. 소장은 지금 즉시 밖으로 나가 두 개의 드럼통을 이용해 집을 불살라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벌어진 경악할만한 실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장난감 수리공'으로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고바야시 야스미가 98년 발표한 '육식저택'은 4편의 중단편 모음집이다. 재미있는 것은 네 편 모두 '공포'를 테마로 하고 있지만 분위기가 다 다르다는 점이다. 사이코 스릴러, 괴수물, 잔혹 액션, 심리 미스터리- 한 편의 소설집에서 여러 장르를 맛볼 수 있는 것은 독자에겐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한 편 한 편 모두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놀라운 플롯의 묘미가 살아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첫 번째 수록작인 '육식저택'이 가장 좋았다. 비밀 연구소에서 행해진 괴기스러운 실험이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돌변하는 과정이 소름끼치면서도 다이내믹하게 전개된다. 이 한 작품에 미스터리, 공포, 액션이 모두 녹아 있고 나아가서 코즈믹 호러와 아포칼립스 세계관까지 담아낸다. 결말을 알고 난 후 다시 보면 시작부터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복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 신체를 부품처럼 사용하는 무법 세계를 그린 '정크'는 '육식저택'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작품인데, '인 외 서커스'에서 선보인 잔혹 액션이 이 단편에서도 작가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어우러져 무척 잘 그려졌다. 세 통의 편지가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마지막에 잔혹한 진실을 공개하는 '아내에게 보내는 세 통의 편지'는 복선을 곱씹어 보는 재미가 탁월했다.


내 안의 다른 내가 살인마일지도 모른다, 라는 설정의 네 번째 작품 '짐승의 기억'. 어떻게 보면 꽤 흔한 설정의 심리 스릴러로 갈 수 있었는데 작가는 라스트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플롯을 비틀며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다만 이 작품은 완성도와는 별개로 구성이 너무 번잡했다. 주인공의 번뇌하는 심리 상태, 내 안의 살인마와 주고받는 노트 대화, 정신과 의사와 나누는 심리 상담, 그리고 이것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서술 등- 독자에게 '비밀'을 숨기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연막전을 펼친 느낌이라 상당히 어지러운 전개였다. 이점이 조금 아쉬웠다.


사실 진짜 아쉬운 것은 이제 이 작가의 새 작품을 더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가 후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후기를 보면 이 작품이 네 번째 출간작이었다. 95년 '장난감 수리공'으로 데뷔한 이후 매년 한 편씩 신작을 출간했다는 뜻이다. 이토록 재능있고, 부지런하고, 패기만만한 작가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당시, 젊은 작가가 쓴 후기가 더욱 긴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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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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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으로 팬이 된 작가 켄 리우. 뭐라 형언하기 힘든 감동, 주제와 재미를 완벽하게 아우르는 플롯의 힘! 모든 면에서 ‘종이 동물원‘을 뛰어넘었다. 별 다섯이 아깝지 않은 걸작! 특히 수록작 중 싱귤래리티 3부작은 SF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작품성과 오락성‘의 정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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