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아쓰카와 다쓰미 지음, 이재원 옮김 / 리드비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투명인간이 살인을 계획한다. 목표는 모 대학 교수. 나름 철저한 준비를 했음에도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이런저런 변수가 따른다. 투명인간도 완전 범죄는 쉽지 않다. 마침내 교수실에 침입하고, 막 일격을 가했을 때 교수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탐정을 위시한 사내들이 교수실로 들어온다. 탐정은 말한다. 이곳에 틀림없이 범죄를 저지른 투명인간이 숨어 있을 겁니다. 과연 투명인간은 밀실에서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와쓰카와 다쓰미의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는 4개의 중편으로 이뤄진 미스터리 소설집이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작가지만 일본에선 꽤 주목받는 추리작가다. 본 작품으로 작년 한 해에만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 '주간 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2위 등의 화려한 수상 실적을 자랑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국내 출간을 손꼽아 기다렸던 작품이다.


 첫 수록작 '투명인간은~'은 투명인간 병이 발발한 사회에서 한 투명인간이 밀실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다. 형사 콜롬보, 후루하타 닌자부로처럼 도서 추리극의 형태를 취하며 긴장의 극을 잘 살린다. 소설의 절정은 밀실에 숨은 투명인간을 찾아내는 대목이다. 오래전 노리즈키 린타로의 단편 '두 동강이 난 남과여'의 마지막 트릭에 놀란 적이 있는데, 이 작품 속 마지막 트릭도 그때 느낀 것과 비슷한 대담한 발상이 압권이었다. 또한 투명인간이 가진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 사회적 의미, 두 가지 모두를 곱씹게 만드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놀라운 트릭과 씁쓸한 비애를 동시에 안겨다 준 수작이다.


표제작 외에도 아이돌 마니아들로 이뤄진 배심원들의 좌충우돌 추리극 '6명의 열광하는 일본인들', 소머즈 급 청력을 가진 여인이 소리로만 범인을 추리하는 '도청당한 살인', 방탈출 게임에 참가한 이들의 진짜 탈출극을 그린 '13호 선실에서의 탈출'까지, 4편의 수록작 모두 독특한 설정과 세계관 위에서 벌어지는 전혀 다른 네 가지 색, 미스터리를 다룬다. 미스터리 소설로 본다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묘하게 표제작에 비해 나머지 작품들이 살짝 아쉬웠다. 너무 추리적 기교에만 매달린 나머지 드라마가 얕았다고 해야 할까? 엄청나게 기대했던 것에 비해 조금의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기대하기엔 충분하다. 


p.s. 작가는 네 편 수록작에 투명인간, 12명의 성난 사람들, 코넌 도일, 13호 독방의 문제 등 유명 고전의 오마주 형식을 조금씩 취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망 좋은 밀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어떤 남자가 마당에 설치한 핵전쟁 대비 지하 벙커에 들어가 체험을 해본다. 매일 아내에게 생존 교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이상한 교신을 받는다. '녀석들이 왔어. 난 여기서 버틸 테니 당신은 도망쳐!' 그 직후 아내와 집안 일꾼들이 벙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남자는 몸통이 절단된 채 죽어 있다. 벙커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는 닫혀 있었고, 벙커는 무척 좁아 누군가 숨을 공간도 없다. 이 불가능한 밀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천재 탐정 시그마가 나선다. 그는 현장을 둘러본 후 단번에 진상을 알아낸다. 모두를 놀라게 한 사건의 진실은 과연?  


'완구 수리자'로 일본 호러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 2020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까운 작가다. 국내엔 '앨리스 죽이기'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는 미스터리와 호러, SF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은 소설을 썼다. 이제 작가의 신작은 볼 수 없는 만큼, 이미 발표한 작품이라도 국내에 모두 소개되길 바란다. 


'전망 좋은 밀실'은 7편의 중,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불가능한 밀실 사건을 해결하는 초한 탐정의 이야기를 그린 '전망 좋은 밀실', 섬뜩한 꿈 얘기를 늘어놓는 이웃집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눈 비비는 여자',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조수의 이야기를 그린 '탐정 조수', 미지의 괴물체에 맞서 친구와 지구를 지키려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망각의 침략', 시간 여행의 모순에 관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미공개 실험', 인류의 궁극적 행복을 우주적 관점으로 사유하는 '죄수의 딜레마', 주산과 숫자로 형성된 가상 세계와의 교류를 그린 '미리 정해진 내일'까지- 하나하나 장르와 색깔이 모두 다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전망 좋은 밀실'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언뜻 이 소설집을 추리 단편집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집은 오히려 SF 단편집에 가깝지만 SF라고 딱 규정하기도 애매하다. SF적인 용어들이 다수 등장하고 그것을 플롯에 멋지게 활용하기도 하지만, 뭐랄까 그저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결과물로 보는 게 맞는 듯하다. 어떤 논리성이나 이성적인 기승전결을 기대한다면 조금 허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저 작가가 만든 어마어마한 상상력의 롤러코스트에 탐승해서 신나게 즐기는 게 좋은 독서법이다.


가장 인상적인 수록작은 '망각의 침략'이었다. 소년의 망상 같은 상상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어마어마한 가설이 더해지며 인류를 위협하는 괴생명체와의 아슬아슬한 사투를 담아낸다. 특히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절묘하게 활용해서 괴생명체를 제압하는 후반부가 압권이었다. 수록작 중 가장 황당한 상상력을 가졌음에도 가장 논리적인 추리 플롯으로 끝맺는다. 그러면서도 아포칼립스적인 세계관과 청춘 소설의 설렘까지 두루 아우르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들 마음속에 아직 관측되지 않은 슈레딩거의 고양이는 살아있을까, 죽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왕성 파티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고등학생 때 알고 지낸 여학생이 십수 년이 흘러 외설 사이트의 주인공이 되어 나타났다. 당시 꽤 예쁘고, 행실도 단정하고, 공부도 잘 했던 그녀가 어째서 지금 이런 꼴이 되어버린 걸까? 대체 그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소설은 그녀- 쇼코의 시간을 좇는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학창 시절 책과 음악 밖에 모르는 외톨이 소년과의 짧았지만 인상적이었던 만남, 대학생이 되어 락음악을 하는 화가 지망생과의 수상쩍은 만남, 그리고 여러 번 그녀를 스치고 간 남자들과의 만남- 쇼코의 이야기로 이어지던 소설은 마지막 챕터에 이르러 다시 그녀의 행방을 추적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간다. 특별할 게 없었던 그녀가 어쩌다 외설 사이트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라스만차스 통신,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 내가 있었다- 두 작품으로 팬이 된 히라야마 미즈호. 그래서 '명왕성 파티'에 거는 기대도 컸다. 절판된 책을 중고로 뒤져서 구입할 정도였는데, 읽고 나니 허무한 감정이 밀려왔다. 한마디로 내 기대에 영 못 미쳤다. 이 소설은 쇼코라는 여주인공을 내세워 그녀가 만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것으로 작가는 인간의 소통과 허무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던 건진 모르겠다. 


하지만 내내 쇼코라는 캐릭터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이해할 수 없기는 다른 캐릭터들도 다 마찬가지다) 상당히 똑똑한 여성처럼 그리다가 느닷없이 남자에게 휘둘리며 농락당하는 캐릭터로 내버려진다. 그래서 쓸쓸하게 스스로를 명왕성이라 칭하며 외설 사이트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남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었다며 부르짓는다. 내가 남자라 이해 못하는 걸까? 여자라면 쇼코의 심리에 공감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소설로서 가독성은 뛰어나지만 캐릭터에게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별 다른 매력도 찾지 못하게 되니 결국 읽고 나서 공허함만 남았다. 


누군가에겐 어떤 공감과 위로로 닿을 수도 있겠지만 내겐 뭐랄까. 그저 그런 지지부진한 연애 스토리에 지나지 않았다. 여자들과 밥 먹듯이 잠자리를 갈아 치우며 바람을 피던 남자가 마지막에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이 여자친구에게 벅찬 가슴으로 달려가는데- 그러면 그게 진실한 사랑이 되는 건가? 그게 아름다운 모습이라도 되나? 아무래도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서받지 못한 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을 읽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섀도우, 술래의 발소리, 용의 눈은 붉게 물들고, 솔로몬의 개, 달과 게- 등의 작품을 특히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날카로운 미스터리와 흡입력 넘치는 서사, 그리고 모든 것을 뒤집는 반전까지. 미치오 슈스케의 미스터리 소설은 믿고 보는 보증수표와도 같았다.


몇몇 작품은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묘하게도 작가의 후기작품들이 내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날카로운 미스터리가 사라지고 인간 관계에 관한 묘사가 많아졌다. 그래서 한동안 미치오 슈스케를 떠나 있었는데, 모처럼 '용서받지 못한 밤'으로 다시 이 작가와 만났다. 


어릴 적 딸아이의 실수로 아내를 잃은 아버지는 그 일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다. 그런데 어느날 '딸이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며 협박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소설은 이 일과 함께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 사건을 함께 다룬다. 함께 다룬다기 보다 30년 전 사건이 실질적인 메인 스토리다. 30여년 전 신울림제가 있기 전후로 일어난 여러 사망 사건들. 그 속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그 날의 진실. 미스터리 소설로만 놓고 본다면 퍼즐을 직조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엄청나게 흩어 놓은 복선들을 라스트에 깔끔하게 회수하는 솜씨는 전성기 때 미치오 슈스케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묘하게 아쉬운 것은 드라마였다. 초중반까지 너무 많은 비밀을 쏟아놓고, 꼬아놓은 것치고는 사건의 진상이 너무 단출했다. 동기도 지극히 진부하고, 라스트 반전도 예측하기 쉬웠다. 무엇보다 그 인물들이 그런 일들을 벌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모든 캐릭터가 복잡하게 설치한 미스터리의 구조물에 맞게 장기 말처럼 움직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휴머니즘을 내세워도 얕은 공감만 들뿐이었다. 미치오 슈스케의 초기작들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 작품에 건 기대가 컸던 탓일 수도 있겠다.


 때문에 일반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틀림없이 잘 만들어진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가독성도 좋고, 복선 회수도 좋고, 가족애를 떠올려 볼 수도 있는 괜찮은 작품이다. 다만 이 작가의 골수팬으로 볼 때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원은 탐정의 부재
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갑자기 창공에 천사들이 날아든다. 천사는 아름답지 않다. 커다란 인간 박쥐와도 같은 흉측한 모습이다. 눈, 코, 입이 없는 맨들맨들한 얼굴로 날개를 퍼덕이며 인간 세상과는 무관한 듯 하늘을 배회한다. 다만 한 가지- 살인을 두 번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지옥으로 끌고 간다. 때문에 세상은 연쇄 살인이 자취를 감춘다. 살인 사건도 현저히 줄어든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혼란스럽다. 악마 같은 형상의 천사들이 강림한 후로 세상은 마치 종말에 다다른 것처럼 아비규환에 빠져든다. 그 와중에 한 외딴섬 저택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천사들이 강림한 후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연쇄 살인-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으며, 천사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천사가 강림해서 살인을 두 번 저지른 이들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세계관 위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에 관한 추리는 무척 논리적이다. 비교하자면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시라이 도모유키의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야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 등과 유사한 설정이다. 초현실적인 세계관 위에서 논리적인 미스터리가 전개된다는 점이 닮았다. 일본에서 요즘 유행하는 장르인 듯 싶다.


이 소설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천사의 존재 의의다. 느닷없이 나타나 두 명을 죽인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연쇄 살인만은 막겠다는 의지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한 명은 죽여도 봐주겠다는 뜻이다. 천사는 어째서 이런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걸까? 이 때문에 세상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천사가 허락한 한 번의 살인은 해버리겠다는 사람들, 기왕 지옥으로 갈 바엔 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을 죽이겠다는 자폭파들까지!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도 천사는 유유자적 하늘만 맴돈다. 인간 세상의 어떤 사건에도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천사는 왜 나타났는가? 악을 제대로 심판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소설은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천사에 환멸을 느끼는 탐정이 외딴섬 저택에 초대받으며 시작한다. 절해의 고도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흡사한 전개다. 전통의 클로즈드 서클 위에 천사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덧입혀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긴장감을 조성한다. 한 명은 죽여도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두 명을 죽이면 천사가 끌고 간다. 이 묘한 설정 탓에 소설은 마지막까지 진상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세계관의 독특함과 미스터리의 논리성 모두 합격점을 주고 싶다. 


어쩌면 낙원은 부조리의 부재일 테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부조리는 존재한다.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것은 신의 몫이 아니라 탐정(인간)의 몫이다. 때문에 지옥은 탐정(인간)의 부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