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다람쥐




조카아이와 슈퍼마켓에 갔다

아이와 슈퍼마켓에서 나왔다

내 손엔 물건들이 들려있고

아이의 손은 들어갈 때처럼 빈손.

내 눈은 길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계산대를 통과하며 얄팍해진 지갑을 만지는데, 

아이가 갑자기 소리 지른다

"이모! 여기 다람쥐 있어!"

어디? 어디? 없는데, 없는데.

높이 달린 내 눈엔 사람들과 물건만 보이는데

"여기 다람쥐 있어!"

반짝이는 눈, 자그마한 손을 따라가니 정말 다람쥐가 있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아주 낮은 곳에.

그 아이에게 당연한 기쁨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사랑도 그러하리라





- 최영미의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 중 시 '아이와 다람쥐'  전문 -

(원문에는 줄바꿈이 없음)



































며칠 전 오후 다섯시 쯤.

동네 산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해도 기울 무렵이라 기온도 뚝 떨어진 느낌인데 학원 건물 옆 도로에 초등학생들을 태운 학원 버스가 막 도착하고 있었다.

'눈도 오고 날도 추운데, 학원 오기 얼마나 싫었을까.

안됐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나 혼자 맘 속으로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는 애들을 딱한 눈으로 보고 있는데

버스 문이 열리고 쏟아져 나오는 애들. 하나 같이  환성을 지르며 내리는 것이다.

"와, 눈이다! 눈 온다!"


아이들에게는, 어른이 가지지 못한 힘이 있다. 

어른들이 걱정을 앞세우는 상황도 우선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힘.

어른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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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서울시에서 건립한 서울공예박물관


종로구 안국동.

조선 왕실 가족이 제택이나 가례를 치르던 장소이던 안동별궁터에 자리잡고 있다.


전통적인 작품들과 현대적인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건물과 정원 자체도 하나의 공예 작품 전시물로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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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1-1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각을 이어붙인 작품이 멋있네요.
첫번째 사진에 나온 건물도 외관이 독특합니다.
요즘 날씨가 추운데 서울 다녀가셨나 봅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고 좋은 하루 되세요.^^

hnine 2022-01-14 12:43   좋아요 1 | URL
첫번째 사진 건물은 제가 서울공예박물관 안에 발을 들여놓고 뒤를 돌아 찍은 사진이랍니다. 무슨 건물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저 날은 다행이 날씨가 아주 춥지는 않아서 돌아다니기 좋았어요. 벼르고 별러, 이제 못 참겠다 할 상태가 되어 나간 바깥 나들이였답니다.
저 조각보 멋지죠? 기념품샵에 갈때마다 저를 망설이게 만드는 품목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서니데이님도 추위에 몸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2-01-1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건물 멋진데요. 바구니공예도 생각나고... 다음에 서울가면 한번 찾아가봐야겠습니다.

hnine 2022-01-14 13:23   좋아요 0 | URL
저 건물은 사실 서울공예박물관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건물이긴한데 공예박물관 안에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니 눈에 확 들어오기에 찍어봤어요.
바구니 공예, 보자기 공예등 디테일에 강한 게 우리 민족 특성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장인정신‘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였는데, 한가지 작업을 수십년 반복하여 쌓이는 실력이 드러나는 작품들 앞에 숙연해졌어요. 타고난 능력도 능력이지만 끈기, 집념, 이런 것들이 주는 감동은 더 특별한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2-01-14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건물이 압권이군요?
건물 짓기 까다로웠겠단 생각이??^^;;
조각보!!! 한 때 조각보에 빠져서 배워볼까?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좀 어려워 보이고,바느질을 잘 못해서 엄두가 안나서 사야지!!! 검색해 보니까 와~ 엄청 비싸더라구요. 여름에 걸어두면 좀 시원해 보일 것 같았는데....포기했었어요ㅋㅋ
그냥 감상만 해야지!! 싶었었는데 저런 전시회는 멋집니다. 서울 갈일 있음 저도 한 번 둘러보고 싶군요~^^

hnine 2022-01-14 13:26   좋아요 1 | URL
기존의 건물 위에 아치 구조물을 덧 붙인 것 같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추측 ^^).
서울공예박물관 건물은 예전 풍문여고 건물을 리모델링 하여 만들어 아주 소박해요. 하지만 단순미라고 할까요. 그것은 그것대로 정감있었답니다.
조각보, 지금도 저는 배워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아쉬운대로 그날 집에 와서 그림으로 흉내내보다가 망했습니다 ㅠㅠ

프레이야 2022-02-0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할 자신은 없지만 보는 걸로만 조각보 좋아해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왠지 푸근해져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내와 정성으로 한땀한땀 이은 작품인지, 숙연해지더군요. 후쿠오카미술관에서 보았던 크고 작은 조각보들이 떠오릅니다. 공예박물관, 봄날에 한번 가야겠어요. 안국동이군요. 엊그제 통의동에 있었는데 말이죠.

hnine 2022-02-08 15:26   좋아요 1 | URL
저는 지금이라도 누가 가르쳐주겠다면 배우고 싶답니다. 그런데 일부러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갈 정성이 부족하네요. 맘대로 이동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것도 한 몫 하고요.
조각보를 만드는 동안 바늘땀이 의미하는 것은 공예품의 완성을 향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정화시키는 시간의 축적이 아닐까 해요.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요즘은 ‘시간‘이 아닐까 생각중이거든요.
 





















































































서울공예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나와 둘러본 삼청동.


걷다 보면 한옥이 나오다가, 하얀 색 작은 갤러리가 튀어나오고, 현대적인 건물 있는 옆에 어릴 적 살던 동네 같은 풍경이 나오고. 

한국식 담을 따라 몇발자국 걷다보면 담장은 끝나고 독특한 문양의 벽돌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 나왔다.

이런 의외성 때문에 재미있던 곳, 삼청동.

이런 의외성의 배경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회 현상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그것만 아니면 더 좋았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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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14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여행은 걸어야 더 잘 보이는것. 삼청동 저 길도 찜해둡니다

hnine 2022-01-14 14:1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나이 들어갈수록 다리 힘이 중요한 이유에 되도록 오래까지 걸어다닐 수 있기 위함도 있기 때문에 요즘 시간 날때마다 하체 운동 열심히 하려고 한답니다.
삼청동은 당연히 전통 가옥들이 많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는데 예상치 못하던 것은 저렇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순하고 모던한 건물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남편 말에 의하면 자기 고등학교 다닐 시절엔 (먼먼 옛날)여기가 다 그냥 살림집들이고 평범한 동네였다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고. 평범한 살림집들은 새로운 상가 건물로 대신 하고 수십 년 자기가 살던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야 하는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01-14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바람돌이님과 노선이 비슷한데요?
길 가다가 만나는 것 아닙니까?
얼굴도 몰라보고 그냥 지나치겠죠??ㅋㅋㅋ
저도 저런 골목길 좋아해요.
저는 아담한 한옥을 개조한 카페나, 저런 옛집 개조한 아담한 카페가 있는 저런 곳이 어딘가? 무척 궁금했었는데 바로 삼청동였군요?
한양 가면 삼청동도~ㅋㅋㅋ
서울은 구경할 곳이 지천이어 그게 참 부러워요. 대전도 좀 그러하지 않나요?^^
제가 사는 곳은 죄다 풀밭 아님 아파트여서 저런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죠.
아...요새 카페는 조금 특이한 외관으로 꾸미는 추세긴 했습니다.^^

hnine 2022-01-14 14:20   좋아요 1 | URL
한양 가시면 꼭 한번 가보세요. 많이 걸을 각오 하시고 ^^
원래 저날 큰 맘 먹고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보러가려고 했었는데 입장 제한에 따라 그날 인원 예약이 다 마감되었더라고요. 다행히 서울공예박물관은 예매가 아직 가능하기에 그곳으로 간 것이었어요. 그리고 삼청동길은 아주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이고요.
저희 집도 죄다 풀밭 아니면 아파트 ㅋㅋ
삼청동 가니까 아직 굴뚝에 연기 나오고 있는 목욕탕도 있더라고요 ^^
그런 곳에 현대적 건물도 불쑥 끼워져 있고, 그런데 그게 어색해보이기 보다 의외성이 주는 신선함이랄까, 아무튼 재미있었어요.
책읽는나무님도 꼭 한번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방 한켠에 치워놓았을 뿐 아무것도 해준 것 없고
키우고자 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새 저렇게 쑥쑥 자라고 있는 양파

사소하다고 하려나.
나는 늘 감동을 받는다.
생명의 본성은 생명을 이어나가려고 하는 데 있구나.
물이 없어도 집이 없어도. 
살기를 끝내려 하기보다 
이어나가려고 하는구나.

귀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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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1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값 비쌀 때는 양파로 요리해도 무방하죠??^^

hnine 2022-01-10 14:32   좋아요 1 | URL
요즘 파값 너무 비싸죠?
양파에서 자라나오는 저 파 처럼 생긴 부분은 매운 맛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비주얼만 파 ^^
 





거울



지난주말 시골집에 갔는데

우리집에 참, 이상한 새 한마리가 산다.

배쪽은 짙은 밤색, 등 쪽은 검은색, 깃에는 흰색 점이 박힌 참새만한 새인데

이 새는 하루종일 마루에 걸어놓은 거울에 와서 논다.

파르륵, 날갯짓을 하며 거울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어머니 말씀대로, 살면서 세상에 별놈의 새를 다 본다.

거울 속 제 모습을 두고 짝이 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저녁 무렵,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여름에 안방으로 새 한 마리 들어왔기에 들고 있던 파리채로 그만 후려갈겼다.

그게 짝인갑다.

아버지도 참......

그래서 내가 팔순의 아버지께 왜, 그 새를 죽였냐고

난생처음 버릇없이 화를 내었다.

그리고 내 얼굴이 비치는 그 마루의 거울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고영민 이라는 시인의 <공손한 손> 이라는 시집에 수록된 '거울'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시 라기 보다 마치 짧은 얘기 한편을 읽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저 마지막 행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내 얼굴이 비치는 그 마루의 거울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 시의 제목을 '새'도, '아버지'도 아닌 '거울'이라고 했기 때문일 것 같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시인이 거울을 본 순간 시인 눈에 비치는 것은 시인 자신의 얼굴뿐 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오늘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영민 시인의 시집 두 권을 다시 읽어보는 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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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0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제목만 보면 으시시한 공포 얘기일 것만 같다는 느낌이...ㅋㅋ

hnine 2022-01-06 23:23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제목만 읽으시면 안됩니다~ ㅋㅋ
옛날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인데, 쓸쓸한 옛날 이야기인셈이지요.

그런데 이 얘기를 제 남편이 듣더니 자기 경험으로도 새들이 워낙 거울 주위에 모여들어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