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5-16일. 갑자기 기온이 쑥 내려갔다. 게다가 경북은 한파주의보에 강풍 경보까지! 부산 촌사람이 이러다 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숙소도 예약했고, 오랜 결심 끝에 나선 길이라 할 수 없이(?) 출발. 이번에는 의성군 일대를 답사하기로 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군위 나들목에서 나왔다. 우보면을 거쳐서 올라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보면은 예전에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도보여행을 갔을 때, 한 집 건너 곰탕(설렁탕)집이 있었던 게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점심으로 곰탕을 먹기 위해서 우보면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내가 착각을 한 것인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동네는 좀 비슷했으나 전혀 곰탕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허탕도 허탕이지만 아련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무엇인가가 허물어져서 허전했다. 이러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다른 내용들도 신뢰하기 힘든 것이 아닌가 싶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대감)마을 <학록정사>  

    아무튼 여기는 금성면  산운마을이다. 금성산을 배경으로 양반촌이었던 마을이 농촌체험마을로 거듭난 곳이다. 폐교를 개조해서 생태공원도 만들어 두었고, 집집마다 돌담이 곱게 올려진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사진은 마을 서편에 있는 학록정사(글씨는 표암 강세황)라는 곳인데, 여기는 관리가 좀 부실해 보였다. 날씨가 무척 추워서인지 마을엔 우리 가족 이외의 여행객은 한 명도 없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대감)마을 <소우당>별당  

   산운마을에서 가장 멋진 장소는 이 소우당이라는 별당이다. 별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쁜 정원을 조성해 놓았는데 소나무숲과 연못, 돌길의 운치가 매우 훌륭하다. 별당의 건물도 조촐하지만, 단정해 보여서 정말 이 건물에는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 그대로의) 조선 시대 별당 아씨가 살았겠다, 싶었다. 사진에는 안 보이겠지만, 참외만한 모과가 바닥에 뚝뚝 떨어져서 나뒹굴고 있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 5층 석탑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석탑이 하단부가 좀 부실해 보이고 상대적으로 비례가 맞지 않는 거 아닌가 싶어서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로 가서 보니 크기도 꽤 크고, 생각보다 훨씬 정교해 보여서 당당하고 단정해 보였다. 같이 지내봐야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사람처럼! 야트막한 공터 위에 천년 세월의 칼바람을 늠름히 버텨내고 있는 탑리 5층 석탑. 이렇게 또 한 번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은 바람에 흔들려 노란나비가 되는 겨울이지만, 저 탑은 앞으로 다시 천년을 저 모습 그대로 감당하겠다 싶으니까 절로 숙연해진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조문국 고분군

   의성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해도 조문국이란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고대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 작은 부족국가들이 여럿 있었는데 이곳, 금성면을 중심으로 한 국가가 조문국이라고 했다.(울릉도를 옛날엔 우산국이라고 부른 것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래도 저렇게 큰 왕릉을 세울 정도의 권력이었다면 제법 통치권의 범위가 넓고,  지배력도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특별히 내세울 유적지가 없는 의성군의 입장에서는 잘 하면 '대박'날 수도 있을 듯!(계속 발굴 중이던데 뭔가 고대 이전의 획기적인 유적이라도 발견되면...)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봉리 금봉자연휴양림 

   예전에 도보여행(목포-태안)을 갔을 때 안면도의 안면암에서나 태안반도의 백화산에 올랐을 때 바라본 풍경은 세상의 끝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 옥산면 금봉리는 남한에서 거의 가운데지만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곳이다. 금봉리로 들어가는 외길을 제외한 모든 곳은 다 막혀 있는 곳. 옥산면에서도 30분은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깊디 깊은 산속에 자연휴양림이 있었다. 그날 숙박객은 우리 가족뿐이라서 하룻밤이나마 그 넓은 숙소가 전부 우리집인 듯 느껴졌다. 보일러는 절절 끓는데, 파릿한 냄새가 나는 맑은 공기. 찬바람이 쌩쌩 부는 아침이라 얼굴만 내놓고서라도 휴양림 주변을 산책했다. 어디 가서 이런 공기를 다시 폐 속에 넣을 수 있으랴!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 입구 <사과밭 그 사나이>

   휴양링에서 나와 도착한 곳은 점곡면 사촌리. 양반 마을로 이름난 곳이다. 여기는 사촌마을 입구의 사과밭이다. 사실, 우리는 어제부터 사과 수확이 끝난 사과밭에서 어떻게 하면 '이삭줍기'라도 하나 해 보까 싶어서 여러 곳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들어가기가 뭣해서 그냥 그냥 눈으로만 보다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마침, 사과나무 꼭대기에 새가 쪼아먹은 사과 한 알이 빨갛게 달렸다. 진복이를 한껏 안아 올려서 제 손으로 따게 했더니 마냥 신기해 한다. 마을에서 홍시도 두 개 따서 서리 맞은 감을 입에 넣었더니, 음... 맛은 아름다웠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 만취당 

   사촌마을에서 가장 멋있는 건물은 이곳 만취당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목조건축물이 드문 현실에서 용케도 여러번의 화마를 비껴간 임란이전 건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간 날은 바람이 불고 쌀쌀해서 그렇지, 만약 여름이었다면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방불케하는 넓다란 마루에 시원이 바람이 끝도 없이 솔솔 불어와서 답사객의 마음 속까지 시원하게 했을 것이다. 녀석, 만취당 건물에 데려다 놓았더니 아무도 없는 건물 여기저기서 혼자서 후다닥, 이러저리 구경하느라 바쁘다.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에게야 별다를 게 없지만, 만취당, 편액은 명필 한  호(석봉)의 글씨라고 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가로림 

   사촌마을에 내려오는 유명한 전설이야 다시 말할 필요도 없고(출가한 여자들이 애기를 낳으러 사촌마을로 오는 걸 싫어했다고 한다.ㅋ) 내가 보고 싶었던 건 바로 사촌마을의 명물 가로림. 1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이 마을 숲길을 아들의 손을 잡고 차분히 걷는 걸 상상해 보면서 달려왔다. 그러나 역시 꿈은 깨지기 마련. 요새 부쩍 발걸음이 빨라진 녀석이 아무 데고 쏘다니면서 방정을 떠는지라 차분히 걷기는커녕 녀석의 뒷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말리기에도 벅찬 게 현실. 겨울숲 나름의 운치는 있으나 잎이 무성해서 울창한 여름에나 곱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가을에 다시 찾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3층석탑 

   가로림을 끝으로 의성읍내로 나왔다. 의성에 왔다면 당연히 남선옥에서 밥 한끼는 먹어줘야 하는 센스! 의성시장 끝, 하나로마트에 주차를 하고 남선옥을 찾아갔다. 애기가 있는 우리 같은 여행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집이었지만, 그래도 손님이 없는 느즈막한 점심이었으니 나쁘진 않았다.(역시 경상도 사람들의 무뚝뚝함은 내륙으로 갈수록 더하다.) 

   점심을 먹고 북쪽으로 달려 도착한 곳은 관덕리 3층 석탑. 이곳도 길에서 한참 벗어나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마을의 안쪽에서도 꽤 들어와서 길이 끝나는 곳에 차를 어중간히 대고,  예전에는 분명 절터였을 폐사지에 올랐다. 맑은 하늘 아래 야트막한 터에, 탑 하나 불상 하나만 덩그렇다. 탑은 아담하지만 곱게 다음은 흔적이 역력한 고운 탑이다. 의성의 답사처가 대체로 그랬지만, 여기는 더욱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절대 고요의 공간. 아, 사진에 저 고요한 순간을 담을 수 있다면... 

   여기서 확, 깨는 이야기 하나. 녀석이 저 탑 안내판 밑에 큼지막한 똥을 누고 왔다.(어제밤에 계속 똥을 찔끔거려서 준비해 간 기저귀를 다 써 버렸다. 오늘은 팬티만 입혔는데, 녀석이 갑자기 똥을 누고 싶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저곳에다 실례를 하고 말았다. 관덕리 3층 석탑을 보러 가시는 분이 있거든, 행운을 빈다.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작가 권정생 사시던 곳 

   의성에서 유명한 고운사를 못 봤다. 거기서 차 한 잔 마시고 나오려고 했는데, 가는 길을 막아놓고 공사를 하느라 돌아가야 한다는데, 시간도 빠듯하고, 길도 찾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권정생 선생님 사시던 곳을 빨리 가 보고 싶어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돌아가시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기사가 났을 때 난 좀 염치가 없었다. 그냥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거 같아서... 당연히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그냥 혼날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갔다와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의성에서 안동 방향으로 여행 동선을 잡은 것도 당연히 이곳을 들르기 위해서이다. 다행스럽게도(?) 녀석은 차안에서 잠들었고, 나 혼자 사시던 곳을 다녀왔다. 댓돌 위로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주인의 신발이 없다. 아마 주인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외출을 나간 것이리라. 문은 굳게 잠겼고 그 위에 문패처럼 달린, 권정생. 아, 낯익은 글씨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사는 것이야 염치 없는 그대로지만 이렇게라도 와 보니 좀 후련하다. 어른도 혼나면서 크는 게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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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6일, 느티나무 

 


2009년 5월 17일, 느티나무 2세[이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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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화단 앞에서 1 (2009.04.19)

 




아파트 화단 앞에서 2 (2009.04.19)
 

   저 사진 찍고 녀석이 아프기 시작했다. 생전 병원이랑 안 친했는데, 이번 4월은 벌써 두 번이나 심한 감기를 앓아서 병원을 들락거렸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은 몸에 열이 심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자주 가던 소아과에서 수액을 맞아야 했다. 수액을 꽂고 있는 5-6시간은 병원에 계속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아내가 몹시 고생했다. 어제 수액을 맞고 나서 집에 와서는 녀석의 몸이 조금씩 괜찮아지나 보다. 오늘은 제법 잘 논다. 그래도 아직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는 않는다. 지금도 낮잠 잘 시간인데, 뭐가 불만이지 계속 찡찡거리고 있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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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26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남쪽에서 사는 게 진복이에겐 그래도 좋은 기회일 테지요?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해요.

느티나무 2009-04-26 20:09   좋아요 0 | URL
체구는 작아도 아프지 않고 잘 자랐는데(진짜 병원에 가 본 게 거의 1년만입니다.) 이번엔 감기에 제대로 걸렸나 봅니다. 따뜻한 남쪽이라는 거 별로 의식 못하고 삽니다만, 이렇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여기만큼 좋은 땅도 없다는 생각을 해요. 늘 관심과 격려, 고맙습니다.

kimji 2009-04-2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건강한 아이로 크고 있잖아요! 진복이! 반갑네요^^
안녕하시죠? 이렇게 진복이 얼굴을 보는 날에나 겨우 인사를 드리니-
두루두루, 안부- 저희 애도 감기로 골골; 저도 감기로 골골; 봄이 만만한게 아니네요^^
건강하게 이 봄 보내셔요!

느티나무 2009-04-27 17:48   좋아요 0 | URL
네, '좀 더, 좀 더'는 부모 욕심이겠지요? 잘 알지만, '부모 욕심'이라는 낱말의 끈적거림을 깨우치고 있는 중입니다. 저도 감기로 며칠간 앓았습니다. 봄이 만만하지 않다는 말씀에 백만 번 공감합니다. Kkimji님의 글은 늘 잊지 않고 읽는데, 너무 단정해서 댓글 달 빈틈이 없다고 하면 서운하시려나?ㅋ 님도 훌훌 털고 더 늦기 전에 봄빛을 즐기시길 빕니다.

kimji 2009-04-27 23:12   좋아요 0 | URL
(저도 님의 글 늘 읽어요. 님의 글이야 말고 단정해서 댓글 달 엄두도 못냈는걸요! 제가 해야 할 말을 님에게 뺏겼으니 억울합니다^^)

느티나무 2009-04-28 08:57   좋아요 0 | URL
아이고, 무슨 말씀을... 저는 빈 말씀이 아니라니깐요. 부럽기도 하고요, 읽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BRINY 2009-04-2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컸네요

느티나무 2009-04-27 17:52   좋아요 0 | URL
매일 보는 저는 왜 이렇게 안 크나 싶은데, 가끔 보시기엔 제법 크는가 봅니다.^^ 지난 4월은 감기로 워낙 고생을 했던지라, 그나마 조금 붙어 있던 살도 다 떨어져 나가고 가죽만 남았습니다.(좀 불쌍합니다.)ㅠㅠ
 

 

   전교조 주최로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열린마당에서 열린 전국교사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일제고사 거부 교사들에 대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 2000여 촛불 "해직 선생님을 제자 곁으로"/2008.12.20/오마이뉴스

   사는 게 왜 이렇게 피곤한지... 왜 이 정부는 나를 서울로 불러 올리는지... 내 사는 것도 잘 감당이 안 되는데, 왜 추운 길바닥에 앉아 "부당징계 철회! 일제고사 중단!"를 외쳐야 하는지... 참, 앉아 있으면서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아~ 오늘 서울은 무지 춥더라. 서울 사람들 다 우째 사는가 모르겠다. 하긴 집회 끝나고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걸어오는데, 바지가 쨍,하고 얼더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후다닥 뛰다시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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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12-21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데 고생하셨네요.
미쳐도 너무 미쳤지요.
서울로 사람을 불러 올리고 말입니다. ㅠㅜ

느티나무 2008-12-22 10:14   좋아요 0 | URL
역시 미췬 놈들의 특징은,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이더군요ㅠㅠ.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피곤할 거 같아서 원기 보충을 틈틈히 해 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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