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7일-여행 여섯째날 (MBC-ABC-MBC-데우랄리-히말라야-도반-뱀부)
  

   4시 30분에 깼다. 아니, 그 때쯤 눈만 뜬 것이다. 사실은 더 일찍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정확히 언제쯤 깼는지도 알 수 없었다.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아마 다섯 겹은 입었을 거다), 사진기 하나만 달랑 챙겨서 나섰다. 

   셋이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서 올라가려니 힘든데다가, 그 손전등마저 10분 정도 지나니까 불빛이 나가버렸다.(made in china) 잠깐이지만 처음에 길을 한 번 잃었던 적도 있었고 날은 아직도 깜깜했다. 게다가 새벽 바람은 어찌나 불어오는지 얼굴과 손이 몹시 시렸다. (낮은 기온 때문에 사진기의 배터리가 왔다갔다 했다.) 

   사진은 안나푸르나 봉우리 위로 해가 나기 시작할 때 찍은 것이다. 하늘은 보라색을 띄고 서서히 해가 나서 설산은 주홍색이다. 보라색과 주홍색의 환상적인 배치로 정말 몽환적인 느낌이 난다.

 
   서서히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MBC에서 ABC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는 역시 컨디션 난조와 이젠 고질병인 무릎 통증, 게다가 낮은 기온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ABC가 보이기 전까지는 죽을 것 같더니만 정작 ABC를 보니까 또 기운이 살짝 났다. 

   오르는 도중에 정말 목이 말라서 물 한 모금이 간절했다. 그런데 가볍게 갔다 온다는 생각에 우리 팀은 아무도 물을 챙기지 않았다. 무릎은 아프고, 목은 타고, 기운은 빠지고, 잠까지 살짝 와서 쉬고 있는데, 좀 뒤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 무작정 기다렸다. 조금 후에 ABC로 가는 분들에게 물 좀 달라고 했더니, 한 분이 500ml 생수통에 1/4 정도 남아있는 물을 주셨다. 그걸로 우리 셋과 그쪽 일행 두 분, 그러니까 다섯 명이 나눠 마셨다.(그분들도 이 물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어디를 봐도 산, 산, 산, 산이다. 만년설을 뒤집어 쓴 산들이 사방에서 나를 압박해 왔다. 아, 경외감이랬지? 경외감? 그런 생각은 안 들고 나 보고 저길 올라가라고 하면 난 차라리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설핏 스쳤다.

 

   엄청나게 큰 돌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서 있는데,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사방은 산들로 꽉 막혀 있다. 새벽 찬 바람에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가면 사진기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사진이야 제대로 찍히든 말든, 얼른 셔터만 눌러서 서너 번 찍고 손을 주머니에 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 이때만큼 장갑이 절실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ㅋ)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이 아침 7시 30분 경이다. ABC로 가는 도중에 벌써 날은 밝다 못해 하늘이 맑갛다. 이 사진의 오른쪽이 올라올 때 이정표로 삼았던 안나 푸르나 사우스와 히운출리가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히운출리와 마차푸차레 사이로 난 계곡을 따라와서 히운출리를 끼고 돌아서 드디어 히운출리 뒷편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방은 산 밖에 보이지 않을 수 밖에!


   이 곳은 우리가 새벽에 올라왔던 곳, MBC 방향이다. 여기서 보면 MBC 방향으로 저 멀리 마차푸차레가 바로 보인다. MBC에서 ABC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거리. 약 1시간은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이고, 나머지 1시간 정도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완만한 길이다. 평지라서 금방 걸어올 것 같지만, 이곳은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몇 걸을 걷고나면 숨을 헐떡이는 곳이다. (다른 사람은 안 그랬는지 몰라도 내 경우엔 그랬다. 이런 광고가 있었던 거 같은데!)


 

    WELCOME TO ANNA PURNA  BASE  CAMP  4130MTRS.

   와, 여기는 무려 4130미터다. 트레킹을 하면서 동행들이랑 4130m(이상)를 올라 본 한국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런 얘기를 했었다. 1%, 2%, 10%......?  

   사실, 이름은 안나 푸르나 베이스 캠프지만 실제로 안나 푸르나를 등정하기 위한 베이스 캠프는 이곳에 차리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이곳과는 반대편인 북쪽에 베이스 캠프를 차려서 등정을 시도한다.(이번에 안나 푸르나 등정을 시도한 오은선 씨도 그랬다.) 그럼 이름은? 초창기에 등정대들이 이곳에 등정을 위한 베이스 캠프를 차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간판은 '환영한다'지만, 나는 사실 내려오면서 찍은 사진!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얼른 내려가서 몸을 녹이고 편하게 쉬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차서 좋은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글을 쓰는 요즘에야, 많이 아쉽다.   


   이젠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와도 작별이다.  사진으로 봐도 햇살이 가득하다. 대부분의 롯지는 저렇게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바람만 불지 않으면, 날씨가 좋은 오전에는 야외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기에도 좋다. ABC에서 돌아와 칩스로 늦은 아침을 먹고 텅 빈 숙소에서 얼쩡거리다가 드디어 내리막길을 걷다.  

   내리막길을 걸으니 무릎의 통증이 훨씬 덜하다. 속이 울렁거리는 건 여전하지만 이것도 밑으로만 내려가면 점점 나아질 것이니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내가 올라갈 때 내려오던 사람들처럼 나도 이젠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아, 어쨌든 오늘 밤은 뱀부에서 잠들 것이고 지긋지긋하던 울렁거림도 끝이다.


   계곡 사이로 햇살이 쏟아진다. 다시 아침의 추위가 까마득한 옛일 같다. 이 정도면 가을 등산용 티셔츠만 입어도 연신 땀이 난다. 확실히 내리막길은 속도가 빠르다. 조금 걸어나왔나 싶은데, 벌써 MBC는 보이지도 않는다.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지금 정도의 속도라면 넉넉하게 뱀부에 도착할 것 같은데......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일행인 은영 씨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서 뒷걸음질로 급한 경삿길을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저 물이 흘러내리는 윗쪽은 눈에 덮혀 있는 게 틀림 없을 것이다. 눈이 녹아서 만들어진 폭포! 그러나 그 흔한 이름이 없다. 왜냐하면 조금만 둘러봐도 저런 폭포는 널렸으니까. 오죽하면 4,5000 미터의 산들도 대부분 이름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그 정도는 그냥 언덕! 사진과는 달리 눈으로 보면 엄청나게 긴 폭포이다. 눈이 녹아 폭포, 폭포에서 다시 계곡, 계곡에서 모디 콜라(강)로 흘러갈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내려오는 길에 본 야생 원숭이. 뱀부 근처에서 본 것이다. 뱀부 주변은 이렇게 깊은 숲이라서 야생 원숭이가 살고 있다. 원숭이는 집단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저 원숭이 주변으로 여러 마리가 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원숭이는 동물원의 우리에 살고 있어야 하는데, 그냥 길가에 있는 게 무척이나 낯설었다. 

   뱀부 근처니까 이미 저녁 때가 거의 다 되었다. 나는 좀 서둘러서 빨리 내려와 뱀부에 도착했고, 한 10분 정도 있다가 포터인 비스누가 왔고, 다시 둘이서 10분 정도 더 기다려도 일행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6시가 넘었고, 해는 완전히 져서 발밑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걱정이 된 비스누가 짐을 놓고 길을 되짚어 올라갔다가 금방 일행(의주와 은영 씨)을 발견했는데, 이때 은영 씨가 비스누를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고 한다. 아니, 왜?

   뱀부에만 오면 좀 아늑한 저녁이 될 줄 알았는데, 완전 실패다. 왜냐하면 오늘 밤 뱀부에서 자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단체손님) 그래서 우리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롯지(서너 개의 롯지 중에서 한 두개만 영업을 하고 비수기에는 다른 롯지는 문을 닫음.)를 배정받았다. solar system hot shower는 이미 찬물! 씻기를 포기하고 촛불로 겨우 불을 밝혀 물수건으로 얼굴만 닦았다. 게다가 우리 일행에게는 이불이 두 개만 배정되었다.(이 때도 롯지 주인은 우리에게 no problem이라는 말을 연발했다.) 여자니까 은영 씨가 한 개. 침낭의 얇은 의주가 한 개. 난 그냥 침낭으로 버텨보기로 했다.(그러다가 사실은 추워서 잠을 한숨도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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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6일-여행 다섯째날(도반-히말라야-데우랄리-MBC)  

   역시나 도반에서 가장 늦은 출발! 나아졌으면 했던 무릎 상태는 별로 호전될 기미가 없다. 더구나 오늘도 아침 식사는 속이 울렁거려서 먹는 둥 마는 둥. 컨디션이 나빠도 밥은 잘 먹은 일행들의 걱정이 이어진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할 곳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마차푸차레  산 아래다. 그러니까 사진으로 보면 마차푸차레를 가로막고 있는 시커먼 산 하나를 돌아가면 되는데, 이게 여기서 보기엔 하나지만 돌아가면 나오고 돌아가면 또 나오는 신기한 구조라서 하루 종일 걸어야 한다. 

   여전히 아침 날씨는 좋아서 마차푸차레의 어깨가 훤히 보인다. 벌써 해발 2500m를 넘어섰으나 해가 나면 따뜻해서 조금만 걸어도 금방 땀이 난다. 잠시 쉴 때 지친 일행들에게 자주 했던 말 " 어쨌든 우린 오늘밤에는 MBC에서 자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내려와서 은영 씨가 이 말이 참 힘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에게 했던 말.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시간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고, 그러면 오늘의 목적지에서 쉬게 될테니까 가자구!  

   힌쿠동굴(Hinku Cave, 3100m)에서 우리의 포터 비스누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히말라야를 지나고 좀 오르막을 오르면 '힌쿠 동굴'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우리가 동굴하면 떠올리는 그런 곳은 아니고, 그냥 비박(Biwak) 정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멋진 조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여기서 쉬는 것 같다.  

   우리 포터는 비스누라는 이름의 22살 청년으로, 지금 대학생이란다. 포터는 직업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네팔리치고는 상당히 키가 컸고(그래서 배구선수로 활동했다고 자랑했다.) 말하는 걸 좋아해서 의주랑 늘 붙어다녔다. 그러면서 은영 씨를 좋아해서, 영어가 서툴고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는 은영 씨에게 계속 농담하고 장난을 쳤다. (나랑은 그닥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 우리 포터는 열혈 청년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경험을 더 쌓아서 가이드가 되고, 가이드로 더 돈을 많이 벌면 자동차를 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차로 운전사를 하면서 결혼도 할 거라고 한다. 물론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가고 싶다고 한다.

   참고로 네팔은 자동차가 엄청나게 비싸다. 자동차에 100-150%의 세금이 붙는다고 하니, 한국에서 수입하는 중고 자동차도 가격이 새차 가격을 넘어서는 건 예사다. 거기다가 전반적으로 물가 수준이 우리의 1/4정도라니까 상대적으로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무척 부유한 편이다. (진짜 왠만한 사람은 차가 없다.-'왠만한'이 어느 정도냐 하면, 낮술이라는 카페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도 아직 차가 없을 정도다.)


   역시 계곡의 중간쯤에 파란색 지붕이 보이는데 저곳이 데우랄리라는 곳이다. 어제 도반에서 멈춘 이후는 날씨 때문이었는데, 아마 도반 위쪽에는 어제 눈이 제법 내린 것 같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이곳에서 준비해 간 아이젠이나 스패츠를 꺼낸다. 그러나, 우리는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아서 가져간 게 없으니 그냥 그대로 갔다. 

   오늘도 고산 증세인 속이 울렁거리는 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고산 증세에 대비해서 다이아막스라는 약도 하루에 한 알씩 먹었는데도 효과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오늘은 무릎 관절을 연결시켜주는 아래 위쪽의 근육통 때문에 다리를 굽히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정말 산소가 희박한 것인지 조금만 빨리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이제 저곳, 데우랄리만 지나면 바로 MBC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MBC까지 오르는 길은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 산장의 입구에서 찍은 사진. 와, 진짜 이곳까지 걸어온 게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었는데 아침에 했던 자기 예언대로 결국 여기에 왔기 때문이다. 이 산장 입구까지 왔을 때는 정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정말 내가 여기에 왜 왔던가?를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오후가 지나니 이곳은 날씨가 흐리다. 오전에 히말라야를 지나올 때만 해도 맑았으나, 늦은 오후에 MBC에 도착하니 구름이 몰려들었다. 이곳의 기온은 정말 우리나라의 한겨울과 비슷했다. 오늘의 출발지인 도반은 '꽤 날씨가 쌀쌀하네. 진짜 겨울이 온 것인가?'이 정도 느낌이라면 '오늘 갑자기 한 겨울이 되었네'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 사진은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 숙소에서 올라온 길을 배경으로 찍은 것이다. 막바지엔 사진기를 꺼내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로 지치고, 날씨가 추웠다.

   결국 저녁도 못 먹고 말았다. 도저히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스스로, '이거 안 먹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시도해 보았으나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코에서 먼저 알고 뇌에서 신호를 보내 입을 벌리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나 보다. 결국 거의 한 입도 못 먹고 콜라만 겨우 입을 대다 말았다.

   침낭을 펴고 누워 있으니 일행들이 불러서 식당으로 갔다. 난방이 전혀 없는 숙소와는 달리 식당은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일행들이 1인당 100Rs씩인 난방을 켜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거기서 모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른 팀도 고산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끼리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것과 앞으로의 일정 등을 다시 점검하고, 내일 ABC로 올라갈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ABC에 다녀올 때 포터는 이곳 롯지에 남기로 했다. 어차피 갔다가 다시 MBC로 내려와야 하니까 짐을 들고 갈 필요가 없을테니 말이다. (우리끼리는 포터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마르지 않은 빨래를 가스불에 말리며 온기가 있는 식당에서 늦게까지 버티다가 뜨거운 물한 통을 사서 나오는데, 우와, 정말, 세상에나, 하늘에 별이, 별이, 별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이었다. 밤하늘이 빽빽한 별 때문에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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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02-1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 많으셨네요. 그래도 저런 풍경과 밤하늘 가득한 별을 볼 수 있다면, 근처라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느티나무 2010-02-17 12:24   좋아요 0 | URL
제가 별 것도 아닌 일에도 조금 징징거리는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지나고 보니까 좋았는데, 그 순간에 잘 못 느낄 때도 있었답니다^^;;
 

2010년 1월 25일-여행 네째날(촘롱-시누와-뱀부-도반)  

   촘롱의 아침! 역시 날씨가 맑다. 일어나자마자 숙소 앞 마당에서 만년설을 감상하는 사람들. 저쪽 산위에서부터 해가 나기 시작했다. 날씨는 상당히 쌀쌀해서 두꺼운 파카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아침엔 이렇게 맑았는데, 이날 오후에도 잔뜩 흐려져서 더 올라가기 싫을 정도였다. 말간 하늘에 또렷하게 보이는 설산은 점점 경이감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왼쪽에 앉아 차를 마시는 두 남자는 작년 9월부터 아시아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일본인이다. 이들은 아마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에 앞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리라.(보통 트레커들의 보편적인 패턴이다.) 근데, 우리 일행(초록색 파카와 모자쓰고 앉은 사람)은 아직 밥도 안 먹은 것 같다.(우리 팀은 비교적 출발이 늦은 편!)  

   오늘은 저 설산을 바로 올려다 볼 수 있는 곳까지 갈 예정이다.  

   어제 저녁에 본 산의 모습을 아침에 보면 이렇게 조금 더 명징하게 볼 수 있다. 8시 반에 출발하자고 전날에 얘기하지만 항상 출발은 9시 전후! 침낭 속에 있어도 난방이 안 되는 곳이라 새벽이면 잠을 깰 수 밖에 없지만, 밖으로 나오기가 더욱 싫어서 자꾸 꾸물거리게 된다. 그러니까 식사가 늦어지고, 출발도 당연히... 늦다. (대신 우리는 다른 팀들보다 걸음이 좀 빠른 편이라 1시간 정도 늦게 출발해도 저녁에 도착은 비슷비슷하게 했다.)

   어제부터 시큰거리던 무릎이 아침이 되니 좀 낫지만  이것으로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 외에도 탈진 증세는 완전히 없어졌지만, 속이 울렁거려서 음식을 못 먹는 건 여전하다.(비위가 약해서 일수도 있고, 고산 증세의 일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우리는 가야하니까 그냥 가는 것이다.(한국에서부터 입고 와 사흘 내내 짐이 된 페딩점퍼와 작은 가방은 과감하게 이곳 숙소에 맡기기로 했다.)


   촘롱은 이곳 트레팅 주변의 산 속 마을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마을 중 하나이다. 처음 숙소에 도착했을 때 산 정상의 너른 분지에 둥그렇게 모여사는 마을을 예상했던 우리는 무척 당황했다. 적어도 숙소에 도착하면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 답게 좀 북적대거나 아니면 숙소에서 내려다보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와는 딴 판이었으니까.

   인터넷에서 촘롱이 아주 큰 마을이고, 학교 환경도 다른 곳보다 좋아서 산 속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좀 멀어도 촘롱에 있는 학교를 보내고 싶어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촘롱에 오면서 내심 기대를 좀 했었다. 꼭 학교에 들러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봐야지, 가능하면 선생님도 만나서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잠시 놀 수도 있지 않을까?, 등 혼자서 별 생각을 다 하면서 왔다. 

   그 전날 숙소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이 근처에 학교가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숙소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숙소에서 출발해서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 마을의 중간쯤에 오니 정말 '작은' 학교가 하나 보였다. 아직 등교하기에 이른 시간(이 때가 9시 반쯤)이라 학교는 텅 비어 있으니 우리끼리 사진을 찍기가 좋았다. 

   학교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secondary School이라고 나와 있으니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정도의 학교일 듯 싶다.  

   소박한 교사(校舍)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슬슬 아파오는 무릎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데 제법 기다렸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교실에 들어가 허름한 책상에서 수업하는 놀이도 해 보고 했지만 아이들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휴일이나 방학인가보다 생각하면서 학교를 돌아나왔다. 학교를 나와 집안 일을 돕는 아이를 보자 우리 팀의 포터인 비스누가 네팔어로 물으니, 오늘부터 약 열흘간 방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어제만 해도 '지누단다'쪽으로 올라오다가 사울리 바자르쪽으로 학교 가던 초 중학생들을 길에서 많이 만났는데... 하필 오늘부터 방학이라니! 좋은 기회를 놓쳤다 싶다. 네팔 아이들에게도 낯선 사람(외국인)을 봤을 때 수줍어하는 특유의 표정이 있었다. 순박하면서도 부끄러워하고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그 표정! 늦었다며 논두렁 밭두렁길을 냅다 달려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학교 교문에 들어서서 산을 바라보면 이렇다. 야트막한 담 아래는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길인데, 만약 저기서 공놀이를 하다가 담 너머로 넘기면?ㅋ 최악의 경우 300m 아래로 내려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ㅋ

   '작은' 학교(여기서는 아주 큰 학교)에 다행히 운동장은 없고, 교문 앞으로 난 마을길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작은 공터가 하나 있는데 배구 네트와 농구 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걸 보니 아마 그곳이 운동장인가 보다.(여기는 넓은 평지를 확보할 수 없으니 축구는 어려울 테고, 공이 잘 튀려면 바닥이 평평해야 하니 농구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주로 배구를 하고 논다. 직접 본 아이들의 배구 실력은? 장난이 아니다.-브라질 동네 아이들의 축구 실력을 보고 놀라는 것과 비슷할 듯. 다른 이야기지만, 그런데 왜 네팔이 배구를 잘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을까? 다른 이유들도 많이 있겠지만, 아마도 체격이 너무 작은 것도 큰 이유가 될 것 같다.)


   촘롱 마을의 전경이다. 사진 왼쪽의 가장 위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드문드문 이어진 집들을 통과해서 반대편 산으로 올라섰을 때 비로소 '촘롱'이라는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역시나 엄청난 계단식 논밭이 산비탈에 펼쳐져 있다.

   촘롱에서부터 시누와라는 곳까지는 1시간 정도를 계속 내려와서 다시 1시간 이상을 계속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사실, 공포감은 촘롱에서 내려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하염없이 내려가면 다시 그 이상을 올라가야 할 게 분명하다는 사실과 지금 내려간 이 길을 돌아올 때 힘들게 올라와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 내려가는 길에서 두려움이 들었다.  

   그런데, 여행다니면서는 좀 이런 생각 안 하고 살면 안 될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이런 생각만 하다보면 괜히 느긋하게 내려가는 즐거움은 즐거움대로 놓치고 올라올 때 고생하는 것도 달라지지 않고... 참, 눈앞의 행복은 내 발로 차버리고 달라지지 않을 미래만 걱정하고 있으니 여간 어리석은 게 아니다.


   이제 시누와에서 점심을 먹는데 트레킹 내내 우리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는 마차푸차레는 아직까지 분명하게 보였다. 전체적으로 일행들의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 시누와까지 오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포터와 의주는 앞서서 잘 걸어나가는데 나와 이은영 씨는 무릎 때문에 속도가 잘 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촘롱-시누와-뱀부-도반-히말라야'까지를 하루 코스로 잡는다. 그래야 다음날 '히말라야-데우랄리-MBC-ABC'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산증세만 심하지 않다면 ABC에서 자고 일출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일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다 보니 시누와에서 점심을 먹을 정도로 전체적인 일정이 좀 늦었다. 물론 시누와부터 뱀부, 도반까지는 좀 평탄한 길이라고는 하지만, 도반에서 히말라야까지는 고도를 꽤 높여야 하는 길이니 힘들 것이다. 의논 끝에 도반까지 가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음식 때문에 힘들고, 무릎 때문에도 고생했지만, 말처럼 시누와 뱀부를 거쳐 도반까지 걷는 길은 좀 편했다. 더군다나 밀림처럼 햇빛이 잘 들어오지도 않는 길이 계속 이어지고 중간중간에 포터가 야생원숭이며, 네팔의 특산품으로 유명한 석청을 소개해줘서 지루하지 않게 잘 도착했다.  

   촘롱에서 같이 출발했던 여러 팀 중 반은 히말라야까지 올라갔고, 반 정도는 도반에 남았다. 우리도 물론 도반에 남았다. 도반에 도착한 시간도 꽤 늦었을 뿐 아니라 날씨가 잔뜩 흐려서 도반에 도착하기 전에는 제법 눈발이 날렸기 때문이다. 

   도반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으니 전체적인 일정을 수정했다. 다음날은 '도반-히말라야-데우랄리-MBC'까지! 새벽에 일찍 출발해서 MBC-ABC로 가서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게 좋겠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밤이 되니까 다행히 날씨는 맑아져서 눈은 내리지 않았으나, 입맛이 없어서 거의 밥을 먹지 못한 것이나 무릎의 통증은 더하다. 따뜻한 물을 침낭 속에 넣어 무릎에 끼고 있으니 좀 나은 것 같지만 이것도 내일 좀 걸어봐야 알 일이다. 무릎이 아파서 이런 저런 잡생각이 많다보니, 도보여행 4번, 하프마라톤 완주, 지리산 종주, ABC 트레킹... 이젠 이런 활동은 접어야 할 나이가 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좀 서글펐다.

   도반의 숙소에는 네덜란드인 커플, 프랑스인 커플, 일본인 두 남자, 네팔인 포터, 우리팀이 섞여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밤을 보내기도 했다. (난 말을 잘 못하니까 주로 듣는 쪽! 은영 씨가 가져온 김을 이들에게 돌리니 모두 맛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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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4일-여행 세째날(사울리 바자르-지누단다-촘롱) 

    

   첫째날 숙소에서 일어나니 보이는 풍경. 와, 마차푸차레다. 마차푸차레는 네팔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세 산 중 하나다. 아직까지 인류가 정상에 올라보지 못한 산. 높이는 해발 6993m. 1950년대 영국 원정대가 정상 부근 50m까지 접근한 적 있으나 등정에 실패. 이후 네팔 당국에서 마차푸차레의 입산허가를 내 주지 않는다.(참고로 8000m급의 산을 오르려면 입산허가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네팔 당국으로서는 꽤 짭잘한 수입원을 포기하는 셈이다.) 

   마차푸차레의 뜻은 '물고기 꼬리'. 그래서 영어로 그냥 'fish tail'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 포카라가 꽤 이름난 휴양 도시로 명성을 떨치는데는 맑은 날 포카라의 페와(Fewa) 호수의 수면에 저 아름다운 마차푸차레의 모습이 비치는 것도 단단히 한 몫을 한다고 말한다.(포카라에서는 그런 장면을 찍은 엽서, 달력, 사진이 무수히 많다. 물론, 환상적이다. 난 포카라에 있는 동안 직접 그 장면을 보지는 못 했지만!)  

  

   숙소를 나와서 UP바자르를 거쳐 평탄한 산허리 길을 돌아나오니 드디어 안나푸르나 산맥의 산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안나푸르나 사우스(7219m) - 히운출리(6441m) -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연결된 히운출리의 산허리를 돌아들어가야만 이 트레킹의 도착지인 ABC가 나오기 때문에 ABC에 도착하면 우리는 설산에 빙 둘러싸일 수 있다. 

   히운출리는 역시 네팔인(구릉족)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산 중 하나이고 특히 북서벽은 히말라야 산군에서도 등정하기가 가장 어려운 코스로 꼽힌다. 북서벽을 통한 정상 등정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적을 뿐더러 극소수만이 성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2009년)가을인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우리나라 원정대가 조난 사고를 당한 소식을 언론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는데, 바로 히운출리 북서벽 루트를 통해 등정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두 명이 실종되고 만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보기엔 참 멋진데, 정작 저기에 도착해 보면 또 어떨지... 기대와 걱정이 묘하게 교차하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저 위의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 두 시간을 걸었다. 이제는 점점 설산이 눈에 담겨온다.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의 안나푸르나(8091m) 남쪽에 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의 모습은 푸근하기보다는 오히려 장엄하다. 이제 슬슬 오후가 되니 사우스와 히운출리 주변으로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ABC 트레킹 루트의 산들은 항상 오전에는 청명하다가 오후만 되면 햇볕에 달궈진 지표면에서 구름이 만들어져 올라와 날씨가 흐렸다. (그러니 베테랑 가이드일수록 그날 오후의 날씨 예측은 잘 하지 않는다.)

 

   산을 바라보면 멋있고 좋기는 한데, 우리가 저기까지 가려면 걸어야 한다. 그것도 한 걸음씩! 아침을 바나나 팬케이크만 달랑 먹고 나섰더니 벌써부터 기운이 하나도 없다. 일행은 나까지 포함해서 모두 넷이다. 맨 앞에 동행자인 의주가 앞서고 하루 사이에 절친이 되어 버린 -의주가 우리 중에선 제일 영어를 잘 하니까-우리의 포터 비스누(22살), 그리고 경유지인 방콕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대구 아가씨 이은영 씨(20대).(혼자 해외여행을 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앞으로의 여정이 무사할 것인지 조금 걱정스러웠다.) 아무튼 우리는 여행 내내 사진처럼 따로 또 같이 걸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다랭이논이다. 이곳도 산지가 많은 지형적 특성상 저런 다랭이논밭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다랭이 논으로 꽤 유명한 경남 남해군 남면의 가천마을(다랭이 마을)이나 지리산 자락의 연곡사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계단식 논밭과 견줄 수 있을 정도다.  

   항상 우리나라의 다랭이논을 이야기할 때마다 자연스러운 곡선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래서 그 자연스러운 곡선미는 우리나라의 것만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해 왔는데, 여기 와서 보니 우리나라의 다랭이논이랑 똑같은 모습이라 더욱 놀랐다.

  
   앞에 보이는 다랭이논밭을 일군 산을 돌아나와서 찍은 사진인데 이곳을 보면 우리가 알 고 있던 다랭이논밭의 스케일을 넘어선다. 사진의 오른쪽 위로도 끝없이 이어진 논밭~!! 아마도 수백층이 될 것 같은 엄청난 규모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니 네팔 사람들의 저력이 확 느껴졌다. 누구나 네팔이라는 나라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나 네팔리들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이룩한 이들의 삶터를 보라! 저들이 지금 맞닥드리고 있는 온갖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과는 상관 없이 수 천년을 일구어 온 저 삶터의 아름다움에 네팔리들의 지혜와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산을 돌아와서 다른 산에 일구어 놓은 다랭이 논밭. 산 전체의 한 면이 전부 다랭이 논밭이다. 트레킹은 산 중턱으로 난 작은 길을 끝없이 걸어가는 여정이다. 이 사진을 찍은 곳은 노천온천으로 유명한 지누단다의 입구쯤인데 사진의 오른쪽 끝에서부터 급격히 내려가서 작은 계곡을 건넌 다음 다시 산 중턱까지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지누단다라는 곳에 닿는다. 

   사실, 이 때부터 몸이 좀 힘들었다. 우선 무릎을 구부릴 때마다 근육통이 조금씩 심해졌다. 아마 지난 1년 동안 운동도 하지 않고, 바쁘다는 핑계로 체력 관리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예전에 좀 걸었던 것만 믿고 난 괜찮을 거라는 자만에 빠졌기 때문이다.(역시 인생은 자만을 용서하지 않는다.) 또 아침을 너무 부실하게 먹었던 탓인지 약간의 탈진 증세를 보였다. 손발이 조금씩 떨리고, 갈증이 점점 심해지고, 고산증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속이 조금 미식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지누단다까지는 가야 점심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갈 수 밖에 없었다. 나마스떼호텔(게스트하우스)의 피자가 맛있었다는 인터넷 여행기를 기억해 두었기 때문에 나마스떼호텔을 찾아 주저 없이 피자를 주문했다. 그런데, 한참 후에 나온 피자에서 야크 치즈 냄새가 확 올라오는데 배고픔이 싹 가셨다. 일행들은 연신 맛있다면서 허겁지겁 먹는데, 난 겨우 두 조각 먹었나?(거긴 피자가 좀 작은 크기라 1인분이 8조각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감자 chips를 추가로 주문해서 몇 개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거의 세 시가 다 되었는데, 오늘 가야할 곳은 산 꼭대기에 형성된 큰 마을인 촘롱이라는 마을이다. 나마스떼호텔에서 앞산의 꼭대기를 보면 산꼭대기에 파란색 지붕의 집이 보이는데 오늘의 목적지이다.(눈으로 보면 금방 갈 것 같은데, 우리 눈이 엄청난 스케일에 적응하지 못한 착시다.) 무릎은 아프지만 어쨌든 저기까지 가야 한다.  


 

   숙소가 있는 촘롱에 도착해서 찍은 마차푸차레의 모습이다. 예상대로 저녁이 되니까 마차푸차레의 산허리 아래에는 구름이 쫙 깔려 있다. 이 모습을 보니 네팔인들이 신성하게 여긴다는 이 산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환상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더구나 해가 지면서 어둠이 서서히 깔릴 때는 'Fade out'의 환상적인 연출!




   마차푸차레 옆에 나란히 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히운출리에도 서서히 구름이 올라와서 산을 뒤덮고 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hot shower'를 한 다음에 2층 난간 앞에서 올려다 본 산의 모습이, 진부한 표현이지만 감동적이었다. 

   둘째날 중간쯤부터는 환경보호를 위해 이제 생수를 팔지 않는다. 끓이지 않은 물을 먹다가 혹시나 탈이 날까 싶어서 정수제를 준비했는데, 소독약 냄새가 심해서 좀 그랬다. 그러니 마실 물은 끓인 물을 숙소에서 사는 게 좋다.(당연한 이야기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비싸다.) 그러나 끓인 물(1L)을 사서 컵이나 병에 부으면 이물질이 둥둥 떠다닌다. 그러려니 하고 먹는 게 좋다. 만약, 이게 뭐지 하고 뚜껑을 열었다가는 더 먹기 찝찝할 수 있다. [참고로 내가 보온병-혹은 주전자-의 뚜껑을 열었을 때는 알 수 없는 부유물질과 함께 맨 밑바닥엔 밥알이 2개, 고추가루가 몇 개 보였다.]

   저녁을 먹기 전에 샤워를 했다. 숙소에 들기 전에 hot shower가 가능한지 물었더니 물론 대답은 no problem이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겠다고 했더니 주인이 물을 가져다 준단다. 알고 보니 조금 뜨거운 물 1L를 주면, 샤워장에 있는 양철통에 담아서 찬물을 섞어 쓰는 게 hot shower란다. 차가운 것을 무지 싫어하는 나는 최소한의 찬물만 섞어, 양치+머리감기+샤워까지 거뜬하게 해 냈다.(내 뒤에 누군가는 거기다가 빨래까지 하더라.) 역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난가 보다. 

   촘롱에 있는 우리 숙소에서 외국인 여행자들과 본격적으로 말문을 트게 되었다.(물론 난 영어를 거의 한마디도 못하기 때문에 옆에서 듣고만 있었지만...) 혼자 온 중국여자도 있었고, 일본사람도 두 명(남자) 있었다. 이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고 어울리게 되었는데, 국적이나 나이를 초월해서 편하게 얘기했던(?) 것 같다.  

   덕분에 둘째날은 좀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어 새벽에 깨는 횟수가 훨씬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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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3일-여행 둘째날(카투만두-포카라-나야폴-사울리 바자르)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의 아침이다. 이곳은 고층빌딩이 없다. 새로 신축하고 있는 건물(주로 게스트하우스)이 4-5층이다. 사진에서 보면 특이한 점을 볼 수 있는데, 불이 켜 진 곳이 없다는 점! 바로 전력 수급이 좋지 않아서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아직도 300달러 미만! 최근 아이티 사건 때문에 조사한 바로는 지진이 났을 때 피해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도시 1위가 바로 이곳 카투만두다. 실제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카투만두와 포카라, 어디를 가도 곳곳에 집을 짓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고, 그걸 볼 때마다 진짜 엉성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서도 4-5층까지 잘도 짓는다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아무튼 세상의 모든 아침은 적막한 가운데서 새소리와 함께 오는가 보다. 여기도 새들이 하늘을 정신 없이 날며 사람을 깨운다. 이 때 느끼는 거지만, 새들은 어디 있다가 아침에만 이렇게 몰려 나오는 것일까?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 정원은 약 3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예티 에어라인. 참고로 네팔에는 '예티'라는 이름이 아주 흔한데, '예티'의 뜻은 히말라야 산맥에 살고 있다고 믿는 '설인'라고 한다. (포터한테 물어서 들은 말이니 정확하겠지?)  

   비행기는 쌍발 프로펠러를 달고도 가볍지만 씩씩하게 도시를 왕복한다. 수하물 운반 시스템은 거의 100% 수동이다. 특이하게도 탑승을 하면 승무원이 귀마개(솜)와 사탕을 준다. 물론 중간에 차 한 잔도! 탑승 시간은 약 25분 정도.  

   아, 포카라로 떠날 땐 문제 없었지만, 카투만두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1시간 반 정도 연착올 했다. (뭐, 네팔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하더라 : "everything is O.K. No problem"을 실감하는 순간! 하기야 우리도 어쨌든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국제선을 탔으니 No problem이긴 하다.)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히말라야 산맥. 사실은 이 사진보다는 훨씬 더 웅장하고 감동적이지만, 사진 찍는 게 워낙 서툴다 보니 요런 사진을 올릴 수 밖에 없다. 포카라로 갈 땐 비행기 오른쪽에 앉아야 한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었던 지라 잽싸게 뛰어가서 창가쪽 자리에 앉았다.(참고로 네팔의 국내선은 지정석이 아니다.)  

   비행기가 보통 해발 7-8000m 정도로 난다는데 비행기에 앉은 내 눈높이에 딱 히말라야의 설산(雪山)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느낌. 저기 저 보이는 하얀 것이 원래는 뭉게구름이어야 마땅한데 구름 위로 산이 우뚝 솟아 있는 걸 볼 때 그 경이감.  

   저걸 봤을 때 내게 이번 여행의 단초를 제공했던 친구-1년 전에 벌써 다녀왔었다-의 말이 떠올랐다. 네가 ABC에 도착한다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음, 나는 일단 비행기 안에서 경이감은 느꼈으니, 이제 경외감만 느끼면 되는 것인가?



   여행의 중요한 준비 과정은 모두 건너뛰고 여기는 '나야폴'이라는 곳이다. 나야폴은 새 다리를 의미한다고 하니 이 다리가 동네 이름을 탄생시킨 주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다리는 세월 앞에 '새'라는 말을 잃고 낡아가고 있었다. 출렁거리는 다리를 지나 6박 7일 일정의 트레킹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이 계곡은 ABC 주변의 눈이 녹아서 흘러 내린 물이 모여 이룬 것으로 아래로 계속 내려가면 모디 콜라강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물은 정말 맑고 깨끗하며 또한 차갑고 시리다. 

   ABC까지 가는 일반적인 트레킹의 출발점은 이곳 나야폴과 페디라는 곳인데, 포카라에서 오기엔 페디가 가깝고, 나야폴은 더 먼 곳에 있다. 그렇지만 페디에서 출발하면 보통 나야폴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트레킹 기간이 2일 정도 더 걸린다고 한다.



   나야폴에서 사울리 바자르로 가는 길. ABC 트레킹은 저렇게 산 중턱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 게  대부분이다. 나야폴에서 바자르까지는 두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음... 사실인지는 몰라도 저 길을 넓혀서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수년째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조금씩 조금씩 기초공사를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ABC 트레킹은 처음에 산 기슭을 타고 힘들게 올라가서 능선을 타는 게 아니라 저렇게 산허리를 계속 감아돌듯이 걸어가는 것이더라. 4일 동안을 대부분 저런 산허리를 휘감아 돌아서 다음 산으로 옮겨가고 그 뒷산, 그 뒷산, 끝도 없는 그 뒷산! 그러고 보면 지리산이나 안나 푸르나나 시작은 동네 뒷산인 셈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쫄지 말자.ㅋ



   사울리 바자르 초입이다. 두 시간 반 정도를 거의 쉬지 않고 걸었더니 벌써 기운이 빠져서 마을이 반갑다. 사울리 바자르는 나야폴에서 올라오면 산 속에 있는 마을 중에서 거의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바자르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사진 속에 산 아래와 산 중턱에 희미하게 집들이 몇 채 보이는데 저곳이 마을이다. 시장이 있는 곳은 사진 중턱에 있는 마을로 추정된다.(시장이 열리는 걸 직접 보지 못했다.) 우리는 아래쪽에 있는 사울리 바자르에서 괜찮은 숙소(포터가 추천(?)한 게스트하우스)를 정했다.  

   마을 어귀의 풍경은 우리나라의 농촌과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한적하고 고요하다. 다만 겨울인데도 들판에 초록빛이 꽤 많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면 다른 것이다. 사실, 지금이 가장 추운 한겨울(1월)이지만 이곳의 날씨는 우리가 느끼기에 비교적 따뜻하다. 봄/가을용 등산티를 입고 걸어도 쉽게 땀이 나는 정도다. 햇빛만 있으면 일상생활을 하기엔 더 없이 쾌적한 상태다.(그러나 오후가 맑을 때가 많지 않다.) 그러니 겨울이어도 저런 작물(안남미로 추정되는 벼)들이 싱싱하게 자라는 것 같다.


 

   그린 밸리 게스트 하우스. 이름처럼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으로 푸른(?) 계곡물이 힘차게 흐른다. 이곳은 포터가 추천해 준 숙소로 짐을 풀고 대충 씻고 나서 저녁을 먹는데, 포터가 웨이터로 돌변했다. 우리는 순간 약간 당황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런 서비스를 하면서 음식값을 최대한 줄이거나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포터에겐 꼭 필요한 행동방식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저녁, Veg+Fried rice를  먹으며 일행들과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꿈만 같은 일정을 되짚었다.  

   네팔의 대부분의 숙소는 난방의 개념이 없다.(하기야 연중 대부분 난방이 필요 없는 날씨가 계속 되니까) 더더군다나 트레킹 도중에 있는 숙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나무 침대에 얇은 매트리스가 깔리고 그 위에 하얀 천과 낡은 베개가 전부다. 해가 지니까 아무런 할 일이 없어서 8시도 안 돼서 준비해 간 침낭을 펼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두꺼운 책도 한 권 가져갔으나 전기가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 밤새 뒤척이느라 밤을 꼬박 새고 말았다. 새벽인가 싶어서 시계를 봐도 11시, 12시, 1시, 3시... 참, 힘든 밤이었다. 다음날부터는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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