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6-17일, 학교는 개교기념일. 간단한 기념식을 하고 선생님들은 교직원 연수를 떠난다는데, 단체여행 알러지가 있는 나는, 처음부터 안 간다고 했고, 대신 학교에서 나랑 같이 지리산에 오를 사람을 물색했으나 실패. 결국 혼자 지리산으로 가게 됐다.
혼자 떠나는 여행! 딱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그냥, '여행'일 뿐. 더구나 등산이면, 누구랑 다녀도 힘든 건 마찬가지. 심심하면 가져간 신문 보고, 책 읽고, 멍하게 앉아 있고... 뭐든 할 게 있으니까 의외로 시간이 참 잘 간다. 혼자 다녀오니 생각이 좀 정리되는 것도 있고! 아무튼 지리산은 다녀오고 나면 좋다.
다녀온 길의 이번 일정표는 이렇다.
학교 출발[11시 40분] - 서부시외버스터미널 진주행 버스[12시 26분] - 진주시외버스터미널 중산리행 버스 [14시 00분] - 중산리 도착[15시 00분] - 매표소 입구 도착[15시 20분] - 산행 시작 [15시 35분] - 로타리대피소 도착[17시 15분] (1박) 로타리대피소 출발[08시 00분] - 천왕봉 정상 도착 [09시 40분] - 장터목대피소 도착[10시 30분] - 아침 겸 점심[11시 40분] - 세석대피소 도착[13시 20분] - 거림골 매표소 도착[15시 30분]
- 중산리 매표소에 도착했으나 기대했던 법계사행 버스는 태워주지 않았다.
- 미안한 얘기지만, 법계사 버스 기사의 얼굴을 보니, 맑은 얼굴이 아니다.
- 매표소 직원은 3시 이후 입산이 안 된다고 했으나, 예약을 했다니까 서둘러 올라가란다.
- 로타리대피소 직원들은 한가해 보였다.(내가 모르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 로타리대피소에 등산객은 나 혼자, 였다. 1,2층 독채로 쓰고 잘 잤다.(약간 추웠다.)
- 16일 이 날은 전국적으로 한파가 휘몰아친 날이다.(서울이 영하 12도라고 했다.)
- 17일 오후, 거림에 도착하니 가늘게 눈발이 날렸다.
- 4시 50분 버스가 안 올지도 모른다며 가게 주인이 청학동 삼거리까지 3km 걸어 가란다.
- 이미 산길을 13km 이상 걸어 내려온 나는 더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 20분을 걸어도 도로에 차 한 대 지나가지 않다가 겨우 만나 첫차가 경찰차 - '히치' 성공!
고즈넉하게 보이는 천왕봉과 그 아래 법계사(로타리대피소)
로타리대피소에서 읽은 책(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천왕봉의 정상석(12월 17일은 구름이 짙게 깔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장터목 가는 길(제석봉의 고사목들이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세상 천지 모두 눈꽃
장터목에서 세석평원으로 가는 능선길
세석 평원에 소담하게 자리잡은 세석대피소(가까이 가면 꽤 규모가 큰 대피소)
"오르막길이 힘들면 자꾸 올라가야 할 길을 재지 마라. 지금 당장 네 발이 디딜 한걸음만 생각하고 내디뎌라. 길게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올라온 만큼 또 내려가야 한다.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는 길이다. 결국은 혼자서 걸을 수 밖에 없는 길이다."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꽉 채우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니까 그냥 아무 생각도 없어지더라. 그냥, 그냥, 그냥 걸어 내려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