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산자연휴양림에서 맞이한 아침 

   운문산자연휴양림에는 잔설이 있었다. 진복이와 눈을 뭉쳐 놀기도 하고, 산책로를 걷기도 했다. 산책로를 내려오는 길에 미끄러져서 두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때마다 녀석을 안고 있었는데,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녀석을 다치지 않게 안게 되더라. 꼭 그럴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그냥 본능적으로!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찍은 사진. 숙소의 앞마당이다. 녀석은 지금 축구를 한다고 잔뜩 기대에 차서 내려오고 있다. 날은 무척 쌀쌀했으나 쌉싸름한 공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 

 

잔뜩 신난 표정의 녀석 

   이제 곧  축구를 한다고 자꾸 내려오겠다는 걸 말려서 사진 찍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저런 자세로 엉거주춤 서 있다. 그 전날 넘어져서 바닥을 뒹굴었던 옷이라 상태는 뭐 별로 안 좋지만, 그런 걸 알 리가 없는 녀석이다. 계속, "아빠, 이제 됐지?" 이러면서 내려온다. [요즘 녀석의 반말을 고쳐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아름답고 깨끗한 산림문화휴양관2

   최근에 지어진 건물 같은 산림문화휴양관 건물이다. 대개의 국립 자연휴양림들이 지어진 시기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인지라 다녀보면 비슷비슷한데, 이 건물은 조금 더 뒤에 지어진 것 같다. 조금 더 깨끗하고 건물도 예쁜 편이다.  

   다만 운문산휴양림만의 특징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었는데. 들어올 때 시설사용자 명단을 수기로 쓰게 하는 것 - 들어올 때 웃으면서 업무담당자에게 얘기했다. 국립휴양림을 제법 여러 곳을 다녀봐도 이렇게 쓰는 곳은 없더라고. 또 인터넷 예약할 떄 사용자 명단이 나오는데 굳이 이걸 쓸 필요가 없다고. 약간 놀라는 눈치? 고쳐지려나?  

   다른 하나는 숙소에 고무장갑이 없는 것! - 이것도 나갈 때 얘기했다. 여기 숙소에 고무장갑이 없던데...... 그러니 여긴 원래 없어요. 이러길래, 왜 없을까요? 있으면 편리할텐데...(마침 근무하시는 분이 여성이시기에) 혹시 집에서는 고무장갑 안 쓰십니까?  ................. 이것도 고쳐지려나? 

 

한바탕 공을 차고 나서 잠시 앉아 쉬는 중

   공을 차면서 신나게 놀았더니 금세 다리가 아프다는 녀석. 잠시 앉아 쉬겠다고 한다. 저 울타리겸 난간 건너편으로 산세가 그림 같았다. 

 

운문사 북대암을 바라보며

   운문산자연휴양림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운문사 경내. 왼쪽에 약간 나온 소나무가 운문사의 상징처럼 돼 버린 500년된 처진 소나무. 그러나 진짜 운문사는 가운데에 보이는 산 중턱에 북대암을 올라야 제대로 보인다.

 

범종루 앞에서 핫초코 한잔 마셨다

   주차장에서 범종루 앞에까지 오는데도 다리가 아프다고 온갖 핑계를 다 대던 녀석이 산문 입구에 있는 자판기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날씨가 제법 추웠던 관계로 결국 핫초코 획득! 달달한 코코아 맛에 빠져서 한 잔 쭉 들이키고 이제야 포즈를 잡고 서 있다. - 어디, 절 구경 좀 해 볼까? 

 

운문사 대웅보전 꽃살문

   운문사 대웅보전의 꽃살문. 언제나 꽃살문을 보면 조상들의 손재주와 정성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음 좀 더 좋은 카메라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살짝 했다. 내 사진기는 캐논 컴팩트형 IXUS 860 IS(흔히 말하는 똑딱이)  

 

운문사 대웅보전

   십 수년도 저 지난 오래 전 운문사 대웅보전에서 새벽 예불에 참여했었다. 대웅전에서 예불을 보는 스님들 뒤에서 나도 예불에 참여했었다. 그 때는 생전 처음 예불을 하는 것이라 어찌나 어색하고 신기하던지......예불을 드리면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 고요함과 경건함은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었다. 

 

대웅보전 앞 화단에 앉다.

   대웅보전 앞은 언제나 정갈하다. 진복이는 뒤에 있는 나무를 보면서 "모양 나무야?"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나무가 진짜 같지 않았나 보다. 사진기를 충전해 가지 않았더니 몇 장 찍지도 않아서 배터리가 나갔다. 그날따라 운문사가 더욱 깨끗해 보여서 사진을 더 많이 찍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은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직장에서, '약간 시니컬' 하다는 말을 듣는다. 정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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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12-15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고무장갑 안쓰는 사람 여기 있습니다요^^;;

느티나무 2010-12-15 10:32   좋아요 0 | URL
와~ 그럼 설거지를 맨손으로 하시는군요.ㅋㅋㅋ

양철나무꾼 2010-12-16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너무 깔끔하면 그게 또 불편하더라구요~
왠지 어떤 스님이 새벽같이 일어나 쓸고 닦고 했을 것 같아요.

저도 집에서 고무장갑 사용 안해요.^^

대문 사진의 저 녀석이 저렇게 큰 건가요?

느티나무 2010-12-17 21:57   좋아요 0 | URL
제가 어디 좀 다녀오느라 답이 늦었습니다. 운문사야 비구니 절로 그 손끝이 야무지기로 유명하니까요. 고무장갑 사용 안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네, 대문 사진의 녀석, 이제 곧 6살 됩니다.ㅋㅋㅋ
 

칠보산 자연휴양림에서

   올해 우리 가족은 자연휴양림을 순례하고 있다. 겨울 초입에 다녀왔던 칠보산자연휴양림. 이곳은 동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칠보산 중턱에 있다. 내 오랜 친구들인 준호네, 의주네가 함께 떠나서 더욱 즐겁게 다녀온 여행이었다. 사진은 다음날 아침산책을 떠나려고 숙소를 나와서 찍은 진복이 모습. 

 

산책로를 씩씩하게 걷는 진복

   진복이는 요새 달리기를 못해서 고민인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늘 달리기를 못한다고 푸념이다. 그래서 이렇게 산책할 때마다 열심히 걸으라고 격려하지만, 조금만 걸으면 다리가 아프다고, 업어 달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사진은 잠깐이지만 씩씩하게 숲속 산책길을 걷도 있는 진복이. 

 

축산항에서 정박중인 배에 오르다.

   영덕군 축산면에 있는 축산항은 식객의 배경으로 나오는 곳이라고 한다. 축산항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산책 겸 항구를 어슬렁거리다가 경매하는 장면도 보고, 정박 중에 배에 올라서 장난치며 놀았다. 

 

괴시리 전통마을 입구에서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는 길재의 고향이라고 한다. 여기에 잘 정비되고 아직 사람 냄새 그대로인 전통마을이 있다. 양동마을, 하회마을 처럼 큰 규모는 아니더라도 아담하지만 덜 붐비고(우리가 갔을 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전통마을다운 기분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떨어진 은행잎을 보며 바닥을 한껏 뒹굴어 보는 녀석이다.

 

전통마을 고가(古家)의 툇마루에서

   전통마을 툇마루에 앉아 짧은 겨울 햇볕을 쬐다. 겨울이라지만 그래도 볕은 볕이라 따뜻한 게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여러 사람이 사진을 찍고 녀석은 요리조리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 졌다. 나는 어떻게 컸나?  

 

어린이집 과학체험전에서

   고등학교로 치면 학교 축제 같은 건데, 어린이집에서 요 몇 주 전에 과학체험전이라는 이름으로 학부모 초대행사를 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열심히 준비해서 곳곳에 부스를 만들고, 다양한 과학 실험을 하며 아이들에게 체험을 하게 했다. 이곳은 액화 질소를 이용해 급속 냉동한 과자(꿈틀이)를 먹어보는 체험 활동! 

 

로케트를 타고 우주복을 입다.

   진복이보다 한 살 많은 6세반 아이들이 만든 로케트와 우주복을 입고 즐거워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세계의 여러 나라에 대해 배워서 국기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더니, 최근에는 별자리와 행성에 대해 배워서 계속 태양계 놀이에 빠져 있는 중이다.  

   이러면서 진복이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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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12-15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아이들은 볼 때마다 쑥쑥 자라는군요!

느티나무 2010-12-15 10:22   좋아요 0 | URL
^^;; 네 쑥쑥 더 컸으면 싶은데... 몸보다 입이 먼저 쑥쑥 자라는지라...이젠 말로 못 당하겠네요.
 

20100922 한가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다. 한복을 입어 그런가 모처럼 표정이 좋다.  

 

20100928 저녁 집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기에 담긴 사진을 정리하다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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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10-04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혹시 뒤에 있는 여인이 느티나무님?

느티나무 2010-10-04 08:38   좋아요 0 | URL
아직도 이런 분이 계시군요...<ㅠ.,ㅠ> 참고로 전 진복이 아빠입니다.^^

조선인 2010-10-06 14:10   좋아요 0 | URL
켁, 죄송. ㅠ.ㅠ

느티나무 2010-10-06 22:26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전 사진에 잘 등장하지 않죠! 제가 찍으니까요~

김현숙 2010-11-0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클수록 샘하고 판박이군요 ㅋ

느티나무 2010-11-02 22:56   좋아요 0 | URL
제가 이렇게 순진하게 생겼나요?ㅋㅋ 정작 저는 잘 모르겠어요. 가만히 봐도 별로 안 닮았는데~ㅠㅠ
 

   울진을 여행하는 동안 찍은 이진복의 모습 몇 장. 사진 찍는데 전혀 협조하지 않아서 이런 사진 한 장 나오는데도 몇 번이고 실랑이가 계속 되었다. 오랜 실랑이 끝에 사진을 찍게 되어도 사진기만 들이대면 얼굴이 굳어버리는 진복(이건 내 성격을 꼭 닮았다.) 게다가 자기도 사진을 찍겠다며 내가 들고 있는 사진기를 달라고 한다.(결국 한 번 땅바닥에 떨어뜨렸는데 다행히도 괜찮았다.) 결국 타협책으로 녀석이 모델이 될 때는 아내의 핸드폰을 쥐어 주어야만 했다.

20100924 울진 죽변항에 있는 '폭풍 속으로' 드라마 세트장 옆 해안 산책로에서

 

20100925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할아버지 소나무 앞에서 

 

20100925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입구에서 

 

20100925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아내와 진복

 

20100925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미인송과 함께 

 

20100925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에서 소나무를 가리키는 진복

 

20100925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속에서 

 

20100925 울진 불영사 대웅전 앞에서 

 

20100925 경상북도 민물고기 체험관 뒷뜰에 앉아서 

 

20100925 해가 지는 망양정에서

 

20100925 해가 지는 망양정에서

 

 20100926 울진 엑스포공원 "과일나무(진복이 말)" 앞에서  

 

20100926 울진 엑스포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좋아하다.

 

  20100926 자전거를 타고 사진기 좀 봐달라고 애원했더니...



20100926 울진 엑스포공원 안 아쿠아리움 옥상에서


 

20100926 울진 엑스포공원 향기치료관에서 몹시 피곤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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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0-10-03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력하신 결과, 좋은 사진 많이 찍으셨네요.

느티나무 2010-10-04 08:40   좋아요 0 | URL
에휴, 좋은 사진은요... 그런데 사진 보고 있자니 그 때 하던 실랑이가 자꾸 머리속에서 떠올라서 웃음이 실실 나네요.
 

2010년 9월 24-26일 

경북 울진 일대

9월 24일 : 덕구온천 - 죽변항 - 통고산자연휴양림 

9월 25일 : 소광리 금강소나무숲 - 불영사(계곡) - 민물고기체험관  - 망양정

9월 26일 : 통고산자연휴양림 - 행곡리 처진소나무 - 울진 엑스포공원 - 성류굴 

 

 사진으로 보는 여행의 발자취 

   동해안 작은 항구(울진군 죽변항)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드라마 세트장 - "폭풍 속으로"라는 드라마라는데,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던 사람들은 '우와'할 지 모르겠지만, 못 본 나나로서는 그냥 무감각하다. 오른쪽 건물이랑 그 옆에 있는 교회도 드라마 세트라고 한다. 그런데 묘하게 마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우리가 도착했을 때가 이미 해가 다 넘어가던, 약간 어둑어둑한 때라 그럴 수도 있겠다만... 

 

   드라마 세트장 바로 옆은 절벽. 우선 보기엔 운치가 있지만, 과연 저런 곳이 사람 살 곳이 되려나? 내가 아직 20대였으면,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 고 했을 지도 모르겠다만...이제는 좀 다르다. 좋은 말로는 철이 들었다,는 뜻이겠고, 나쁜 의미로는 꿈이 없는 것이겠지. 

 

   세트장 옆으로 해안산책로가 나 있는데 조릿대(산죽)가 길옆을 완전히 덮고 있어 더욱 운치가 있었다. 한 200-300미터 정도 되는 짧은 길이었으나 이 길 덕분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운 듯 했다. 조릿대 사이로 본 하얀 등대. 이미 등대는 불을 밝히고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통고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찾아 간 곳은 울진의 자랑,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이었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으로 가는 길은, 장관이었다. "만약"을 들먹이는 게 좀 미안한 일이지만, 만약 하루의 여유가 더 있었다면, 불영사 계곡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길의 입구에서부터 소광리 소나무숲까지 걸어갔다가 걸어왔을 것이다.  

   사진은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의 상징과는 같은 존재인 '할아버지 소나무'. 1982년 측정 당시의 추정 나이가 500살.(지금은 530살쯤?) 사진으로는 보통 소나무처럼 보이는데 직접 가서 보면 아주 늠름하다. 다른 곳에도 오래된 소나무가 많지만 이렇게 곧게 자란 소나무를 본 기억은 없다. 늙어도 숲을 지키는 수문장의 역할을 멋지게 하고 있는 소나무! 

 

   소광리 금강소나무숲길은 저런 늘씬한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호젓하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멀리서 보면 가는 듯 보여도 평균 100년 이상 자란 나무들이다. 길도 가파르지 않고, 가벼운 산책 수준! 기본 탐방로(미인송)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오는 데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숲에서 뿜어내는 맑은 향기(피톤치드)가 가득하다.

  

   소광리 숲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소나무. 그래서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미인송'이다. 높이는 30미터 이상, 수령도 350년 정도이다. 탐방로 거의 끝에 있다. 우리 가족도 여기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 왔다. 소나무가 정말 대나무 뺨 칠 정도로 곧다. 부럽다.

 

   탐방로 끝에서 내려가는 길의 모습이다. 오른쪽에 미인송이 우뚝 솟아 있고, 길은 알맞게 평탕하였다. 이 정도 길이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괜찮을 듯. 여기에 눈까지 온다면 정말 멋진 모습이 펼쳐지겠지만, 아쉽게도 10월 말까지만 개방한다고 한다. 그러니, 눈 내린 숲 속의 풍경은 상상만 해야 할 듯~!

 

   소광리에서 나와 들른 곳은 불영사 계곡의 화룡점정인, 불영사. 이곳은 불영사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 놓인 다리에서 본 계곡의 모습이다. 이곳에도 소나무는 모두 금강송이다. 게다가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도 모두 푸르다. 물에서도 숲에서도 맑은 기운이 넘친다.

 

   불영사. 佛影寺. 불영사 범종루 앞 연못에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연꽃은 이미 졌다. 그러나 연못에 비치는 범종각의 그림자는 마치 부처님의 그림자처럼 고요하고 맑다.  

 

   불영사 대웅전. 소박하지만 단아한 기품이 있다. 시끄럽던 목소리도 1km에 이르는 숲길을 천천히 걸어오다 보면 어느새 잦아들기 마련이고, 들뜬 마음도 드디어 불영사 대웅전 앞에 서면 차분해진다. 대웅전 맞은 편 건물에 퍼지고 앉은 자리가 마침 그늘이 졌다. 오래도록 대웅전, 텅 빈 앞마당만 바라보다.

 

   스님 한 분이 사진기를 들고 나와 잘 익은 석류를 찍는다. 사람들은 그런 스님의 모습이 흥미로운지 흘깃거린다. 스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나 관광지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요, 라는 걸 얼굴이 써 붙이고 다니는 것만 같은 아저씨 한 분이 스님과 사진기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멀찍이서 단풍나무 아래에서 스님이 사진 찍는 모습을 찍으려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둘의 이야기가 좀체 끝나지 않는다. 

 

   나는 예전에 돌탑을 보면 사람들의 욕망의 덩어리,라고 느껴져서 거북했다. 삶이 얼마나 힘들고 팍팍했으면 저리도 빌어야 하는 게 많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다가도 자기 욕망 덩어리를 아무 데나 저렇게 배설해 놓아도 되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으니(?) 저 돌들이 욕망의 덩어리가 아니라 눈물 덩어리라는 걸 알겠더라. 돌 하나하나에 그 만큼의 눈물이 담겨 있는... 눈물탑!

 

   불영사에서 꽤 오래 있었고 걸어나오는 길도 제법 긴데다가 이 녀석이 당최 걸으려고 하지 않아서 계속 업고 다녔더니 다리가 천근만근!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제대로 다 보고 가자 싶어서, 경상북도 민물고기체험관에 들렀다. 사진은 남아있지 않지만 알차게 잘 꾸며 놓았다. 규모로 보면, 해운대의 아쿠아리움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니 그런 기대는 접으시고... 진복이는 어린이용 미로 같은 탐험놀이에 푹 빠지고, 나는 닥터피쉬가 손가락을 무는 것이 신기해서 즐거웠다. 

   그리고 서둘러 찾아간 곳이 이곳 망양정이다. 관동팔경의 제일관문루라고 해서 관동팔경을 대표하는 곳이다. 울진답게 어디를 가나 울창한 소나무숲. 우리는 이미 소광리에 다녀온지라... 바닷가 주차장에서 망양정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 야트막한 언덕에 깔끔한 정자 한 채가 소나무숲 뒤로 보인다. 망양정의 일망무제를 기대했으나, 오랜 세월에 정자 앞 나무도 자라서 바다를 바라보는 내 눈길 위로 올라 와 있다. 

 

 

   망양정 오른 말이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가뜩 노한 고래 뉘라서 놀래관대 불거니 뿜거니 어지러히 구는지고. 은산(銀山)을 꺾어내어 육합(六合)에 나리는 듯, 오월장천(五月長天)에 백설은 무삼일고. 져근덧 밤이 들어 풍랑이 정하거늘 부상지척(扶桑咫尺)에 명월을 기다리니 서광천장(瑞光千丈)이 뵈는 듯 숨는고야. 주렴을 고쳐걸고 옥계를 다시쓸며 계명성(啓明星) 돋도록 고초 앉아 바라보니 백련화 한 가지를 뉘라서 보내신고. 이 좋은 세계 남대되 다 뵈고져···  

- 정철, "관동별곡" 중에서

   오늘은 망양정의 일망무제가 아니라, 반원을 그리며 대열을 이루고 있는 구름이 더욱 내 눈길을 잡아 끈다. 

 

   다음날 아침까지 넉넉하게 자고, 느긋하게 밥까지 챙겨 먹고, 통고산 산책로를 걸었다. 통고산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는 3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한다. 살짝 욕심이 났지만 진복이가 있으니 마음을 접고, 1.4km 정도의 산책로를 걷는다.  

   낮은 오르막길은 계곡을 따라 점점 깊어지고, 산책길이지만 제법 골이 깊은 지라 이끼와 버섯이 곳곳에 가득하다. 돌아오는 길은 아래쪽으로 계곡을 내려다 보며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인데 아직 다녀간 사람이 없었는지 사람의 자취가 없다. 오직 새소리만 간간히 들려올 뿐! 고요하다.

 

   불영사 계곡을 네 번째 지나면서 중간에 들른 사랑바위. 계곡 중간에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데 마치 두 사람이 서로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옆에 이 사랑바위에 대한 전설을 구구절절하게 적어놓았는데, 심드렁하다. 전설에 의하면 저 둘은 오누이란다.  

 

   울진군 행곡리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409호). 마을이 생겼을 때 심은 나무가 저렇게 자랐단다. 이제는 이 마을의 수문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싶다. 나이는 300살 정도? 소나무의 가지가 밑으로 축축 처져있어 특이한 모양이다. 울타리 안에 들어가서 나무를 안을 수 없을 정도로 줄기가 굵다.[참고로, 소나무가 지키는 이 마을은 "사랑한다 말해줘"라는 드라마 촬영지라고 한다.]

 

   나무의 비틀린 둥치. 거북이 등껍데기 같은 수피가 평생을 고달픈 삶을 살아온 노인의 깊은 주름살 같아서 마음을 여미게 한다. 이 나무가 지금껏 울진에서 보아온 금강송처럼 쭉쭉 뻗은 모습이 아닌 것은 바로 이 나무 아래서 살아온 이들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 보았다.

 

   울진엑스포 공원 안에 있는 조형물. 넉넉한 공원 곳곳에 이런 조형물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쓸데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만, 그냥 그날은 우리 농산물을 홍보하고 있는 캐릭터가 귀여웠다.(공간이 널찍해서 이런 게 있어도 촘촘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진복이는 신기했는지 연신 쳐다 보았다. 

 

   울진엑스포 공원 입구의 소나무숲 산책로. 아름다운 길이다. 이런 소나무 숲길이 공원 가장자리로 제법 길게 이어진다.  한마디로 공원은 무척 아름답다. 시골 동네의 그렇고 그런, 쌈지공원 정도를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을 무참히 깨버리는 꽤 큰 규모의 공원이다. 자연미는 덜 하지만 공원에는 보고 즐길 거리가 무척 많다. 자전거도 탈 수 있고, 농촌체험장, 작은 동물원, 아쿠아리움, 곤충박물관, 식물치료관, 전통놀이장... 그 밖에도 다양한 볼거리와 놀 거리가 있어 온종일을 이곳에서 보내도 충분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요일인데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만약에 부산에 이 정도 공원이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입구에서부터 주차전쟁에 저 산책로는 미어터질 것이 분명한데, 저기는 저 숲속의 의자에 앉아서 한가롭게 책을 보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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