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쌀한 ‘낙동’의 귀한 인연을 추억하며…….

                                                                  느티나무(15회 졸업생, 전 낙동고 교사)

 

낙동고 - 질기고도 아름다운 인연

   교지담당 선생님의 원고청탁을 받자마자 ‘쿨’하게 알겠다고 했을 땐, 어떻게든 그냥 쓰면 되겠지, 싶었는데, 쓰겠다고 말해 놓고 벌써 근 보름동안 손도 대지 못했다. 어떤 날은 두 시간도 넘게 컴퓨터에 앉아 있어도 기껏 서너 줄 써놓고 딴 짓만 하기 일쑤! 그것도 다음 날이면 마음에 안 들어서 지웠으니 결국 한 줄도 못 썼다. 안 되겠다 싶어서 담당 선생님께 못 쓰겠다는 문자를 보내려는데, 소심한 나는, 못 쓰겠다,는 말 대신에 시간을 좀 더 달라는 내용을 덜컥 날리고 말았다. 이런 젠장! 이젠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쓰긴 써야 이 마음의 돌덩이가 내려갈 것이다. 에휴, 쓰자. 한 번 써 보자.

   나와 낙동고와의 인연. 흔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보통 인연은 아닌 듯싶다. 1988년 3월 입학해서 1991년 2월까지 낙동고를 다니는 동안은 그야말로 코흘리개(?) 어린애가 온전히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 어른이 되는 성장통의 시간이기도 했고, 지금의 내 생각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귀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곳이며, 힘든 인생길을 오래도록 함께 걷는 멋진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았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는 2005년 3월에 낙동고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돌아왔다. 정말 감개무량한 기분이었다. 탕아(?)의 귀향(歸鄕)이 이런 기분일까? 그 때부터 4년 동안 후배들인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담임교사로, 국어교사로, 동아리교사로 여러 인연이 만들어졌고 학교를 떠난 지금도 일부는 그 인연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또 낙동고에 있었던 지난 4년 동안 나에게 귀감이 되는 동료교사들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아마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하고 겸손했더라면 지금보다는 괜찮은 ‘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9년 3월, 나는 낙동고에서의 4년 근무를 마치고 인근의 학교로 옮겼다. 그러나 새 학교에서도 자주 1년 동안 같이 수업했던 낙동고 3학년들의 풍문도 듣고, 동네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가끔은 같이 근무하면서 좋아했던 선생님들과 연락이 닿기도 한다. 더구나 오늘은 ‘낙동’에서 맺은 인연을 생각하며 ‘낙동’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밤을 새고 있으니, 나와 ‘낙동’과의 인연은 참, 보통 인연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이제부터 내가 쓰려는 내용은 낙동고에서 보낸 그런 달콤하면서도 행복한 추억-당연히 좋은 기억이 대부분이지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껏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않았던 내 마음 한곳의 아픈 기억이고, 그 아픈 기억 때문에 한동안 무기력과 허탈함에 빠졌던 우울한 내용이다. 이 글의 내용이 담당 선생님의 청탁 의도에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낙동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맨 먼저 떠오르는 어떤 사건! 그 사건을 빼고 다른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뭔가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내 보려고 한다.

   사족이지만, 이 사건은 시간상으로 보면 아득한, 근 20년이나 된 옛날에 일어난 일이지만, 요즘 뉴스와 지상(紙上)에서는 이와 비슷한 사건을 자주 볼 수 있어 나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1990년, 낙동고 3학년,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내가 고 3이었으니까, 음, 그 때는 1990년이었다. 나 역시도 정신없이 공부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두 달 앞으로 다가온 학력고사를 앞두고 선지원(先支援)할 대학교를 고르기 위해 일주일 간격으로 네 번 치는 배치고사는 한 달도 남지 않았기에 모두들 마음에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해는 수험생도 역대 최다라고 떠들어대서 수험생들 모두가 다른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날을 10월 9일로 기억하는데(아니면, 10월 3일이었을 것이다.), 휴일이었지만 학교에 나와 자습한답시고 교실에 앉아 있었는데 그 날은 여느 휴일과 학교의 분위기가 확 달랐다. 고등학교 정문 근처에 전투경찰부대가 한동안 쫙 깔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고 3이던 그해는, 6월 항쟁이 있던 그 다음해였으니까 전투경찰이야 텔레비전 속에서 익숙했지만, 이런 변두리 고등학교에서 전투경찰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얼마 있다 전투경찰 부대가 사라지자 술렁였던 학교도 이내 아무 일 없는 듯이 평온해져서 나는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던졌다.

   다음날, 등굣길도 여느 날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우리 반 교실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모두들 모여서 웅성웅성. 내 책상에 가방을 놓고 앉기도 전에, 아이들의 어깨 너머로 들리는 소리 -- OO이가 잡혀갔다더라. 아니다, OO이는 집에 있는데 학교를 못 나온다고 하더라. 학교에서 못나오게 했단다. 교육청에서 퇴학, 아니 제적시키라고 학교에 요구했대. -- OO이는 우리 반 반장이었고, 나와는 단짝은 아니었지만, 꽤 친했던 친구였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린가? 아니, 왜? -- OO이가 부고협(부산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 활동을 했는데, 어제 부산대 도서관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대. 교육청에서는 고등학생이 (허락 없이) 집단행동을 하고 또 OO이가 읽은 ‘성명서’의 내용도 문제 삼아서 징계하기로 했다더라. 어제 전경이 우리 학교에 온 건 그 ‘성명서’ 발표를 우리 학교에서 하기로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래.

   이날부터 ‘OO이 징계 반대’를 내걸고 수업 거부 돌입. 전교생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첫날 오전은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였다. 오후가 되자 1,2학년은 교실로 들어가서 수업을 받았다. 꼬박 하루를 3학년만 운동장에 남았던 거 같다. 다음 날은 수업을 거부하고 교실에서 버티고 있는데, 3학년 이과 반도 수업을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문과 반 네 반만 그렇게 하루를 더 버텼다. 사흘째가 되자 우리 반만 빼고 세 반은 수업을 했다.

   우리 반은 책상을 뒤로 돌려놓고 앞문을 잠그고 교실에 앉아서 자습을 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미리 알고 우리 교실로 올라오시지 않았다. 어쩌다 오신 분들은 ‘이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으나 이미 상처받은 우리 마음엔 그 말씀이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책상을 돌리고 일주일을 더 버텼다.(그러니까 우리는 열흘 동안 ‘수업 거부’를 했다.)

   그 사이에 형사가 자주 학교를 다녀간다는 무서운 소문도 들리고,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교무회의에서 ‘OO이 징계’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내시면서 학교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고, 그사이 ‘OO이의 제적’이라는 징계가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란 우울한 소문도 바람을 타고 교실 문턱을 넘어왔다. 조금 더 자세하게, 학교는 교육청에서 결정한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교육청은 학생의 징계는 학교장의 권한이라는 뻔한 소리로 ‘나 몰라라’한다는 소문도 이내 우리들의 입을 타고 건너다녔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치를 떨고 분개했던지!

   아니, 우리는 누가 만들어내는지 알 수 없는 그 소문이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그 때마다 아이들은 어디서든 난상토론을 벌였고, 열흘 째 되는 날 오후에 학생들의 투표로 다음날부터 수업 복귀를 결정했다. 수업에 찬성한 학생이나 반대한 학생이나 아무도 수업 복귀 결정에 대해서 좋아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냥, 부당한 힘에 졌다는 생각에 억울하고 분했다. 나도 학교와 선생님이 싫어졌다. 그때는 세상 모든 게 그냥 싫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싸움을 통해 학교 밖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옳고 그름이 너무나 분명한 싸움에서도 이렇게 지는구나, 하는 그 쓰라린 경험은 어린 나에게 적개심을 넘어 공포감, 그 자체였다. 단 한 번의 싸움에서 진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기운을 잃어버렸다. 변명 같지만, 그 이후로 대학을 다닐 때 자주 일어난 시위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우리가 분명 옳은데도, 싸움에서는 질 수 밖에 없다는 그 절망감을 피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그 상실감을 딛고 평상심으로 돌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 날부터 수업은 시작되었으나 그 어느 선생님도 그 열흘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분은 없었다. 그 일로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을 그만두셨고, 우리 반 아이들은 진학 상담을 낯선 선생님과 해야만 했다.(사실, 선지원시험제도라 입시 상담이 아주 중요했는데 다들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담임선생님으로선 그게 최선의 길이었다고 믿는다.) 그래도 우리는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고, 입학하기 전에 딱 한 번 담임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 댁을 찾아간 기억은 또렷하나 다른 내용은 흐릿한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서 'OO이‘ 이야기는 거의 안 나왔지 싶다. 그만큼 우리에겐 상처가 깊었다.

   졸업을 하게 된 우리는 더 이상 그 얘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모든 게 잊힌 것처럼 보였다. 아니, 많은 사람들은 그냥 잊고 살았을 것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사범대에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 드디어 모교에 발령을 받았다. 모교에 발령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기억이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0년 10월의 어느 가을날의 그 사건이었다. 잊은 듯 했던 그 기억이 그렇게 또렷이 떠올랐다. 여전히 아릿한 기억. 그 아릿한 기억 너머로 떠오르는 참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친구들……. 나에게 ‘낙동’은 그런 곳이다. 

낙동고를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이 아릿한 기억과 자랑스러운 내 친구들에 대한 추억을 밑절미 삼아 올해 낙동고를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흔하디흔한 잔소리 같은 당부를 해 본다. 이 당부가 내가 너희들과의 짧은 1년간의 인연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너희들은 어릴 때부터 ‘리차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을 테지? 우리는 그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의 놀라운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우리도 더 멀리 날수 있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는(배우고는) 했다, 그렇지? 조나단이 겪게 되는 시련과 따돌림마저도 얼마나 멋있어 보이고, 거기에 반해서 조나단을 비웃고 배척하는 다른 무리의 갈매기들은 어찌나 답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지. 나도 어릴 때는 책을 읽으며 조나단을 따돌리는 다른 갈매기를 실컷 비웃는 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너희들이 조나단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에게 감히 부탁하고 싶다. 갈매기 ‘조나단’처럼은 아니더라도 조나단의 꿈을 비웃는 뭇 갈매기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님은 앞에 쓴 내 기억을 곱씹어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너희들은 내 사랑하는 후배들이니 거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괴롭더라도 우리는 높을 날고 싶은 갈매기처럼 항상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꿈은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별과 같은 존재이지.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근원적인 힘일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자기 마음에 선한 꿈을 품고,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 너희들이 바로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지닌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누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배워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마도 너희들은 현실에서 가슴으로 느껴볼 기회는 적었을 것이다. 앞으로 대학과 사회에서는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도 많은 지식을 담아갈 수 있기를 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이제부터는 지금껏 배운 지식들이 너희들의 눈앞에 현실 상황으로 펼쳐질 것이고, 너희는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네 지식을 검증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껏 네가 배운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네 배움이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부디 세상을 냉철한 이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되, 너희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에 온기가 돌게 했으면 좋겠다. 네가 가진 고운 마음을 나누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사는 것이, 결국은 네가 행복하게 사는 길임을 빨리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정말 작별의 인사를 건네야 할 시간이구나. 씩씩한 기상과 착한 마음을 지닌 낙동고 후배들! 그래서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너희들이 대견스럽고, 바라보는 내 마음이 뿌듯하다. 네 앞길의 시련과 고통에 맞서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모두들, 안녕!

   아쉽고 두려운 마음도 들겠지만, 어쨌든, 오늘의 졸업은 겪어야할 일이다. 너희들의 졸업을 진심,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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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10-02-12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마다 교지가 만들어질 때는 글 좀 써달라는 부탁을 받곤 한다.(물론 내가 담당자면 부탁을 하기도 한다.) 학생이나 교사들도 글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 그래서 난 항상 부탁을 들어주는 편이다.-저렇게 머리를 쥐어 짜면서도 말이다- 올해는 근무하는 학교의 교지담당 선생님이나 학생으로부터 어떠한 청탁도 받지 못 했다.ㅠㅠ 그런데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선생님께서 글 한 편 써달라고 하셔서 쓴 글! 맨날 교지에 하는 말을 짜깁기한 거다. 이것도 자기표절에 해당하려나?ㅋ 원고료도 준다는데...ㅋ

석란1 2010-02-1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설 잘 쇠셨습니까? 복많이 받으십시오. 올 해는 윗 지방에 눈이 많이 와 귀향할때 꽤 고생했습니다. 눈을 잘 볼 수 없는 부산에 사는 관계로 체인 준비도 않고 시골로 출발했다가 차창에 다가드는 눈 뭉치때문에 기어서 가다싶이 차를 몰아야했죠. 덕분에 눈구경은 실껏했답니다. 올 한해도 소망하시는 모든일이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느티나무 2010-02-19 15:43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저도 올해는 눈, 구경 실컷 했습니다.(안나 푸르나 가서...)
근데 눈은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네요.(부산에 살아서 그런가 봐요.)전, 지금 봄방학 중인데, 방학이 방학이 아니네요.ㅋ 학교 나와서 일하고 있음... 아무튼 올해는 쉬어가고 싶은데, 벌써 조짐이 어려울 듯 싶습니다. 헤휴~ 걱정!!
 

* 학습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
- 고등학생과 함께 읽기 좋은 책

13세의 헬로 워크[직업탐구], 무라카미 류 

거미[시집], 박성우

백석시전집[시집], 백석 

버림받은 성적표[시집], 구자행 엮음

엄마와 나[수필], 박기범

얼어붙은 눈물[수필], 슬라보미르 라비치

전태일 평전[인물], 조영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수필], 미치 앨봄

말해요, 찬드라[사회], 이란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사회], 장 지글러

유진과 유진[소설], 이금이

허삼관 매혈기[소설], 위 화

나의 아름다운 정원[소설], 심윤경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소설], 공지영

구덩이[소설], 루이스 세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소설], 최시한

아버지의 바다[사진], 김연용

나의 서양미술 순례[미술], 서경식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사진], 최민식

신문 읽기의 혁명[사회], 손석춘

신갈나무 투쟁기[생물], 차윤정 전승훈

광릉 숲에서 온 편지[생물], 이유미

우주와 인간 사이에서 질문을 던지다, 정재승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생물], 최재천

대한민국사1-4[역사], 한홍구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1,2[역사], 전국역사교사모임

거꾸로 읽는 세계사[역사], 유시민

한국의 정체성[철학+사회], 탁석산

길에서 만난 세상[사회], 국가인권위원회

너 외롭구나[상담], 김형태

호모 코레아니쿠스[역사], 진중권

십시일반/사이시옷/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먹자[만화]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수필], 뤼 쉰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철학+영화], 이왕주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사회], 한겨레21

전선기자 정문태의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사회], 정문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3,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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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 동아리 모임에 대한 FAQ
 

 1.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5년 1학년들과 한 해 국어수업을 해 본 후 독서력이 없으면 제대로 공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서모임을 꾸렸습니다. 국어 공부 좀 제대로 해 보자, 이러면서 애들을 꼬셨지요. 한 15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우리끼리 모여서 맘에 드는 책 읽고 토론도 하고, 뭐든 하다보면 좀 나아지겠지 싶어서 그냥 모였습니다.

 2. 얼마나 자주 모이며, 한 번 모일 때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가요?

   모임은 기본적으로 2주에 한 번입니다. 이 정도 간격이 꼭 필요한데 모일 때마다 책을 읽어야 해서 1주일은 책을 읽는 시간이고, 다른 1주일은 제가 내준 숙제를 하는 시간이니까 빠듯합니다.

   모이는 시간은 150분 정도입니다. 자율학습 9교시와 저녁 먹고 자습시간 100분 정도를 꼬박 다 쓰죠.(그래도 늘 시간에 쫓겨서 부족합니다.) 9교시는 생활나누기라고 해서 2주 동안의 자기 생활을 소개하는 시간이구요. 그게 끝나면 본격적인 독후 활동이 이어집니다.

 3. 학생들이 책을 사야 한다면 책값은 어떻게 하나요?

   저 같은 경우엔 시기가 맞아서 교육청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300만원) 그 돈으로 아이들 책 사고(인터넷서점 주문했습니다.) 체험활동 다녀오고, 초청강연도 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 나눠준 책은 본인이 가지게 했습니다. 엄청난 혜택이지요. 

 4. 어떤 책을 선정합니까? 그건 누가 선정합니까?

   책은 제가 선정합니다. 연간 계획을 알려줄 때 선정한 책도 같이 발표합니다. 물론 연간으로 발표하니까 올해 나온 좋은 책을 못 읽힌다는 단점이 있지만, 제가 뭔가 계획성 있게 일이 진행되는 걸 좋아해서 그냥 그랬습니다.

   책은 제가 읽어 본 것 중에서 좋았던 책(재미+감동+의미+지식) 중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골랐습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골고루 선택했고, 책을 읽고 아이들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내용을 고민하면서 골랐습니다.[목록은 따로 있습니다.] 

 5. 책을 읽고 어떤 활동을 주로 합니까?

   본격적인 독후 활동을 하기 전에 책에 대한 50자 평을 꼭 했습니다. 이외에 정해진 활동은 없습니다. 선택된 책에 따라서 상황극도 했고, 인물 비평도 해 보고, 주제 토론도 해 보고, 시낭송회도 열고, 노래도 부르고, 수필도 쓰고, 영화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부모님의 자서전도 받아 써 오고, 초청 강연도 열고, 시를 이야기로 옮기기도 하고, 내용 요약해서 쓰기 등 아무튼 다양하게, 다양하게, 최대한 다양한 활동을 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6. 회원은 대체로 몇 명 정도가 적당할까요? 모임의 인원수는?

   동아리 회원은 최대 20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최대한 20명로 시작하다가 한 두 명은 적응을 하지 못해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18명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이 정도도 사실 많은 편이지요. 한 10-12명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 처음에 동아리에 들려는 학생들이 많아서 추려내기가 힘들었습니다. 혜택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 혜택이 너무 소수에게만 집중되는 거 같아서 염려되기도 했구요. 그래서 20명까지 받았는데, 너무 많아서 좀 힘든 점도 있었습니다. 

 7. 회원은 어떤 기준으로 선발합니까?

   첫 해는 그냥 지원자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첫 해에 성과물을 만들어 내니까 2007년에는 지원자가 꽤 있어서 시험을 쳤습니다. [난.쏘.공]에서 발췌문을 주고 이 상황의 의미에 대해서 쓰라는 문제인데,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많이 뽑히더군요. 

 8.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요?

   다른 조건은 전혀 필요 없구요. 좋은 책은 읽는 사람의 마음이나 머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요? 아이들에게 맞는 책이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맞게 표현된 좋은 책이 있을 뿐이겠지요. 

 9. 모임을 위해 교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일단 책을 선정해서 나눠줘야 하구요. 학생들이 해야 할 숙제를 종이에 써줬습니다. 또, 저는 매번 모임 때마다 진행자를 학생 중에서 따로 정했거든요.(희망자) 그러면 진행자와 어떻게 아이들이 발표를 할 것인지, 활동을 할 것인지 계속 의논이 필요합니다. 이게 잘 되면 교사도 자연스럽게 1/N의 성원으로 앉아 있을 수 있지만(진행자가 잘 하니까), 이 과정이 충실하지 못하면 모임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10. 책읽기 모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의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는 게 보여요. 책의 종류에 따라 관심사의 폭이 훨씬 넓어지구요. 아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인권, 평화, 차별, 생명, 자유, 역사, 문화……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는 게 좋았습니다. 수업시간과는 달리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서 좋았구요. 학생들의 다른 면을 보게 되어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우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관계가 형성됩니다.  

11. 모임 활동 외에 어떤 활동을 같이 해 보셨나요?

   1박 2일 독서 캠프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바로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준비는 한 달 전부터 하는데, 계획, 진행, 평가팀으로 나눠서 각자의 역할을 맡깁니다. 가서도 책읽기 모임을 합니다. 저는 잘,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정을 꼼꼼하게 챙겨둡니다. 또 아홉산 숲체험이랑 지역공부방 방문 행사도 좋았습니다.  

12. 가장 기억에 남는 모임이 있습니까?

   모임을 하다보면 가끔 울음이 터지는 경우가 있는데, 작년 가을 어느 모임에서는 이 울음이 멈추지 않아서 완전히 모임이 울음바다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자기 상처를 드러낸 친구에게 다들 용기 있다고 껴안고 위로해줬습니다.(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13. 모임의 진행은 누가 하나요? 

   모임의 진행은 학생 중에서 희망자가 합니다. 1년 정도 지나면 모두가 진행을 한 번씩 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의외로 진행을 하는데 부담감이 많습니다. 그래서 진행을 한 번 맡고 나면 그 다음 모임부터는 훨씬 성숙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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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얼굴 맞대고 지내던 녀석들도 졸업을 하면 어김없이 멀어진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같이 보냈던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서 이젠, 스스로의 고딩 때를 생각해도 까마득하게 느낄 녀석들과 아직도 연락이 닿고 있으니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S 고등학교의 졸업생 K 군, L 군 

   전설 같은 사고뭉치 반과 의욕만 넘치는 담임이 만났으니 그 땐 참 온갖 기기묘묘한 상황들이 연출되었더랬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 싶을 정도다.(나의 기발한 상상력은 정말 예측불허!) 그런 고해의 바다를 묵묵히 지켜봤던 녀석들이 기특하게도 지금까지 연락이 닿는다.  

   전문대학 졸업 후에 자동차 만드는 공장의 계약직 사원으로 들어가 성실함 그 자체로 정규직이 된 K. 주야 맞교대로 일하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 없이 바쁠텐데도 늘 5월만 되면 이리저리 연락을 돌려서 한 무리의 애들을 끌고 학교로 찾아오는 녀석. 네가 건네는 음료수는 정말 먹기가 미안하더라. 현장에서 일하느라 거칠고 굵은 네 손이 참 자랑스럽고, 만지니까 두툼해서 듬직하더라.

   전문대학교의 경찰행정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호주로 일하러 떠난 L. 졸업 후엔 경북 경산으로 이사를 갔지만 늘 부산에 있는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 받고, 부산에 오면 꼭 나에게도 안부를 물었던 속이 깊고 무던한 녀석. 네가 참 마음이 힘들고 어려웠을 때, 그래도 네 아픈 마음을 온전히 다 내 보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네가 참 부럽고, 무덤덤히 앉아서 빙긋 웃는 네가 난 그냥 좋았다. 2년 과정으로 떠났으니까 돌아오면 얼른 연락주겠지? ㅋ

H 고등학교의 졸업생 L 양, O 양, S 양 

   인문계 고등학교는 이렇구나,를 느끼게 해 준 H고. 학생들의 학습의 강도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으나, 나랑은 죽이 잘 맞는, 아름다운 아이들이 있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던 곳이다. 아, 그 때 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학교는 지옥이었을 것이다.  

   내가 부임하기 전 2학년 때 학생회장을 했다는 L 양. 누구보다 생각이 깊고, 배려하는 마음이 뛰어나서 모든 선생님들이 칭찬하던 L 양. 그것도 좋았지만, 가끔 쉬는 시간에 나랑 사는 이야기를 나눌  때 더 생각이 잘 맞아서 좋았던 녀석. 국어선생님이 되겠다고 했다가 결국 교대에 진학했고, 2-3년은 방학 때마다 우리 집에 들러 저녁을 먹으면서 대학(교대)의 모습을 전해주곤 했었는데...근데, K. 우리가 같이 고민하던 좋은 선생님이 넌 꼭 되어 있을 거 같다. 

   수업 시간에 자고 싶으면 자고, 깨우면 신경질 내고, 늘 날카로운 반응에다가 약간 냉소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일상이었던 O 양. 그러면서도 공부는 제법 잘 해서 여러 선생님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녀석. 늘 날이 선 표정 뒤에 답답해하는 것이 느껴지길래, 그냥 맘에 안 들어도, 참자, 참자, 하면서 넘겼더니 졸업을 앞두고는 많이 친해져서 지금껏 연락이 닿는다. O. 며칠 전에 전해 준 회사 생활 얘기는 무척 재미있었어. 앞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으니 새로운 각오로 조금 더 신나게 살도록 노력하렴. 

   H 고에서 만난 진정한 주체적 인간, S 양. 하고 싶은 건 하고마는 자신감이 너의 매력이지. 책도 많이 읽었고, 생각도 깊어서 1학년 때도 벌써 사고력의 폭과 깊이가 나에겐 좀 다르게 느껴지더라. 매번 혼나면서도 꾸준히 지각하는 것도 놀랍고, 보충수업이든 야자든 네 의지로 판단해서 결정하는 게 놀랍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S 양.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의 공허한 소리 같겠지만, 네 도움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을 외면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 잊지 않았으면 한다.

N 고등학교의 졸업생  L 양, K 양, K 군, H 군   

   나의 모교였던 N 고. 내가 다니던 그 때나 얼마 전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곳이었다. 건물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벌어지는 살풍경한 모습들. 한동안 깊은 좌절감이 들었으나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운 건 그 속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들. 그래서 수업 준비를 열심히 했고, 책읽기 모임을 만들었고, 해마다 담임을 맡았다. 나를 거쳐간 수 많은 녀석들 중에 지금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녀석들!

   지금 병원에 있는 L 양. 몸도 마음도 힘든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아파서 이 글을 쓴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네가 조금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으렴.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하고 지금 이 순간을 견디자. 수술이 잘 끝나도록 나도 기도해 볼게. 이게 네 삶에 가장 최악의 상황일거야. 더 나빠질 수는 없어. L. 앞으로 퇴원하면 진복이 보러 놀러오너라. 꼭!

   K 군, 오늘 일은 끝냈나? 지금쯤이면 자고 있겠지? 이제 일은 몸이 적응해서 별로 힘들지는 않다고 했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몸이야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어느 곳에서든 대체로 적응하지. 근데,난 너처럼 힘든 상황이라면 마음이 참 힘들었을 거 같아. 아마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 됐을 지도 모르겠다. 근데, 넌 참 덤덤하게 말하더라. 고등학교 3년 동안 너처럼 제대로 된 책을 많이 읽는 학생도 드물었다. (책의 힘인가?) 내년이면 상황에 변화가 있다고 했으니까 차츰 나아지겠지. 동생도 어쨌든 이번에 대학을 갈테고... 이젠 네 차례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잔 한 게 언제였더라? 곧 다시 볼 때까지 씩씩하게 잘 지내라. 

   K 양, 아까 문자가 왔었는데 전화기가 충전기에 달려 있느라 뒤늦게야 확인! K, 너를 생각하면 끊임없이 바른 것을 찾으려고 애쓴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나이 또래의 여느 아이들은 예쁜 것, 재미난 것을 찾느라 정신이 없는데, 너는 오롯이 네가 옳다고 믿는 대로 네 삶을 꾸려가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저렇게 지내고 있는가?'하고 비춰본다. 그 생각의 실천으로 힘들게 공부방을 찾아 온 것이겠지?ㅋ 옛 선생에게 -분명 어렵게 구했을- 저자 사인이 적힌 시집을 수줍게 건네는 대햑생의 그 마음이 참 기특하고 고맙다. 

   군복무 중인 H 군. 찬바람이 쌩쌩 불어도 잘 지내고 있지? 군대에 있어도 네 할 일은 똑부러지게 잘 해내리라고 믿는다. 좀 엉뚱한 면도 있고 모든 일을 깊이 생각하는 애늙은이 같을 떄도 있지만, 그래도 생각이 깊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어디에 가서도 그리 힘들게 지내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난 번에 휴가 나왔을 때, 같이 소주 한 잔 했었다, 그치? 참, 어느새 세월은 훌쩍, 선생과 학생이었던 사이가 이제는 같이 소줏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되었다.(아, 근데 좋은 일이다.) 다음에도 휴가 나와서 갈 때가 없거든(성격상 애인은 나중에 생길 것 같다), 언제든 찾아 오너라. 그럼 네 덕분에 난 편안히 자련다.

 *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대학생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한 녀석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사람도, 군복무중인 군인도, 입원한 환자도 모두 내 마음 속에 자리를 잡고 가끔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들이다. 그 때 그랬지... 하고 말이야. 선생이란 사람은 이런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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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 2009-12-16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인 상속법이 남은 이때 이 지구상의 인간들은 왜 뭔가를 남기고 죽을려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모두들 다쓰고 죽으라는 법을 만들어야 하지 안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ㅋㅋ 선생님처럼 열심히 생각하는 사람과 알게 지내게되서 기뻐요ㅎㅎ 밤을 새고 정신이 혼미해진 이때 저의 지난날을 떠올리며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선생님의 서재를 엿보고 있답니다. 단지 실없는 친구이던 저를 이다지도 좋게 평가해주다니ㅋㅋ 역시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죠ㅎㅎ 선생님의 생각의 깊이에 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2009-12-17 0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안] 학생의 날 이런 건 어떻습니까?

   다가오는 11월 3일은 학생의 날(지금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입니다. 바로 다음 주 화요일입니다. 올해는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참여하시는 학생의 날 행사(?)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말씀드립니다. (OO고에 해마다 행사를 해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올해 와서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행사 내용은, 진짜 소박하게, 선생님의 마음을 담은 편지 한 통 써 보는 것입니다. 스승의 날, 받은 선물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그 순간이나마) 정성을 다해 쓴 아이들의 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기 때문이지요. 올해는 선생님의 마음을 비춰주면 어떻겠습니까?


   학생의 날을 맞아 학생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에이~, 뭘 이런 걸~~, 여럽다, 쓸데 없다.... 이러신 분도 많으실텐데...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시겠습니까?] 학생들에게 단 한 줄의 메시지도 좋습니다.


   마음을 담은 글이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예쁜 종이에 옮겨서 학년별로 [1학년은 2층 게시판, 2학년은 3층 게시판, 3학년은 4층 게시판] 일주일 정도 게시하려고 합니다.


* 담임/부담임선생님 이런 것도 다 상관 없습니다. (실명을 안 밝히셔도 됩니다.ㅋㅋ) 

* 지금 수업을 하고 계신 학년도 좋고, 작년에 하셨던 반도 좋습니다.

* 3학년 격려 메시지는 수능 응원 메시지와 함께 하셔도 좋습니다.

(아무튼, 다, 좋으니까 짧은 글만 쪽지로 보내주시면 나머지 준비는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업무로 바쁘신 중에도 선생님께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느티나무 드림]
  

[제안] 마감임막, 학생의 날 메시지

   신나는 주말입니다.
   즐겁게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며칠 전에 말씀드린 학생의 날 축하 메시지, 쓰신 선생님, 쓰고 계신 선생님, 쓰실 선생님... 오늘 중으로 쪽지 날려주시면 됩니다.

   아직도 고민 중이시라면, 주말과 휴일 동안 생각해 보셨다가 월요일 오전까지 써 주시면 됩니다.

   쓸까, 말까 망설이시는 선생님, 귀찮다거나 부끄럽다고 느끼시는 선생님,  안 하면 나중에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지도 몰라요. 혼자 하려면 어색한데, 같이 한다니까... 이번 기회에 사랑의 마음을 전해 주십시오.


[느티나무 드림]  

 

[제안] 세 번 권유하라~!

   진심으로 그 사람이 함께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면 세 번까지 권하라는 말도 있고, 주말을 지내고 오셨기에 깜빡 하신 경우도 있겠다 싶어서... 학생의 날, 축하 겸 수능 응원 메시지 오늘까지 마감하겠습니다.

(참고로, 지금까지 열 분 정도 메시지를 보내주셨고, 서너 분이 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어수선한(?) 메시지로 불편하셨을 선생님을 위해 읽어 볼 만한 시 두 편 보내드립니다. [시 내용은 생략~!!] 

 [느티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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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9-11-04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렇게 옮겨두니까 해마다 활용할 수 있어서 좋네요. 세 번의 전체 메신저로 동참하신 선생님이 모두 열일곱 분~!! <이순영, 최여례, 김숙련, 박은정, 정순영, 김동영, 김선영, 이성환, 이소엽, 김대건, 김은규, 김승희, 구선애, 남초롱,고안덕, 김명진(교감)선생님, 그리고 느티나무> 해마다 딱 요 정도 수준이다...그래도 감사한 일~!!

김현숙 2010-11-0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샘글 그래도 옮겨다가 이용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동참하신 샘들이 아직 두 분뿐이라...이래도 계속 실행해야하는건지 고민중입니다. 괜히 소문만 나서 학교하고 삐걱거리기나하고...요즘 저희학교는 아주 난립니다. 자율형공립고라는 허울때문인지 자유로운 것 하나로 버티던 낙동고가 완전히 쫀쫀한 학교가 되어서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어가고 있는데 담임샘들은 전혀 말씀들이 없으시고, 비담임 입장에서 나서기도 뭣하고 애들은 난리고...어제는 교장샘의 권한(?)으로 석식 전에는 절대 누구도 하교금지라고 일방적인 메세지를 담임들에게 보냈는데, 담임들도 아무 말 없이 그저 학생들한테 전달하기만 하고...답답합니다. 내일은 또 우리 학교 학력이 안 좋다고 아침부터 대책회의를 한다네요 수업시간까지 줄여가며...이럴 땐 한마디 해야하는거죠? 그런데도 이러고 답답해하고만 앉아있습니다. 아무도 동조하지 않는다는 뻔한 변명을 하며...

느티나무 2010-11-02 22:53   좋아요 0 | URL
낙동의 모습이 왠지 낯설군요. 대책회의가 괴로운 시간이셨겠어요...참...여긴 비슷비슷하긴 하지만 그런 어이 없는 결정을 강제하지는 않네요. 적당히 서로가 알아서 견제하는 분위기? (뭐 모르죠...제가 또 둔감해서거나, 둔감한 척 하는 것이거나) 그런데 가까이 있지만 낙동고가 이래 변했단다, 이런 얘긴 또 전혀 들리지 않네요. 이런 얘기 처음 들어요^^
저는 내일 아침에 좀 일찍 가서 메시지 붙이려고 합니다. 오늘 저녁에 준비를 다 했거든요. 여긴 그래도 스무 명 정도가 글을 보내주시네요.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지요.^^ 샘이 고군분투하시는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쓰입니다. 아무 힘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힘내시라고 말씀드릴게요. 샘, 샘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으로 살고 있는 겁니다. 힘,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