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개학을 하고 나서의 첫 편지는, 얘들아 방학 잘 보냈니, 이렇게 인사를 하며 시작해야 하는데 서로가 뻔히 방학 동안의 상황을 아는 지라 저렇게 묻는 게 조금 쑥스럽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방학은 좀 짧았다, 그치? 그래도 모든 일에는 어둠이 있으면 밝음도 있는 법! 오늘로 125일이 남은, 무척 길다는 겨울방학을 기다려 보자. 

   보충수업이 끝나고 나서 독서캠프 다녀오니 개학이 코앞이었지? 금덩어리 같은 방학을 쪼개 다녀온 캠프가 너희들에게 시간 낭비였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까 모르겠다. 내 생각엔 준비팀이 계획하고 준비한 활동의 50% 밖에 못 한 거 같아서 좀 아쉬웠지만, 다른 학교와 함께 꾸린 캠프가 처음이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으려 한다. 이번의 아쉬움을 밑거름 삼아야 다음에 더 멋진 캠프를 준비할 수 있겠지? 내년에도 혹시 이런 캠프 준비팀이 구성된다면 너희들이 적극 참여해서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동아리 멤버는 원래 이런 캠프 다녀오면 자기 손으로 후기를 정리해야 하는 게 기본이라는 거 알고 있지? 하루 이틀 미루기 시작하면 결국엔 못 한다. 이 글을 읽고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오늘 중으로 반드시 정리해 보렴. 적는 방법은 의외로 쉽지. 간단히 일정을 소개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들었던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하면 훌륭한 후기가 될 거야. 특별히 인상적인 활동이 있었으면 소개하고 왜 그랬는지도 기록해 두면 더욱 ‘엣지’ 있는 글이 될 듯싶다. 동아리 모임에서 너희들이 써 온 글을 바탕으로 30분 정도 평가회를 할 예정이니 생각을 잘 정리해 오너라.

   이젠 이번에 받은 책 이야기 좀 해 볼까? 책의 제목이 좀 낯설지? 호모 코레아니쿠스(진중권, 웅진지식하우스). 제목을 알기 쉽게 번역하면 그냥 ‘한국인’……? 지금의 한국인,이라는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한국인’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책이야. 100년 전에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지금의 우리와 얼마나 닮았을까,를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아마 피부색을 빼고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 오늘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한국인’은 언제, 어떻게 나타났을까, 하는 궁금증이 당연히 생기겠지? 이 책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오늘날(근대적) 한국인’의 탄생 과정과 이들의 보편적인 사고 구조를 탐색하고 있는 재미있고도 의미 있는 책이야.

   다음 주 수요일 모임 이야기를 해야겠지? 7교시부터 모임을 시작한다는 거 알고 있을 테고( 7,8,9교시로 마무리하자.), 수현이가 던진 이야기 주제도 다들 준비하고 있을 것이고, 캠프 평가회도 해야 하니, 난 좀 쉽고 재미있는 활동 과제를 내려고 머리를 쥐어짜 본다. 또 우리가 읽을 책이 그리 술술 넘어가는 책이 아니니만큼 숙제는 간단하고 쉽게 내려고 나름 고민했단다.

   이번 독후활동 과제는 뇌구조 그리기다. 자신의 뇌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뇌구조를 만들어보렴.(따로 받는 종이에 적어 넣으면 된단다.) 그리고 한국인의 뇌구조도 나름 분석해 봐야 할 테니까 10대의 뇌구조(남/여), 20대의 뇌구조(남/여), 30대의 뇌구조(남/여), 40대의 뇌구조(남/여), 50대의 뇌구조(남/여), 기타 세대의 뇌구조(남/여) 중에서 스스로 한 세대를 정해서 뇌구조를 파악해 오는 것이 이번 과제다. 이 과제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어떤 특정한 사람의 뇌구조를 통해 특정 세대의 보편적 뇌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면, 오늘날 한국의 20대 여자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을까,를 생각해 보자는 거지. 여러 사람의 뇌구조를 모아서 공통분모를 찾아도 되고, 특정한 사람이 어떤 세대의 ‘전형’이 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의 뇌구조를 소개해도 된단다. 우선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과 얘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지?

   쪽지에 정리하고 보니 숙제가 제법 많다. 그래도 씩씩하게 잘 해 오겠지? 풍성한 식탁을 위해 넉넉하게 준비해 오렴.

그럼, 행복한 수요일 밤을 기다리며,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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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계획은 8월 11일-12일의 일정이었으나 태풍 덴뮤의 영향으로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 사실, 처음 계획대로 했으면 더 좋을 뻔 했다. 8월 10일 아침에 부산에는 비가 많이 내려 일정을 연기하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오전 10시, 결국 일정을 연기하기로 결정. 그런데 이후부터 바람도 자자들고 비도 그쳤다. 오후에는 날씨까지 맑아졌으니... 캠프를 진행하기엔 더 좋은 환경! 

2. 2시 30분에 시작해야 했으나 늦게 도착한 동아리도 있어서 3시부터 시작되었다. 첫 모임부터 낯선 애들끼리 모둠 활동을 하도록 했으니 담당교사가 적절히 분위기를 주도해서 학생들이 서먹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게 필요하다. 아, 난 학교 냉장고에 우리 동아리가 먹을 음식 재료를 놔두고 와서 그 시간에 다시 학교에 내려 갔다 오느라 모둠 활동에 못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3-1. 다음은 이런 어색한 사이를 얼른 허물기 위해서 꼭 필요한 모둠 끼리 몸으로 부대끼며 노는 시간. 여러 가지 게임을 준비했지만, 여러 가지 준비가 미흡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야심차게 준비한 물풍선 던지기. 물풍선 100개를 사 왔지만, 풍선 주둥이를 끼울 수도꼭지가 넓어서 물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 음... 이건 제대로 하기 어렵겠다 싶어서 바로 준비를 안 했다.  

3-2. 처음에 했던 놀이는 모둠별 수박  빨리 먹기. 역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이만한 놀이는 없는 것 같다. 계획에는 학생이 진행을 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불안해서 시작을 내가 했다. 모두가 첫 대면이라 아무래도 수박 먹는데 몸을 던지는(?) 아이들은 없어 예상했던 만큼의 반응은 아니었다.  

3-3. 다음은 피구 경기를 하기 위해서 주전자로 경기장을 그려 놓고 수박 먹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약간 어설프게 수박 먹기가 끝났고, 아이들을 나눠 피구 팀까지 다 짰으나 이상하게 흩어지는 바람에 급하게 고기 잡기 놀이를 했는데 모두들 엄청 뛰어다녔더니 진을 다 뺐다. 준비해 간 음료수를 내 놓고, 미리 숨겨 둔 보물찾기를 했다. 엄청나게 많은 "꽝" 때문에 작은 "보물"에도 분위기가 좋았다. 

4. 놀이 시간이 30분 늦어져서 저녁 시간도 조금 밀렸다. 5시 30분부터 저녁 시간. 우리 동아리는 간단하고도 맛있는 삼겹살 정식! 준비하고 서로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음... 애들이 다들 집에서 귀하게 크는 듯하다. 하기야 우리 사회는 고딩들에게 "공부"만 잘 하면 되니까 집안일이야 아무려면 어떤가?(내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봐도 이 녀석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5-1. 정정수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님과 샤골 씨의 초청강연. 말해요 찬드라(이란주, 삶이보이는창)를 바탕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인권-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기,라는 내용으로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강연이 있었고, 이후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특히 참여하신 선생님들이 적극적인 질문이 많았다. 

5-2. 내가 궁금했던 점은, 한국에서 살다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은 세계관이 변한다고 하던데-아마 자본주의적인 세계관이 체화되어 돌아가는 것이겠지?-, 본국에서 다시 적응하는데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적응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아마 나름 첨단(?)의 자본주의적 세계에서 살다가 본국에 돌아가면 다른 눈으로 자기 나라의 상황을 바라보게 될테니 좀 다른 인간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 싶다. 

6. 모둠별 독서토론. 십시일반(박재동외, 창작과비평사)을 읽고 학생으로서 받은 차별이나 차별했던 경험을 사례로 발표하기. 우리 동아리는 좀 '조용한 가족'이라고 할까? 아직 어색한  분위기가 많아서, 대충 사례를 들어본 다음 내일 발표할 내용만 정해 놓고, 놀이 시간!! 30분 동안 부대끼며 놀았더니 금방 어색함이 줄어들었다.(역시 '모두아' 활동이 내 든든한 놀이 밑천.) 

7. 독서퀴즈 시간. 민주의 카리스마 넘치는 진행으로 분위기를 확 휘어잡았고, 우리 모둠은 그런대로 분위기를 잘 타서 즐겁게 참여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OO여고에서 준비한 퀴즈는 스피드 퀴즈, 책 이름 만들기, 이구동성... 이었는데, 모두들 목숨 걸고 집중해서 분위기는 최고조! 퀴즈가 끝나니까 정확하게 밤 12시. 난 독서퀴즈 중간에 선생님들이랑 옆방에 잠시 모여서 잠시 내일 일정 점검했다. 

8. 아침 기상 7시 30분. 전날 밤에 어찌나 심하게 놀았던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두들 비몽사몽! 아침 식사는 간단한 미역국에 김치+햄구이. 밥은 어제 먹고 남았던 거 밥솥에 넣어 두었으니 아침밥 먹고 정리하는데 시간이 넉넉했다. 미리 짐정리를 시키고, 집안 정리도 함께 맡겼다. 그랬더니 나중에 나올 때 준비가 빨랐다. 

9. 독서토론 발표회. 지난 밤에 얘기했던 사례 중 가장 공감+인상이 깊었던 사례를 즉흥극으로 꾸며서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동아리들이 발표했던 건 잘 기억 안 나고, 우리 모둠의 주제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은 바쁘다" 학교에서 공부 잘 하는 학생에게는 기회가 많고 못 하는 학생에게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20분 동안 준비한 것 치고는 발표를 잘 한 것 같다. 나도 참여할까 망설이다가 전체 진행 때문에 이곳저곳 왔다갔다 했기 때문에 결국 못 끼고 말았는데, 그게 조금 아쉽다.

10. 마지막 활동은 롤링 페이퍼. 모둠별로 모여서 1박 2일 동안의 활동을 정리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말을 건네자는 의도로 만든 시간인데, 아무래도 함께 활동한 시간이 적었으니까 나오는 말이 좀 비슷한 것 같다. 차라리 동아리별로 모여서 롤링 페이퍼를 했다면 더 깊은 얘기도 나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자주 봐야 할 건데,  서로에게 건네는 말들이 어떤 사람을 미리 규정 짓는 거 같을 수도 있겠다.

* 처음 시작하는 독서캠프니 욕심 내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준비하고자 마음 먹었던 것이 스트레스 없이 캠프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캠프 기간에도 즐겁게 보냈다. 부족한 것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런 것은 마음 한 켠에 묻으려 한다. 앞으로 이 동아리 캠프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첫발을 뗀 것으로 만족하다. 

동아리 캠프를 위해 함께 준비 모임을 여러 번 했던 김OO, 오OO, 이OO 양을 비롯한 여러 명의 친구들, 모두 애 많이 썼다. 너희들의 걱정과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다른 친구들이 1박 2일 동안 잠시나마 행복해할 수 있었을 거야. 그리고 지지부진한 준비와 태풍으로 일정이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진행된 캠프가 끝날 때까지 노심초사하면서도 한편으로 물심양면으로 함께 헌신해 주신 모든 선생님들, 고생하신 것도 잊지 않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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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0년 독서토론모임 여름 독서캠프 일정표


8월 12일:첫째날


8월 13일:둘째날


시간


활동


시간


활동


13:00-14:00


숙소 도착


00:00-07:00


취침 및 기상


14:00-14:30


정리 및 모둠 확인


07:00-07:30


산책 및 체조


14:30-17:00


*모둠 활동[친교의 시간]


07:30-09:00


아침식사[학교별 준비]


17:00-19:00


저녁 준비[학교별 준비]


09:00-10:00


독서토론 발표회[강당]


19:00-21:00


*초청 강연[아시아평화연대]


10:00-11:00


롤링 페이퍼


21:00-22:00


독서토론[십시일반]


11:00-12:00


숙소 및 짐정리


22:00-23:00


*독서 퀴즈[몸으로 말해요]


12:00-13:00


귀가


23:00-24:00


정리 및 자유시간


* 식사는 학교별로 재료 준비해서 먹습니다.



2. 활동별 세부계획안


모둠활동[친교의 시간]


시간


2시간 30분


장소


운동장


준비


OO고


□ 활동 내용

 - 모둠별 친교 활동을 위해 다양한 놀이 활동 진행

 - 고기잡이, 보물찾기, 물풍선 던지기, 수박 빨리 먹기 대회, 피구대회,  눈 가리고 물건 찾기, 미션 달리기, 꼬리잡기

 - 준비물 : 수박 4통, 보물쪽지 200개, 물풍선 100개(소쿠리), 배구공 1개, 손수건 15개 정도





초청 강연[아시아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시간


2시간


장소


회의실


준비


00고


□ 활동 내용

 - 주제도서 ‘말해요 찬드라’(이란주, 삶이보이는창)와 연계해서 운영[미리 읽어올 것]

 - 주제 : 이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 분임토의(모둠별) +질의 응답

 - 강사 : 정정수(아시아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샤골(방글라데시인 이주노동자)




독서 토론 및 발표


시간


2시간


장소


숙소+회의실


준비


모둠 지도교사


□ 활동 내용

 - 주제도서 ‘십시일반’(박재동외, 창작과비평)과 연계해서 운영[미리 읽어올 것]

 - 주제 : 인권 감수성을 반올림 하려면? + 분임토의(모둠별) + 사례 발표(상황극)

 - 진행 : 모둠별 토론에 지도교사 참여, 전체 진행은 OO고



독서 퀴즈[몸으로 말해요]


시간


1시간


장소


회의실


준비


OO여고


□ 활동 내용

 - 학교별 독서활동을 정리하는 독서 퀴즈 대회

 - 진행 : 스피드 퀴즈, O/X 퀴즈, 골든벨 등 다양한 형식

 - 준비 및 진행 : OO여고 2학년 독서동아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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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핸 유난히 짧은 여름방학이 벌써 1/3이 지나가버렸다. 이번 방학 즈음엔 우리 모임에도 좀 변화가 있었고, 지금도 그 변화는 이어지는 거지? 지난 모임에 보니까 모두들 과감하게 다른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려고 결심하고 실천을 옮긴 민지의 용기를 부러워하는 거 같던데……. 그런데 민지는 떠나게 되기까지는 우리가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내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 우리는 민지가 씩씩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맘껏 격려해 주자. 그리고 나는 남은 사람들이 이런 때일수록 중심을 잡고 모임을 단단히 꾸리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봤다. 물론 한 사람이 모임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각자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무엇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게 훨씬 중요하겠지?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인생, 읽었어? 우리가 푸구이처럼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운명을 만약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떨까? 무서울까, 슬플까, 담담할까, 괴로울까, 체념할까…… 내 미래가 저렇게 예정되어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가? 그러면…? 그런데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읽고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메시지는 써 놓은 게 있는데, 대충 내용이 이렇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이런 인생도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작가 자신은 이런 말로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해 두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도 작가의 질문을 씹어본다. 우리도 가끔은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곧잘 말한다. 그러면서도 늘 오늘의 고통스러운 삶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 밑거름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결국엔 현재 우리의 고통스러운 삶이 지나가고 나면 이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그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화의 소설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눈물을 보태며 고통스러운 강을 건너더라도 그 강 건너엔 우리가 기대한 그 무엇도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네 삶은 비루한 것인가? 희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희망이 없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삶이 비루하다는 데는 대체로 수긍한다. 그러면 그런 비루한 삶은 왜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살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고? 살아간다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니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를 이미 초월한 문제라고 말이다.  

 (위화, 인생, 을 읽고 쓴 감상문 중에서) 

   아마 부모님이 이 소설을 읽으신다면 내 말에 공감하시리라 믿는다.(아직 너희들은 앞길이 창창하니 이런 내 말이 잘 흘러들지 않겠지만! 그래서 무척 아쉽다.) 조금 더 인생의 속살을 맛 본 사람들은 알기 마련이거든. 눈물의 강을 건너면 아름답고 찬란한 무엇인가가 우리를 맞아줄 것이라고 믿지만-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지!- 사실은 그 강을 건넌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른다구! 그럼 왜 열심히 살아야 하냐구? 그건, 글쎄다.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지는 않겠지.

   그만하고! 이제는 우리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우리 모임은 다음 주 금요일인거 다들 알고 있지? (6일) 책의 완독은 기본 중에 기본!(이런 걸로 잔소리 안 하게 해 주렴.) 글쓰기 숙제는 1) 내 인생 최고의 사건과 내 인생 최악의 사건!이라는 주제로 각각 사연을 소개하는 글을 써 올 것! 2) 내 생애 80번째 생일을 맞아 써보는 가상의 자서전을 완성해 올 것이야.

   우리에게 슬픈 일은 기말고사 성적이 나쁘게 나온 것이라든가 여름방학이 꽤 많이 지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지나간-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그 순간에 어쩌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슬픔은 자기 자신이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니 치유도 자기가 해야 할 몫이다. 다음엔 그런 자책이 들지 않도록 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슬픔에서 해방 되는 길이고! 우린 지금도 충분히 힘든데, 오늘부터 폭염이 시작된단다, 모두 조금 더 씩씩해져야할 때다.     

                                                  여름밤에 느티나무가 쓴다.

[덧붙임] 

   인생을 읽고 어떤 숙제를 내줄까,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 “음……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은 말이야……”하고 싱긋 웃으며 너희들에게 말을 건네려다가 멈칫거렸다. 순간,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사건의 연속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  

   오늘만 해도 등교하면서 폭염 사이에 쏟아진 빗줄기 속을 자전거로 내달릴 때의 상쾌한 기운이나 비를 맞아 더욱 싱싱하고 당당한 교사(校舍) 앞의 느티나무의 늠름한 자태를 볼 때 들었던 흐뭇함은 ‘인생은 사건의 연속’이라며 구체적인 사건을 써오라고 하는 내가 내 준 숙제 속엔 분명 빠져 있을 거니까.  

   그래도 어쩌겠노? 내 능력은 여기까지인데, 더 욕심내지 말아야겠다. 오히려 우리의 숙제가 삶의 속살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모순을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인생은 이런 수많은 모순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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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들아, 안녕? 벌써 일주일도 더 지나버린 저번 모임은 어땠나? 오늘 다시 생각해 봐도 좀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모두들 열심히 준비했을 테니까 그 준비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씨앗처럼 자라서 언젠가는 열 배 스무 배로 자라 꽃을 피우리라 믿는단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읽기, 힘들지?(아직 안 읽었을라나?) 앞으로 너희들이 미술에 관한 책을 읽을 기회가 더 많을 테니까 차차 알게 되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은 여느 미술책과는 좀 다른 것 같더라. 그림을 선택하는 기준도 독특하고, 그 그림을 설명하는 방식도 보통의 미술책들이 보여주는 방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술술 읽히는 문체는 아니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니까 내 마음 속에 글쓴이의 저릿한 아픔 같은 게 느껴지더군. 그러니까 사실 이 책은 미술에 관한 책이면서 사실은 미술책이 아닌 지도 모르지. 그림이나 조각은 하나의 도구였을 뿐, 화자가 마주한 것은 늘 그림 너머에 어른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참고로, 이번에 읽었으니까 세 번째 읽는 셈인데,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책도 함께 읽으면 좋은데, 기억해 두었다가 방학을 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서경식이 지은 책 중에『청춘의 사신』이라는 미술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라는 홀로 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태인의 흔적을 찾은 여행기, 『소년의 눈물』이라는 독서에 관한 수필집(일본어 문장이 뛰어나서 일본에서 유명한 '에세이상'도 받았다구.) 등이 있는데, 모두 훌륭한 것들이니 꼭 챙겨서 읽도록 하렴. 아울러, 그 형들이 지은『서준식의 옥중서한 1971-1988』과 『서승의 옥중 19년』이라는 책도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물론 그 자체로도 훌륭한 책이고.) 그러나 지금 당장은 우리한테 그만큼의 시간이 없으니 서경식의 형들이 당했던 사건에 대해서 간단히 자료를 찾아보고 정리해 오는 걸로 대체하고자 한다. 만약 아직 이 책을 안 읽었다면 먼저 위에 나오는 인물들을 검색해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알아보고 책을 꼼꼼히 읽는 것도 좋겠다.

   또 이 책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 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에 힌트를 얻어서 우리는 "나는 ______________할 때 가장 기분이 좋다/나쁘다." 라는 활동을 해 보고 싶다. 이 글은 서술형으로 쓰지 않아도 좋다. 그냥 개조식으로 써도 좋다. 대신에 자신이 어떤 상황이 가장 기분이 좋고, 나쁜지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각각 항목 20개 이상) 우리가 책을 골라 읽으면서 계속 이런 활동을 해 온 거 알고 있지? 난 책읽기가 자기의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때 진정한 책읽기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책 내용에서 출발해서 미처 몰랐던 자기를 발견해 보는 것도 큰 기쁨이리라 믿는다.

   다음으로 이 책의 그림들 중에서 네 마음을 조금이라도 흔들었던 그림이 있다면 그 이유를 말하는 것으로 주요 활동을 하고 싶다. 그 그림을 보고 들었던 네 마음의 울림이라든가,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 들었던 느낌, 이 그림을 소개하려는 이유 등 그림을 보며 네 마음속에서 일어난 변화를 차분하고 섬세하게 정리해 와서 발표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글로 써 오렴) 책에 대한 50자 평은 기본인 거 알지? 자, 숙제가 좀 많지? 그래도 많이 노력한 만큼 마음속에 씨앗은 남는 거니까, 알겠지? 그럼 우리 방학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말과 글의 풍성한 식탁을 차리자. 그럼 환하고 예쁜 얼굴 방학 때도 자주 보자구.

언제나 방학을 기다리는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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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0-07-1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훌륭한 책들이네요.
<서준식의 옥중서한>은 아마 절판이죠? 중고서점에서 사려고 몇번 발품을 팔아도 결국 찾지 못한 책이군요.

느티나무 2010-07-15 20:14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옥중서한,은 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판인지도 몰랐는데... 흠, 제 수준에서는 읽는데 인내심이 조금 필요하더라구요^^. 잉크냄새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