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겨울이다, 어느덧! 겨울 찬바람이 불면 늘 호떡 생각이 난다. (원래는 어묵도 좋아했는데, 위생 문제 때문에 이제는 거의 안 먹는다.) 갓 구운 호떡을 후후 불어 식었을 때 한 입 베어 물면 호떡 안 설탕은 아직도 뜨거워 입안이 후끈하던 그 기억! 달달한 설탕물이 흘러서 묻은 손가락을 빨고 입 주위를 혀로 날름거리던 기억. 그런데, 아득하다. 이상하게 요즘은 호떡 파는 곳이 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 이게 어쩌면 호떡 먹고 싶다는 생각은 내 머리 속의 ‘관념’일 뿐이고, 실제로는 이제 호떡 같은 음식에 관심이 없어진 때문일 수도 있겠지. 살기는 더 힘들어졌다니까 호떡 파는 곳이 더 줄어들지는 않았을 테고 내가 정말 먹고 싶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내 눈에 띠였겠지. (아, 아침부터 뭔 흰소린지 모르겠다.)

   지난주에 봤던 영화, 도그빌(dog-ville). 아무래도 감독은 인간에 대해서 너무 쉬운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편치 않아. 인간의 어떤 면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현실이 아무리 비극적이라도 의지로 낙관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인간의 비루하고 약한 본성 속에서도 어떤 희망적인 면을 봤더라면 하는 욕심. 그것이 아무리 고문에 가까운 일일지라도. 인간에게 동정심을 가졌던 심판자의 판결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하는 안타까움이 마음에 묵직하게 남아 있단다.

   어쩌면 지금 너희들이 읽고 있는「촌놈들의 제국주의」(우석훈, 개마고원)도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답답해질까? 책 속에 자주 나오는 제국주의, 패권주의, 파시즘, 평화경제학……. 평소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들이 아니니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이번에 좀 어려운 책읽기를 넘어서면 이런 어려운 낱말들의 개념이 다음 책읽기의 배경지식이 되어서 다른 책을 읽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책을 통해 배경지식을 조금 더 넓혀가는 과정 속에서 책읽기에 훨씬 재미가 붙고, 그러면서 우리 생각도 조금씩 자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니? 이대로 우리 사회가 앞만 보고 달려간다면 정말 이웃 나라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는 걸까? 그 상황과 맞물려서 우리 사회가 더욱 폐쇄적인 전체주의 경향을 띄게 되어 결국 파시즘 사회로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닐까? 평화를 누리면서도 그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이기심 때문에 결국 이해관계를 극대화하려는 소수의 욕심으로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은 아닌지? 앞으로 2-3년간의 선택이 중요하다면 과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모두가 궁금한 것들이고 우리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질문들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 볼 때 앞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뾰족한 답을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고, 학생인 우리 생활환경과도 아주 밀착된 주제도 아닌 듯싶어서 고심 끝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우리의 학교가 어떻게 달라지만 30년 후의 우리 사회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글을 써 보는 것! 「…제국주의」의 맨 뒷장이 평화를 위해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제로 쓴 글임을 볼 때 우리 사회가 공공재인 평화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 효용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는데 교육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30년 후의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바뀌어야 할 우리 교육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학교, 교사, 학생,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글로 설명해 오면 된다.

   지금의 우리 교육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그럼 대안은 무엇일까,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를 고민해 보자는 거지. 물론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다만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 바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지 않겠어? 너희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 주면 좋겠어!

   아, 그리고 25일 9교시에 결과가 발표될 앙케이트쇼! ㅋ 정말 대박일거야. 기대된다.

벌써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는데, 아직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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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다음 모임을 준비하며 쓰는 이 쪽지가 사실은 좀 낯설다. 지난 번 모임이 왜 이렇게 아득하게 느껴지지? 겨우 일주일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말이다. 지난주는 올해 동아리 모임 중에 아마 최고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가 이제는 진짜 ‘동아리’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무척 행복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 장면도 내 인생을 되돌아 볼 때 기억나는 한 순간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고백하자면 이번 모임을 위한 준비가 좀 복잡했다. 며칠 전에 날아든 낭보 때문일 텐데…. 우리 동아리 활동의 연간 계획은 이미 다 정리되어 있는데, 뜻밖에 교육청에서 1학기의 우리 동아리 활동이 ‘우수’하다며 80만원을 추가로 지원해 준다는 공문을 받았다. 순간 욕심이 생긴 거지. 마침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책을 읽고 있던 터라 이왕주 교수님을 초청해서 강연을 들으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부산에 계신 분이니까 연간 계획을 세울 때도 초청하고 싶었으나 문제는 ‘돈’!)  ‘철학…’ 책이 재미있어서 제법 많이 읽었다는 예서를 통해 초청 메일을 보냈더니, 사정이 있어서 못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초청 강연은 무산되었고 우리끼리 재미난 모임을 꾸릴 수밖에 없는 거지.

  우선 이번 모임의 사회는 선경이가 맡기로 했단다. 지난번에 이미 예약했었거든. 사회자와 의논하면서 9교시 생활 나누기 시간에 얘기할 여러 가지 주제가 많이 나왔다. 수능을 1년 앞둔 나는…, 내가 요즘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나의 보물 1호가 있다면, 죽음을 앞두고 쓰는 나의 유서…… 등인데 이것 중에서 자유롭게 하나를 골라 생각을 정리해 오면 어떨까? 이 중에서 앞의 질문지를 읽었을 때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것 하나를 골라 써 보기.

   본격적인 책읽기 과제는 영화평 쓰기야. 일단 영화를 같이 봐야 하는데, 그게 좀 쉽지가 않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매번 석식시간을 한 시간씩 빼서 보는 방법이 있는데, 물론 저녁밥이 문제겠지? 또 저녁 먹고 바로 학원으로 가는 학생들도 있으니 어려울 것 같다. 아니면 3일 동안 9교시를 빼는 방법(영화 상영 시간이 3시간임)도 있지만, 너무 자습을 많이 빠지는 거 같아서 좀 그렇고! 월요일 하루를 빼서(9교시부터 자율학습 끝까지) 보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 여러 가지 문제가 걸리고. 토요일 모였을 때 근처에 영화를 함께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은데 어쩌지?

   지금 다른 공간을 섭외 중인데, 우리 학교랑 구포도서관 정도 밖에 안 떠올라.(초읍의 문화회관이나 도서관은 우리가 원하는 그런 공간이 없다네.) 이거 큰일 났네. 그렇다고 각자 영화를 볼 수도 없고.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이 쪽지 받자마자 연락해 주면 좋겠어. 아니면 그냥 모임 대신에 영화만 한 편 보고 말까? 정 안 되면 우리가 모일 때 같이 영화 보고 각자 내용을 정리해 오는 걸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생각하기 싫은 시나리오야.(이제 모임도 서너 번 정도 남았는데 아깝잖아. 사실, 이 쪽지가 늦어지게 된 것도 이 영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생각만 길어지고 해결은 안 나고…해서 지금에서야 쓰는 건데, 결국 결론은 안 난 채로 이 쪽지를 마감해야겠다.)

   정리하면 생활나누기에 발표할 활동지는 밑줄을 읽어보면 좋겠고, 영화 보고 비평하는 건 나와 사회자의 생각으론 부족하니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줘.(선물 줄게.)

   어느새 가을의 터널이 끝나려나 보다. 하기야 워낙 짧은 계절의 터널인데다가 너희들은 이 터널에 눈길을 주며, 마음을 주며 살기가 쉽지 않은 거 누구보다도 잘 안다. 우리 동아리 활동이 더 넓고 깊은 생각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너희들의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같이 들었다.

   다음 모임이 ‘빼빼로데이’라고 딴 데 가면ㅠㅠ


토요일에도, 다음주 화요일에도 계속 만나는 느티나무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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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1-11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네시는군요.
여기에 나온 영화들이 요즘 애들에겐 약간 지난영화여서..(물론 좋은 영화들이지만)..물론 다른 영화를 보시겠지요? 독서모임에 청강 한 번 해보고 싶어지네요.ㅋㅋ

느티나무 2008-11-13 08:36   좋아요 0 | URL
영화는 도그빌(2003)을 봤어요. 모임하기 전 금욜에 학교에서 자습을 빼고 영화를 봤습니다. 오~ 영화를 볼 때의 진지한 표정들! 화요일에 책 이야기랑 영화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요, 수준이라고 할 것도 없는 수준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토론에서 보이는 자세는 아주 진지해서 보는 내내 제가 행복했답니다.(교실에서는 '프로이트'라고 하면 아는 학생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 애들은 집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있어서 읽어보려고 두 어번 시도했다는 정도니까요.) 이번에 읽는 책이, 촌놈들의 제국주의(우석훈,개마고원)인데요. 드팀전님! 우리 아이들에게 1시간 정도 강연해 주시면 어떨까요? ㅎ

드팀전 2008-11-14 18:08   좋아요 0 | URL
^^ 지루한 영화를 보셨군요 ㅋㅋ
강의는 무슨..가당치도 않습니다.
대신 진지한 모습들이 어떤 건지 한번 구경은 해보고 싶군요. 불러주신다면 말이지요.
제가 언젠가 영화 <11번째 시간>에 대한 페이퍼를 올린적이 있는데 필요하시다면 대여해드리지요.ㅋㅋ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좋은 일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이 글은 일제 시대에 부당한 차별과 조선인 학생의 모욕에 항의해서 일어났던 학생독립운동(1929년)을 기념해서 세운 비에 새겨져 있는 글귀입니다.

   그 날, 11월 3일을 기념하여 제정된 것이 바로 학생의 날(학생독립운동기념일)입니다. 올해는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이네요.

   우리 학교에서도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부 선생님들께서 학생의 날을 기념해서 해마다 다양한 행사를 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해는 소박하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참여하시는 학생의 날 행사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이렇게 불쑥 의견을 드립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받은 선물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학생이 곱게 써 준 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올해는 선생님께서 우리 학생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한 번 표현해 보시면 어떨까요? 학생들에게 단 한 줄의 메시지도 좋습니다. 글만 보내주시면,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예쁜 종이에 옮겨서 선생님께서 주로 수업을 들어가시는 학년별로[1학년은 1층 게시판, 2학년은 4층 게시판, 3학년은 3층 게시판] 하루나 이틀 정도 게시하려고 합니다. (글만 보내주시면 나머지 준비는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업무로 바쁘신 중에도 학생의 날을 맞아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표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짧은 메시지를 보내주실 분은 저에게 미리 귀뜸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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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8-11-0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까지 글을 쓰겠다고 하신 선생님은 정관모, 허순희, 정한철, 김지혜, 서원만, 최종구, 박대현, 강성희, 선생님이시네요. 그리고 저 느티나무입니다. 음, 여기에 더해 한 열명만 더 글 쓰시면 성공이겠네요.
오늘 현재까지 윤은진, 윤성희, 조성관, 김현숙, 조미경, 김원전샘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어제 9교시와 자율학습 시간에 글밭 나래 우주인 모임이 있었다. 책은 위화의 인생이었고 책읽기 후 함께 나눌 이야기의 주제는 내 인생 최고의 사건/최악의 사건이었다. 지난 모임은 조금은 특별했던 지라 꼭 기억해 두고 싶다.

   9교시는 생활나누기 시간으로 활용하는데, 올해 들어서는 일상적인 이야기 보다는 특별한 활동을 많이 해 보고 있다. 예를 들면 내 마음에 남는 노래 부르기,처럼 자기를 표현하거나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과제 발표가 많은데, 어제는 사회자 권한으로 몸풀기 게임을 했다. 벌칙이 있는 수건돌리기, 지난 주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술레잡기, 고기잡이 등을 하니 1시간이 뚝닥 가 버렸다.

   저녁을 먹고 다시 모여 본격적인 독후 활동 시간. 먼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간단하게 발표하기였는데, 아이들은 책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많이 떠올린 것 같았다. 사실 이 책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것인데, 의외로 죽음이 주는 느낌에 대한 말들이 자주 나와 좀 의외였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한 것이고,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간다는 말도 되니까.

   아이들에게 책을 건네 줄 때 "이 책을 읽고 눈물이 흐르면 네가 인생에 대해서 뭘 좀 아는 것이야"라고 말해 주었는데, 아이들은 그 말이 크게 걸렸나 보다. 대부분 눈물은 안 나던데? 아직 나는 인생을 잘 모르는 것인가? 하는 반응이 주였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자기가 쓴 글을 읽던 엽이가 눈물을 흘렸다. 책을 읽으면서 울었던 생각이 다시 났는지 자기가 써 온 글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곧 울먹이며 말을 겨우 알아들을 정도인 채로 겨우 다 읽었다.

   나는 책을 건네 줄 때 시험기간이라 부모님이 먼저 읽어 보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 책을 읽은 학생도 꽤 있었다. 예서, 민아, 정인(황), 정인(박)이 어머니나 아버지께서 책을 읽으셨다는데, 내가 부모라면 자식과 책을 두고 서로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학생들도 부모님께 책을 권했을 텐데 이 학생들은 특별히 발표시간에 부모님이 책을 읽으시고 느낀 점을 알려주셨다.)

   독후 과제로 내 인생의 최고의 사건과 최악의 사건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두 사건을 모두 발표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한 명이 최고의 사건을 이야기하면 그 다음 사람은 최악의 사건을 발표하기로 했다.

   문이 잠겨서 밖에 오래 있었던 이야기, 방송부원이 된 이야기, 같이 있던 친구가 교통사고가 났던 사건(설빈이가 이야기를 할 때 조금씩 목소리가 떨렸다.) 어머니가 수술 받은 일(이 얘기를 들을 때도 다들 숙연해졌다.), 초등학교 때 좋아한 남자애들 생일에 초대했던 일, 오랫동안 키운 강아지를 잃어버린 일(예서도 이 때 울었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서 신화 콘서트를 본 일(이건 현주-현주는 신화의 10년 팬!) 피아노를 치는 무대에 섰던 일, 부모님이 힘들게 사셨던 일... 돌아가면서 최악과 최고의 사건이 엇갈리는데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어제가 특별한 이유는 도경이 때문이었다. 도경이는 '이 이야기는 저번에 시 낭송회 때 읽은 시와 관련이 있어요',라는 말로 자기가 쓴 글을 읽어내려 갔는데 한 서너 문장을 읽었나, 그 때부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지자 아이들도 모두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니까 글을 읽고 있는 도경이도 읽기를 멈추고 서러워서 울고, 도경이의 말을 듣고 있는 아이들도 슬퍼서 펑펑 울었다. (아마 제일 먼저 울었던 건 의외로 '동재'였을 것이다.)

   평소에 눈물이 많은 나도 눈가에 눈물이 흘러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랐다.(더구나 우리는 무용실 바닥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발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울고 있는 모습이 바로 앞에서 빤히 보인다.) 그래도 도경이는 울먹거리며 끝까지 자기가 쓴 글을 다 읽었고, 도경이의 발표가 끝나자 아이들이 우르르 다가가서 꼭 안아주었다.

   아직도 발표를 못한 친구들도 서넛이나 남았고, 나도 내 이야기를 못 했지만 아쉽게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서둘러 짐을 챙기는 아이들의 표정에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은 얼른 밖으로 나갔고, 몇은 둘러서서 발표를 들으며 못 다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제일 표정이 밝아 보이는 건 도경이였다. 마음에 담았던 얘기를 다 풀었으니 어제 가장 속이 편했던 사람은 당연히 도경이였겠지.(도경이는 내가 맨날 '찌질이'라고 부른다. 예쁜 자식이 부정탈까 싶어서 '개똥이'라는 천한 이름으로 불렀다는 이야기와 똑같은 이치로 말이다. 그런데, 어제 발표로 '에이스'로 부르기로 했다.) 

   내가 무용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도경이의 절친한 친구인 영원이가 전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나오면서 우리 조금 전에 다 울었다~,라고 말은 하면서도 방긋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을 보더니, 오늘 뭐 했는데? 너희들 좀 이상하다~,를 연발했다.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참 씩씩하게 들렸다. 덕분에 나도 좀 울었더니 기분이 좋았다.

   나도 교무실에 내려와 가방을 챙겼다. 반 친구들과 함께 지현이가 내려왔다. 도경이 얘기를 잠깐 꺼냈더니 아직도 그 생각이 나는지 눈물이 그렁그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나오면서 아름다운 밤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참, 어제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정인이의 문자가 왔다.-오늘 모임으로 한 걸음 더 서로에게 다가선 것 같다고!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라고 답했다.

   또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게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용기 있는 사람이 또 행복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여 주었다.

   어제는 참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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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내 인생 최대의 사건은 말이야……”하고 싱긋 웃으며 너희들에게 말을 건네려다가 멈칫거렸다. 순간,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사건의 연속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 오늘만 해도 등교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서늘한 가을기운에서 느낀 상쾌함이나 스탠드 위에 가지를 옆으로 길게 늘인 느티나무 너머로 내다본 멋진 풍경 때문에 들었던 흐뭇함을 ‘인생은 사건의 연속’이라고 구체적인 사건을 말하려던 내 이야기 속엔 분명 빠져 있을 거니까. 그래, 그래서 다시 글을 쓰면서 결국은 되돌아온 내 개똥철학의 결론-물론 이것은 위화의 ‘인생’이라는 소설을 읽고 들었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이 생각이 나더라.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이런 인생도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작가 자신은 이런 말로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해 두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도 작가의 질문을 씹어본다. 우리도 가끔은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곧잘 말한다. 그러면서도 늘 오늘의 고통스러운 삶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 밑거름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결국엔 현재 우리의 고통스러운 삶이 지나가고 나면 이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그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화의 소설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눈물을 보태며 고통스러운 강을 건너더라도 그 강 건너엔 우리가 기대한 그 무엇도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네 삶은 비루한 것인가? 희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희망이 없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삶이 비루하다는 데는 대체로 수긍한다. 그러면 그런 비루한 삶은 왜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살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고? 사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위화, 인생, 을 읽고 쓴 감상문 중에서)

   아마 부모님이 이 소설을 읽으셨다면 내 말에 공감하시리라 믿는다.(아직 너희들은 앞길이 창창하니 이런 내 말이 잘 흘러들지 않겠지만! 그래서 무척 아쉽다.) 조금 더 인생의 속살을 맛 본 사람들은 알기 마련이거든. 눈물의 강을 건너면 아름답고 찬란한 무엇인가가 우리를 맞아줄 것이라고 믿지만-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지!- 사실은 그 강을 건넌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른다구! 그럼 왜 열심히 살아야 하냐구? 그건, 글쎄다.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지는 않겠지.(유명한 철학자? 종교인?이 되었을 걸?)

   그만하고! 이제는 우리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우리 모임은 다음 주 화요일이야.(28일) 숙제는 당연히, 위화의 ‘인생’이라는 책을 완독해 오는 것! 글쓰기 숙제는 내 인생 최고의 사건과 내 인생 최악의 사건!이라는 주제로 각각 사연을 소개하는 글을 써 올 것! 재미있으면서도 진지한 글쓰기 기대할게.(항상 하는 말이지만 글은 써야 자신감이 생기고 실력이 는단다.)

   오늘 연극 보러 가는 건 담임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으니 왠만하면 허락해 주실 거야. 최대한 정중하게 가서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으렴. 8교시 후에 중앙계단에서 만나기로 하자. 그리고 내일(토)은 토요특강 있는 거 알고 있지?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개요 설명과 2009년 입시 경향, 논술 방향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다니까 입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또, 출석관리 잘 해야 하는 것도 잘 알지?(이건 내가 나중에 도와줄 수 없거든.)

   우리에게 슬픈 일은 중간고사 성적이 나쁘게 나온 것이 아니라, 지나간-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그 순간에 어쩌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슬픔은 자기 자신이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니 치유도 자기가 해야 할 몫이다. 다음엔 그런 자책이 들지 않도록 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슬픔에서 해방 되는 길이고!

가을볕이 정겹다, 나중에 보자! 10월 24일 느티나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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