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분명한 것부터 말하자면, 넌 나를 구해줬어. 네가 시간 타래를 내려오는 기척은 나도 느꼈어. 내생각에, 살아있는 사람 가운데 가장 예민하게 너의 발소리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나일 거야. - P113
블루는 도시를 사랑한다. 도시의 익명성과 냄새와 소리를 사랑하지만, 숲 또한 사랑한다. 다른 이들은 조용한 곳으로 여기지만 결코 조용하지 않은 장소인 숲을 블루는 어치나 딱따구리, 찌르레기 따위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기도 하고, 자그마한 날개를 열심히 파닥이며 결투하는 벌새들을 보고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손을 뻗어 동고비와 박새와 알락솔새에게 내밀면 새들은 포르르 날아와 그녀의 손가락을 나뭇가지 삼아 앉는다. 오색딱따구리의 머리 깃을 다독이며 그녀는 그 깃의 색깔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 대신 그것을 만질 때 느낀 짜릿한 긴장감을 바늘로 또 실로 삼아서, 가든이 보기에 그녀가 숲에서 느낄 법한즐거움으로 엮어 낸다. - P131
나는 이미 내 안에 너를 하나 만든 거야. 아니면 네가 네 안에 나를 하나 만들었거나 난 네 안의 내가나의 어딜 닮았는지 궁금해. - P133
나는 네가 나오는 꿈을 꿔 내 머릿속에서 네 자리가 자꾸만 커져 가 나의 물리적인, 사적인, 감상적인 의식 속에서, - P156
너의 자리는 다른 어떤 세계나 시대보다 더 커다래, 꿈속에서 나는 네가 이 사이에 문 씨앗이거나, 네가 대롱을 꽂은 나무야 내 꿈속에는 가시나무와 정원이 나와 홍차가나올 때도 있고. - P157
하지만 너를 떠올리면 나는 함께 고독해지고 싶어. 나는 맞서 다투면서도 한편으로는 얻으려고 애쓸 상대가 필요해. 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살고 싶어. 나는 너에게 하나의 맥락이 되고 싶어. 너도 나한테 그런 존재가 돼 주면 좋겠어. 난 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 그리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둘이서 함께 알아내고 싶어. - P181
레드, 난 널 사랑해. 레드, 난 그렇게 적은 편지를 매 순간너에게 보낼 거야. 딱 한 마디만 적힌 편지, 네뺨을 쓰다듬고 네 머리카락을 거머쥘 편지, 너를 깨물 편지, 너에게 흔적을 남길 편지를 나는 독개미와 대모벌로 너에게 편지를쓸 거야. 상어 이빨과 가리비 껍데기로 편지를 쓸 거야. 바이러스와 너의 폐 속에 들이치는 아홉 번째 파도의 소금기로 편지를 쓸 거야. 나는...……… 그만, 이제 그만, 그만할게. 이런 일을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될 것 같아. 나는 케팔로스에 피는 꽃과 해왕성에서 나는다이아몬드를 원해. 그리고 우리 사이에 있는 지구 1000개를 불태우고 그 재에서 뭐가 피어나는지 보고 싶어. 우리가 나란히 손을 잡고 맥락 속에 숨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오로지 우리 둘만 알아볼 수 있는 의미들을 난 내가사랑했던 모든 장소에서 너를 만나고 싶어. 우리 같은 사이는 어떤 식으로 맺어져야 하는지 난 모르겠어, 레드. 하지만 너와 함께 그 답을 알아보고 싶어서 더는기다릴 수가 없어. - P195
그들이 지닌 유일한 미래는 따로 함께인 시간이다. 둘은 너무도 오랫동안 서로를 모른 채 살았고, 시간을 누비며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따로였고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모습을 빚었고 그러는동안 서로에 의해 모습이 빚어졌다. 그러니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왜 안 된단 말인가? 아플 것이다. 그들은 전에도 아팠던 적이 있다. 상대의 목숨을 구하려고.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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