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대체 뭔말이여..
인생의 맛 - 몽테뉴와 함께하는 마흔 번의 철학 산책
앙투안 콩파뇽 지음, 장소미 옮김 / 책세상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1. 저자 '앙투안 콩파뇽'의 이름은 어쩐지 칼로리 높은 요리의 이름 같아 정겹다.


2. 그의 모든 말들에 다 동의하진 않을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3. 짧은 분량으로 한 꼭지가 구성되어져있고 책 자체도 얇아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지 않은 독서였다. 오타와 멍청한 문장들이 매끄러운 독서를 방해한 것은 물론이다.



아래 인용문의 「」부분은 수상록의 인용문을 발췌한 것.




마키아벨리즘은 국가의 안정을 최고선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국익의 이름으로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어기고 살인하는 것을 허용한다. 몽테뉴는 이 논리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어떤 경우건 기만과 위선을 거부했으며, 관례를 무시한 채 있는 그대로의 꾸밈없는 모습을 드러내고 생각한 대로 말했다.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가려진 길보다는 드러난 길을 선호하고, 솔직함과 올바름을 중시했다. 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며, 국익을 위해 결코 개인의 윤리를 희생하려고 하지 않았다. p.13-14

「나는 지나치게 강압적인 자와는 연을 끊는다. 실제로 나는 자신의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견을 낸 것을 후회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모욕으로 간주하는 어떤 자를 알고 있다.」 p.18

인디언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구대륙의 신성 불가침한 왕권을 이해하지 못했다.

「둘째로 그들은 우리 중에 온갖 편의를 차고 넘치게 누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나머지 반쪽은 허기와 가난으로 비쩍 말라붙은 몸으로 다른 쪽의 문전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이 빈궁한 반쪽이 어떻게 이 지경의 부당함을 참아내고 있는지, 어떻게 나머지 다른 쪽의 멱살을 붙잡지 않고 그들의 집에 불을 놓지 않는지 괴이하게 여겼다.」p.28

몽테뉴는 《수상록》의 도입부부터 마지막까지 강조하게 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 즉 성실성을 곧바로 전면에 내세운다. 성실성은 그가 자신에게서 인정하는 유일한 덕목이며, 그가 보기엔 모든 인간관계를 성립시키는 핵심적이고 필요 불가결한 기본 요소다. 성실성foi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피데서fides에서 유래한 말로, 피데스에는 성실성뿐 아니라 신의, 즉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모든 신뢰의 기초다. 믿음, 충실성, 신뢰, 그리고 비밀 고백,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상대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 p.57

「이 두 가지 교제(사랑과 우정)는 우발적이고 타인 의존적이다. 하나는 드물어서 곤란하고, 다른 하나는 나이와 더불어 시들어버린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나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한다. 세 번째는 바로 책과의 친교인데, 이것이 가장 확실하고 우리와 가깝다. 앞의 두 가지가 가진 장점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책은 꾸준히 그리고 손쉽게 누릴 수 있다는 그것만의 장점이 있다.」p.116-117

「책은 나와 전 여정을 함께하며 어디서나 나를 돕는다. 나의 노화와 고독을 위로하고, 권태로운 무위의 짐을 덜어주고, 성가신 친구들을 언제라도 떼어내주고, 극단적이거나 치명적이지만 않다면 고통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해준다. 괴로운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책을 집어들기만 하면 된다. 책은 이내 나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고 고통을 덜어준다. 또한 내가 보다 실제적이고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다른 편익이 없을 때에만 찾더라도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얼굴로 나를 맞아준다.」p.118

「우리는 죽을 것을 걱정하느라 제대로 살지 못하고, 살 것을 걱정하느라 제대로 죽지 못한다. 하나는 우리를 권태롭게 하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두려움에 몰아넣는다.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죽음에 맞서는 것이 앙니다. 죽음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런 해악도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15분간의 고통에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치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죽음을 맞을 준비를 준비하는 것이다. (‥·)내 견해로는 죽음이 끝이긴 하나 그럼에도 목표는 아니다. 인생의 끝이요 극단이나, 목적은 아닌 것이다. 인생은 그 자체로 목적이고 목표여야 한다.」p.139-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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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9-2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역시 당연히 요리이름일줄;; ㅋㅋㅋㅋㅋㅋㅋㅋ 수상록은 저도 인용문으로만 접했는데 꼭 읽어보고 싶어요!

다락방 2014-09-29 14:33   좋아요 0 | URL
나도 조만간 질러야겠어요. 자기전에 조금씩 읽어보면 좋을듯. 근데 그렇게 읽으려고 산 책이 너무 많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Alicia 2014-09-2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관심가는데요? 근데 다락방님은 별 세개 주셨네요^^

다락방 2014-09-29 15:36   좋아요 0 | URL
바로 밑의 페이퍼를 보면 아시겠지만 매끄럽게 읽히질 않아서요. ㅠㅠ
 
에피톤 프로젝트 - 정규 3집 각자의 밤
에피톤 프로젝트 (Epitone Project) 노래 / 파스텔뮤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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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에서 차세정이 내세운 보컬은 기존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부담스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차세정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선택하되 그들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바다' 라든가 'BMK', '김현정' 등의 가수들은 노래를 잘 부르긴 하지만 나로서는 듣기에 힘들게 느껴지는데, 기존 차세정의 앨범에 참여한 한희정이나 심규선 그리고  이번 앨범의 '손주희'와 '선우정아' 모두, 부담스럽지 않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노래를 잘하고 들으면서 힘겹게 느껴지지 않으니 차세정 앨범의 색깔과 잘 맞는다 여겨진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노래부르는 목소리로는 차세정이 압권이다. 차세정은 위에 언급한 모든 보컬들처럼 노래를 '잘'하는건 아니지만 그 목소리가 무척이나 조심스러워 사랑스럽다. 조용하고 수줍은 듯한 목소리, 조심스러운 그 느낌이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나 크- 나는 이 목소리를 사랑하는구나, 싶어졌다. 


며칠전에 정식이랑 '목소리'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정식이는 누구의 목소리가 좋고 누구의 목소리는 그렇게 좋진 않고...하며 말을 하는데, 그러고보니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말하는 목소리에 대해 '좋다' 혹은 '싫다'에 대한 감정을 가졌었다는 생각이 들질 않는거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사소한 몸짓이라든가 태도, 웃는 모습 혹은 그들에게서 맡아지는 향기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했지만 목소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목소리에는 내가 예민하지 않은가보다, 생각하다가 정식이와 내가 동시에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았는데, 그 중 누구도 특별히 목소리가 좋다라든가 싫다 라는 느낌으로 떠오르질 않는거다. 그렇지만,


노래 부르는 차세정의 목소리는 좋았다. 이렇게 조심스러운 사람이라면 어떤 관계를 맺어도 힘들지 않게 할 거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 목소리를 가진 남자가 상대에게 집착을 하지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노래들 면면을 살펴보면 그는 사실 상당히 집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앨범은 이제 아플만큼 다 아팠다는 생각이 든다. 《긴 여행의 시작》과 《유실물 보관소》에서 한없이 아파하다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에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애를 쓰고 《각자의 밤》에서 비로소 털어낸 느낌. 그는 이제 '생각하려고 해야만 생각이 나는' 단계에 이르른 것 같다. 노래들의 안정된 느낌 덕인지, 이 앨범은 바로 전의 앨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보다 훨씬 좋다. 사실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는 별로였어.....마음에 쏙- 드는 노래가 한 곡도 없었어.....



에피톤프로젝트를 좋아해서, 차세정을 좋아해서, 이 앨범을 특별히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에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해달라고 할까, 하다가 어쩐지 '나 시디 하나만 사 줘' 라는 말을 하기가 도무지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아 그냥 내가 샀다. 그리고 실린 곡들을 차례대로 들으면서 내가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서 들어도 충분히 소중하고 아름다운 앨범이니까. 앨범에 집중하기 위해선 그 편이 더 나았던 것 같다. 한 곡 한 곡 음미하면서 이 앨범을 내 스스로 선택했다는 데 대해 강한 자부심이 밀려들었다. <낮잠>도 좋고 <미움>도 좋다. 요즘 이 앨범을 듣고 있는 친구중 한 명은 <시월의 주말>이 참 좋다고 하는데, 나는 현재 <회전목마>가 가장 좋다.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라는 가사에서 나는 그냥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이 세계로부터 동떨어지게 되고 땅바닥에서 십일센티쯤 공중부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차세정이 만든 음악, 그렇게 내가 선택한 음악이 내 속에 아주 흠뻑 스며드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속에서 특별한 감정으로 나를 감싸주고, 현재를 살면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곡이다. 



그는 이제 혼자 지내는 밤을 안다. 언젠가 이별을 한 후, 이제 앞으로 펼쳐질 모든 주말들이 내 것이란 생각에 짜릿했던 기억들이, 이 앨범을 들으며 떠올랐다. 혼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안락한 밤들과 더 많은 사랑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흡족하다.



고마운 앨범이며 지독히 사랑스러운 앨범이다. 나는 그의 팬으로서 그는 나의 가수로서 이 사랑을 지속시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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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4-09-2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있을때면 무너지는 락방씨
으흠..

다락방 2014-09-24 12:03   좋아요 0 | URL
함께 있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그렇게 노래 부르는 에피톤프로젝트 때문에 무너지는 겁니다...( ˝)

Mephistopheles 2014-09-24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음악 리뷰라지만.......˝고기˝라는 단어가 눈에 안띄는군요...(그동안 식생활에 변화가 온 건 아닌가요.)

다락방 2014-09-24 14:57   좋아요 0 | URL
엊그제도 삼겹살을 먹었습니다만. ㅎㅎㅎㅎㅎ
그나저나 오랜만입니다, 메피스토님!
 
싱고,라고 불렀다 창비시선 378
신미나 지음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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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아마도 첫 연애였다면, 그래서 아마도 나는 그토록 혹독히 앓았나보다. 이런 사람을 어찌 또 만나려나, 이런 감정을 또 어찌 느끼려나, 내가 앓았던 시간은 길고도 길었고, 그 긴 시간동안 나는 혹여라도 그를 다시 보게 된다면 하는 기대감으로 지냈다. 그 시간은 너무도 길었고, 내 앞으로의 날들에도 역시 그를 향한 그리움만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대체 그게 아니라면 또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어린날 내가 만난 그 남자가 진짜 남자였고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더 뜨거운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다른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고, 설사 다른 사랑을 해도 그 사람을 사랑했던 만큼 사랑할 수 없을거라고 감히 단언했다. 오, 그러나 자신에 대한 확신은 얼마나 위험한가. 시간은 흘렀고 나는 그를 당연히 잊었으며, 웬걸, 우리가 했던게 정말 사랑이긴 했나, 하는 자조 섞인 중얼거림도 찾아왔다. 그거, 사랑도 뭣도 아니었던 것 같어, 라는. 심지어 그를 사랑(이라고 생각했지, 그때는)했던 것보다 더 큰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생기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면서, 무시로 떠오르던 그는 어느 순간, 억지로 기억하려고 해야만 기억나는, 애를 써야만 떠오르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옛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첫 연애는 옛일이 되었다.




옛일



해마다 잊지도 않고 공양하나

저 꽃들, 보노라니

어쩌나 

죽어도 너를 못 잊는다는 약속은

거짓이었어라



너 없어도 찢어진 살 위에 새살 돋고

밑이 젖는 내 몸 봐라

어쩌나

향불 한올 피우지 못하고

너는 이제 강가에 던진 돌이나 되었는데



내 슬픔만으로 꽃 모가지 하나 꺾을 수 있느냐

산비알에 독짝 하나 굴릴 수 있겠느냐



내가 너를 어찌 잊어

어찌 잊을 수가 있어

지글자글 타는 자갈밭 맨발로 걸으며

울던 내 낯도 옛일, 다 옛일




한번은 같이 바다를 보았었다. 달무리를 보고 꽃게찜을 먹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던 일이 그 바다에 있었더랬다. 환한 대낮에는 방파제 위에 훌쩍 그가 올라섰고, 질 수 없어 내가 올라섰다. 폴짝 폴짝 그가 이 방파제에서 저 앞의 방파제로 발을 옮길때, 그러나 나는 그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곧 울 것같은 목소리로 못해, 하며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다시 폴짝 폴짝 내 앞으로 와, 무서워 벌벌 떠는 내 손을 잡고 육지로 데려왔다. 나는 폴짝폴짝 방파제를 넘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는 폴짝 포올짝 더 먼 데로 갈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 일도 옛일, 그 앞에서 못한다고 주저 앉았던 나도 아주 머언- 옛날의 나. 방파제 앞에 선 그 당시의 내 가슴속엔, 그때는, 가득했던 사람도 옛, 사람.




파랑파랑파랑파랑파랑



방파제만 따라 걸었네 병신같이 미쳐 걷고파, 가닥진 머리칼에 미역 냄새 풍기고 배꼽에 잔디씨처럼 까만 때는 끼어서



내 속에 작은 파도 밀려온 적 있었네



네 두 손을 꼭 끌어다 가슴에 대고 녹을 듯이 몸이 젖었던 생각만 되풀이하던 그때, 그날들의 눈 먼 물보라





오이지


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왔다



물기 좀 짜줘요

오이제를 베로 싸서 줬더니

꼭 눈덩이를 뭉치듯

고들고들하게 물기를 짜서 돌려주었다



꿈속에서도

그런 게 미안했다





잊혀진 옛일이 있고 잊혀진 옛사람이 있다. 그러나 아직 잊혀지는 중인 사람이 있고 그렇게 옛사람으로 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잊으려고 노력해도 의지로는 되지 않는 것처럼, 잊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 순간에는 잊혀지는 것 역시 의지로는 되지 않는 일. 나는 그런대로, 되는대로 내버려두겠지만, 혹여 내가 아직 당신을 못잊어 내 꿈에 당신을 초대하거든 당신 역시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서도 같은 꿈을 꾸어 그 속에서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 인사를 나누고 웃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꿈에서는 하도록 하자. 그리고 눈을 떠 아 이것이 꿈이었구나, 하고 알게 됐을 때, 바로 고개를 털지는 말자. 누운 자리에서 혹은 그렇게 앉은 침대 위에서, 조금쯤은 꿈을, 꿈 속의 서로를 생각하도록 하자. 하루를 몽글몽글하게 시작하는 게 나쁘진 않으니까. 그 시간이 혹여 자다 잠깐 깬 새벽이라면, 다시 눈을 감고 한 번쯤 더 만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칸나꽃 분서



절명을 꿈꾼들 저 꽃같이는 심장을 걸 수 없었네

계절은 매번 색다른 변절을 꿈꾸어왔으므로

이제 나를 거쳐간 연애는 미신이 되었다



돌아본들 유산 후에 돋는 입덧 같은 것이었나

꽃 진 자리 화기가 남아 피 더운 까닭은

용서하라, 눈 매워 혈서 한잎 흘려 쓰지 못하는 것을



오로지 그대, 한올 그림자마저 태우고 높이 떠나라

이 여름 다 가고 붉은 두근거림마저 지면

당신 눈짓과 살내를 곁에 두고 오래 잊을 것이라



화대처럼 받아든 이 시간에 불붙이고

연기도 없이 지등(紙燈)타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라





눈 감으면 흰 빛



살 무르고 눈물 모르던 때

눈 감고도 당신 얼굴을 외운 적 있었지만

한번 묶은 정이야 매듭 없을 줄 알았지만

시든 꽃밭에 나비가 풀려나는 것을 보니

내 정이 식는 길이 저러할 줄 알아요



그래도 마음 안팎에 당신 생각을 못 이기면

내 혼은 지읒 시옷 홑겹으로 날아가서

한밤중 당신 홀로 잠 깰 적에

꿈결엔 듯 눈 비비면 기척도 없이

베갯머리에 살비듬 하얗게 묻어나면

내가 다녀간 줄로 알아요, 그리 알아요




이별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이제 내게는 그렇게까지 혹독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이별중이 아닌, 이별을 지나온 상태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또 이별을 맞이하게 되면, 이별은 언제나 혹독한 것이다, 라고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를 일. 그러나 이 시집의 시인에겐 이별이란 언제나, 항상, 지금도 혹독한 일인가보다. 혹독히 앓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둔 흔적이 이 한 권의 시집이 되어 나온 것 같다. 이를 악물고, 아프지만 내가 지금 겁나게 아프다, 고 소리칠 수 없어 대신 시로 표현한 느낌. 나는 시인과 거의 나이차이가 나지 않지만, 다 괜찮다고, 모든게 지워지고 잊혀지는 시간이 원하지 않아도 오고야 만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시인은 그렇겠지, 하고 더는 대꾸하지 않은 채, 또 한편의 시를 써낼지도 모를 일. 


시는 감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시인에겐 그 감정이 넘치도록 많아, 뭔가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아니, 그것은 완결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책망이 아니라, 다 쓰지도 못해 기력이 빠졌구나, 라는 느낌. 시인이 아득하고 젖어있어서 덩달아 나까지 아득하게 젖어버렸다. 눅진한 시집, 눅진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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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9-18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말씀드리는게 실례겠지만 정말 많은 만남을 가지셨던것같아요 그추억들이 님이읽은책과 결합해 아름다운글들로 만들어지고요 하나하나가 다 아름다운 시같습다

다락방 2014-09-19 09:46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마태우스님. 많은 만남을 가지진 않았고요, 있는 만남을 재탕삼탕 우려먹고 있는 겁니다. ㅎㅎ 아름다운 글이라뇨, 제 글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죠. 그렇지만 고맙습니다!! 꾸벅 (--)(__)

자작나무 2014-09-2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수많은 남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나요...

다락방 2014-09-21 23:55   좋아요 0 | URL
수많은 남자들이라뇨. 오해십니다. ㅎㅎ
 
[100자평] 영국 정원 산책
영국 정원 산책 -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의
오경아 지음, 임종기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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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는 이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정원엔 자연스러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풍경식 정원은 '자연스럽게'가 아니라 기존의 정형화된 패턴을 깨고 싶어 탄생시킨 또 다른 스타일이었다. 구불거리는 호수는 수천 명의 인부가 삽으로 땅을 파서 만든 인공 호수이고, 우거진 숲의 조화로움은 인간의 힘이 아니면 결코 나란히 설 수 없는 낙엽수와 상록수가 자연보다 더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든 조합일 뿐이다. 그래서 이 정원을 두고 훗날 사람들은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자유로움'의 정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원은 우리가 꿈꾸는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이상과 파라다이스일 뿐이다. 정원이 지극히 자연을 닮고 싶어 하지만 결코 자연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55)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내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현재의 나는 '전원 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나이 들어 시골 가서 조용히 살고 싶다, 고 말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간혹 만나게 되는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것이 삶에서 휴식을 의미하는 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보지만 그렇다한들 나는 그 휴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거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부러 시간을 내어 제주도를 찾고, 제주도에서 살기를 원하고 하는 모습도 나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한적함과 고요함 그리고 자연이 주는 풍경이 좀 무섭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은 내게 너무나 거대하며 웅장하고 친해지기 많이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면서도 내가 수목원을 찾고, 공원을 산책하기를 즐겨한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 지 몰랐다. 단적인 예로, 시간을 내어 제주도로 휴가를 가기는 싫은데, 왜 광릉수목원엔 가고 싶을까? 결국은 나도 자연을 원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왜 여기는 되고 저기는 안되는걸까? 왜 저기는 가기 싫고 여기는 가고 싶을까? 이건 어디에서 오는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내가 원한건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란걸 알게 됐다. 내가 공원을, 수목원을 더 좋아하고 또 그런 곳을 찾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것은, 그것들의 배경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책속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정원들 역시 그랬다. 나는 시골에 가서 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 책에 나온 정원들을 산책하기 위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쯤은 기꺼이 뚝- 떼어낼 의향이 있는거다. 사람들이 만들어둔 연못을, 사람들이 심어놓은 꽃과 나무를, 사람들이 자신의 팔로 가지치기 한 그 인공적임을, 그 공간들 사이에 의도적으로 둔 바위와 자갈과 벤치를, 나는 경험해보고 싶다. 그것은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 하고 싶은 일이기까지 하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기며, 반 년쯤 영국에 머물며 한가로이 이 정원들을 모두 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누리고 싶은 것, 내가 가장 함께하고 싶은 대상, 내가 최종적으로 머물 곳은, 결국은 사람이라고 나는 이제는 결론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거닐고 그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누리는 것도 좋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물론 좋다. 혹여 벤치에 앉아 혼자 사색하거나, 혼자 천천히 걷는 시간 속에도, 그곳이 정원이라면 나는 풀과 꽃과 나무와 바위의 숨결을 맡으며 동시에 인간의 숨결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점이 내게는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될 것 같다. 안심이 될 것 같다. 




영국의 정원들을 천천히 산책하며 호흡하는 날들이 내 인생에 언제고 오기는 올까? 내가 기꺼이 짐을 챙겨 그곳으로 가게 될 순간이 올까? 아침에 눈을 떠 거하게 식사를 하고 편한 복장으로 정원을 찾는 삶. 내리쬐는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벤치에 앉아 과거를 혹은 미래를 가만히 생각해보고, 혹여라도 벌레를 밟아 죽이게 되지는 않을까 조심히 걷는 그런 순간들.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천천히 샤워를 하고, 다정한 사람들과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거하게 술상을 봐서 술을 마시는 그런 사람이, 내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 빌어먹을 나라에서 빡시게 일해봤자 스끼야끼는 먹을 수 없고 고작 황태만 뜯어야 하는 이 현실에서, 내가 벗어날 수 있을까? 황태가 맛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십년 이상 직장생활 했으면 스끼야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 먹을 수 있어야 되는거 아니야??


그 곳에 가고 싶다. 두 다리에 알이 땅땅하게 박이도록 걷고도 싶다. 종아리에 알이 박이고 허벅지에도 근육이 솟아나면, 레슬링도 할 수 있겠지. 이 모든 게 영국 정원을 반 년간 돌아다니다 보면 가능해질텐데.


그런데 알은 박이는 건가 박히는 건가????























돈만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 순 없지만 돈이 없다면 정원 예술은 절대 꽃필 수 없다. 이것이 정원이라는 예술이 결국은 귀족의 문화를 주심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결코 사거나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의 힘이다.
수백 년 습기 속에 피어나는 돌에 낀 이끼, 바람에 부대껴 바람결대로 휘어져 굵어진 고목들, 수만 번은 잘려 안으로 단단해진 생울타리는 돈, 인간의 힘이 아니라 시간의 창조물이다. 그러나 시간은 창조의 힘만 지니고 있지는 않다. 버리고 소멸시키는 힘도 함께한다. 한때는 풍성한 아름드리나무로 정원을 지켰을 고목이 병들어 밑동만 남긴 채 사라지기도 하고, 화려하게 반짝였을 돌계단이 수백 년의 찬이슬에 부식되어 허물어지기도 한다. 정원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이런 시간의 흐름 속에 점점 우리 것이 아닌 시간의 것이 되어간다. 오래된 정원엔 설익은 인간의 손길을 다듬고, 보듬어 만들어놓은 시간이 흐른다. (p.33)

집을 짓는 것도, 정원을 만드는 것도 날 위해서다.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이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것도, 이제 인간은 자연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더 나아가 우리 손으로 자연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이 지구라는 공간 속에서 잘 사랑가기 위해서이지, 인간과 관련이 없는 자연 그 자체를 위해서는 아니다. 어차피 우린 철저히 우리를, 엄밀히 나를 위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참 ㅏ이러니하지만 지극히 나를 위해 착해져야 하고, 남을 배려해야 하고, 때론 정말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원수조차도 용서해줘야 한다. 남을 위해서라면 결코 할 수 없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
왜 정원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도 결국 나를 위해서라고 말해야 할 듯하다. 우리가 정원을 만드는 것은 본능이다. 내 마당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고, 휴식처를 마련하는 것은 모두 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다. (p.45)

내 정원에 야생 새가 날아오기를 바라는 것도 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걸 지켜볼 나를 위해서다. 행복한 일은 나를 위한 정원이지만, 정원은 지나가는 사람까지도 즐거움을 나눠주는 고마움이 있다는 것이다. (p.45)

가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이해하는 일이다. 결코 내가 너의 입장이 될 수 없다는 걸, 절대 우리가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때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 역사를 이해한다는 건 그래서 철저하게 우리가 왜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는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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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4-09-04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꿈이 꼭 이루어 지길 바라요!


음.. 운동화 대신 탐스화를 가져가야겠어요. ( ") ㅎ

다락방 2014-09-04 15:11   좋아요 0 | URL
탐스화가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음 ㅋㅋ

건조기후 2014-09-0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정원을 햇볕 속에 거닐다 돌아와서 따뜻한 물로 천천히 샤워... 하아. 그냥 천국이네요 ㅜㅜ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이란 영화가 있었는데.. 귀족이 화가를 고용해서 정원을 그리게 하고, 이후에 정원이 조금씩 변하면서 결국 그림이 살인사건의 단서를 품게 되는 그런 영화였어요. 나는 왜 저렇게 평화로운 정원 풍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 멘탈이 왜 이 모양일까요? ㅎㅎ

알은 박이는 거 맞아요. ^^ 저도 순간 헷갈려서 찾아봤네요 ㅎ

다락방 2014-09-05 17:40   좋아요 0 | URL
저도 박이다랑 박히다 찾아봤는데 설명을 읽어도 둘 다 맞는것 같더라고요-0-

건조기후님, 언젠가 우리가 같이 정원을 걷게 될 날이 올까요? ㅎㅎㅎㅎㅎ 같이 걷고 들어와서 샤워한 뒤에 술을 마시면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는....ㅋ ㅑ -
 
블루베리 잼을 만드는 계절 - 2003년 전미도서상 수상작 꿈꾸는돌 6
폴리 호배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돌베개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는가보다. 엄마한테 사랑 받지 못해도 엄마를 사랑하려는 그 마음이 너무나 애틋하다. 유쾌한 농담과 아름답고 평화로운 결말이 펼쳐지는데도 나는 제 엄마에게 사랑 받지 못하고, 응답 받지도 못하는 사랑을 하고 있는 아이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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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9-0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능적으로 엄마란 존재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보호해주지 않으면 생존할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란 존재와 애착관계가 형성된다.........라고 쓰면
그렇게만 생각하고 산다면
문학은 없었을꺼에요....그죠?

다락방 2014-09-03 11:18   좋아요 0 | URL
엄마가 아이에게 결코 잘해주지도 않고 사랑해주지도 않고 보호도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데, 거의 내팽개다시피 하는데 이 소녀는 엄마에 대한 사랑을 계속 가지고 있어요. 그게 너무 아프더라고요. ㅠㅠ

유부만두 2014-09-03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랑 아이는 한몸이었으니까요.....아, 애들한테 잘해야겠어요;;;;; 구박하는 큰애한테 미안해지는 아침입니다. ^^

다락방 2014-09-03 11:20   좋아요 0 | URL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아이들도 불쌍하지만, 자신에 대해 큰 애정을 보이지도 보살핌도 보이지 않는 엄마를 향해 계속 사랑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유부만두님. 그래서 아이가 이모할머니들에게로 가서 관심과 사랑을 받고, 그 곳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걸 보는데 안도했어요. 그럼에도 엄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요. ㅠㅠ

건조기후 2014-09-0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데도 계속 애정을 갖는 아이도 애처롭지만.. 엄마의 무관심을 깨닫고는 사랑받기를 애저녁에 포기한 저같은 사람도 좀 불쌍하단 생각이 드네요. ;; 어린애 삶이 너무 삭막했어.. ;

다락방 2014-09-05 17:41   좋아요 0 | URL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애처롭다..는 거네요. 아..마음 아파 ㅠㅠ 어릴때는 사랑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어른이 되어 좀 거둬들이더라도 말이지요. 애들 마음아픈 거 싫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