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9.24

실컷 웃었다..
코믹조폭영화..
조폭 집안의 막내딸을 시집보내기 위한 일대 전략..
역시 정준호는 망가져야 멋있고(두사부일체처럼), 김정은은.. 영화에서 첨 봤는데.. 코믹연기가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재밌게 잘 봤다..
서울대 법대라느니, 현대카드니, 야후니.. 후원한 애들이 곳곳에 나오는 것도.. 꽤 괜찮아 보인다.. 거침없는 영화 속 상품광고... 차라리 가리지 않는 게 나아보이기도 한다..
영화 스토리야 모.. 그냥그냥그냥.. 그랬다.. 암튼간 확실히 웃끼는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2.09.18

지난주엔 저어기 명동 서울애니메이션 센타에서 하는 카나다 애니메이션 페스티발 2002에서 단편을 몇 편인가 봤다..

예쁜 그림들도 있고.. 기발까진 아니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특히 영화 <조의 아파트>를 연상시키는 <크리스토퍼의 방청소소동>이 꼭 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 뜨끔한 맘이 아주 쬐끔들었고.. 동화 <신데렐라>를 각색해 주인공을 펭귄들로 처리한 <신데렐라 펭귄 이야기>도 괜찮았다..

나름대로 철학적 색체가 느껴진 작품은 <대폭발>이란 애니. 애니 내용을 짤막짤막 소개해 놓은 책자에는 "한 가정의 부부 싸움과 지구의 핵전쟁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야기. 의외의 반전과 갈등의 해결과정이 따뜻한 유머와 감동을 선사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 애니는.. 부부싸움을 하느라 핵폭발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있던 한 부부의 썰렁한(? 어의없다고 하는게 맞겠다) 개죽음을 표현하고 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사회와 유리된 인간의 종말을 그리고 있다고 과대해석해 볼 수도 있겠고... 혹은 문밖의 세상에서 핵폭발이 일어나건 말건,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바로 그곳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진다는 현실론을 펼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토론자료로 써도 아주 좋을 만한 상황설정인 것 같다..

그 담에 본 건, 저패니메이션이라고 하는 일본 판타지 아니마 페스티발. <엑스 드라이버><사쿠라대전>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또 한편의 아니마를 봤는데.. 음.. 이 행사를 기획한 사람들은 판타지가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지가 궁금케 만든 축제였다. 기계인간만 나오면, 나쁜 요괴를 물리치는 전쟁류의 스토리만 나오면, 아니면 지금과 똑같은 상황인데, 시점만 2010년쯤으로만 설정해 놓으면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영.. 마뜩치 않았다..

단, 두 애니 축제를 접하면서.. 확실히 내 자신이 일본만화의 그림체에 익숙하다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일본 애니의 그림이 훨씬 화려하고 단조롭지 않다.. 그러면서도 귀염성도 있고.. 또 색감도 좋고... 모 그런 걸 느껴다..

근데 또 얼마전 <시사인물사전-상상력을...>의 책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글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때문에 현재 내 취향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든다. 일본은 헐리우드 애니가 전성기를 누릴 무렵, 자신들의 영화시장을 세계로 넓혀나가기 위한 전략으로 아이들 시청대의 tv 방송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공급했었고, 그 결과가 지금 일본 아니메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예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2.08.31

지연, 상영, 교식과 종로 씨네코아에서 영화 봄.

약간 늦어서 3분 정도의 첫 장면 놓침..

어바웃 어 보이는 가족영화처럼 보임..

주인공 마커스 :
우울증 환자를 어머니로 둔 마커스는 어머니의 취향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언제나 어머니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자살로 인한 어머니의 존재 상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커스는 채식주의자인 어머니를 따라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어머니의 18번 노래를 자신의 18번으로 동일시한다.. 하여 학교에서는 왕따가 되고, 어머니를 지켜주기 위한 고민을 하는 애 늙은이다;

윌 :
인간은 섬과 같다는 생각을 하는 무관계지향성 인물. 히트곡 하나를 낸 아버지의 인세를 통해 사는 유한마담 같은 백수.. 마커스와의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만족이랄까 행복 따위를 느끼게 된다.

생각나는 말.. :
둘만으론 서로를 지켜주기에 너무 부족하다... 사람은 섬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람 속에 있을 때만이... 어쩌구 저쩌구...

보고 나서..
재밌는 영화.. 번역이 매우 발랄하게 되어 있음..

(내일 생각나면 더욱 첨가 할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998. 11. 08

[트루먼쇼] 거짓 + 조작 = ?

0. 죽은 시인의 사회와 트루먼 쇼

'죽은 시인의 사회'로 잘 알려진 피터 위어라는 감독의 작품
이란다.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므로 두 영
화를 비교하진 못할 것 같다. 단 한가지, 두 작품의 공통된
부분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감독의 시선이 아닐까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자살을 통해 한 인물의 자유를 향한
욕망을 극대화시켰다면, 트루먼 쇼에서는 너무나 불확실한 미
래를 선택하는 도박의 유형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거나 두 작품 모두 자유를 억압하고, 강박
하는 기재들에 대한 저항을 거부감없이 그려내고 있는 것 같
다.

0. 진실과 거짓의 경계짓기

트루먼 쇼의 이야기는 태어날 적부터 20여년간 트루먼 버뱅
크(짐캐리)라는 한 인물의 모든 일상(아내와의 잠자리 장면만
을 제외한)을 '볼거리'로 제작해서 방송한다는 것일 게다.
이 곳에서 세계는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세트장)로 구별되며,
제작자는 유토피아적인 세계에 트루먼을 위치시킴으로써 만
족해 하며, 스스로는 그 세계를 지배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신
으로 자리한다.
이상세계는 다시 말하자면, 가공의/거짓의 세계다. 트루먼을

둘러싼 모든 것(아내도, 부모도, 친구도, 해도, 달도, 파도도,
하물며 기타등등까지~)은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거짓의
것들이고, 그 속에서 트루먼은 자신에게 보여지는 모든 것을
당연한/진실로써 본다. 세계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트루먼은 마치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우상처럼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도 좀
처럼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 잠시 자신이 좀 이상하다고 느낄
뿐...

0. 거짓 + 조작 = ?

트루먼 쇼의 제작자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가공되지 않은
인간의 참모습을 다루고 있다고, 아무런 가식도, 극적 효과도
넣지 않은 상태이기에, 진정한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
다. 단지 제한되어 있을 뿐, 트루먼은 가장 이상적인 세계에
서 살고 있는 축복받은 인간이라고...

그러나 어떤 세계에 살던 자신의 인생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제한되어 있었고, 누군가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타인에 의해 지배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그 제한된 세계로부터 탈
주하고자 하는 욕망이 표출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기에 이

영화의 메시지에 대해 공감가는 부분이 많을 듯 하다.(미디어
와 상업성 폭로라는 지점은 접어두기로 하자~)

이 영화는 현상적으로는 미디어가 한 인간의 일생까지도 거
짓으로 위장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며,
그것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듯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을 억압
하는 기재들(그것이 신이건, 미디어건, 가족이던, 돈이던 간
에....)을 깨버릴 수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사고가 더
우선이 아닐까 한다.
또한 순간적으로는 장자의 나빌레라~(^^;)처럼 꿈과 현실 사
이에서 내가 사는 1998년의 11월 광장동이라는 시`공간이 실
재계인지, 조작된 세계인지에 대한 의심이 문득 들기도 한다.
혹시 아나? 누군가 내가 사는 이 공간이 거짓의 세계라는 것
을 알려주기 위해 내게 트루먼 쇼를 보도록 조작했는지....(그
럼 난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암튼간~ 재미난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998. 06.14

 

0. 에듀케이션널 스릴러?

여고괴담은 공포영화라고 하기엔 너무도 현실비판적인 측면이
있다.(물론 난 공포 혹은 호러영화로 이야기 되는 영화들의 주된
특성을 알지 못하지만...) 사실 그 영화가 그리 소름끼친다거나
무서움을 전해 준 것은 아니기에 그것이 공포영화인지, 아니면
현실 비판을 과장을 통해 재현해내고자 했던 것인지, 또 아니면
그러한 현실이 이젠 아무런 감흥도 못 미칠 정도로 내게 혹은
우리에게 체화되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여고괴담을 입시위주의 교육현실을 비판한 교육영화의 한
부류로 분류하고 싶다. 늙은여우와 미친개로 대변되는 '선생님'
의 세계와 교복을 통해 획일화된 상징성을 갖는 아이들...
물론 학교라는 현장엔 코찌를 하고 '씹할과 썅년/좆나와 미친년'
이란 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아이들도 있고, 김규리
(작중 이름을 까먹었다~ 크!!)와 같은 대학진학을 포기한, 그래
서 늘 반 평균을 깎아먹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 공간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주'
로 대변되는 조용한/아무에게도 그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 부
류의 아이들처럼, 쥐죽은 듯이 적응하던가 아니면 아예 사라지

는 것일게다. 혹시라도 그들이 그들의 존재를 들키는 날엔 싸이
코 선생의 스트레스 해소용이 되어 버리고 만다.

0. 이 영화는 극단적인가?

이 영화는 물론 누구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극단'적이라는
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부분의 선생들을 싸이코 혹은
정신이상자로 폭력선생이나 학생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자,
고3의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인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기득
권의 눈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혹은 경험하지 못한자로써 이
영화를 본다면 분명 극단적이거나 '과장된 현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공안에서 인간적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또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던 '문제아'에겐 그것은 분명
한 현실이다.

0. 귀신만이 적응할 수 있는 공간-학교

"9년간 난 나의 존재를 들키지 않았어~/학교의 한 부속품처럼
그냥 자리를 채우고 앉아 있기만 하면 됐지."

결국 귀신임을 들켜버린 진주가 9년전의 친구이자 지금은 그 학
교의 신임교사가 되어 돌아온 은영에게 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졸업장이 갖고 싶어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다는 진주... 그
러나 9년 동안 계속 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녀는 친구가 없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금기이자 사치이므로.
그리고 사귐이란 선생들로부터 허락되지 않은 이단적 행위이므
로~
이 영화에서 귀신 곧, 비인간으로 대표되는 진주는 학교라는 공
간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지/없는
지 조차 알 수 없는 존재.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김규리
와 같은 인물은 이 공간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이 영화에는 성적만능 이데올로기와 경쟁 이데올로기 그리고 획
일주의로 대표되는 학교. 아이들에게 학교의 부속품이기를, 감정
없는 인간이기를, 아무런 의미없는, 왔다가 그냥 훌쩍 가버리면
되는 인간이기를, 있는 듯 없는 듯한 인간이기를, 가장 비인간이
되기를 가르치는 공간인 학교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존의 선생으로 대표되는 늙
은여우. 신임교사 은영에게 "너도 결국 늙은 여우가 될꺼야~"라
고 말하는 진주를 통해 이 영화는 교육의 폐단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여느 스릴러처럼 이런 일들의 반복을 상
징하듯, 만년 2등만 하다가 자살해버린 한 아이가 진주가 사라
진 자리를 대신하며 영화는 끝난다.

0. 너도 결국 늙은 여우가 될꺼야~


"너도 결국 늙은 여우가 될꺼야"
난 이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고3을 거친 사람이라면 그 공간
의 소통없음과 숨막힘, 그리고 입시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경
험했을 텐데도, 억압의 상태에서 벗어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언
제그랬냐는 듯이 그 곳을 잊고, 아주 당연한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이들은 죽어가는데....난 이미
늙은 여우가 되어 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