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독서계획 어떻게 세울까  [05/01/06]
 
[책세상]새해 독서계획 어떻게 세울까

무슨 책 읽을지 방향·주제부터 선택
구입비용·시간 등 고려 가능한 책의 권수 결정
'독서 다이어리' 만들어 실행여부 스스로 점검을

'독서와 음악 감상.' 이력서나 프로필의 취미 기입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취미가 아닐까 한다. 시쳇말로 하면 '만만한 게' 독서와 음악 감상이다. 1년 동안 겨우 책 한 권만 읽는 사람의 취미가 독서고,택시 탔을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듣는 사람의 취미가 음악 감상인 경우는 그 얼마나 많은지.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독서와 음악 감상'이 취미라고 말하는 건 '나는 별다른 취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많다.


말 꺼낸 김에 취미(趣味)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세 가지 뜻이 있다. 마음에 느껴 일어나는 멋이나 정취,아름다움이나 멋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전문이나 본업은 아니나)재미로 좋아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것. 그렇다면 독서 취미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느껴 일어나는 멋이나 정취,책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교수처럼 직업적으로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면서) 재미로 좋아서 책을 읽는 것.

결국 취미가 독서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어 그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을 길러 갖추어야 한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읽는 게 아니라,어디까지나 재미로 좋아서 자발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요컨대 이해 능력과 자발성이 관건이라 하겠는데,문제는 이해 능력과 자발성도 책을 꾸준히 읽어야 생긴다는 점이다. 적어도 독서에서는 양질전화의 법칙이 진리다. 어떤 책이 되었든 가리지 말고 일단 많이 읽어야 한다.

일단 많이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책을 보는 눈,감식안과 판단력이 생기게 되어 있다. 이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한다.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뭘까?' 하지만 그런 고민은 애당초 잘못 설정된 고민이다. 단적으로 말하면,좋은 책과 나쁜 책은 없다. 그냥 책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독자,나 자신이 있을 뿐이다. 요컨대 좋은 책이란 '나에게' 맞는 책이며 나쁜 책이란 '나에게' 맞지 않는 책이다. 여기에서 '맞는다'는 건 지적 수준이 맞는 책일 수도 있고,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책일 수도 있으며,저자의 주장에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공감하게 되는 책일 수도 있다.

책 을 많이 읽어서 나에게 맞는 책이 어떤 건지 판단할 수도 있게 되었다면,이제 독서 계획을 세워볼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독서 계획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올 한해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인가', 즉 책의 수효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독서 계획에서 책의 수효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독서의 방향 혹은 독서의 주제를 정하는 일이다. 윈스턴 처칠의 예가 있다. 처칠은 영국 제4경기병 연대 소속으로 1896년 인도로 갔다. 인도에서 그는 촌음을 아껴가며 독서에 몰두했다. 특히 국제 정세와 정치 및 경제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에 집중했고,역사서도 각별히 챙겼다. 마치 나중에 영국 수상이 되어 국제 정치 무대에서 크게 활약하게 될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면,필자는 올 한 해 서양 미술사 도서를 집중적으로 읽을 계획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예경)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어서 서양 미술사의 전체적인 얼개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주헌의 '서양화 자신 있게 보기'(학고재)를 읽어서 서양 미술사 이해에 필요한 기본 개념과 감상법을 익힌다. 그리고 노성두의 '고전미술과 천 번의 입맞춤'(동아일보사)을 읽어서 서양 고전 미술과 친해진다. 그리고 현대 미술에 관해서는 최형순의 '현대 미술을 위한 변명'(해토)을 출발점으로 삼아 본다. 이상 네 권의 책을 읽은 뒤에는 서양 미술사의 개별 사조나 화가에 관한 책들을 읽는다.

그 렇다면 부차적인 문제로 들어가서,과연 몇 권의 미술사 도서를 읽을 것인가? 지금 계획으로는 약 50권을 생각하고 있다. 매주 한 권 꼴이다. 과연 50권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읽을 수 있다. 50권 모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경우도 있겠지만,한 권의 책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부분,특별히 흥미가 가는 부분만 읽는 발췌 독서 혹은 밑줄 긋기 독서를 할 작정이다.

또 하나 부차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문제,즉 책 구입 비용은 대략 얼마나 될까? 미술 도서는 다른 분야 도서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다. 도판 자료가 많이 들어가 있고 고급 종이를 사용하는 책이 많은 데다가,미술 작품 사진 사용료를 지불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50권이라면 넉넉하게 잡아도 100만원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독서 계획을 요약하면 결국 이렇다. '올 한 해 나는 서양 미술사를 독서 주제로 잡아서,입문 성격의 책과 통사(通史) 성격의 책들을 기본 틀로 삼고,서양 미술사의 보다 세부적인 문제들을 다룬 책들을 읽어나간다. 읽을 책의 수효는 50권으로 잡고 도서 구입비로 100만원을 책정해 놓는다.'

이 게 독서 계획의 끝일까? 아니다. 새해 새 결심으로 구입한 다이어리의 주간 일정표에 앞으로 구입할 서양 미술사 도서 목록을 적어 놓고,언제 어느 부분을 읽었는지도 적어 놓는다. 신문 서평에 소개된 서양 미술사 도서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책이 있으면,신문의 해당 부분을 오려 다이어리에 붙여 놓는다. 독서 계획의 실행을 점검하는 일종의 독서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블로그나 게시판을 통해 독서 계획을 갈무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매년 주제를 달리하면서 독서 계획을 세워 여러 해를 실천한다면,다른 사람들이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게 되는 날, 요컨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자신의 지적인 성장의 발자취라고 할 수 있는 독서 다이어리 여러 권을 들춰보는 재미도 보너스로 주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퀴즈 하나를 풀어보자.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독서 계획은? 정답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시대 유물인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다. 모르긴 해도 세계적으로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독서 계획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유교 경전을 습득하고 실행할 것을 두 사람이 다짐하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시(詩),상서(尙書),예기(禮記),춘추전(春秋傳)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서하되 3년으로 하였다'라는 부분이 있다. 사뭇 결연하기까지 한 독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오늘날의 독서인들이 독서 계획을 세우는 데 그런 결연함까지 발휘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리라는 것만큼 유익하고 뜻 깊은 새해 새 결심도 없으리라.


(표정훈 출판평론가)=부산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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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며] 묵은 책 정리하셔야죠

지금은 그런 일이 드뭅니다만 20여년전만 해도 제가 살던 소도시에서는 여성이 시집을 갈 때 혼수품 형식으로 전집을 가져가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습니다. 20권은 족히 넘을 듯한 세계문학전집도 있었고 '왕비열전' '대망' '전설따라 삼천리' '법창야화'니 하는 책들도 있었습니다. 요리책도 필수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요리책 전집을 사면 계량컵이라든지 오븐 등을 덤으로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책들은 대개 할부로 거래가 됐습니다.

딱히 혼수품이라고 할 수 없는 이런 것들을 뭣 때문에 여성들이 챙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여하튼 동네 누님들의 결혼 때는 빠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남성들은 그런 책들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 여성은 결혼때 가져온 책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시집온 뒤 한번도 보지 않았으나 버리기도 아까워 책장에 그대로 두었는데 이제는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좀도 슬어 흉물이 됐답니다. 결혼생활 십수년에 몇번 이사를 했더니 그때마다 몇 권이 없어지기도 해 제대로 짝을 맞추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고 합니다. 게다가 오래된 책들은 하나같이 본문이 세로로 편집되거나 한자가 섞여 있는 까닭에 아이들은 아예 쳐다보지를 않는다는군요. 요리책도 신혼 때는 마음먹고 몇번 펼쳐봤으나 점차 뒷전으로 밀렸고 이제는 있는지조차 모른답니다.

집에 책장이 없으신 분은 안계실 겁니다. 말 나온 김에 한 번 쭉 둘러보시죠. 거기에는 젊은 시절 고뇌의 흔적이 오롯이 묻어 있는 책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며 읽고난 뒤 베갯잇을 흠뻑 젖게 만든 감성적인 책들도 숨어 있을 겁니다. 몇 번을 읽었지만 또 읽고 싶은 책들이 들어 있을 터이고 책 제목만 봐도 슬며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들도 보일 겁니다.

책장에 꽂힌 책은 책 주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시 70, 80년대에 대학에 다니셨던 분이라면 암울한 시대를 준엄하게 꾸짖어 주던 사회과학책에 눈길이 한 번 더 갈 것이고, 가을을 넘어가려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신춘문예 열병을 앓으셨던 문학도는 손 때 묻은 소설책들이 애틋한 느낌으로 다가 올 게 뻔합니다.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 짓던 분이시라면 시집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이 됩니다.

반면 책장을 살피다 보면 "어, 이런 책이 우리 집에 있었나"하는 낯선 것들도 적지 않게 나올 겁니다. 낯설다는 것은 사랑이 식었거나 사랑을 한 적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의 속성상 언젠가는 한 번은 읽게되겠지 하고 내버려두시겠지만 제 경험에 비춰 보자면 존재조차 몰랐던 것들은 특별히 그 책을 찾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면 책 주인 손에서 굄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된장과 책은 묵힐수록 가치가 있다고 합디다만 오래됐다고 해서 다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고서'는 아닐 겁니다. 채우려면 버려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 빈 공간만큼 곧 새로움이 자리하는 까닭이겠죠. 가끔은 묵은 책을 정리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지금은 새 해 아닙니까.

(국제신문 염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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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0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무지 공감됩니다...

찬타 2005-01-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툽니다요^^
 

4人 대표작가의 '문학같은 삶' 들여다본다 [05/01/05]
 

황석영, 장정일, 신영복, 박완서
KBS1 'TV, 책을 말하다' 특집에

‘문학의 위기’가 회자된지 오래지만,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추고 두터운 독자층을 거느린 작가들이 적지 않다. 황석영, 장정일, 신영복, 박완서씨는 그런 작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을 이들이다. KBS1 ‘TV, 책을 말하다’(목 밤 10시)는 2005 신년기획으로 1월 한 달간 이들을 차례로 만나보는 ‘화제의 작가, 4인’ 특집을 마련했다.

6일에는 멀리 영국에 머물고 있는 황석영씨를 찾아간다. 그는 소설 ‘손님’이 프랑스의 페미나문학상 외국어소설 부문 후보작에 오른 것을 계기로 유럽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1998년 출감 후 무려 27권의 책을 내는 무서운 창작욕을 보였던 그가 갑작스럽게 런던 행을 택한 까닭을 들어보고, ‘황석영 문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한다.

13일에는 ‘삼국지’를 들고 5년 만에 돌아온 장정일씨를 만난다. 그는 1990년대 ‘내게 거짓말을 해봐’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 도발적 작품으로 한편으로는 음란물 논쟁에 휘말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문화 전 장르에 ‘장정일 신드롬’을 일으켰다. 낯가림이 심한 그가 모처럼 TV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문학관과 타인의 평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털어놓는다.

20일에는 새해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킨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의 저자인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를 초대한다. 1980, 9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이기도 한 신 교수는 이 책에 담긴 메시지와 자신의 삶의 철학을 들려준다.

27일의 초대작가는 ‘그 남자네 집’의 박완서씨. 칠순을 넘긴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애틋하고 행복했다”고 고백한 이 작품은 무려 11만부가 팔려나가며 문단의 거목 박완서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그의 문학과 삶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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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최악의 출판불황, 책 안읽는 사회-경향신문 [05/01/05]
 
출판시장과 독서문화는 그 사회의 지적 인프라다. 출판산업이 무너지고 ‘책 읽는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곧 그 사회의 정신적 황폐화를 의미한다. 출판 불황은 경제 불황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경제 불황도 결국 정신적 활력 없이는 헤쳐나가기 어렵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3년 신간서적 발행이 1997년에 비해 58.6%나 급감했다고 한다. 특히 91.2%나 감소한 사회과학서적을 비롯해 인문학 분야가 큰 폭으로 감소한 반면, 만화나 실용서적은 도리어 발행부수가 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을 단적으로 상징해주는 듯하다.

불황의 원인으로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책 읽을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이유가 첫번째로 꼽힌다. 하기야 경제가 어려워지면 문화적 소비를 줄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끝없는 정쟁과 계층갈등, 만성적 실업 등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침체된 데다 디지털 문화의 확산이 삶의 여유와 독서욕구를 앗아가고 있다. 출판시장의 활력소가 돼야 할 공공도서관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도 불황을 구조화시키는 요인의 하나다.

문화가 힘, 문화가 경쟁력이라고 떠들지만 정작 그 근간인 출판·독서문화, 인문학 등은 빈사상태에 처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태로는 우리의 미래라는 ‘지식경제’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어려울 때일수록 독서만한 투자가 없다. 책 읽기를 권장하는 기업은 희망이 있다. 성공한 리더들은 한결같이 부단한 독서 습관에서 동기를 얻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국민들의 왕성한 독서력에 힘입어 장기불황을 헤쳐나간 일본의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정부는 구호로만 문화입국을 외칠 게 아니라 출판계에 대한 지원은 물론 도서관 활성화 등 인프라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출판인들도 절체절명의 사명감을 갖고 분발해야 한다. ‘책 읽는 사회’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음을 모두가 직시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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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기획'이 아니다! (기획회의, 2004.12.)
 

지난 12월 10일에 있었던 북에디터의 송년회 자리에서 어느 편집자로부터 "(편집자가 갖춰야 할) 기획 마인드와 교정·교열 마인드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며 어느 쪽이 더 강조되어야 하는가"라는 요지의 질문을 받았다. 질문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좀 뜨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편집자에게는 그저 '편집자의 마인드'가 필요할 뿐, 백 걸음을 양보해서 출판물의 '기획'에 임하는 데 어떤 자세(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심지어 교정·교열에 그와는 다른 무슨 특별한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언젠가 이 지면에 실린 "정답을 찾지 말고 의견을 구하라"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교정·교열 작업에 대한 심각한 오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획'에 대해서도 상당한 오해가 잠재해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일례로 출판 아이템에 대한 '아이디어 제시' 정도를 놓고 '기획'이라고 뻐기곤 하는 편집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사실 출판 동네에서 그동안 출판 기획이 얼마나 주먹구구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생생하게 방증할 뿐이다. 모든 매체의 기획이 그러하지만, 출판물의 기획이란 저자에 의해 책이 씌어지는 순간부터 독자의 손에 들어가 읽히는 순간까지의 전 과정을 구상해 내는 일이다. 가령 마케팅에 대한 구체적인 관점이 확보되지 않은 기획을 기획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지질부터 제본 형태에 이르기까지 제작의 방향이 포함되지 않았거나 디자인의 통일을 기하기 위한 컨셉이 제시되지 않았어도 마찬가지 반문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책이라는 상품의 가장 중요한 전달 수단인 '문장'에 대한 구체적인 고려만이 이른바 '기획'에서 생략되어도 무방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일까. 아니, 문장 교열처럼 자질구레한(?) 일에는 신경쓰실 겨를이 없으시다는 자칭 '기획자'들께서 기획의 가장 핵심적인 과정의 하나라 할 수 있는 필자 선정을 하실 때는 무슨 기준으로 하신다는 것일까. 물론 '문장'만이 필자 선택의 유일한 관건은 아니겠지만, 필자의 문장을 살펴보지도 않고 집필을 의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두 번 말하면 잔소리지만 책을 기획하는 사람에게는 '문장'을 보는 자신만의 안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교열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인드'와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기획자가 디자인 컨셉을 제시한다고 해서 직접 디자인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듯이, 기획자가 직접 자신이 기획한 책의 문장을 만지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획자가 디자인을 모를수록 디자인 컨셉이 모호하게 뭉뚱그려져 하나마나한 원론 수준을 맴돌게 되고 결국 디자이너와의 효율적이 소통에 심각한 장애가 초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듯이, 제 입으로 "문장 교열은 잘 모른다"고 부끄러움도 없이 떠드는 기획자가 제시하는 교열의 방향이 도대체 얼마나 '실제적인 내용'을 담지할 수 있을 것인가. 요컨대 '집행력'을 담보하지 않은 기획은 기획이 아니다.

이런 딱한 사정은 '교정·교열'에 대한 오해에도 어김없이 작용한다. 도대체 책 전체의 기획 방향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필자가 애써 작성해 온 원고를 단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아마도 많은 편집자들이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좋게 보아야 시대착오이며, 심하게 말하면 무책임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 필자가 원고 용지에 육필로 써내려간 원고에 편집자가 온갖 조판 지시를 첨부한 '원고'를 교정쇄와 대조하며 교정(校正)을 하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만일 예전처럼 작업 지시서로서의 원고 용지가 존재하던 시대라면, 교정을 하는 사람이 책의 내용과 기획의 방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당연히 훨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작업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교정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한 글자의 잘못도 놓치지 않는 '꼼꼼함'이 다른 누구에게보다 더 필요할 뿐이라고 여겼음직하다.(그 시절에도 감히 필자의 '문장'을 교열하는 것은, 그 책의 '책임 편집자'나 할 수 있는 일이었지 단순히 '교정 업무'만을 맡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원고'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가 보내온 원고는 이미 워드프로세서로 깔끔하게 타이핑이 되어 있으며, 필자가 원고 작성상의 실수로 오타(誤打)를 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순수한 의미의 오타인지 필자가 고의로 낯설게 표현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본래적 의미의 '원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핑을 이용한 원고 작성의 수월함은 육필로 원고 용지에 써내려갈 때에 비해서 실수로 인한 오자 발생의 가능성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이 딜레머는 단순하게 오·탈자를 확인하는 작업조차도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문장의 맥락과 흐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만들어 버렸다. 요컨대 이제 교정과 교열을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어렵사리 수긍을 한다 해도 또 한 가지의 결정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책의 기획 방향과는 무관한 '문장 교열'의 절대적 기준이 따로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것을 정확히 숙지하여 철저하게 실현시키는 것이 '교열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마인드'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식의 기준 따위는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으며, 존재해서도 안 된다. 편집자가 '교열'이라는 이름으로 필자의 원고에 '훼손'을 감행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오로지 그 책의 상뭄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애당초 원고의 내적 필연성으로부터 유래한 자기 완결성에 근거한다. 따라서 이때 문장 교열의 유일한 준거는, 그 책의 핵심 독자에게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가일 뿐, 다른 준거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핵심 독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를 상정하지 않고 또 저자가 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떤 의미에서는 '저자보다도 더 잘') 이해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저자에게 귀속되는 저작물에 어떻게 함부로 '교열'을 가할 수 있을 것인가. 요컨대 이러한 성격의 준거를 확보하는 것을 '교열자의 마인드'라고 할 때, 그것은 '기획자의 마인드'와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장을 다듬는 과정도 또는 지면을 디자인하는 과정도 모두 책의 '기획'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내는 과정의 일부이다. 기획의 컨셉과 방향을 공유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마치 '기획'은 저 높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대단히 창조적인 일이기라도 한 양 제대로 된 소통과 공유의 과정을 생략한 채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출판사가 아직도 많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그 알량한 '기획'의 정체를 알다가도 모르겠거니와 그렇게 해 봤자 '시키는 일'(?)인들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더 우스꽝스러운 일은 그런 엉터리 '기획'을 밀어붙이곤 하는 자칭 '기획자'들일수록 디자이너나 편집자들의 능력과 자질이 모자라다는 개탄을 입에 달고 다니며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을 전가하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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