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역사는 왜 필요할까.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장 충격적인 전쟁에 대한 경험도 개인에 따라 다르고 그 의미는 더더욱 같지 않다. 국가와 민족마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는데 이의가 없다. 권력 쟁탈에 실패한 자, 패전국의 이야기는 묻히기 마련이다. 개인도 국가도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선택적 기억뿐 아니라 오해와 소문이 겹치면 사실fact는 사라지고 진실truth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김시덕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서술 방식과 내용 전달 방법이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책이다. 연구자의 결과물은 논문의 형태로 일반에게 읽힐 목적의 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연구소, ○○대학교에 적을 둔 사람들의 책은 대체로 노잼이라는 편견이 생겼다. 아카데미즘의 울타리를 넘어 저널리즘의 세계로 진입하려면 하얀 가운을 벗고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챙겨야 하는 게 아닐까. 학벌과 현직을 믿고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 읽기 시작하면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대개 그러하다. 내용이 허접하고 별 볼일 없다는 평가가 아니다. 읽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항변이라면 할 말 없다. 너의 선구안을 반성하라면 그도 할 말 없다. 그래서 연구 결과물, 학문적 성과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자는 언제나 출판시장에서 환영받는 저자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벌어졌다. 16세기 중반부터 오백년간 벌어진 동아시아의 생존경쟁과 권력다툼은 국가가 전쟁 혹은 민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이 책은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과 중국, 러시아, 타이완 등 유라시아의 전쟁사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인 인명과 지명이 수업이 등장하고 일본의 국내 사정을 사정이 인용된 자료를 통해 상세히 제시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지극히 개인적인으로 놀랄 일은 나의 무지無知. 익숙하지만 가본 적 없는 오키나와, 이오지마 섬의 위치를 구글 지도에서 확인하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역사는 시간공간의 좌표축 위에서 3D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2D는커녕 겨우 시간의 흐름만 줄줄 꿰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르 강과 사할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러시아의 충돌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벌어졌는지 다시 확인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정 위치가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공간적 위치와 거리가 새삼스러웠다. 확대, 축소가 자유자재로 가능하고 해양과 대륙의 높낮이까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던 구글 지도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계지리부도지구본이 전부였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점점 높아지는데 디지털로 확보된 자료를 읽어내는 눈과 파편화된 정보 사이를 가늠할 수 있는 안목은 점점 낮아지는 건 아닌지.

 

한국이 일본을 대하는 태도, 북한과 중국, 미국과 일본의 역학관계가 초미의 관심사다. 저자가 가진 관점이 옳다고 볼 수는 없으나 역사적 안목이 필요한 부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힘의 논리, 각국의 역학 관계는 이제 한두 가지 요소로 환원될 수 없는 시대다. 위아래로, 안팎으로 깊고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갈 길은 멀고 날은 금세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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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각국의 교류 양상을 이해하고 얽힌 역사적 관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정수일의 한국 속의 세계 (), ()가 좋다.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도 여러 사람의 지혜를 빌릴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최근에 나올 신간 동아시아 지식인의 대화, 김소영 편,현실문화연구, 2018.03.30동아시아 고전의 이해, 문현주 외, 경상대학교출판부, 2018.02.28.이 기대된다. 어렵지 않게 서술된 다음 책들도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 한겨레출판, 2005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박노자, 한겨레출판, 2007

동아시아의 역사 1~3, 동북아역사재단, 2011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 신윤환 외, 이매진, 2011

동아시아를 만든 열 가지 사건, 아사히신문취재반, 창비, 2008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박태균 외, 창비, 2011

우리 안의 타자 동아시아, 김만수 외, 인하대학교한국학연구소, 2011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 워렌 코헨, 일조각,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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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 2018-06-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 좋은 정보 매번 잘 읽고 갑니다~!

sceptic 2018-06-23 00: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 복잡한 세상, 나를 지키는 자유의 심리학
마이클 해리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이문재, 여기가 맨 앞중에서

 

쓰다 가즈미는 그의 저서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에서 고독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그 하나는 론리니스loneliness’. 사회와의 관계성이 단절되어 힘들고 어둡고 외로운 소극적 고독이 그것이다. 나머지 하나가 적극적 고독솔리튜드solitude’. 솔리튜드는 삶에 빛과 자신감을 부여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면서 쓰다 가즈미는 론리니스를 어두운 고독이라고 하고, ‘솔리튜드를 밝은 고독이라고 불렀다. 사회적 관계로부터 격리된 외로움을 수반하는 감정이 론리니스이며, 심신을 재생시키기 위해 본연의 자기다움을 찾고자 하는 긍정적인 고독이 솔리튜드. 당신이 말하는 외로움과 고독은 론리니스인가 솔리튜드인가?

 

마이클 해리스는 솔리튜드solitude잠시 혼자 있겠습니다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제목이 책 판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길고 희한안 제목은 대부분 번역 출판물에 붙인 출판사의 솜씨다. ‘복잡한 세상, 나를 지키는 심리학이라는 부제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독자가 책을 접하는 1차 정보가 제목과 부제다. 책의 핵심 내용을 전달할 수 있으며 그 특징을 한 문장으로 매혹시키려는 심정은 백분 이해하지만 제목도 별로고 부제는 잘못 붙였다. 이 책은 심리학 책이 아니다. ‘솔리튜드의 가치를 고민하고 실제 현실에서 실천해보자는 취지의 동기유발,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이 책을 아직 접하지 않은 사람은 니콜라스의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먼저다. 홀로 있음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저자의 노력은 충분히 가치있다. 외로움이 삭제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재확인된다. 그것은 인터넷과 SNS로 요약된다. 초연결 시대. 한 순간도 네트워크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대인은 자발적 노예에 가깝다. 냄비처럼 끓여지는 대신 냄비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해 본 적은 없는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블로그, 카페를 비롯한 각종 단톡방과 커뮤니티.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을까. 좀더 자유롭게그리고 고독하게살 수는 없을까.

 

세상은 홀로 있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기 취향도, 자기 생각도 없다. 트렌드의 노예로, 정보의 쓰레기더미에서 허우적거린다. 땅을 밟지 않고 하늘을 쳐다볼 시간이 없다. 소셜미디어가 없는 순간을 상상할 수 없으며 우리 몸도 여기에 최적화되어 간다. 휴대폰을 끄고 노트북을 덮고 하루에 100분 정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려보자. 누어서 꼼짝도 하지 않고 공상을 하든지 아니면 책을 읽고 음악을 듣든지. 음식의 발효와 부패는 한 끝 차이다. 숙성은 기다림의 다른 표현이다. 한 순간도 멈추지 못하는 사람, 촌각을 다퉈 자기를 계발하는 사람, 실시간 흘러넘치는 뉴스를 흡입하는 사람, 관계 불안에 허덕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이 두 사람 사이의 연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본다. 즉 각자가 타인의 홀로 있음을 보호해주는 일말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한 말이다. 사랑한다면 내버려 두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나누고 싶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지속 가능한 사랑은 예의바른 무관심과 따뜻한 외면에서 시작된다. ‘솔리튜드solitude’는 보다 성숙한 나를 만드는 비법이 아니다.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삶의 태도와 방법이 다르다.

 

 

 

 

팝핑[popping] : 재미를 보태고_대중성

1.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김석희, 살림, 2016.11.01

2.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사월의책, 2013.10.01

3.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역, 문학사상사, 2005.07.28.

4. 안녕, 후두둑 씨, 이용한, 실천문학사, 20060530

5. 남자 외롭다, 토머스 조이너, 황소자리, 2013.11.25.

 

펌핑[pumping] : 외연을 넓히며_동질성

1. 고독의 위로, 앤서니 스토, 이순영 역, 책읽는수요일, 2011.10.13.

2. 새로운 고독, 마리프랑스 이리구아앵, 바이북스, 2011.10.10

3. 생의 수레바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황금부엉이, 2009.09.29.

4. 행복의 경고, 엘리자베스 파렐리, 베이직북스, 2012.11.30

5. 단속사회, 엄기호, 창비, 2014.03.17

 

점핑[jumping] : 깊이를 더해서_연계성

1.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최지향 역, 청림출판, 2015.01.09

2. 고독한 군중, 데이비드 리스먼, 동서문화사, 2011.01.10

3.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외, 장 자크 루소, 진인혜 역, 책세상, 2013.01.25

4.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문학동네, 2010.03.19.

5.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에밀 시오랑, 김정숙 역, 챕터하우스, 201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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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장 - 막이 내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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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됐다.’

아버지는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당신 수고 많았다.” - 413

 

인생이란 고칠 수 없는 단 한 번의 연극이라는 비유는 식상하지만 그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기도 어렵다. 노명우의 인생극장을 읽는 동안 몇 번 코가 시큰했고 눈물이 고였다. 2015년과 2016년에 잇달아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보낸 노명우처럼 2017년 봄에 아버지가 떠나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공감은 유사성에서 기인한다. 이해할 수도 상황, 상상해 본적 없는 감정에 공감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감동을 받은 책이 아니라 공감한 책이다. 감동과 공감은 다르다.

 

1924년생 노병욱 요셉과 1936년생 김완숙 세실리아는 사회학자 노명우의 부모다. 살아계셨다면 80, 90대 노인이다. 그분들은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버지, 어머니라는 일반명사로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저 그런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명우가 시도했듯 1917년생 영웅박정희가 걸었던 삶의 궤적과 확연히 구별된다. 박정희도 모자라 그의 딸까지 모셨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두 분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회학자의 눈에 비친 두 분의 삶은 고스란히 대한민국 사회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다.

 

염려했던 대로 아들로서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워하는 애잔한 마음과 지극히 주관적인 언사가 군데군데 집중력을 떨어뜨렸으나 지나치진 않았다. 메마르고 객관적 시선으로 서술하는 방식 또한 공감을 덜어냈을 테니까. 노병우 요셉은 충남 공주에서, 김완숙 세실리아는 서울 창신동에서 태어났다. 노명우는 파주 광탄면 신산2리에서 인생극장의 막을 올렸다. 아들 사회학자가 부모자연인으로 바라보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막이 내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선명해서 조금 불편했다.

 

다만 사회학자의 눈에 비친 당대의 모습과 그 시대를 살아왔던 이 땅의 모든 그저 그런사람들의 이야기가 내게도 일부 겹쳤기 때문에 훨씬 더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박정희 시대를 기억하는 세대가 이젠 망자가 되거나 노년에 접어든다. 시대를 읽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노명우는 영화를 선택했다. 실제 당시의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 강좌 덕에 만든 책이지만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는 내용도 흑백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재밌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인데도 이제는 아주 먼 옛날 얘기처럼 들린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얘기겠지만. 텍스트는 여전히 소수만 공유하는 세계다. 성인 104명은 전혀 텍스트를 접하지 않는다는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의 결과가 오히려 놀랍다. 어쨌든 6명은 읽는다는 말이니까.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1959년부터 2014년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이에 비해 노명우의 인생극장1924년부터 1960대를 주로 다룬다. 이후의 이야기는 후일담에 해당한다. 1966년생 막내 아들이 바라본 부모님의 삶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역사학자라면 그분들의 삶은 그대로 미시사 연구의 사료로 사용되기에 충분했으리라. 다만 노명우도 부모님이 남긴 자료와 흔적이 많지 않아 동시대의 영화, 통계 자료로 갈음한다. 레인보우 클럽에서 무지개 다방으로 바뀌는 과정은 우리의 근현대사의 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부모가 공무원이나 회사원이었다면 노명우는 이 책을 쓰지 못했으리라. 식민지 시대부터 6.25 전쟁 그 이후의 삶은 모든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소설보다 파란만장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그 시대를 읽어내는 객관적인 기록이면서 지극히 사적인 고백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세상은 한창 상영 중인 영화다. 어서 빨리 엔딩 크레딧을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이제 막 클라이맥스를 찍고 있는 사람도 있다.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도 있고 비참하고 우울한 사람도 있을 터. 그러나 곧(?) 막을 내린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기 영화의 스토리를 바꿔보고 싶다면 용기와 변화가 필요하다. 아무도 시나리오를 써주지도 고쳐주지도 않는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손가락질의 방향을 돌려야하지 않을까. 모두 내 탓이라는 낮은 자존감도 문제지만 자기 영화의 스토리를 남에게 맡기는 사람도 문제다. 노명우의 말대로 우리 모두 인생극장의 주인공이다. 조연인척 하지 말자. 감독이나 작가를 욕하면 달라질까.

 

아주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와 그토록 함께 나누고 싶었지만 그가 멀리 가고 나서야 비로소 정체가 드러나는 그 무엇을 알아차린다. 우리는 그가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재인용, 4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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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개정판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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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었을까. 바닷가에 누운 걸리버를 소인국 사람들이 머리카락까지 묶어둔 장면을 본 때는. 책마다 읽어야할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도 마찬가지다.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는 왜 고전이 아닌 재밌는동화로 소개되었을까.

 

신현철이 번역한 걸리버 여행기(1726)391페이지 분량이다. 작은 사람들의 나라 릴리퍼트, 큰 사람들의 나라 브롭닝낵,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라퓨타, 발니바르비, 럭낵, 글럽덥드립, 일본, 말들의 나라 휴이넘까지 4부로 구성된 여행기의 형식이다. 소설의 배경은 169954일부터 17151124일까지 167개월 동안이다. 실제 집필 시기는 1721~1725년으로 추정된다. 지금부터 300여 년 전 이야기다. 로빈슨 크루소(1719)과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걸리버는 아일랜드 태생의 정치 사상가 스위프트의 작품이다.

 

표정이 없는 얼굴, 진중한 목소리는 타인이 가볍게 대할 수 없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다. ‘진지충이라는 욕을 먹을 수도 있고 지루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웃는 얼굴 가볍게 던지는 아재 개그는 부담 없이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지만 우습게 보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부작용이 있다. 풍자정신은 다큐를 예능으로 바꾸는 태도다. 우리 문학의 전통 중 하나가 해학이다. 풍자는 해학과 조금 다르다. 스위프트는 돈키호테보다 진지하지만 풍자에 관해선 날선 칼날이다. 소설이 아니라 뛰어난 상상력이 가미된 시평時評이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철학적 반성이다. 원작의 훼손과 개작 과정이 이를 증명한다.

 

앤 여왕 시대 영국의 변방 아일랜드에서 정치적 소양이 다져진 스위프트에게 왕과 귀족, 정치와 사회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1세기 동안 영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이야기하자, 국왕은 아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역사라는 것이 단지 음모, 반란, 살인, 학살, 추방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것들은 탐욕, 편파, 위선, 불신, 잔인, 격분, 광기, 증오, 시기, 욕망, 악의, 야망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나쁜 결과라는 것이다.”(26, 166)는 큰 사람들의 나라를 여행할 때의 고백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혐오는 4부에서 절정을 이룬다. ‘휴이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걸리버는 인간을 닮은 야만족 야후를 보며 인간이 사는 세상을 재인식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이성적일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습관과 편견으로 가질 수 있는 힘을 매일매일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은 걸리버의 여행으로 신랄하게 드러난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섬 라퓨타까지 스위프트의 상상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인간은 보잘 것 없이 작은 존재이면서 만물의 영장으로 불릴 만큼 대단한 능력을 갖춘 존재이기도 하다. 동화적 상상력과 환상이 안내하는 스토리 자체의 즐거움은 물론 곳곳에 숨어있는 당대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 정신은 걸리버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기득권에 대한 도전, 구체제에 대한 비판, 인간의 탐욕과 성정에 대한 반성은 영원한 소설의 주제다.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표현되느냐의 문제가 작가들의 고민이다. 시와 소설과 희곡이라는 전통적인 갈래 뿐 아니라 논픽션 분야의 작가와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미룰 만큼(?) 미룬 책들이 많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미루다가 못 읽을 책이 더 많을 예정이다. 망설이지 말고 손을 뻗을 때다. 생각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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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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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장편소설이 주도한 나라지만 세계 문학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문학과 예술도 결국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지만,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유희에 불과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가든 파티는 영국의 단편을 묶은 책이다. 8명의 작품 11편을 소개한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들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시기부터 산업혁명으로 상전벽해가 이뤄지던 시기의 단편은 영국인의 정서를 잘 담아낸다.

 

캐서린 매스필드의 가든 파티를 표제작으로 내세운 건 나머지 작가들이 장편으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찰스 디킨즈, 토머스 하디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 도리스 레씽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작가들의 단편을 모았다.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단편들이 비슷한 시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세계사의 중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느낌이라면 영국의 단편에서 다루는 주제와 이야기들은 근현대사의 중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찰즈 디킨즈의 신호수는 열차라는 근대의 상징을 넘어 소외된 개인의 좌절과 무력감을 다룬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의 형식과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토머스 하디의 오그라든 팔, 버지니어 울프의 큐 가든유품은 초창기 페미니즘 문학의 방향을 짚어보는 데 유용하다. 도리스 레씽의 지붕 위의 여자로 이어지며 시간의 간극을 읽어내기에도 좋다. 소설은 언제나 컨텍스트를 읽어내는 2차적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단순히 스토리와 유려한 문장보다 씨줄과 날줄로 얽힌 시대와 공간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조지프 콘래드의 진보의 전초기지는 콩고의 상아 무역 담당 출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제국주의 말단 집행자들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비판한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꿰뚫어보는 작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쓰느냐가 내겐 더 중요한 관심사다. 대상이 동일해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단편을 통해 우리가 읽어내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단면이 아니라 현재를 이룩한 과거의 아픔이다. 미래도 결국 현재의 결과일 뿐이니.

 

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구름 한 점은 현대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버지니어 울프와 더불어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나 자동기술법auto-writing을 활용하며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서술 방식 때문이다. 사소설, 심리소설이 주를 이루기 시작한 건 냉전 시대 이후 사회적 관심사가 개인의 문제로 귀착됐기 때문이 아니다. 언제나 소설의 중심은 인물이었다. 그 인물이 겪는 갈등에 따라 소설의 종류를 나누기도 하지만 결국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소설을 읽는 재미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 궁금한 게 아니라 선택의 이유와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궁금하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시기는 그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도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 속도가 눈부셨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개인의 혼란과 아노미 상황은 근대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윤리와 도덕적 가치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들, 인간 존재에 대한 혐오와 부조리,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의 발달은 오늘도 계속된다.

 

돌아서면 모든 게 새롭다. 아니 낯설다. 한 순간도 머물러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잠시 있다 없어진다. 깜빡깜빡. 불빛이 나타났다 이내 사라지듯. 그 이전의 불빛과 밝기가 변하듯. 영국 사회의 변화는 제국주의와 산업사회로 요약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그 화려하고 찬란한 빛(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그늘(좌절과 실패)이 보이지 않는다. 반성적 태도로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지 못하는 소설이라면 굳이 나무를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 소설은 도구일 뿐, 훌륭한 작가들을 통해 읽어야 할 것은 인간의 허위의식과 폭력,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다. 철학과 역사, 과학과 예술 - 분야는 중요하지 않다. 개인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주변과 집단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그래서 남은 시간을 나는 그리고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 소설은 길을 안내하는 대신 있던 길을 지운다. 길이 없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선택은 잔인하다. 물론 정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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