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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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데,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배우자 역시 타인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타인이다. - 18

 

가족을 이루는 최초의 개인은 타인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장 끈끈한 관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낯모르는 타인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최소 단위, 사회 보험 기능을 담당하는 가족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부부,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이 관계는 국가, 지역, 종교, 민족, 인종, 문화에 따라 그 관계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인간과 세상의 질서를 배우고 생존 방식을 터득한다. 세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부모의 생각, 관점, 식성, 문화적 소양을 직간접적으로 학습한다. 따라서 대화가 없는, 소통하지 않는 부부, 부모와 자녀, 형제관계는 남보다 못하다. 생물학적 혈연 관계를 끊을 수는 없으나 서류상의 관계일 뿐.

 

그러니 가족을 구성하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서 가장 잘 안다는 생각은 착각이 아닐까. 부모가 자식을 안다는 말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자식은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은 환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행복한 가족은 누군가의 희생과 인내, 굴욕과 분노 위에 세워진 신기루 같은 게 아닐까.

 

이렇게 건조하고 냉소적인 그러나 내 생각과 일치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일은 지나치게 반갑다. 시모주 아키코는 가족이라는 병에서 가족의 의미를 독자에게 되묻고 있다. 1936년생이라는 작가의 나이를 고려하면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가족은 그녀에게 함부로 안다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구성원 각각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는 가족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

 

친소여부를 떠나 가족을 화제로 올리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시모주 아키코의 말대로 가족 이야기는 자랑 아니면 험담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의 가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가족 이기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사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뉴스와 일상에서 매일 접한다. 이 책은 가족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와 생각을 점검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일본 육사출신 아버지와 순종적인 어머니 그리고 오빠와의 관계에서 작가의 이야기는 출발한다.

 

성인이 되어 반려伴侶를 만나 한 평생을 살지만 자식을 낳지 않고 자기 삶을 꾸려온 시모주 아키코는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지나치게 기대는 관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모래알처럼 각자 사는 가족 또한 가족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함께 밥을 먹지 않고, 대화를 나누지 않으며, 눈을 마주치지 않는 가족은 생활 공동체에 불과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을 넘어 이제는 다양한 주거, 가족 형태가 등장했다. 반려견이 자식을 대신하고 비혼자들의 쉐어하우스, 1인 가구의 주거 공동체도 심심찮게 소개된다. 스트레스와 상처를 주는 가족보다 서로 존중하고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는 공동 주거가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대체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개인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전체가 아닌 부분을 들여다보고 각자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식이니까 언제까지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 끝나지 나를 지켜줄 거라는 오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폭력은 대부분 가족 안에서 이루어진다.

 

지나친 기대와 믿음도 위험하지만 침묵과 증오도 가족을 해체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담고 있다. 한 평생을 살면서 작가가 경험한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이 가족을 대하는 태도를 비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가족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정답은 없지만 나는 시모주 아키코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서로 기대고 힘이 되어주는 가족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그 웃음과 기쁨이 유지되기 위한 희생과 노력은 누가 얼마만큼의 비율로 나눠가져야 하는 걸까. 보이지 않는 무수한 폭력과 상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가족은 왜 필요한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까지 떠나보낸 작가는 4부에서 그들에게 비로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들의 인생을 보여주고 자신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가족을 객관화한다. 한 인간에게 가족은 삶의 행복이며 존재 이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굴레와 영혼의 감옥일 수도 있다. 사회적 지위, 부와 명예는 복권처럼 손에 거머쥔 가족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가족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설명하기 어렵다.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다루는 인간의 관계양상은 사랑 혹은 가족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사회적 관계로 어떻게 전환되는지에 따라 우리 삶은 천국 혹은 지옥이 된다. 당신은 어떤 가족과 함께 살아왔는가, 아니 어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가?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어둡고 먼 길을 홀로 걸어왔던 것처럼 마지막에는 결국 혼자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면서 말이야. -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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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 그것이 진정 가족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 13

 

자신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데,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배우자 역시 타인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타인이다. - 18

 

거짓은 화목하지 않은 가정보다 화목한 가정에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 마주하면, 부모와 자식은 대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겉으로 화목해 보이는 가족보다는 사이가 나빠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선택할 것이다. 42

 

가족 사이에는 산들산들 미풍이 불게 하는 것이 좋다. 상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지나치게 밀착하거나 사이가 너무 벌어져 소원해지면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 66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무수한 일을 화제로 삼는데, 그중에 삼 분의 일이 남 얘기다. 삼 분의 일은 남자와 여자에 관한 얘기, 그리고 나머지 삼 분의 일이 필요한 애기라고 한다. 즉 삼분의 이는 하나 마나 아무 상관 없는 애기라는 뜻이다. 가족 얘기는 어디에 속할까. 남 얘기다. 삼 분의 일이나 그런 화제에 할애하다니 놀랍다.

가족 얘기는 왜 하나 마나 한 시시한 얘기일까. 그래봐야 자랑이거나 불평이며, 발전성이 없어서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끼리 가족 얘기를 하면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든지,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어느 쪽이든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76

 

나이를 먹으면 화제가 빈곤해진다. 관심의 범위가 좁아지는 탓이 클 것이다. 병이나 건강에 관한 얘기,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보나 마나 가족 얘기다. - 77

 

가족 얘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기 가족 외에는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다. 자기 가족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가족 이기주의다. - 78

 

가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 반대로 가족이 없어서 불행하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 114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 129

 

무슨 일이 생기면 상대를 배려하고 돕는 것이 가족이다. 진정한 가족은 핏줄로 이어진 가족을 뛰어넘는 곳에 존재한다. - 174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어둡고 먼 길을 홀로 걸어왔던 것처럼 마지막에는 결국 혼자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면서 말이야. -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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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폴란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지음, 정병권.최성은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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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겨울방학에는 어머니가 가끔 고구마를 쪄주셨다. 동치미 국물 혹은 잘 익은 김장김치와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시골에서 어머니가 드셨던 맛 그대로인지 알 수 없으나 옛날에는 구황작물인 감자, 고구마가 끼니를 대신했으리라. 자라면서 김동인의 감자를 배웠고,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존, 가난, 죽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역사였음에도 관찰자, 방관자의 위치에 선 자들의 게으름은 내내 부채감으로 남는 법이다. 폴란드가 가해자(나치)와 피해자(유대인) 사이에서 관찰자 혹은 방관자로 남은 것처럼.

 

폴란드의 근현대 단편소설을 모은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는 아프게 읽힌다. 18세기 후반부터 1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120여년이나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에서 기쁨과 행복의 코드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잔혹한 전쟁은 위정자들의 세력 다툼일 뿐이다. 국가의 경계, 민족의 구분 따위는 어느 동물 종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분열 도구다. 만물의 영장으로 자부하지만 인간은 그저 스스로 만든 상상의 공동체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유발하라리는 상상 속의 질서를 통해 협력하고 사회적 규범과 공통의 신화를 창조했다고 주장했으나 그 환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속된다.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표방하면서도 국가의 경계를 넘어 그 범위를 확대하고 온 인류의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지기는 요원해 보인다.

 

편역자 정병권과 최성은은 낭만주의 시대부터 2차 대전 이후의 문학까지 시대별로 문제작을 엄선해 번역했다. 거의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지만 작품 수는 많지 않다. 여섯 명의 작가, 열 작품을 선보인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헨릭 시엔키에비치의 등대지기부터 마렉 흐와스코의 노동자들까지 중, 단편이 뒤섞여 있지만 대체로 호흡이 길다. 시엔키에비치의 등대지기를 읽다가 우리나라의 등대지기를 검색하니 경쟁률이 상당한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파도와 싸우는 일, 혼자 견디는 일이 낭만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원하는 사람이 그리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등대지기는 거의 죄수와도 같은 생활을 했다.’는 표현처럼 당대의 등대지기와 지금 등대지기의 생활이 같을 수는 없지만 색다른 일임에는 틀림없다. 폴란드의 국민시인을 통해 모국어와 애국심에 호소하는 작품이 낯설다.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 뿌리내리지 못한 삶의 고통이 모든 사람에게 슬픔을 주진 않는다. 디아스포라 문제는 오늘도 계속된다. 미국 대사관 이전 문제로 인한 유혈 충돌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 트럼프의 역할이 새삼스럽다. 북미회담 성사여부, 결과와 무관하게 핵폭탄을 손에 쥐고 너는 갖지 말라는 오만함,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 국가들의 역할과 국제관계가 이론적 모순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함부로 짐작할 수 없으나 폴란드처럼 동서 유럽의 교량적 위치에 있는 국가의 역할은 한반도와 유사하다. 전쟁, 외침, 가난, 죽음, 개혁 등 문학적 자양분은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눈물과 고통을 먹고 자라는 소설의 속성상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블레스와프 프루스의 파문은 되돌아온다, 모직조끼에 이어 마리아 코노프니츠카의 우리들의 조랑말로 넘어가면서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움푹 꺼진 그의 뱃속에는 허기만이 가득할 뿐이었다.”(우리들의 조랑말, 마리아 코노프니츠카, 180)는 단순한 문장의 여운이 길다. 1920년대 한국문학의 키워드인 가난과 죽음이 폴란드의 단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우리들의 조랑말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더없이 투명하게 드러낸다. 단순히 가난이 주는 고통의 크기를 그려내기보다 한 가족의 겪는 일상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느껴진다. 끝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는 3형제의 모습이 훈훈하지만 슬픔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의 빌코의 아가씨들자작나무숲은 폴란드의 전통을 잘 묘사한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다루고 있으나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빛깔과 향기는 제각각이다.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욕망과 갈등은 세계문학을 읽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죽음을 앞둔 동생 스타시를 바라보는 형 볼레스와프의 속내는 복잡하다. 아내를 자작나무 숲에 묻은 상태에서 시한부 동생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떨까. 소설을 읽는 동안 인제의 자작나무 숲이 떠올랐다. 사유지를 가꾼 사람은 무엇으로 그 시간을 견뎠을까. 막국수의 시원한 국물이 떠오른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표제작 타데우쉬 보로프스키의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는 프리모 레비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떠오르게 한다. 인류의 트라우마를 넘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도달하게 한 유대인 학살은 불가해한 사건이다. 수많은 제노사이드 중에서도 유독 아우슈비츠가 도드라지는 이유는 그 원인과 방법과 결과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고 설명하지만 언제나 새롭다. 영화 더 리더를 최근에 다시 보았다. 한나는 마이클을 사랑한 적이 있을까. 한나와의 만남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 마이클과 달리 한나에게 아우슈비츠는 일상적 직업 공간이었다. 읽을 줄 모른다는 건(읽지 않는다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 한나는 현상을 파악하고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하며, 감각을 통해 인지의 결과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지 못한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은 무지와 침묵의 동의어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 오지 않는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과 이익을 따라가는 사람의 이율배반적 태도는 역겹다. 입으로는 가치를, 일상은 이익을 따라간다. 그걸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페르소나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이중적 태도는 혐오감을 불러온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 않느냐는 변명, 세상은 다 그렇고 그렇다는 핑계도 지겹다. 그래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더라.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angulo cum libro.’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책이 있는 구석방 밖은 이불밖 보다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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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 - 품격 있는 글쓰기 지침서의 고전
F. L. 루카스 지음, 이은경 옮김 / 메멘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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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정확할 수 있으나 그만큼 지루하거나 단조로워질 것이다성패를 떠나서나는 그보다 더 일반적이고 긍정적인그러나 그만큼 답을 찾기가 힘든 질문에 답하려 노력했다그 질문은 바로 구어든문어든언어에 설득력 내지는 힘을 부여하는 속성은 무엇인가이다. - 22
  
문체는 작가의 지문이다같은 내용도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쓴다출발지와 도착점이 같아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효율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시간거리비용을 계산한다내비게이션포털의 길찾기 서비스가 이를 대신해 준다하지만 이 방법은 건조하고 지루하다조금 시간이 걸려도 나는 버스를 탄다지하철의 답답함과 부딪침을 견딜 수 없고 무엇보다도 시선이 자유스럽지 못하다버스 창가에 앉아 편안히 책을 펼칠 수 있다면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환승보다 가까운 거리는 걷는 쪽을 선호한다시골 영감처럼 두리번거리고 새로 지은 건물을 올려다 볼 때도 있다사람에게 관심이 적은 대신 사물에 호기심을 갖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목적지를 향하는 수많은 방식 중 글을 쓰는 사람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선호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개성과 문체가 된다짧게는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구조부터 길게는 단락의 구성과 글의 흐름까지 모두 글을 쓰는 사람의 성향과 특징을 드러낸다
  
프랭크 로렌스 루카스의 좋은 산문의 길스타일(1955)은 글 잘 쓰는 기술이라는 원제에 값한다스타일style은 문체라고 번역한다문학 이론에서도 마찬가지다하지만 스타일은 문체보다 그 의미가 넓고 크다장석주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글쓰기란문장의 예술이자 기술이며 제작이다누구나 훈련을 쌓고 연습을 하면 좋은 문장 쓰는 법을 익힐 수 있다그것은 배우는 데는 일생이 걸릴지도 모른다그렇다 할지라도 지레 포기하지 마라글쓰기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공부요평생 그것을 배울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다.( 107)”라고 말한다자기 스타일을 만드는 데 일생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루카스의 말하는 스타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글을 잘 쓰는 기술 전체를 통칭하는 스타일이라는 말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지난한 과정이다
  
다음 달에 출간될 글쓰기 책 교정지를 늦도록 들여다보았다매번 겪는 고민의 순간이다교정교열 전문가의 빨간펜편집자의 의견이 정확한 표현과 문장’, ‘깔끔한 논리 구조에 부합한다하지만 문법책처럼 건조하고 지루한 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같은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재미없는 농담과장된 표현부적절한 비유주관적 판단이 때로는 빠르고 정확한 지하철이 아니라 버스와 도보를 섞어 걷는 여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변명을 하고 싶었다에세이는 말하는 내용만큼 전달하는 방식도 중요하기 때문이다편집자와 때로 의견이 충돌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1차 교정지를 넘겼다
  
어둔 버스 차창 밖으로 흐린 불빛이 흔들렸다누구나 읽고 쓴다방법을 몰라서 또 한 권의 글쓰기 책을 보태려 하는 것일까글쓰기는 과연 배움을 통해 얼마나 향상 될 수 있을까빠진 주어를 채우고어순을 바로 잡고문장을 고치면 나아질까루카스의 책이 한줄한줄 아프게 새겨진 건 아마도 읽고 쓰는 일 이외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한없이 부족한 한 인간의 내면 때문일 것이다그는 우선 문체의 기초를 인격이라고 지적한다존경받을 만한 성품과 부드러운 말씨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가 아니어도 읽고 쓸 수 있을까.
  
이 책은 대체로 문학적 글쓰기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당대의 문장가와 영어라는 언어의 특성을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실수로 선택할 가능성도 많아 보인다늘 그러하듯이 저자의 약력출판사의 홍보 문구에 속지 말아야 한다그러나 내게는 바늘처럼 예리한 문장들이 많았다잠간씩 생각에 잠겨 필사를 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어떤 사람들은 시의 모호성을 찬양한다그러나 산문에서 모호성은 끝없는 저주가 될 수 있다.(28)” 글쓰기 책을 읽는 사람 중 몇 명이나 시인을 꿈꾸겠는가대체로 생의 도구로 활용되는 글은 산문이다이는 다시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눌 때 논픽션일 것이다문학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모호성ambiguity은 시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그러나 산문에서 애매한 표현은 오해를 낳고 의심을 잉태한다정확하고 분명한 목소리와 논리적 전개가 기본이다법전과 문법처럼 건조하고 지루할 만큼 철저하게 훈련하지 않는다면 물 흐르듯 자연스런 문장을 쓰는 일은 불가능하다
  
글의 주제가 무엇이든읽기 수월한 문체는 가장 얻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일 테다아나톨 프랑스는 자연스러움이란 가장 마지막에 보태진다.”라고 말한다또 미켈란젤로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마치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듯 성급히 던져진 것처럼 보여야 한다아니 진실과는 달리아무런 수고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수월해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무한한 고통이 따른다. - 379
  
루카스는 명료성뿐만 아니라 간결성과 다양성세련성과 소박함낙천절 기질과 유쾌함건강과 활력직유와 은유에 대해 조언한다책을 읽는 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질적 특성과 조건 그리고 부단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비록 논픽션에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라서 아쉬웠지만 이것이 글쓰기 비법이라고 울부짖는 글쓰기 방법론이나 글쓰기 비법을 소개하는 책과 달리 다양한 예문을 통해 읽는 사람 스스로 선택하고 그 기술을 터득하도록 자연스레 안내하는 방식이어서 좋았다
  
글은 형식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고내용에 맞는 형식의 옷을 입힐 수도 있다책읽기든 글쓰기든 한번쯤 찾아올 빅뱅의 기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부단한 노력과 자기반성을 통해 조금씩아주 조금씩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맹목적 열광도 처절한 좌절도 필요 없다목적도환상도희망도 없이 걸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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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림이 말했다 - 생활인을 위한 공감 백배 인생 미술
우정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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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1960년대 벌어졌던 문학의 순수-참여’ 논쟁은 이어령과 김수영 개인의 의견 대립이 아니라 오랫동안 예술가들에게 던져진 숙제였다당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현실’ 반영 문제는 누구에게나 고민거리였을 것이다문학은 물론 그림과 음악도 마찬가지다예술은 현실 너머의 숭고한 대상을 표현할 수도 있으나 지금-여기에 발 딛고 서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힘들 수도 있다그렇다고 비루한 일상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예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때로는 도구로 활용된다어느 쪽이든 프로파간다다.
  
예술을 보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우선 미술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기원전 3000년 전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5천여 년에 걸친 인류 문명사에 얼마나 많은 예술 작품이 있겠는가각 시대별 특징과 유파를 고전주의부터 팝아트까지 일별할 수 있는 지식은 작품 감상을 풍부하게 만든다여기에 당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이해작가의 생애를 더하면 충분하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볼 것을 권유한다미술관이라는 특정 장소에 가야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과 인터넷으로 눈요기를 즐긴다일상에서 친숙하게 그림과 조각을 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오늘그림이 말했다』 같은 책이 아니면 설명을 듣기도 쉽지 않다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휘트니 채드윅의 여성미술사회가 아니면 진중권이주헌박홍순 등이 쓴 해설가가 주종을 이룬다각각의 그림에 대한 개별적인 감상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책은 거의 없다그림에 대한 간단한 지식미술사의 위치개인의 일상을 함께 소개하는 정도다이런 류의 책들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이유는 언제든 찾아가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일정 기간 동안 기획 전시되는 그림을 보고 나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몇 달 쯤 유럽의 미술관에 처박혀 그림만 보는 생각을 하곤 했다사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오늘그림이 말했다를 펼쳤다.
  
그런데 오늘은 없었다. ‘생활인을 위한 공감 백배 인생 미술이라는 부제까지 생활밀착형 그림 설명을 기대했으나 현실이 없었다. ‘소재를 고르면서는 때마다의 사회적 이슈와 연결되도록이라는 머리말에 기대가 부풀었으나 그림과 현실의 접점이라는 가장 큰 특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현재적 관점으로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이 가끔 눈에 띄긴 했으나 다른 그림 해설서와 뚜렷이 차별화되는 지점이 없어 안타까웠다적당한 지식과 감상을 보여주는 문안한 책으로 보면 충분하다
  
신문에 연재 특성상 일반적으로 적절한 깊이로 조절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특정한 키워드로 단단하게 묶거나 시대와 유파를 넘어 저자 나름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그림을 보는 전문가의 안목을 빌려 사람들은 흥미를 갖게 되고 미술관을 찾는다풍부한 서사가 곁들여지든일반적인 감상에서 벗어나더라도 독특한 관점이 드러나는 책이 기다려진다순전히 개인적이 취향일 수 있으나 박홍순의 생각의 미술관이 오히려 그림을 재밌게 감상하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상상의 힘과 여지를 남겨 주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양 미술에는 수없이 많은 여자가 등장하지만 그들은 딱 세 부류로 나뉜다예쁜 여자나쁜 여자 그리고 어머니다…… 예쁜 여자의 전형은 비너스이고 나쁜 여자의 대표는 이브이며 어머니의 신은 성모마리아다. -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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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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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할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힐렐, 선조들의 어록, 114

 

이제는 이십대 후반이 된 녀석들과 추억을 더듬었다. 생각나지도 않는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듣고 있자니 민망하면서도 아련했다. 그 무렵 내게 간절했던 건 통찰력이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20, 30대를 거치면서 저절로 흐르는 시간에 맡긴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을 뿐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 고통을 견뎌야 했던 경험, 혼자라는 사실을 깨다는 과정이 나이를 먹는 과정이지만 저절로 혜안이 생기지는 않는다. 특정 정당, 종교, 이념, 가치, 윤리에 빠진 사람들을 자주 본다.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신념은 아무도 깨트릴 수 없는 도그마로 굳어진다. 경험과 나이를 내세우는 천박함, 지위와 권력을 드러내는 허접함, 돈과 물질을 앞세우는 비루함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로 세상은 가득하다.

 

배철현의 수련은 출판사의 기획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깊은 성찰과 고민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많다. 전체 428개의 키워드는 그 자체로 충분히 깊고 넓은 함의를 가진다. 하지만 3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본문은 200페이지도 안 된다. 이 작은 판형의 하드커버로 담아놓은 책의 분량을 문제 삼는 것은 화려한 학벌과 방송으로 알려진 이름값으로 기획한 냄새가 심하기 때문이다. 심연에 이어 수련이 나왔으니 곧 정적과 승화도 나올테다.

 

저자에겐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고전 문헌학자의 진정성은 간략한 원고에도 충분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인을 발견하고 완성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네 가지 단계인 심연-수련-정적-승화중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수련에는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감추고 싶은 나를 마주하는 시간인 직시, 삼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연습인 유기, 본질을 찾아가는 훈련인 추상, 나를 지탱해주는 삶의 문법인 패기가 그것이다. 정교한 그물처럼 각각 7개의 실천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의 고민과 수고로움이 배어 나오는 대신 숙성과 깊이가 드러나지 못해 아쉽다. 조금 천천히 쓰더라도, 독자들의 호흡이 짧아지더라도, 여전히 길고 느린 호흡으로 숨을 쉬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필요하다.

 

교황이 즉위식에서 건네받는 지팡이의 이름인 ‘sic transit gloria mundi! 세상의 영광은 어찌 이리 빨리 사라지는가!’는 최고의 종교 지도자로서 삼가야 하는 태도가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한 범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삶의 지침이 아닌가. 아주 잠시 머물다 간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수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바 없다. 어제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듯이. 수련은 오늘의 나를 변화시키는 훈련이다. 그 변화는 물론, 내 안에서 시작된다. 군더더기를 버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욕망을 덜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덕목이다. 덜고 비우는 연습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욕망조차 알기 어렵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왜 그러한가.

 

지적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간과해버린 삶의 태도를 점검할 수는 있다. 부디 자기 안에 쌓인 이기심을 포장하지 말고 수련을 통해 거듭날 수 있기를. 타인의 말과 행동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거울 앞에 설 용기를. 절대 진리와 영원한 가치가 없다는 정도는 파악하기를. 무엇보다 먼저 헛되고 헛됨을 확인하는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기를.

 

저는 인간이 고통을 당하거나 창피를 당할 때마다, 그런 고통과 창피를 당하는 장소에서 항상 침묵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편을 들어야 합니다.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압제자를 돕는 것이지 피해자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침묵은 폭력의 주동자를 독려합니다. - 102, 엘리 위젤Elie Wie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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