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창비시선 419
박라연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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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해석은 평론가의 몫이고 독자는 말놀이를 즐기면 그뿐이다. 한국어의 감각을 일깨우고 소설처럼 선명하진 않아도 나름의 이미지를 창조하며 감수성을 자극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길을 걷다 서점에 들러 박라연의 시집 표지를 보았다.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를 기억한다. 조금 늦은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의 언어는 응축된 의미보다 현란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깊이와 넓이를 확보하는 일보다 말을 부리는 일이 더 어렵다. 생각과 표현 사이의 거리를 극복하기 위한 각자의 몸부림이 있을 테지만 박라연에겐 그 고통이 즐거워보였다. 어린 시절에 읽은 시집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라 시간의 이편과 저편을 오갔으나 회한이 느껴지진 않았다. 시인도 독자도 딱 그만큼 세월을 견뎠을 테고 시간은 계속 흐를 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읽는 박라연의 시집 서시는 시간에 대한 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이 눈부신 줄도 모르고 흘려보낸 시간들. 혹자는 그 시간 속에 있을 테지만 지나고 나야 겨우 깨닫는 그런 시간들.

 

 

아름다운 너무나

 

우리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은

 

잠시 걸친

옷이나 구두, 가방이었을 것이나

 

눈부신

만큼 또 어쩔 수 없이 아팠을 것이나

 

한번쯤은

남루를 가릴 병풍이기도 했을 것이나

 

주인을 따라 늙어

이제

젊은 누구의 몸과 옷과

구두와 가방

아픔이 되었을 것이나

 

그 세월 사이로

새와 나비, 벌레의 시간을

날게 하거나 노래하게 하면서

 

이제 그 시간들마저

허락도

없이 데려가는 중일 것이나

 

 

시간은 인간을 옹색하게 만든다. 연륜과 혜안은 저절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세월 사이로 빠져나간 눈부신 청춘과 뜨거운 열정에 값하는 고통을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일하고 끊임없이 또 다른 욕망에 절망하고 가진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삶의 형태가 조금씩 다를 뿐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처구니없을 만큼 단순하고 감각적이다. 인간의 삶은 다 그러하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무너지면 사람 혹은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게 된다. 불면의 원인은 근심과 걱정이 아니다. 스트레스와 집착도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잠이 들면 깨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의 증상이 불면이다.

 

 

불면이 뭐라고 생각하나?

잘 죽지 못하는 거

단번에 죽지 못하는 거

 

잠이 뭔가?

죽는 연습

 

모두가 조용히 빈틈없이 죽고 없는 시공에

혼자 남아

죽다 깨다를 반복하면 어쩌지?

 

 

잠이 죽는 연습이라면 불면은 죽음에 대한 거부 반응이다. 연습조차 거부하는 생의 집착. 과연 그런가? 박라연의 이번 시집에는 타인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세상의 모습도 감춰진 듯싶다. 귓가에 속삭이듯 보이지 않는 천사가 이야기를 건네듯 목소리가 낮다. 감정의 기복이 없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건조하다. 감정을 배제한 축구 해설가의 따분한 목소리처럼.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누가 썼든 시는 특히 독자마다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것이 좋다. 개별 독자의 삶이 다르고 감정과 생각이 같지 않은데 시인의 말이 똑같이 전해질리 없다. 뜨거운 봄날 도심 한복판에서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는 문장을 보니 헤어진 이름은 떠오르지 않고 태양이 원망스러웠다.

 

 

 

고민,이란 친구에게 밥과 잠을 넘겨주면서

너의 허리는 얼마나 가늘어져야 했는지

두 눈은 또 얼마나 퀭해져야 했는지

 

분노와 슬픔으로 저녁을 짓고 뿌리내리던 주인들에게

감히 부탁해도 될까

 

누구의 고통이든

산 자들의 세끼들인데 화면을 확 돌려버리듯

외면하려 한 죄 용서해다오

살아서 펄떡이는 심장에서만 반짝이는 금모래빛

 

너의 빛으로 나의 내일을 뜨개질해다오

뼛속까지 휘파람 불게 해다오

 

 

봄날은 간다. 몇 번이나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계절은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온다. 온도와 습도 태양의 뜨거움에 맞게 꽃도 나무도 그리고 사람도 자라고 익어간다. 봄은 기쁨과 아니라 분노와 슬픔이다. 뼛속까지 휘파람 불 일이 없으니 천연덕스럽게 해다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시인에게 봄날이 어떠하든 잔인한(?) 4월이 가고 화려한(?) 5월도 지나가리라. 두 눈이 퀭해지는 밤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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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 - 역사 속 시그널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자크 아탈리 지음, 김수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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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 훌쩍 넘는 세월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해도 소식을 전하고 반갑게 맞는 사람이 있다반면에 십년 넘게 곁에서 보고 얼굴을 마주했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인연을 끊는 사람도 있다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다다수의 심리학자와 정신의가 공통적으로 손에 꼽는 행복의 제일 요소는 관계작게는 인간관계부터 크게는 인류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미래를 예언하거나 예측하기 어렵다
  
아주 오래 전 원시사회부터 눈부신 과학기술 문명을 이룩한 오늘에 이르는 동안 인간이 알 수 없는 일은 죽음 이후의 세계와 미래다당장 내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충돌하고 김광석이 자살하고 대통령이 구속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현재를 사는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반면에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것인지도 모른다미치도록 궁금하지만 절대 알 수 없는 미래자크 아탈리는 대담하게도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라는 책을 썼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미래를 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스웨덴의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말대로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는 말이다나와 상관도 없는 먼 과거를 파헤치기 보다는 우선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라는 충고다개인이든 국가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연장선상에 미래가 놓여 있지 않을까물론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하고 우연히 타인의 삶에 개입할 때도 있다그러나 대부분 큰 틀에서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는 미래의 원인이다
  
자크 아탈리는 이렇게 궁금한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제시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를 돌아본다우리는 신의 권능에 기대어 하늘이 예언을 하던 시대시간을 통제하며 인간이 권능을 가진 시대를 거쳐 이제는 기계의 권능을 앞세워 우연을 통제하려는 시대를 살고 있다여기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예언과 예측이다비과학적주술적 행위가 예언이라면 예측은 이성적 논리적 전략이다자크 아탈리는 체스와 같은 전략 게임음악문학유머로 예측을 훈련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 그가 인류사에서 벌어진 미래와의 전쟁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과정은 놀랍다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 지식을 하나의 키워드로 연결시키는 통찰력이 감탄스럽다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탄탄하고 정연한 지식의 네트워크를 경험할 수 있는 대목이 여럿이다
  
서술어가 마지막에 나오는 한국어처럼 뜸을 들여 자크 아탈리는 마침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회고적 예측
수명 예측
환경적 예측
감정적 예측
계획적 예측

  
이것이 바로 미래를 분석하는 다섯 가지 영역이다이중 과거를 돌아보라는 충고가 바로 회고적 예측이다나머지 영역은 개인타인기업국가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자기주장의 오류를 피해가려는 일반화추상화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다실제 점검 방법을 제시하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조언한다그것이 시중에 떠도는 성공전략자기계발서와 비교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자크 아탈리는 더큰 이익을 얻을 수 있고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인간의 삶을 가장 근본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미래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백짓장 같은 차이지만 바라보는 지점은 전혀 다르다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고 자기 자신이 될’ 준비를 위해서다

  
자유와 환상에 취한 대부분의 인간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이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체념하고 현재를 살아간다이제 영원은 그들의 안중에 없고심지어 자신이 살아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그들은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인간은 자신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부조리한 위희慰戱에 빠져 있다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게 하는 유희적인 활동을 말하는 위희는 수많은 미래 분석 연구에 영향을 끼친 블레즈 파스칼이 이론화한 개념이다인간들은 이제 그들의 미래 변화를 예언하는 책무를 기계에 맡긴 채 자신이 갇혀 있는 감옥의 벽안에 머물러 있다. - 140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미래를 예측하려는 사람들의 세속적 욕망은 뻔하지 않은가그들은 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다이 책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노력하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라는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유는 자유로운 삶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 때문이다노마드nomad를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된다.


미래를 ‘알기 위해’ 또는 ‘예언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반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본인이 원한다면 자유롭게 살고 ‘자기 자신이 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 14쪽

자유와 환상에 취한 대부분의 인간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이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체념하고 현재를 살아간다. 이제 영원은 그들의 안중에 없고, 심지어 자신이 살아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그들은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부조리한 위희慰戱에 빠져 있다. 본질적인 문제를 문제를 외면하게 하는 유희적인 활동을 말하는 위희는 수많은 미래 분석 연구에 영향을 끼친 블레즈 파스칼이 이론화한 개념이다. 인간들은 이제 그들의 미래 변화를 예언하는 책무를 기계에 맡긴 채 자신이 갇혀 있는 감옥의 벽안에 머물러 있다. - 140쪽

게으름은 예측의 최대 적이다. 반면 예측은 자유의 최고 동맹이다. 우리 각자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있어 최악인 블랙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예측이다. –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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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마음에 남아 - 매일 그림 같은 순간이 옵니다
김수정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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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유리벽 안에 사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신경림의 말대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보이지 않는 투명 비닐막에 싸여 허우적대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알아본다그리고 공감의 미소를 보내는 대신 모른 척 외면한다생채기 나기 쉬운 멘탈은 세상살이에 부적합하다예민하고 까탈스런 감정은 손을 댈 때마다 바스러진다타인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 불에 덴 것 같은 상처를 남긴다모두 웃는 상황에서도 짜증이 날 때도 있고심각한 상황이 너무 우스꽝스러워 미친 듯 폭소가 터질 때도 있다뺨을 스치는 바람서쪽 하늘에 물든 붉은 노을차창에 부딪치는 물방울소리없이 흐르는 구름의 모양에 발길을 멈춘다배터리를 제거한 핸드폰처럼 때때로 세상이 일시정지 화면으로 보이기도 한다깨어있는 모든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가족과 내 방이 너무 낯설어 불편하기도 하다그림은 마음에 남아를 쓴 김수정은 아마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상상속의 색을 좋아한다무라카미 류의 소설 제목이지만 내겐 제목만 남아 유토피아처럼 없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색을 쫓는다아주 오래 전 읽었던 그림 읽어주는 여자가 떠오른 건지나치게 내밀한 고백이 불편했기 때문이다최근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감성 팔이와는 다르지만 내면의 고백을 듣는 일이 내게는 불편했다외면하고 싶은 저 깊은 곳의 감정이기 때문이며애써 꾹꾹 눌러놓은 내면의 상처 때문이기도 하다이 책은 그림은 마음에 남아’ 깊은 울림을 준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이 그림에 남아 어쩔 줄 모르는 저자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림을 이해하는 거친 두 가지 방식은 머리와 가슴이다미술사에 대한 지식과 회화의 변천사는 미술관에 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진 않다그림을 받아들일 감수성이 없다면 기계적인 학습에 불과하다김수정은 서양화를 전공한 예술가다오랫동안 하얀 캔버스 앞에서 손끝이 갈라질 때까지 물감과 붓을 잡았던 사람이다스스로 그 긴 고통과 환희 순간을 말한 적은 없지만 행간에 스민 그림에 대한 열망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일상적 현대인의 모습능청스러울 만큼 자연스럽게 그에 어울리는 그림을 소개하는 방식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며 장점이다이주헌이나 이명옥이 보여주지 못했던 일상과 그림의 조화가 빛난다박제된 고전은 힘이 약하다현재성을 획득하지 못한 예술 또한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김수정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그림일상의 고통과 피로를 나눌 만한 그림소통과 나눔이 가능한 그림을 말한다그것은 지식으로서의 예술이 아니고 교양으로서의 그림이 아니며 삶 그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저자의 또 하나의 미덕은 독서력이다시와 소설은 물론이고 인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은 꼼꼼한 밑줄과 인용으로 가슴에서 머리로 그림에 대한 감상을 밀어 올린다간지러운 감성에 기대 대책 없는 위로를 건넸더라면 내겐 오히려 감동 없는 책읽기로 끝났을 듯. ‘혀는 거짓말을 일삼고 몸은 과장을 좋아한다는 천운영의 소설에 그은 밑줄을 보고 깜짝 놀랐다같은 책을 읽고 같은 문장에 밑줄 긋는 사람들의 동질감은 유리벽 안에 살면서 투명비늘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느낌이다
  
40개의 주제에 따라 소개된 그림들은 대체로 19세기이후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이 주종을 이룬다중세 미술이 더러 등장하기도 하고 한국 작가의 그림도 소개되지만 주로 인상주의에서 상징주의 청기사파까지의 그림을 소개한다미술사의 대체적인 흐름을 확인하는 책은 아니지만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반면 각 유파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대표작도 더러 포함되어 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는 작품들과 처음 대하는 화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식상한 그림 소개 책보다는 오히려 감상의 측면에서 신선했다
  
출근길 지하철의 풍경에서 시작해서 한겨울 찬 공기와 씨름해야 하는 상황까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저자의 일상은 공감대가 넓다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의 이야기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그림에 대한 깊은 이해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적절하게 교차하고 있어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도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만족스럽게 읽을 만한 책이다일상과 그림과 책이 꼴라주 된 저자만의 색깔이 분명하다다음에는 또 어떤 그림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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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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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에게 빚이 있다세상에 수많은 작가들에게도 그렇겠지만진중권은 나의 미술 선생님이다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 동안 뭔가 그리고 만들고 외웠으나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내 발로 미술관을 찾기 시작한 건 라루스 서양미술사』 일곱 권을 꼼꼼하게 읽은 다음부터가 아니었을까시작은 미학 오딧세이를 접하고 난 후의 일이겠지미술관에는 혼자 오는 여자들이 많지만 혼자 오는 남자는 거의 없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이미 3권이 완간되었다. ‘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이 그것이다이번에 나온 인주주의 편은 고전과 모더니즘 사이를 잇는 보론이다중간에 비어있는 시대를 채워야하지 않았겠나이밖에도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교수대 위의 까치현대미학강의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책은 누구에게나 어떤 작가든 다른 이미지를 심어놓고 떠난다같은 책도 독자마다 다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경우는 작고한 경우와 또 다르게 받아들여진다오롯이 책의 내용만 전달되는 게 아니라 그의 개인사언행도 수용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논객으로서 진중권은 이미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에 나온 인상주의 편은 앞선 저작보다 명쾌하다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를 거쳐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에 대한 흐름을 명쾌하게 전달한다진중권의 가장 큰 장점이다분명함상대적으로 약점이 될 수 있으나 이 책은 이미 존재하는 시대구분을 최대한 활용하고 대표적인 화가와 그림을 제시하며 독자의 머릿속을 모눈종이처럼 정확하게 획정한다이래도 정리가 안 되느냐는 듯이여전히 아쉬운 건 한국어 문장에 대한 노력 부족비문은 아니나 거친 문장과 번역투옛스러운 문장 구조가 난무하여 자꾸 신경이 쓰였다여기다 문장 지적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신경 쓰지 않는 건 같아 한마디 보탠다
  
중세의 장인들이 세계를 아는 대로’ 그리려 했다면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사실주의 화가들은 있는 대로’ 그리려했다인상주의impressionism 화가들은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 즉 인상impression을 그렸다자연스럽게 빛과 색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가시적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가시적 세계에 대한 순간적인 분위기가 우선이다형태는 지워지고 빛과 색만 남는다사실주의와 라파엘전파의 차이를 들여다보는 동안 어느덧 마네의 올랭피아를 들여다보고 있다수많은 전시회를 돌며 한번쯤 들여다본 그림들과 익숙한 화가들의 계속 등장한다새로운 그림과 화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없다다만 모더니즘 이전 시대의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차분함으로 충분했다
  
나는 모네보다 고흐의 그림 앞에서 훨씬 오래 머물렀던 기억을 떠올렸다수동적인 인상주의 보다 적극적인 표현주의expression가 마음에 든다예술가의 작품 활동이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어차피 고독한 자기만의 길이 아닌가그래서 뭉크의 절규가 뭉클한 감동을 준다상징주의를 넘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기 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의 그림은 역시 시대를 앞선 느낌이다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이야기로 넘어오면 현실이 보인다
  
두 개의 보론과 마지막에 잘 정리된 모더니즘을 향하여는 그대로 미술관에 가기 전 벼락치기 공부로 읽어두면 좋다요즘은 미술관에 가면 대부분 오디오 가이드를 받는다도슨트 시간을 맞추기도 하지만 손쉽게 이어폰을 꽂고 안내를 받는다그러나 그림이나 조각대신 설명에 집중하다 보니 주관적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느낌과 감동도 노력이 필요하다간략한 미술사에 대한 지식과 각 유파와 화가에 대한 지식을 얻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그림을 이해하는데예술을 즐기는데 필요한 건 사실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관심이다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미술관이 있고 놀랄 만큼 자주 전시회가 열린다통장의 잔고는 부러워하면서도 예술적 감수성은 부럽지 않을까돈으로 살 수 없는 감동과 두근거림과 여운을 주는 그림 하나음악 한 곡의 위대함.
  
현실 너머를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 난 늘 연민을 느낀다자기 세계가 좁은 사람은 감옥에서 산다는 사실을 모른다어느 철학자는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했지만 미학적 안목은 또 다른 세계의 한계를 보여준다넓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간지러운 감상주의가 아니라 통찰력 있는 안목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중세의 장인들이 세계를 ‘아는 대로’ 그리려 했다면,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 중세의 장인들이 그림을 ‘신학적 관념의 표현’으로 여긴 것과 달리,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것을 ‘가시적 세계의 재현’으로 여긴 것이다. 이들이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려 한 것은 물론 그 세계가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은 현세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 19쪽

거칠게 말하면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 1830년의 시민혁명이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 양식으로 표현되었다면, 사실주의는 1848년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 71쪽

‘사실주의’라는 말도 크게 세 가지 상이한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먼저 ‘대상의 사실적 묘사’라는 의미. 이 경우 사실주의는 사실상 자연주의의 동의어가 될 것이다. 둘째는 ‘당대 사회의묘사’라는 의미. 사실주의는 산업혁명의 결과로 출현한 ‘모던’의 사회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법으로서 자연주의와 뚜렷이 구별된다. 셋째는 ‘현실의 비판적 묘사’라는 의미. 사실주의의 바탕에는 종종 부당한 현실에 대한 고발과 비판의 정신이 깔려 있다. 물론 어떤 것이 사실주의 회화라 불리기 위해 이 세 조건을 모두 갖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현실의 변혁’이라는 의미다. 이미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자들은 예술을 사회변혁의 정치적 무기로 여겼다. - 72쪽

인상주의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외광을 쫓아서 야외로 나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빛의 효과였기에, 그들은 현장에서 신속하게 스케치를 한 후 바로 채색에 들어가곤 했다. 이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해준 것은 1840년대에 발명된 튜브 물감이었다. 튜브 물감이 없던 시절에는 원하는 색의 물감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채색을 화실 안에서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119쪽

고흐는 노랑을 좋아했다. 노랑이 감정적 진실의 상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235쪽

상징주의는 사실주의․인상주의․과학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탄생한 운도응로, 급속한 산업화․도시화․세속화로 뿌리를 잃은 사람들이 느끼는 극심한 정체성의 위기를 반영한다. 대도시의 환경에서 적응할 수 없었던 이들이 냉혹한 현실에서 환상의 세계로 정신적 피정을 떠난 것이다. - 272쪽

세잔의 작업은 고전미술이 현대미술로 이행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였다. 그의 화면에서 발견되는 ‘색채의 놀라운 풍부함’과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형태, 고전적 원근법과 다른 체험된 원근법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초석이 된다. 마티스는 그에게서 색채의 효과를, 피카소는 그에게서 형태의 기하학적 단순화와 고전적 원근법의 파괴를 배웠다. 현대미술의 두 위대한 이정표 모두 세잔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형태는 기능에서 나온다. 기능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이 새로운 미감을 우리는 ‘모더니즘’이라 부른다. - 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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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7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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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애가 노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140

 

이 문장은 마치 1755년 루소가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를 내다본 것 같은 예언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란 논문에서 그는 존재가 아닌 소유를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모은 인간이 평등했던 원시 시대는 역사적 차원의 시대 설정이 아니었다. 이는 개념적 차원에서 악, 도덕, 평등이란 개념조차 필요 없었던 시기를 말한다.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세습과 유산 상속이 가능해지자 자연스럽게 권력과 계급이 만들어졌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모든 인간은 불평등에 시달리며 산다.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다른 생각을 가졌던 루소는 사회계약론에밀로 유명하다.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고 불우한 말년을 보냈으나 루소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시대를 앞섰다. 학문과 예술의 발달과 더불어 도덕이 타락했다고 주장하며 계몽주의 사상에 반기를 들었던 그는 경제와 계급의 관점이 아니라 정치가 인류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군주제와 귀족제 그리고 민주제가 가진 불평등의 요소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보자. 세습된 왕 혹은 소수의 귀족 혹은 선출된 대표자. 무엇이 다른가. 대한민국은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을까.

 

권력은 경제로 넘어갔다는 대통령도 있었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국가를 수익모델로 생각한 대통령도 만났다. 멍청한 꼭두각시를 믿고 맡기기도 했으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정치 제도의 문제일까? 개헌을 하면 세상이 달라질까? 패배주의와 정치 혐오 발언이 아니다. 260년 전 루소의 말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분석하는 잣대로 활용될 수도 없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불평등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 원인과 대책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하는 게 아닐까.

 

그것은 사회 계층 구조를 허물고, 경제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선언적 의미와 다르다. 인간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 사회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목적지의 문제다. 어디를 보고 어떻게 흘러가는가. 권력과 권력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경제 시스템과 기업의 목적을 다르게 해석하고 분배의 정의에 합의하지 못하며 서로 다른 복지 개념을 가진 자들의 쟁투가 우매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린다.

 

남이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마태복음의 말씀을 듣고 신자들의 행동이 달라졌을까. 그들이 만든 세상은 어떠한가. “타인의 불행을 되도록 적게 하여 너의 행복을 이룩하라는 말씀을 인용한 루소의 생각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논박하고자 한 것은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현실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낸 정치체제와 인간들의 속성이다.

 

아무리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며 발언하고 행동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 쉽게 끓는 냄비처럼 유행을 타고 시류에 영합하며 함께 손가락질하고 뉴스를 소비한다. 손바닥처럼 뒤집어 같은 논리를 자신에게 적용하기는 싫고 모든 영역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싶지도 않다. 합리적 이성과 논리적 증오는 불가능하다. 거시적 관점으로 구조를 바꾸고 판을 흔들자는 선언들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찧고 까불다 이내 지쳐 나뒹굴고 손톱만큼의 손해라도 생길 것 같으면 외면하고 제 잇속만 차리는 건 정치인이나 우리들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을 자연법이 적용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의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본 홉스와 대척점에 서 있던 루소는 왜 그 시절을 그리워했을까. 과거로의 회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선언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당대 현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추악한 욕망과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한 사자후가 아니었을까.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제대로 읽어낼 사상가도 논객도 부재한 현실이 답답하다, 아니 한심하다.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침묵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자유에 대한 사랑에 관하여 정치가들은 철학자들이 자연 상태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은 궤변을 곧잘 늘어놓는다. 그들은 보이는 사물을 가지고 아직 본 적이 없는 전혀 다른 사물을 판단한다. 그리고 눈앞의 사람들이 노예 상태를 참아내는 것을 보고는 인간에게는 예속에 대한 자연적인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유란 순결이나 미덕 같은 것으로서 그것을 잃어버리면 그것에 대한 취미도 곧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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