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진중권에게 빚이 있다세상에 수많은 작가들에게도 그렇겠지만진중권은 나의 미술 선생님이다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 동안 뭔가 그리고 만들고 외웠으나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내 발로 미술관을 찾기 시작한 건 라루스 서양미술사』 일곱 권을 꼼꼼하게 읽은 다음부터가 아니었을까시작은 미학 오딧세이를 접하고 난 후의 일이겠지미술관에는 혼자 오는 여자들이 많지만 혼자 오는 남자는 거의 없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는 이미 3권이 완간되었다. ‘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이 그것이다이번에 나온 인주주의 편은 고전과 모더니즘 사이를 잇는 보론이다중간에 비어있는 시대를 채워야하지 않았겠나이밖에도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교수대 위의 까치현대미학강의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책은 누구에게나 어떤 작가든 다른 이미지를 심어놓고 떠난다같은 책도 독자마다 다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경우는 작고한 경우와 또 다르게 받아들여진다오롯이 책의 내용만 전달되는 게 아니라 그의 개인사언행도 수용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논객으로서 진중권은 이미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에 나온 인상주의 편은 앞선 저작보다 명쾌하다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를 거쳐 신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에 대한 흐름을 명쾌하게 전달한다진중권의 가장 큰 장점이다분명함상대적으로 약점이 될 수 있으나 이 책은 이미 존재하는 시대구분을 최대한 활용하고 대표적인 화가와 그림을 제시하며 독자의 머릿속을 모눈종이처럼 정확하게 획정한다이래도 정리가 안 되느냐는 듯이여전히 아쉬운 건 한국어 문장에 대한 노력 부족비문은 아니나 거친 문장과 번역투옛스러운 문장 구조가 난무하여 자꾸 신경이 쓰였다여기다 문장 지적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신경 쓰지 않는 건 같아 한마디 보탠다
  
중세의 장인들이 세계를 아는 대로’ 그리려 했다면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사실주의 화가들은 있는 대로’ 그리려했다인상주의impressionism 화가들은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느낌 즉 인상impression을 그렸다자연스럽게 빛과 색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가시적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가시적 세계에 대한 순간적인 분위기가 우선이다형태는 지워지고 빛과 색만 남는다사실주의와 라파엘전파의 차이를 들여다보는 동안 어느덧 마네의 올랭피아를 들여다보고 있다수많은 전시회를 돌며 한번쯤 들여다본 그림들과 익숙한 화가들의 계속 등장한다새로운 그림과 화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없다다만 모더니즘 이전 시대의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차분함으로 충분했다
  
나는 모네보다 고흐의 그림 앞에서 훨씬 오래 머물렀던 기억을 떠올렸다수동적인 인상주의 보다 적극적인 표현주의expression가 마음에 든다예술가의 작품 활동이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어차피 고독한 자기만의 길이 아닌가그래서 뭉크의 절규가 뭉클한 감동을 준다상징주의를 넘어 모더니즘으로 넘어가기 전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의 그림은 역시 시대를 앞선 느낌이다아르누보와 아르데코 이야기로 넘어오면 현실이 보인다
  
두 개의 보론과 마지막에 잘 정리된 모더니즘을 향하여는 그대로 미술관에 가기 전 벼락치기 공부로 읽어두면 좋다요즘은 미술관에 가면 대부분 오디오 가이드를 받는다도슨트 시간을 맞추기도 하지만 손쉽게 이어폰을 꽂고 안내를 받는다그러나 그림이나 조각대신 설명에 집중하다 보니 주관적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느낌과 감동도 노력이 필요하다간략한 미술사에 대한 지식과 각 유파와 화가에 대한 지식을 얻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그림을 이해하는데예술을 즐기는데 필요한 건 사실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관심이다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미술관이 있고 놀랄 만큼 자주 전시회가 열린다통장의 잔고는 부러워하면서도 예술적 감수성은 부럽지 않을까돈으로 살 수 없는 감동과 두근거림과 여운을 주는 그림 하나음악 한 곡의 위대함.
  
현실 너머를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 난 늘 연민을 느낀다자기 세계가 좁은 사람은 감옥에서 산다는 사실을 모른다어느 철학자는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라고 했지만 미학적 안목은 또 다른 세계의 한계를 보여준다넓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간지러운 감상주의가 아니라 통찰력 있는 안목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중세의 장인들이 세계를 ‘아는 대로’ 그리려 했다면,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 중세의 장인들이 그림을 ‘신학적 관념의 표현’으로 여긴 것과 달리,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것을 ‘가시적 세계의 재현’으로 여긴 것이다. 이들이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려 한 것은 물론 그 세계가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은 현세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 19쪽

거칠게 말하면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 1830년의 시민혁명이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 양식으로 표현되었다면, 사실주의는 1848년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탄생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 71쪽

‘사실주의’라는 말도 크게 세 가지 상이한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먼저 ‘대상의 사실적 묘사’라는 의미. 이 경우 사실주의는 사실상 자연주의의 동의어가 될 것이다. 둘째는 ‘당대 사회의묘사’라는 의미. 사실주의는 산업혁명의 결과로 출현한 ‘모던’의 사회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법으로서 자연주의와 뚜렷이 구별된다. 셋째는 ‘현실의 비판적 묘사’라는 의미. 사실주의의 바탕에는 종종 부당한 현실에 대한 고발과 비판의 정신이 깔려 있다. 물론 어떤 것이 사실주의 회화라 불리기 위해 이 세 조건을 모두 갖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현실의 변혁’이라는 의미다. 이미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자들은 예술을 사회변혁의 정치적 무기로 여겼다. - 72쪽

인상주의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외광을 쫓아서 야외로 나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빛의 효과였기에, 그들은 현장에서 신속하게 스케치를 한 후 바로 채색에 들어가곤 했다. 이를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해준 것은 1840년대에 발명된 튜브 물감이었다. 튜브 물감이 없던 시절에는 원하는 색의 물감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채색을 화실 안에서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119쪽

고흐는 노랑을 좋아했다. 노랑이 감정적 진실의 상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235쪽

상징주의는 사실주의․인상주의․과학주의에 대한 반발에서 탄생한 운도응로, 급속한 산업화․도시화․세속화로 뿌리를 잃은 사람들이 느끼는 극심한 정체성의 위기를 반영한다. 대도시의 환경에서 적응할 수 없었던 이들이 냉혹한 현실에서 환상의 세계로 정신적 피정을 떠난 것이다. - 272쪽

세잔의 작업은 고전미술이 현대미술로 이행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였다. 그의 화면에서 발견되는 ‘색채의 놀라운 풍부함’과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형태, 고전적 원근법과 다른 체험된 원근법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초석이 된다. 마티스는 그에게서 색채의 효과를, 피카소는 그에게서 형태의 기하학적 단순화와 고전적 원근법의 파괴를 배웠다. 현대미술의 두 위대한 이정표 모두 세잔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형태는 기능에서 나온다. 기능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이 새로운 미감을 우리는 ‘모더니즘’이라 부른다. - 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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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7
장 자크 루소 지음, 주경복 옮김 / 책세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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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애가 노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 140

 

이 문장은 마치 1755년 루소가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를 내다본 것 같은 예언이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란 논문에서 그는 존재가 아닌 소유를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모은 인간이 평등했던 원시 시대는 역사적 차원의 시대 설정이 아니었다. 이는 개념적 차원에서 악, 도덕, 평등이란 개념조차 필요 없었던 시기를 말한다.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세습과 유산 상속이 가능해지자 자연스럽게 권력과 계급이 만들어졌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모든 인간은 불평등에 시달리며 산다.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다른 생각을 가졌던 루소는 사회계약론에밀로 유명하다.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고 불우한 말년을 보냈으나 루소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시대를 앞섰다. 학문과 예술의 발달과 더불어 도덕이 타락했다고 주장하며 계몽주의 사상에 반기를 들었던 그는 경제와 계급의 관점이 아니라 정치가 인류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군주제와 귀족제 그리고 민주제가 가진 불평등의 요소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보자. 세습된 왕 혹은 소수의 귀족 혹은 선출된 대표자. 무엇이 다른가. 대한민국은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을까.

 

권력은 경제로 넘어갔다는 대통령도 있었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국가를 수익모델로 생각한 대통령도 만났다. 멍청한 꼭두각시를 믿고 맡기기도 했으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정치 제도의 문제일까? 개헌을 하면 세상이 달라질까? 패배주의와 정치 혐오 발언이 아니다. 260년 전 루소의 말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분석하는 잣대로 활용될 수도 없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불평등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그 원인과 대책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하는 게 아닐까.

 

그것은 사회 계층 구조를 허물고, 경제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선언적 의미와 다르다. 인간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 사회 공동체가 지향해야할 목적지의 문제다. 어디를 보고 어떻게 흘러가는가. 권력과 권력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경제 시스템과 기업의 목적을 다르게 해석하고 분배의 정의에 합의하지 못하며 서로 다른 복지 개념을 가진 자들의 쟁투가 우매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린다.

 

남이 해주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마태복음의 말씀을 듣고 신자들의 행동이 달라졌을까. 그들이 만든 세상은 어떠한가. “타인의 불행을 되도록 적게 하여 너의 행복을 이룩하라는 말씀을 인용한 루소의 생각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논박하고자 한 것은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현실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낸 정치체제와 인간들의 속성이다.

 

아무리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며 발언하고 행동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 쉽게 끓는 냄비처럼 유행을 타고 시류에 영합하며 함께 손가락질하고 뉴스를 소비한다. 손바닥처럼 뒤집어 같은 논리를 자신에게 적용하기는 싫고 모든 영역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싶지도 않다. 합리적 이성과 논리적 증오는 불가능하다. 거시적 관점으로 구조를 바꾸고 판을 흔들자는 선언들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찧고 까불다 이내 지쳐 나뒹굴고 손톱만큼의 손해라도 생길 것 같으면 외면하고 제 잇속만 차리는 건 정치인이나 우리들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을 자연법이 적용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의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본 홉스와 대척점에 서 있던 루소는 왜 그 시절을 그리워했을까. 과거로의 회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선언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당대 현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추악한 욕망과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한 사자후가 아니었을까.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제대로 읽어낼 사상가도 논객도 부재한 현실이 답답하다, 아니 한심하다.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침묵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자유에 대한 사랑에 관하여 정치가들은 철학자들이 자연 상태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은 궤변을 곧잘 늘어놓는다. 그들은 보이는 사물을 가지고 아직 본 적이 없는 전혀 다른 사물을 판단한다. 그리고 눈앞의 사람들이 노예 상태를 참아내는 것을 보고는 인간에게는 예속에 대한 자연적인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유란 순결이나 미덕 같은 것으로서 그것을 잃어버리면 그것에 대한 취미도 곧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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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 임진왜란부터 태평양전쟁까지 동아시아 오백년사 메디치 WEA 총서 4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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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왜 필요할까.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가장 충격적인 전쟁에 대한 경험도 개인에 따라 다르고 그 의미는 더더욱 같지 않다. 국가와 민족마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는데 이의가 없다. 권력 쟁탈에 실패한 자, 패전국의 이야기는 묻히기 마련이다. 개인도 국가도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선택적 기억뿐 아니라 오해와 소문이 겹치면 사실fact는 사라지고 진실truth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김시덕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서술 방식과 내용 전달 방법이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책이다. 연구자의 결과물은 논문의 형태로 일반에게 읽힐 목적의 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연구소, ○○대학교에 적을 둔 사람들의 책은 대체로 노잼이라는 편견이 생겼다. 아카데미즘의 울타리를 넘어 저널리즘의 세계로 진입하려면 하얀 가운을 벗고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챙겨야 하는 게 아닐까. 학벌과 현직을 믿고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 읽기 시작하면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대개 그러하다. 내용이 허접하고 별 볼일 없다는 평가가 아니다. 읽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항변이라면 할 말 없다. 너의 선구안을 반성하라면 그도 할 말 없다. 그래서 연구 결과물, 학문적 성과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자는 언제나 출판시장에서 환영받는 저자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벌어졌다. 16세기 중반부터 오백년간 벌어진 동아시아의 생존경쟁과 권력다툼은 국가가 전쟁 혹은 민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이 책은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과 중국, 러시아, 타이완 등 유라시아의 전쟁사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인 인명과 지명이 수업이 등장하고 일본의 국내 사정을 사정이 인용된 자료를 통해 상세히 제시되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지극히 개인적인으로 놀랄 일은 나의 무지無知. 익숙하지만 가본 적 없는 오키나와, 이오지마 섬의 위치를 구글 지도에서 확인하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역사는 시간공간의 좌표축 위에서 3D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2D는커녕 겨우 시간의 흐름만 줄줄 꿰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르 강과 사할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과 러시아의 충돌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벌어졌는지 다시 확인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정 위치가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공간적 위치와 거리가 새삼스러웠다. 확대, 축소가 자유자재로 가능하고 해양과 대륙의 높낮이까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던 구글 지도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계지리부도지구본이 전부였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점점 높아지는데 디지털로 확보된 자료를 읽어내는 눈과 파편화된 정보 사이를 가늠할 수 있는 안목은 점점 낮아지는 건 아닌지.

 

한국이 일본을 대하는 태도, 북한과 중국, 미국과 일본의 역학관계가 초미의 관심사다. 저자가 가진 관점이 옳다고 볼 수는 없으나 역사적 안목이 필요한 부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힘의 논리, 각국의 역학 관계는 이제 한두 가지 요소로 환원될 수 없는 시대다. 위아래로, 안팎으로 깊고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갈 길은 멀고 날은 금세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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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각국의 교류 양상을 이해하고 얽힌 역사적 관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정수일의 한국 속의 세계 (), ()가 좋다.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도 여러 사람의 지혜를 빌릴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최근에 나올 신간 동아시아 지식인의 대화, 김소영 편,현실문화연구, 2018.03.30동아시아 고전의 이해, 문현주 외, 경상대학교출판부, 2018.02.28.이 기대된다. 어렵지 않게 서술된 다음 책들도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미래를 여는 역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 한겨레출판, 2005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박노자, 한겨레출판, 2007

동아시아의 역사 1~3, 동북아역사재단, 2011

키워드로 읽는 동아시아, 신윤환 외, 이매진, 2011

동아시아를 만든 열 가지 사건, 아사히신문취재반, 창비, 2008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박태균 외, 창비, 2011

우리 안의 타자 동아시아, 김만수 외, 인하대학교한국학연구소, 2011

세계의 중심 동아시아의 역사, 워렌 코헨, 일조각,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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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 2018-06-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 좋은 정보 매번 잘 읽고 갑니다~!

sceptic 2018-06-23 00: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잠시 혼자 있겠습니다 - 복잡한 세상, 나를 지키는 자유의 심리학
마이클 해리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

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이문재, 여기가 맨 앞중에서

 

쓰다 가즈미는 그의 저서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에서 고독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그 하나는 론리니스loneliness’. 사회와의 관계성이 단절되어 힘들고 어둡고 외로운 소극적 고독이 그것이다. 나머지 하나가 적극적 고독솔리튜드solitude’. 솔리튜드는 삶에 빛과 자신감을 부여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면서 쓰다 가즈미는 론리니스를 어두운 고독이라고 하고, ‘솔리튜드를 밝은 고독이라고 불렀다. 사회적 관계로부터 격리된 외로움을 수반하는 감정이 론리니스이며, 심신을 재생시키기 위해 본연의 자기다움을 찾고자 하는 긍정적인 고독이 솔리튜드. 당신이 말하는 외로움과 고독은 론리니스인가 솔리튜드인가?

 

마이클 해리스는 솔리튜드solitude잠시 혼자 있겠습니다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제목이 책 판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길고 희한안 제목은 대부분 번역 출판물에 붙인 출판사의 솜씨다. ‘복잡한 세상, 나를 지키는 심리학이라는 부제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독자가 책을 접하는 1차 정보가 제목과 부제다. 책의 핵심 내용을 전달할 수 있으며 그 특징을 한 문장으로 매혹시키려는 심정은 백분 이해하지만 제목도 별로고 부제는 잘못 붙였다. 이 책은 심리학 책이 아니다. ‘솔리튜드의 가치를 고민하고 실제 현실에서 실천해보자는 취지의 동기유발,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이 책을 아직 접하지 않은 사람은 니콜라스의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먼저다. 홀로 있음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저자의 노력은 충분히 가치있다. 외로움이 삭제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재확인된다. 그것은 인터넷과 SNS로 요약된다. 초연결 시대. 한 순간도 네트워크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대인은 자발적 노예에 가깝다. 냄비처럼 끓여지는 대신 냄비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해 본 적은 없는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블로그, 카페를 비롯한 각종 단톡방과 커뮤니티.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을까. 좀더 자유롭게그리고 고독하게살 수는 없을까.

 

세상은 홀로 있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기 취향도, 자기 생각도 없다. 트렌드의 노예로, 정보의 쓰레기더미에서 허우적거린다. 땅을 밟지 않고 하늘을 쳐다볼 시간이 없다. 소셜미디어가 없는 순간을 상상할 수 없으며 우리 몸도 여기에 최적화되어 간다. 휴대폰을 끄고 노트북을 덮고 하루에 100분 정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려보자. 누어서 꼼짝도 하지 않고 공상을 하든지 아니면 책을 읽고 음악을 듣든지. 음식의 발효와 부패는 한 끝 차이다. 숙성은 기다림의 다른 표현이다. 한 순간도 멈추지 못하는 사람, 촌각을 다퉈 자기를 계발하는 사람, 실시간 흘러넘치는 뉴스를 흡입하는 사람, 관계 불안에 허덕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것이 두 사람 사이의 연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본다. 즉 각자가 타인의 홀로 있음을 보호해주는 일말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한 말이다. 사랑한다면 내버려 두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나누고 싶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지속 가능한 사랑은 예의바른 무관심과 따뜻한 외면에서 시작된다. ‘솔리튜드solitude’는 보다 성숙한 나를 만드는 비법이 아니다.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삶의 태도와 방법이 다르다.

 

 

 

 

팝핑[popping] : 재미를 보태고_대중성

1.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김석희, 살림, 2016.11.01

2.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노명우, 사월의책, 2013.10.01

3.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역, 문학사상사, 2005.07.28.

4. 안녕, 후두둑 씨, 이용한, 실천문학사, 20060530

5. 남자 외롭다, 토머스 조이너, 황소자리, 2013.11.25.

 

펌핑[pumping] : 외연을 넓히며_동질성

1. 고독의 위로, 앤서니 스토, 이순영 역, 책읽는수요일, 2011.10.13.

2. 새로운 고독, 마리프랑스 이리구아앵, 바이북스, 2011.10.10

3. 생의 수레바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황금부엉이, 2009.09.29.

4. 행복의 경고, 엘리자베스 파렐리, 베이직북스, 2012.11.30

5. 단속사회, 엄기호, 창비, 2014.03.17

 

점핑[jumping] : 깊이를 더해서_연계성

1.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최지향 역, 청림출판, 2015.01.09

2. 고독한 군중, 데이비드 리스먼, 동서문화사, 2011.01.10

3.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외, 장 자크 루소, 진인혜 역, 책세상, 2013.01.25

4.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문학동네, 2010.03.19.

5.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에밀 시오랑, 김정숙 역, 챕터하우스, 201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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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장 - 막이 내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
노명우 지음 / 사계절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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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됐다.’

아버지는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당신 수고 많았다.” - 413

 

인생이란 고칠 수 없는 단 한 번의 연극이라는 비유는 식상하지만 그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기도 어렵다. 노명우의 인생극장을 읽는 동안 몇 번 코가 시큰했고 눈물이 고였다. 2015년과 2016년에 잇달아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보낸 노명우처럼 2017년 봄에 아버지가 떠나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공감은 유사성에서 기인한다. 이해할 수도 상황, 상상해 본적 없는 감정에 공감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감동을 받은 책이 아니라 공감한 책이다. 감동과 공감은 다르다.

 

1924년생 노병욱 요셉과 1936년생 김완숙 세실리아는 사회학자 노명우의 부모다. 살아계셨다면 80, 90대 노인이다. 그분들은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버지, 어머니라는 일반명사로 읽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저 그런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명우가 시도했듯 1917년생 영웅박정희가 걸었던 삶의 궤적과 확연히 구별된다. 박정희도 모자라 그의 딸까지 모셨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두 분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회학자의 눈에 비친 두 분의 삶은 고스란히 대한민국 사회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다.

 

염려했던 대로 아들로서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워하는 애잔한 마음과 지극히 주관적인 언사가 군데군데 집중력을 떨어뜨렸으나 지나치진 않았다. 메마르고 객관적 시선으로 서술하는 방식 또한 공감을 덜어냈을 테니까. 노병우 요셉은 충남 공주에서, 김완숙 세실리아는 서울 창신동에서 태어났다. 노명우는 파주 광탄면 신산2리에서 인생극장의 막을 올렸다. 아들 사회학자가 부모자연인으로 바라보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막이 내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이 선명해서 조금 불편했다.

 

다만 사회학자의 눈에 비친 당대의 모습과 그 시대를 살아왔던 이 땅의 모든 그저 그런사람들의 이야기가 내게도 일부 겹쳤기 때문에 훨씬 더 공감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박정희 시대를 기억하는 세대가 이젠 망자가 되거나 노년에 접어든다. 시대를 읽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노명우는 영화를 선택했다. 실제 당시의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 강좌 덕에 만든 책이지만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는 내용도 흑백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재밌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인데도 이제는 아주 먼 옛날 얘기처럼 들린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얘기겠지만. 텍스트는 여전히 소수만 공유하는 세계다. 성인 104명은 전혀 텍스트를 접하지 않는다는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의 결과가 오히려 놀랍다. 어쨌든 6명은 읽는다는 말이니까.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1959년부터 2014년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이에 비해 노명우의 인생극장1924년부터 1960대를 주로 다룬다. 이후의 이야기는 후일담에 해당한다. 1966년생 막내 아들이 바라본 부모님의 삶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역사학자라면 그분들의 삶은 그대로 미시사 연구의 사료로 사용되기에 충분했으리라. 다만 노명우도 부모님이 남긴 자료와 흔적이 많지 않아 동시대의 영화, 통계 자료로 갈음한다. 레인보우 클럽에서 무지개 다방으로 바뀌는 과정은 우리의 근현대사의 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부모가 공무원이나 회사원이었다면 노명우는 이 책을 쓰지 못했으리라. 식민지 시대부터 6.25 전쟁 그 이후의 삶은 모든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소설보다 파란만장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그 시대를 읽어내는 객관적인 기록이면서 지극히 사적인 고백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세상은 한창 상영 중인 영화다. 어서 빨리 엔딩 크레딧을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이제 막 클라이맥스를 찍고 있는 사람도 있다.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도 있고 비참하고 우울한 사람도 있을 터. 그러나 곧(?) 막을 내린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기 영화의 스토리를 바꿔보고 싶다면 용기와 변화가 필요하다. 아무도 시나리오를 써주지도 고쳐주지도 않는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손가락질의 방향을 돌려야하지 않을까. 모두 내 탓이라는 낮은 자존감도 문제지만 자기 영화의 스토리를 남에게 맡기는 사람도 문제다. 노명우의 말대로 우리 모두 인생극장의 주인공이다. 조연인척 하지 말자. 감독이나 작가를 욕하면 달라질까.

 

아주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와 그토록 함께 나누고 싶었지만 그가 멀리 가고 나서야 비로소 정체가 드러나는 그 무엇을 알아차린다. 우리는 그가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재인용, 4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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