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서울 - 미래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스무살의 사회학
아마미야 카린, 우석훈 지음, 송태욱 옮김 / 꾸리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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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삶은 비루하다. 끝없는 욕망과 도덕의 싸움. 이드와 에고는 오늘도 전쟁중이다. 자신을 속이고 타인에게 속고 거짓 희망을 노래한다. 일요일 아침 봉준호 감독의 <마더>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과 어미의 마음과 한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보았다. 기억과 망각 시스템의 절묘한 조화가 없다면 인간은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려거든 현재를 돌아보아야 한다. 과거 속에 현재가 있고 현재는 미래를 말해주는 법이니. 앞선 세대는 다음 세대의 거울이 되기도 하지만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같은 세대의 문화를 전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경제적 여건이나 정치적 상황, 문화적 토대가 달라지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데 앞선 세대는 젊은 세대가 살아갈 세상의 미래를 만든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기성세대는 젊은 시대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시장 우선주의, 경쟁과 효율의 제고를 우선적 가치로 내세운 한국 경제 혹은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결과는 젊은 세대에게 미래를 빼앗았다. 이탈리아의 ‘1000유로 세대’는 한국의 ‘88만원 세대’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한국의 ‘백수’는 일본의 ‘다메렌’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전 지구적 현상으로 확산되는 위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는 것일까?

  일본의 아마미야 카린이 한국을 찾았다. 그녀의 이력은 특이하다.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이며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이고 ‘반反 빈곤네트워크’ 부대표이다. 일본에서 신사회 운동의 기수로 알려져 있으며 극우파 펑크록 밴드의 보컬에서 빈곤과 생존을 요구하는 젊은 세대 운동에 뛰어든 활동가가 되었다. 레즈비언, 자살, 대학입시 실패 등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좌절과 굴곡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으며 머리보다 가슴과 발로 현장을 찾아가고 실천적 운동가로 활약하는 그녀의 현재다.

  ‘88만원 세대’ 일본판의 추천사를 쓴 인연으로 두 사람은 시대를 함께 고민한다. 국경을 넘어 문제를 공유하고 카린이 한국을 방문하고 취재한 결과물이 <성난 서울>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비정규직의 삶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의 현재를 살펴보면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 때문에 일자리가 없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하는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빈곤과 불안은 계속되고 그들의 삶은 고통스럽게 이어진다. 기성세대가 책임져야할 부분도 있고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완고하다. 기득권은 강화되고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자본과 교육은 불공평한 경쟁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한 곳에 집중된다. 전체 사회로 볼 때 매우 심각하며 불행한 일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서로가 경쟁에 몰입하고 승자가 되기 위한 제로섬 게임은 지속된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러한 현상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더 심각한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상황이나 일본의 90년대 장기 불황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카린은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래서 카린은 “만국의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precarious 프롤레타리아트)여, 공모하라!”고 외친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던 프로파간다의 패러디지만 역사는 순환하고 반복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상황이 달라졌고 계급을 가르는 기준이 조금 변했을 뿐이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고, 소유도 행복도 동일하다면 사람들은 그곳을 천국이나 유토피아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카린이나 우석훈의 비판과 고민은 불공정한 경쟁과 경쟁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서 비롯된다. 이대로 지속가능한 사회가 가능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이 우리에겐 없단 말인가.

  계급과 일치하지 않는 투표결과, 나는 비정규적이 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빈곤과 차별에 대한 왜곡된 시선 등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룬다. 우리는 그 사회에 살고 있으며 때때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여유가 없어지고 행복하지 않으며 웃음이 사라지고 비관적이고 우울한 날들이 계속될 것 같은 상황은 계속된다. ‘희망고문’에 속지 말아야한다. 기업 광고를 통해 대한민국을 믿는다고 외치는 그들은 대다수 서민들의 고통을 먹고산다.

  작은 당근과 커다란 채찍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고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냉철한 상황판단 능력과 부정적 현실에 댛나 비판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방송과 언론의 내용은 모두 옳은 것인지, 그것들의 숨겨진 의도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위치에서 행동하고 반격을 시도해야 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삶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를 <성난 서울>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적절한 비유다. 공교롭게도 제목처럼 달아오르고 있는 대한민국과 ‘성난 서울’의 미래는 대통령이나 위정자들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만들어가야 한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주위를 돌아보고 타인을 배려하고 여럿이 함께 걸어갈 준비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길 위에서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고 우리들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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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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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전직 대통령의 자살. TV를 보지 않는 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에 장난질처럼 누군가의 문자로 전해졌다. 희망돼지 노무현의 파란만장한 삶과 정치 역정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스쳤다. 가난했지만 그리웠던 고향땅, 권양숙 여사와 함께 자란 봉하 마을로 돌아왔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위아래 낭떠러지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그렇게 전직 대통령을 보냈다.

  주말 아침에 대한민국은 쇼크를 받았다. 9.11 테러가 미국인에게 준 충격보다 훨씬 심각한 충격이었다. 할 말은 많지만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주고 그는 떠났다. 남겨진 사람들을 비웃듯 그렇게 자유를 찾아 허공에 몸을 던질 것일까? 이제 모든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맡겨졌다. 우리의 삶은 어쨌든 계속될 테니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했던 수재가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판검사가 되는 것이다. 7개월만에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노무현의 인생에서 사법시험은 인생역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패밀리의 일원이 되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법은 새로운 인생을 주었으며 종국에는 생을 마감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의 책장을 덮은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을 했다.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과 애통함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노무현이라는 자연인이 느껴야 했던 불만과 고통, 압박과 자괴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누구나 유사한 심리 상태에 빠져 본 적이 있을 것이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신념이 무너진 후의 참담함이다.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아니 왜 견뎌내지 못했을까. 누구를 탓하기 앞서 인간적인 연민과 안타까움에 목이 멘다.

  대부분 사람들은 법과 무관하게 살지만 일평생 무관할 수는 없다. 어떤 형태로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법과 마주하게 된다. 반응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상처받고 좌절한다.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법은 그 적용에 있어 절대 평등하지 않다. 그것은 법을 지켜야 하는 국민들도 잘 알고 있고 법을 적용하는 법조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아는 사람을 찾고 청탁을 한다. 그것이 말이든 돈이든 그 무엇이든.

  희망제작소의 ‘우리시대 희망찾기’ 연구 프로젝트의 하나로 발간된 이 책은 시의적절하다.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가 이렇게 시의성까지 출판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법의 문제는 항상 초미의 관심이라는 말이 옳을 것이다. 촛불 집회 당신 서울지방법원 법원장이었던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배당 문제와 이메일의 내용은 제5의 사법파동이라고까지 이야기될 정도로 전체 판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더불어 언론플레이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수위를 조절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태도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법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공평한 법 집행도 상상하기 어렵다. 왜 그런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정확한 상황을 설명해 주는 책이 바로 <불멸의 신성가족>이다. 김두식은 <헌법의 풍경>을 통해 널리 알려진 법조인이다. 거꾸로 이 책이 보고 싶어졌다. 스물 세 명의 인터뷰라는 질적 연구 방법을 통해 얻은 결과물인 이 책은 가장 적나라하게 대한민국의 법조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사건과 인터뷰 등 현재까지 진행됐던 재판이나 개인 사례들을 모아 분석해도 좋은 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도 스스로 이류 법학자로 말하는 김두식의 이야기는 인터뷰이들의 내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나름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현실을 보여주며 희망을 제시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물론이고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여직원, 법원 공무원, 브로커, 기자, 경찰, 마담뚜까지 법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생한 고발이며 고뇌에 찬 자기 성찰이고 대한민국 법조계에 대한 경고이고 비난이며 변명이고 자아반성이다. 생동감 넘치는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반인들이 법조인들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순전히 추체험에서 비롯되며 실제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다. 책의 제목이 된 ‘불멸의 신성 가족’들은 대한민국에서 ‘사법 패밀리’가 되어 살아간다. ‘우리가 남이가?’로 통용될 만한 그들의 문법과 규칙과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겠으나 저자는 그 안에서 ‘원만함’이 갖는 위험성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조직 문화를 형성하고 그 파장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해 실증적인 사례와 인터뷰를 통해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돈과 청탁, 평판을 둘러싼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살펴보고 신성가족의 제사장으로 불리는 ‘브로커’에 대해 이야기한다.

  법조인이 이겨내야 하는 여덟 가지 유혹과 그 대안이 이 책이 핵심이 될 것이다. 새로운 언어, 결혼시장, 서열경쟁과 관료제, 판사양성 시스템, ‘원만함’의 한계와 권위주의, 변호사 개업, 법조기자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조직적이고 기민하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실로 통탄할 일이지만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궁색하지만 저자는 ‘시민이 희망이다’는 한 마디로 억지로 희망을 찾는다. 내부적 시스템의 변화와 사법 개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법조인 출신인 저자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로 상징되는, 대통령도 끝내 이루지 못한 사법 개혁은 ‘불멸의 신성가족’에겐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래, 시민만이 희망이다. 더디고 고통스럽더라도 나를 믿고 우리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역사는 그렇게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변호사 출신의 전직 대통령도 자살하게 만드는 ‘사법 패밀리’의 힘이 가히 두렵지 않은가? 이 책은 모든 국민들이 읽어둘 필요가 있는 책이다.


09052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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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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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석은 자를 견딜 줄 알라. 똑똑한 자들은 언제나 참을성이 없다. 지식이 많을수록 참을성은 줄기 때문이다. 통찰력이 큰 자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제일 우선해야 할 삶의 원칙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이며 지혜의 절반은 거기에 달려 있다. - P. 246

  책을 읽다가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을 만나는 일은 우연일 뿐이지만 즐겁다. 그라시안의 <지혜론>을 읽은 후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다가 인용된 그라시안의 말에 또다시 눈길이 오래 머문다. 결국 어떤 책을 통해서든 우리는 삶의 지혜를 간구한다. 약삭빠르게 이익을 얻기 위해서나 높은 지위를 탐해서가 아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하루하루 일상 생활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적인 충만감이 있어야 한다. 만족스런 삶은 스스로에게 충실하며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 일이 즐거움이고 그 즐거움이 생활이어야 한다.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도 않지만 모두가 얻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돈이나 명예, 권력과 지위를 탐하는 인생은 불행하다. 즐기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얻어진다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고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전체의 행복과 삶의 질서가 아닐까 싶다.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사회에서 모든 것에 평등을 우선적 가치로 내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공정한 게임이 이루어져야 하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건전한 상식이 통용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과연 좌파적 상상력인가?

  헌법은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삶의 양식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제국주의를 주장하거나 공산주의를 대한민국의 체재로 바꾸자고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나처럼 뉴스를 끊기도 하며 철저히 현실을 외면하기도 하고 취미생활에 몰두하며 정치혐오증을 키우기도 하며 적극적인 정당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온 논객 유시민은 책을 써서 그 분노의 발톱을 드러낸다. 사람의 관점은 다양하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눈도 제각각이다. 유시민의 눈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태도로 감정을 앞세우거나 힘과 권력을 들이밀지는 않는다. 유시민의 힘은 거기에서 나온다. 이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권력의 그림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의 발언에 다시 귀 기울일 수 있다. 스스로 이념 성향을 사회적 자유주의라고 선언했지만 그가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정치인 유시민이 선택할 문제일 뿐이다. 그의 과거 이력과 정치적 성향이 모두 삭제될 수는 없지만 그의 말과 논리는 여전히 흡인력을 발휘한다.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채 똘레랑스의 정신에 입각하여 객관적인 상황과 논리적인 접근법으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할 현실 인식의 태도이다. 모두 옳거나 모두 틀린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가정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열린 마음이라면 일단 대화가 가능하다. 그것조차 안 되는 사람은 이념적 성향이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삶의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유시민은 냉정하고 차가운 머리를 가졌으며 타인을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펜을 가졌다. 현실 정치에서 많은 적을 만들었던 것은 한국적 풍토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날선 논리와 비판 정신 때문이다.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는 칼날이 자신을 향해 돌아 올 수도 있는 법이다.

  참여정부의 도덕성마저 무너져 내린 다음에야 유시민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은 할 말을 잊게 한다. 권력의 역주행을 견뎌내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금 새겨 보아야 할 일이다. 과연 앞으로 4년만 견디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가 또다시 들어설 것이며 그에 걸맞는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지배할 것이다. 아직도 절대 권력의 공고한 위치에서 왕보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며칠 전에도 이명박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는 누가 죽였으며 어떻게 살릴 것인가?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경제가 아니라 나를 잘 먹고 잘 살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이명박이라고 믿었던 순진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는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 노무현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이명박을 찍었을까? 과거 회상을 통한 보상심리를 얻자는 게 아니다.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자. 촛불을 들면 잡아간다. 시위는 하지마라. 법치주의 기본 개념도 모르고 법치주의를 외치는 정부는 국민을 협박하고 검열하며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개처럼 길들인다. 모든 국민들을. 지금도 헌법은 유효한가?

  한번도 댓가를 치르지 않고 민주공화국을 공짜로 얻은 대한민국의 업보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한홍구의 지적대로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근대를 맞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기형적인 형태일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성장한 경제만큼 우리의 정치도 권력도 민주적 토양과 기반이 허약하다. 그것은 단순히 정치인의 문제가 아니다. 생활인으로서 우리가 가진 자세와 태도에 기인한다. <입시전쟁 잔혹사>에서 강준만이 간파했듯이 생존 경쟁에 내몰렸던 질곡의 세월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핑계거리는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가장 기초 질서인 ‘헌법’조차 무시되는 세상은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유시민의 이 책은 헌법의 당위와 권력의 실재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행복, 자유, 주권 등 헌법의 개념과 가치를 실제 생활과 연결지어 상식선에서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이 개념들이 이명박 정부 혹은 최근의 상황과 맞물려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 밝히고 있다. 앞서 밝힌대로 설득력 있고 타당한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며 원인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게 한다. 유시민의 글이 가진 최대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속 시원하게 공감하며 터놓고 대화를 나눈 느낌이 아니다. 확인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두 눈 부릅뜨고 똑바로 바라보며 토악질을 하고 싶었다. 에필로그에서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차용한 ‘악의 평범성’을 현실에 대입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090507-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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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전쟁 잔혹사 - 학벌과 밥줄을 건 한판 승부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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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특이하고 재미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우울하고 슬픈 책이 있다. 전자의 경우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막막한 불안과 슬픈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강준만의 <입시전쟁 잔혹사>는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다. 왜냐하면 어떤 대안도 현재로서는 부정적 견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 관한 수백만가지 가설이나 이론이나 대안들이 제시된다고 해도 사실 공허하기만 하다. 완고한 현실이 뒤바뀌지 않는 한 그것은 유토피아적 발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우리들 삶의 역사에서 찾아진다. 저자는 입시전쟁의 기원을 조선시대 과거제에서부터 고찰하고 있다. ‘출세’라는 개념의 탄생과 더불어 대한민국은 ‘공부’에 목숨 걸었고 ‘학벌’에 올인해 왔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반상제도는 역전 현상을 보이고 양반의 숫자는 급격히 증가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분 상승을 시도한다. 족보를 사든, 시험에 합격하든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들 머릿속에 뿌리 깊게 각인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면서 더욱 강고해진 출세에 목숨 걸기는 생존경쟁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해방 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졌고 경성제국대학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는 콘크리트처럼 굳건해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피라미드 구조는 나라 전체를 경쟁 시스템 안에 귀속시켰다.

  이승만의 집권과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학벌주의는 21세기에도 계속된다. 60년대의 경기고-서울대(KS) 파워는 70년대 들어 고교 평준화를 통해 완화되는 듯 했으나 80년대 과외 금지 조치 이후에도 8학군의 부상과 더불어 열병처럼 식지 않는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 들어서도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고 ‘서울대를 유일신으로 모시는 광신적 사교 집단’ 대한민국은 여전이 학연주의라는 입시전쟁의 동력을 가지고 있다. 이해찬 세대를 거쳤지만 21세기에도 변함없이 학벌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고 노래방 도우미의 36.8%가 가정주부인 나라에 살고 있다.

  ‘1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30분만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와 같은 엽기적인 급훈이 고3 교실에 걸리는 세태는 대한민국 교육의 자화상이다. 학원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법은 이민 혹은 고시합격이다. 의학전문대학원과 로스쿨은 서민들에게 꿈꿀 수 없는 재력을 요구한다. 부의 재분배는 입밖에 꺼내기 힘든 좌파적 상상력이 되었고 억울하면 출세해야하는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 교육은 미친 교육이지만 브레이크가 없다. 저자는 SKY의 소수정예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이 책을 마감하고 있지만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자궁가족으로 똘똘 뭉친 이기주의와 미래 사회에 대한 합의와 대안 없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은 그간의 상황과 원인들을 짚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읽고 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깊어진다는 증상을 피할 수 없는 책이다.

090427-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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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지승호 인터뷰어, 김수행 대담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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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은 읽으면서 감정이 기복이 심해진다. 한 사람이 저자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울고 웃는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고 때로는 파안대소하며 하늘을 보며 웃는다. 잔잔한 미소와 쓴 웃음이 교차하기도 하고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겨우 참기도 한다. 한 인간에게 한 권의 책이 주는 영향은 지대하다. 영혼의 참된 스승은 종교가 아니라 책이라고 믿는다면 많은 종교인들에게 몰매를 맞을까?

  평생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확인할 수도 있는 한 권의 책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앎의 세계는 끝이 없고 인식의 힘을 기르는 일은 내 존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어렵고 난해한 철학책 한 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할 수도 있고 재미있는 만화책을 하루에 수십 권씩 읽어낼 수도 있다. 문제는 내 영혼의 깨달음이다. 그 도구가 책이든 아니든 말이다. 가장 손쉽게 값싸게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는 여전히 책이 담당하고 있다.

  지승호는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인터뷰어다. 지금까지 지승호가 보여준 혹은 만난 사람들과 엮어낸 책들은 그것을 간단하게 증명한다. 전문 인터뷰어로서 한 우물을 파는 일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 많은 어려움과 고통들을 즐길 줄 아는 인터뷰어가 지승호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읽어온 지승호의 인터뷰집은 앞서 말한 책이 주는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만을 믿고 책을 사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승호는 내게 그런 인터뷰어다.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또한 기대에 부합하는 책이다. 인터뷰이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곤란한 질문도 하기 싫은 말도 해야 한다. 혼자서 잘 알거나 하고 싶은 말만 써 놓은 것을 읽어야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색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독자의 입장을 대신하는 인터뷰어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지승호의 인터뷰집은 인터뷰이에 대해 샅샅이 훑어낼 수 있는 지독한 근성과 철저한 준비가 돋보인다.

하여간 당신한테 잡히면 끝장을 봐야 돼. 이제 정말 끝난거야?(웃음) - P. 338

  인터뷰이 김수행의 마지막 말이다. 난 이 말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있을까 싶다. 믿을만한 인터뷰어 지승호가 김수행으로부터 끌어낸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경제’ 이야기다. 1987년 ‘서울의 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 김수행의 서울대 교수 임용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가 이제 정년 퇴임을 했고 그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전공 교수는 아직 임용되지 않고 있고 임용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주류 경제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들만의 리그는 여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언제나 비주류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고 그들과 공감할 수 있어야 세상은 조금씩 따뜻해진다고 믿는 나는 지승호의 인터뷰가 가슴 아팠다. 2009년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도 그가 던지는 질문의 깊이도 김수행의 대답도 모두 현실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며 새로운 사회에 대한 도전과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희망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살아가지만 모두가 공감할 만한 정책도 대안도 부재한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그리고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간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이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고 그의 이론들이 현재적 유용성을 가진 것인가부터 논란의 초점이 된다. 용도 폐기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구소련이 붕괴했고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용인함으로써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자유주의 물결은 지구를 뒤덮었고 불평등한 게임인 시장의 논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믿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면 알려야 하고 알고 있다면 연대와 행동으로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 책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 고민의 단초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은 21세기 한국 경제를 위한 대안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올 수 있다. 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넘어서는 상상력은 몽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한다. 분명한 문제들이 노출되고 민중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는데 손 놓고 앉아 마냥 하늘만 쳐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점진적 혁명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 세계적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허리띠만 졸라매면 되는 게 아니다. 대졸 초임 임금을 깎아 고용을 늘리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고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들이 원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어쩌면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현실과 살아갈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거역할 수 없는 고정된 실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우석훈과 김수행이 함께 나눈 대화들은 참담한 현실에 대한 확인이며 미래의 희망을 촛불에 담아내려는 뒷담화에 불과하지만 읽는 사람들에게 알고 행동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언제나 지식의 종착역은 행동이므로.

  민중들의 외침을 외면한 어떤 정권도 살아남지 못했으며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 걸음씩 이 사회를 이끌고 나아왔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이 땅의 참 주인인 민중들의 힘이었다. 노동자, 농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땀흘려 이루어낸 작은 결실들이 자본의 논리로 어처구니없는 힘의 논리로 사라져버리는 일이 없도록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우리들 모두의 몫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아버지가 노동자, 농민이었고 우리들이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지승호는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긴 인터뷰를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090308-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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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17: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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