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인 6색 인터뷰 특강 인터뷰 특강 시리즈 6
금태섭 외 지음, 오지혜 사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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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는 다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림 (화:畵)
재앙 (화:禍)
신발 (화:靴)
화 (化)
  변화
  합계의 옛말
화 (火)
  화요일의 준말
  불
  노여움
일본을 화(일본어: 和 와[*])라고 표현한다.

  위키백과에서 ‘화’를 찾아보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웃고 또 화를 낸다. 나는 오늘 몇 번이나 화를 냈을까? 몇 번이나 웃었을까? 사람이 70까지 산다고 할 때 화내는 시간은 약 2년이라고 한다. 웃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루에 열 번 웃으면 약 5분, 평생 88일 동안 웃는다고 한다. 석 달도 안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울한 통계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창간 15돌 기념 인터뷰 특강이 벌써 여섯 번째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인터뷰 특강을 듣지는 못하고 읽고 있다. 시대정신을 하나의 주제로 뽑아내고 그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형식의 특강은 내가 지금 여기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외면하고 싶고 부끄러운 현실일 수도 있지만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오히려 용기있는 행동이다. 올해의 주제는 ‘화’다. 얼마나 화나는 일이 많은가? 눈감고 귀닫고 생각하지 않고 살면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 내게는 그런 바탕이 없는 것 같다. 작년 5월부터 뉴스조차 끊어버리고 TV를 보지 않고 살지만 신문과 인터넷 뉴스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을 알아가면서 절망과 분노는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마음 편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살수 없는 마음밭을 타고 태어난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이다.

  공자는 『論語』 제 13편 자로(子路)
  자공이 묻기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한다면 어떻습니까?”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 중에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사람이 싫어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불현 듯 생각나 먼지 묻은 논어를 꺼내 뒤적여 찾아낸 구절이다. 모든 사람에게 나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기막힌 가르침. 우리는 둥글게 둥글게를 외치지만 그 말은 적당한 타협과 비굴함을 은폐한 말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개인적인 불이익의 감수를 의미한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새삼스럽게 공자님 말씀을 떠올리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는지 아니면 ‘화’를 참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자인 진중권은 이제 대학 시간강사 자리에서 쫓겨났다. 3월에 특강을 할 때만 해도 교수라고 불리고 있으니 현실은 시시각각 ‘화’를 돋우고 있다. 윤도현과 김제동이 짤리고 이제는 손석희도 오락가락이다. 식물인간이 아니라 식물TV가 될 모양이다. 어떤 정권이든 언론을 길들이고 싶지 않겠나마는 각본 없는 코미디도 이만하면 수준급이다. 세상을 버리고 산속에 칩거했던 선인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가는 것은 내 성격의 결함 탓이거나 아직도 현실에 적응하지 소아병적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중권은 ‘대중의 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화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짚어준다. 대중의 분노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분노가 필요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표출하여 공적인 분노의 힘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은 아닌가?

  정재승은 우리 뇌에서 ‘화’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디케의 눈』을 통해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했던 금태섭은 ‘사형제’를 분노의 법으로 규정하며 그 실태를 통찰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를 통해 만나보았던 홍기빈은 ‘돈’이 불러오는 ‘화’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안병수는 ‘화난 음식’에 대해 고발한다. 마지막 주자는 『건투를 빈다』의 김어준이다. 서민들의 화내기인 패러디와 풍자에 대해 말한다. 웃으면서 화내고 자기객관화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며 특강을 끝맺는다.

  여섯 명 모두 책으로 먼저 만났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또다시 책으로 만나 아쉽기만 하다. 내년에는 어떤 주제로 특강이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2009년을 하나의 주제어로 정리하면 내년의 주제는 무엇이 될 것인지. 화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의 화가 아니라 공적인 차원의 화가 될 때 문제다.

  개인적 차원의 고민과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화’가 훨씬 더 치명적일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회적 차원의 화는 대책이 있어도 실천하기 어렵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경우는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후자의 경우가 건강을 해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에게 매우 나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화내고 웃는 일이 더 많은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면 오늘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09101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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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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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진화’ 되어 간다는 대한민국에서 과중한 학습과 시험부담, 학교와 부대 안에서의 폭력, 과로와 생계곤란, 경찰의 단속과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빼앗기거나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내외 모슨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책의 서문이 숙연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은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사진을 찍을 때 높은 곳에서 아래를 조망할 때와 엎드려 낮은 각도에서 셔터를 누를 때 전혀 다른 사진이 찍히는 것처럼. 박노자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를 통해 보여주었던 시선이 그대로 유지된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는 21세기가 시작된 후 우리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겠지만 그는 왼쪽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지향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같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게 현실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장치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으기 위해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제를 기본으로 사회를 유지한다. 지나온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더듬어 볼 수 있다. 한국사를 전공한 박노자의 시선은 항상 ‘외부자의 시선’으로 느껴진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경우와 귀화 한국인의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것이 반드시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박노자는 러시아 태생으로 1991년 국내 대학에서 3개월간 유학생활을 경험한다. 1996년에 국내 대학의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거쳐 2000년부터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생활한 것은 4년 남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과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직접 체험은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부분들까지 꼼꼼하게 진단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의 의식과 문화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왜 그의 눈에는 낯설게 보이는지 깨닫게 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에 해당한다. 앞선 그의 저작들이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비판 정신과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는 귀담아 듣고 공론화할 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이 땅에서 부대끼고 아파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귀화한 한국인임에 틀림없지만 대한민국의 운명 공동체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개인적인 판단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복지국가’와 ‘진보정치’라는 두 개의 화두를 제시한다. 여러 지면에 발표한 칼럼과 그의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모은 이 책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개혁’을 외치던 대한민국은 다시 보수정권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교롭게도 두 전직 대통령이 한꺼번에 사망한 2009년에 우리는 지난 10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무엇보다도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과 지표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삶이 상식과 보편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 대중적 진보 정당을 한다는 것은 가시밭길이지만 꼭 가야 할 가시밭길이다.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소수’로 존재해도 좋다. 그 소수로부터의 압력마저 없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날보다 더 야만적인 ‘중간급 소제국’이 될 것이다. - P. 44

‘개혁’ 담론이라는 게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물론 제2, 제3의 노무현이 집권을 할 수야 있지만, 그 실적은 제1대 노무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그 무슨 ‘개혁’ 이야기를 들먹여도 ‘한국적 체제’ - 군사 ․ 안보 국가, 부동산 과열, 토건 집중, 관료들에 대한 대자본의 지배, ‘명문대’ 학벌 우대, ‘현대판 천민(비정규직)’ 과중 착취 등등 - 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 P. 55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한민국에 진보정당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극소수의 기득권층이 아닌 대다수의 서민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우리는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박노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일상의 문제점과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불편한 진실들을 토해낸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다함께 잘 살아가려는 노력이 부족한 현실은 도대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속 시원한 대안과 해답을 한 마디로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과 재벌 총수에게 모든 희망을 걸어볼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남과 같이 소비하지 않으면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고, 혼자 조용하게 있으면서 ‘나’의 존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삼성공화국의 배부른 노예 대다수에게 이 이야기는 아마도 내향적 성격 때문에 사회와 어울릴 줄 모르는 낙오자의 설교로 들릴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들의 진정한 존재(실존)로부터도 소외되어 인간으로서의 ‘나’를 상실하고 만다. 이런 기성세대가 있기에 수만 명의 10대들이 온라인 게임의 중독자가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이미 폐인이 돼가는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텔레비전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없는 우리의 노예적 현실에 대한 반성이 절실하다. - P. 125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먹고 산다. 기대할 내일이 없다면 현실의 고통과 불편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하지만 그 희망이라는 괴물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과연 ‘왼쪽’이 정치적 이념을 의미하는 것인지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인지 따져보자. 박노자의 목소리는 공허한 울림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방향 지시등일지도 모른다.

“청소부와 이야기하든 장관과 이야기하든 똑같이 대하기. 어조, 태도, 말이 주는 느낌으로라도 인간을 차별하면 절대 안 된다.”(티모페에프-레소프스키) - P. 184


09092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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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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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침과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 그리고 가난은 감출 수가 없다고 한다. 기침과 사랑은 감출 필요도 없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가난을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굳이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다만 삶의 방식과 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겠지만 가난을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게으름과 무지의 소치로 치부하는 관습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의 문제이고 구조적 모순이며 계급 구조의 문제이다.

  노력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에서 가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돈을 벌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 있지만 그 기회를 얻기 위한 경쟁과정이 과연 공정하기만 할까? 언제든 노력만 하면 지금 내 부모와 나와 내 자식이 가진 가난의 고리를 쉽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미국처럼 다인종 국가에서 흑인은 어떤 존재일까?

  프랑스의 좌파 사회학자들은 가정에서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이나 생득적으로 습득하는 문화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언어 능력을 공평하는 측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언어영역’ 시험은 이미 태어나는 문화 자본과 성장 과정에서 습득하는 환경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주목할 만한 문제제기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것을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문화적 상징 자본이 다른 상태에서 학습은 이미 불공정한 게임인 것이다. 이 사회학자는 개인의 노력이 시작되면서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수학’ 과목에 가중치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나친 ‘평등’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사회적 환경들은 결코 공평한 시스템과 거리가 멀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물론 사교육 문제가 놓여있고 입시 제도의 문제가 버티고 있다.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은 자연스럽게 <괴짜 경제학>을 떠오르게 했다. 책장을 여니 <괴짜 경제학>을 쓴 저자의 추천사가 책머리에 놓여있다. <괴짜 경제학>은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의 역작이다. 상식과 통념을 깨는 경제학자들의 세상 읽기에 관한 책이다. 유사한 제목을 달고 있는 <괴짜 사회학> 또한 통계와 연구실을 뛰쳐나온 사회학자의 거리 사회학이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순진한 중산층 대학원생 수디르 벤카테시는 거리로 나선다. 오로지 공부를 위한 목적으로!

  이제는 컬럼비아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가 되어 있는 저자가 경험한 일들은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이미 사회학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재밌는 일이다. 이 책은 기존의 사회학 서적들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래서 ‘괴짜’라는 제목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통계나 현상을 분석하고 질문지나 면접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 책은 빈민가의 삶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간 사회학자의 생생한 기록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이고 생생한 기록이어서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진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이 책은 그들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지침서가 되겠다. 우리와 다른 인종 문제는 뿌리깊은 사회 문제다. 정책적으로 풀어낼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도 없는 듯하다. 10년 전의 경험과 기록이니 많이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화적 편견이나 사회적 차별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해법을 나가는 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 이 책은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빈곤 문제는 무엇인가? 이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88만원 세대로 명명되는 청년 실업 문제, 사교육비를 통한 부와 계급의 재생산, 양극화의 심화 등 우리 사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갈등과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돌아볼 때 과연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그들의 문제와 고민을 다루고 있는 학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대학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숫자 놀이를 하거나 설문지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 대한 신선한 도전과 낯선 즐거움을 주는 책이 바로 <괴짜 사회학>이다.

  미국의 시카고는 최악의 빈민가로 손꼽힌다. 로버트 테일러 홈스는 고층 공영 주택단지이지만 방대한 공터에 의해 도시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이곳에는 경찰이나 구급차 조차 오지 않는다. ‘빈곤의 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비참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규칙과 질서에 의해 삶을 이어간다.

  저자는 청년 사회학자로서 우연히 설문 조사를 하러 왔다가 마약 판매 갱단 블랙 킹스의 보스와 만나게 된다. 사회학자와 갱단의 보스 제이티는 그후 10여 년 동안 어울리며 빈민가 주민들을 면담하고 동고동락을 함께한다. 객관적 사회학자로서, 때로는 그들의 심정적 동조자로서 갈등하는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도 간간이 배어 나온다. 학자적 신념과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혹은 제이티와 나눈 우정과 신뢰 관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을 로버트 테일러 홈스의 다른 주민들과 나눈 관계만큼이나 현실적이고 흥미롭다.

  남겨진 문제는 이런 접근 방법이 실제 사회를 바꾸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냐이다. 단순히 현상만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첫 번째 순서일 수 있겠지만 한 사회학자의 호기심이나 용기에 대한 박수로 그칠 수만은 없다. 사회학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드러난 문제점과 원인의 분석과 기술은 필수적이다. 이 책에는 그것이 없다. 저널리즘을 위한 책이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단순한 현상의 분석에만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가난은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의 책임인가? 어디까지 함께 책임져야 하는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하는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에게도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생존의 문제이며 바로 우리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090728-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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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
하승우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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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생각해보아도 나의 아나키즘 성향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직접 행동direct action’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직업과 상황의 한계를 핑계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은 나의 게으름 탓이다.

  나는 수평적 인간관계에 익숙하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나이 차이와 무관하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직책이나 직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위가 아니라 아래를 보며 생활하는 버릇 탓인지 고개가 뻣뻣하거나 권위적인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면서 토吐가 나온다. 우리 사회에는 워낙 그런 사람이 많고 그런 자리에 오르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들이 많으니 사람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권력과 권위의 힘은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미 고정된 사회제도나 체제에 순응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치적으로 중도 우파에서 중도 자파에 이르는 가장 폭넓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때때로 정부에 대한 지지와 불만을 동시에 가진다. 그 기준은 물론 개인적인 이익이다. 어제 강변북로의 한 아파트에 내걸린 초대형 현수막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독재자로 성토하고 있었다. 편견인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 정도 아파트의 주민들이라면 대부분 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철저하게 개인적 이익에 복무하는 투표 행위와 투표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이 복잡하게 떠올랐다.

  크로포트킨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중간 계급, 즉 부르주아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체제가 민주적인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대표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을 대표하고 대다수 국민의 생각을 무시한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J. J. Rousseau의 말처럼 우리는 선거를 할 때에만 자유롭다. 그리고 대표를 통해서만 말해야 한다는 원칙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대표가 없는 사람들은 말을 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사회가 발달하고 이해관계가 다양해질수록 대의제 민주주의는 근원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크로포트킨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 P. 85

  작금의 현실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을 떠나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었지만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4년 동안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된다. 선거철이 되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이나 사회의 발전 방향, 정책과 미래 사회에 대한 큰 틀을 고민하지 않고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습관처럼 익숙하게 한 표를 던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현실에 대해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어느 개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조직적으로 언론법을 손보고 전교조를 죽이고 인권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4대강 개발을 통해 대기업에 이익을 몰아주는 정부는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과연 대다수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다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정부인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변할까? 노무현 정부는 대다수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을까? 국가라는 존재는 정부라는 단체는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인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이다. 도대체 국가와 정부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져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가? 그들은 왜 우리의 권리를 마음대로 제한하며 어떻게 우리를 통제하는가? 언제부터였을까? 21세기에도 세상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또 다시 파시즘의 악령이 부활하는 조짐이 보이는 것처럼 힘과 권력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고 굳건하게 계급적 이익에 충실한 그들을 보며 우리는 왜 다시 아나키즘을 떠 올리는가?

  하승우의 <아나키즘>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작지만 큰 고민거리를 제공해 준다. 박홍규의 <아나키즘 이야기>가 아나키즘에 대한 성실하고 재미있는 해석이라면 하승우의 <아나키즘>은 책세상의 ‘Vita Activa실천하는 삶’ 개념사 시리즈다운 책이다. 적은 분량에 개념에 대한 이해와 요구가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어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기획시리즈들의 공통된 한계인 분량의 문제는 곧 깊이의 문제와 연결된다. 아나키즘에 대한 백화점식 나열과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머레이 북친, 신채호 등 아나키스트들의 저작을 통한 소개 등이 입맛을 돋우지만 간략한 소개나 안내 정도에 그치고 있어 오히려 아쉽다.

  4장 진화하는 아나키즘, 논쟁의 역사와 5장 아나키즘의 길 아나키스트의 길은 현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들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다. 실용적이지 않은 지식은 무익하는 말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적 유용성을 가진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만하다. 이론적 토대가 없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과연 실천하는 삶을 통해 나와 이웃들이 연대하고 함께 같은 꿈을 꾸며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은 불가능한가.
 
  변화와 발전을 바라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나키즘을 실현하는 방법도 다르게 발전해 왔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절대 선이며 진리가 아니라는 것 만큼이라도 인정해야 새로운 논의나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내가 무슨 힘이 있으며 나 혼자 생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은 하지 말자. 그래서 아나키즘은 자유와 자치 그리고 연대를 내세운다. 우리 사회에서도 작은 공동체는 이미 실현되고 있다. 다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아니 모두 꿈이 비슷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혹시 당신의 꿈은 부자인가? 그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세상도 가능하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렵지도 않고 불가능한 미래도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바로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090726-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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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된 기억 속의 몇 장면. 서울역 앞에 전경 버스가 불타고 서울 시내는 온통 태극기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였다. 광화문 근처의 빌딩이나 건물마다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까지 거리마다 넘쳐났다. 버스 뒷좌석에 앉아 창밖의 비현실적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열정을 보았다. 대학생들의 외침도 토할 것 같은 최루탄도 사라졌지만 그때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았고 내 의식을 규정하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낯선 풍경은 버스가 마포대교를 넘어 자주 거닐던 한강 둔치를 지날 무렵 테니스장의 한가로운 사람들이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평화로운 모습을 연출하던 아저씨들의 여유 또한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 때의 일을 쓴 ‘제 8요일의 일기’라는 글이 영등포 여고 교지에 실렸었다. 책장 한 구석에 먼지 묻고 빛바랜 교지 한 권이 그 때를 기억하며 꽂혀있다.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들 계셨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존경하지는 않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페퍼포그나 지랄탄의 위력을 알아갈 무렵 87년을 이해하게 되었고 박종철이나 이한열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게 되었다. 벌써 10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니 6월 민주항쟁이나 6.29선언은 사람들의 먼 기억 속에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2009년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왜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십시일반>이나 <사이시옷>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즐겨 권하는 만화책이다. 창비에서 새로나온 <100℃>는 6월 민주항쟁의 뜨거운 기억을 만화로 엮었다. 평소 만화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널리 알려진 만화도 잘 모른다. 하지만 만화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과 응원을 보낸다. 이 만화책을 보면서 몇 번 울컥했고, 몇 번쯤 아련했으며, 몇 번은 한숨을 쉬었다.

  프롤로그로 시작되는 반공소년의 모습은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었다. 웅변대회의 주제는 공산당을 때려잡고, 북괴를 무찌르자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는 북한도 아니고 북한 괴뢰군의 준말로 지칭했다. 경제적, 군사적 차이를 통해 체제 우월성이 판가름 난 이후에도 우리는 6.25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직도 그 상처와 후유증은 서로의 생채기를 후벼파며 대립과 갈등을 조장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과 모순의 일부는 아주 오래된 과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치유되지 않고 극복하지 못한 일들은 해결이 아닌 외면으로 일관되어 왔다. 앞으로도 그것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시골에서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올라온 대학생들의 내적 갈등, 애타는 부모의 심정은 이제 책 속에서나 만나게 되었다. 이념을 넘어 실용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취업과 생존 경쟁에 내몰려 있는 88만원 세대를 양산하고 있다. 이대로 좋은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회적 모순을 깨닫고 지는 싸움이지만 도전하던 청년 정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더 중요한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공감하던 시대는 다시 올 것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지금은 99℃라고 생각하며 늘 100℃를 향해 조금만 더 실천하고 연대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투표가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과 실천에서 출발한다.

부록으로 실린 시민교육센터(http://www.civiledu.org)에서 강사로 활동중인 이한 선생님의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교안>을 바탕으로 각색하고 재구성한 ‘그래서 어쩌자고?’는 부록 이상의 의미를 전해준다.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스스로 찾아서 배워야 한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이유는 상급학교 진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준비해야 하는 미래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것이 된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문제를 푸는 공부가 아니라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연 어떤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들의 권리와 다수결의 모순은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가. 공부는 계속되어야 한다.

  만화로 된 이 책은 만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87년 6월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며 항쟁의 중심에 서 있는 세대에게는 새로운 힘과 연대의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3%의 소금이 바다를 썩지 않게 한다. 전 국민이 모두 한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저자의 말대로 옳다고 말할 순 없지만 더 마음에 드는 무언가가 소수가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증명될 수 없는 취향의 문제지만 가치란 매우 소중하다. 그것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가치인가에 따라서 말이다.

가치란 것은 증명될 수 없고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서, “내가 옳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난 이게 더 마음에 들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상대주의적 태도밖에 취할 수가 없다면 민주주의란 그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의 엉거주춤한 동거를 견디며 끝없이 제 편을 늘려가는 머릿수 싸움의 반복일 수밖에 없다. - P. 210 ‘작가의 말’ 중에서


090616-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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