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색, 계〉와 롤랑 바르트 ②

 

2. 탐색전: 무대 위의 연극 vs 무대 뒤편의 침묵


섹스 자체가 삶의 욕망과 분노와 슬픔, 그 모든 것의 알레고리인 영화는 수없이 많았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감각의 제국>, <그녀에게> 등등 수많은 영화에서 섹스는 단지 몸과 몸의 얽힘이 아니라 삶과 삶의 뒤얽힘이었고 인간의 근원적 소통불가능성의 뼈아픈 확인이었다. 그러나 <색, 계>에서 그들의 섹스의 이미지가 유독 슬프고 힘겹게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장 지아즈, 즉 막 부인(탕웨이)의 캐릭터 탓인 것 같다. 그녀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여주인공 마리아 슈나이더처럼 발랄하고 앙큼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쾌활한 캐릭터가 아니다. 또한 <감각의 제국>의 여주인공 마츠다 에이코처럼 나른하게 몽환적이면서도 의외로 강인한 캐릭터도 아니다. 장 지아즈는 <그녀에게>의 투우사 리디아처럼 팜므파탈적인 매력을 뿜어내지도, 아름다운 무용수 알리샤처럼 생기발랄하고 투명한 캐릭터도 아니다. 그런데 <색, 계>의 탕웨이는 그 모든 기념비적인 캐릭터들보다도 확실하게 관객을 ‘압도적인 슬픔’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녀는 이 모든 여인들보다 너무 느리고,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예민하다. 그녀는 한 가지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신중하다 못해 조금은 답답한 여인이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와도 함부로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 그녀를 연극의 세계로 이끌었던 광위민에게 잠깐 호감을 느꼈지만, 열혈남아 광위민은 아직 여인보다 신념을 사랑하는 순수 청년이었다. <색, 계>가 2시간 40분 동안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지루한 것인지 긴장감 넘치는 것인지 자꾸만 헷갈리게 만드는 이유는, 남녀주인공 모두가 돌다리도 수백 번 두들겨보고 끝내는 건너지도 않을 것 같은 극도로 예민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 만난 순간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한사코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항시적으로 암살 위험에 처해 있는 매국노(이 선생 : 양조위)와 그를 암살하기 위해 그의 불륜녀라는 배역을 맡은 여자가 만났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경계심 많은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예민한 여자가 만난 셈이다.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핑계 삼아 흐느끼는 여자와 영화를 보고 싶어도 어두운 곳이 무섭고 싫어 영화관에 갈 수 없는 남자가 만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서로의 임무를 수행하는 그들의 침대에서는, 그들의 내면에서는, 어떤 감정의 해일이 몰아치게 될까.

*

1942년 상하이. 막 부인(탕웨이)은 한껏 긴장된 몸짓으로 전화를 건다. 일상적인 대화를 가장한 암호임이 분명한 대화를 주고받은 그녀는 까페에 앉아 과거를 회상한다. 4년 전, 그녀는 홍콩의 대학생이었다. 2차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영국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는 왕 치아즈. 그녀의 본명이다. 그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버지는 재혼했다는 소식만을 달랑 보내오고, 그녀는 아버지에게 심심한 축하 편지를 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심상하게 축하 편지를 쓰지만, 그녀는 어두운 영화관에서 마치 슬픈 영화 탓인 양, 숨죽여 흐느낀다. 그녀는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철저하게 고독하다.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마저 재혼한 후, 그녀의 고독을 어루만져준 것은 연극이었다.
 그녀는 항일 급진파 청년 광위민의 권유로 연극반에 가입한다. 입센의 <인형의 집>은 ‘부르주아 연극’이라 몰아붙이고 항일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어 올리는 연극으로 나태한 홍콩의 인민들을 각성시켜야 한다고 부르짖는 이 청년에게, 왕 치아즈는 순수한 매력을 느낀다. 그녀는 자신이 여주인공으로 데뷔한 연극에서,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희열을 느낀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더 이상 나약하고 내성적인 소녀가 아닌 자신을 발견한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며 환호하는 그 열광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혀, 왕 치아즈는 ‘연극하는 자아’를 향한 나르시시즘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광위민은 급진파 항일단체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친일파 핵심인물인 이(易) 선생(양조위)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광위민의 친구들과 왕 치아즈는 그 계획에 합류한다. 광위민은 말한다. “이번엔 연극이 아니야.” 그러나 이 말은 반어적으로 들린다. 이 선생을 암살하기 위해 그들은 신분을 위장하여 이 선생의 주변으로 침투해야 한다. 이제 그들은 더욱 판돈이 커진 또 하나의 거대한 연극적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여배우 탕웨이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녀는 현실이 아니라 연극 안에서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 탕웨이는 장 치아즈이기보다 맥 부인일 때 오히려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는 차라리 조작된 연극 속에서 암살 대상과 유일하게 친밀한 인간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연극 밖에서는 한없이 외롭고 불안한 존재로 전락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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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2009-07-1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짧아요-_ㅜ 얼른 3회가 보고싶다는~~

사과쨈 2009-07-1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부분의 현실이 아니라 연극안에서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는 귀절에 공감이 많이 갑니다. 아이쿠!!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동네노는형들 2009-07-20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이미 영화 다시 보고 왔습니다..ㅋ

sotkfkd 2009-09-1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찬찬히 이 영화를 볼 참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영화 〈색, 계〉와 롤랑 바르트 ①

 

Ⅰ. 바르트: 풍크툼, 세계와 나는 ‘상처의 틈새’로만 만난다

1.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깨닫는다. 그토록 완고하게 닫혀 있던 이 세계가,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휘청,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깨닫는다. 바닷물에 잉크를 떨어뜨린 듯, 아무리 애를 써도 꿈쩍하지 않던 세상이,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만으로도 완전히 헝클어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김광석의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아름다운 노래는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이라는 치명적인 가사로, 안 그래도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멍든 가슴을 다시 한 번 살뜰하게 할퀴어 주었다.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작사 유준열 노래 김광석
창유리 새로 스미는 햇살이 빛바랜 사진 위를 스칠 때
오래된 예감처럼 일렁이는 마당에 키 작은 나무들
빗물이 되어 다가온 시간이 굽이쳐 나의 곁을 떠나면
빗물에 꽃씨 하나 흘러가듯 마음에 서린 설움도 떠나
지친 회색 그늘에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파도처럼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은 비어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유리처럼 굳어 잠겨 있는 시간보다 진한 아픔을 느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는 그저 평화롭다 못해 권태로웠던 세상이,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입었을 때야, 비로소 조금씩 그 투명한 속살을 보여준다. 절대로 나을 것 같지 않은 상처, 그렇게 지독한 상처의 틈새로만 간신히 보이는 세계의 투명한 아름다움. 그것을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풍크툼’이라고 불렀다. 명쾌하게 분석될 것만 같은 세계가 어느 순간 전혀 해독할 수 없는 상형문자로 바뀌어 버릴 때.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풍크툼’과 만나는 순간이다. 풍크툼(punctum, 점点)은 라틴어로 뾰족한 물체로 인해 받은 상처, 흔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사진의 풍크툼은 평온했던 나의 의식을 찌르는,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극을 주는 우연하고 돌발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풍크툼의 특징은 물론 예리한 ‘아픔’이지만, 풍크툼의 더욱 중요한 특징은 그 상처가 이해할 수 없고 분석할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예비하거나 대처할 수도 없고, 정리해서 요약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이 세계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토록 이해되지 않았던 세상이, 누군가의 참혹한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투명하게 만져지는 느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의 고통을 명징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 고통에 딱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줄 수도 없다. 사진 읽기를 통해 세계의 울퉁불퉁한 상처를 맹렬하게 더듬었던 롤랑 바르트. 그는 사진의 이미지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스투디움과 풍크툼. 스투디움(studium)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일반화된 상징이라면, 풍크툼은 좀처럼 해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아픔을 낳는 상징이다. 스투디움이 소통 가능한 획일적인 상징이라면 풍크툼은 소통 불가능한, 그리하여 더욱 소중한 비밀을 간직한 상징이다.
견고하게만 보이던 이 세계의 피부가 찢어질 때, 우리가 그 속살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가장 평등한(?) 경험은 바로 연애가 아닐까. 중국의 작가 장아이링은 소설 『색, 계』에서 이런 문장을 남겼다. 남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위장으로 통해 있고, 여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자의 음도(陰道, 질)를 통해 나 있다고. 남자는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으로 대접해주는 여자를 만나면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는 말이니, 남자 쪽의 사정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정말 여성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도 비좁고 은밀한 그곳, 성기를 통해야 하는 걸까. 소설 『색, 계』의 주인공 장 지아즈는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그따위 말을 믿지 않았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저명한 학자였기 때문에, 그런 대단한 학자가 여자의 심리에 대해 그토록 저속한 비유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제대로 연애를 하거나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었던 장 지아즈는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할 대상과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4년에 걸쳐 공들여 쌓아온 탑이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이 일로 인해 그녀와 조직원들 모두가 죽음의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위태로운 사랑에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와의 잠자리는 분명히 철저한 ‘연극’에 불과했다. 그녀의 두뇌는 완벽히 임무에 충실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녀의 두뇌가 아니라 그녀의 성기를 통해 몰래 잠입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구를 결코 찾지 못했다. 〈와호장룡〉과 〈브로크백 마운틴〉의 감독 리안은 영화 〈색, 계〉를 통해 21세기 영화사에서 가장 슬픈 섹스 장면을 연출해냈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울 것 같은 한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울 것 같은 한 여자가 만났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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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7-16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김광석의 노래가 인용되고 있어서 초반부터 기대가 됩니다...1절이 끝나고 나오는 기타 간주가 생각나네요.(몇가지 버전이 있긴 하지만..)

비로그인 2009-07-1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위장을 통해 나 있고, 여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음도를 통해 나 있다"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다음 회가 무지 기대되네요. 화이팅!

바이런 2009-07-16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넘 흥미로운 분석이네요. 저도 <색,계>를 봤지만.. 양조위와 사랑에 빠져버리는 여자를(조직(?)을 배신하면서까지;)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는데..롤랑바르트의 개념들도 배우고.. 좋습니다, 이글. 앞으로도 기대할게요~

책든손귀하다지만 2009-07-1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
=연애
=상처
=세상을 보는 눈

인가요? ㅋ

doingnow12 2009-07-18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생각을 가진 누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네요^^
앞으로도 많이많이 기대할게요(>_<)꺄아 ♥

someday 2009-07-20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문학 잡지에서 영화 관련 글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기회에 작가를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네요.

목나무 2009-07-2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여울님.. 지인의 추천으로 이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섬뜩하지만 재미난 글 잘 보고 다음 글로 고고씽 합니다. ^^

sotkfkd 2009-09-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광석의 노래로 시작하여 롤랑 바르트를 거쳐 색계를 이야기하시는 내용이 참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색다른 방법의 영화 읽기. 오늘 다 읽어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