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⑨

   

 9. ‘너’를 찾으러 떠난 길 끝에서, ‘나’를 만나다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 룰렛 공은 결코 ‘아, 여기 내려앉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기 내려앉아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할 거야’하고 생각하진 않는다. (……)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치워버려야 희열이 온다.
- 조셉 캠벨,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99~100쪽.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의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 놀라운 것은 심원한 창조적 중심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특징적인 영험이 아이들 놀이방의 하찮은 동화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세계의 영웅신화>, 대원사, 1996, 10쪽.
 
   

   센이 원웨이 티켓을 들고 떠난 후, 사경을 헤매던 하쿠는 비로소 깨어난다. “하쿠, 정신이 든거냐?” 하쿠는 일어나자마자 센을 찾는다. “어둠 속에서 치히로가 여러 번 절 불렀고 목소릴 따라가다가 깨어보니 여기였어요.” 가마 할아범은 놀란다. “그 애의 진짜 이름이 치히로라구?” 하쿠의 꿈속에서 간절하게 하쿠를 부르던 치히로의 목소리는 곧 미궁을 헤매던 하쿠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센이 제니바를 찾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는 전언을 들은 하쿠는, 이 모든 저주의 근원인 유바바를 찾아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다.

   한편 유바바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온천 경영을 위한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느라 주판알만 튕기고 있다. “이 정도 금으로 어떻게 적자를 때워? 멍청한 센이 횡재를 날려버렸어.” 하쿠는 돈에 걸신들린 유바바의 모습을 보며 센을 옹호한다. “센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걸요.” 유바바는 화가 잔뜩 나 있다. “감히 온천을 이 꼴로 만들고 도망을 가? 센은 부모까지 버리고 갔어! 센의 부모를 베이컨이든 햄이든 만들어버려!” 놀란 하쿠는 유바바를 제지한다. 센을 구하기 위해 유바바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하쿠. “기다려요! 소중한 걸 잃고도 아직 모르겠습니까?” 이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 챈 유바바는, 돈 계산하느라 안중에도 없던 수퍼베이비를 애타게 찾기 시작한다. 걷지도 못하던 아기가 실종된 것을 발견하자 유바바는 대경실색한다. 화려한 장난감과 과도한 장신구로 치장된, 수퍼베이비의 밀폐된 방은 텅 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우리 아기를 어디에 숨겼어?” 하쿠는 침착하게 대답한다. “제니바의 집에요.” 유바바는 드디어 이성을 잃고 폭발한다. “제니바?! 못된 마녀 계집이 날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냐?” 유바바는 완벽한 악행의 주모자처럼 보였으나, 그녀의 결점은 의외로 많았다. 자발적으로 센을 따라간 수퍼베이비로 인해, 유바바는 센의 부모를 함부로 베이컨으로 만들지 못하게 된다. 물샐 틈 없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유바바에게도 이토록 치명적인 틈새가 있다. 타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주재자처럼 보이던 유바바도 결국은 더 큰 운명의 그림 가운데 한 조각일 뿐이었다. 유바바는 하쿠에게 질문한다. “네 계획이 뭐냐?” 하쿠는 아기를 두고 협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아기를 데리고 올 테니 센과 부모님을 인간세계에 보내줘요.” 유바바는 분노한다. 그러나 이 분노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 이상 유바바의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넌 어떻게 되는 거지? 나한테 찢겨 죽어도 좋다는 말이냐?” 센은 하쿠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하쿠는 센을 위해 목숨을 건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느새 ‘나의 일’과 ‘남의 일’의 구분이 없어져버린다.

   한편, 센은 수퍼베이비와 가오나시를 대동하고 제니바가 살고 있는 낡은 오두막집에 무사히 도착한다.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던 수퍼베이비는 어느새 센의 도움도 거부하고 뒤뚱뒤뚱 혼자 걸으며 제니바의 집을 향해 행진한다. 다행히도 제니바는 센 일행을 반갑게 맞아준다. 뚱보 생쥐가 된 수퍼 베이비는 처음으로 구경하는 바깥세상이 재미있는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니바의 물레질을 도우며 혼자 신났다. 근심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센은 제니바에게 용서를 빈다. “하쿠가 훔친 걸 돌려 드리려고 왔어요. 하쿠를 대신해서 사과 할게요.” 제니바는 저주가 걸린 도장을 지니고도 아무렇지 않은 센이 신기하다. “이거 갖고도 아무렇지 않았어? 엥? 주문이 사라졌잖아!” “도장에 있던 이상한 벌레를 모르고 밟아버렸어요.” “그건 동생이 하쿠를 조종하기 위해 용의 뱃속에 몰래 넣은 벌레야. 잘했어.”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미션을 수행해낸 센은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와 생쥐가 된 수퍼베이비도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제니바는 웃으며 말한다. “저런, 마법은 벌써 풀려버렸단다.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 생쥐-아기는 엄마 유바바에게 돌아갈 생각은 꿈에도 없다는 듯 신나게 물레질만 하다가 야금야금 과자를 씹어 먹는다.  

   유바바는 제니바를 싫어하지만 제니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린 합쳐야 제 몫을 내는데 안 맞아서 문제야. 고약한 성질 알잖아! 쌍둥이 마녀라는 운명부터가 문제지만!” 그리고 하쿠와 센을 돕고는 싶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돕고 싶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이 세계의 규칙이니까. 네 부모와 남자 친구인 용도 네 스스로 보살펴.” 센도 스스로 보살피고 싶지만 도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절박하게 묻는다. “힌트라도 줄 순 없나요? 하쿠랑 전 오래전에 만난 듯해요.” 제니바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그렇다면 얘기가 빨라지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잊혀질 수도 없는 법. 생각이 안 날 뿐이지.” 센은 결국 자신의 마음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 해답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제니바는 가오나시와 생쥐, 센과 함께 열심히 물레질을 하여 무언가를 만든다. “너희들이 도와줄 테냐? 조금만 더 힘내. 그래, 넌 정말 잘하는구나.” 제니바는 흔히 생각하는 마법사와 달리 자신의 ‘노동’만으로 삶을 꾸려가는 듯하다. “마법으로 만든 건 다 소용없어.” 아무리 대단한 마법이라도 마법이 풀리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공들여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너무 늦었으니 자고 가라는 제니바의 말에, 센은 한 시도 쉴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전 돌아가야 돼요. 안 그럼 하쿠가 죽어요. 아빠, 엄마도 잡아먹힐 거구요.” 제니바는 생쥐와 가오나시의 도움으로 함께 만든 머리띠를 주며 말한다. “부적! 네 친구들이 뽑은 실이야.” 센이 떠나려는 순간,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다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하쿠. “하쿠! 하쿠! 천만다행이야. 상처는 이제 괜찮아? 정말 다행이야.” 제니바는 하쿠를 용서해주며 센을 부탁한다. “네가 한 짓은 이제 탓하지 않으마. 그 대신 센을 잘 지켜라.” 센은 예기치 않은 모험의 세계에 빠져 고초를 겪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멋진 마녀 제니바의 사랑 또한 그 아름다운 우연 중 하나다. 제니바는 갈 곳 잃은 가오나시를 곁에 두기로 한다. “넌 남아서 내 일을 거들어 다오.” 어느새 유순해진 가오나시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할머니! 고마워요, 갈게요. 제 본명은 치히로예요.” “치히로, 좋은 이름이야. 네 이름을 소중히 해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마녀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운명의 여신 모이라(Moira) 앞에서는 제우스도 어쩔 수 없었듯이. 센은 깨닫는다. 내 스스로 나의 운명을 기억해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오직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제니바는 운명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주지는 않지만, 그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준다. 그곳이 바로 센의 마음속이다. 그 마음의 후미진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어 운명의 봉인을 푸는 열쇠를 찾아내야 하는 사람은 센 자신이다. 아무도 그 임무를 대신해줄 수 없다. 영웅의 마지막 미션은 가장 어려운 만남, 즉 자기 자신과의 투명한 만남이다. 그리고 센과 하쿠는 예감한다. 너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곧 나를 찾는 길이었음을. 너를 구하러 떠난 여행이 곧 나를 구원하는 길이었음을. 너 없이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외따로 동떨어진 ‘나’로서가 아니라 ‘너’로서 이해될 때, 비로소 우리를 옭아맨 운명의 상처와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을.

   
  융은 이른바 미확인비행물체(UFO)에 관한 현대의 신화가 ‘무너’가 인류의 환상적 기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썼다. 사람들은 외부 세계로부터 방문자가 와주기를 고대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구원이 그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 시대의 개막은 우리에게 외계(외부우주)로의 여행이 우리를 다시 내부 우주로 전환시킨다는 사실을 되새겨주었다.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신들이 ‘저 바깥’에서 활동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천국)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의 마음에 불러낸다. 아버지의 나라(천국)는 여기 있다.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고 그 광휘를 목도한다.
 - 조셉 캠벨,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240~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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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 2009-09-0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UFO를 향한 판타지가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었군요~! 누군가 우릴 구해줄 거라는 환상...구원은 이 세상 바깥에 있다는 상상...

비로그인 2009-09-04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자신과의 투명한 만남.... 운명의 상처와 대면한다...

sotkfkd 2009-09-2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love hurts 2009-11-0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들 놀이방의 하찮은 동화 속에 숨은 비밀 암호 찾기~ 흐...말처럼 쉽지가 않죠.ㅠㅠ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⑧

   

 8. 원웨이 티켓(one-way ticket)
: 당신은 돌아올 수 없다. 그래도 떠나겠는가?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로 가는 길,
 나를 지나면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길,
 나를 지나면 길 잃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길.
  

- 단테, <지옥편> 중에서

 

 

   
   원웨이 티켓(편도승차권)이라는 말에는 ‘피할 길을 주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뜻이 있다. '원웨이 티켓'의 지배적인 뉘앙스는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떠나야 하는 절박함’이다. 이 단어가 전해주는 피할 수 없는 절박한 느낌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영웅의 비장미이기도 하다. 영웅의 영웅다움이 완성되는 순간, 그 순간은 그의 능력이 출중해서도 아니고 그의 명예가 하늘을 찔러서도 아니다.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야만 그의 여정이 완성될 때, 뒤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결연함,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죽음의 길을 떠나는 초연함. 그것은 언제나 영웅 서사의 비극적 숭고미를 장식하는 화룡점정의 모티브였다. 오물신이 되어버린 강의 신을 ‘정화’시켜 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이름을 잊어 존재의 의미조차 상실한 하쿠(용)의 운명을 바꾸기까지 한, 10살 소녀 센. 그녀의 신화적 통과의례의 클라이막스도 바로 이 ‘원웨이 티켓’의 운명에 가로놓여 있다. 

   하쿠는 일단 진정이 되었지만 좀처럼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다. 가마 할아범은 “마법의 상처는 방심해선 안돼.”라고 귀띔해준다. 잠든 하쿠를 바라보며 할아범은 하쿠의 과거를 회상한다. 베일에 가려졌던 신비의 소년 하쿠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쿠도 센처럼 불쑥 나타나선 마법사가 되고 싶댔어. 난 반대했어. 마녀의 제자가 되어봤자 별수 없다고 말이야. 하지만 소용이 없었어. 돌아갈 곳이 없다며 유바바의 제자가 되어버렸어.” 하쿠는 길 잃은 영웅의 위기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비범한 능력과 선한 심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나침반을 찾지 못해 존재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하쿠. “하쿠는 그러던 중 점점 창백해지고 눈매가 사나워졌어.” 센은 다급하다. 하쿠가 훔쳤다는 이 도장만 돌려주면 하쿠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이거 돌려주고 올게요. 사과하고 하쿠를 살려달라고 할래요. 제니바가 있는 곳을 가르쳐줘요.”

    가마 할아범은 불면 날아갈 것 같았던 센의 엄청난 저돌성에 또 한 번 놀란다. 그곳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제니바는 무서운 마녀라고, 그곳과의 왕복 교통이 끊긴 지가 오래라고 설명해준다. 그래도 하쿠를 구해야 한다는 센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가마 할아범은 할 수 없이 주섬주섬 기차표를 찾는다. “가는 건 갈 수 있다만 돌아오는 길이 없….” 이때 린이 들어와 유바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유바바가 길길이 날뛰면서 널 찾아. 그 통 큰 손님은 알고 보니 요괴였어. 유바바는 네가 그를 끌어들였대. 벌써 세 명이나 집어 삼켜버렸어.” 

   사람이든 물건이든 닥치는 대로 탐욕스레 폭식하던 가오나시는 마침내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가마 할아범은 드디어 제니바의 집 쪽으로 가는 열차표를 찾았다고 전해준다. “40년 전에 쓰고 남은 거야. 늪의 바닥이란 역이야. 여섯 번째 역이야. 예전엔 돌아오는 기차도 있었지만 지금은 가는 기차만 있어. 그래도 가겠느냐?”

    이것은 신화 속 영웅에게만 해당되는 순간이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우리 안의 잠재된 힘이 자신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순간, 인생에서 치밀하게 계획되지 않았던 거대한 우연에 봉착하는 순간,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두려움과 만나는 순간. 그때가 우리의 영혼이 변신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다.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삶의 고통과 잔인함에 대한 부정은 결국 삶에 대한 부정이다. 그 모든 것에 ‘예’라고 말할 수 있게 된 후에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조셉 캠벨, <신화와 인생>, 27쪽

 
   
   센에게도 그 순간이 찾아왔다. 그녀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어려운 길을 택한다. 그 길을 가면 엄청난 영광이나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친구 하나를 구할 수 있을 뿐이다. 보장할 수 없는 이익이 전혀 없는데도, 다치거나 죽거나 돌아오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는 떠나기로 한다. 떠나기 전 마지막 해야할 일, 그것은 괴물이 된 가오나시를 만나는 것이다. 

   거대한 이빨을 가진 집채만한 괴물로 변해버린 가오나시는 센을 내놓으라며 난동을 부린다. “어딨어? 센을 내놔!” 유바바는 모든 것을 센의 탓으로 돌린다. “왜 이렇게 꾸물거렸어? 손해가 막심하잖아. 기분 좋게 만들어서 금을 짜내.” 욕심쟁이 유바바는 잡아먹힌 사람들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고 가오나시에게서 금을 더 뜯어낼 궁리만 한다. 이때 생쥐로 변한 수퍼 베이비가 엄마를 알아보며 눈을 깜빡거리자 유바바는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심술궂게 투덜거린다. “그 더러운 생쥐는 뭐야?” 센은 천하의 유바바가 설마 자기 아들을 못 알아볼까 의심한다. “모르시겠어요?” 유바바는 손사레를 친다. “알 턱이 있나! 징그러워!” 자신의 몸뚱이 하나 건사하지 못했던 여린 소녀 치히로는 어느새 ‘적의 아들’까지 건사해야 할 판이다. 아무도 돌보지 못했던 그녀가 누군가를 돌보고 살리고 치유하는 존재가 된다. 가오나시를 방 안에 가둔 유바바는 센을 혼자 들여보내 독대시킨다. 

   가오나시의 풍채와 비교하면 백분의 일도 안 될 것 같은 센은 주눅들지 않고 조용히 묻는다. “말해 봐. 넌 어디서 왔어? 난 가야할 데가 있어.” 가오나시는 무조건 센이 좋다고, 센을 갖고 싶다고 중얼거릴 뿐이다.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 너한텐 내가 원하는 게 없어. 집은 어디야? 아빠, 엄마는 있지?” 커다란 가오나시는 어울리지 않는 투정을 부린다. “싫어, 싫어! 난 외로워!” “집을 모르는 거야?” “센을 갖고 싶어” 가오나시의 욕구는 지극히 단순하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센, 갖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센, 먹고 싶다.” 센은 하쿠를 먹이고 남은 경단을 떠올린다. “나를 먹을 거면 먼저 이걸 먹어. 부모님께 드릴 건데 너 줄게.”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게도, 자신을 괴롭히는 대상에게까지도, 센은 부모님을 살릴 수 있는 경단을 준다. 경단을 먹은 순간 가오나시의 입에서는 그동안 게걸스레 먹어치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온다.

    모두가 기피하는 더러움을 껴안고 그 존재로부터 더러움을 토해내게 하는, ‘구토와 정화’의 모티브는 어느새 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토와 정화야말로 ‘800만 신들이 모여 목욕을 하는 유바바 온천’ 본연의 소명에 가장 어울리는 행위가 아닐까. 가오나시와 오물신으로 대변되는 과잉과 폭식, 더러움과 그로테스크함은 단지 그들 개인의 ‘오명’이 아니라 인간이 저버린 자연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토해내야 할 만큼 폭식하고 소비하고 낭비해온 자본주의사회의 인간 자신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가오나시는 다시 ‘슬림한’ 옛 모습을 찾고 소리 없이 센을 따르는 조용한 오타쿠적 면모(?)를 되찾게 되었다. 센은 비로소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부모님을 구할 수 있는 경단은 없어졌고, 센은 삶을 위해 죽음의 영토를 통과하는 영웅의 마지막 문턱을 넘어야 한다. 작은 생쥐가 되어버린 수퍼베이비와 얼굴 없는 귀신 가오나시를 여행의 동반자로 삼아. 

   에로스의 사랑과 아프로디테의 허락을 얻기 위해 페르세포네가 살고 있는 하데스로 떠나는 프시케처럼,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살려내기 위해 하데스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처럼,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죽음 저편의 세계로 센은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다. 그곳으로 떠나가는 기차표는 오직 원웨이 티켓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돌아오는 길이 없을 것을 겁내지 않는다. 하쿠를 친친 동여매고 있는 가혹한 운명의 사슬을 풀어주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그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은 나머지 그녀는 괴물이 된 가오나시도, 자신을 협박하는 유바바도, 돌아올 길이 없는 원웨이 티켓도 두렵지 않다. 자신을 괴롭힌 수퍼베이비와 자신을 스토킹한 가오나시까지 여행의 동반자로 삼은 센의 따스함,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가 자신도 모르게 실현하는 우정이다. 그녀의 적들은 어느새 그녀의 친구가 된다. 그리스 신화의 스틱스 강처럼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짐을 짊어지고, 저기 길 떠나는 소녀의 처연한 뒷모습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세계의 영웅신화>, 1996, 대원사,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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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09-0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센의 처연한 뒷모습만 시리도록 아름다운 게 아니라, 여울님의 글도 그래요. 마지막 문장과 이미지를 보며, 울, 컥,,,,,

도란도란 2009-09-0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센과 치히로 내용에 집중해서 읽고 있었는데, 이제는 조셉 캠벨의 책이 읽고 싶어집니다. "우리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찾아온다."

doingnow12 2009-09-1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마할아범한테 줄 수 있는 목욕패(?)가 저한테도 몇개있음 얼마나 좋을까요?ㅋㅋ 영화를 보면서 저도 저렇게 속시원하게 씻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나요..ㅋㅋ멋진글 잘 읽었습니당

sotkfkd 2009-09-1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이 곧 영웅! 센에게는 추호도 영웅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으므로 그래서 곧 영웅! 잘 읽엇습니다.
조셉 켐밸을 다시 공부하고 싶은......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⑦

   

 7. 센의 딜레마 vs 유바바의 딜레마

   
 


여러분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비판을 미루어 두어야 한다. (……) 비판을 미루어두는 것은 이른바 ‘너는 할지니’라는 용을 죽이는 것이다. 그놈을 죽여버려라. 우선 글을 쓰도록 하라. 비평가는 잊고 그저 쓰기만 하라. 비판적 요소를 끌어안고 문장을 다듬는 것은 그 다음에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누가 과연 이런 걸 보려고 하겠어?”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울 수도 있다. 그러면 여러분의 주장에 대해 공감할 만한 사람을 떠올린 다음,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라.(……) 가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한 소녀를 위해 쓴 것이었다. 


 -조셉 캠벨,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386쪽.

 

 

   



   센은 하쿠를 구하러 가고 싶지만 수퍼베이비 ‘보’는 좀처럼 센을 놔주지 않는다. 아기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했던 적이 없으므로, ‘센’이라는 새로 생긴 ‘장난감’도 결코 놓치지 않을 심산이다. “네가 가면 내가 울 거고, 울면 엄마가 널 죽여. 네 팔을 부러뜨릴 거야.” 센의 가느다란 팔을 콱 깨무는 아기(라고 하기엔 너무 커다란!). 타자와의 아무런 접촉이 없었던 아이의 폐쇄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이쯤 되면 후천적인 자폐 상태로 키워지는, 그리하여 타자에 대한 배려를 전혀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떠오른다. ‘소황제’라 불리며 오직 자기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가야 마음이 놓이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지배하고 독점하며 통제하는 어른들의 욕심 사나운 얼굴도 떠오른다. 센은 아기에게 물린 팔이 너무 아파 비명을 지른다. “아야, 아파! 나중에 와서 놀아줄게.” “지금 놀아줘. 봤지, 이건 피야!” 그때 피투성이로 몸부림치는 하쿠가 나타나자 센은 아기를 뿌리치고 하쿠에게 달려간다. 아직도 ‘용’의 모습을 한 채로 숨도 제대로 못 쉬는 하쿠.

   하쿠를 돌보는 센에게 아직도 칭얼거리며 보채는 수퍼베이비. 이 못 말리는 아기를 혼내키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좀 하거라!” 분명 유바바의 얼굴인데 갑자기 유바바가 인자하고 상냥해진 것 같다. 게다가 유바바의 얼굴을 한 이 할머니는 아기를 처음 보는 것 같다. “넌……. 꽤나 뚱뚱하구나!” 아기는 “엄마!”라고 소리 지른다. “엄마랑 나도 구별 못 하느냐?” 알고 보니 이 할머니는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다. 제니바는 도저히 달랠 수 없는 이 골칫덩이 아기를 우선 작은 생쥐로 만들어버린다. “움직이기 좀 불편할 거야.” 생쥐로 변한 아기는 이제야 좀 잠잠해지고 귀여워졌다.

   알고 보니 절대 권력자 유바바에게도 약점이 있다. 그녀의 약점은 바로 쌍둥이 언니 제니바와의 불화다. 그리고 자라지 않는 수퍼베이비 또한 유바바의 기쁨이자 슬픔이다. 자신을 괴롭히던 심연의 핵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센.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모르고 그저 주어진 미션에 충실해야 했던 센은 점점 그들을 둘러싼 운명의 덫, 그 심연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어쩌면 센은 이 미궁을 빠져나갈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니바는 유바바와 똑같은 외모지만 왠지 유바바보다 훨씬 인정 많고 지혜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제니바가 센에게 말한다. “그 용을 나한테 넘겨.” 센은 화들짝 놀란다. “하쿠를 어쩌게요? 크게 다쳤어요.” 제니바는 그제야 하쿠가 다친 이유를 설명해준다. “내 동생의 부하인데 도둑 용이야. 그 용은 내 집에서 귀중한 도장을 훔쳤어.” 센은 도리질한다. “하쿠는 착해서 아무 것도 훔치지 않아요.”
    제니바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용들은 다 착하고 어리석어. 하쿠는 마법의 힘을 얻으려고 동생의 제자가 됐어. 욕심쟁이 동생이 시키면 뭐든지 할 아이야.” 이것이 ‘용’의 양면성이다. 용은 착하고 우직하지만 ‘누구’의 지배를 받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운명에 처한다. 제니바는 마음의 준비가 된 듯 센을 물리치려 한다. “비켜! 이 용을 돕기엔 늦었어. 도장에는 주문이 걸려 있어. 훔친 자는 죽게끔 말이야.” “안돼요!” 자신을 둘러싼 가혹한 운명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던 센은 이제 운명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센은 우선 자신과 부모를 구해야 한다는 의무도 어느새 뒷전으로 미루고 자신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미션까지 도맡게 된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일, 하쿠를 구하는 일은 이제 그녀의 최대 과제가 되었다. 

   센은 하쿠를 대장장이 할아범에게 데려가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할아범은 하쿠에게 온갖 약초를 먹이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몸 안의 뭔가가 생명을 집어삼키고 있어. 너무 강력한 마법이야. 난 손을 못 쓴다.” 다급해진 센의 머릿속에 불이 켜진다. 마지막 수단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 무서운 유바바 월드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탈출구, 바로 강의 신이 준 경단이다. “하쿠. 강의 신이 준 경단이야. 들을지 몰라. 먹어봐. 하쿠, 입 벌려봐 하쿠, 제발 먹어!” 센의 부모님을 구할 경단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하쿠는 온 힘을 다해 경단을 거부하고, 센은 자기 몸보다 다섯 배는 큰 하쿠를 끌어안고, 온 힘을 다해 경단을 먹이려 한다. 그 순간 부모님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상념 따윈 떠오르지 않는다. 하쿠에게 억지로 경단을 먹이자 드디어 하쿠의 몸속에서 검은 마력의 기운이 스르륵 풀려 나온다. 제니바의 도장이 튀어나온 것이다. “됐어, 나왔다 도장! 도망친다, 저기!” 강의 신이 준 경단의 위력은 엄청나다. 하쿠가 삼킨 제니바의 도장과 함께 강력한 마법도 함께 사라진 듯하다.

   센은 대장장이 할아범에게 말한다. “유바바의 언니 도장이에요.” 할아범은 놀란다. “마녀의 계약도장? 이런 귀한 것을!” 유바바와 제니바는 동전의 양면처럼, 도플갱어처럼, 서로 같고 또 다른 길을 걸어간다. 유바바는 온천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마법을 이용하여 인간의 이름을 빼앗아 지배하지만, 제니바는 마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물레질을 하며 작은 오두막집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살림을 꾸려나간다. 유바바가 마법을 ‘권력’을 위해 사용한다면, 제니바는 고통받는 타인의 ‘치유’를 위해 사용한다. 유바바와 제니바의 관계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와 사루만의 관계와 비슷하다. 간달프가 절대반지의 무서운 힘을 ‘해방’시키는 데 주력했다면, 사루만은 그 절대반지를 오직 자신만의 것으로 ‘독점’하려 몸부림치다가 파멸한다. 유바바가 하쿠를 시켜 훔친 제니바의 도장은 바로 절대반지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계를 해방시킬 수도 있고 세계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센에게서는 이제 나약한 소녀의 이미지는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녀는 이제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난 오솔길을 따라 조용히 걸어가도 그 길이 가장 옳은 길임을, 자신도 모르게 깨달은 듯하다. 하쿠가 정말 도장을 훔쳤는지도 알 수 없고, 강의 신이 준 경단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강의 신이 준 경단은 부모님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인데도, 그녀는 하쿠를 구한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치히로가 유바바 월드의 일상 전체를 바꾸어 놓는, 죽어가는 하쿠를 구하는 존재로 아름답게 비상한다. 유바바에게 절대복종함으로써 일사불란하게 굴러가던 이 거대한 세계는 센으로 인해 곳곳에 ‘틈새’가 생겼다. 센으로 인해 늘 문 밖에서 서성이던 외부자 가오나시가 잠입했고, 센으로 인해 수퍼베이비가 귀여운 생쥐로 변신했으며, 센으로 인해 하쿠의 운명과 유바바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 사실 센에게는 ‘부모님을 살릴 것인가’ vs ‘하쿠를 살릴 것인가’를 두고 저울질할 ‘틈’이 없었다. 하쿠는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운명의 짐짝을 잊었다. 그녀는 하쿠와 자신을 더 이상 분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센이 하쿠였고 하쿠가 센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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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글리 2009-09-0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거 보니깐, 센과 치히로 다시 보고 싶넹 ㅎㅎ

비로그인 2009-09-0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너와 나를 분리할 수 없는 감정, 사랑... 센과 치히로를 봤을 때 러브러브에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역시 그랬던거였어요. ㅎㅎ

doingnow12 2009-09-1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흣..할아범이 몸안에 생명이 있다고해서 굉장히 무서운게 나올줄 알았는데 귀여운 먹물녀석이 뾱 튀어나왔던게 생각나요..ㅋㅋ소중한 땡땡은 누구나 갖고 있는거겠죠..?ㅋㅋ센다시보고싶어지네요..크흣

sotkfkd 2009-09-1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⑥

   

 6. 세 친구: 나보다 더 아픈 나와의 만남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아에 속박된 ‘자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 우리에 갇혀 있어요. 분석심리학은 용을 쳐부수고 무너뜨림으로써 우리를 더 넓은 관계의 마당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궁극적인 용은 우리 안에 있어요. 우리를 엄중히 감시하고 있는 우리의 자아, 이게 바로 용입니다.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273쪽.

 

 

   


▲파올로 우첼로, <성 제우르지오와 용>, 1456
   

   난 역시 안 돼, 난 결코 꿈을 이룰 수 없을 거야,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난 도저히 저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어…. 조셉 캠벨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자아를 ‘용’이라고 불렀다. ‘늪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양의 용이 때가 되면 그야말로 우렁차게 ‘용트림’을 하며 웅장하게 승천하는 존재라면, 서양의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용은 뭐든지 일단 잡아 가둬 자신의 통제권 안에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감시하고 있는 공주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지도 모르면서, 그렇다고 그 공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고집스레 공주의 출입을 가로막으며 입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용의 이미지. 그것은 우리 안의 재능이, 우리 안의 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평생 ‘아직은 때가 아니야’, ‘난 재능이 없어’라고 판단하며 ‘꿈의 승천’을 미루고 또 미루는 인간의 마음을 닮았다.
    우리는 거대한 용과 싸우는 영웅의 이미지를 다룬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 성을 지키는 끔찍한 용과 싸워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부터, 용과의 싸움이 끝나면 드디어 미션이 완성되는 각종 게임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조셉 캠벨은 신화적 모티브의 단골 메뉴인 이 ‘용(dragon)’과의 싸움이야말로 통과의례의 절정, 즉 ‘나를 가두고 있는 나’와의 싸움, ‘나를 감시하고 있는 나’와의 싸움임을 간파했다. 센의 친구 하쿠는 바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이 거대한 ‘용’을 닮은 인물이다.  

   하쿠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센이 곤경에 처했을 때 곧잘 나타나주지만, 막상 센이 찾을 때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유바바 온천 사람들조차 하쿠의 행방을 잘 모른다. “하쿠는 가끔 잘 없어져. 소문엔 유바바가 험한 일을 시켰대.” “하쿠를 조심해. 하쿠는 유바바의 하수인이야.” 온천 식구들은 하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하쿠에 대한 위험한 소문을 더욱 편리하게 퍼뜨린다. 늘 비밀에 싸인 친구 하쿠, 그는 자신이 가진 놀라운 마력으로 센을 곧잘 도와주지만 센이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센은 바다 위에서 거대한 새 떼의 무리와 싸우는 아름다운 용 한 마리를 발견한다. 피투성이가 되어 새 떼와 싸우는 어린 용, 센은 그 용이 바로 하쿠임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새 떼의 맹공에 밀려 온몸에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푸른 용. 그런데 맹공격을 펼치던 새 떼가 센이 있는 창 쪽으로 따라와 떨어지자 그들이 그저 ‘종이 새’에 불과했음이 밝혀진다. “그냥 종이잖아?” 쓰러진 용을 쓰다듬으며 센은 젖은 눈으로 속삭인다. “하쿠가 맞지? 다친 거야? 종이 새는 갔어. 이젠 괜찮아.” 용이 된 하쿠는 사악한 마법에 걸린 왕자처럼,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특유의 자폐적인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괴로워한다. 센은 치명상을 입고 괴로워하는 하쿠를 구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하쿠를 이렇게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유바바를 찾기로 한다. 그런데 유바바를 만나러 가던 도중 예기치 않게 ‘가오나시’의 끔찍한 대변신과 활극을 맞닥뜨리게 된다. 
 

   센이 살짝 열어놓은 문틈으로 몰래 유바바 온천에 잠입한 가오나시. 가오나시는 가면 뒤에 얼굴이 없을 뿐 아니라 목소리도 없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는 몰래 개구리의 몸을 먹어 개구리 목소리를 내며, 사금으로 온천 식구들을 유혹하고, 온천장을 휘저으며 닥치는 대로 폭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오나시는 자신만의 얼굴을 갖지 못한 존재이며, 타인과의 접촉에 실패하고 늘 타인의 목소리에 올라타야만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 가오나시는 타인에게 말걸고 싶지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법을 알지 못해 ‘사금’이라는 유혹의 미끼를 쓴다. 그가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은 센이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친절’을 보여준 유일한 친구, 센. 사람들은 몸에서 사금을 만들어내는 가오나시의 능력에 반해 “부자 나리가 납시었네, 금이 손에서 무한정 나온대.”하고 가오나시를 따라다니지만, 센은 이 황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센은 무심한 얼굴로 “전 필요 없어요, 됐어요.” 라고 말한다. 이런 센에게 더 큰 매혹을 느낀 가오나시. 

   우여곡절 끝에 가오나시를 피해 달아난 센은 유바바의 방에 몰래 잠입한다. 그곳에서 센은 유바바의 끔찍한 명령을 엿듣고야 만다. “하쿠를 처치해버려. 이제 그 애는 필요 없어.” 유바바는 부하에게 살벌한 명령을 내리자마자 안면을 싹 바꾸어 자애로운 어머니의 표정으로 돌아간다. “또 침대에서 안 자고! 미안해, 코오 자는데 깨웠구나! 엄마는 아직 일이 있단다. 잘 자렴, 착한 아가!” 그러나 이 아가는 전혀 착하지 않아 보인다. 엄마에게 떼를 쓰며 팽 토라지는 아기의 위용이 그제야 드러난다. 어른보다 더 큰 수퍼베이비. 몸은 어른보다 크지만 정신은 갓난아기에 머물러 있는 이 ‘귀엽지 않은’ 아기와 유바바의 관계는 캥거루족 아들과 헬리콥터족 수퍼맘처럼 서로에게 의존적이다. 모두에게 철저히 군림하는 유바바가 정작 아기에게는 쩔쩔맨다. 그리고 그 아기는 자라지 않는 정신 때문에, 엄마에게 고착된 정신 상태 때문에 엄마를 구속할 뿐 아니라 자신의 성장도 구속한다. 엄청나게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지만 아직 영혼의 모유를 떼지 못한 수퍼베이비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물론 엄마다. “바깥은 병균으로 득실거려. 늘 엄마와만 있어라.” 

   이 수퍼베이비에게 센은 난생처음 맞닥뜨린 타자다. 아기는 엄마 아닌 사람과 처음으로 놀아보고 싶은 호기심을 느낀다. 수퍼베이비 덕분에 유바바에게 들킬 위험을 모면한 센은 말한다. “도와줘서 고맙지만 바빠서 가야 돼, 놔줄래?” 아기는 센에게 심술궂은 얼굴로 말한다. “병 옮기러 왔지? 밖엔 나쁜 병균밖에 없어.” ‘아가, 밖엔 무서운 것밖에 없어, 엄마를 떠나면 오직 위험뿐이야’라고 가르친 유바바의 교육철학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나가면 몸에 나빠. 여기서 나랑 놀자.”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아기에게 센은 굳은 결심이 어린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런 곳은 병에 더 잘 걸려.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 많이 다쳤어. 어서 가봐야 돼.” 센은 어느새 하쿠를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엄마, 아빠에게 찰싹 달라붙어 아무것도 혼자 해내지 못할 것 같던 소녀가 이제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 시작했다. 센은 하쿠를 구하기 위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유바바의 카리스마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기자 그녀는 더욱 강해진다. 하쿠는 지금 싸우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해. 나의 꿈을 가두는 나와의 싸움, 나를 잊은 나와의 싸움, 나를 나이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헛것들(종이 새들)과의 싸움. 하쿠는 끊임없이 자신을 찾으려 하지만 ‘난 역시 안 돼’라는 마음의 벽에 부딪힌다. 위험에 빠진 친구를 구해주는 임무는 애초에 센의 미션리스트에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무서운 곳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준 하쿠를 구해주려 한다. 나락에 빠진 자신과 부모님을 구하기도 벅찬 센-치히로는 자신이 구해줘야만 할 것 같은 세 명의 친구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서구의 옛이야기에서 영웅은 주로 동굴이나 성을 지키고 있는 ‘용’을 죽임으로써 승리를 구가하지만, 센은 용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용을 속박하고 있는 올가미를 풀어주려 한다. 센이 하쿠의 고통을 함께 앓을 때, 그녀는 어느새 자기를 잊은 채로 하쿠의 존재에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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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와쨔쨔 2009-08-3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인데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정말 잘 보고, 잘 읽고 갑니다.^^

앨리스 2009-08-3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은 창작물인데 덧글이 적네요. 한번 더 보고 싶다.

dlatjsdud29 2009-08-3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때가 아니야', '난 재능이 없어' 라고 판단하고 '꿈의 승천'을 미루는 인간의 마음과 닮았다는 말이 왠지 공감이 갑니다. 어서 또 다른 자아를 깨부셔야 할 텐데 쉽지가 않아요^^

필로우북 2009-09-0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면서 얼핏 가늠했던 것들을 이론적으로 콕콕 집어주시는 것이 참 흥미롭고 즐거워요~ 즐겁게 잘 보고 있습니다~!!


doingnow12 2009-09-10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의 승천...(>_<)!!!

sotkfkd 2009-09-1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서양 사고의 차이가 결국 문화를 잉태하는 것이겠지요. 캠벨을 읽으면 늘 느끼는 것이 동양적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잘 읽었습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⑤

  

 5. 영원에 발을 딛고 시간의 장(場) 위에서 춤추다

   
 

모이어스: 소년 시절에 <원탁의 기사>를 읽었는데요. 문득 저도 영웅이 될 수 있겠다 싶더군요. 정말 집을 떠나 용과 싸우고 싶었습니다. 어둠의 숲으로 들어가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싶었습니다. 신화가 오클라호마주의 농투성이 아들을 꼬드겨 영웅이 되고 싶게 만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캠벨: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괴물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안의 어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우리를 사로잡되, 우리 심층에 있는 것을 거머쥡니다. 내가 인디언 이야기를 읽고 그랬듯이 모이어스 씨도 그랬군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신화는 우리에게 그만큼 더 수다스러워집니다. 


  -조셉 캠벨·빌모이어스, 이윤기 역,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272쪽.

 

 

   
 

    린은 센에게 작업복을 주고 근무수칙을 일러주며 천신만고의 고생길에 오른 것을 환영한다. 하쿠는 센에게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은밀하게 그녀를 불러낸다. 돼지들, 아니 부모님은 센이 온 것도 모르고 쿨쿨 자고만 있다. “엄마, 아빠! 아픈 거야? 다친 거야?” 센은 걱정 어린 눈길로 부모님을 부르지만 하쿠는 더욱 비극적인 소식을 전달한다. “배가 너무 불러서 자는 거야. 사람이었다는 걸 알지 못해.” 센은 기막힌 소식에 더 이상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돼지-부모를 타이른다. “내가 꼭 구해줄 테니까 너무 살찌지 마, 잡아먹혀.”   

   걸핏하면 칭얼거리기 좋아하던 철없는 치히로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든든한 보호자였던 엄마, 아빠가 자신이 구해주지 않으면 언젠가 잡아먹힐 돼지로 변해 있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미션이 눈앞에 있다. 어떻게 엄마, 아빠를 구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구하지 않으면 엄마아빠가 죽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욱 슬픈 것은 엄마, 아빠가 매일매일 보듬고 비비던 자식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그들이 ‘한때’ 인간이었던 기억조차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치히로가 마음껏 슬퍼할 틈도 주지 않고 하쿠는 마녀 유바바의 지배전략을 일러준다. “치히로. 유바바는 누구든 이름을 뺏어서 지배해. 센인 척하고 진짜 이름은 숨겨. 이름을 뺏기면 돌아가는 길을 모르게 돼.” 하쿠를 바라보는 센의 눈빛이 반짝인다. 길 잃은 센에게, 이 끝을 알 수 없는 여행의 유일한 안내자가 되어준 하쿠의 표정이 우울해진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름이 생각 안나. 하지만 놀랍게도 치히로란 이름은 까먹지 않았어.” 하쿠는 센이 된 치히로에게 먹을 것을 건네준다. 센은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니 입맛조차 없는지 풀 죽은 목소리로 거절한다. “힘낼 수 있게 밥에 주문을 걸었어, 먹어봐.” 
   먹을 것을 뱃속에 집어넣고서야 배고픔을 깨달은 센. 이 배고픔과 이 맛은 이 모든 당혹스런 현실 속에서 그녀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육체적 증거다. 더 이상 자신을 보살필 수 없는 엄마, 아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야,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엉엉 우는 센. 그녀는 자기 앞에 부과된 소명을 이제 완전히 받아들인다. 물러설 곳이 없다면 맞서는 수밖에 없다. 더없이 힘겨운 불행이 찾아온 그날, 더없이 아름다운 인연도 시작된다. 이제 센과 하쿠는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이자 멘토가 된다.

   센은 대형 욕탕 당번으로 배정되어 열심히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센은 비오는 날 문밖에 서서 하염없이 어슬렁거리는 얼굴 없는 귀신 ‘가오나시’를 만난다. 센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비를 맞고 서 있는 처량한 모습이 딱해 말을 건다. “거기 있으면 비를 맞잖아요? 문을 열어두고 갈게요.” 친절한 센이 열어놓은 문틈으로 초대받지 못한 귀신 가오나시가 숨어 들어온다. 목욕탕에 급수하는 법을 어렵게 배운 센은 영차영차 목욕탕에 온천수를 공급한다. 그때 목욕탕의 첫 손님으로 ‘오물신’이 등장한다. 모두들 그 엄청난 냄새와 더러움에 구역질을 참지 못하며 오물신을 내치려 한다. 오물신을 받아들였다간 목욕탕 전체가 오염될 것만 같다. “슈퍼 울트라 초대형 오물신입니다.”

   유바바는 손님이니 어쩔 수 없다며 초짜 종업원 센에게 오물신의 시중을 맡겨버린다. 입문자에게 주어지는 혹독한 신고식이다. 모두 오물신을 피해 도망가버리고 센은 외롭게 혼자 남아 오물신의 시중을 들어야 할 판이다. 센은 우여곡절 끝에 가마 할아범과 가오나시의 도움을 받아 최고급 약수를 초특급 오물신에게 제공한다. 센은 엄청난 냄새와 오염물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물신을 시중들다 그의 몸에 깊이 꽂혀 있는 가시를 발견한다. 유바바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센에게 말한다. “그분은 오물신이 아냐. 이 밧줄을 써라.” 좀처럼 빠지지 않는 커다란 가시를 빼내느라 이제 목욕탕의 모든 종업원이 힘을 모아야 할 차례이다. 유바바의 지휘 아래 센이 앞장서고, 모든 종업원이 밧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목욕탕 일동 마음을 모아서 당겨! 영차! 영차!” 

   센에게 인간의 구린내가 난다며 그녀를 멀리하던 종업원들, 그들은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손님의 몸에 박힌 가시를 빼낸다. 공동체의 소중함, 함께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센. 드디어 오물신인 줄로만 알았던 ‘강의 신’의 멋진 위용이 드러난다. 강의 신은 인간들의 부주의로 더럽혀지고 상처입은 자연의 알레고리가 아닐까.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준 센에게 강의 신은 밤톨만한 경단을 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센으로 인해 원래 모습을 찾은 강의 신은 통쾌하게 웃으며 하늘로 날아간다. 마녀 유바바는 싸늘한 시선을 거두고 센을 마음껏 칭찬해준다. “센, 잘했어. 큰 이익을 봤어. 이름 있는 강의 주인이야. 모두 센을 본받아라!” 유바바 월드의 첫번째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센. 이제는 그녀를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처음으로 낯선 공동체의 엄청난 텃세를 뚫고, 자신을 박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시간의 장은 곧 슬픔의 장이다. 모든 삶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정말 그렇다. 여러분이 슬픔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면, 여러분은 그 슬픔을 다른 어디론가 옮겨놓기만 하면 된다. 삶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그런 삶과 함께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여러분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영원을 자각한다. 여러분은 해방되고, 또 그런 한편으로 다시 속박된다. 여러분은-바로 여기서 아름다운 공식이 나오는데-“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 여러분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손상이나 성취조차도 초월하는 장소를 발견했음을 알고 있다. 여러분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조셉 캠벨, 다이앤 K. 오스본 편,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171쪽.

 
   


 

   치히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온몸으로 이해한다. 그녀는 시간의 장을 떠나왔지만 영원의 바다 위에 표류하기 시작했음을. 그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슬픔을 긍정함으로써 시간의 차원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영원의 차원으로 진입한다. 이 혹독한 입문식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통과의례의 모델이다. 부모님은 돼지로 변해버렸고 나는 원래의 내 시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루(영혼의 스승)’를 만났다. 내가 미처 투시하지 못했던 내 안의 어둠을 밝혀줄 영혼의 친구 하쿠를. 너와 함께라면 이 슬픔의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는 치히로를 죽여 센을 얻었고, 부모님과 생이별하여 다시없을 멘토를 얻었다. 이제 영원의 품 안에서 시간의 춤을 출 마음의 악보가 필요하다. 이제 슬픔의 악보를 연주할 기쁜 춤의 리듬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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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atjsdud29 2009-08-2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을 긍정하는 건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나에게도 하쿠와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mr.black 2009-08-29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슬픔, 눈물, 모두가 너무 아릅답고 숭고한 감정인 것 같네요.

미니쉘 2009-08-2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코스프레 매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 가오나시, 언제 봐도 묘한 매력이 있는...

doingnow12 2009-09-10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샤방 하쿠!!

sotkfkd 2009-09-1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이로의 모험 그림들과 영화 제작 과정을 모아놓은 두꺼운 책을 열심히 봤던 때가 떠오릅니다. 참 행복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