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⑨

 

9.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예언자적 인간이 고뇌에 가득 찬 인간이라는 것을 그대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저 그들에게 훌륭한 “재능”이 주어졌으며, 그대들도 이 재능을 가졌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다.―그래서 나는 비유를 통해 내 생각을 표현하고자 한다. 동물들이 대기와 구름의 전기로 인해 얼마나 고통을 받겠는가! 동물 중의 몇몇 종들은 날씨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례로 원숭이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겪는 고통이 그들을 예언자로 만든다는 것은 ― 생각하지 않는다! 강력한 양전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구름의 영향으로 인해 음전기로 변하여 날씨의 변화를 일으키려 할 때, 이 동물은 마치 적이 다가오고 있기나 한 것처럼, 방어 자세나 도주 자세를 취한다. 대부분은 어딘가로 숨어든다. 그들은 악천후를 날씨가 아니라 적의 손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289쪽.

 
   

   레드가 쇼생크의 최고참이 되고 앤디가 쇼생크의 중견이 되는 동안, 쇼생크에는 끊임없이 신참 죄수들이 입성한다. 토미는 바로 그 신참 죄수 중 하나였다. 토미는 텔레비전을 훔치다가 들켜 무단침입죄로 2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온다. 타고난 친화력과 유머감각으로 토미는 순식간에 쇼생크의 마스코트가 된다. 도둑질조차 서툴렀던 토미는 좀도둑질을 하다 매번 붙잡혀 어린 시절부터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했다. 토미의 넉살 좋은 수다를 듣고 있던 앤디는 불쑥 충고를 한다. “새로운 직업을 가져보는 게 어때? 자네는 도둑질도 잘 못하니 다른 걸 해보라는 거야.” 


   토미는 아내와 갓 태어난 딸을 생각하며 앤디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치르고 싶어요.” 죄수들의 학업을 도와주며 쇼생크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던 앤디는 토미의 개인교습도 도맡기로 한다. 문맹이었던 토미를 위해 알파벳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앤디. 토미는 빠른 속도로 고교 과정을 습득하며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나간다.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토미였기에 배움은 더욱 짜릿한 희열을 안겨준다.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앤디는, 자신으로 인해 매일매일 변해가는 토미를 자식처럼 아낀다. 토미를 가르치는 것은 앤디가 기획하고 있었던 어떤 문화 사업 프로젝트보다도 보람 있는 일이었다. 배움에 대한 아무런 열망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던 토미가 공부에 재미를 붙인다는 것,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였던 인간이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 누군가가 나 때문에 삶의 노선 전체를 바꾼다는 것. 그 모두가 앤디에게는 또 하나의 감미로운 모차르트였고, 또 다른 희망의 뮤즈였다. 레드는 토미를 향한 앤디의 열정을 이렇게 해석한다. “감옥의 하루는 매우 길죠. 그래서 집중할만한 게 있어야 합니다. 어떤 죄수들은 성냥 쌓기도 하죠. 듀프레인은 쇼생크 도서관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죠. 바로 토미였습니다. 수년간 갖가지 돌을 깎고 다듬은 이유도 같은 목적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앤디는 여배우 사진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앤디가 토미를 자식처럼 가르치고, 조각가 못지않게 돌을 연마하고, 여배우 포스터를 수집한 것은 단지 감옥의 권태를 견디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1년 후 토미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보고 나서 스스로 시험을 망쳤다고 판단하며 절망한다. 그런 토미를 위로해주는 레드. 토미는 시험을 망친 것보다 앤디 실망시켰을까 봐, 그것이 더욱 걱정스럽다. “앤디가 실망했겠죠?” “그렇지 않아. 앤디는 자네를 늘 대견하게 생각한다네. 우린 오랜 친구라서 내가 잘 알지.” 앤디가 사회에 있을 때는 최고의 은행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레드. 토미는 앤디가 아내를 살인한 죄로 감옥에 들어왔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그래, 앤디는 살인을 할 사람은 아니지. 침상에 있던 아내와 정부를 총으로 쐈다고 하더군.” 토미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가 충격을 받는다. 앤디를 불러 자신이 아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는 토미. 

    “4년 전 토마스톤 감옥에 있을 때였어요. 전 자동차를 훔쳤어요. 바보 같은 짓이었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새 식구가 들어왔어요. 엘모 블래치였죠. 미치광이 같았어요. 아무도 그런 작자랑 방을 같이 쓰고 싶지 않아 했어요. 그는 6년 형을 선고받았죠. 도둑질만 수백 번도 넘게 했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 어느 날 밤에 제가 그에게 물었죠. 살인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토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살인자 엘모 블래치의 끔찍한 고백이 시작된다.  “딱 한 번 저질렀지. 컨추리 클럽에서 돈 많아 보이는 대상을 물색했어. 한 남자를 골랐지. 밤에 몰래 그 집에 들어가서는 한탕 했다고. 그놈은 잠이 깼는지 나한테 대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죽여버렸지. 옆에 있던 여자도 같이 말이야. 이 대목이 중요해. 그 여자는 골프선수와 자고 있었어, 결혼한 여자였는데 말이야. 그 여자의 남편은 성공한 은행가였지. 남편이 내 대신 죄를 뒤집어썼어.”
    엘모 블래치의 잔인한 미소와 앤디의 당혹스런 표정이 오버랩된다. 앤디의 지난 19년 감옥생활, 그 모든 것이 끔찍한 누명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19년. 갓난아기가 태어나 어엿한 성년으로 자랄 만한 시간, 감옥에 갇힌 한 인간의 존엄이 완전히 망가지기에 충분한 시간, 그리고 앤디에게는 ‘리타 헤이워드’ 포스터가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수많은 여인을 거쳐 ‘라켈 웰치’로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리타 헤이워드’는 반란의 시작을, ‘라켈 웰치’는 반란의 끝을 장식하는 앤디만의 암호였다. 

   앤디는 비로소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이유를 깨닫고 노튼 소장의 마지막 양심에 호소한다. 토미의 증언이 있으면 자신이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이미 앤디를 자신의 ‘충직한 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믿었던 노튼 소장은 앤디의 석방이 곧 자신의 종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살인자는 지금 어디 있다고 하던가? 그자가 무릎을 꿇으며 잘못했으니 벌을 대신 받겠다고 할 줄 아나?” 그는 앤디를 설득하려 하지만 앤디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토미의 증언이면 다시 재판 받을 수 있어요.” 노튼 역시 필사적이다. 앤디가 쇼생크를 떠나는 순간 자신의 호시절이 끝날 것이라는 예감에 몸을 떤다. 19년 무고한 감옥 생활 동안 한 번도 분노하지 않았던 앤디는 드디어 폭발한다. “제 인생이 달렸다고요. 정말 모르겠어요?” 감옥 밖으로 나가도 ‘돈세탁’에 관련된 일은 발설하지 않겠다는 앤디의 말에 노튼은 결정타를 맞는다. 앤디를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노튼은 자기 인생을 정작 좌지우지하는 것은 앤디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앤디가 없다면 그의 모든 부귀영화는 물거품이 될 것 같은 두려움. 앤디는 ‘한 달간 독방 감금’이라는 쇼생크 감옥 역사상 최고의 형벌을 받고, 앤디가 그토록 아꼈던 토미는 앤디를 석방하지 않으려는 노튼의 흉계로 목숨을 잃고 만다. 토미가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생애 최고의 감격스러운 순간을 만끽한 직후였다.

   앤디는 1달 동안의 독방 생활 동안, 그의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던 망상들을 죽인다. 노튼 소장은 자신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환상, 법의 힘이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는 환상, 타인의 도움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죽인다. 그리하여 그는 새로 태어난다. 그에게 토미의 등장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지만, 그 동아줄은 향기로운 만큼 더없이 위험한 미끼였다. 토미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는 얼음으로 둘러싸인 고산에서도 혼자 살아갈 수 있음을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했다.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주리라는 실낱같은 환상을 일깨운 토미는 그에게 아름다운 유혹이었던 셈이다. 그는 토미의 죽음을 통해 자신 안에 있었던 마지막 망상을 죽인다. 토미의 죽음은 더 없는 슬픔이었지만, 앤디 안의 또 다른 앤디의 죽음은 기쁜 죽음이었다. 쇼생크의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한 인간의 반란이 비로소 탄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싸운 그 모든 적들보다도 가장 무서운 적,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순간, 초인의 새벽은 밝아온다.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므로. 

  

   
 

모두에게 그렇듯 니체에게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씁쓸하고 허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삶의 모든 거친 질료들을 씹어서 자기 신체의 구성 요소가 될 때까지 향유할 줄 아는 건강한 사유자였다. 그는 죽음에서 슬픔이 아닌 기쁨의 요소를 발견한다. (……) 그는 죽음에서 소멸이나 슬픔과는 거리가 먼 신비를 발견한다. 기쁘고 명랑한 죽음이 있으며, 이 죽음을 다른 말로는 생성이라고 부른다. 후일 그는 이런 생성의 기쁨을 찾아가는 사유를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표현했다.  


 - 진은영,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그린비, 2007,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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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09-1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앤디처럼, 노튼소장같은 내 상사에게 한 방 날릴 무기를 만들어야 할 터인데....

wow! 2009-09-1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맨손체조님! 그럴려면 튼튼해야 해요! 잘못하다간 나만 다치거든요 ㅠㅠ 맨손체조 하루 1시간씩! 영차영차~~^^

sotkfkd 2009-09-2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 = 생성
 

 


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⑧

 

8. 내 머릿속에는 모차르트가 살고 있다 

   
   질투 없는 눈.
 그래, 그의 눈에는 질투가 없다 : 그래서 너희들은 그를 존경하는가?
 그는 너희들의 존경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는 독수리의 눈을 지니고 있다.
 그는 너희들을 보지 않는다―그는 별들을, 별들만을 바라본다.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51쪽.
 
   

   일일 DJ로 활동한 앤디는 자신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 편안하게 <피가로의 결혼>을 감상한다. 소장과 간수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 열어! 열라니까! 경고한다! 꺼라! 넌 이제 죽었어!” 노튼 소장은 믿었던(?) 앤디의 도발에 분노하고, 앤디는 2주간 독방 신세를 면치 못한다. 독방은 사람은 물론 빛도 소리도 책도 없는 광막한 어둠을 마주하는 곳이지만, 2주나 독방에 갇혀 있던 앤디는 평소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레드는 돌아온 친구에게 1주일이 1년처럼 더디게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앤디는 씩 웃는다. 난 괜찮았다고. “모차르트가 친구가 되어줬거든요.” 순진한 레드는 앤디의 언어유희를 이해하지 못한다. “독방에 녹음기를 넣어줬단 말이야?” 앤디는 웃으며 자신의 머릿속을 가만히 가리킨다. “내 머릿속에 모차르트가 있었어요. 그들이 그것까지 빼앗을 수는 없잖아요.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있어요?”

   레드는 아주 머나먼 곳,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곳을 덧없이 회상하듯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왕년에 하모니카를 잘 불었지. 이젠 흥미를 잃었어. 도무지 감흥이 안 나서.” 앤디는 곧바로 레드의 말꼬리를 붙잡는다. “감흥을 느끼는 데는 감옥이 제격이죠. 왕년의 그 하모니카 소리를 잊지 않도록 가끔 불어보세요.” 앤디는 천연덕스럽게 감옥이야말로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는 데 적당한 장소라며 미소 짓는다. “잊지 마세요. 세상에는 돌로 만들어지지 않은 곳도 있어요. 그 안쪽까지는 저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죠. 건드릴 수도 없어요. 그건 오직 당신만의 것이니까요.” 레드는 앤디의 투명한 눈빛에 서린, 달콤하지만 불온한 상상의 그림자를 읽어낸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앤디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말한다. “희망이요.” 레드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마치 ‘금기어’를 들은 듯이 정색을 하며 앤디에게 경고한다. “희망? 내가 충고 한마디 할까? 희망은 위험한 존재야. 사람을 미치게 하지. 감옥에서는 필요 없는 존재라고.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레드는 불안한 눈빛으로 앤디를 바라보지만, 어느새 잃어버린 하모니카의 슬픈 환청이 망각의 저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하다. 레드의 가처분 심사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왔고, 심사위원들은 도살장의 쇠고기 등급을 심사하는 듯 냉혹한 눈빛으로 레드를 샅샅이 훑어본다. 

      
    “당신은 30년 동안 복역했소.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됐나요?” 레드는 평소와 달리 긴장된 눈빛과 경직된 말투로 심사에 임한다. “물론입니다. 전 옛날의 제가 아닙니다. 위험한 존재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전 완전히 교화가 됐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어김없이 ‘부적격(rejected)’ 판정이다. 가처분 심사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종신형 죄수를 고문하는 또 하나의 형벌이다. 레드가 복역한 지 30년, 앤디가 복역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앤디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레드에게 전해준다. “이거 가처분 불합격 선물이에요. 뜯어봐요.” 레드가 한때 멋들어지게 불었다는 하모니카였다. 한가로이 하모니카를 부는 레드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앤디의 심정을 알면서도, 레드는 지금은 불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모니카는 잊고 있었던 바깥세상을 일깨워줄 것이며, 앤디의 머릿속에 사는 모차르트가 일깨운 위험한 자유의 공기를 기억나게 할 것이다. 레드는 그 희망의 냄새를 다시 맡는 것이 새삼 두렵다. 레드는 다음에 불어보겠다고 이야기하며 쓸쓸히 웃는다. 

   앤디는 정말 일주일에 두 번씩 주 의회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쇼생크 도서관을 최고의 감옥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한 앤디의 ‘허황된’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앤디가 쇼생크에 입성한 지 13년째 되던 1959년, 드디어 주 의회는 200달러만으로는 앤디의 끈질긴 편지 공세를 무마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주 의회는 매년 500달러씩 쇼생크 도서관에 보조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앤디는 주 의회의 생색내기용 일회적 지원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인 문화적 지원을 바랐다. 아마 그가 떠나도 쇼생크에 계속 ‘우리 안의 모차짜르트’를 들려줄 DJ가 필요하다고, ‘우리 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불러내 줄 수많은 책이 필요하다고, 그는 상상한 것이 아닐까.
    앤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선단체와 교섭하고 재고서적을 싸게 구입하여 쇼생크 도서관을 당대 최고의 감옥 도서관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는 쥐똥이 득실거리는 창고를 개조하여 쾌적한 감옥 도서관을 만든다. 이제는 ‘친구’가 된 동료와 함께. 죄수들은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검정고시 준비도 하며 쇼생크 감옥을 새로운 희망의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앤디는 단지 책이라는 물질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책 속에 기록된 형체 없는 희망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회색 공간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위험한 선동을 구입한다. 그는 이렇게 감옥 안에서는 가장 위험한 무기인, ‘희망’을 차입해온 것이다. 

   노튼 소장도 그동안 자신만의 사업을 번창시켜, 죄수들을 사회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는 허울 좋은 공익사업에 착수한다. 공익사업을 수행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는 미명 하에, 그는 기자회견까지 해가며 쇼생크의 죄수들을 감옥 밖에서 ‘임금 없는 노동자’로 착취할 계획을 만천하에 선포한다.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죄수들의 ‘노동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신문과 잡지에 대서특필되며 노튼 소장을 유명인사로 만든다. “죄수들은 담장 밖에서 노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공익사업을 수행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겠죠.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회에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인건비와 자재비 등 엄청난 ‘외부의 돈’이 감옥으로 굴러들어 오기 시작했고, 노튼 소장은 거의 무한한 ‘제로 임금’ 노동력을 무기로 엄청난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고속도로 건설 수주를 따준다는 명목으로 뇌물까지 수수하는 노튼의 비리 행각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모든 뒷거래 배후에는 검은돈이 뒤따랐고, 이 무시무시한 돈들을 청결하게(?) 세탁하는 임무는 앤디의 것이었다.

   앤디는 노튼 소장의 돈세탁이라는 꺼림칙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전혀 어두운 표정이 아니다. 레드에게 부정한 돈을 세탁하는 비법까지 공개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인다. “꿈에도 생각 못할 수를 써서 등을 쳐요. 더러운 돈이 이곳을 통해 나가요. (……) 주식, 은행예금, 채권을 이용해서 제가 더러운 돈을 깨끗한 돈으로 불려주죠. 노튼이 은퇴할 때 백만장자로 만들어줄 거예요.” 레드는 혀를 내두르며 걱정 어린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꼬리가 길면 의심받아. FBI든 세무국이든 누군가 눈치챌 거야.” 앤디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봐야 저도 소장도 의심 안 받아요.” “그럼 누구야?” “랜달 스티븐스!” “누구라고?” 랜달 스티븐스라는 낯선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사귄 절친한 벗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 든든한 표정을 짓는 앤디. “말 없는 파트너죠. 돈세탁은 그렇게 시작되는 거예요. 아무리 조사해도 그 이름밖에 안 나와요. 가상의 인물이죠. 존재하지 않은 인물을 제가 만들었어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죠.” 레드는 소스라친다. “없는 사람을 만들어 낼 수는 없어.”
    “제도의 허점을 알면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랜달 스티븐스는 출생증명도 있고 운전면허에, 사회보장번호도 있는 걸요. 어떤 계좌를 추적한다 해도 내 상상의 단면밖에 못 찾아요.” 레드는 앤디의 신출귀몰한 기술에 놀란 나머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젠장, 내가 널 좋은 놈이라고 했던가? 알고 보니 사기꾼이잖아?” 앤디는 웃으며 대답한다. “맞아요. 더 웃기는 건 내가 사회에 있을 땐 오히려 정직했다는 거예요. 전 사기꾼 되려고 교도소에 왔나 봐요.” 이제 농담도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앤디의 여유로움 뒤로 신비로운 음모의 냄새가 배어나온다. “그 일 덕분에 쇼생크 도서관을 확장했고, 동료에게 고등학교 과정도 가르칠 수 있었어요.” 

   앤디는 성격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굴욕적인 돈세탁을 하면서도, 그의 몸짓은 이상하리만치 당당하고 기품마저 넘실거린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인하고 신념에 찬 쾌활한 모습. 그의 머릿속에서는 단지 모차르트만 사는 것이 아니다. 침묵의 파트너 랜달 스티븐스. 그와 함께 앤디는 무언가를 은밀히 계획하는 중이다. 아니, 모차르트나 랜달 스티븐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높고 머나먼 그 무엇을 향해, 앤디의 눈은 서늘하게 빛난다. 그는 지금 언제 대폭발을 일으킬지 모르는 거대한 휴화산이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꿈의 마그마가 뜨겁게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의 분출. ― 인류가 예전의 단계에서 획득한 무수히 많은 것들, 그러나 너무 미약하고 미숙한 단계에 있어서 아무도 그것을 획득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오랜 후에, 아마도 수 세기가 흐른 후에 빛을 보게 되는 경우. 그 사이에 그것이 강하고 성숙해진 것이다. (……)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숨겨진 정원과 식물을 갖고 있다. 달리 비유하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분출하게 될 활화산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가까운 시간에 혹은 먼 이후에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신조차도.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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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러너 2009-09-1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탁할 돈이라도 있었으면,,,, 내 머릿속에는 너무나 많은 쇼핑 목록들. 아무도 빼앗을 수는 없다^^*

둥이 2009-09-16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너님의 머리속에 있는 많은 쇼핑 목록들이 희망이군여^^앤디의 그것과 같은
그럼 러너님두 혹 지금 꿈틀거리나여 그럼 "참으세요"라구 말하고 싶어지는데여^^

ㅍㅎㅎ 2009-09-1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들 넘 웃겨요 ㅋㅋ 무서운 휴화산들이네^^

sotkfkd 2009-09-2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겨진 정원과 식물!

콩콩 2009-12-1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분출하게 될 활화산이다. 너무나 와닿는 말입니다. 내가 모르는 잠재된 나를 발견하는 순간.. 그때를 위해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디나봅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⑦

 

7. 벽을 증오하다가, 벽에 길들여지다가, 마침내 벽에 의지하게 되다
 

   
  형벌. ―기이한 것이다. 우리의 형벌이라는 것은! 그것은 범죄자를 정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떠한 속죄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범죄 그 자체보다도 범죄자를 더럽힌다.
                           - 니체, 박찬국 역, <아침놀>, 책세상, 2004, 251쪽.
 
   

   감옥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어져 마치 감옥의 벽돌처럼 감옥의 일부가 된 사람들. 그 중에 브룩스가 있었다. 브룩스는 50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기에 감옥을 빼놓고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죄수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독서를 권하는 일은 브룩스를 감옥에 갇힌 ‘죄수’라기보다 더없이 충실한 ‘사서’처럼 보이게 한다. 브룩스의 표정은 언제나 편안하고 만족스러워서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어린 새 한 마리를 품안에 넣고 다니며 직접 키워 ‘제이크’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브룩스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은, 그가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어느 날 레드와 앤디는 브룩스가 헤이우드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 칼을 제대로 들고 있을 힘도 없어 보이는 브룩스는 정작 협박당하고 있는 헤이우드보다 더 두려운 표정으로 떨고 있다. “우리, 말로 하자고.” “할 말 없어. 목을 그어 버릴 거야.” “헤이우드가 뭘 잘못했어?” “그건 상관없어.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앤디는 침착하게 브룩스를 설득한다. “브룩스, 헤이우드를 해치지 않을 거죠? 그도 브룩스를 해치지 않을 거예요. 왜 친구를 죽이려는 거죠? 날 봐요. 브룩스, 그거 내려놔요. 목을 봐요. 피가 나잖아요.” 브룩스의 날 선 눈빛은 앤디의 애정 어린 몇 마디 문장으로 무너져버린다. “이 길밖에 없어. 난 여기 있고 싶어.” 브룩스는 눈물을 흘리며 칼을 떨어뜨리고 죄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면을 받아 감옥을 나가게 된 브룩스에게 ‘잘 가’라고 인사한 죄밖에 없다는 헤이우드는, 억울해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브룩스가 미쳤다’고 투덜거린다.  

   도대체 얌전하기만 하던 브룩스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죄수들에게 레드는 이야기한다. “브룩스는 교도소에 길들어졌을 뿐이야.” “길들어져?” “감옥에 50년 동안 있어봐. 바깥세상을 전혀 몰라. 여기선 브룩스가 대장이야. 모르는 게 없지. 하지만 사회에선 아무 것도 아냐. 그저 쓸모없는 쓰레기지.” 죄수들은 갑자기 숙연해진다. 감옥의 철책을 바라보며 레드는 말한다. “이 담벼락이 참 웃기지. 처음엔 다들 증오해. 그러다가 차츰 길들어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길들어지는 거야. 그리고 어느 순간 의지하게 되지. 그게 바로 길들어지는 거야.” 형벌의 목적은 정말 인간을 교화하는 것일까. 니체는 형벌이 인간을 계몽할 수 있다는 환상을 믿지 않았다. 형벌은 인간은 단지 ‘덜 위험하게 보이도록’ 길들일 뿐이다. 형벌은 그가 저지른 죄보다 그를 더욱 망가뜨리는 폭력이다. 브룩스는 어느새 형벌의 한가운데서 삶의 희열을 맛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브룩스는 형벌에 완벽하게 길들어진 나머지 형벌이 곧 삶 자체라고 믿게 되었다. 형벌 없는 삶은 삶이 아닌 것이다. 

   감옥을 나가는 브룩스. 그러나 그의 표정은 50년 만에 자유를 찾은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 5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근속했던 회사에서 창졸간에 쫓겨나는 명예퇴직자의 허허로운 표정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져도 다시 시작할 만한 용기도 체력도 친구도 남아 있지 않다. 50년 만에 맞닥뜨린 세상은 너무 빠르고, 너무 매정하고, 너무 무섭다. 브룩스는 그의 유일한 친구들, 죄수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렸을 적엔 차가 드물었는데 이젠 지천에 깔렸다네.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어. 난 가석방자 임시 거처에 기거하고 있다네. 식료품점에서 포장하는 직업도 얻었지. 남들처럼 빨리 하려고 했지만 실수만 한다네. 지배인은 날 싫어해. 일을 마치면 공원에 가서 새에게 모이를 주지. 제이크가 나타나서 인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 벼랑으로 떨어지는 악몽도 꾼다네. 겁에 질려서 깨어나면 때때로 내가 어디 있나 싶어. 도둑질이라도 한다면 나를 쇼생크로 보내주지 않을까? 날 다시 보내주기만 한다면 지배인을 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늙었다네.” 감옥으로 날아온 마지막 편지는 브룩스의 유서였다. 브룩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자살이었지만 50년 동안의 복역 자체가 그를 ‘느린 자살’로 몰아간 것이 아닐까. 레드는 친형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자신의 손으로 묻어주지 못한 친구를 가슴에 묻으며, 앤디에게 말한다. “브룩스는 여기서 죽어야 했어.” 이제는 얼굴조차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동료 브룩스를, 레드는 그렇게 잃어버린다. 

   한편 앤디는 6년 동안 주 의회에 도서 기금을 요청했던 편지의 답신을 드디어 받아낸다. “당신의 거듭된 요구에 도서기금을 동봉합니다. 도서기금 200달러와 더불어 지방도서관에서 헌책과 잡동사니를 보냅니다. 이제 만족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됐으니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마십시오.” 앤디의 편지를 모른 척하고 싶었던 당국은 6년 동안 지치지도 않고 편지를 보내는 앤디의 열정에 항복하고 만다. 간수가 앤디의 성과를 축하하며 6년씩이나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치하하자, 앤디는 말한다. “겨우 6년밖에 안 걸렸어요. 이제는 일주일에 두 통씩 써야겠어요.” 간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 앤디는 주 의회가 보낸 잡동사니 중에서 모차르트의 음반을 발견한다. 그는 언제나 죄수들에게 ‘명령’만 내리던 감옥의 스피커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여인의 목소리를 실어 죄수들에게 띄워 보낸다. 일일 DJ로 변신한 앤디는 간수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까지 걸어 잠근 채 <피가로의 결혼>을 거대한 쇼생크 감옥 전체에 울려 퍼지게 만든다. 난생처음 오페라를, 그것도 감옥의 스피커로 들어보는 대부분의 죄수들은 어리둥절하지만, 그들의 귓속에 울려 퍼지는 것은 단지 낯선 오페라가 아니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형태도 빛깔도 없는 자유의 바이러스가 되어 권태와 침울함에 젖어 살아온 죄수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간수는 물론 소장까지 나서서 앤디 듀프레인의 돌발적인 DJ 활동을 막아보려 애써 보지만, 앤디의 표정은 너무 평화롭고 즐거워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저 아름다운 음악을 닮아 마치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애잔한 목소리로 관객의 가슴을 데운다. “두 명의 이탈리아 여인들이 도대체 무슨 내용의 노래를 불렀는지 저는 이날까지 알지 못합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지요. 굳이 설명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지요.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말로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었지요.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노랫소리는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올라  갔습니다. 이 잿빛 감옥에서는 도저히 꿈꿀 수도 없는 그 어딘가로, 더 멀리, 더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 들어와 우리를 가두던 담장을 허물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주 짧은 한 순간이었지만, 쇼생크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느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죄수들의 심장을 파고든 모차르트는 감옥의 안과 밖을 가르는 족쇄를 산산이 부수고 그들이 미처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비릿한 자유의 향기를 걷잡을 수 없이 퍼뜨린다. 죄수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이 지나쳐온 모든 삶의 과정이 한 순간에 자신을 스쳐가는 듯한 가슴 저린 환상을 만끽한다. 이 음악은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이태리어’라는 ‘언어’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형태도 빛깔도 없는 무형의 메시지로 죄수들의 딱딱해진 심장을 한순간에 녹여버린다. ‘마치 아름다운 새가 한 마리 날아와서, 우리를 가둔 담장을 허물어버린 것 같았다’는 뭉클한 시적 묘사가 태어난 사연.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음악이 할퀴고 간 레드의 심장이 불현듯 꿈틀거린 흔적을, 30년 동안 쇼생크의 벽돌로 살아간 레드가 앓고 있던 영혼의 불감증이 치유된 흔적을 증언한다. 

   
  음악이 모든 사물의 진정한 본질과 맺는 이 친밀한 관계로부터 다음 현상이 설명될 수 있다. 즉 어떤 장면, 줄거리, 사건, 환경에 적절한 음악이 흐르면, 음악은 그것의 가장 은밀한 의미를 해명해주는 것 같고 그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주석을 알려주는 듯한 까닭이 설명된다. 이는 어떤 교향곡이 주는 인상에 완전히 몰두한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삶과 세계의 모든 가능한 과정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개념들은 관조로부터 추상화된 형식, 즉 사물에서 벗겨낸 겉껍질만을 가지고 있어서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음악은 모든 형체들에 앞서 존재하는 내밀한 핵심, 사물의 심장을 제공한다.
           - 니체, 이진우 역, <비극의 탄생>, 책세상, 2005, 1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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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09-1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사는 이 삶이 철창없는 감옥 같다면
나에게 자유의 바이러스는 무엇일까?
오늘은 소주한잔 해야 되겠는데여^^(핑계 참~~암 쉽죠이~~잉)

참, 이슬 2009-09-1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의 글을 보니 갑자기 영롱한 소주의 투명한 자태가 아른거립니다. 딸꾹! ㅋㅋ

sotkfkd 2009-09-2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⑥

 

6.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
 

   고통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혹은 작은 고통에도 쉽게 절망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한 고통을 빨리 없애고자 한다. 고통을 제거해야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인간의 오랜 믿음을, 니체는 거부한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 그는 이미 충분히 존재하는 고통을 더 높은 강도로, 더 힘겨운 것으로 부풀린다. 주어진 위험을 오히려 극대화하는 자, 이미 넘쳐나는 고통을 천 배로 부풀리는 자, 그리하여 불행을 기꺼이 짊어진 채 불행을 샅샅이 해부하고 마침내 불행을 영혼의 창조에 이용하는 용기를 지닌 자, 그가 바로 초인이다. 불행을 피하는 데 급급한 인간들이 추구하는 안락함, 그것은 니체가 보기에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인생의 ‘종말’이다. 현재의 불행은 단지 미래의 고통에 대비하기 위한 예방주사가 아니라, 영혼의 힘을 길러주는 창조적 긴장이다. 고통을 거부하는 자들이 도망쳐 가는 가장 흔한 도피처, 그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아, 형제들이여, 내가 꾸며낸 이 신은 다른 신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에 불과하고 망상에 불과했다. (……) 아무 것도 더 이상 바라지 못하는 저 가련하고 무지한 피로감. 이 피로감이 온갖 신을 꾸며내고 저편의 또 다른 세계를 꾸며낸 것이다. 


- 니체, 정동호 역,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0, 47쪽.

 
   

이 세계가 아닌 저 세계를 강조하며 이 세계의 고통을 합리화하는 사람들, ‘다음 세상에는 천국이 펼쳐질 테니, 지금의 고통을 묵묵히 인내하라’고 외치는 사람들, 너희가 고통스러운 것은 너희의 죄 때문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성경의 등 뒤에 숨어 현재의 속물적인 삶을 합리화하는 사람들. 평일에는 바지런히 타인의 삶 위에 군림하다가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회개’함으로써 그 모든 만행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쇼생크 탈출>의 우두머리 노튼 소장은 그런 인물의 전형이었다. 그는 죄수들의 방을 불시 검열하다가 앤디의 방에 성경이 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흐뭇해한다.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는지 묻는 노튼 소장에게 앤디는 대답한다.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 언제나 ‘그날’이 온 듯이 사는 앤디, 언제나 ‘그날’이 바로 지금인 듯이 사는 앤디에게는 이 문장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노튼 소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말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그는 마치 이 세상의 빛이 자기 자신인 양 거들먹거린다. 자신을 잘만 따르면 마치 저 세상의 천국으로 입장하는 암표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듯. 현실의 삶으로 빛을 만들지 못하는 노튼은 성경의 빛에 의탁하여 도무지 빛나지 않는 자신의 삶을 빛내보려 한다. 사실 노튼의 속셈은 불시 검열을 핑계로 앤디의 의중을 떠보려는 것이었다. 신출귀몰한 세무 능력을 지닌, 과거의 은행 부지점장 앤디의 ‘이용가치’를 고민하는 노튼 소장. 그는 앤디의 방에 있던 성경을 무심코 가져가려 하다가 앤디에게 돌려준다. “이걸 뺏어서는 안 되지. 이 안에 구원이 있으니까.” 카메라는 앤디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성경을 의미심장하게 비춰주고, 앤디의 눈빛은 이날따라 달빛을 비춘 칼날처럼 시리게 빛난다. 성경 안에 있는 구원, 그것은 노튼 소장에게는 ‘말씀의 빛’이었겠지만, 앤디에게는 ‘말씀 이상의 무엇’이었고, 이 비밀은 영화의 후반부에 밝혀진다.


   자신의 재산을 부풀리는 데 앤디를 이용하기로 결심한 노튼 소장은 앤디를 쇼생크 감옥 도서관의 조수로 배치한다. 앤디의 잡무를 덜어주고 좀더 ‘손쉽게’ 앤디를 곁에 두고자 하는 속셈이었다. 도무지 ‘할 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쇼생크 감옥 도서관의 일인 사서이자 관장은 30여 년 동안 ‘죄수들의 독서’를 담당했던 터줏대감 브룩스였다. 브룩스는 30여 년 동안 혼자서 해도 충분했던 이 일에 ‘조수’를 붙여준 노튼 소장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도서관 업무보다도 밀려드는 간수들의 ‘재정 상담’에 바빠진 앤디는 비로소 노튼 소장의 의중을 눈치채기 시작한다. 소장보다 더 잽싸게 앤디의 능력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발 빠른 간수들이었다. 자녀교육 신탁예금을 계획하려는 간수에게 앤디는 묻는다. “아들을 보내고 싶은 대학이 어딥니까? 하버드입니까, 아니면 예일입니까?” 간수들은 앤디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왔지만 감옥의 간수 월급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대학을 금방이라도 보내줄 것만 같은 앤디의 듬직함에 환호작약한다. 이제 간수들은 물론 소장조차도 앤디를 무시하지 못한다. 

   쇼생크의 죄수들은 앤디의 폭발적인 인기를 실감하며 그를 우러러보기 시작한다. “간수가 죄수한테 별 아양을 다 떨더군.” “앤디가 간수들을 아주 가지고 놀았구먼?” 앤디는 털끝만큼도 우쭐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냉정하게 말한다. “난 안 그랬어. 그저 재정 자문을 해 주는 죄수일 뿐이야. 귀여운 강아지지.” 죄수들은 세탁소의 고된 잡무에서 벗어난 앤디를 부러워하며 말한다. “귀여운 강아지니까 세탁소에서도 빼준 건가?” 앤디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 이상이지, 도서실을 확장할거야.”
    그는 언제나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자신의 사용법’을 찾아낸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것처럼 보였던 앤디의 두 눈에는 언제부턴가 은밀한 광채가 돌기 시작했다. 주 의회에 편지를 보내 도서 기금을 요구하겠다는 앤디의 황당한 제안에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찰 뿐이다. 죄수에게 책이 무슨 소용이냐, 그저 당구대나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죄수들. 단지 앤디가 힘겨운 육체노동에서 벗어난 것을 부러워하던 죄수들은 앤디의 마음속에서 이제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한 저 내밀한 ‘꿈의 지도’를 짐작도 하지 못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앤디가 결국 탈옥에 성공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탈옥시키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다. 감옥의 훈육에 길들여지거나, 감옥에서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다치거나 미치는 수밖에 없었던 죄수들에게, 앤디는 이 움쭉달싹할 수 없는 광대한 원룸, 그 어디에도 간수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것만 같은 치밀한 감시체계 안에서도, 우리의 욕망이 꿈틀거릴 수 있는 ‘CCTV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증명한다. 아니, 그는 무엇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무언가를 ‘있도록’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임을 증명한다.
    그는 잃어버린 영토를 찾는 정복자나 탐험가가 아니라 ‘지도에도 없는 영토’를 만들어 내놓고 마치 그곳이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그로 인해 ‘리더스 다이제스트’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빼고는 별로 자랑할 것이 없던 쇼생크 감옥 도서관은 총천연색 문화의 향기가 넘실대는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앤디는 자신이 말 한대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노튼 소장이 말했듯이 답장이 없었습니다. 쇼생크의 간수의 절반은 듀프레인의 손을 거쳤습니다. 일 년이 지나자 소장을 포함해 모든 간수들이 그를 찾아 왔습니다. 체육대회를 핑계로 다른 지역 간수들도 모여들 정도였지요. 그들은 모두 한 해의 세금 공제를 위한 명세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잘나가는 사업이었습니다. 세금 징수기에는 너무 바빠 조수가 필요했죠. 저는 기쁘게도 한  달간은 목공소 일을 쉴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하니 깨어 있으라”라는 성경 구절을 좋아한다는 앤디.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늘,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오늘이 바로 생애 최고의 그날인 듯 살아간다. 노튼 소장도 이 구절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가 늘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주인이 돌아올 날에 대한 노예의 공포 때문이다. 앤디는 단지 주인이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해서 잠도 들지 못하고 간신히 깨어 있는 노예가 아니었다. 그는 주인이 돌아올 때를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하는, 이미 주인의 머리 위에서 주인의 행동 패턴을 읽어내는 자, 주인과 노예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자신의 진짜 삶이 모범이 될 수 없기에 성경의 권위를 참칭해야 존속되는 노튼의 권위. 앤디는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장이 없는 주 의회를 향해, 소장이 여섯 번 바뀌는 동안 단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은 쇼생크 도서관에 도서기금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한다. 몇 년 동안 일주일도 거르지 않고, 답장 한 번 오지 않는 곳에 편지를 보내는 앤디. 초인의 재능 중 가장 모방하기 어려운 것은 어떤 ‘반복’에도 ‘권태’를 느낄 줄 모르는, 지칠 줄 모르는 ‘놀이’의 열정이다. 초인은 똑같은 주사위를 천만 번 던지더라도 매번 다른 표정으로, 매번 다른 마음가짐으로 게임에 임할 것이다.
    똑같은 성경을 어떻게 다르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의 기로가 펼쳐진다. 노튼은 성경을 무기로 성경 뒤에 숨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데 집중하고, 앤디는 성경의 말씀과 함께 성경을 ‘물질’로 이용한다. 앤디에게 성경은 또 하나의 리타 헤이워드였고, 자신의 진짜 자아를 잠시(10여 년 동안!) 은폐하기 위한 영혼의 베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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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 2009-09-14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여울님의 시네필 다이어리의 초반부는 뭐랄까?
철학 속의 영화가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욕망 속에 삶이 있다는 것이죠.
지금의 글쓰기가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영화 속의 철학이 있는 그야말로 철학으로 영화읽기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삶 속에서 작가의 욕망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고
영화를 통해서 철학과 삶이 유리되지 않고
삶의 철학적 통찰을 볼 수 있습니다.

블링블링 2009-09-1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통의 예방주사가 아니라 영혼의 힘을 길러주는 창조적 긴장이라. 니체 아저씨, 늘 어려운 것만 골라 하드트레이닝시키는 영혼의 스파르타 교육 전문가인 것 같아요, 쿨럭....^^

둥이 2009-09-1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여러번 본 영화인데..
다음이 궁굼해지져?
전 아무래도 이번엔 영화에 너무 빠진것 같아여^^

sotkfkd 2009-09-2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⑤

 

 5. 모든 곳이 감옥이다, ‘감각의 한계’에 갇혀 있는 한

   
 

그대처럼 정처 없는 자들은 결국 감옥조차도 행복한 곳으로 여기게 된다. 그대는 일찍이 갇혀 있는 범죄자들이 잠자는 모습을 본 일이 있는가? 그들은 조용히 잠을 잔다.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안전을 즐기는 것이다. 
  

- 니체, 정동호 역,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2, 442쪽.

 
   

   원룸에서는 숨바꼭질을 할 수 없다. ‘원룸’이라는 현대적 공간의 치명적인 단점은,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 침대와 책상(휴식과 노동)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한곳에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밀폐된 동심원적 공간에서는 방 안의 어느 지점에 앉아도 침대와 책상이 동시에 보일 수밖에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시점’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어렵다. 원룸뿐만이 아니다. 하루 종일 ‘디지털 무언족’으로 살아가며 한동안 오직 인터넷만으로 세상과 소통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유비쿼터스의 환상이, 우리를 마치 ‘모든 곳에 존재하는 듯’한 착시를 선물하지만, 감각이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는 한 우리는 스스로 만든 무형의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옥은 단지 죄수들만을 위해 고안된 공간이 아니다. 감각의 한계를 고정시키는 한, 경험과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한, 어디든 쉽게 감옥으로 돌변해버린다.  

   쇼생크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한 죄수들의 특징은, 아마도 그들이 감옥 바깥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감옥에서는 적어도 배를 곯을 일은 없다. 피난민이나 홈리스처럼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감옥 바깥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부자유만 은근슬쩍 간과하면, 감옥은 어느새 편안한 안식처가 된다. 일자리를 걱정하지도,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를 조바심에 떨지 않아도, 다음 범죄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한 ‘수인(囚人)’이 되는 순간은 단지 육체가 감옥에 갇히는 순간이 아니라, 이렇듯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순간, 감옥 안의 ‘제한된 공간’에서 나름대로의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다.   

  

   
 

감옥에서. ― 내 눈이 지금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나는 아주 가까운 거리밖에 보지 못한다. 내가 활동하고 사는 공간은 이렇듯 작은 곳이다. 이 지평선이 크고 작은 직접적인 내 운명을 규정하고, 나는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그 자신에게 특유한 하나의 원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 원에는 중심이 있다. (……) 그리고 우리는 평균적인 인간의 삶을 척도로 다른 모든 피조물들의 삶을 측정한다. (……) 우리의 감각기관이 갖는 습관으로 인해 우리는 감각의 거짓과 기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 감각기관들이 다시 우리의 모든 판단과 ‘인식’의 기초가 된다.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제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뒷길로 샛길도 없다! 우리는 자신의 그물 안에 갇혀 있다. 우리들 거미는 이 그물 안에서 무엇을 붙잡든 바로 우리의 그물 안에 걸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다. 


- 니체, 박찬국 역, <아침놀>, 책세상, 2004, 135쪽.

 
   
   대부분의 죄수는 감옥 생활에 다만 ‘적응’하려 한다. 이미 적응된 사람은 적응을 뛰어넘어 감옥 생활에 애착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런데 앤디는 뭐가 그리 바쁜지 머릿속으로 늘 딴생각을 하고 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도 그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 그는 주어진 노동만 간신히 해내기도 바쁜 다른 죄수들과 달리, 틈만 나면 없는 일도 굳이 만들어낸다. 간수 하들리의 골치 아픈 유산 상속 문제를 해결해준 이후로 그는 감옥 안에서 인간-은행이자 인간-세무서가 된다. 하들리의 입소문 마케팅 덕분에 그는 주변 간수들의 모든 세금 환급을 담당해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뿐만 아니라 신참 죄수 토미를 가르쳐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하며 감옥을 ‘학교’로 만들기도 하고, 있으나 마나 했던 유명무실한 도서관을 갈고 닦아 감옥 안의 멋진 문화 공간으로 만들기도 하며, 광활하고 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던 감옥 전체를 멋진 음악 감상실로 만들기도 한다. 그는 감옥 안의 기계적 배치를 바꿈으로써 완고하기 그지없던 감옥이라는 기계적 공간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욕망이 꿈틀대는 역동적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그렇게 그는 감옥에서조차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시험한다. 그는 감옥을 마치 감각의 한계를 확장하는 실험실처럼 사용한다. 그는 늘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내며,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고착된 대상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그는 레드를 ‘친구’로서 아끼지만 레드에게 끈끈한 연민을 느끼지 않으며, 동료를 존중하지만, 그들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감옥이라는 밀폐된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 그로 인해 쇼생크 감옥은 점점 ‘최초의 사건들’로 가득해 진다. 그가 사는 곳은 어느새 ‘단지 감옥’이 아니게 된다. 그는 어떻게 하면 감옥 안의 욕망의 배치를 바꿀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실천한다. 그리고 무슨 속셈인지 그는 지질학까지 연구한다. 주어진 감각의 경계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취미를 찾아다니는 앤디의 열정. 그것은 그의 경이로운 미래를 예언하는 정교한 복선이다. 

   앤디는 레드에게 체스를 가르쳐주겠다며 체스판을 구해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체스판은 살 테지만 체스의 ‘말들’은 손수 깎을 것이라는 계획도 들려주며. “남는 게 시간이잖아요. 돌이 없어서 문제죠. 돌은 많은데 쓸모없는 것들뿐이잖아요.” 돌의 종류를 일일이 설명해주며 암석 전문가의 기질을 보이는 앤디. 속을 알 수 없는 앤디의 독특한 취미가 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레드는 앤디를 아끼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언제든 새로운 일을 벌이는 앤디로 인해 감옥 생활이 더 이상 권태롭지 않기에. 하루는 레드가 영화 <길다>의 눈부신 히로인 리타 헤이워드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데 앤디가 다가와 어이없는 부탁을 한다. 바로 저 여자, 리타 헤이워드를 구해달라고. 모든 물품을 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레드는 앤디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는다. 몇 주 걸릴 테니 기다려보라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죄수들의 영화상영관을 나오던 앤디를, 또다시 보그스 일행이 급습한다. 앤디는 주변의 모든 기물을 이용해 저항한다. 치욕스러운 포즈를 원하는 보그스의 비열한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앤디는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을 보호한다. “보그스는 그날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당도 마찬가지였죠. 앤디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때리기만 했습니다. 듀프레인은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죠. 보그스는 일주일간 독방에 갇혔습니다.” 뜻밖에도 앤디의 자원봉사에 힘입어 거액의 유산을 챙긴 하들리가 보그스를 처절하게 응징한다. “그 후로 녀석들은 더 이상 듀프레인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보그스는 못 걷게 됐죠. 병원으로 이송되어 평생 빨대로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앤디로 인해 한낮의 야외 맥주라는 기적을 선물 받은 레드와 친구들은, 그동안 앤디를 도와줄 수 없었던 죄책감까지 더해져, 곧 퇴원할 앤디의 환영 선물을 마련한다. “앤디가 체스를 좋아하니까 돌을 구해주자고.” 말똥과 돌도 구분 못하던 죄수들은 레드의 지휘 아래 앤디가 평생 깎아도 남을 엄청난 돌들을 무더기로 구해다 준다. 가만히 있어도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였던 ‘귀공자’ 앤디는 드디어 동료의 진정한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이윽고 레드가 감옥 안의 죄수들을 위해 준비한 물품들이 도착한다. 담배, 껌, 위스키, 여자 나체 무늬의 카드……. 그 중 가장 중요한 물품은 바로 앤디가 부탁한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였다. 앤디는 보그스 일당의 상습적인 폭행 속에서도 삶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존엄을 잃지 않았다. 이제 감옥은 앤디에게 더 이상 굴욕의 공간이 아니다. 앤디는 철통같은 감옥의 질서에 크고 작은 균열을 내어 감옥을 때로는 축제의 공간으로 때로는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역전시킨다. 게다가 앤디에게는 새로운 애인(?)까지 생겼다. 레드가 구해다 준 아름다운 리타 헤이워드는 마치 구원의 여신처럼 앤디의 감방을 화사하게 밝혀준다. 저 리타 헤이워드의 탐스러운 육체 뒤에 아무도 모를 앤디의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있었던 것이다. 침대와 변기밖에 없는 초라한 단칸방에 수십 년간 갇혀 산 앤디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비밀의 방들’이 존재했고, 그 누구도 앤디의 ‘뇌 구조’를 쉽게 밝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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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09-1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인생에 리타 헤이워드는 무엇일까?(퀴즈입니다)

예인 2009-09-1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생크 탈출의 서사구조와 빠삐용의 서사구조가 유사합니다. 감옥이란 공간 배치가 그렇고 불가능한 감옥의 탈출이 그렇지요. 빠삐용도 감옥의 친구 드가가 나오지요. 같이 비교하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lost memories 2009-09-14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퀴즈 내신 분! 답은 안 써주시는 건가요?^^ㅋㅋ 저는 사회적으로 노출되는 제 삶 자체가 리타 헤이워드인 것 같아요. 리타 헤이워드 뒤에 감춰진 검은 구멍, 그곳에 아마도 진짜 내가 뒹굴뒹굴 웅크리고 있을텐데 그게 누구인지 아직도 찾고 있는 중.....

둥이 2009-09-14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내 인생의 리타 헤이워드는?
아마도 지금 집에서 찡찡거리는 제 아이가 아닐까여^^
그 아이를 보면서 저도 새로운 나를 찾아가고 있으니까여^^


sotkfkd 2009-09-20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