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색, 계〉와 롤랑 바르트 ⑦

 

4. <색, 계(Lust & Caution)> : 욕망과 금지의 끝없는 이중주


   욕망과 징계는 언제나 커플처럼 붙어 다닌다. <색, 계>의 영어 제목은 “Lust and Caution”이다. 이 제목은 직설적이면서도 암시적으로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명징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Lust’라는 단어를 보며 채워지지 않는 은밀한 열망을 떠올리고 ‘Caution’이라는 단어를 보며 욕망에 천형처럼 따르는 가혹한 징계를 떠올린다. 영화 제목처럼 그들의 삶은 끊임없는 욕망과 경계, 열망과 경고, 정욕과 징벌의 반복으로 점철된다. 그들은 더없이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후에도 “이러다 들키겠어요”라며 에로틱한 분위기를 삽시간에 깨버리는가 하면, 오랫동안 서로를 목마르게 그리워했으면서도 막상 만나면 “앞으로 다신 이 방에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차갑게 뇌까린다. 그들은 조금씩 서로에 대한 ‘경계(caution)’를 풀면서 자신들의 숨김없는 ‘욕망(lust)’의 맨얼굴과 만나게 된다. 

   처음에 그는 그녀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는 그녀를 열망해왔으면서도 마치 열정에 빠진 자신을 저주하듯 그녀의 몸을 학대한다. 이 위악적인 제스처 속에 그의 철벽같은 영혼을 침식하는 균열이 시작된다. 그는 최대한 그녀에게 ‘악한’이 됨으로써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공포를 도착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녀의 성기를 통해 들어온 그 남자는 그녀의 눈을 통해 다시 아름답게 반사된다. 그는 폭력으로 그녀를 장악하여 그녀의 영혼을 피 흘리게 했지만, 그의 폭력에 화답하는 그녀의 시선은 이상하게도 애틋하다. 그는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갈 때 그의 영혼도 함께 두고 온 것을 깜빡 잊어버린다. 그녀의 성기를 통해 들어간 그의 영혼은 그녀의 몸을 관통하여 온몸의 혈관과 세포로 번진 후, 다시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통해 그를 향해 따스한 빛을 뿜어낸다. 이제 그녀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그를 사로잡은 듯한 당당함으로 그를 가진다. 무력한 사냥감처럼 그의 일방적인 욕망에 희생당했던 그녀는 처음 만나는 욕망의 용광로에 스스로 달아올라 자신도 모르게 사랑의 제의를 리드하기 시작한다. 
   철두철미한 계율로 욕망의 비상구를 겹겹이 틀어막고 있던 두 사람은 ‘계’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색’의 임계점을 발견하는 순간 끝내 완전한 사랑에 빠지고 만다. 첩보원 왕 치아즈의 마지막 미션은 그를 암살 예정 공간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첩보원 왕 치아즈의 명령을 사랑에 빠진 막 부인은 거역한다. 막 부인의 간절한 욕망을 왕 치아즈의 연약한 징계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암살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 이 선생은 그녀에게 너무 반짝거려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반지를 선물한다. 죄책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엄습하자 반지를 빼내려는 그녀에게 이 선생은 말한다. “그대로 끼고 있어.” 반지 낀 그녀의 손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따스하다. “이렇게 귀한 걸 끼고 거리로 나가기 두려워요.” 이 선생은 어느새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바싹 다가와 속삭인다. “내가 지켜줄게.” 이렇게 달콤한 언어는 천하의 냉혈한 이 선생에게서 좀처럼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순간 그녀는 그들의 완전한 사랑을 가로막던, 아직 찾지 못한 마지막 퍼즐의 한 조각을 발견한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로소 그의 진정을 알아버린 그녀는 계율을 이탈한다. “어서…… 가요! 어서!” 그 순간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굳어진다. 암호처럼 은밀한 그녀의 속삭임에 담긴 수천 가지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 그는 빛의 속도로 도망친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4년에 걸친 기나긴 첩보 게임은 허망하게 끝난다.
   그녀가 속했던 항일운동 조직은 일망타진된다. 그는 본래 냉혹한 승부사였으므로 망설임은 없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진짜 이름을, 그녀의 죽음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처음으로 알게 되는 이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당혹스럽다. 왕 치아즈. 그가 한 번도 엿보지 못한 그녀의 내면이 순식간에 한 화면에 펼쳐진다. 그의 부하는 왕 치아즈의 행적을 소상히 보고한다. “모두 여섯 명의 대학생들로 과거 홍콩에서 애국 극단에 참여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왕 치아즈. 홍콩 대학의 연극으로 신문에도 났었습니다.” 그는 분노보다도 더 큰 상실감에 절망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그 절망을 누설할 수 없다. 부하는 그녀가 갖고 있던 ‘반지’를 내놓으며 전리품을 수거한 병사처럼 말한다. “선생님 반지입니다.” 그 순간 간신히 가장된 아슬아슬한 평정은 무참하게 박살난다. “내 거 아냐!” 

   “내 거 아냐!”라고 울부짖는 날카로운 목소리에서 수없이 다양한 의미들이 뿜어져 나온다. 서로 모순되지만 모두 저마다 뜨거운 사실인, 다채로운 의미의 스펙트럼이 쓸쓸하게 흩뿌려진다. 그는 화면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의 눈은 모든 것을 말한다. 그 반지는 나와 상관없어. 내가 그녀에게 준 것이니 내 것이 아니야. 너희들이 함부로 손댈 수 있는 반지가 아니야. 이런 방식으로 돌려받아서는 안 돼. 나는 이 반지가 아니라 반지를 낀 그녀의 손이 보고 싶었어. 이 반지는 살아 있는 그녀의 것이야……. 그녀를 위해 반지를 준비하던 그때는 몰랐다. 그 반지가,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랑의 표식이, 채 24시간도 안 되어 죽음의 풍크툼이 되어 그의 삶을, 그가 믿었던 온 우주를 파열시키는 독화살로 변해버릴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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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만 2009-07-24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단순히 야한 영화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깊은 뜻이;;

adam-_- 2009-07-24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뭐, 나는 영화를 안 봐서... 그냥 읽는 데도 재밌네.

낙하산을타는곰돌이 2009-07-24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욕망과 징계라고 하니까 여자친구랑 머리 터지도록 싸우던 과거의 내가 생각나는 1人.

꼬마요정 2009-07-2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 치아즈가 죽고 막 부인의 방에 홀로 앉아 있던 이 선생이 생각납니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요. 그러니 자기 부인에게 막 부인은 멀리 떠난 거라고 둘러대고 그림자 비치는 그 방 침대에 앉아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죠..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elluardlove 2009-07-2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먹하게 얽혀드는, 스스로 자초한 애증 같은 감정이 인상적인 영화였어요.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농밀하게 몸부림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sotkfkd 2009-09-1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영화 〈색, 계〉와 롤랑 바르트 ⑥

 

3. 세번째 풍크툼 :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Nobody loves me) <2>


   그녀에게는 이제 아무도 없다. 오직 그녀의 암살 대상이자 마지막 사랑, ‘이 선생’뿐이다. 그녀는 우 선생에게 고백한다. 자신은 이제 연극과 현실을 구별할 이성을 잃어버렸다고. “그는 제 몸뚱이뿐 아니라 한 마리 뱀처럼 제 마음속까지 파고 들어옵니다. 매번 더더욱 깊숙이……. 매번 그는 제가 절정에 몸부림 치고 울부짖게 해야만 비로소 안심하고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합니다. 그 어둠 속에서……. 그만이 제 감정이 진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우 선생은 ‘첩보원답지 않은’ 그녀의 아마추어적 정직함에 놀라 그녀의 고백 자체를 거부한다. “됐다! 그만해라!”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고백은 너무 솔직해서 소름이 끼치고, 너무 투명해서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저 역시 진이 다하고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그를 원하게 되는 겁니다. 그의 몸에 힘이 빠지는 그 순간, 난 당신들이 쳐들어와 그를 향해 총을 쏘고 그의 피가 내 몸에 흩뿌려지는 것이 옳은 일인지, 갈등하게 된단 말입니다.” 그녀의 처절한 고백은 허공의 메아리로 흩어지고 만다.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한 고백은 안타까운 메아리가 되어 그녀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것은 왕 치아즈가 막 부인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였고, 이제 막 부인이 되어버린 왕 치아즈가 죽을 때까지 솔직해질 수 없는 자신의 암살 대상 이 선생에게 하지 못한 고백이었다.
   그녀는 이 순간 연극과 현실을 완벽하게 일치시킨 것이다. 아폴론의 사랑을 끝까지 거부하다 월계수가 되어버린 다프네처럼 타인의 사랑을 거부하던 그녀가, 이제 어떤 희망도 보상도 없는 사랑에 전 존재를 걸게 된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투명한 진실의 화살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견고한 인식의 장벽을 관통해버린 것이다. 이제 그녀는 두렵지 않다. 더 이상 외롭지도 않다. 내가 그를 진정으로 원한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막 부인의 사랑을 지킬 것이다. 그녀의 사랑을 공격하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맞서서. 
 
    종기처럼 나의 사랑은 곪아
    이제는 터지려 하네.
    메스를 든 당신들.
    그 칼 그림자를 피해 내 사랑은
    뒷전으로만 맴돌다가
    이제는 어둠 속으로 숨어
    종기처럼 문둥병처럼
    짓물러 터지려 하네.

   - 최승자, 「이제 나의 사랑은」,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49쪽.

   그녀는 그를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완벽한 첩보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연기력의 카탈로그에는 굳이 포함되지 않았던, 그녀만의 자발적인, 진솔한 즉흥연기를 시작한 것이다. “북쪽 고향의 산을 바라보니 눈물이 내 옷깃을 적시고. 소녀 여전히 그대를 그리오이다. 낭군이시여. 환난 속 사랑은 더욱 깊으리오. 낭군이시여. 환난 속 사랑은 더욱 깊으리오. 소녀가 실이 되고 낭군께서 바늘이 되면. 우린 영원히 함께 하리이다.” 이 순간 두 사람은 손을 잡는다. 이 선생의 눈에 언제나 면면히 흐르고 있었던 잔혹한 살기와 섬뜩한 냉기가 어느덧 사라지고,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는 더 많이,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만이 가득하다. 그들의 첫 관계처럼 폭력적인 섹스가 아니라 다만 가만히 손을 잡는 것만으로 이들에게는 완전한 소통이 시작된다.  

   “오늘은 그냥 가지.” 굳이 밤을 함께 보내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서로 ‘통’했다. 묘하게 연극적이고 유치하면서도 어떤 도덕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그녀의 무구한 동심이 담뿍 담겨 있는 이 노래는 섹스보다 따스하게 그의 마음을 녹여준다. 아무도 엿보지 못한, 거대한 만다라의 현란한 문양처럼 복잡하게 꿈틀거리는 그녀의 마음을 엿본 유일한 사람은 이 선생이었다. 그들이 손을 잡는 순간, 더 이상 섹스 없이도 사랑할 수 있게 된 순간, 그녀는 공포와 절망과 고독을 한꺼번에 떨쳐냈다. 그녀가 사랑했던 그의 손은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주는 가여운 안식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내려서 적셔주는 가여운 평화

   - 최승자, 「사랑하는 손」,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73쪽.

   그녀는 이제 나약하지 않다. 평생 동안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빈방에 갇혀 있던 왕 치아즈는 이제 외롭지 않다. 그녀를 빈방에 가둔 것은 그녀 자신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망상의 벽돌로 지어진 견고한 영혼의 성벽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강력한 믿음의 다이너마이트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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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2009-07-22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출석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연재하던 '이끼'를 손꼽으면서 기다렸는데 또 다른 읽을 거리를 찾은 것 같아 기쁩니다. ㅎㅎ

블레이드러너 2009-07-23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풍크툼! 어려운 개념인 것 같은데, 여울님의 글 때문인지 왠지 금새 정감이 가는 단어가 됐네요. 저도 한 번 다른 곳에 사용하고 싶네요. 풍, 크, 툼!

두근두근 2009-07-2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상하게 글로 읽으니까 더 애틋하고 절절하게 느껴진다능..-ㅅ-;;

모범생 2009-07-2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다보니 색계 영화를 보고 짠했던 마음이 되살아나네요..'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라는 강력한 믿음의 다이너마이트라.. 멋진 표현인 것 같아요! 연재 잼있게 보고 있습니다^^ 화이팅!

신안 2009-07-2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색계 영화를 봤었는데 이렇게 글과 함께 다시 보니 더욱 진한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훗 ㅡㅅㅡ 2009-07-2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연재 잘 보고 있답니다. 계속 건필해 주세요. ^^

2009-07-2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문단 정말 마음에 와 닿네요. 다음회 손꼽아 기다립니다~

시네필짱 2009-07-2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살짝 민망해서 너무 정확하게 발음해버리는 것에 대해서
그는 제 몸뚱이뿐 아니라 한 마리 뱀처럼 제 마음속까지 파고들어옵니다. 매번 더더욱 깊숙이. 매번 그는 제가 절정에 몸부림 치고 울부짖게 해야만 비로소 안심하고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합니다. 그 어둠 속에서... 그만이 제 감정이 진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요.
라는 대사는
이선생이 아니라도 가만히 듣고 있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남자와 여자 사이에
더 이상 섹스 없이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올까요?

sotkfkd 2009-09-1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 부분을 읽어 내려오니 퍼뜩 떠오르는 나의 시인 '기형도' 그의 시 '빈 집'
잘 읽었습니다.
 

 


영화 〈색, 계〉와 롤랑 바르트 ⑤

 

3. 세번째 풍크툼 :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Nobody loves me) <1>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굳게 믿었던 여자의 첫사랑. 그것만큼 위험하고도 순수한 열정이 있을까. 영화 <파니 핑크>의 원제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Keiner liebt mich)”이다. 파니 핑크는 “서른 넘은 여자가 남자를 만날 확률은 원자폭탄을 맞는 것보다 어렵다”는 독설을 어쩔 수 없이 믿게 되어버린 쓸쓸한 스물아홉 싱글이다. 그녀는 연애는 해봤지만 사랑에는 결국 실패했다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사랑을 꿈꾸지만 ‘친밀해진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떨쳐내지 못한다. “당신이 실망할까 겁나요. 섹스에 있어서 난 좀 바보예요. 시간이 필요해요. 머리가 방해하거든요.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게 돼요. 냉장고에 남아 있는 우유의 유통기한이나,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얼마나 돌려받을지, 아니면 발 냄새가 나진 않을지. 내 모습이 지금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죠. 내가 너무 무겁지 않나 신경 써야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단 얘긴 아녜요. 오히려 그 반대죠.”

   그녀는 사랑을 나눌 때조차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한다. 관객은 그녀에게 무슨 특별한 결격사유가 있는 것일까, 요모조모 관찰해보지만 오히려 그녀는 지나치게 멀쩡하다. 그녀가 영화 초입에 툭 내뱉는 대사가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그녀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이 아닐까. “나 자신도 날 사랑하는 건 힘들 것 같아요.” 그녀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진짜 문제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피해망상으로 은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웃집 남자인 심령술사 오르페오는 그녀에게 손금을 봐주겠다며 장난스럽게 접근한다. 운명의 남자를 점쳐준다 호들갑을 떨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진정한 솔메이트가 된다. 가난과 질병, 고독과 차별로 황폐해진 오르페오의 영혼은 너무도 티 없이 건강하다. 그는 과거에 붙들리지 않고 미래에 주눅들지 않는 영혼이다. 죽어가는 오르페오의 사랑보다 깊은 우정은 아프지 않은데도 늘 아프다고 믿는 파니 핑크의 가녀린 영혼을 따스하게 감싸준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생일이 될 거라 믿었던 서른살 파니 핑크의 생일, 오르페오가 립싱크한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아니,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는 그녀의 그늘진 영혼을 밝히는 영원한 빛이 되어준다.
   하지만 우리의 막 부인, 아니 왕 치아즈에게는 <파니 핑크>의 오르페오처럼, 사랑이 떠나가도 사랑보다 더 짙은 우정을 선물해주는, 그리하여 사랑의 ‘대상’이 없이도 사랑 그 자체를 저절로 알게 해주는 다정한 멘토가 없다. 사는 내내 빈방에 갇혀 있는 듯 쓸쓸해 보였던 왕 치아즈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거나 ‘누군가 날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여자는, 심하게 둔하다. 이 선생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인(sign)을 여러 번 보내지만 자신의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 그녀는, 그리고 아무도 사랑해본 일이 없는 그녀는 좀처럼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이 여자는 더욱 위험하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그 어떤 사랑도 진정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그 모든 관계를 향한 열망이 ‘한 남자’에게로 투사될 위험 말이다. 그녀 곁에는 오직 그녀를 살인공작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조직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미 이 선생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그녀에게는 희미한,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버린 첫사랑 광위민의 뒤늦은 고백도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통조림이다. 뒤늦게 사랑을 느낀 광위민은 그녀에게 키스하지만 그녀는 그의 몸을 조용히 밀어내며 말한다. “왜 3년 전에 그렇게 하지 않았어?”
   광위민은 이제야 그녀를 도우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그들을 좌지우지하는 조직은 너무 완고하다. 광위민은 항일 조직의 브레인 격인 우 선생에게 왕 치아즈를 그만 작전에서 빼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녀는 정식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장기간의 압박은 버텨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 선생은 그녀의 이용 가치만을 생각한다. “왕 치아즈가 정말 잘해줬어.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해.” 우 선생은 왕 치아즈를 칭찬하기까지 한다. “왕치아즈의 강점은 자신이 첩보원이란 의식을 지우고 막 부인이란 배역과 혼연일체가 되었다는 거네.” 우선생은 알지 못한다. 이제 첩보원 왕 치아즈는 사라져가고 사랑에 빠진 막 부인만이 남았다는 것을. 그녀는 배역과 혼연일체가 된 나머지 현실로 돌아오는 출구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어엿한 운동가로 성장한 광위민은 그녀를 구하고 싶다. “지금 그녀가 얼마나 위험한지알고 계십니까? 그녀는 이미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이젠 우리가 행동할 차례란 말입니다.” 그러나 우 선생은 광위민보다 더 처절하게, 이 선생을 효과적으로 암살하여 조직의 더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야 할 의무를 강조한다. “놈은 내 아내와 내 두 자식들을 죽였지만 난 놈과 식탁 하나를 두고 식사까지 했다. 이게 바로첩보원이다! 나보다 더 놈을 죽이고 싶은 사람은 없어. 놈의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난 놈을 조금 더 살려줄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저마다의 절실함을 주장할 때, 승자는 더 큰 권력을 가진 자일 수밖에 없다. 우 선생은 개인적 복수심과 조직의 안녕이라는 커다란 대의에 자신의 삶을 종속시킨 사람이기에 조직원의 ‘하찮은 사랑놀음’ 따위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그녀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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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객 2009-07-2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치명적 사랑, 치명적 글 쓰기. 늘 들어와 열독하고 있습니다. '색, 계', 그리고 다음에 인용될 영화와 그 안에서 읽어낼 철학 텍스트도 궁금합니다. 응원합니다.

파니핑크 2009-07-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니핑크와 색계 모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울림이 있었던 영화입니다. 작가님을 통해 들으니 더 반갑고 좋으네요~~

파니핑크 2009-07-22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파니핑크도 봐야겠어요. 봐야하는 영화 목록이 계속 늘어나네요.

astromilk 2009-07-2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본 두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하는 글이네요.

바이런 2009-07-2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재밌어요T_T 사랑할 대상이 없어도 사랑을 깨닫게 해주었던 오르페오. 그랬던거군요, 그래서 <파니핑크>도 그렇게 뭉클했던거군요.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sotkfkd 2009-09-1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경험입니다.
 

 


영화 〈색, 계〉와 롤랑 바르트 ④

 

3. 두번째 풍크툼 : 나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사에서 가장 의심 많고 이기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주인공 멜빈(잭 니콜슨)을 떠올린다. 결벽증과 강박증을 함께 앓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심각한 자기예찬증(?)을 앓고 있는 멜빈은 ‘타인의 삶’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 욕망 외에는 철저히 타인에게 무관심한 그는 늘 같은 식당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음식을 오직 자신이 휴대하는 포크와 숟가락으로만 먹는다. 늘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으면 그를 윽박질러 잔인하게 쫓아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이 만든 동굴 속 세상에서 군림하던 외톨이 황제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자 휘청거린다. 

   옆집 남자의 애완견이 복도에서 오줌을 눴다며 그 연약한 강아지를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던 철면피 나르시시스트 멜빈. 그렇게 만인의 노여움을 샀던 멜빈의 한일자로 굳어 있던 입술에서 간신히 터져 나온 사랑 고백은 전 세계 영화 팬들의 마음을 달달하게 녹여주었다. “당신 때문에 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소.(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오랫동안 입 속에 머금은 채 좀처럼 삼키고 싶지 않은 사탕처럼, 아릿하게 달콤했던 이 고백은 멜빈 인생의 ‘비포 앤 애프터(Before & after)’를 가로지르는 결정적 경계선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인의 삶’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수없이 넘어진다. 하지만 흉터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 상처로 인해 우리는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삶의 다채로운 풍경과 맞닥뜨리곤 한다. 우리가 타인의 삶이라는 지뢰를 밟고 넘어져 허우적거릴 때 땅바닥을 더듬거리는 손을 잡아 조용히 일으켜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밟아버린 타인의 삶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인생의 경로가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매일매일 부딪히는 타인의 삶이 없다면 우리의 삶 또한 평생 막다른 골목길 안에서만 뱅뱅 도는 기약없는 미로찾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변함없이 안전한 런닝머신 위에만 놓여 있는 삶. 타인의 삶에 묻어 있는 걱정과 손해라는 바이러스가 혹시 나에게 옮을까 두려워 그 어떤 타인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던 멜빈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콜슨이 아무리 자기중심적이라 해도 <색, 계>의 양조위만큼은 아니었다. 천하의 잭 니콜슨도 <색, 계>의 양조위만큼 경계심이 많지는 않았다. <색, 계>에서는 친일 관리로 등장하는 이 선생(양조위)의 곁에 미인계로 접근했다가 가차 없이 목숨을 잃은 여자들이 있을 정도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와 흔적에 삼엄한 거짓말탐지기를 갖다 댄다. 이 선생이 자신의 까다로운 취향에 꼭 맞는 옷 가게를 소개해준 막 부인에게 고마움을 표하자 막 부인은 “별일 아닌 걸요”라고 예의 바르게 인사한다. 이 선생은 막 부인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꿰뚫을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한다. “이 세상에…… 별거 아닌 일은 없소.”
   항시적 살해위협에 노출된 이 선생에게는 세상 모든 인물과 사건, 사물이 하나하나 더없이 예민한 기호와 상징으로 보인다.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후 며칠 동안 홀연히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다급해진 막 부인은 묻는다. “난징에 갔다 오셨다면서요?” 그는 겨울산의 암벽처럼 차갑게 대답한다. 언제 우리가 사랑을 나눴냐는 듯이. “귀에 들린다고 다 믿지는 마.” 그는 타인을 믿지 않듯이 그녀도 자신을 믿지 못하도록 자신의 주위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드리운다. 그러나 발군의 두뇌와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수많은 암살 계획을 낱낱이 밝혀낸 이 선생조차도 ‘그녀의 마음’이라는 난해한 상형문자를 해독하지는 못한다. 그를 사랑하게 될까 봐 두려우면서도 그를 죽여야 한다는 강박 속에 하루하루 가혹한 불면에 시달리는 그녀의 마음을.
   그러나 그는 그녀를 만나면서 처음에는 그녀의 몸을, 나중에는 그녀의 영혼을, 결국에는 그녀의 모든 것을 원하게 된다. 그는 그녀와의 밤만이 아니라 그녀와의 대화를, 그녀와의 남모르는 교감을 원한다. 이제 그에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가장 큰 고통이다. “당신을 기다리는 일로 나를 고문하는 중이야.” 그는 그녀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쏘아버린 ‘진심’이라는 뜨거운 화살에 맞아 비틀거린다. 계엄군에게 쫓기는 게릴라처럼 은밀하고 급박하게 이루어지는 섹스만으로는 그녀의 사랑에 화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것일까. 그는 이제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자 한다. 어떤 시스템도, 어떤 금기도 틈입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만의 ‘비밀’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그는 그녀에게 명함을 주며 누군가를 찾아가보라고 말한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라고 속삭이며. 아무도 믿지 않던 이 남자가 오직 이 여자만을 믿고 오직 이 여자만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기 시작한다. 그가 믿었던 세계의 투명한 장막이 찢어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시시콜콜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선연한 상처의 틈새로 온전히 교감했다. 그리하여 나와 너 사이에 놓여 있던 삼엄한 경비장치는 스스로 무장해제되고 말았다.   

   바르트는 텍스트가 명징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환상과 싸웠다. 또한 가면과 내면을 분리시킬 수 있다는 신념과 싸웠으며, 육체와 정신을, 표정과 욕망을 분리시킬 수 있다는 환상과 싸웠다. 마침내 그는 사랑에 빠진 너와 나를 분리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파괴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타자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오만과 결별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영원히 닫혀 있을 것만 같았던 타자의 내면, 그 견고한 빗장은 열리기 시작한다. 무진장 어렵지만 의외로 쉬운 일이다. 우리가 짐작하는 그곳에 그가 항상 머물고 있다는 환상, 우리가 의도하는 그곳에 그녀가 얌전히 존재한다는 환상과 작별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네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있다.”(바르트의 <신화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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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2009-07-20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는것보다 더 잼있네요 ^^

고등어 2009-07-20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벌써 4회가 휙 지나갔네요. 주말을 기다리느라 넘 힘들었답니다..ㅋ 한 주 동안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책든손귀하다지만 2009-07-2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글이 올라오기 전에 <색, 계>안에서 세번째 풍크툼은 뭔지 맞춰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ㅋ

2009-07-20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tkfkd 2009-09-1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네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다.나는 네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있다.
오 마이 갓!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도 아닌 것을, 나는 내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곳에 있던 것을!
잘 읽었습니다.
롤랑 바르트도 다시 읽어야 되겠네요. 그런데 '카메라와 루시다', 절판! 한 번 언뜻 하는 방법으로 읽었는데. 헌책방을 두루 뒤져야 되겠네요.
 

 


영화 〈색, 계〉와 롤랑 바르트 ③

 

3. 첫번째 풍크툼(punctum) : 낭만적 나르시시즘의 세계가 파열되다


   이 선생의 의심 많은 성격 때문에 두 사람의 밀회는 더없이 스릴 넘치는 두뇌 게임처럼 급박하게 진행된다. 막 부인이 이 선생을 옷가게로 유인하여 두 사람이 첫번째 밀회를 갖게 되는 날. 그녀가 자신의 사이즈에 맞게 고친 옷을 갈아입고 커튼을 살짝 밀며 이 선생 앞에 나타나는 순간. 관객들은 짧고 덧없는 한숨을 쉰다. “고치니까 너무 붙네요. 숨이 막힐 지경이예요.” 그녀가 딱 달라붙는 옷에 숨 막혀 하는 동안, 관객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힌다. 장 지아즈가 아닌 막부인의 매력에 사로잡힌 관객의 시선은 정확히 이 선생의 것이기도 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마치 금방이라도 어둡고 깊은 밀실로 그녀를 유인할 듯이 탐욕스럽고 색정적이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으려 하자, 그는 명령하듯 쏘아붙인다. “그냥 입고 가시오!” 막 부인과 함께 마작을 하며 친분을 쌓던 상류층 부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자마자, 이 선생의 노골적이고 격정적인 눈빛이 그녀의 몸 위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이 위태로운 연극이 끝난 후 돌아와 쉴 수 있는 백스테이지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위민이 이끄는 암살단이 성공적인 조직이었다면, 그녀가 무대 뒤편으로 돌아와 ‘장 치아즈’가 되어 쉬는 동안 그녀는 신뢰와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조직원들은, 그녀를 동지가 아닌 이방인으로 취급하며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그녀가 ‘적과의 동침’을 해야 할 임무를 맡았기에 그녀의 연극은 연극으로만 비춰지지 않는 걸까. 처음부터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걸어야 했다. 이 선생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그녀는 불안해한다. 그에게서 또 한 번 전화가 온다면, 그녀는 그의 불륜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녀는 ‘첫 경험’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질문한다. “어떻게 하는지 알아? 남녀간의…… 그거…….” 그런데 친구들, 아니 조직원들의 표정이 이상하다. 그들은 이미 ‘합의’가 된 상태인 것 같다. “경험자는 량룬셩 뿐이야.” “창녀하고?” 그녀는 암살대상과 섹스를 나누기 위해 자신의 순결을 턱없이 엉뚱한 남자에게 넘겨주고 만다. 이제 그녀는 이 선생을 유혹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 철부지 암살단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분명히 여섯 사람 모두 동의한 임무 수행을 위해 그녀는 몸을 던졌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왠지 불편하게 서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즈음 이선생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내일 상하이로 떠난다고. 청천벽력이다. 이제 이 선생을 유혹하여 곧 암살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모두들 사색이 된다. 다급한 목소리로, 내일 공항으로 배웅을 나가겠다는 ‘막 부인’의 애원도 소 없다. 그들은 이 엄청난 연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엔, 너무도 철없는 풋내기 배우 지망생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짜 ‘풍크툼’은 이것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강하지 못했기에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다. 이 선생의 측근, 조덕희가 그들의 음모를 눈치채버린 것이다. 그들은 조덕희가 원하는 ‘막 부인의 목숨 값’을 흥정하는 데 실패한다. 어떤 돌발 상황에도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명백한 불청객의 등장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매뉴얼조차 없다. 그들은 창졸간에, 정말 얼떨결에, 조덕희를 살해하고 만다.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유리문 밖에서 목격하고 있던 막 부인, 아니 장 치아즈는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입고 만다. 그녀는 표현할 수 없는 공포와 고통에 제대로 울부짖지도 못한 채 휘청거리며 사라져버린다. 아무도 그녀를 잡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위급한 상황에서 서로의 동선을 체크할 만할 비상 대책은 물론, 이탈하는 동지를 붙잡을 최소한의 용기나 우정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첫번째 풍크툼은 이렇게 잔혹하게 그녀의 삶에 예리한 메스를 긋는다. 그녀가 한때 믿었던 신념과 조직, 우정과 열정은 모두 찰나의 헛것이었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러나 그녀는 한동안 이 맹렬한 고통의 진원지조차 알지 못했다. 조직의 실패가, 그녀의 실수가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뼈아픈 상실감에 어떤 이름도 붙이지 못한다. 롤랑 바르트라면 이것이 바로 풍크툼이라 말하지 않을까. 그녀의 첫번째 풍크툼, 그것은 그녀와 그 친구들의 찬란한 나르시시즘이 철저히 찢겨나가며 생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매끈한 나르시시즘적 정열에 사로잡혀 날것의 세상이 자아내는 울퉁불퉁한 진면목을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이 상처에 대해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풍크툼의 특징은 ‘소통불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쉽게 소통될 수 있는 아픔이라면 그것은 관습화된 상징, 즉 스투디움이니까. 바르트는 필생의 역작 <카메라 루시다>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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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chito 2009-07-17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첫 영화부터 심상치 않네요~ 정말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doingnow12 2009-07-1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보니 색,계의 장면 하나하나들이 두근거리며 떠오르네요..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dlatjsdud29 2009-07-21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색계를 그냥 재미있는 영화로만 봤었는데, 철학적으로 읽는 것은 더 매력있는 것 같아요

sotkfkd 2009-09-1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나를 아프게 하지 못한다.'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아마 충분히 어떤 사물이나 인간이 '스투디움'의 성격을 띠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외우고, 그 이름을 가진 사물 혹은 인물에게 내가 주체가 되는 임무를 떠다 맡기고, 채찍질하고, 옭어 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