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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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으로 미소 지어지는 사람이 있다. 유난히 까만 눈동자, 수줍게 웃는 모습이 예쁜, 조분 조분 다정한 목소리는 마냥 기대고 싶어진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그녀는 김살로메 작가다. 만날때면 늘 과분한 사랑으로 잠시 주춤했던 내 이기심이 부끄러워진다. 

 

내게 친언니 같은 따뜻한 사람이기에, 첫 작품 '라요하네의 우산'을 읽고 한동안 먹먹했다. 나와는 동 떨어진 평범하지 않은,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어릴 적 힘들었던 기억이 내공으로 승화한 깊이가 묻어났다. "안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수몰민으로 대도시에 버려진 채 십대와 청춘을 버겁게 앓았다. 그 시절의 트라우마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 아픈 어제가 모여 꽃핀 오늘로 거듭나는,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매혹을 느꼈다."

 

두번째 책,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은 일천 글자 미니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따뜻한 책이다. 물론 말랑말랑한 신변잡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몽테뉴, 프로이트, 마키아벨리, 장자, 롤랑 바르트 등 묵직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 롤리타, 숨그네등 그녀가 애정하는 책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녀의 책 읽는 취향, 책과 삶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이야기도 참 좋다.

 

엄마가 노심초사하는 것만큼 자식들은 다급하지 않으며, 엄마가 애면글면하는 것만큼 자식들은 힘겨워하지도 않는다. 자식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크고 앞서 간다. 독립 못하는 것은 자식이 아니라 엄마이다. 자식은 잘 알아서 하는데 괜히 엄마는 뒷북을 친다. 자식의 홀로서기를 막는 가장 큰 적은 엄마가 아닌지, 자식에게서 한시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엄마, 그게 모성인 걸 어쩌란 말이냐."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불안하고 노심초사하는, 애타는 모습이 복합된 '애면글면'이라는 표현이 와 닿는다. 자식들은 알아서 공부하고,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엄마가 발목을 잡는다. 무더운 여름날, 공부하느라 애쓰는 두 아이가 안쓰럽지만 대견하게 잘 견디고 있다.   

 

"주책없이 후하게 구는 것은 사람들의 호의를 사는데는 서투른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호의를 얻을 자의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신선함과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는 말이다. (중략)

 

"받아버린 것은 이미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앞으로 후대 받을 것밖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왕은 남에게 후하게 주다가 줄 것이 없어질수록 그만큼 심복을 잃는다." 

받는다는 것에 고마운 맘이 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그 유효 기간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지나친 베풂은 사람들로 하여금 후대를 기약하게 하고, 그럼에도 착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선행을 하리라는 것. 한편으로는 호의를 기대하는 그 사람들을 잃을까봐, 주는 것조차 조절해야 하는 군주까지 있게 된다는 무섭고 서늘한 통찰. 몽테뉴의 저 한마디는 순한 사람과 탐욕스런 사람이 함께 살아가도록 운명적으로 조직화된게 인간사라는 것을 깊숙한 찌름으로 보여준다.

 

내 성격상 많이 주지도 많이 받지도 못한다. 선배에겐 밥 한끼 얻어 먹으면 커피라도 사야 하고, 후배에겐 밥을 얻어 먹으면 불편해 다음에 꼭 사야 한다. 특히 후배에게 커피 쿠폰이라도 받으면 커피 쿠폰에 얹어 케잌 쿠폰이라도 보내야 편하다. 가끔계획에 없는(?) 선물을 받으면 좌불안석이다.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기브 앤 테이크 심리가 작용한다. 지금도 머리속에 아직 보내지 못한 리스트가 맴돈다. 어쩌면 무심한 친구의 말처럼 안주고 안받기가 편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성격은 받는 것도 좋아하고, 주는 것도 좋아는지라....지나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할듯.

 

제대로 읽는다는 명분하에 내게 눈도장 찍힌 책들은 대개 지저분해져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매료된 상태에서는 밑줄 긋지 않을 수 없고, 책갈피를 접는 것도 모자라 옮겨 적고 싶은 구절엔 별표들이 넘쳐난다. 책이 더러워진만큼 애정의 강도가 높아졌다고나 할까.

빨리 읽고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적게 읽더라도 깊게 다가와 읽는 이의 영혼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함,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책을 읽을 때 밑줄 긋고, 별표들이 넘쳐나는 느낌을 안다. 책이 좋아 다른 이에게 추천하고, 독서모임에 포함하면 세 번 읽게된다. 물론 두번째 읽을때는 밑줄 그은 내용 위주로 읽는다. 책을 덮고 밑줄 그은 내용중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노트에 옮겨 적으면 가끔 떠오른다. 다독보다 정독의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김살로메 작가는 성실하다. 거의 매일 일천 글자 쓰기를 실천한 정성을 안다. 새벽에 깨어 고요한 시간에 글쓰기는 얼마나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일까. 그녀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길줄 안다. 에세이는 일천 글자의 단아함과 절제, 적재적소에 맞는 문장, 책 이야기로 가득하다. 술술 읽히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무더운 여름날, 열심히 펌프질해서 끌어 올린 물 한 사발, 몸속까지 시원해지는 청량함을 가득 담은 사이다 같은 책, 작가다.

 

다음주 목요일 포은중앙도서관에서 그녀를 위한 강연이 열린다. 하루 연가 내고 가급적 참석하려 한다. 우리가 만난지 벌써 2년 6개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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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7-01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리뷰 정말 좋아요. 담아야할 걸 다 담는 리뷰예요. 저도 읽어볼게요!

세실 2018-07-01 21:21   좋아요 0 | URL
어머 다락방님 칭찬에 춤추고
싶어요~~감사합니다^^
이 책 강추합니다!
청주엔 하루종일 많은 비가 내려요. 비 피해는 없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프레이야 2018-07-02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주 비피해 없기를. 목요일 봐요~

세실 2018-07-02 22:20   좋아요 0 | URL
다행히 소강상태랍니다^^
목요일 뵈요~~ 2년 반만에^^

라로 2018-07-02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몽테뉴 수상록 얘기는 나도 읽으면서 뜨끔했어~~~ㅎㅎㅎㅎㅎ.
내 얘기 같아서~~~.ㅋㅋㅋ
암튼 다락방님 말처럼 자기 리뷰는 정말 좋아! 뭐 물론 내가 늘 한 말이긴 하지만~~~.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나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데 막바지에 접어드니 좀 아쉽네.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암튼 목욜 모임 즐거운 시간 되길!!! 내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세실 2018-07-02 22:26   좋아요 1 | URL
몽테뉴 수상록...
정 많으신 언니ㅎㅎ
과하지 않은 베품 좋아요^^
책과 삶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특히 좋은 책.
칭찬은 저를 춤 추게 해요. 늘 감사드려요~~
여운이 길게 남는 책!
이 기회에 언니도 확 와요~~ 내일 출발? 에구 보고싶어라~
기회 되면 호미곶도 가면 좋겠다. 바다 본지 두 달 넘었어용^^

다크아이즈 2018-07-02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리뷰인 글이네요 애정 넘치고 꼼꼼한 리뷰 고맙습니다~~

세실 2018-07-02 22:27   좋아요 0 | URL
다크님 무슨 그런 겸손하신 말씀을~~
책 참 좋아요.
정갈하고 간결하면서 깊이 있어요~
목욜 뵈요^^
끝나고 호미곶 가요.

다크아이즈 2018-07-02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호미곶 좋아요, 갑시다 ㅋ

세실 2018-07-03 23:56   좋아요 0 | URL
콜!
팜언니 사랑해요~~
술 마셔서 그러는거 아님. 진심~~♡♡♡♡
 

곤지암 화담숲.
LG 구본무회장의 아호 화담(정답게 이야기 나눈다)으로 이름 지은 아름답고 거대한 숲 정원이다.
구회장은 산책도 자주 했다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지...
느릿느릿 숲길 따라 한바퀴 도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아기자기한 테마별 정원도 조성했고, 대부분 평지라 걷기 좋은 길이다.
힘든 사람을 위해 구간별 모노레일도 탈수 있다.
우리는 자작나무숲 따라 걷다가 2구간부터 모노레일을 탑승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예쁘다.
수국정원, 장미정원은 눈으로만 스윽...
다음엔 천천히 산책해도 좋을듯.
짙은 소나무향, 작은 계곡의 물소리,
고운 황금편백나무, 내가 좋아하는 황홀한 자작나무(정말이지 자작나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찔레 장미, 수국, 알록달록 꽃들...
숲정원은 정갈하고, 웅장하며 아름답다.
내려오는 길 들른 주막에서 파전과 동동주 한잔은 소소한 행복이다.
부모님 두 달에 한번 모시고 여행 다니기.
약속 지키기 참 쉽지 않네.
지난번 제주여행이 좋았는지 또 가고 싶다는 말씀을 슬쩍하신다.
이제 나도 정기사, 정가이드, 정총무 혼자서 다 하기 쉽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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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6-13 0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효도하면서 무슨 말씀을~~^^
멋지다!

세실 2018-06-13 07:49   좋아요 0 | URL
글을 수정해서ㅎㅎ
늘은 절대 아니 아니어요^^
부모님이 먼저 두달 되기도전에 어디 안가냐고 채근하시네요.
어제는 쇼핑까지 해드려 모처럼 뿌듯? 했어요.ㅎㅎ

비연 2018-06-14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달에 한번 부모님과 어디 가기.. 가 올해 목표인데 쉽지는 않고...
근데 정말 부모님이 한달 지나면 (특히 엄마) 어디 가냐고 물어보시는 ㅎㅎㅎ

세실 2018-06-14 22:54   좋아요 1 | URL
호호 엄마들은 비슷하신걸까요?
요즘은 아빠까지 동참하셨어요.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죠?ㅎ

비연 2018-06-15 13:18   좋아요 1 | URL
시간이 참 빨라요. 부모님 연세 드시는 거 보면... 저도 아빠 엄마 함께 다니는데 좀 힘들 때도 있지만 다녀오면 참 좋아요^^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페크pek0501 2018-06-17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달에 한번 모시고 여행 다니기, 그거 쉽지 않죠. 저는 시댁 식구들과 1년에 한 번 꼭 여행갑니다.
그때가 시어머님 생신이라서요. 가끔 시간이 맞으면 여름 피서도 함께 가지요. 저는 1년에 한 번인 걸로, 하겠어요. ㅋ

저는 공기 정화를 생각해서 화초를 사고 싶지만 물 주는 게 번거로워서 지금 갖고 있는 화초에나 신경 쓰자, 그럽니다.
그래도 집이 숲 정원이 되는 환상은 늘 품고 삽니다. 애들이 다 결혼해 나가고 제가 한가해지면 화초를 가꿀 수 있을까요?

세실 2018-06-17 22:54   좋아요 0 | URL
시댁 식구들과 일년에 한번 여행 쉽지 않아요. 잘 하시는거예요^^
우리는 시아버님이 연로하셔서 여행을 안좋아하세요.
시엄니만 가끔 모시고 다니네요. 시엄니는 여행 참 좋아하시는데...

집이 숲정원..많이 부지런해야될듯요. 전 집에서는 뒹글거리는 스타일이라.ㅎ
최소한만 하고 살거든요^^
페크님은 저보다 부지런하시니 잘 가꾸실 거예요~~~~

수퍼남매맘 2018-06-20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기 가봤어요. 아기자기하죠. 산책하기 딱인...

세실 2018-06-21 06:26   좋아요 0 | URL
다시 가고 싶네요.
전체 산책하는데 느린 걸음으로 2시간이면 충분하겠더라구요.
주막 파전이랑 막걸리도 생각납니다.ㅎ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
한재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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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명사초청특강을 진행하면서 설문지를 받았다. 많은 학생들의 관심 분야가 문학, 과학, 역사가 아닌 공부였다. 공부 잘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단다. 다소 의외의 결과였지만 학생들의 욕구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금년에는 진로 인문 독서특강으로 명칭을 바꿔 진행한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하고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 전화했다. 편집자는 한재우강사의 강의 스킬을 높이 평가했고,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 주었다. 친절한 직원에 힘 입어 빨간 책방의 '이동진' 작가 섭외도 시도 했지만 "워낙 바쁘셔서 학생들 강의는 안해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그래 내 욕심이지.

 

강사는 낮에는 독서, 교육 관련 교재 만드는 회사의 과장으로 일하고, 퇴근후 <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밤에 글도 열심히 쓴단다. 강사에게 직접 섭외 요청 전화를 했더니 강사료도 묻지 않고 오케이를 한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하며 중.고등학생에 특화된 맞춤 강사였다. 학생 및 학부모 대상 강연을 즐기고, 책을 좋아하는 그는 도서관 맞춤 강사였다. 아쉬운 점은 평일 낮에는 직장인이라 강의를 할 수 없고 평일 야간이나 주말에만 가능한 점이다. 우리도서관은 토요일 오후에 이루어지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생소한 강사일수도 있어 참여가 저조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신청 첫날 250명의 학생들이 몰렸다. 200석 규모의 강의실이라 서둘러 마감했다. 다행히 당일 참석 학생은 210명이었다.  

 

강연 주제도 '혼공! 최고의 학생들은 혼자하는 공부가 다르다' 였다.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들려 주었다. 혼자 공부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강사는 특이하게도 운동을 꼽았다. 공부의 시작은 운동임을 강조했다. 시간이 소요되는 거창한 운동이 아닌 맨손체조, 줄넘기 15분, 걷기, 뛰기, 스쿼트 100번, 계단 오르내리기 등을 말한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내 고딩땐 무용반에서 주 2시간 정도 무용도 했고, 체육, 교련 수업도 했다.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 운동한 기억이 없네.  

 

그즈음 내가 담임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고 야간 자율 학습 중인 밤9시에 학교 운동장을 20바퀴씩 뛰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달리고 나면 공부가 잘됐다. 나는 단지 내가 그렇게 땀을 흘려야 공부가 잘되는 특별한 체질인줄 알았다. 진리를 경험하면서도 그것이 진이린 줄 몰랐던 셈이다.

 

'서울대 학생들은 공부만 잘하는 샌님'이라는 나의 선입견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착각인지는 대학에 들어간 후에 바로 깨달았다. 막상 대학을 와보니 나의 운동 실력은 동기들 사이에서 중간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샌님은 커녕 운동을 잘하고, 즐기고, 챙기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수능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던 선배는 고등학교 때부터 헬스클럽을 다녀 몸이 액션 영화배우 같았고, 재학중에 공인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다른 선배는 아예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으며, 어린 시절 수영 선수까지 했던 동기는 스포츠 댄스나 발레 같은 춤을 끊임없이 배우러 다녔다.   p.152   

 

 

공부의 원칙은 뭘까? 저자는 의외로 원론적인 말을 한다. 첫째,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을 것. 둘째,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할 것. 무언가 근사한 답을 기대했는데 평범하다. 마치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인터뷰때 "저는 교과서로 공부했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요." 물론 해답이 있다. 수업시간에 어떻게 선생님 말씀을 듣는지, 복습은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학생 대상 과외를 하면서 꼴찌에서 3등을 앞에서 3등으로 끌어 올린 공부 비법이란다. 문득 학창시절에 누군가 나에게 이런 구체적인 공부 방법을 알려 주었더라면 공부를 더 잘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아이들에게 열심히 알려주긴 했는데 좀 늦은 감이 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 필기도 빠짐없이 다 하고, 밑줄을 그으라고 하시든, 별표를 치시든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완전히 다 따라하는 거지. 수학이나 영어처럼 잘 모르는 과목일지라도, 혹시 네가 싫어하는 과목일지라도 절대로 다른 생각을 하거나 한눈을 팔아서는 안돼. 이해가 가지 않아도 다 듣고, 다 적고, 다 보는 것.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그런 뜻이야.

 

그런 다음에는 두번째 원칙. 복습을 할 차례야. 수업시간이 끝나면 보통 아이들은 종이 치자마자 책을 탁 덮고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절대로 그래서는 안 돼. 바로 그 자리에서 1차 복습을 하는거지. 보통 수업은 50분 남짓, 그 시간 동안 나간 진도는 기껏해야 교과서로 몇 페이지 정도 될 거야. 그 몇 페이지를 그냥 쭉 읽어. 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저 소설책 읽듯이 한번 읽어. 방금 설명을 들은 내용이니까 어려울 것도 없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을거야. 이것을 마친 다음에 화장실에 가든, 수다를 떨든 해. 만약 어쩔수 없이 쉬는 시간에 못 하거든 점심시간이라도 꼭 해야 해. 1차 복습은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하루가 끝나지? 그러면 그날 수업을 들었던 교과서와 노트를 모두 가져다가 옆에 쌓아. 그리고 다시 한번 읽어. 역시 부담은 가지지 말고 소설책 읽듯이 쭉 읽는거지. 이것이 2차 복습이야. 매일 저녁에 그날 들었던 수업을 복습하는거야.

마지막으로 주말이 되면 모든 교과서와 노트를 가져와서 그 주에 진도가 나간 페이지를 전부 다시 읽어. 이것이 3차 복습이지. 영어는 소리 내어 본문을 읽고, 수학은 그저 네가 이해할 수 잇는 만큼만 보고 풀면 돼. 단지 이렇게 3번의 복습을 빼먹지 않는 것이 두번째 원칙이야. 

 

천재와 보통사람의 차이점도 쉽게 설명한다. 물론 개인마다 아이큐의 차이, 습득 능력의 차이는 있지만 중요한건 집중력이다. 누군가 책을 쓸 때 중학생 수준에 맞추어 쓰면 좋은 책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이며 쉬운 예시는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아닌 작은 긴장을 줄듯하다. 나는 역시 보통사람이구나. 책 읽다 어느새 핸드폰 들여다보고 물 한번 마시고...집중에 대해 좋은 예시가 된다.   

 

예를 들어 '압력솥으로 집 짓기'라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보다. 천재나 보통 사람이나 밥을 짓는 과정은 똑같다. 쌀을 씻고, 물의 양을 맞춰서, 불에 올린 다음, 밥 냄새가 나면 불을 꺼서 뜸을 들인다. 천재들이라고 해서 쌀을 솥에 넣자마자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밥이 뚝딱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천재의 뇌에서 마술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 둘의 차이가 나타나는 지점은 이렇다. 보통 사람은 쌀을 씻다가 딴생각에 빠지고, 불을 켜려다 말고 텔레비전을 보며, 밥 냄새가 나도 SNS를 하느라 뜸 들일 타이밍을 놓친다. 쉬엄쉬엄 대강대강 밥을 짓는 셈으로, 물의 양이나 불의 세기가 정확하지 않다. 반면 천재들은 밥 짓기에 집중한다. 누가 말을 걸거나, 텔레비전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거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려도 일단 밥에 집중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질거나 되거나 탄 밥을 짓는 동안, 천재는 윤기가 흐르는 고슬고슬한 밥에 구수한 누룽지까지, 그것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빨리 완성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방에서의 이런 움직임은 모른 채 단지 차려 나온 밥상만 본다. 그러고는 이렇게 외친다. "이 사람은 밥 짓기의 천재다."

 

이것은 질의 양이 아니라 양의 차이다. 시간을 더 확보하고, 더 많이 집중하고, 제대로 된 방식으로 하느냐의 문제다. 다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대충 만들지 않고, 적당한 기준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것은 기본적으로 선천적인 재능이 아니라 태도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아인슈타인이 드문 이유는 아인슈타인과 똑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드물어서가 아니라 아인슈타인처럼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p.57

 

라면 끓이는 법을 배울 때 조리법중에 '물 550ml를 끓인 후..."를 예시로 들며,

진짜 집중이란 '550ml'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그 의미를 더듬는 것, 그래서 사전 지식을 뒤져 500ml 생수병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공부할 때 집중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오히려 제대로 집중하는 사람이 드물다. 제대로 집중하려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동시에 뇌 속에서 '이 부분은 지난번에 배운 내용과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이 내용은 저 내용과 이렇게 차이가 나는구나'하는 생각을 부지런히 해야한다. 그렇게 부지런히 집중하는 만큼만 기억 저장 사이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앉아 있지만 이해력이 떨어지는 공부 못하는 아이를 예로 들며, 

하루 12시간을 강의실에 앉아 있더라도 듣는 내내 성찰적 관찰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한마디로 우이독경,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말이다. 그렇게 드라마 OST 를 듣듯이 강의를 들으면 강의 내용이라는 청각적 정보가 기억 저장 사이클 안으로 편입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강의를 들어도 성찰적으로 관찰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       p.120 

 

공부를 잘하고 싶은 욕구는 대부분 있다. 그 욕구가 간절하지 않거나 막연할 때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뚜렷한 목표, 집중력, 몰입, 구체적인 공부 방법을 알때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오래 전 읽은 <연금술사>에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는 말을 믿는다. 무의식중에, 의식중에 구체적인 꿈을 그리고 노력할때 꿈은 이루어진다.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읽었지만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을 때,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때, 무슨 일이든 할때 집중과 몰입을 해야겠다. 점점 산만해지는 내 자신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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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6-1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작 그런 공부 비법을 알았더라면 도움이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공부든 운동이든 정보가 넘쳐납니다. 우리가 자랄 땐 안 그랬는데 말이죠.

세실 2018-06-12 23:40   좋아요 0 | URL
시골에서 초, 중 다니고 청주에서 고등학교 다녔는데(나름 유학?ㅎㅎ) 성적이 안오르더라구요. 갭이 컸어용.(그럼 같은 상황이었던 오빠는? 변호사가 되었지요)
정보도 많이 부족했고, 멘토도 없었고, 과외, 학원은 꿈도 꾸지 못했으며... 핑계겠지요?
기숙학원에 있는 아이에게 열심히 써머리해주고 있어요^^

라로 2018-06-14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글 도움된다!! 역시 자기는 책의 엑기스를 잘 뽑아내는 재주가 있어!!^^
여기 나온 대로 나도 운동과 집중,,,그렇게 2가지에 집중해서 공부해야겠다. 글은 오랫만에 별찜!ㅎㅎㅎㅎㅎㅎ
땡큐~

세실 2018-06-14 16:30   좋아요 0 | URL
이책 꽤 괜찮아요^^
공부 노하우가 집약되어 있는~~
작가 강의도 잘해요.
저도 노력하려구요^^
집중, 운동 가장 중요한 기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오래전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 미술관에 다녀왔다. 넓은 담광장을 지나면 보이는 아담한 미술관에 들어서며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인상적인 그림은 해바라기, 꽃 피는 아몬드나무, 고흐의 방이었다. 그리고 마음에서 잊혀졌다.

 

도서관 인문도서 코너에서 반고흐, 영혼의 편지(빈센트 반 고흐 저.예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고흐의 후원자이며 동반자였던 네 살 어린 동생 테오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모아 엮었다. 내가 기억하는 고흐는 4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지독한 가난과 고독, 병마에 시달렸던 불운의 화가였다. 형을 평생 보살펴야했던 동생 테오에 대한 연민도 있었다. 정작 고흐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니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에 감탄하며 연민이 밀려왔다. 고흐 미술관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미술관에 하루 종일 머물며 그림을 찬찬히 보고 싶다. 미술관 가기 전 이 책을 읽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서 전에는 찾지 못했던 색채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주 거대하고 강력한 어떤 것이었다.”

10년 동안 900여점의 작품을 남기며 죽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지만 생전에 팔린 유화 작품은 단 한 점이었다. 고흐는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할 만큼 그림에 빠져 살았다. 유화 물감 살 돈이 없어 데생을 그렸는데 살아있는 동안 그림이 팔렸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p.14

 

무언가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부주의해지기 쉬워서 이따금 엉뚱하거나 충격적이고, 관습과 예절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p.19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p.107

 

2년 전 형이 여기로 왔을 때만 해도 난 우리가 이토록 서로 의지하게 될지 몰랐단다. 하지만 이제 아파트에 나 혼자 남고보니 텅 빈 느낌이구나. 적당한 사람을 구해 함께 지낼 생각이지만, 형을 대신할 만한 사람은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형이 지식과 세상에 대한 명석한 시각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란다. 그러니 형이 더 나이 들기 전에 유명해질 거라고 확신한다. 형 덕분에 난 많은 화가들을 알게 되었지. 그들 역시 형에 대해 아주 좋게 생각한다. 형은 새로운 생각의 챔피언이거든.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생각한다면, 더 정확히 말해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일의 챔피언이라 해야겠지. 평범함 때문에 퇴보했거나 그 가치를 잃어버린 생각들에 대해 말이다. 게다가 형은 항상 남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란다.         p.161 

 

 

이번에 그린 작품은 나의 방이다. 여기서만은 색채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을 단순화하면서 방에 더 많은 스타일을 주었고, 전체적으로 휴식이나 수면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마음 상태와 상상력에 달려 있다.

벽은 창백한 보라색이고, 바닥에는 붉은 타일이 깔려 있다. 침대의 나무 부분과 의자는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이고, 시트와 베개는 라임의 밝은 녹색, 담요는 진홍색이다. 창문은 녹색, 세면대는 오렌지색, 세숫대야는 파란색이다. 그리고 문은 라일락색. 

그게 전부다.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구를 그리는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받지 않는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벽에는 초상화와 거울, 수건, 약간의 옷이 걸려 있다. 그림 안에 흰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테두리는 흰색이 좋겠지.

이 그림은 내가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데 대한 일종의 복수로 그렸다.          p.214 

 

자신을 새장에 갇힌 새로 표현한 고흐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테오에게 의지했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했다. 고갱과의 관계에서 우발적으로 귀를 자른 것도 외로움의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며 선물한 그림꽃이 활짝 핀 아몬드 나무’,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이 부드럽고 매혹적이라고 표현한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참 따뜻했다. 불꽃같은 그림에 대한 열정과 부단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고흐가 사랑한 마을 남프랑스 아를에 가고 싶다. 그가 서성대던 해질녘 카페거리, 론 강변, 고즈넉한 아를 골목을 거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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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5-10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테오와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출판사는 다른 책에서.
고흐가 예술가라서 그런지 글을 잘 쓰는구나, 생각하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직 예술에만 몰두하며 사는 삶은 어떤 것인지 헤아려 보게 되네요.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은 저절로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재능과 노력의 함수 관계가 궁금해지네요...

세실 2018-05-11 20:15   좋아요 0 | URL
저도 고흐가 글을 이리도 잘 쓰는지 이책 통해서 알았습니다.
천재지요...
단순하게,
세상과 무심하게 살아야 할듯 합니다.
최저 생계비로...
밥 먹는 시간과 잠 사는 시간도 아까웠다니..감이 오지 않아요.
재능과 노력이 교집합일때 빛을 바라겠지요?
평범한 사람은 중간. 저처럼요.ㅎ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자연을 닮은 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에 다녀왔다. 두 분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 주셨다. 평소에 자주 걸으셔서 성큼성큼 앞서 나가고 다리 아픈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수줍은 신혼부부처럼 손 꼭 잡고 하트도 날리며 사진 찍어달라고 하셨다. 꽃향기 맡으며 감탄사를 쉴 새 없이 날리는 엄마는 마냥 소녀 같으셨다. 한 달에 한번 모시고 다녀야지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우연히 정호승 시인의 동시집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를 펼쳤는데 시인의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잠시 엄마 품에 안겨 잠들어보세요.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의 눈물이 다 녹아내리고 세상을 살아갈 힘과 사랑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 무릎에 대고 누워 잠든 적이 언제였을까? 엄마랑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때가 언제였을까? 내가 힘들 때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힘을 주시는 분은 늘 엄마였다. 어릴 적 엄마는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을 붓지 못하게 하셨다. 하수구에 사는 생물들이 놀란다는 이유였다. 또한 밥을 드실 때마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먹을 밥은 남겨 놓으셨다. 밥이 부족해 엄마가 덜 드시는 날도 있었다


 “엄마를 따라 산길을 가다가/무심코 솔잎을 한 움큼 뽑아 길에 뿌렸다/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호승아 하고 나를 부르더니/내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 아프겠나/말은 못 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앞으로는 이런 나무들도 니 몸 아끼듯이 해라/, 알았심더/나는 난생 처음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눈물이 글썽했다.”

 

부모님은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꽃 한 송이 꺾지 않으셨고, 다른 사람이 힘들게 농사지은 고구마 한 톨 탐하지 않으셨다. 삶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법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셨다.

동시를 읽으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유년시절의 추억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의 말처럼 동시를 읽으며 잠시 어린이가 되어도 좋다. 이 시집은 특히 어른이 읽으면 좋을 글이 가득하다

    

사계절의 시작 이라는 단어는 ‘~을 보다에서 어원 했다고 한다. 산과 들, 주변에 피어난 꽃, 연두 빛 나뭇잎을 많이 보라는 의미에서 봄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오늘은 어버이날! 더 늦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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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5-04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실!! 뭉클하다. 👍

세실 2018-05-05 08:15   좋아요 0 | URL
어제 정현이가 학원에서 쓴 어버이날 편지 받고는 울컥했네요.
생각이 참 많은 아이...
내리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페크pek0501 2018-05-07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엄마는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을 붓지 못하게 하셨다. 하수구에 사는 생물들이 놀란다는 이유였다.˝
- 저는 생각 못했어요. 부엌 개수대와 수세미를 소독한답시고 뜨거운 물을 마구 부었어요.
자기도 모르게 짓는 인간의 죄란 얼마나 많을까요?

세실 2018-05-09 19:43   좋아요 0 | URL
요즘 일회용 쓰지 않기 하는중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
우리 부모님들은 대부분 법 없이도 사실 분들이죠.
개수대 소독은 베이킹파우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