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서랍 한국대표정형시선 21
노영임 지음 / 고요아침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동료와의 헤어짐이 아쉬워 떠남을 망설인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아이 키우는 일이나 글을 쓰는 일로 조언을 구하면 망설임없이 도와준, 예의 바르고 따뜻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한 분이 있었다. 교육청 앞마당의 아름드리 마로니에 나무가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고운 빛깔을 가장 먼저 알려준 분이다.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글을 썼고, 현직에 있으면서 시조 시인으로 활동하던 분이었는데 이번에 <여자의 서랍> 으로 첫 시조집을 냈다.

 

마치 시처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듯 하지만 글자수를 세어보면 시조의 형식에 맞는다. 그래서 더 절제미를 살려낸듯도 하다. 직장인으로, 엄마의 딸로, 선생님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삶의 애환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시인의 일상을 조금씩 엿보게 된다.

 

 "동백꽃//겨우내 물질하던 어린 누이 손등이랄까?/얼음 박혀 터진 틈새 내비치는 붉은 속살/못본 척, 눈가 훔칠 때/뜨건 눈물이/후두둑" 노는 것과 노동으로 인한 터진 손은 사뭇 다르겠지만 이 시조를 읽는데, 내 어린 시절과 오버랩된다. 어릴적 방 윗목에 떠 놓은 물이 어는 한 겨울에도 밖에서 놀다보니 내 손은 늘 터져 있었다. 엄마의 꾸지람에 하루 이틀은 잠잠하다가 몰래 나가서는 저녁 먹으라는 소리에 이끌려 들어오고는 했었다. 놀다가 터진 손이지만 참 아팠던 기억이 있는데 겨우내 차가운 물질 하느라 터진 어린 누이의 손등은 얼마나 아팠을까? 활짝 피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후두둑 떨어지는 허무한 동백꽃과 누이의 손등이 동일시된다.

 

"가을 속내//무른 속내 비칠까/기척도 없더니만/뽀얀 솜털 자위 뜨고/뚝, 떨군 덕석밤/명치끝/치받던 그리움/그렇게 아람 번다" 명치끝 치받던 그리움을 읽는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마음 한곳에 묻어두었던 그리움이 일어난다. 나에게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우리말인 '자위 뜨고, 아람 번다'라는 표현이 생소해 사전을 찾아보니 '밤톨이 익어서 밤송이 안에서 밑이 돌아 틈이 나다'라는 뜻풀이도 예쁘다. 시인의 글에는 고운 우리말이 자주 보인다.

 

"교무수첩1-스승의 날//밟혀 줄 그림자조차/찢겨긴 지 이미 오래/주홍글씨처럼 카네이션/매달려 있던 하루/아홉 시/저녁 뉴스엔 또/어떤 죄목으로 단죄될까" 스승의 날에는 부족한 내 아이를 보듬어 안으시는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은 꽃바구니를 보내 드렸는데 혹여 누를 끼칠까 조심스럽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사제지간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쪼보장한 배롱나무//단단히 말라 쪼보장한 배롱나무 한 그루/당신 좁은 뜨락에 꽃등 환히 밝히시더니/긴긴 날/옹이 하나를 안으로 키우셨나?/바닥난 링거병 따라 흔들거리는 중심/검붉은 오줌 팩을 생의 무게로 매단 채/고장난 메트로놈처럼/박자 잃은 어머니/어미젖 보채 쌓는 하릅송아지 같은 삼남매/비싼 일수 찍듯이 하루 벌어 한 끼니/고봉밥 짓던 아궁이/짚불 환한 기억들/꽁초만큼 남은 목숨 바작바작 타들어 갈 때/숨어서 우는 자유 그마저 빼앗겼다/자꾸만 도돌이표에 맴도는/엄니 엄니이......" 배롱나무에 달린 분홍빛 꽃이 지고나면 스산하다. 가끔씩 대화중에 내비치던 친정엄마 일상을 듣고는 했는데, 병든 노모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는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조는 고리타분하고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깬 그녀의 글은 언뜻 시 같기도 하면서 시조의 은율이 느껴지는 절제미가 흐른다. 자연 풍경, 아이들, 교사생활, 유년시절, 고전의 재해석, 현시대 풍자 등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다양한 주제를 넘나든다. '드넓은 시간과 공간에 펼친 관찰력과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한 이승하 교수의 해설이 와 닿는다. 눈부신 가을날, 은행나무길 한가운데 벤치에 앉아 가족 혹은 친구와 이 시집을 낭송하면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는 것은 어떨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10-2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 서랍... 제목이 좋네요.
이런 분도 알고 지내시는 거예요?
저도 어릴 적 손이 터진 적 있어요. 겨울에 추운지도 모르고 놀다가요.
지금 생각하면 참 씩씩했어요.

님의 좋은 코멘트와 함께 좋은 시조를 감상하고 갑니다. ^^

세실 2013-10-26 15:01   좋아요 0 | URL
예전 교육청 근무할때 앞짝꿍이셨거든요^^
호호호 저두 저두! 겨울이면 손이 터서 아프기도 하고.....맞다. 볼도 늘 빨갰어요. ㅎㅎ
막대기 들고 칼싸움 하고 댕겼어요.

늘 힘이 되어 주시는 페크님^^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되세요.

프레이야 2013-10-30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의서랍,이라니 제목부터도 참 좋군요.
아람 번다,는 무슨 뜻일까 궁금하고. 시조는 곱고 정감 가는 우리말을 살리기에도
더 좋은 형식 같아요.^^

세실 2013-10-31 16:27   좋아요 0 | URL
아람번다도 자위 뜬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밤이 익어 벌어진다는 의미..... 참 예쁘죠?
절제미와 은율이 있어 좋아요.
우리말을 참으로 사랑하시는 이분!!
프야님. 행복한 시월의 마지막 밤 보내세요~~~~
 
[작가의 얼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상화를 보면 왠지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가끔 외국영화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옆이나 거실에 그 집의 계보를 보여주는 초상화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마치 죽은 자들을 집에 모신듯한 느낌이 든다. 낯선 풍경이지만 외국에서는 우리네 족보 풍습처럼 보편화된 듯 하다. 이 책은 폴란드계 유대인 비평가인 마르셀 라이히리츠키가 수집한 초상화와 관련된 예술가들의 이야기이다.

 

역사이래 가장 뛰어난 작가로 뽑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상화부터 모제스 멘델스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호프만, 하인리히 하이네, 안톤 체호프, 프란츠 카프카등 세계적인 음악가와 문학가들을 망라한 다양한 인물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니체는 쩨쩨하지 않았다. 하이네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대범한 면모를 보였다. 그의 철학적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의 한 대목을 보자. "최소의 서정시인이란 무엇인지를 내게 알려준 이가 바로 하인리히 하이네다. 수천 년 역사의 온갖 보고를 헤집어보아도, 그처럼 달콤하고 격정적인 음악은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는 신성의 심술이 있었으니, 모름지기 그것 없이 어찌 완벽을 그릴 수 있으랴. (...) 게다가 독일어를 구사하는 그 솜씨라니!"

                                                                                                p. 74     

 

어떤 세대든 '햄릿'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자신의 문제와 고초, 자신의 좌절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대개는 찾던 것을 발견해낸다. 바로 이 점이 대단하고 기막히고 놀랍다못해 가히 불가해하며, 바로 이런 까닭에 '햄릿'은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최고의 극작품으로 꼽힌다.

                                                                                                p.15 

 

토마스 만은  상냥한 사람이었을까? 호감 가는 성격이었을까? 아, 이런 질문에 단호하게 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 물론 부정적인 쪽으로 말이다. 맞다. 그는 예민하기가 프리마돈나 같았고, 거만하기가 테너 못지 않았다. 그랬다. 그는 극도로 자기중심적인데다가 독선적이었다. 종종 냉혹했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했다는 것 역시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p. 187

 

저자가 무인도에 간다면 가져가고 싶은 음반중 하나가 말러의 교향곡 8번이라고 한다. 목탄과 연필 스케치로 그린 구스타프 말러의 초상화가 멋지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초상화이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요제프 로트는 심오함보다는 우아함을 사랑했고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을 접한 적은 없지만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토마스 만은 예민하고, 거만하며,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지만 수천 통의 편지에 하나하나 답장을 보냈다. 그러고보니 유명한 예술가중 성격 좋고 호감가는 사람은 거의 없는듯 하다.

 

이 책에서 예술가를 몇명이나 다루었나 세어보니 41명이나 된다. 예술가의 특징을 잘 묘사한 초상화를 보는 즐거움이 있기는 했지만 많은 내용을 다루다보니 수박 겉핥기식의 이야기 전개에 다소 아쉬움도 남는다. 많은 사람을 다루기보다는 꼭 소개하고 싶은 예술가의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10-2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무조건 흥미 있어요. 어떤 독특함이 느껴져서도 그렇지만
예술가만큼 매력적인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죠.
예술가적 기질이나 재능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관심이 가기도 하고요.
이런 류의 책을 저도 다른 작가의 책으로 몇 권 읽은 적이 있답니다. ^^

바쁘실 텐데, 신간 평가단 일까지 하고 계시군요... 멋져요!!!

세실 2013-10-26 15:05   좋아요 0 | URL
새로운 사실을 아는 것 참 즐거운 일이죠.
망각이 심해서 늘 새로운것 같기도 하고요. ㅠㅠ
수박 겉핥기식이라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인물이 나와서 덮고나니 멍!! ㅎ

요즘 신간평가단에 얽매여서 읽고 싶은 책을 못 읽는 불편함이 있어요.
한달에 두권의 서평.....생각보다 힘들어요.
 
[책으로 가는 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읽기는 새로운 것을 아는 즐거움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작가를 통해 재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하울의 움직이는 성>등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추천한 이와나미 소년문고 중 50권의 책 소개와 책과 관련하여 TV 프로그램에 방송된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나미 소년문고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린 왕자, 셜록 홈즈의 모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바보 이반, 곰돌이 푸우, 톰소여의 모험, 해저 2만리, 로빈슨 크루소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파를 심은 사람은 김소은 엮음, 김의환 그림의 우리나라 민화 모음집으로 미야자키 감독이 좋아하는 책이라고 해서 반가웠다. 이미 알고 있지만 읽은지 오래되어 가물가물한 어린이 문학을 다시 접하니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답게 그는 진정으로 어린이 문학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계기로 감독이 오랫동안 즐겨 읽어온 소년문고 400여권 가운데 50권을 추천하고자 세달에 걸쳐 다시 읽으며 차분히 정리했다고 하니 이런 노력이 그를 스타 감독으로 만든 것이다. 책에 대한 느낌을 짧게는 세줄에서 채 열줄을 넘지 않는 간략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군더더기 없이 응축된 소개글이 맘에 든다. 

치폴리노의 모험

 

물론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특히 일러스트가 능숙하고 유쾌해서 무척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토마토 기사나 꼬마 레몬병 그림을 아주 좋아해서, 그리기 솜씨를 읽히는 데 꽤 영향을 받았습니다.                        p. 20

 

"꼬마 레몬병 소위, 강인해 보이고 좋지요? 유럽풍 만화라고 할까요. 토마토 기사 같은 그림도 얼굴이 둥글지만 입가에 주름이 남아 있어 '표정은 이렇게 만드는 거로구나' 하고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p. 21

그는 키르케고르의 책을 읽으며 무슨 소리인지 통 알수 없었고,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잔혹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걸까'하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어린이 문학을 좋아했다니 독서를 통해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 감독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자신의 책 한 권을 만나기 바란다

 

어렸을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딘가 마음에 든 책을 찾아 정말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갈 정도까지 읽어보면, 원서를 보지 않았는데도 "이 번역은 이상하다"라고 지적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책은 참으로 재미있는 존재입니다. 이 책이 조금이라도 나만의 책 한권을 만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만의 책 한권은 뭘까? 아이를 키우면서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를 생각하며 인내심을 키우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최근에는 '책은 도끼다'와 '여덟단어' 를 읽으며 울림과 감성을 생각했고 다독보다는 정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좀 더 임펙트 있는 책이 필요하겠지만 올 가을에는 따뜻한 책, 감성을 키우는 책을 읽으련다.

 

은퇴를 번복했고 최근에 다시 은퇴를 선언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그냥 죽는 날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안되나? 가끔은 머리색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울어버린 철 없는 하울, 도토리 나무 요정 토토로, 귀엽고 씩씩한 키키가 그리울때가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10-1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이 좋다고 해서 <책은 도끼다>를 읽고 있어요. 반 이상 읽었지요.
한 달에 한 권은 동화를 읽기로 해야겠어요.
동화가 멋져요. <통조림에서 나온 소인들>이란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자신의 책 한 권을 만나기 바란다" - 저도 요즘 책을 읽으면서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좋은 책이 없나, 생각한답니다.

이승우, <생의 이면>을 반복해서 읽었던 옛날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세실 2013-10-15 14:42   좋아요 0 | URL
책은 도끼다 괜찮은가요?
가끔 반복해서 읽는답니다.
아이들 어릴땐 동화책 하루에 한권씩 읽기도 했는데 지금은 표지만 보게 됩니다.
오늘 영유아실에 잠깐 들러 팝업북 둘러봤어요.

요즘 좋은 책? 저도 알려주세요~~
전 최갑수 '당신에게, 여행' 읽고 있는데 굿입니다! 가을은 여행가기 참 좋은 계절!

양철나무꾼 2013-10-14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전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출발점'을 읽었는데,
그걸 읽으면서 그에게 가졌던 생각을,
그의 은퇴작이라는 '바람이 분다'가 깡그리 바꿔놨다고 해서 우울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이같은 번복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출발점', '반환점' 등을 통하여 그의 삶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까지 하시는군요.
세실님은 암만 봐도 슈퍼 우먼 같으셔요~^^

세실 2013-10-15 14:47   좋아요 0 | URL
미야자키 하야오 덕분에 일본 어린이 문학이 진일보 했을거란 생각 합니다.
달랑 이 책 읽고난후라 속단일수도 있겠지만요^^
'바람이 분다' 왠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일본은 그런대로 흥행작이었다고 하던데 우리나라에서는 저조했다고 하더라구요.
연세가 좀 있긴 하죠.

음. 어제 친구에게 냉장고속 음식 주면서 반성했답니다.
냉동실에서 뒹구는 송편, 쑥개떡, 절편, 인절미랑 냉장실 멸치, 된장, 깻잎, 매실차까지....
친구는 좋아하던데, 전 처치 곤란이었거든요. ㅠ

프레이야 2013-10-1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추천! 진짜진짜 알차게 사시는 능력자 세실님~~♥

세실 2013-10-15 14:48   좋아요 0 | URL
역시 프야님은 내 편! 에이 살림은 엉망이어요.

지금 핸드폰 화장실에 퐁당해서 수리하러 왔어요.
핸드폰 중독에 대한 응징? 깊이 반성하고 있답니다

2013-10-16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18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침에 일어나면 물 한 컵 들고 손바닥만한 베란다로 나가 화분을 들여다본다. 여름내 피고 지던 빨간 시클라멘, 작은 알멩이같은 초록잎이 몽글몽글 달려 있는 타라, 한겨울 추위도 견뎌낸 강인한 아이비 넝쿨, 비 오던 날 인심좋은 커피숍 사장님한테 얻어온 커피나무, 좀처럼 꽃을 보여주지 않는 고고한 군자란, 이제 조금씩 주홍빛을 보이는 부를 가져다 준다는 남천, 선물받은 난화분, 다육이들.....몇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초록의 싱그러움을 보여주는 그들은 이미 나의 친구다. 
그리고 알라딘 지인의 표현처럼 읽어야 할 책이 쌓여 있을때 삶이 무료하거나 권태로울 시간도 없이 늘 아쉬움에 목이 마른다. 선물중에 알라딘 박스가 가장 반가운 것을 보면 책 읽는 것도, 쌓아두는 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이 책은 <데미안>, <유리알 유희> <수레바퀴 아래서>로 우리에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제목과 저자만 보고는 동명이인이라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책과 자연,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는 그의 삶은 여유와 고요가 흐른다. 얼마전 잠깐 고구마를 캐고는 마치 고구마를 심을때부터 참여한 듯한 생각으로 밭을 가꿀까 했던 마음에 웃음이 난다.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여름목련나무 예찬이다. 목련에 대해 이렇게 섬세하고 자세한 묘사는 마치 목련을 옆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는 실제 정원사처럼 하루의 일상을 조근조근 들려준다. 자신의 방에서 바라본 정원의 풍경은 단순한 식물의 개념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소중한 친구이고 이웃이다.

 

소설가인 그는 그림에도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집과 주변 풍경, 목련꽃, 나무, 백일홍 꽃다발, 정원등을 수채화로 그린 삽화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나에게 감명 깊은 세 권의 책을 꼽으라면, 그 안에 이 책이 있다."고 말한 법정스님이 그리운 밤이다.  

 

가장 좋은 교제상대를 들자면 내 작은 아파트 방 벽 책꽂이를 가득 채운 많은 책이다. 그것들은 내가 깨어 있을때나 잠이 들었을 때, 식사할 때나 일할 때, 날이 좋거나 궂거나 가리지 않고 나와 함께 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친근한 얼굴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함께 있으면 마치 고향 지에 있는듯한 기분 좋은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중략)

내 방에서 바라본 풍경들, 정원의 테라스와 덤불 숲, 그리고 나무들은 내가 앉아 있는 방과 그 안의 사물들보다 더 가까이 내 삶에 속해 있다. 그것들이야말로 진정한 내 친구들이고 내 이웃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그들은 나를 지탱해주는 믿을 만한 존재이다.

                                                                      p. 128-129

 

우물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비롯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탄하고, 베일에 감춰진 삶의 마지막 비밀에 경외심을 갖게 되는 이 길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이 한밤중의 시간에 더 인내심을 가지며 주의 깊고 진지해진다.

이런 식으로 잠 못 이루는 모든 사람은 분명 힘겨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가치를 얻는다. 나는 그들이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가능하면 치유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경솔하게 살아가면서 건강을 자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실오라기 같은 졸음도 느끼지 못한 채 다만 누워서 내면의 삶을 나무라듯, 겉으로 드러내는 밤을 보내는 날이 언젠가 한번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p. 41

 

여름이 한창이다. 벌써 몇 주 전부터 커다란 여름목련나무가 내 방 창문 앞에 꽃을 활짝 피운 채 아수엉이다. 언뜻 보기에는 느긋하고 무관심하고 느린 듯하지만, 사실은 다급하면서도 흥청거리듯 풍성하게 꽃을 피워댄다. 눈처럼 하얗고 커다른 꽃받침 가운데에는 늘 몇 개 안되는, 많아야 여덟 개 내지 열 개밖에 안되는 꽃잎이 동시에 피어난다. 나무에는 약 두달간 꽃이 핀다. 그동안 꽃들은 항상 같은 크기로 피어 있는 듯 보이는 이 멋지고 커다란 꽃송이들은 피어나자마자 너무나 허무하게 지고 만다. 어느 것도 이틀 이상 버티는 꽃잎이 없다.

 

                                                                        p. 53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09-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 님, 저는 오래전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어요.
옛날 생각 나네요. 수레바퀴~의 주인공 소년에게 연민을 느꼈고 그가 느낀 고독을 사랑했죠.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그 소년을 만나기 위해서...

이 에세이는 감성적일 것 같아 저처럼 드라이한 글을 쓰는 사람한테 꼭 필요한 책일 듯해요.ㅋ
하지만 저도 아파트 베란다에 화초 많이 배열하고 테이블도 놓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곤 했던 촉촉한? 적도 있는 사람이에요. 화초 감상을 즐겼죠.
지금 사는 이 집은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한 집이라 베란다가 없어서
화초의 수를 줄여서 실내에 들여 놓았죠. 아쉽게도...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멋진 정원을 꾸며 놓고 살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을 찜합니다. ^^

비밀 댓글 : 아, 세실 님은 부지런하시다. 매일 출퇴근하시면서 이렇게 리뷰를 올리시다니...
(아, 이 댓글이 첫 댓글이 될 것 같아 기분 좋아요.ㅋ)

세실 2013-10-01 17:31   좋아요 0 | URL
러블리 페크님^^
이제 축제가 끝나고 조금 여유로워 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여유를 즐기며 내일 떠날 제주도 여행지 계획하고 있답니다. 지난 겨울에 다녀오지 못한 우도에 가려구요.

전 데미안의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를 읽으며 마음을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때 베란다에 꽃이 즐비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초록만 가득합니다. 꽃이 피지 않아요. ㅠㅠ

이 책 구입하지 않으셨으면 보내드릴게요^^
비밀 댓글로 주소 남겨 주세요. 책 표지에 제 이름 적혀 있어도 괜찮으시죠? 느낌 아니까~~~~~

페크pek0501 2013-10-04 23:08   좋아요 0 | URL
저도 우도에 간 적이 있는데 바닷물 빛깔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죠.

책을 보내 주시다니... ㅋㅋ 횡재한 느낌이네요.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주소는... 비밀댓글로...
(물론 낙서가 있어도 괜찮아요. 아예 사인해 주세요.)

2013-10-04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10-05 11:21   좋아요 0 | URL
우도 바다는 참 이국적인 풍경이죠. 어쩜 그리도 투명하고 고운지..... 한참을 들여다 봤습니다.
제주에서 한달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도에서도 한 이틀쯤 살고~~~~
오케이! 헌책이...랑 정원에서....두권 보내드릴게요^^
 
[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 왔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책 선물을 즐긴다. 최근에는 지인의 발령을 축하하며 <하워즈의 선물>같은 자기개발서나 베스트셀러를 선물하고, 군대간 조카의 인문학적 지식을 높이기 위해 <책은 도끼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안나 카레니나>처럼 평소에 읽기 어려운 책을, 돌된 아기를 위해 <사과가 쿵> <누가 내머리에 똥 쌓어> 같은 리듬있는 그림책을 선물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니 다소 딱딱한 워드 메모를 삽입하지만,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손글씨로 적다가 오자가 되면 하트를 그려 넣기도 하고 나뭇잎 모양으로 배경그림도 넣는 등 고민하면서 내용을 적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선물했던 책의 메모중 일부가 이렇게 책으로 나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가 책의 원주인이 쓴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주로 대학가 주변 서점에 있던 책들이기에 마치 비밀 일기장처럼 고독, 사랑, 인간관계, 삶, 철학에 대한 고민한 흔적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졸업하는 선배에게 수줍게 건넸을 시집 한 권.

책에 고이 담은 축하의 말 속에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한 사람의 마음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짐짓 명랑한 척 작별 인사를 하지만, 일부러 서점에 가서

찾아낸 시집이 <고통의 축제>다.

마음을 표현할 길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p. 35    

  '밥값으로 책을 사고는 이틀간 밥 안먹기 책 읽기 두렵지만 그래도 읽고 싶다'는 삐뚤삐뚤한 글을 쓴 가난한 대학생이 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구입하며 책에 적은 내용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막심 고리키 <어머니>등 가볍지 않은 책들이 주를 이룬다.

1996년 4월 15일 시작. 봄이다. 만물이 깨어나 생기를 얻고 있듯이 나도 그래야 한다. 봄의 화려한 자신감을 나도 닮고 싶다. 지금껏 봄처럼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하냐. 그늘, 뒷자리, 밑바닥만 찾아다니며 살아온 게다. 이젠 양지로 햇살로 나가 몸을 따숩게 해야지. 그동안 너무 추었다.

                                                                     p.86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서지는 못하고 그가 아르바이트했던 매장을 찾아 괜히 기웃거렸던 기억, 운동권 남자를 좋아했지만 먼발치에서만 바라 보았던 기억......그들에게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취업 걱정으로 몸무게가 빠져 엄마에게 이끌려 한의원에 가서 한약 먹고 기운 차렸던 대학 4학년의 힘들었던 기억들....... 어디엔가 끄적거렸던 메모가 남아있겠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 가을이랑 참 닮았다. 

모든 것에 서툴고 힘겨웠던 시절,

가장 남루했지만

가장 눈부시게 빛나던 그때,

 

그곳에 두고온 건 없었느냐고.

                                            p. 9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09-0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에 뭔가(제 느낌이나 생각을) 써 가면서 책을 보는지라, 이런 책이 당기는군요.
남의 비밀 일기장과도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겠군요.
책 내용이란 것도 알고 보면 참 다양한 것 같아요. ^^

세실 2013-09-09 08:32   좋아요 0 | URL
밑줄 쫙! 포스티잇 붙이기, 심지어 접기. ㅎㅎ
시대의 아픔도 느낄 수 있고, 책 내지에 적던 느낌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책을 만들 수 있다니......참신합니다^^

페크님 행복한, 즐거운 한주 되세요~~~~~~

순오기 2013-09-1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된 글들이 한 편의 시 같아요~~
나도 표지 안쪽에 끄적거렸던 것들을 모아 볼까요.^^

세실 2013-09-11 09:07   좋아요 0 | URL
굿모닝 오기언냐^^
그쵸. 깊이가 있는 글들이네요.
요즘 제 글이 자꾸 가벼워져서 고민입니다.
오기님 글 모아 모아서 책을 내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