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나가는 일요일 저녁. 아쉬움과 함께 알라딘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프야언니의 책 <앵두를 찾아라> 를 읽는다.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 우리 5공주는 어떤 제목으로 할까? 표지는?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다 결국 내용을 가장 잘 아는 프야언니가 원하는 제목과 표지로 결론을 맺었다. 언니가 보내주신다는 책을 기다릴 수 없어 알라딘에서 구입했다. 세상에나 책은 총알 배송이 무색하게 4일후에 도착했고, 다음날 언니가 보내주신 책도 왔다. 도서관에는 내년도에 비치할 예정이니 또 한 권은 지인에게 선물해야겠다. 언니 책이 나올 무렵 도서관은 이미 4/4분기 구입도서가 들어온 상태였다.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 비슷한 실정이라 내년도 3월에나 구입 신청할 듯하다. 참으로 아쉽다!

 

프야언니는 단아한 외모처럼 글도 어찌나 정갈한지 따뜻한 차 한 잔 곁에 두고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봐야할 듯한 느낌이다. 에세이는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야 하는 부담이 있을텐데 적당히 절제하고, 적당히 드러낸다. 글 속에 우리 말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고, 우리 글의 고운 결을 잘 살려냈다. 제목의 앵두가 물고기임을 '앵두를 찾아라' 전문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앵두는 물 속에 산다'는 첫 장의 글을 읽으면서도 앵두는 그저 빨간 열매라고 생각했다.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딸의 성화에 대신 키운 앵두를 세밀히 관찰하며 물고기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프야님의 혜안이 그저 감탄스럽다.

 

앵두는 물속에 산다.

자정이면 작은 의식을 치른다. 세상의 불을 끄는 일이다. 불을 끄기 전, 하루치 세상 안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p.64

 

앵두는 진정한 웰빙족이다. 밤이 되면 아직 놀고 있는 친구들과 조용히 거리를 두고 물풀 뒤쪽이나 바위 뒤에 자리를 잡고 홀로 잠을 청한다. 고독은 즐길 만한 값진 정서가 아닌가. 수면 가까이에 몸을 반듯이 누이고 세상의 평화를 안고 잘 때는 고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침이면 친구들은 자고 있어도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먹는 것에는 그리 매달리지 않는다. 먹이를 주면 반색하는 기색도 없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친구들이 다 먹고 돌아서면 유유히 다가와 입을 벌린다. 소식으로 만족하고 경쾌하게 꼬리를 돌려 미끄러져 간다. 그래서인지 앵두는 친구들에 비해 몸집이 크게 불어나지 않고 건강하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본능적인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과욕하지 않기란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는 비결이다. 자유롭지 않음은 아직 버리지 않은 게 많다는 말이다. p.67 

 

프야님은 때로는 마치 우리 친언니 같다. 나는 엄마에게 혼날때면 도망가기 바쁜데, 친언니는 가만히 앉아 엄마가 내려치는 빗자루 세례를 다 맞았다. 도망갈 법도 하지만 그저 고개만 숙이고 커다란 눈에서 굵은 눈물만 뚝뚝 떨어졌다. 약 먹기 싫어하는 프야언니를 우물가에 데려가 무섭게 벌 주는 아버지나, 벌에도 아량곳하지 않고 약을 먹지 않고 버티는 언니나 대단하다. 우리 친언니까지 포함해서...

 

고등학교때 폐결핵에 걸렸을때 요양을 하기보다는 기숙사 생활을 선택하고 직접 주사를 놓아준 엄마, 선뜻 방을 내어준 가게집 주인아저씨...산다는 것은 끝없이 빚을 지는 일이라는 글과 빚꾸러기라는 제목이 와 닿는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나 대신 희생을 한 시부모님께 요즘 참 무례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 빚을 갚을 날이 올까? 

 

윤정희 주연의 영화 '시'를 보며 소설가 박상륭의 글을 인용한다.

 

소설가 박상륭은 '아름다움'의 어원을 '앓음다움'에서 찾았다. '앓음'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애쓰는 상태를 말하고 괴로움과 고통을 견디고 인내하는 마음의 작용이다.

앓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말이 된다. 허허한 웃음과 내용 없는 가벼움이 득세하는 시대에 아름다움은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써야만, 진정으로 앓아 봐야만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책을 읽자마자 빠져든다. 마치 소설처럼 가독성이 좋다. 그녀의 다음 책은 소설이어도 좋겠다. 에세이를 읽으며 밑줄을 이리 많이 그어보기는 처음이다. 간결하면서, 우아한, 고급스러운 문체는 읽는내내 프야님이 그리워진다. 그녀는 어느새 영화평론가로서, 여행 작가로서 마치 화려한 춤사위를 펼치는 듯하다. 자그마한 몸짓에서 뿜어나오는 열정, 끼는 참으로 굉장하다. 단아한 외모만으로 평가하면 절대 오산이다.   

 

우리 5공주(나비언니는 오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1월 7일(목요일) 오후 3시 야나문에서 만난다. 내 맘대로 번개를 쳐본다. 마녀고양이님, 페크언니 그리고 또!  

 

야나문 북카페 :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240 2층 (부암동)

02-394-0057

 

 

 

일은 느닷없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인연의 바람이다. 손돌바람에 널브러지는 때도 있지만 산들바람에 하늘을 나는 날이 더 많음에 감사할 일이다. 선연도 악연도 인연이다.  p.57

 

본능적인 욕구에 집착하지 않고 과욕하지 않기란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는 비결이다. 자유롭지 않음은 아직 버리지 않은 게 많다는 말이다.  p.67


 꽃만큼 유한한 것이 없다. 꽃만큼 무한한 것도 없다. 시간이 가면 추레해지는 게 어디 꽃뿐일까. 그 얄궂은 피조물이 갸륵해 보이는건 끝과 시작이 동시에 보여서다. 절정의 미로 피어오른 꽃봉오리는 뿌리와 줄기와 가지의 안간힘을 잊지 못한다. 피고 질 때를 아는 세상 모든 꽃들은 지고 피고 지는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순간과 영원의 애련한 이중주다.

살갑게 느끼지 못했을 뿐, 우리는 늘 꽃을 피워 왔다. 하나의 꽃이 아니라 다른 두 개의 꽃을. 나란히 앉아 있되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마음의 그 출발지를 생각해 본다. 향기도 색깔도 다른 두 개의 꽃다발을 하나의 화병에 담고 싶어진다. 노랑 곁에 보라, 보라 곁에 노랑. 보색의 어울림이 생각만해도 근사하다.

"할머니, 아이리스도 한 단 주세요."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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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12-27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함께할 수 있는 분들 같이 만나요!!♥

세실 2015-12-28 13:00   좋아요 0 | URL
일을 벌려놓고 조마조마했네요^^
언니도 좋아하셔서 다행이어요^^

blanca 2015-12-27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프레이야님도 축하드리고 만남도 부럽네용^^ 후기 올려 주세요.

세실 2015-12-28 13:00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도 보고 싶어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어려울까요?

프레이야 2015-12-2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벙개! 그저 반가운 얼굴들 보는 거로 해요~ 고마워요 세실님. 연말, 분주한 마음이 1월까진 이어질 것 같아요. 오공주 만남에 멀리있는 시아님이 빠져 아쉽지만 마음은 함께^^ 늘 힘과 위로가 되는 울오공주와의 인연, 고맙습니다.

세실 2015-12-28 13:02   좋아요 0 | URL
그쵸. 그쵸~~~ 반가운 얼굴들^^ 우리가 다 아는 ㅎㅎ
그날 시아언니도 혹시 오는건 아닐까요? 그랬음 좋겠어요^^
통화만 해도 어제 만난것처럼 편안한.....저에게도 큰 힘과 위로가 된답니다!!

붉은돼지 2015-12-27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나라의 연세 지긋하신 ㅋㅋ 공주님들의 야나문 회동이라..
지난번처럼 섬섬옥수라도 후기 좀 올려주세요 ^^

세실 2015-12-28 13:03   좋아요 0 | URL
음 아직 연세라고 하기엔? 이라고 했지만 제가 스무살때는 이 나이는 분명 연세였어요. 흑!!!
왕비로 바꿔야 할까요? ㅎㅎㅎ
넵~~~ 섬섬옥수는 아니지만 손가락이라도 올리겠습니다~~~

hnine 2015-12-2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필을 가독성 있게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닐텐데 저도 손에 들어온 후 금방 다 읽었어요.
저자 글의 느낌을 세실님께서 간접적으로 비유하여 표현하셨는데도 제 마음에도 폭 하고 와닿네요.

세실 2015-12-28 13:04   좋아요 0 | URL
벌써 읽으셨구나. 역시~~~
절제미와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본.ㅎㅎ
행간도, 간결한 글도 참 좋죠^^

yureka01 2015-12-27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당대의 저자에게 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유..동시대의 사람이라는 연대가 있으니까요.
저도 주문해뒀습니다 ㅋ

세실 2015-12-28 13:05   좋아요 0 | URL
저자....마냥 부러운 단어입니다^^
맞아요. 전 요즘 응팔 보면서 열광하는데 바로 동시대의 사람이라는 끈끈함이죠~~~
유레카님의 평도 기대하겠습니다.

마녀고양이 2015-12-28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책장을 펼치는데 너무나 그리운 느낌에 왈칵하는 거예요.
정을 준 사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어요.

세실 2015-12-28 16:52   좋아요 0 | URL
마고님 마음 이뻐라~~~
우리 특별한 사람들이죠.
이번에 꼭 만나요. 야나문은 종로 부암동에 있네요^^


페크pek0501 2015-12-2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게 소식을 접한 저를 용서하시기를... 세실 님도 프야 님도...

언젠가 책 내실지 알았어요. 앵두... 당연히 구입해 보겠습니다. 아, 궁금해라...^^

축하드리러 프야 님 서재로 쓔웅~~~


세실 2015-12-29 11:19   좋아요 0 | URL
궁금하죠?
참으로 재미있고, 우아한 책입니다.
프야님의 인품을 알 수 있는......
페크님 야나문 콜? 꼭 뵙고 싶어용~~~~~~~

2015-12-28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9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2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3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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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처럼 포근했던 토요일 오후, 언니랑 뮤지컬 `베르테르` 봤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원작으로 괴테의 경험담이 녹아 있다. 문학동네 이벤트에 당첨되어 무료 관람했다.
조승우가 아닌 엄기준이라 조금 아쉬웠지만 잘한다. 롯데의 전미도, 알베르트의 이상현도 멋지다.
남편이 있는 롯데에게 첫 눈에 반한 베르테르. 이루어질 수 없는 상실감에 자살을 선택한다. 책이 나왔을 당시 자살이 급증해 `베르테르 효과` 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잔잔하면서, 애잔한 스토리에 여운이 남는다.
원작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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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12-2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는 엉겹결에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지만
이후 접근할 엄두가 나질 않아요. 아주 미성숙함의 극치랍니다, 이럴 때의 저는.

잘 지내시죵~ 안부와 애정을 전해요~

세실 2015-12-21 13:34   좋아요 0 | URL
저도 예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고 싶네요~~ 글이 참 우아(?)하죠^^
물론...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ㅜㅜ

나도 마고님 보고싶다요^^ 조만간 서울에서 번개 칠까요? ㅎㅎ

마녀고양이 2015-12-21 14:19   좋아요 0 | URL
ㅇㅇ, 월화금 중 비는 시간 좀 있는데 주말은 일해요... 보고시퍼여~~~♡♡♡♡

세실 2015-12-28 13:06   좋아요 0 | URL
1월 11일(월) 얼굴 봐요~~~ 응?

마녀고양이 2015-12-28 13:49   좋아요 0 | URL
ㅇㅇ, 1월 11일 스케줄러에 미리 표기할게요,
시간과 장소 알려주세요. ^^, 신나라, 두근해요.

세실 2015-12-28 14:02   좋아요 0 | URL
야나문. 세-네시쯤?ㅎ

마녀고양이 2015-12-28 14:05   좋아요 0 | URL
아, 거기 오픈하셨다는 카페?? 오케이, 찾아볼게여~
 
하이킹 걸즈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6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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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서관에서 학교도서관지원사업으로 인근 중학교에 김혜정 작가를 파견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꿈이었고 작가가 된 현재의 삶에 만족했다. 강연은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을 주제로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구체적인 나의 꿈 리스트를 적고 나의 기분을 달래주는 방법 찾기를 강조했다. 그녀의 꿈은 구체적으로 문학상 심사해보기, 내 책이 해외 수출 되는 것, 그림 동화책 내기 등인데 대부분의 꿈을 이루었다. 스스로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좋아하는 친구와 마라톤 수다, 여행계획 짜기, 빅뱅이론 보기, 아모제의 초콜렛 쿠키 먹기 등이다.    

 

도서 하이킹 걸즈는 제1회 블루픽션상을 수상했는데, 이 상은 비룡소 출판사에서 제정한 청소년 문학을 위한 상이다. 소설은 비행을 저지른 고등학생 2명이 1명의 가이드와 중국의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비행 청소년을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도보 여행을 시키는 점에 착안했다. 주인공 은성이는 미혼모인 엄마와 할머니 손에 크면서 아빠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친구에게 폭력을 일삼는 문제아다. 보라는 모범생이었지만 친구에게 왕따를 당하고 스트레스를 도벽으로 해소하는 또 다른 문제아다. 인솔자 미주언니를 포함한 세 명은 70일 동안 중국의 우루무치 공항부터 투루판, 하미, 명사산, 둔황을 도보로 여행하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길을 하루 종일 걷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허름한 숙소에서 생활하는 일은 한창 사춘기인 두 아이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무엇보다 슬픈 현실은 두 아이가 우리나라에 돌아와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는 상실감이다. 두 아이는 여행에서 이탈하고 갖은 고생을 하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현재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대열에 다시 합류한 그들은 70일간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치고 한층 성숙한 아이들로 성장한다.

 

이 세상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단 한 명만 있으면 자살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의 이혼 후 방치, 공부에 대한 중압감, 비난은 아이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요즘 우리집 고1 아들과의 관계가 좋다. 아이의 성적은 내려놓고,  내가 업무적으로 또는 아빠와의 관계에서 힘들다, 피곤하다를 표현하니 아이는 가끔 말 없이 안아준다. 학교 갈 때 엄마의 뽀뽀를 기다리거나, 내가 화장하는 방으로 들어와 먼저 입을 내밀기도 한다. 부모는 조급해하기 보다는 기다려주고 믿어주며 잔소리 대신 사랑을 듬뿍 주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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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카스트제도는 네 개의 계급으로 나눈다. 1계급은 브라만으로 승려, 사제에 해당한다. 2계급은 크샤트리아로 왕족에 해당되며, 3계급은 바이샤로 농민이나 상인 등의 서민, 4계급은 수드라 즉 노예계급을 말한다. 수드라 안에는 불가측천민 즉 하리잔이라 부리는 최하층 계급이 있다. 카스트제도는 현재 법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오늘날에도 1억 명이 넘는 하리잔이 있으며 농촌에서는 여전히 부적정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랫동안 인도의 지배를 받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도 카스트제도가 존재했다.

 

이 책 연을 쫓는 아이(할레드 호세이지 저. 현대문학)’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배경으로 부유한 상인의 아들 아미르와 비극적 운명을 지닌 하리잔 계급의 하인 하산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아프간 이민자들의 이야기다. 뉴욕타임즈에 5년 연속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으며 미국도서관협회의 청소년이 읽을 만한 도서에 선정되었다.

 

아미르와 하산은 주인아들과 하인의 관계지만 때로는 친구처럼, 형제처럼 의지하며 지낸다. 카불의 겨울에는 매년 연싸움 대회가 열린다.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겨울 전통으로 상대방의 연줄을 끊어 연이 하나만 남을 때까지 싸움이 계속 된다. 끊어진 연은 먼저 잡는 사람이 주인이기에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라는 말을 하며 연을 끝까지 쫓아가는 일은 주로 하산이 한다. 나약하고 소심한 아미르를 못마땅해하는 아버지 바바를 위해 아미르는 연날기 싸움에 우승을 하며 아버지의 입가에 미소를 지어준다. 그날 하산은 또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아미르는 못 본체 한다. 죄의식에 시달리던 아미르는 결국 하산의 가족을 내쫓는다.

 

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는 묻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어릴 때 경험한 마음의 상처는 트라우마가 되어 내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불쑥 나타난다. 아미르는 하산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죄의식 속에 살아야했다. 하산의 아들 소랍을 양자로 입양하면서 악연의 긴 고리는 풀리고 희망적인 결말을 맺는다.

 

과거의 잘못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때 사람은 한층 성숙해진다. 나라마다 인종, 국적, 종교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존재한다. 이 책은 극심한 종교적 차별과 여전히 진행 중인 혼란스러운 정치사의 아프간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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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10-13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글을 잘 써서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글빨 이라니!!!
근데 이 책은 읽었네~~~.ㅎㅎㅎㅎㅎㅎ
암튼 사랑해 세실!!!!!~~~~~^^

세실 2015-10-13 15:29   좋아요 0 | URL
어머 부끄러워라...
넘 편애한다니깐. 에이....
역시 사랑하면 다 예뻐보이는거죠^^
나두 나비님을 사랑해용~~~~~~~~~~~~~~~~~~~~~~~

페크pek0501 2015-10-14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는 묻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아무도 없는 그 골목길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캬, 죽이네요.

세실 님의 글 구성도 캬, 죽이고요. 쉽게 쓴 것 같지만 이렇게 글 구성을 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요.

그런데 님아, 왜 책을 넣지 않았나요? 리뷰인 것 같은데 혹시 실수?

세실 2015-10-15 15:33   좋아요 0 | URL
과거를 묻긴 참 어렵죠. 과거의 트라우마는 어느 순간 불쑥 나오고.....또 아파하고...
이 글이 제일 와닿았어요^^ 어쩜 이리도 감성을 깨우는지....소설 읽는 즐거움이죠.
정말요?
사실 이 글 쓰면서 많이 힘들었거든요. 거의 하루를 소비한듯요. 왜그리 쓰기 힘들던지요.
글 공부 더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책 넣었답니다. 감사해요^^

수퍼남매맘 2015-10-14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다보니 저도 읽은 책이네요. 어쩐지 제목이 낯설지 않다 했죠.
끝까지 읽지 못 하고 책이 행방불명되어 결말을 아직 몰라요.

세실 2015-10-15 15:34   좋아요 0 | URL
음 가독력 굉장히 뛰어난데......재미있어요^^ 꼭 찾아보시길요.
결론은.....따뜻해요. 그리고 과거의 잘못은 언제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내가 해결해야할 숙제라고요! ㅎㅎ
영화도 나왔답니다.
 
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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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투명하다. 가을에는 딱딱한 책 보다는 말랑말랑한 소설이 좋다. 그동안 세계문학전집은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으로 멀리 했는데 요즘 책의 깊이와 읽는 맛이 느껴지는 고전문학이 끌린다. 주말에 가끔 중고서점에 들러 전집을 수집하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다. 책 표지와 형태가 동일한 전집은 책장에 꽂아두면 빛이 난다. 최근에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민음사)’을 읽었다. 서머싯 몸은 의학을 전공했지만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그의 대표작은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 ‘면도날’ 등이 있다.

 

철학자 강신주는 감정수업에서 잔혹함에 대한 감정을 다루면서 이 소설을 예시로 들었다. 주인공 키티는 바람둥이 찰스와 외도한 사실이 들통 나자, 남편 월터에게 그동안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도리어 화를 낸다. 아내의 외도와 당당함에 화가 난 월터는 그녀에게 잔인한 말을 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결국 월터는 키티에 대한 복수와 잔혹함으로 콜레라가 발생한 도시로 데려가고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충실한다.

 

삶이 무료했던 키티는 사람이 죽어가는 도시에서 수녀원의 고아들을 돌보며 의미 있는 삶을 시작한다. 동료 수녀와 환자들이 죽어가는 그곳에서 늘 한결같이 고아를 챙기는 원장 수녀의 모습을 보면서 키티는 숭고한 사랑의 감정도 느끼게 된다. 원장수녀는 키티에게 마음을 얻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자신이 사랑을 주고 싶은 대상처럼 자신을 만들면 되지요.” 라는 말을 남긴다. 시간이 흐르고 키티는 월터과의 관계를 회복하지만 그는 콜레라에 전염되어 죽는다. 키티는 늦게나마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홀로 남겨진 아버지와 남은 여생을 보낼 준비를 한다.

 

이 책은 허영과 욕망이라는 인간의 굴레를 극복해가는 주인공 키티의 아픈 성장을 통해 진정한 사랑,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성장소설이며 러브스토리다. 사랑 없이 나이에 떠밀려 결혼한 키티에게 찰스는 불꽃같은 사랑을 깨닫게 해준 존재로 생각했다. 그러나 키티가 손을 내밀 때 찰스는 망설임 없이 외면한다.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던 관계는 한때의 어긋난 욕망이었다작가는 주인공 키티의 관점에서 여자의 일생을 다루면서 감정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다뤘다. 첫 만남의 설렘, 결혼, 배신, 갈등, 용서, 화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소설은 페인티드 베일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씩이나 영화화 되었다. 얼마 전, 배우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오래된 영화를 봤다. 영국의 고풍스러운 풍경과 결혼 후 살게 된 중국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펼쳐진다. 소설과 영화는 다른 빛깔로 여운을 남긴다. 소설이 주인공의 심리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영화는 주인공의 절제된 감정과 시각적 풍경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췄다. 대부분 원작보다 영화가 못하지만, 인생의 베일은 소설 읽는 즐거움과 영화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깊어가는 가을, 깊이 있는 한 권의 고전 소설을 읽고 동명의 영화로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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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10-02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우리 삶은 베일에 가려져 모호하지만 다채로운 감정들, 경험들이 그려지지요. 고통과 행복의 색채까지도 어쩌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감각 영역의 안팎에서 제 빛을 내고 있을지도‥ 삶이 내게 복수를 하고있다면 나를 돌아보고 재정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성장하는 키티(나오미 와츠까지도)의 모습이 아프기도하고, 아름다웠어요. 다시 보고싶은 책과 영화^^ 이 영화 속 에드워드노튼 참 인상적이지요. 다른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특히나.

세실 2015-10-03 17:54   좋아요 0 | URL
다채로운 강정, 경험들이 삶을 더 성숙하게 하겠지요. 강신주가 뭐든지 직접경험을 많이 하라는 말이 요즘 제 맘에 맴돌고 있습니다.
키티보다 현명하고 지적인 월터의 복수가 야속하지만, 그냥 현재에 머무를수는 없겠지요.
대가를 크게 치른 둘이지만, 키티의 미래는 좀더 따뜻하고 흔들리지않는 삶이 될듯합니다.
에드워드 노튼! 많이 불쌍했어요~~ 자기만의 색이 있 는...

페크pek0501 2015-10-02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이 소설을 읽고 페이퍼를 올린 적 있어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지 않나요?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사색적인 문장을 쓰는 작가지요.
영화로는 못 봤는데 보고 싶군요.
같은 책을 읽는 우리, 참 좋습니다. ^^

세실 2015-10-03 17:58   좋아요 1 | URL
페크님 글과 강신주 감정수업 덕분에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한편의 드라마처럼 흡입력 굉장했어요~~
영화도 따뜻합니다. 풍경 스케치가 아름다워요~~~ 참 우아한 나오미 와츠! 허리는 늘 꽂꽂하게 세워주는 센스^^

라로 2015-10-03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깔끔하고 세련된 리뷰 덕분에 안 읽었어도 읽은 것 같다는!!!!! 영화도 찾아봐야지!!

세실 2015-10-03 18:02   좋아요 0 | URL
늘 힘이 나는 댓글 감사합니당~~ 책은 벌써 읽었는데 리뷰 쓰기는 참 힘들었어용. 요즘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
영화 굿이어요~~~

라로 2015-10-04 04:20   좋아요 0 | URL
이사 갈 때가 된 거야!!!
암튼 내년 올거지???? 나도 돈을 모아야겠다~~~~ㅎㅎ 신난다!!👍😆❤️

세실 2015-10-04 08:16   좋아요 0 | URL
이사....팔려고 내놓은 땅도 아파트가 들어선다니...
참 희한하게 꼬여요.
내년 8월말 9월초! ㅋ

moonnight 2015-10-03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에드워드노튼주연의 그 영화가 무려 오래된ㅠㅠ;;;세번이나 영화화된 건 몰랐어요@_@; 세실님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세실 2015-10-03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7년도에 나왔으니... 시간 참 빠르죠?
중국의 작은 강을 배경으로한 풍경이 참 예뻤어요~~ 어디서나 꽂꽂하게 서있는 나오미 왓츠도 그렇고ㅎ
가을에 어울리는 책이랑 영화네요~~~

yamoo 2015-10-0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 님의 <리뷰>로 읽는 <인생의 베일> 좋군요!

세실 2015-10-04 08:16   좋아요 0 | URL
이번 리뷰는 쓰기 힘들었지만 이렇게 힘을 주시니 용기가 생깁니다. 리뷰는 책 읽고난 직후 바로 써야...ㅎ

2016-04-05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참 좋아요. 최근에 인생의 베일 추천받고 읽어보려구요. 페인티드베일은 저도 참 인상깊게 봤어요.나오미왓츠의 원피스가 하나같이 멋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