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김정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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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출간한 펭귄클래식판 '오만과 편견'은 한정판으로 발간했고, 표지가 빨간 꽃무늬 천의 하드커버로 되어 있어 소장 가치가 있다. 책을 들기만 해도 신입생때 몇 권 가슴에 끼고 다닐때의 우월했던 감정이 떠오른다. 얼마전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를 보면서 책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표지에 끌려 한정판이라는 유혹으로 망설임없이 구입했다.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독신의 남자는 아내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다들 인정하는 진리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므로, 이런 남자가 어떤 동네에 이사를 오면, 그 남자가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해도, 동네 사람들은 그 남자를 자기 딸 자식이 차지하기에 마땅한 재산으로 여깁니다.

 

소설 '오만과 편견'은 고전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역사적, 시대적 배경이 없다. 대부분의 고전은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안나 카레니나' 처럼 시대적 상황과 어우러져 내용이 전개되는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베넷가 자녀의 결혼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의 생몰 연대를 참고하면 18세기 말인데 이 즈음 영국은 평온한 일상이 이어진듯 하다. 베넷 부인의 최대 목표는 좋은 집안, 돈 많은 집안에 자녀를 결혼시키는 것이다. 베넷가 딸들의 일상은 공부하느라 찌들기 보다는 그저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파티에 참석하고 친척집으로 장기간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나도 이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단순하면서 지금보다 훨씬 만족도 높은 삶을 살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엘리자베스처럼 부르조아 계급에 태어나야 하는 전제가 따르겠지만.

 

다섯명의 딸은 제인과 엘리자베스, 메리와 캐서린, 리디아로 양분된다. 제인과 엘리자베스가 외모도 아름답고, 지적 수준도 있는데 반해 메리는 오로지 책만 읽거나 캐서린과 리디아는 남자와 외모에만 관심있는 우둔한 아이들로 묘사된다. 베넷씨와 베넷씨의 아내는 상반되는 성격으로 베넷씨가 교양을 갖춘 온화한 아버지라면 부인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푼수 아줌마다.

 

베넷 씨는 재기 발랄함과 냉소적인 기질, 내성적인 기질, 충동적인 기질이 묘하게 뒤섞인 인물이라 23년을 같이 산 아내도 베넷 씨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내의 머릿속을 이해하기는 비교적 쉬웠습니다. 베넷 씨의 아내는 머리도 나쁘고, 아는 것도 없고, 변덕스러운 여자였습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자기가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평생의 일은 딸들 시집보내기였고, 평생의 낙은 이웃집에 놀러 다니면서 소문 퍼뜨리기였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다. 엘리자베스의 소탈함과 활달함, 다아시의 오만함 뒤에 보이는 판단력과 학식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기폭제가 된다. 연인 관계의 시작은 나의 부족한 면을 상대가 갖고 있을때 시작된다. 옆지기와 처음 만났을때 '태백산맥', '장길산', '토지'를 읽었다는 말에 반해 밤 12시까지 책 이야기를 하며 결국 헤어질때는 손까지 잡았던 그때가 떠오른다. 나보다 똑똑하다는 선망이 결혼까지 이어지게 했다. 베넷 부인의 푼수 기질과 남자 꽁무니만 쫓아 다니는 동생들의 방탕한 행실은 결혼에 걸림돌이 되지만, 다아시의 오만과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무너지면서 해피앤딩의 결말이 된다.

 

'오만과 편견'은 우아하면서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이다. 자칫 통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사랑이 주제이지만 여류 소설가의 섬세함이 묻어있는 등장인물의 세세한 성격 변화는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경어로 번역된 문체는 신선함과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어 읽는내내 행복했다. 나라면 그 상황에서 이렇게 했을텐데 하는 감정 몰입이 되어 마치 소설속 주인공으로 빠져드는 느낌도 들었다.  

 

곧 대학생이 될 딸은 이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다.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해야 하지만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믿는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는 준비없이 시작하기 보다는 관련 책을 읽어 넓은 시야와 유연한 사고를 가졌으면 한다. 이 책 외에도 서두에서 언급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안나 카레니나', '위대한 개츠비', '사랑의 기술'을 추천했다.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딸은 요즘 그동안 보지 못한 TV와 스마트폰에서 떠날줄을 모르며 가끔 베르나르의 '개미'를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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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4-11-19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따님이 이번에 수능 봤지요.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합니다.

세실 2014-11-20 17:37   좋아요 0 | URL
넵 감사합니다.
벌써 발표 났어요. 약한 곳에 합격해서 그저 아쉽기만 합니다.....

프레이야 2014-11-25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만과 편견, 표지부터 사랑스러워요. 펭귄클래식^^

세실 2014-11-25 14:41   좋아요 0 | URL
그쵸? 헝겊이라 감촉도 부드러워요^^ 지난주 집 책장 정리하다보니 민음사 오만과 편견도 있네요. ㅎ
 
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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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언니 이름은 선화다. 김이설 작가의 신간 '선화'를 보는 순간 언니가 떠올랐다. 어릴때부터 순했던 언니는 욕심 많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했던 나에 비해 소극적이고 조용한 아이였다. 엄마가 회초리를 들면 나는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반면에 언니는 그대로 앉아 매를 맞았다. 엄마는 가끔 '미련 곰퉁이' 라는 표현을 썼다. 언니는 대학 시험에 떨어지고는 전문대학을 가거나 재수를 하지 않고 취업을 했다. 백화점에서 전화 교환수를 하며 내가 대학에 다닐때 용돈을 주고 옷을 사주었다. 그땐 집을 떠나 언니와 자취 했는데 밥을 하고 청소를 하는건 언니 몫이었다. 아무도 내게 밥을 하거나 청소를 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니는 결혼초에 잠시 고생을 했지만, 지금까지 전업주부로 세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껏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만약 언니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다면 미안했을 것이다. 

 

소설 '선화'는 작가의 전작에 비해 많이 부드러웠고 많이 따뜻했다. 여전히 소외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다루었지만 극한 상황으로 치닫기 보다는 적절한 수위를 조절하며 해피앤딩의 결말을 맺었다. 화염상모반을 앓고 있는 선화는 오른쪽 얼굴이 검붉은 반점으로 뒤덮여있어 어릴때부터 숨어 지내는 아이였다. 선화가 겪었을 상처에 마음 아팠다. 내 오른쪽 다리에도 제법 큰 선홍빛 반점이 있다. 한때는 수영장 가는 것을 꺼려했고 미니 스커트를 입을때면 파운데이션과 파우더를 듬뿍 바르고 다녔다. 가끔 얼굴에 붉은 반점이 있는 사람을 보면서 그나마 나는 잘 보이지 않는 다리에 점이 있음을 감사했다. 혹시 유전일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태어났을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몸에 붉은 반점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선화는 학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할머니에게도 구박받는 천덕꾸러기였다. 가족 앞에서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착하게 굴던 언니는 선화만 있는 자리에서는 이중인격자가 되어 선화를 구박하고 모질게 대한다. 선화의 가방에 책을 빼내고 화침으로 채운 날, 선화는 그 화침으로 언니 얼굴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나마 선화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던 엄마는 자살을 한다. 선화는 엄마가 하던 꽃집을 운영하며 독학으로 꽃꽂이를 배우고 제법 예쁜 꽃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기쁨을 준다. 영흠에게 풋사랑을 느끼기도 하지만 선화 곁을 지키고 있는 왜소증의 병준이와 한줄기 햇살이 비친다. 불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사랑이 서로에게 필요하다. 언니와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며, 꽃을 통해서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책이 얇아 몇시간만에 다 읽었지만 오랜 여운이 남는다. 언니, 가족, 상처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아이, 신랑 등 내 가족만 챙기기보다는 주변의 소외받는 사람들을 더 따뜻하게 안아 줘야겠다는 긍정의 에너지도 생긴다. 얼마전 중앙도서관 강연회에서 들은 "남의 장점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 장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박웅현 CD(Creative director)의 말도 떠오른다. 선화가 성형수술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것이라는 믿음이, 희망이 생긴다. 

 

작가는 꽃집을 운영하는 선화를 통해 여자의 로망인 '꽃집아가씨'의 꿈을 이룬듯하다. 하늘거리는 연분홍빛 리시안셔스, 보랏빛 수국, 노오란 프리지아, 장미를 닮은 크림색 라넌큘러스를 조합한 다발은 생각만으로도 사랑스럽다. 책을 덮고나니 꽃을 선물 받고 싶어진다. 아니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이 좋겠다. 

 

문득 언니가 보고 싶다. 지금도 내게 한없이 베풀어주는 희생적인 언니. 내가 하나를 주면 둘, 셋을 해주는 착한 언니. 나는 지금도 언니에게 옷이나 가방을 사달라고 투정 부린다. 나보다 해외를 더 자주 나가는 언니 모습이 보기 좋다. 얼마전 터키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 선물도 챙겨왔다는데 핑계겸 이 책이랑 꽃다발 사들고 찾아 가야겠다. 언니야 사랑해! 늘 내 편으로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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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10-0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 님은 좋겠다.ㅋㅋ 저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릴 땐 여동생이 있는 친구가 부럽더니 이제 나이 먹고 보니 늘 내 편이 되어 줄 것 같은
언니가 있는 친구가 부러워요. 세실 님은 그런 언니도 있고 무슨 복이래요...

저는 다리가 마르고 못 생겨서 미니스커트를 못 입으니 세실 님처럼 파우더 바르고라도 입을 수 있는 게 부럽네요.
정말이에요.

에세이를 읽느라고 소설을 못 읽었는데 저도 소설을 읽어야겠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세실 2014-10-08 16:54   좋아요 0 | URL
언니가 있는것도 참 복이죠?
울언니는 부모님께도 저에게도 참 잘해요. 정도 많고, 배려심도 깊고.....
제가 복이 참 많죠?
딸내미가 `엄마는 좋겠다. 언니 있어서....`하는데 찡하네요.

이런....파우더가 지워져서 옷에 얼룩이 묻어나고, 오후 되면 파우더도 다 지워진답니다. 사람들이 ˝어머 그거 뭐야? 멍이야?˝ 하면서 유심히 볼때 ˝아냐 점이야....˝ 하면 측은하게 바라보는 눈길도 싫었어요.

이제는 뭐 핫팬츠에 당당히 맨 다리도 드러내고 다닌답니다^^

다락방 2014-10-0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글은 평소의 페이퍼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참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쉽게 읽히는 터라 아, 역시 도서관장님은 글쓰기부터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 책을 읽고 기본적으로 `따뜻해졌다`는 의견을 같이하지만 바깥으로 표현해내는 바는 저와 이토록 다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세실님.

세실 2014-10-08 16:57   좋아요 0 | URL
어머 감사합니다^^
요즘 서평쓰기에 한계를 느꼈거든요. 매일 똑같은 스타일도 식상했구요.
나름 쉽게 쓰려고는 노력했답니다. 난해한 단어를 싫어해요.
전 님의 글을 읽으면서 참 맛깔스럽게, 감정도 풍부하게 잘 쓰시는구나 부러웠답니다. 가끔 욕이 튀어나올땐 웃기도 하면서....그만큼 솔직하신거죠.
우리 서로 윈윈하는 사이? 아 힘나라~~~~

수퍼남매맘 2014-10-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이름이 책 제목이라니... 꼭 봐야겠는 걸요.
세실 님 언니 이름과도 같다니 반갑네요.
이름 때문에 제 별명이 선화공주잖아요. ㅎㅎㅎ

세실 2014-10-10 09:51   좋아요 0 | URL
동명이면 더 와 닿으실듯요^^
언니 이름도 선화, 제게 붉은 반점이 있어서인지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어요.
울 언니 별명도 선화공주^^ 지금은 아닌듯요 ㅋㅋ

2014-10-08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0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4-10-0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끝이 찡해져요. 저도 연년생의 여동생이 있는데 저는 관계가 역전되서 여동생이 저한테 양보도 많이 하고 베풀기도 많이 하고... 그런 언니가 있는 세실님이 한없이 부럽기도 하고 저도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갑니다.

세실 2014-10-10 09:56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몸에 점이 있어서인지 얼굴에 상처 있는 사람 보면 유독 마음이 쓰여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울 언니는 정말 천사예요. ㅜㅜ
그래서 더 복을 받는다는 생각도 합니다. 전 좀 이기적이거든요.
블랑카님은 말씀만 그렇지 동생한테 잘하실듯요. 따뜻하시잖아요~~~

hnine 2014-10-09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소설이 나왔네요 ^^ 사러가야지~
가족. 모든 문제와 상처의 근원이자 치유의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 수위가 좀 부드러워졌다는 말씀에 휴, 안도의 숨도 내쉬면서, 또 한편 그녀만의 개성이 어떤모습으로 달라져있을까 궁금증도 생겨요.

세실 2014-10-10 09:5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전작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해서 좋아요.
나이가 들어가며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여유도 생기죠. 나이 먹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외계층의 아픔을 포장하지 않고 민낯으로 드러내요^^

순오기 2014-10-10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과 작가님 만나기 전에 이 책을 읽고 가야겠네요.
작년에 사인본 받은 <환영>도 몇 달이 지난 후 읽었는데...

세실 2014-10-10 09:58   좋아요 0 | URL
제가 그 날 사드릴까 했는데 미리 읽고 오시면 더 좋을듯요.
그날 이 책으로 토론해도 좋겠어요^^
이 책은 얇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어요.
아 바람직한 5공주 모임. ㅎㅎ

프레이야 2014-10-1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바람직한 선 자매
저도 읽고 갈게요. 언니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해요. 난 맏이라..
그나저나 언니분 터키 잘 다녀오셨네요. 터키 요즘 급감이래요, 위험해서.
12월초 예정하고 있는데, 어째야될지... 그땐 나아지려나..

세실 2014-10-13 09:58   좋아요 0 | URL
그쵸? 여동생도 좋지만 언니가 있으면...막 투정도 부리고, 의지가 되요^^
받아도 덜 미안하고. ㅎㅎ
그렇구나. 울 언니는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랍니다. 그런거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ㅎ
고 2 딸내미 두고 형부랑 같이 9박 10일로 다녀왔어요^^
 
공부 상처 - 학습 부진의 심리학 : 배움의 본능 되살리기, 개정판
김현수 지음 / 에듀니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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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둘째가 곧 고등학생이 된다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겪은 시행착오를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바심을 내지만 아이는 평범한 성적에 만족한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는데 그 말은 공부 못하는 아이의 합리화이며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잔소리를 늘어놓게 된다아직 사춘기의 터널을 걷고 있는 아이에게 마음을 다치지 않고 공부에 흥미를 유발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데,  도서 공부 상처 (김현수 저. 에듀니티)’가 눈에 들어 온다.

 

첫 장을 펼치니 사랑이 독을 갖고 있을 때부모나 교사가 사랑에 독이 있을 때아이들이 자라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저자의 자필 사인이 적혀 있다저자 김현수는 신경정신과 의사이며 청소년 관련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인터넷 게임, 학교 폭력, 인터넷 중독, 가정폭력 등 주로 청소년들의 권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은 제목처럼 청소년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공부 때문에 받은 상처에 대해 보듬어주는 책이다. 서울대 김동일 교수의 추천사 공부, 상처와 힐링의 변주곡이라는 제목이 와 닿는다공부 상처는 주로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비교, 획일적인 방식의 수업, 공부와 놀이의 적대적인 관계, 일방적인 강요, 공부 방법의 부재 등 다양한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공부에 상처를 받은 아이는 학습 부진아로 이어진다.  저자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안하는 아이라고 강조하지만 공부에 흥미를 잃은 아이가 되는 것이다.

 

학습 부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첫째, 중산층의 규범과 말하기를 익히게 할 것. 둘째, 책을 친숙하게 여기게 할 것,  셋째, 계획을 세우고 시간 관리를 하게 할 것이 세 가지를 강조한다전 세계의 학교 교육은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고상한 선생님의 언어 등 중산층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정에서도 드라마, 쇼 등의 시청보다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신문의 사설을 읽으며매일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는 독서 및 공부 습관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 점을 강조한다

 

'헛똑똑부모증후군.' 상담을 하러 오는 엄마들을 보면서 공통점을 찾다 보니 이런 결론을 얻었다. 예전에 몇몇 방송 매체에서 이 개념을 이야기해 달라고 해서 소개한 적도 있다. 헛똑똑 엄마들은

 

첫째, 정서적으로는 차갑고

둘째, 도덕적으로는 올바르고, 그래서 잔소리가 많고

셋째, 체면과 평가 목표와 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시하고

넷째,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자녀에게 많은 것을 해 주고 있다고 믿으며

다섯째, 그러나 자녀들은 그런 엄마(아빠)를 싫어한다.

 

혹시 당신도 헛똑똑 부모는 아닌가? 그렇다면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뜻한 부모, 너그러운 부모, 자식을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는 부모, 잔소리가 적은 부모, 아이를 그 자체로 진짜 좋아하는 부모,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할 줄 아는 부모,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고 움직여야 한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엄마는 학원이나 학교 교육에 의지하고 그저 공부하라는 잔소리만 할뿐 실제적인 공부 코칭은 하지 않는다. 아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공부 계획을 세우면 평가하고 격려해 주는 것은 부모 몫이다. 예를 들면 매일 영어 단어 10개 외우기, 수학 문제 1장 풀기, 사설 1개 읽기, 한국단편소설 100쪽 읽기 등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반이라도 성과가 나타나면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다. 아이가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꿈을 찾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요즘은 마지못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얼마 전에 작은 아이 학교에서 시험 감독을 했는데 시험이 시작된 지 10분 만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20%는 되었다.‘아이 엄마는 이 사실을 알까?’ 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건드렸지만 아이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의욕이 일어날까? 방학때 부모와 함께 매일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공부 습관을 들이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을텐데....그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학습 동기를 일깨워 주는 것은 교사와 부모 몫이다. 그 아이 엄마를 만난다면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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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4-07-2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우리 딸이 읽어봐야 할 책인 듯합니다.
방학 동안 딸 아이 공부 봐 주느라 더 사이가 안 좋아지는 듯해요.
제 인격의 모자람이죠.
선배들 이야기가 부모가 자녀 가르치다 더 사이 안 좋아지니 그럴 때는 학원 보내는 게 더 낫다고 하네요.
과연 학원만이 답일까요?

세실 2014-07-30 10:03   좋아요 0 | URL
일주일 단위 계획 세우고, 실천했나 안했나만 체크해도.....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엄마가 강압과 방임을 반복하는듯요^^
음....
국어는 그저 사설 읽기와 독서뿐^^
사회도 역시 독서뿐^^
영어, 수학은 아무래도 학원에 다니면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학습이 되겠지요?



페크pek0501 2014-07-3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공부가 싫다면 공부라는 것도 재능이 필요한 건데 이쪽으로 아예 흥미도 뭣도 없다면
그런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학교에 있었으면 해요.
전 학생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순 없지 않겠어요. 그럴 필요도 없고(제 생각엔)
수업 시간이 지루하고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학원에서 예능 쪽으로 재능을 키우는 고등학생들이 있어요.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차라리 학원에서 재능을 키우며 보내고 싶다는 아이들이요.
그런데 교육 시스템이 학교 수업이 끝나야 학원에 갈 수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엎드려 자던 학생이 혹시 학원에서 예능을 열심히 배우고 밤늦게 귀가해 피곤해서 그런지도 몰라요.(고등학생의 경우,
그런 학생이 많대요.)
예능의 경우 내신 성적이 들어가지 않고 실기만으로 뽑는 대학도 있거든요. 수시모집.
그러니 엎드려 있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연예인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공부를 못했다는... ㅋ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건, 맞는 것 같아요.

헛똑똑 부모에 대한 글, 무척 공감합니다.
나를 포함해 모든 부모는 그저 공부 잘하는 자식이길 바라지요. ^^

세실 2014-07-31 10:00   좋아요 0 | URL
부모의 관심과 고민이 많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어느 한곳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도 큰 행복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특성화고가 생겼는데 아직 우리는 무조건 일반계를 보내고 있으니.....
미용, 제빵, 패션에 관심있는 아이가 특성화고 관련 학과에 다닌다면 행복하겠지요^^
정규 수업만 하고 대부분 일찍 하교 하더라구요^^
딱히 할게 없어서 쉽게 제빵할래요! 하는것도 문제지만요^^
친구 딸내미가 공부도 잘하고 발레도 잘하는데 일반계를 보낼까 고민하다가 예술고를 보냈어요.
학교 정규수업만 끝나면 발레를 배운다고 하니 아이의 만족도는 최상입니다.

일부 아이들은 공부를 못하는것이 아니라 안해봐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책 읽고, 습관처럼 공부하는 분위기에서 자란다면 공부를 어느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손을 놓치는 않겠다는 생각.....
부모의 강압과 방임의 반복도 아이를 지치게 하는듯 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딱히 소질도 없는 우리 아이들 같은 경우엔
그래도 공부만이 살길이겠지요?
적어도 학창시절엔 행복은 곧 성적순인듯 하옵니다. ㅎㅎ

페크pek0501 2014-08-03 16:19   좋아요 0 | URL
옳습니다!!!

세실 2014-08-04 10:58   좋아요 0 | URL
^^
편안한 일주일 되세요, 페크님^^

희망찬샘 2014-08-03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반성과 함께 읽어야 할 책이군요.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잔소리꾼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들어 요즘 힘든데,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와 반성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세실 2014-08-04 11:05   좋아요 0 | URL
울 아이들 둘만으로도 힘든데 반 아이들 전체와 씨름하시는 샘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는 마음 들더라구요. 아직도 여행중이신거죠? 아이들과 얼마나 많은 이야기거리가 생기실까요.
살아가면서 힘들때 꺼내보시면 좋을듯. 앨범도 꼭 만드세요~~~
이 책 작은 도움이 되실듯^^
 
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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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울때는 평일에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상주하는 이용자가 많다자료실에 근무하면서 도서 연체자에 대해 제재를 했는데 자신을 비웃었다며 갑자기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친절하게 대한다고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했던 것이 그의 눈에는 비웃음으로 비쳐진 것이다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면서 그의 화가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렸던 적이 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감정노동자의 설움을 그때 느꼈다감정노동자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수반하는 노동을 말한다산업이 고도화되고 서비스업 종사자가 늘어나면서 등장한 노동형태다대표적인 직업으로 연예인, 승무원, 홍보 도우미, 판매원, 외판원 등이 있다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면서 참을성이 부족하고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  타인을 배려하기 보다는 내 감정에 따라 상처가 되는 말을 공개적으로 쏟아내기도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원인을 알아보기 보다는 문제해결에 급급한 현실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는 사람 탓이 아닌 문제에 대해 왜 그러는지, 한 단계 더 나아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필요하고 이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감정독재'는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이라는 부제로 다양한 분야의 학자에 의해 논의된 이론을 접목해 답을 제시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복권을 계속 살까? 는 몬테카를로의 오류를 대입해서 다룬다이 오류는 몬테카를로에서 일어났던 카지노 사건을 말하며 도박사의 오류라고도 한다. 복권이 당첨될 확률이 낮은 것을 알면서도 계속 구입하는 이유는 그 다음에 사면 당첨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 그동안 잃었으니 이번엔 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카지노에서의 잘못된 기대를 의미한다. 도박, 복권 등은 잃을수록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에는 재산까지 탕진하는 경우가 감정 독재의 가장 큰 손실일 것이다.

 

부작위 편향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손실보다 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손실에 덜 민감한 현상으로 개입하지 않음을 최선으로 삼는 태도를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속담과도 연관이 있는데 이런 현상은 자칫 도덕불감증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가짜약을 통한 플라시보 효과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준다. 불쾌하거나 지루한 현상을 잘 견디게 해주는 통제의 환상은 나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취업에 성공하면 내 실력 때문, 실패하면 세상 탓을 하는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적 편향은 개인주의, 지역주의를 양산한다.

 

감정은 우리가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적절한 감정의 표출은 열정, 긍정의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지나치거나 무심한 감정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저자가 다룬 50가지 이론에 수긍이 가지만 이론에 얽매이기 보다는 감정과 이성이 적절히 조화된 판단이 필요하다.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고 했다는 저자의 인용이 와 닿는다.

 

우리는 우리보다 뒤처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행복해하기보다는 우리보다 앞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불행해한다.

                                                                                                           - 프랑스 사상가 미셸 몽테뉴

 

현실보다는 비교가 사람을 행복하거나 비참하게 만든다.

                                                                                                           - 영국의 성직자이자 작가인 토머스 풀러

 

행복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

 

거지는 자신보다 많은 수입을 올린 다른 거지들을 시기할망정 백만장자를 시기하진 않는다.

                                                                                                           -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셋

                                                                                                      

                                                                                                              p.143

 

 

문전 걸치기 전략은 상대에게 처음엔 부담감이 적은 부탁을 해 허락을 받으면 그 다음엔 점차 큰 부탁도 들어주기 쉽게 된다는 것으로, 마케팅 분야 등에서 활용하는 테크닉이다.

                                                                                                             p. 149

 

예전에 너를 한번 도와준 일이 있는 사람은, 네가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보다 더욱더 너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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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07-1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맞는 말이네!! ㅎㅎㅎ예전에 너를 한번 도와준 일이 있는 사람은, 네가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보다 더욱더 너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정말 그런가?? 갸우뚱~~~~ 막 수긍이 가려고 함~~~.ㅋ(귀가 얇아서리;;;;)
그나저나 '책은 도끼다' 사랑은 여전하시구려!!!!!^^
공감과 댓글 풀서비스!!ㅎㅎㅎㅎ

세실 2014-07-18 17:27   좋아요 0 | URL
그쵸? 맞는 말.....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었을때 그 사람이 기뻐한걸 보고는 또 도와주고 싶은 그 느낌? ㅎㅎㅎ
아롬님 돌아오시니까 느무 반갑네요.
아롬님 서재도 막 활기가 넘쳐요~~~
책은 도끼다에 대적할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용.
공감도 댓글도 땡~~~~~ 큐!
굿 나잇*****

페크pek0501 2014-07-18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이퍼에 인용한 적이 있는 책입니다. 읽으셨군요?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를 주는 이런 책들을 좋아합니다. 제가 가장 알고 싶은 건 인간에 대한 것.
그리고 가장 흥미로워요. 인간이면서 인간을 모르기 때문이죠.

"예전에 너를 한번 도와준 일이 있는 사람은, 네가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보다 더욱더 너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
- 이 이유는? 나를 좋게 생각할 텐데 이번 일로 실망시키지 말아야지, 하는 심리 때문인가, 생각해 봅니다. ^^

세실 2014-07-22 17:25   좋아요 0 | URL
페크님 서재에서 봤어요~~~
저도 이런 책 좋아해요.
읽고 나면 '너는 모르는 사람의 심리를 나는 알고 있다' 하며 선점한 느낌? ㅎㅎ
요즘 집에서 선풍기 틀어놓고 책 읽으며 뒹글거리는게 좋아요^^

이 이론은 의외였어요. 나를 한번 도와준 사람은 내가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보다 더 나를 좋아해 준다니....
님 말씀 듣고 보니 수긍이 갑니다^^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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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중학교 3학년인 아이는 자존심이 세다. 엄마의 눈빛이나 손짓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즉시 지적한다. ‘엄마, 못 알아 들을 수도 있지. 왜 기분 나쁘게 쳐다봐?’ 내 표정에서 모멸감을 읽은 것이다. 사회생활에서는 나름 밝은 미소로 인정받지만 가족에게는 짜증과 화를 잘 내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도서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김찬호 저, 문학과지성사)’은 내 가족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하게 보낸 모멸감을 깨닫고, 내 마음과 행동의 습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멸감은 5장으로 나누어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각 장의 키워드(수치심, 모욕, 감정, 연민, 에고 등)에 어울리는 현악 사중주의 연주곡은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1장은 수치심, 모욕, 모멸감의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 다룬다. ‘자살은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그 방향이 타인에게로 향하면 살인이 된다. 둘 다 바탕에는 복수심이 깔려 있다. 모멸감은 복수심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2장은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정서를 가리키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나라 언어, 신분제는 붕괴되었지만 신분 의식은 지속되는 심리를 다루었다.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반말과 폭언을 일삼는 사람의 내면에는 다른 곳에서 똑같은 차별을 당하고 모멸감을 느끼며 살았던 결과라는 점에 수긍이 간다. 3장은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 등의 스펙트럼을 통해 모멸감의 구체적인 의미를 다룬다. 4, 5장은 인간적인 사회,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출하며 사는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한 사회에 대해 말한다.‘희망의 인문학의 저자 얼 쇼리스는 우리나라의 노숙자를 방문한 자리에서 첫 마디가시를 좋아하시나요? 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알려주시겠어요?”노숙자들은 비록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겉모습만으로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었던 그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해준 질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울림이 있는 시간이 되었다.       

       

 

모멸감의 상반되는 말은 자존감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살인죄로 수감 중인 재소자들을 심층 인터뷰 했는데, 범죄의 진짜 이유를 설명할 때 그 놈이 나를 깔보았다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한다.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주는 말 한마디는 때로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존감을 키위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수첩에 적어 놓고 하루에 하나씩 실천해 보면 어떨까? 내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이 어린 사람에게 반말하지 않기, 품위를 잃지 않기, 내 감정의 주인이 되기, 타인에게 진정성 있게 대하기. 감사하며 살기. 그리고 또?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자기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무지하다. 또는 '터치 오브 라이트' 영화의 치에처럼 현실의 조건에 발이 묶여 있거나 유시앙의 경우처럼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자기 안에 있는 열정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이나 사회가 부여한 편견에 의해서 일정한 틀 안에 자신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 굴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재능을 상대방의 눈으로 발견하게 되고, 삶을 나누는 가운데 새로운 꿈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싹을 틔운다.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p.254

 

 

언제부터인가 힐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치유는 단순히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의 새살이 돋아나기 위해서는 내면의 어떤 힘이 약동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소망과 가능성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을 꺼내어 존재의 날개로 펼칠 때 기꺼이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우정과 환대가 곧 힐링이 된다. 살아 있음을 축복하면서 존재를 중심으로 맞아들이는 만남에서 우리의 생애는 고귀해진다.                 

                                                                                                                   p.259

 

 

중심잡힌 사람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모두 균형 있게 품고 있으면서,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표현한다.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할줄 알고, 장례식장에서 슬픔을 나눌 줄 알며, 그러다가도 경사가 난 집의 잔치에 참석해서는 온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고, 음악을 들으면 즐거움에 빠져들 줄 안다. 그런 사람은 건강하다. 어느 한 감정에만 매여 살지 않기에 인생이 풍요롭다.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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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5-15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언니, 글이 너무 좋네요.
그리고 인용하신 부분들도 정말 좋아요. 균형있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가끔 저는 저를 비하하는 말도 아닌데, 그것을 비하하는 말로 받아들일 때가 있었어요.
그것은 제가 제 자신을 그만큼 낮추고 형편없이 보았기 때문일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슬프기도 해요.
자신조차 소중하게 가치를 매겨주지 않았던 자신이라니. ^^

세실 2014-05-16 13:52   좋아요 0 | URL
땡큐~~~~~
잘 지내죠? 조금 여유가 생겼나?
감정을 잘 조절하고, 표현하며 사는것 좋징. 요즘 감성을 키우려고 노력중^^ (감성적이긴 하지만......ㅎ)

그렇게 그렇게 상처를 어루만져주면서 성장하는듯^^ 무엇보다 나 자신의 가치를 알고 나를 고귀하게 생각하면 남을 대하는 마음도 여유로워 지는듯요. 마고님은 지금 충분히 가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