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교수의 서문을 보며, 역사는 애정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깊이 느낍니다.

 

서중석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닷컴(웅진.com) / 2005년 4월

 

 

 

역사 바로 알기의 계기가 되기를


천진하게도 나는 사실과 진실이 밝혀져 반공독재 정권의 본질이 백일하에 폭로되면 우리 사회가 크게 변모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현대사 연구가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현대사가 중․고교에서 교육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대학에서도 연구조차 되지 못한 것은 극우세력이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극우세력은 현대사를 자의적으로 왜곡한 반공․냉전 이데올로기로 민중을 짓눌렀고, 모든 사회운동을 철저히 억압하였다.

부분적으로 나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6월민주항쟁이 가열차게 전개되고 신군부 정권이 무릎을 꿇기까지에는 이념투쟁이나 학술운동이 분명히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것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현대사 연구의 영향은 더욱 한계가 있었다. 수구냉전 세력에게 아무리 진실과 사실을 들이대더라도, 그들이 마이동풍 격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종전의 억지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라큘라 백작은 빛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는데, 일부 수구냉전 세력이 ‘진실의 빛’, ‘사실의 빛’을 회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놀란 것은 지식인과 언론인, 학생 등 어느 계층보다도 지적 욕구에 목말라해야 할 사람들이 현대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특수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현대사에 무지한 상상태였고 그래서 그동안 왜곡되게 알고 있었다면, 뒤늦게나마 진실을 알고 싶어할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더욱 답답한 것은 진보적 지식인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르크스나 레닌은 역사를 중시했는데도 한국에서 그들의 ‘추종자’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은 것 같았고, 뛰어난 역사학자이기도 한 푸코의 제자처럼 글을 쓰는 사람도 그의 담론을 일종의 공식처럼 적용하는 것에만 급급할 뿐이었다. 유행복 바뀌듯 마르크스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바뀐 것처럼 보여도, 이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나 추상적인 담론을 즐기는 것이 영락없이 1980년대의 어떤 풍토를 빼닮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1980년대에 현대사 연구는 사회과학도들이 주도했는데, 이제 사회과학 대학원에서 현대사 연구자들을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역사는 거꾸로 가는 것일까, 반복되는 것일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에 현대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듯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진보세력 또는 소장 연구자들이 현대사를 왜곡하고 있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장은 촛불 시위에 대한 대항 시위나 국가보안법 폐지 결사반대 시위에서 나왔던 것들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해방 50주년을 맞아 이승만살리기를 벌이고, ‘건국’ 50주년을 맞아 박정희신드롬 키우기에 열중하던 모습과 비슷한 풍경인데, 그때보다 더욱 절실하게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보다 더 외로워졌고, 그래서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안 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일가.

진보학자들의 현대사 ‘왜곡’에 대한 대항운동은 실증적 연구보다 주장이 앞서고 있고, 그 주장도 상당 부분은 극우반공 시대에 귀가 아프게 들었던 것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러한 퇴영적 논리로 설득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진보학자들이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가르치는 ‘자학사관’에 빠져 있다는 강변에는 섬뜩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자학사관’ 하면 일본 극우들의 ‘자유주의사관’이 연상되고, 그와 함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이 떠오른다. 그들이 역사 교과서에 일제가 저지른 침략과 만행을 사실대로 기술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고 공격하고, 일본군 성노예나 남경대학살 같은 만행을 은폐하며,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침략전쟁을 위대한 제국의 역사로 미화하기 위한 역사교육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보다 더 기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역사교육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러한 자학사관을 본받자고 하다니.

현대사를 부정적으로만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일선 교사들에게 학생들이나 시민들이 현대사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소재나 에피소드를 개발하자고 역설한다. 현대사는 격동의 연속이었고,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정치사나 경제사나 소재 개발에 따라서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이 의외로 많다. 더구나 복식이나 주택, 연료의 변화 등 삶의 형태의 변화 그리고 엄청난 사고의 변화, 남녀관게․가족관계의 변화나 영화․가요 등 대중문화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에는 사회적․문화적으로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자료들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미군정의 잘못이나 이승만․박정희․신군부의 반공독재, 인권 유린 행위를 은폐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인도 상당한 수준으로 성숙했고 시민사회의 모습도 잡혀가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걸맞는 역사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실은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의 저술에서도 각별히 유념했지만, 현대사를 가르칠 때 학생들이 현대사를 긍정적으로 이해하도록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 해방이 얼마나 혁명적인 변화를 수반했는가,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상당히 빠른 수준으로 보통선거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던 점 그리고 교육의 확대로 한글세대가 대거 탄생하고 토지개혁이 이루어져 1950년대에 1960~1980년대 경제발전의 초석이 놓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가르친다. 특히 나는 한국 사회를 발전시킨 역동적인 힘을 중시한다. 역동성의 기반인 평준화가 왜 그렇게 빨리 성취되었나를 설명하고, 1956년 정․부통령 선거 등 여러 선거에서 유권자의 한 표가 독재정권을 위협했던 것을 강조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참으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운동이다. 1950년대의 암흑을 뚫고 4월혁명이 일어났고, 유신체제의 폭압도 민주주의의 갈망을 짓밟지는 못했다. 광주항쟁에서 6월민주대항쟁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민주화운동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투쟁인가.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만큼 자유를 누리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남북관계도 호전시켜 세계에서 드물게 민주화운동이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건 한국에서건 자학사관을 주창하는 사람들과 그것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생관이나 역사관이 다르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근․현대사는 갈등이 심했고, 그 때문에 쟁점이 많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경우에서처럼 이러한 갈등도 대개는 인생관․역사관과 연결이 되어 있다. 그와 함께 도덕적․정신적으로 약점이 많을수록 억지주장을 부리게 마련이고, 여러 형태의 ‘권력’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려 한다는 점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 근․현대사의 큰 줄기는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 “모든 한국인들은 단 두 가지만을 열망하고 있었다. 독립과 민주주의. 실제로는 오직 한 가지만을 원했다. 자유.”라고 말한 것에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세상, 이성과양식, 양심이 살아 숨쉬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같은 언저리에 있다.

이 책은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서,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해서 정치․경제․문화 면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고 그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4월혁명과 6월민주항쟁은 정치사적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경제․사회․문화․예술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다. 자유는 그렇게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반면에 유신체제는 정치적으로만 질곡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유신체제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신은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었고, 사회․문화․예술에 참신한 자극이 되었다.

적 무지나 한계 때문이겠지만, 현대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단편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발전만 하더라도 박정희 한 개인이나 소수 기업가 또는 테크노크라트에 공을 돌리는 주장들을 자주 접한다. 그렇지만 경제발전의 중요 원동력인 우리 사회의 역동적인 힘도 평준화 현상 등 몇 가지 요인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이 책에서 기술한 대로 평준화 현상도 한두 가지 이유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경제발전에는 국가 집행력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평범한 얘기지만 그것도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특히 경제발전을 가져온 핵심 축인 노동과 해외 자본도 박정희 개인의 공로와 거리가 있다.

나는 이 책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공정히 기술해보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현대사에서 의미 있는 부분을 정확히 기술해야 하고, 또 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데도 빠져 있거나 부정확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들이 적지 않고, 연표 하나 마음놓고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잘못된 기술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마땅하게 추천할 만한 현대사 개설서를 찾기 힘들지만 이 책은 정확성에서 믿을 만하다는 신뢰감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초고를 보더니 웅진 편집부에서 일부 자를 것은 자르고 강조할 것은 강조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해 배경식 군과 수고가 많았다. 정치사의 경우 기본 자료에 의존해서 쓸 수 있었지만, 가요와 같은 대중문화 등은 모르는 것이 많아 기존의 글을 주로 이용했다. 1950년대의 여성 활동과 관련해서는 이임하 군의 박사학위 논문을 활용했다.

이 책은 정치사나 경제사에 치중해 기술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치사가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경제․교육․사회․여성․문학․예술․대중문화를 종합적으로 함께 기술해 현대사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하나의 특징이 될 수 있겠다. 현대사와 관련해 책을 몇 권 냈으나,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창작과비평사, 1997년)에 공동집필자의 한 사람으로서 현대사를 맡아 300여 매를 쓴 것을 제외하면, 이 책이 최초의 현대사 개설서라고 볼 수 있어 집필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훨씬 넘은 은사 김철준 선생님은 평생에 대중을 위한 한국사 개설서를 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것은 역사가들의 꿈일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문장이 난삽하고 길기로 유명한데, 과연 대중 역사서를 쓰실 수 있을까 했는데 얼마 후 작고하셨다. 이 책의 원고를 쓰면서 김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는데, 변명 같지만 현대사의 경우 대중적인 역사서와 전문적인 역사서를 구별하여 쓰기가 무척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해방 60년, 을사조약 100주년, 한일협정 40주년, 남북정상회담 5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것만으로도 역사 논쟁이 많을 터인데,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중․일 세 나라에서 ‘새역모’ 등 일본의 극우세력과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될 것이다. 또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친일파 문제, 정부 수립 직후 한국전쟁기의 주민 집단 학살 및 여러 의혹사건이 얽혀 있는 과거사 청산문제도 계속 주목을 받을 것이다.

동양에서 환갑은 하나의 시기가 지나고 다음 시기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 60주년을 맞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현대사를 되돌아보고 진지하게 성찰하여 새 출발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이 책을 올해 역사 논쟁, 과거 청산의 화두가 될 진실과 화해, 새 출발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극우반공주의자들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도 품어본다.

원고를 넘긴 지 1년이 되어 책이 나오게 되었다.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다. 현대사의 경우 사진 한 장을 쓰는 데도 저작권 때문에 애를 먹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책이 늦게 나온다고 불평하기에 앞서 사진과 그림, 도표, 박스기사 등으로 현대사를 눈에 확 들어오게 만들기 위해 무진 노력하는 배경식 군과 김형보 편집장의 정성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배 군은 나와 웅진 편집부 사이에서 마음 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문제연구소는 수년 전에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1~3권으로 호평을 받았고, 작년 9월에 발행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도 독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이 마지막으로 출판됨으로써 웅진과 함께 기획한 대중을 위한 한국사는 일단락짓는 셈이다.

2005년 3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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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의 추천사입니다. 괜찮은 현대사 자료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서중석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닷컴(웅진.com) / 2005년 4월

 

 

 

시민들을 위한 최고의 현대사 개설서



나는 현대를 산 사람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철들 무렵에는 해방 공간을 살았고 한국전쟁과 독재정권도 겪었다. 나는 역사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현대사의 여러 현장을 목격하였다. 어찌 보면 현대사의 증인인 셈이다. 나는 현대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히 현대사를 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어느 누가, 때로는 암울하고 때로는 처절하고 때로는 열정에 넘치는 우리의 현대사를 쓸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해 보았다.

오늘에서야 현대사를 바르게 쓴 역사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현대사의 개설서인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의 저자 서중석 교수는 현대사를 가장 열정적으로 연구해왔다. 그동안 금기가 많은 현대사를 자기의 뚜렷한 주관에 따라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은 그 동안의 연구 업적을 종합 정리한 결정(結晶)이다. 나는 한마디로 말해, 이 책을 읽으면서 시사와 영감을 얻었으며 현대사를 정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 책은 대중 역사서의 서술방식으로 씌어졌다. 해방 공간을 시발로 하여 ‘국민의 정부’ 시기까지의 사실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역사관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를 몇 가지로 요약해 말해보자.

무엇보다 저자는 일제 잔재의 청산을 내걸고 민족 주체적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이어 극우반공 냉전이데올로기에 짓눌린 역사 왜곡을 ‘진실의 빛’, ‘사실의 빛’을 비춘다는 관점에서 바로잡으려 노력하였다. 따라서 좌우의 대결과 중도파의 활동을 고르게 반영하였다. 그리하여 여운형, 박헌영도 역사 인물로 살려냈다. 결코 내용을 한쪽으로 치우쳐 서술하지 않았음을 알려주려 했다는 뜻이다. 이를 통일사관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모든 분야를 서술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정치사에만 빠지지 않았다. 곧 여러 민족운동․민중운동을 고르게 반영하였으며, 민주운동․노동운동․농민운동을 적절하게 배분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4․19혁명과 6월민주항쟁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들 운동이 역동적인 힘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를 민중사관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와 전두환․노태우의 역대 독재정권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도 감성으로 접근치 않고 객관적 공정성을 살리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하여 저자는 우리 정치사가 이렇게 추잡하고 막가면서 엮어졌다는 자학사관에 빠지지 않고, 우리 사회가 일정하게 발전해왔다는 긍정사관에 충실하였다. 오늘의 현대사가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도 쉼 없이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의 차례를 훑어보면 흥미를 유발케 한다. 몇 마디 말로 표현해 그 해당 내용을 쉽게 알 수 있게 하였다. 또 문체도 딱딱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풀었다. 그러니 대중 역사서의 여러 요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역사는 대중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역사책이 역사학자들끼리 자기만족을 위해 씌어져서는 그 의무를 저버리는 결과를 빚는다.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이야기는 변화를 거듭한 생활사와 대중예술의 기술이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아마도 저자가 이런 분야를 모두 소화해내기가 벅찼을 것이다. 또 한정된 분량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저자의 이런 접근방식을 편집에서도 잘 살려내고 있다. 사건사를 일지 형식으로 요약하기도 하고 정확한 통계 숫자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필요한 대목마다 지도, 도형, 사진, 만평과 우표, 표어, 포스터와 가십 만평을 곁들였다. 이런 시청각 자료의 제시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케 하는 것들이다. 그동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자료를 모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금년은 해방 60주년이 되는 해다. 민족 해방의 회갑을 맞이하였는데, 분단 구조는 변함없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의 현대사를 돌아보고 무엇인지 영감과 시사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분명히 독자의 역사의식과 일정하게 기여하리라 믿는다.

한편 오늘날 과거사 청산문제로 여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진정한 민주사회와 인권국가를 지향하기 위해서도 왜곡된 과거사는 청산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미래사회의 화합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 책은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잘못되었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필자는 여러 의미에서, 올바로 된 현대사의 저술을 접하면서 흔쾌히 추천의 글을 쓰는 바이다.


과거사 청산을 열망하면서 아차산 밑에서 쓰다.

이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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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PC방 안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 컴퓨터는 모두 켜져 있었다.

‘이 많은 컴퓨터를 온종일 가동하려면 전기세 꽤나 나오겠군.’

“인터넷 박물관에 온 걸 환영해.”

쇼페인트가 저렇게 맑고 밝은 얼굴을 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데, 녀석은 마치 정말 가고 싶어하는 곳에 온 것 같은 표정이었다. 늙수그레하게 생긴 청년 한 사람이 컴퓨터 사이를 기웃거리며 간간이 마우스로 클릭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인터넷 박물관장님이야. K씨라고 흔히들 부르지.”

쇼페인트는 ‘님’자까지 붙여가며 그를 소개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서울 한복판의 PC방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안의 넓은 인터넷 세계를 떠돌면서 시민들이 작성한 문건들을 검색하고 있어. 이 컴퓨터들은 ‘디지털 진딧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야. 사람들이 작성한 내용에서 동일한 주제를 검색할 뿐만 아니라, 그 문건 전후의 문건을 검색해서 그것과 연관되는 것들을 찾아내는 거지.”

“다음 문건이 그것과 연관되는지 안 되는지 컴퓨터가 어떻게 알 수 있어. 동일한 키워드가 없으면 찾을 수 없잖아.”

“그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대개 문건의 앞뒤는 동일한 주제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분석 결과 나타났어. 그래서 앞 뒤의 문건이 꼭 그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이것, 그것’ 등의 대명사를 통해 그 주제를 표현할 확률이 큰 문건들을 검색해내지. 그것이 디지털진딧물의 역할이야. 진딧물들은 단백질이 주 영양분인데, 식물의 즙은 단백질 함량이 얼마 되지 않거든. 그래서 포식하기 마련인데, 진딧물이 적정량의 단백질을 얻으면 탄수화물은 과다하게 흡수된 상태이지. 그래서 남는 당분을 배설하게 되는데, 우리가 얻고자 하는 정보도 단백질과 같아. 그래서 하나씩 클릭하면서 유용한 정보인지를 결정하는 ‘디지털개미’가 있어야 하는 거지.”

“그러면 일일이 클릭해야 하잖아. 그걸 어떻게 다해.”

“그래서 인공지능 개미를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 개발단계라 사람이 일일이 클릭을 해줘야 하거든.”

쇼페인트는 아쉬운 표정으로 설명한다. 디지털개미가 차를 내온다.

“아저씨는 이렇게 하루종일 컴퓨터를 가동시키면서 어떻게 생활을 유지하세요?”

나는 이게 참 궁금했다.

“현대 사회는 정보 강자의 세상 아닌가요. 나는 정보의 강자랍니다. 그래서 벌이도 권력도 명망도 이 정보를 통해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찾고자 하는 시대정신에 비하면 먼지만큼도 못합니다.”

“음... 일리가 있군요. 그런데 실명을 쓰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무한공유 시대에 이름이란 한낱 기호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이름이 없고 그냥 시민이라는 명칭만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뭐. K는 Kim의 약어입니다. 우리나라에 김씨가 가장 많잖아요. 그래서 많은 것으로 기운 것일 뿐,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부터 나이를 매긴다면 인터넷의 나이는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인터넷 시대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어렵잖게 예견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가 사용하던 물품은 유품이 되듯이 그가 몸담았던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수없이 남겼던 게시판의 글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것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3년이 넘은 휴면 계정이 있으면 먼저 주인에게 메일을 보내 존재 유무를 확인하고, 답변이 없으면 파일 형식으로 담아서 인터넷 박물관에 저장합니다. 여기서 미래를 생산할 수 있어요. 아직은 계획에 불과하지만, 좋지 않은 마음을 품은 세력들이 이 정보를 마음대로 유용하기 전에 이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나는 마치 한 편의 공상과학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시민들의 정보라는 것이 그렇게 가치가 있나요?”

“지금은 아직 ‘무한공유 시대’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옛 시대의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지식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적 재산권’이라는 제도가 그것을 말해주죠. 옛 조상들의 말에 ‘큰 부자는 큰 장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식을 널리 공유하는 것만큼 인류의 지식을 크게 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지식 공유권’이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무한공유 시대가 오면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은 시민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자신의 존재를 찾지 못했어요. 만약 제 모습을 찾는다면, 그 시대에 맞는, 시대 정신에 맞는 행동을 할 겁니다. 그 첫 영토가 우리나라의 인터넷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다. 쇼페인트와 박물관장의 표정은 너무나 의연하다. 그 시대가 오면 내가 정보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는 말인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천의 얼굴과 천의 목소리를 가진 누리꾼들의 입에서는 듣기 불편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토론 게시판이나, 포털 사이트에서 이야기를 들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수많은 오해와, 폭력, 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우리의 영토에서 이렇게 무서운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진정한 주인이 된다고. 나는 납득할 수 없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허위의 탈을 쓰고 있을 테니, 빨리 그것이 벗겨졌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내심 그 허위의 탈이 쇼페인트나 박물관장의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소망이 마음 한켠에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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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페인트는 오늘도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었었다. 내가 옆에서 뭘 하든 말든 못 본체다.


“쇼페인트 오늘 누구 만나러 가는 모양이지.”


쇼페인트는 아무 대답이 없다. 뭔가 생각에 잠기듯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때는 녀석은 눈을 감은 것이나 다름없다.


“너 혹시 발굴학이라고 들어봤니?”

“뭐, 고고학을 말하는 거니?”

“고고학이 아니라 발굴학 말이야.”

“참, 세상에 발굴할 신기한 것이 어디있담. ‘놀라운 것은 이미 나에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광고문구도 모르니?”


쇼페인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 나는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생길까 해서 황급히 뒤를 따른다.


“사상은 시대정신을 따라 움직여. 그런 의미로 보면 ‘발굴학’은 가장 현대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어.”

“도대체 발굴학이란 게 뭐야? 시대정신은 또 뭐야. 시대정신은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혔다고 말한 사람이 이제 와서 다시 시대정신 운운하는 것은 너답지 않은데.”


“발굴학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주요한 문제로 다루는 학문이야. 학문이 주류를 따른다면 발굴학은 비주류 학문이라 할 수 있지. 예전에는 몇 사람의 선각자가 열정적인 성찰을 통해 우둔한 시민들의 등불이 되었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시민들을 향하여 들불이 되는 거야. 선각자들은 내적 성찰을 통한 외적 실현이 인생의 방향이라면, 시민들은 내적 성찰을 통한 내적 실현이야. 참여는 하되 이끌지는 않는 것이 시민들의 특징이야. 그렇지만 지식의 무한공유 시대가 되면서 선각자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지식의 권위자가 되는 시대가 왔어. 그것을 잘 표현한 것이 발굴학이지. 발굴학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지식이나 사상, 문화의 흔적을 찾아내 우리의 시대정신을 찾아내는 거지.”

“시대정신이 ‘알려지지 않은 시민들’에게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예전과 지금은 차이는 너무도 뚜렷하지 않니. 예전에는 곧잘 뭉쳤어. 시대정신이 굉장히 명확했기 때문에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때? 시대정신이 아예 없어 보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발굴학자들은 시대정신이 이동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어. 시대정신은 시민들의 조용한 앞마당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린 거지. 발굴학의 목표는 그것의 조각들을 모아서 하나의 커다란 밑그림을 그리는 거야. 나도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말야.”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허름한 동네 PC방 앞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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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지음 / 민음사 / 2003년 6월

 

김수영의 산문집을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또 즐겁게 난다.

세상의 온갖 회유와 압박도, 오늘날의 회자와 찬사도 결코 녹일 수 없었던 그의 비판정신. 특히 내적 자기성찰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던 그였다. 그가 남긴 '창작자유의 조건'을 펼쳐보자.

이승만 정권 때의 일이다. 펜 클럽 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 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문학의 후진성 운운의 문제를 넘어서 더 큰 근본문제이다. (김수영 산문전집, '창작자유의 조건' 중에서)

정치와 법치는 문학과 예술보다 비속하니 한 사람의 인권쯤은, 그것도 대한민국 국보법 안에서 이를 무위로 만들려는 괘씸한 몸짓쯤은 초당적으로, 초법적으로 다뤄도 된다는 말인가.

천정배 법무장관의 인터뷰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 김수영을 떠올리게 되었다.

“터무니 없이 본질을 벗어나는, 어떤 면에서는 본질을 호도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법치주의다. 형사소송법은 불구속 수사 원칙, 즉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소명되지 않으면 불구속 수사한다는 대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모든 국민, 모든 인간, 외국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하루에도 수백명씩 구속되는데 왜 한 사람만 봐주냐는 얘기가 있다. 턱도 없는 얘기다. 한두 명 제외되면 어떠냐는 사고방식은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한참 먼, 군국주의적·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본질적으로 국가는 국민 개인의 인권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비판은 저급한, 오히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비판이다. 본질을 호도하려는 정치적, 정략적 의도라고 의심하고 있다.”(천정배 법무장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절대적이어야 할 것이 절대적인 위치에 있고,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규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유와 법치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제도와 관습과 법률을 뛰어넘는 것은 장대한 이상(理想)이어야 한다.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이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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