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건 / 이원길 / 신원문화사, 326쪽(1,2회 두 권)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시장 구석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 둘이 뭔가를 두고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아이들은 공자를 보더니 공자에게로 와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첫 번째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우리는 지금 해가 언제 가장 커지느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요, 저는 해가 아침에 궁궐보다 더 크게 보이기 때문에 그 때가 가장 커진다고 생각해요. 중천에 떠버리면 주먹만해져서 미미하잖아요.’



두 번째 아이가 금세 대든다.



‘아니야! 선생님,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옷을 벗고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기 때문에 가장 큰 거에요. 해는 뜨거운 불덩이로 이루어졌는데, 가장 뜨거울 때가 가장 클 때니까 한낮이 해가 가장 클 때가 아니에요.’



모두 공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고심하던 공자는 이내 입을 연다.



‘음,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누구의 이견이 옳다고 딱히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은 실망하면서 돌아갔으나, 제자들은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는지 저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 ꡔCEO 공자ꡕ 중에서





사람은 세상에 오래 살아갈수록 덕과 지성이 쌓여간다. 덕과 지성과 함께 커지는 것은 그에 따르는 명예이자 기대치이다. 대학교수나 학교 선생이라고 하면 아이들의 질문을 청산유수처럼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나름대로의 대답을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내가 나의 기대치에 이끌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하려고 애쓴 적은 없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만약 초등학교 초년생 같은 조카가 내게 뭔가를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용감히 대답할 수 있을까.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속으로 진실은 숨어버린다. 우리들은 당연하다고 치부된 말의 쓰레기장을 뒤적이며 당연하지 않은 것을 발굴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에 단순히 솔직할 수만 있더라도 지금처럼 낙후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한다. 진정 우리가 의지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할 수 없다’라고 듣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인간’이 아니라 ‘신화’가 되어 버린다면 그와 우리는 서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진실은 용기 있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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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우리가 삶에 걸고 있는 기대는 진실로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 우리들에게 걸고 있는 기대인 것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멈출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매일같이, 또는 수시로 삶에게 질문을 받는 존재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대답은 반드시 말과 명상이 아닌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처신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는 삶의 문제에 대해 올바른 대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앞에 끊임없이 놓여지는 삶의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것이다.

- 빅터 플랭크, ‘죽음의 수용소에서’ 본문 중에서


빅터 플랭크 박사는 실존적 정신요법의 창시자이다. 인간의 정신을 히스테리로 세분화시키지 않고, 인격 단위로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가 삶에게 의미를 묻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의미를 묻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표현은 니코스 카잔챠키스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


“신은 죽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살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신을 가지고 목적에 맞게 살렸다 죽였다 한다. 신은 우리의 논쟁 유무와 관계없이 자유로운 존재다. 그 자유를 인간적으로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어제 2호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한 부부가 타더니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고 지하철공사에 전화를 하라고 부인한테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당연하고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으면 불만을 거침없이 토로하는 것은 현대인의 익숙한 습성이지만, 이런 것들이 소중하기만 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참을 만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누리는 시대가 얼마나 오랜 과정과 대가를 겪고 난 것인지 알기 때문에 쉽게 불평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두고 불합리하고,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성토할 뿐이다.


자연과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들과 약자들은 말을 좀처럼 하지 않지만, 그것이 곧 침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귀가, 내 눈이 어두울 뿐이다.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리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힘겹게 세상과 ‘대화’라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정정당당하기도 하다. 세상은 나의 민원창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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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 상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이 말은 사마천이 사기라는 책을 다 쓴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즉, "나는 황제부터 해서 한무제 태초 연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차례로 서술하여 마치게 되니 총합 130편이다."

나도 1~2년간의 스터디를 마치게 되었다. 나로서는 가장 끈질기게 매달린 사업을 마무리지을 수 있어서 기쁘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만나서 버벅대기도 하고, 사기를 쳐서 상대방을 현혹시키기도 했고, 데이투한다고 땡땡이도 많이 쳤다. 암튼 원년 멤버가 사기를 시작한 이래로 나와 선배 단 둘에 이르기까지 팀을 꾸려서 스터디를 마쳤으니, 연인원은 10여 명에 해당하고, 모임의 횟수는 대략 200여 회에 달한다.

나의 경우 그간 사용한 포스트이트의 분량은 크고 작은 것 500여 매, 쳐박은 볼펜 수는 10여 개, 공들인 시간은 3~400시간 등이다.

물론 수적인 데이터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기억해두고 싶어서 남긴다.


사마천의 마지막 발언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며 여러가지 애달픈 사연과 역사의 비정함이 담겨 있는 구절이므로 조금 옮겨 본다.


태사공 사마천은 말한다.
"아, 우리 조상은 일찍이 이 일을 주관하여 당우(唐虞) 시대에 이미 알려졌고, 주대(周代)에 이르러서도 이것을 맡았다. 그러므로 사마씨는 대대로 천관(天官)을 맡아왔고, 그것이 나에게까지 이르렀구나! 삼가며 새겨두어야 할 것이로다. 삼가며 새겨두어야 할 일이지..암!"
그래서 천하에 흩어져 있는 구문(舊聞)을 망라하여 왕업(王業)이 일어난 그 처음과 끝을 살피고 흥성하고 쇠망한 것을 살펴보았으며, 사실에 입각하여 논하고 고찰했다. 대충 3대를 추정하여 기술하고, 진나라와 한나라를 기록하되, 위로는 헌원[황제]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12본기」를 지었으니, 모두 조례를 나누어 기록했다. 그러나 시대를 같이하는 것도 있고 달리하는 것도 있어서 연대가 확실치 않으므로 「10표」를 만들었다. 또 [시대에 따라] 예악이 줄어들거나 늘어나고, 법률과 역법의 개정, 병권·산천·귀신·천인(天人)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폐해지는 것을 살피고,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내용으로 「8서」를 만들었다. 28수는 북두칠성을 향해 돌고, 30개의 바퀴살은 한 개의 바퀴통을 향하여 끝없이 돈다. 지금 보필하는 고굉의 신하들이 이에 부응하여, 충신(忠信)으로 도를 행하여 군주를 받드는 모습을 「30세가」로 지었다. 의를 지지하고 재능이 뛰어나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운 사람들에 대해서는 「70열전」을 지었다. 무릇 130편에 52만 6,500자이니,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한다. 개략적인 것은 「자서(自序)」로 지어 본문의 빠진 부분을 보충하여 일가(一家)의 말을 이루었고, 육경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을 정리하고, 백가의 잡다한 학설을 정리했으며, 정본(正本)은 명산(名山)에 깊이 간직하고 부본(副本)은 수도에 두어 후세의 성인·군자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제70을 자서로 마름하였다.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황제로부터 역사를 서술하여 태초(太初 ; 한무제의 연호)에 이르러 마치니 130편이다.
- 김원중 『사기열전(史記列傳)』(을유문화사) 하권을 참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본(正本)은 명산(名山)에 깊이 간직하고 부본(副本)은 수도에 두어'라는 대목이다. 왜 정본을 명산 깊숙이 간직할 수밖에 없었을까.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한 해는 효무제(한무제라고도 함) 연간이다. 한무제는 한나라를 부흥시켜서 고려의 광종에 비유할 수 있는 명군이면서도, 잔인하기로는 진시황에 비유할 수 있다. 사마천은 유가의 덕목을 몸소 닦았으므로 형벌이 엄정한 법가에 점점 치우치는 한무제가 못마땅했다. 그래서 열전 안에 한무제의 죄상을 낱낱히 기록해 놓았다. 그중에 가장 두드러진 장은 '이장군열전'과 '급정열전'이다. 이 두 사람은 사마천이 보기에 한나라의 무신과 문신을 대표한다. 그러나 무제 때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 까닭은 자신의 소신을 다했고,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시의에 맞춰서 자기 자신을 맡긴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원문을 보다 보니 사기의 원본이 많이 산실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효경제와 효무제 본기는 아예 없어졌는데, 그것은 아마 한무제의 분노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접한 효무제의 분노는 대단했다. 한무제는 맹자를 아주 싫어했는데, 그것은 맹자가 역성혁명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심할 때마다 맹자의 초상화에다가 활쏘기놀이를 했다. 그 덕에 맹자는 송나라 주자학자들이 복원하기 전까지 그저 시중에 나도는 잡지책에 불과한 대접을 받았다. 사마천도 맹자와 비슷한 이유로 미움을 받았다.

사기열전 마지막 자서의 주에 이런 말이 있다. "사마천은 효경제의 단점과 효무제의 과실을 적나라하게 언급했는데 효무제는 노하여 책을 모두 없애버린 다음에 사마천을 이릉을 천거했다는 명목으로 연좌시켰다. 이릉은 흉노에 투항하였기 때문에 그를 두둔한 사마천을 잠실로 내려보내 궁형에 처하였고 이 때 사마천은 원망을 품었는데, 그가 옥사(獄死)하였다고도 한다."
※내 해석이 잘못되었을지 모르므로 원문을 싣는다.

漢書舊儀注曰司馬遷作景帝本紀極言其短及武帝過, 武帝怒而削去之後坐擧李陵, 陵降匈奴故下遷蠶室有怨, 言下獄死

아마도 그 과정에서 열전의 여러 부분과 무제와 관련된 사료가 소실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사마천의 연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어떤 식으로 사기를 저술하였는지 알 수 없고, 또 이릉의 화를 당하게 된 연도와 사기를 제작하는 연도의 관계가 모호한 구석이 있지만, 암튼 사마천이 마지막으로 위의 말을 했을 때 무슨 심정을 느꼈는지는 참 따라가보고 싶다.

사마천은 자기 할 말은 다 끝났다고 했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아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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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난 吐瀉物에 救出當했다

얼마나 대단한 일기를 쓰려고 하는지, 또 얼마나 장문의 일기를 쓰려고 하는지 오늘은 순수하게 일기를 쓰기 위해서 윙 커멘더 피시방을 찾았다. 우선 이 피시방 제목이 좀 그렇다. 나는 항상 윙 카펜터로 알고 있었는데, 두 개 다 뜻을 모른다. 이왕이면 발음하기도 멋스런 카펜터가 낫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나저나 어젯밤은 간만에 과음을 하였는데, 내가 왜 과음을 했는지 잠들때까지 잘 몰라서 질책하는 여자친구에게 항변 한마디 하지 못하고 '꼬집힘'만 당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나는 새벽 한신줄 알았다- 물렁물렁하던 속이 드디어 발작을 일으키더니 전날 먹었던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서 방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전에 낌새를 알아채서 한동안 누운 채로 고민했다. 방에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대책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두 가지 방향에 대한 대비책을 세웠다. 우선 '그분'이 급히 오실 경우에는 휴지통을 안고 그 구멍에다 쏟는다. 그리고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실 경우에는 싱크대로 달려간다. 그런데 갑자기 올라오는 느낌이 목에 '턱!' 하고 왔을때 주저않고 싱크대로 달려갔다. 중간에 떨어져 나오는 것을 손으로 막고 한움큼의 '그것'과 함께 시원하게 내보냈다. 사실 나는 '구토'를 조금은 사랑한다. 그 성격이 박력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 불붙으면 위 속에 있는 덩어리를 한톨도 남김없이 다 털어내는 정신은 그야말로 작가정신과도 통한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배에서는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얄밉고 깜찍하다는 애틋한 마음도 든다.

토사물 안에는 소설 두 점과 내 여자친구의 인생 한 점과 내 인생이 몇 점 들어 있었다. 가히 최근의 전환기로 삼을 만하다. 아! 그리고 사랑스러운 우리 동네 꼬마아기를 빠뜨릴 수 없다. 내가 '꼬마아기'라고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애는 순수하게 토사물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토사물을 향해' 들어왔다.

'토사물'이란 한자를 확인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뒤지던 중 토사곽란(吐瀉곽亂-응씨! '곽'자도 없고ㅠㅠ)-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하면서 배가 뒤틀리듯이 몹시 아픈 병증-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는데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에게도 병증은 병증이 되는데 실은 이 글도 그 병증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꼭 한자로 써야 할 이유는 없는데, 그렇게 고집하고 싶어서 썼다. 특히 '당(當)'자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커다란 이유가 되겠다. 구출은 구출이지만 '구출됐다'가 아니라 '구출당했다'가 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구출됐다'는 그야말로 내가 객체가 돼버리는 수동적인 관계가 된다. 그러나 '구출당했다'는 구출하는 '대상'과 구출당하는 '대상'이 모두 염두된 단어이기 때문에 그렇게 취하는 것이 당연하며 또한 이것은 구출당하는 사람의 입장에 좀더 손을 들어준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조금만 더 나아가자면, 누군가 구출해준것보다 내가 당한 것이 이 글의 생명이며, 그것은 오랜 내 인생 여정에도 그대로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많이 당해야 꽃을 피울 인생이다. 그리고 '구출'이란 단어도 찾아보았는데, 재미있게도 '救出-구하여 냄'과 '驅出-몰아냄'이 붙어 있었다. 후자의 의미도 재미있고, 또 적절하리라 생각되어 그것을 전자에 흡수시킨다. 그러면 한자로 쓰지 말고 한글로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튀어나올 수 있는데, 나는 일단 그 물음에서 도망칠테다.


어젯밤의 술자리는 나로서는 그리 허심탄회한 자리는 아니었다. 여자친구의 회사 직원들의 가족 송년 모임의 성격이었기 때문에 나의 자리가 위축되기도 했거니와 여자친구를 통해서 회사 오너의 자질과 됨됨이를 적나라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맘이 좀 불편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를 꼭 데려오라는 청이 있었다 해서 가게 되었고, 또한 그 어색한 분위기에서 여자친구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탓인지, 시시컬컬한 대답 외에 마음 속에 있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실장이란 사람은 나를 앉혀놓고 한마디 했는데, 그 전문을 나는 기억하고 있고, 또한 그것이 나의 토사물을 깨운 주범이라는 것을 나는 배가 휘어지도록 토하면서 깨달았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윗글처럼 어색하거나 기분나쁘지 않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분위기 안에서 술을 마셨던 것에 대해서는 남몰래 자긍심을 느낀다. 아무튼 오실장이란 사람은 내게 왈
"우리가 하는 일은 참 어렵고 힘든 거에요. 그래서 프로정신이 필요하답니다. 00씨는 그 점에 있어서 많이 모자라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삼일을 해서 그만두기도 하고 일주일을 해서 그만두기도 하죠."
나는 별로 애쓰지 않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대응해 주었지만 마음 속에서는 한마디가 입안까지 밀려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의 말을 할 때는 순간적으로 선택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 선택이 말을 꺼내놓기 꺼려한다면 나는 그 선택을 매우 긍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몰래 꺼내놓자면 이렇다.
"오실장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듣기로 '세 사람이 길을 가매 반드시 내 스승이 거기 있다'고 하며 '그 사람의 좋은 점은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좋지 않은 점은 가려내어 내게는 그런 점이 없는지 반성하고 고친다'*고 하였는데, 실장님의 회사에는 족히 세 명은 더 되는 것 같으니 스승이 없다고 할 순 없겠죠. 그런데 실장님이 말하신 일주일, 혹은 이틀 일하고 그만둔 사람들은 실장님 말씀처럼 모자라고 힘들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만, 실장님도 역시 그러한 점이 없진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기지 않았나 합니다. 제가 들으니 실장님은 여론에 충실하지는 않다고도 하고, 약간의 독재를 한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회계에 있어서도 사비(私費)와 회사의 공금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경영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전략보다는 인정이 개입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프로'라고 하신 말씀은 거두어야 하시지 않을까요?"
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 말은 계속 내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 여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다른 직장 얘기가 잘 된다면 그리로 가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젊을 때 만만찮은 고생을 한다. 그러나 어떤 비젼 없이 하는 고생은 헛수고일 뿐이다.
00야! 나는 네 오빠의 반대가 옳다고 보지 않는다.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지만(이건 오빠의 말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과 소신 같은 것들을 모두 사회의 척도대로 일그러트린 다음에야 가능한 '적응'을 나는 '적응'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분명히 사회도 옳지 않은 점이 많으며, 그것이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적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대개는 통설로 받아들이는 그 '사회'에 대해서 나는 온몸으로 항변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의미이다.
아무튼 그 후로 술을 죽게 먹어서 뻗어버렸다. 그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아니다. 꼬마 아이들이 있었다. 그 중에도 '오은총'이라는 아이랑 재미있게 놀았는데, '은총'이라는 이름이 얘쁘기도 했거니와 '환희'(잘난 야구선수와 잘난 씨에프 겸 영화 겸 드라마 스타의 아들) 생각이 나서 좀 슬펐다. 그렇게라도 좋은 의미의 이름을 짓고 싶어 하겠지만, 그것보다 사람의 이름은 좀더 그윽한 무엇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운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이름보다 더한 강자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자기 자식 이름을 스스로 짓기 위해서라도 부모는 한문을 좀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천박한 지식으로 볼 때도 '환희'나 '은총'이라는 이름은 당사자의 인생과 통하지 않을 뿐더러, 어떤 호소도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의 인생에 신비한 비밀을 숨겨 둘테다. (이렇게 말하니 조금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는 우리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람'이라는 이름이 만여 명에 달한다는 말을 접할 때 그 아쉬움은 더하다.(누가 국문학적 철학적 한문학도 아니랄까봐. 죄송함다 습관이 돼놔서)

아직도 토사물에서는 꺼내 놓을 게 많다. 내 여자친구는 방금 메시지를 보내서 '왜 그리 징하게 기냐'하고 또 꼬집었지만, 좀 써야겠다. 내 글은 모두 비망록의 성격을 가지고있다. 특히 어떤 '꿈틀거림'에 의해서 글을 쓸 때는 더하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 쓴다. 독자에게는 상당히 괴롭겠지만, 나의 사정을 좀 인정어린 눈으로 보아주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 여자친구는 두더쥐 게임처럼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갔다를 자주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한 학기 동안 나의 동료인 철수한찰**은 소설을 두 개나 완료했다고 하지만, 나는 구성(構成; structure)단계의 소설 한 점과 구상(構想; image)단계의 소설 한 점과 제목단계의 소설 한 점을 겨우 갖고 있을 뿐이다. 그 중에서 두 개가 토사물 안에서 쏟아져나왔다. 친절하게 제목과 같이 나왔는데, 하나는 '두 번째 얼굴을 하고 있는 너'에다가 밑에 부제로 '-회색연애소설'이라고 붙은 것이고, 하나는 '독자의 꿈'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자못 여러 가지 구상이 붙어 있는 소설이다.
한림화 선생의 말처럼 '연애소설은 모든 작가의 꿈'이다. 나도 좋은 연애소설 하나 써보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는데, 부제를 보아하니 나의 연애관은 부정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약간의 학을 접한 경험과 사서(四書)를 서당에서 배운 경험이 일조한 듯하다. 이것을 코믹하게 쓴다면 부제를 걷어버려야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냥 놔두고 싶다.
'독자의 꿈' 중에서 재밌다고 생각되는 착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판금조치(販禁措置)'와 관련된 내용이다. 어느정도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는 '작가재판소'라는 곳이 있다. 한 작가가 죽은 후 150년이 지났을 때 그 작품을 문제삼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 '표절'에 관한 조항은 없다. 재판소가 특히 중점을 두는 것은 '작가의 엽기적 행각과 그 작품'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문제다. 재판소의 판결에서 부당하다는 판정이 나오면 출판사는 전판(全版) 70쇄 이전의 독자들에게 10%의 벌금을 지불한다. (70판이 되지 않는 작품들은 문제삼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판매되고 있는 책에 한해서는 역시 10%를 깎아서 판매하도록 명령한다. 그것은 사실상 판금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그런 판결을 받은 이후로 그 책은 사실상 판매율 제로에 가깝게 되고, 그 작가의 연구자를 제외한 다른 독자들은 그 책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아! 아직도 쓰지 못하고 머릿속에 노트 속에 감춰둔 작품들은 쌓여만 간다. 그런데 나는 왜 완결짓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지 모르겠다. 사실은 조금 알 것 같기는 하다. 며칠 전 서당 훈장님이 그러한 나의 지론에 힘을 실어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사상이 없는 작품은 읽을 거리는 되겠지만 명작은 되지 못한다."(우리 나라에 노벨문학상이 없는 이유를 말씀하시며) 그렇다. 내게는 역사관과 인생관과 사상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논문이나 서평 혹은 세미나 자료 같은 것에 노력을 해야겠다. 특히, 요즘은 하나의 연재물을 계획하고 있다. 상식철학사(常識哲學史)라는 제목으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서 현대 철학까지 정리를 해서 올려놓을 계획인데, 내게는 詳識이 될 것이고, 독자에게는 常識이 될 것이므로 동전처럼 앞뒷면을 가진 것 같아 내게는 기쁘다. 지금 나의 근황은 여러 가지 자료에 눌려있다. 내게 있어 작품 특히 소설의 집필은 가장 마지막 단계이다. 가끔 단발적으로 꺼내놓는 소설도 있겠지만, 그것은 모두 습작임을 인정한다.

작품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는 이제부터 스스로 작가라고 여기는 뻔뻔스러움을 가지고 생활하기로 하였다. 사실 등단이라는 것이 좀 그렇다. 등단은 했으면서도 작가가 아닌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아직 내가 스스로 작가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뻔뻔스럼'이란 꼬리표를 갖고 있지만 아마 그 꼬리표는 내가 현실적으로 등단을 한 후에도 오래도록 나를 괴롭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뻔뻔스럼'을 갖게 된 이유는 지금 내 생활을 감싸는 어떤 '어중간함'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지만 작가는 아니기 때문에 작품을 작가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지 작가 지망생의 입장에서 써야 하는지 구분이 매우 모호하다. 그리고 그런 구분은 역사나 인생을 놓고 볼 때 가소로운 구분이다. 나는 세계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갖지 못할지라도 백년 혹은 수천년 이후의 독자에게 직접 얘기할 순 있다. 그 원고가 끝내 발견이 되지 못하거나 발견될 자격을 갖지 못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자신이 천재라고 여기는 뻔뻔스럼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중에서 진짜 천재도 여럿 있다. 나는 천재에 대해서 고민해본 사람은 모두 천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는 천재라는 이름이라서 별로 쓸모는 없지만 그들을 모두 천재로 임명한다. 그런데 나는 천재가 아니라 작가이다. 나는 작가이다. 작가적인 생활을 할 것이고, 왜 작가인지 그 목적을 한번 고민해볼 생각이다. 아울러 무목적의 목적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생각이다. 특히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하고,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작가와 천재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되므로 내가 가지는 '뻔뻔스럼'은 일종의 '전략적 뻔뻔스럼'이다.

내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에 대해서 혹시 대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다. 눈을 감으면 '靈'들이 내게 무수한 요구를 해오는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들 앞에서 고개를 푹 숙여 있고, 그 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나는 그 영을 한 번 한껏 끌어안아 보고 싶다. 그것이 또한 '뻔뻔스럼'의 이유가 될 것이다.

과음을 하고 신나게 구토를 하고 나면 어질어질하기도 한데 '꺼억' 하고 트림이 나올 때는 우습다. 먹지 않고 오히려 뱉어냈는데, 트림이 나올 수 있을까? 과음에 대해서는 김수영이 일가를 이룰 것이다. 그의 산문집 안에 낙타과음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산문이 있는데, 오늘 머리감고 마르기를 기다리며 읽었다. 혼자 방안에서 키득키득 웃었던 모습이 아직도 도망가지 않고 옆에서 나를 간지럽히고 있다. 특히 무도 누나***의 회탐에 김수영 산문집이 귀엽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나도 일종의 전도(傳道)를 한 셈이 되지 않느냐며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데, 깜찍한 발상이지만 끝내 지우긴 아쉽다. 무도 누나도 지금 머리를 밀었다 나갔다 하는 것 같다. 과음을 하고난 다음에 그 글을 읽으면 재미가 더한다. 시간이 되면 전문을 올려놓고 싶다.

지금도 기운이 남아 있어서 한껏 쏟아낼 것 같아 불안하다. 그러나 나는 '구토'의 진공청소기 같은 특징에 베팅을 하고 마음을 놓는다. 그렇게 게워내고 이불 안에서 배를 살살 만지며 천정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꼬마아기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애는 자주 동네에서 징징대는 아이인데, 징징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통곡을 한다. 그 행위에 대해서 형용할 표현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용은 징징대는 주제인데, 형식은 대성통곡이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분은 도움을 주면 고맙겠다. 평소에는 제대로 듣지 않았는데, 오늘 정확히 들어보니 '안아줘어-' '안아줘어-' 하며 통곡을 하는 내용이었다. 듣고보니 그 애는 평소에도 그런 내용으로 통곡을 하던 보기드문 꼬마다운 꼬마아기였다. 그래서 꼬마아기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아이를 어디다 붙여 놓으면 좋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이렇게 밀집된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은 하나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스또옙스끼도 '가난한 사람들'을 쓸 때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하숙하는 방에 살고 있었고, 마르크스가 자본론 등 저작을 쓸 때도 처참하게 가난한 방에서 썼다. 나도 '내친구 순병이'라는 소설의 착상을 여기서 얻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동네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얼마 없으면 떠나게 되어 아쉽다. 내가 절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음'들을 동네는 선사해준다. 그 중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소리'가 있기도 하다. 옆집 할머니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발악하는 소리를 지르고 또 이틀에 한 번 꼴로 빗자루질을 한다. 그 플라스틱 빗자루로 동네를 쓸 때 나는 그 소리는 피부가 꿈틀댈 정도로 큰 자극을 준다. 아무튼 내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음'을 줄 수 있는 곳에 자주 가 볼 생각이다.

내가 구토하며 쏟아낸 것들을 다 썼는지는 의문이지만 이제는 밥먹으러 가야겠다. 내 눈은 지금 노랗게 변했고 화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옆에서는 짜장면, 짬뽕, 탕슉을 마구 먹으면서 냄새를 보내고 있고, 감기 기운이 나를 또 엄습한다. 이 때는 밥을 좀 먹어줄 필요가 있다. 해장국을 먹어야지. 아무튼 요즘은 내 문체가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서 즐겁다. 여자친구가 들으면 좋아할 내용일텐데, 여자친구를 따라서 나가면 좋은 자극을 받고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것은 일종의 외조(外助)가 될 것이다. 그런 외조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내조를 잘 해야 할 것 같다. 내조는 말할 것 없이 공부가 되겠는데, 어른들은 인생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한 마디를 들으면 그 전체적인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그것을 이순(耳順)이라고 하는데, 공선생님이 육십 세때 그러했다고 한다.**** 특히 많은 '소음'들이 '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내공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많은 '당함'이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역시 많은 내조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나는 평생 공부만 할 운명일 것 같다는 풀쌍한***** 생각이 든다. 백면서생을 극복해 내면서도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從之, 其不善者而改之.
<論語> 述而第七 中 21章
**'님'자는 생략하도록 하겠음. 동료가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략하겠음. 글의 특성상 '님'을 생략했지만, 어쩌면 영원히 생략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고민하고 있으나 그것은 당사자의 허락이 없으면 불가능하며, 또 많이 얼굴을 맞대지 않으면 불가능함. 이것은 회원탐구 안에 들어갈 내용이지만, 철수한찰에 대해서는 글 몇 꼭지와 사진 한 장이 전부이다. 특히 하얀 볼과 동그란 눈만 기억이 나는데, 그 똥그란 눈이 내게 어떻게 말을 걸어 올지 사뭇 궁금함.
***갑자기 '무도 누나'라고 해서 당황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주를 붙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부를 때도 되지 않았을까요.
****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論語> 爲政第二 中 4章
*****'불쌍한'의 제주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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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 전집 - 전25권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22명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오래전부터 그의 작품과 인생을 내 인생과 관계시켜서 주시했는데, 그것이 하나의 말을 이룰 만큼 그럴듯해졌기 때문에 쓴다.
먼저 기질, 성격, 분위기의 면에서 유사하다. 약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다가 니힐리즘적인 면이 그러한데, 이것은 내가 부정할 수 없다. 인물로 따지자면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라고나 할까? 게다가 도스또옙스끼(이름이 너무 치기 어렵다. 개스끼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건 너무하고 줄여서 도스끼라고 함)의 작품에 끊임없이 나오는 핵심 재료는 라스꼴의 친구 재간꾼이자 농담꾼 라주미힌(이름이 맞는지 불분명함)의 성격도 나는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주 침울해지기도 잘하지만 수월히 거기서 빠져나오기도 하고 운명의 명령으로 오랜 시간동안 그 안에 있어야 할 때도 있다. 게다가 '대인관계에서 위력을 발하는 농담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예의 주시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능구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무도 누나 같은 사람은 '오버'라는 수식을 붙이기도 하는데 그러한 성격이 제일 두드러지는 순간은 아마 나와 한주먹성을 붙영놔둘 때가 아닌가 한다. 도스끼의 그러한 면에서 나오는 좋은 점들은 솔직히 내가 물려받고 싶은 거이기도 하고, 내가 영향을 받기도 한 것 같은데, 근본적인 성격이 맞물려야 그런 것이 가능하므로 아무튼 이것이 닮은꼴 베스트원이다.

두번째는 천박한 내 언어로 말하자면 '만병(晩兵)-만학의 구조를 살짝 따다가 지은 말'이라고나 할까? 나는 스물 여섯에 군에 들어갔었고, 도스끼는 서른 즈음인지 훨 넘어서인지 한번 더인지 암튼 무~쟈게 늦게 군대에 갔다. 그것은 도스끼의 인생 중에서도 전환점이 되며 그의 문학적인 측면으로 봐서도 연구가들은 전환점이라고 말하고, 그의 인생처럼 극적인 입대였다.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도스끼 연구가들은 그의 문이 군대 사건을 중심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나는 후기를 많이 좋아한다. 이보다 더 비슷해지기 위해서는 나는 군대가서 새파란 고참들한테 오만가지 능멸과 조롱을 당해야 하는데, 제발 그것은 닮고 싶지 않다.

세번째는 슬픈 거이기도 한 신체적 결함이다. 이점을 확대 해석하면 도스끼와 나의 만남의 문이 될 것 같다. 신체적 결함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건강한 편이지만 우격다짐으로 말을 더 하자면, 도스끼는 만성 간질을 앓았고 그 구체적인 시기는 자신이 선택하기도 하였을 테지만 대개 운명의 명령을 받았다.
늦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사위(斜位) 증상이 있다. 생활상 거의 무리가 없는 증상이긴 하지만 작은 상을 지속적으로 쳐다보는 데는 무리가 많다. 게다가 작은 상을 지속적으로 쳐다보는 것을 업으로 삼을 경우는 가히 치명적이다. 약간 말을 더 하자면,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각도를 서로 협의해서 나오는 삼각형의 똥침으로 상을 쳐다보게 되는 게 일반적인 경우이다. 특히 책을 읽을 때는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더욱 긴밀히 협상해야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불화하기 때문에 똥침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삼각형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엇갈린 엑스(X)자가 된다. 그것을 책의 글자라는 상에 비추면 당연히 글자가 붕 뜨게 되고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티격태격하는 만큼 출렁출렁하기 때문에 더 독서를 할 수 없다. 이것은 또 네번째 닮은꼴에 들어가야 할 테지만, 나같이 예민하고 섬세한(예민함과 섬세함의 차이점은 잘 모르겠지만)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휘말려 각종 합병증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지금도 그것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신경을 쓰고 있어서 몸에서 꾸물럭꾸물럭 이상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무도 누나가 '건강에 신경쓴다면'이라는 리플을 달았을 때 의미가 심장해서 죽는 줄 알았다.
이 상황에 대한 나의 대처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40만원에 해당하는 프리즘 안경을 써서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란 점에서 '고래와 무리다'.
두번째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안과 전문의와 상담을 추진하는 것인데, 이것은 군대 입대 시기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불투명하다.
세번째가 가장 나닮은 대책인데, 과학적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의 간절한 갈망으로 대처하고 있다. 나는 갈망의 힘을 믿는다, 믿고 싶다. 그것을 여친에게 얘기했더니 끄덕끄덕 하면서도 못내 미적지근함을 감추지 않기는 하였지만, 그 갈망을 통해서 연속해서 최고 세시간 정도 되는 눈밧데리의 힘을 얼마간 더 연장시킬 수 있었다. 이것도 역시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눈밧데리가 한 번 방전이 되면 일단 시원한 풍경을 찾아서 밖으로 나가는데, 다시 충전될 때까지는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아마 내 생각에 한잠을 자야 돌아오는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 내가 하루동안 줄 수 있는 눈의 힘은 세 시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무리해서 나아갈 경우 눈의 크기를 아주 작게 해서 상을 억지로 꿰맞출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나의 안면근육과 표정에 문제가 생긴다. 나는 눈을 크게 떠야 된다고 울엄마는 누누히 강조한다. 안그래도 엄청 강한 인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경으로 커버해서 평생 렌즈 끼는 것도 주저하는데, 인상까지 더 더러워지면 그야말로 '난몰라'이다. 하 하 하 하 하 하 '어쩜좋아'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당태종은 장군상이어서 아주 강인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신하들이 두려워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하루는 당태종이 최측근 신하에게 물었다. 그 신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한동안 하루에 한두시간씩 거울 앞에 서서 인상 예쁘게 하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 그 결과 인상이 좋아지게 되어 신하들이 맘놓고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사위의 한 원인-최소한 발견하게 된 원인-은 도스끼에게 있다.
2000년 여름의 일이다. 문학동아리에 있으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행사가 '독서토론회'였는데, 내 후배 역시 도스끼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으므로 작가를 도스끼로 정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 '죄와 벌', '백치', '악령', '까라마조프 형제들' 등의 작품을 2주마다 토론에 붙이느라고 그 여름 내 손에는 도스끼의 책이 떠날 날이 없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후기 장편의 경우 단행본으로 따지자면 1000~2000페이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에 있는 굵직굵직한 책을 모두 합하면 적어도 5000페이지는 될 것이다. 아마 '까라마 형제들'을 마지막으로 토론하기 하루 전날이었던 것 같은데, 일이 있어서 미루다가 전날 1000페이지를 한꺼번에 읽었다. 그 때 글자가 상당히 깨졌기 때문에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나의 미신으로 보아, 그것은 도스끼가 나에게 선사한 선물이라 생각한다. '너는 너무 걱정거리가 없어서 굵직하고 심오한 글줄을 만들어내기 힘들어. 그러니까 이거 하나 달고 힘좀 내렴.' 하고 도스끼가 자주 속삭이는 소리를 다른 귀로 듣는다.

다섯번째로 신비스런 호기심이다. 물론 작가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생명의 원천이지만, 나도 좀 유난하다는 생각이 든다. 뒤에 나올 끝내망설임장에서 내 호기심의 진수가 드러난다.
도스끼와 내가 다른 점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하나 고르자면 그 사람은 극적인 인생을 꽉 채운 사람이었고, 나는 살아있는 소시민인 관계로 이리저리 쏠리는 반거충이라는 점. 반거충이는 반거들충이라고도 하는데 무엇을 배우다가 다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꼭 나를 가리키는 단어인 것 같아 뜨끔하다. 이외에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은 '음전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김수영 산문집에서 처음으로 봤는데, '말이나 행동이 곱고 점잖다'는 뜻이다. 이것 또한 내가 결여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나는 아이와 많이 닮은 어른이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멀어진다고 해서 그에게 어른이라는 칭호를 줄 수는 없다. 우리는 '어른스럽다'*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들레르는 유년 시절 큰누이나 엄마의 품 안에서 오랜 시간 보호되지 못한다면 그가 아무리 위대한 천재라도 얼마간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한 적이 있는데, 이말처럼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천재여도 인간적인 감동을 주는데 한계가 있으며 정이 떨어질 것 같다. 지금 내가 의문에 부친 점은 다름아닌 '루소'**라는 사람인데 그가 아이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는 끝내 해결을 보지 못했다. 이에 대한 보다 명쾌한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린다.
도스또는 아이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으며 그것을 까라마 형제들에서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 그것을 쓰기 위해 아동연구가이자 의사인 벗에게 편지를 보내서 아이들에 대한 당신이 아는 모든 자료를 보내 줄 것을 간절히 부탁한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까라마 형제 안에 넣을 수 있었고 그것이 또한 까라마 형제의 핵심 주제를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까라마 형제의 백미인 법정 안에서의 변호인 최후 변론에서는 실러의 '군도'라는 작품을 인용하며 유년 시절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하며 이반과 알료사의 진지한 대화 안에서도 '어린이'와 유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아이들을 좋아하고 싶다. 마냥 마음만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뒷부분에 별록을 첨가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도스또는 희와 비와 미와 신비와 사랑 등 모든 인간적 고민을 한몸에 집중시킨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그를 닮으려고 하는 이유다.
나는 도스또옙스끼를 사랑한다.

요번에 서점에서 도스또의 아내인 안나가 쓴 남편의 이야기를 본 일이 있는데, 그것도 재미있었다. 틈틈히 가서 다 읽어야겠다. 여친이 김승옥 소설은 맘잡고 읽어보라고 하는데 읽을까 말까 고민중이다. 너무 철학적이고 어려운 책만 읽는다고 작은 누나도 말했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또 치우쳐서 균형을 잡기 힘들 것 같다. 소위 통속이라는 것도 한 번 읽어봐야겠는데, 이런~ 나는 아직도 고전(古典)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우.
역시 밥을 먹었더니 문체도 늘어진다. 더 쓸까말까 고민중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맞아!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 하나로 통신 일 짤렸다. 원래 4팀으로 운용하고 있었는데, 제주도의 신구간 때문에 8팀으로 만들면서 내가 투입되었다. 그런데 4팀으로 정상 운영할 수 있으니까 나는 필요없다고 하더라. 돈벌어서 대학원 등록금 빚진거 갚으려고 했는데, 그것이 끝내 아쉬울 것 같다. 이러한 결말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인데, 생각해보면 참 그럴듯하고 내가 소설을 쓴다고 하더라도 이 결과만큼 극적이고 바람적이고 현명한 것은 없으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나의 인생을 주무르는 신적인 존재를 깊이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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