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 - 이 땅의 모든 청소년에게 주는 철학 이야기
윤구병 지음, 이우일 그림 / 보리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모든 실패는 분명 원인이 있으며 교육 문제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원인에 대한 분석이 명확할 때 해결의 가능성도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서 손을 못 대는 이유는 무엇이 문제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공교육의 붕괴, 교권의 붕괴, 학원폭력 증가, 음란물 노출 등 산적한 현안만 있을 뿐 이에 대한 해법은 주먹구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하면 해결될 수 있을까? 교육부가 말한 것처럼 방과 후 학습이나 삼불정책, 독서노트 강화 같은 정책을 시행하면 모든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비싼 과외비를 내고 좋은 대학에 가면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이런 해법으로는 교육에 대한 양극화만 심화될 뿐이다. 실패의 원인은 분명하다. 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없고, 그런 고민을 하는 교육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는 철학을 가르치던 교수로서 교육계를 떠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었고 거기에서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가 이 땅의 모든 청소년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철학이야기는 우리 교육환경에 대한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비록 비판을 했던 때가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때문에 이 책이 아직까지 유효한 것이다. 이 책이 단지 교육자의 철학을 정리한 책이었다면 별다른 특징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다른 교육 철학 도서와 차별되는 이유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거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담아내는 이야기는 현실 안에서 벌어지는 교육 문제의 실질적인 내용을 짚고 있다. 특별활동이나 학급활동, 체육 등 예체능 과목을 전부 폐지한 데 대한 학생의 불만이나 자살을 생각하는 친구에 대한 우려, 교육과 교육 행정의 괴리 등 현장에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되 본질까지 꿰뚫고 있다. 게다가 권위적인 어른의 목소리가 아닌 또래 친구가 보내주는 편지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에 다정하고 편안하다.
주제와 관련된 짤막한 만화도 흥미롭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주된 틀이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온갖 모순이 담겨 있다. 예컨대, 공부를 하는 목적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며, 좋은 대학에 가는 이유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해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하다 보면 결국 목적도 없이 공부하는 허위가 드러난다. 그것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세계이다. 결국 만화에서는 모순을 드러내며 화두를 시작하고, 글은 이에 화답해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해서 친절하게 다룬다. 이와 같은 2원적인 구성이 이 책을 더욱 독특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교육’ 주변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삶에 대한 가치와 의미이다. 교육은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배우는 사람으로 선생님이나 제자라는 구분이 없다. 궁극에 가서는 ‘깨달음’이다. 교육을 하는 사람이나 교육을 받는 사람이나 저마다 깨달음을 발견한다. 그것이 교육의 가치이다. 사람을 세상이라는 공동체에 참여시키는 것,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자 책임이라면, 그 책임을 망각할 때 교육은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대학에 가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얻는 수단으로 전락하면 그 안에 들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교육에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는 것이다.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라는 이 책의 제목은 각자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것이 교육의 사명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맨틱 웹 - 웹 2.0시대의 기회
김중태 지음 / 디지털미디어리서치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웹2.0 기반의 사이트를 만들려고 했는데, 신문이나 사이트를 뒤져봐도 말만 무성할 뿐 실체가 없다.
꼬리를 잡고 잡아 만난 사람이 바로 '김중태'라는 사람인데, 그가 웹2.0에 관한 책을 남겼다.

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도 좋아하는데, 대학 시절에는 '사이버문학의 도전'이라는 책을 읽고 변화되는 문학의 형식에 대해서 들뜬 마음으로 찾아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책의 저자는 토마스 쿤의 말만 무수히 인용해 놓고, 분명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사실, 문학 앞에 '사이버'라는 수식어는 사치인 것 같다. 저마다 '문학'에 자신의 관점을 덧입히지만, 문학은 문학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IMF와 FTA를 생각했다. 공장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싸우고 일궈 놓은 터전을 자본은 얼마나 쉽게 빼내갔던가. 우리의 웹 기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초고속 인터넷 가입률이 세계 최고이고, 와이브로니 퓨전메모리니 해도 웹 기반에서 뛰어놀 수 있는 신명나는 판을 만들지 않으면 시장을 통째로 빼앗길 수밖에 없다. 김중태라느 사람의 다른 글에 보면 '구글'이 왜 우리나라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네이버나 다음이 구글의 로봇을 철저히 막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표 포털은 단지 자물쇠만 걸어 놓은 것을 가지고 '경쟁력'이니 설치고 있으니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자기 스스로를 한정하려는 이상한 내력을 가지고 있는데,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나서는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 목에 칼을 들이댈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경향이 있다.

최근 일주일간(2007.5.25 ~ 2007.5.31), 검색엔진을 통해 내 다음 블로그를 다녀간 방문자는 총 992명인데, 네이버가 605명, 다음이 330명, 엠파스가 55명, 기타가 2명인데, 야후와 구글은 단 1명도 다녀가지 않았다. 포털에서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무한공유'라는 말은 수년 전부터 내 머리속에 각인된 화두이다. 이것은 '오늘날 천재가 태어나지 않는 이유'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지식은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서 지식의 쓰레기들이 많아져서 천재가 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천재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를 알아보기도 어렵다. 요즘 세상에 천재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과거의 모든 정보는 '현재'의 문제에 소용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정보는 방대하여 어떤 정보가 어디에 소용이 되는지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정보의 쓰레기와도 엄청난 전쟁을 치러야 한다. 만약 정보의 쓰레기를 방치한다면 쓰레기에 노출되는 시간만큼 낭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맺은 결론은 '우리들의 DB'를 만드는 작업이다. 파스칼은 말했다. '나의 DB란 없다. 다만 우리들의 DB가 있을 뿐이다'라고* 새로운 사이트에 대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철저히 '나'에 대한 원칙이다.

* 원래의 말은 이렇다. "우리는 '나의 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우리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썼다는 그 책도 역시 누군가의 책에 나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팡세)


1. 내가 그 동안 수집하고 때로는 만들기도 했던 자료를 재분류해서 '정보더미'로 만들고, 이를 공유한다. 우선 신문여행이라는 블로그에 담겨 있는 시사자료 13,000개 가량을 주제별로 세분화해서 재배열한다. 만약 누군가 한 주제에 대한 게시글을 클릭한다면 그와 연결된 다양한 자료를 연결해서 볼 수 있도록 정보더미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도 이 '정보더미'에 참여할 수 있게 권유한다.

2. 공유를 위해서는 게시물의 값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특정 게시물이 상위 주제의 어느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3. 웹 엔트로피(정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순열식 정보가 아니라 연동식 배치가 필요하므로 필연적으로 거미줄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를 인드라망(indra network)라고 한다. 즉 연동은 연동값에 따라 위치하기 때문에 특정 주제에 대한 콘텐츠를 찾기가 훨씬 수월해지며, 검색으로 웹 페이지를 지루하게 클릭하는 것보다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4. 독서행위에서도 태그를 붙여 정보의 값을 매긴다. 이 태그들을 '타당한 위치의 원칙'에 따라 웹의 DB에 축적하고 다른 정보와 연동하여 유기적인 DB화를 실천한다.

5. 유용한 정보를 보았을 때 접수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이를 적절히 배열함은 물론 스스로 배열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마련한다.


김중태의 시맨틱 웹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이제까지 '콘텐츠'를 생산하려고만 했지 그것을 유용하게 구성하려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구글이나 국내의 포털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서 돈을 벌거나 성장한 것은 아니다. 김중태 씨는 주요 신문사의 기사를 구미에 맞게 재배열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회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태그화에 대한 준비는 2003년부터 했던 것 같다. 단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이었다. 내 친구들 중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읽는 책을 나는 평생 읽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의 전문을 확인하지 않고도 요지를 뽑아낼 수 있다. 주요 부분에 대한 초록이나 리뷰를 가지고도 유용한 정보생활을 할 수 있는데, 전문가들은 정보의 엄밀성만을 너무 강요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그들1, 교과서, 녹색평론, 장자, 남한산성 등 접하는 모든 장르에 태그를 붙였다. 물론 설정을 위해서 이것저것 붙여놨지만, 개인적으로 독서에 대한 편식은 심한 편이다>


<태그들2, 이 책 '시맨틱 웹'의 태그들이다. 책 1권에 대충 30개 정도의 태그가 붙는다.>



<태그들3, 문구점에 가면 태그용 포스트?堧? 파는데, 흰면에는 쪽수를 쓰고, 드러난 면에는 키워드를 쓴다. 쪽수를 쓰는 이유는 나중에 떼졌을 때 다시 붙이기 위해서다. 본문에는 연필로 범위를 표시하고 밑줄을 치기도 한다. 연필을 쓰는 이유는 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좀더 나쁘게 말한다면 헌책방에 책을 팔 때 형광펜이 쳐져 있으면 값이 좀 떨어진다고나 할까>


목적 없이 붙여왔던 태그가 이제는 분명한 목적이 생긴 만큼, 태그의 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태그의 위치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노출은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요약문을 따로 만들 것인가 등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김태중 씨의 책에서도 공용 태그니 스마트 태그니 많은 용어를 쓰는 것을 보면, 태그가 중요하긴 중요한 모양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이 세상의 정보에 태그를 붙여, 크고 근사한 정보더미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왜 없겠냐마는 나와 내 주변의 정보들 먼저 추스리려 한다. 만약 내가 만들어낸 정보가 근사하다면 누군가는 동참하고 싶어질 것이고, 이렇게 하나 둘 모이다 보면 강력한 정보의 지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몰래 생각할 뿐이다.

물론 프로그래머와 이 일을 함께 할 예정인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한다. 정 안 되면 '링크'를 다닥다닥 붙여서라도 모델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솔직히 나도 그 '정보더미'가 무척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이 생각에 빠져, 밤에도 잠이 안 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김훈은 남한산성 아래 있었다. 왜 그곳으로 왔을까? 왜 남한산성에서 오래된 위난을 불러들였을까?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이 책으로 나는 김훈이라는 사람을 처음 만난다. 사실 김훈을 일컬어 시대의 문장이라고 칭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가 나의 독서목록표를 기울게 만든 원인일진대, 사람들은 김훈의 글붓에 환호하는 것인가, 그림붓에 환호하는 것인가? 아니면 붓을 휘두르는 풍모를 찬사하는 것인가?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면 그림붓이 되고, 글을 써넣으면 또다시 글붓이 되기는 하지만, 무엇을 표시하건 간에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뜻이 있기 마련인데 내 눈에 쉬이 밟히지는 않는다. 김훈이 정치적으로 중도적 성향을 보이는 것은 알고 있지만 위난을 애써 불러놓고서 '패잔병'의 관점을 고수한 것은 다소 거북하다. 더욱이 그 '패잔병'조차도 '패배하지 않은 패잔병'이다. 만약 쓰라린 패배가 의미 있는 기억이 되어야 한다면 패배를 낱낱이 드러내야 할 것인데, 이 글을 이어간 패잔병은 국지전의 승자와 국지전의 패자를 한 화면에 데려왔을 뿐이다.

남한산성에서 일관되게 그려지는 뜻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생명이다. 김훈에 의하면 생명은 아래로부터 피어나는 것인데, 폐쇄적인 사회에서는 고담준론에 의해 짓밟히고 공멸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회가 철저히 부숴졌어도 생명은 남는다. 기나긴 전쟁의 피로가 가시지 않았을 텐데, 전쟁터를 기웃거리며 기물을 수집하고 봄나물을 캐고 천민 서날쇠는 정칠품 추증은 안중에도 없고 살 계획을 세우기 바쁘다. 더군다나 이 소설의 마지막이 '봄'이지 않은가.

이 소설을 가만히 녹여보면 별로 눈에 띄는 인물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특이하다. 주요 인물인 김상헌조차도 너무나 평범한 서생이다. 대장장이 서날쇠와 귀화 역관 정명수는 솟아나오려다 말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악을 배제한 것인가? 용장군과 칸은 일반적인 악인일 뿐 상대 진영일 뿐이다. 작가가 가장 사랑한 인물은 '최명길'이 아니었을까? "처형하라"는 공론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주상과 끝까지 시선을 맞췄고, 논적인 김상헌의 뜻을 가로막지 않는 아량이 여유롭다.

답답하다. 소설 속의 그림풍처럼, 등장인물들의 불평처럼 답답한 소설이다.

한 번의 교전도 없어서 진군대열은 한가했고, 행군 속도는 하루 백오십 리를 넘었다. 가마에서 흔들리며 칸은 이 무력하고 고집 세며 수줍고 꽉 막힌 나라의 아둔함을 깊이 근심하였다. (책 260쪽)

풀리는 강을 바라보면서 칸은 망월봉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조선 행궁의 망궐례를 생각했다. 홍이포의 사정거리 안에서 명을 향해 영신의 춤을 추던 조선 왕의 모습은 칸의 마음에 깊이 박혀들었다. .... 난해한 나라로구나..... 아주 으깨지는 말자.....부수기보다는 스스로 부서저여 새로워질 수 있겠구나.....(책 276쪽)

알 수 없는 것은 조선이었다. 송파강은 날마다 부풀었다. 물비늘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칸은 답답했다. 저처럼 외지고 오목한 나라에 어여쁘고 단정한 삶의 길이 없지 않을 터인데, 기를 쓰고 강자의 적이 됨으로써 멀리 있는 황제는 기어이 불러들이는 까닭을 칸은 알 수 없었고 물을 수도 없었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서 송파강에 당도하기까지 행군대열 앞에 조선 군대는 단 한번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대처를 지날 때에도 관아와 마을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조선의 누런 개들이 낯선 행군대열을 향해 짖어 댈 뿐이었다. 도성과 강토를 다 바꿔 놓고 군신이 언 강 위로 수레를 밀고 당기며 산성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내다보지 않으니, 맞겠다는 것인지 돌아서겠다는 것인지, 싸우겠다는 것인지 달아나겠다는 것인지, 지키겠다는 것인지 내주겠다는 것인지, 버티겠다는 것인지 주저앉겠다는 것인지, 따르겠다는 것인지 거스르겠다는 것인지 칸은 알 수 없었다. (책 280~281쪽)


작가가 답답해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조선의 내력이었을 것이다. 수 천년의 문화와 함께 버릴 수 없었던 성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려낸 전선의 그림이 참으로 답답하다. 그것은 후쿠자와라는 일본의 지식인의 눈에도 그대로 비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FTA 시대라고 해서 달라지는 게 무엇일까.

문명이라는 것은 홍역이 유행하는 것과 같다. …… 이 유행병의 해로움을 증오하고 이것을 막으려고 해도 그 수단은 있는 것일까? 나는 결코 없다고 증명한다. …… 차라리 힘써 이 유행병의 전염을 도와, 일본 국민을 빨리 그 기풍에 물들게 하는 것이 지자가 해야 할 일이다. …… 문명을 막아 그 침입을 금하면, 일본은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 
불행한 일은 이웃 에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중국이고 또 하나는 조선이다. ……이들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나라가 망해, 국토는 세계의 문명 여러 나라들에 분할될 것임에 한 점의 의혹도 없다. 왜냐하면 홍역과 같은 문명개화의 유행에 직면하면서, 양국은 그 전염의 자연적 추세에 등을 지고 무리하게 이것을 피하려고 밀실 안에 틀어박혀 공기의 흐름을 막고 질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는 나라?』 중에서)


수만의 적군이 남한산성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본진을 차리고, 실질적인 전투는 본진에서 떼어진 수천의 청군과 남한산성을 지키는 초병이거나 성을 떠나 게릴라전을 펼치는 유군(유격대)의 각개전투이다. 사실 이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보다 '각개전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저마다 대의를 외치지만, 임금조차도 한목숨을 부지하기를 바라고 함부로 오줌을 싸대는 칸 앞에서 굴욕을 감수했다. 국서의 명을 받든 당하들은 자기의 이름을 역사에서 빼고자 똥오줌을 질질 흘리며 명을 거슬렀고, 병사들이나 서민들이나 당장 먹여주는 곳에 귀의할 뿐 전쟁의 국면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작품이 담고 있는 이와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는다. 김훈은 작가의 정체성이라는 해묵은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천상 소설가이다. 지식인을 대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민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그려낼 뿐이다. 개화파와 개전파의 논쟁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논쟁일 텐데, 이미 결론이 나 있는 논쟁이었다. 다만 거기다가 '말'을 덧붙였을 뿐이다. 그 논쟁 자체가 주는 메시지는 없다. 다만 허위를 드러낼 뿐이다. 소설가가 담담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뜻을 내세우지 않는 것은 정설이지만, 김훈은 이 점을 너무 미련하게 추구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논의하지 않고 그려낼 뿐이다'는 전설의 작가들도 자신의 할 말은 모두 했다. 다만 최종적인 결정을 독자에게 배려할 뿐이다. 그 정설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마치 최명길과 김상헌의 길이 다르지만 그 지극한 곳에 미쳐서는 하나의 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100년 후에 이 책을 누군가가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은 우리의 해묵은 내력이나 짜증나게 훑으라는 것인가. 김훈의 '유보'가 너무나 아쉽다.

다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글붓과 그림붓이 다 필요하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유익한 가르침이었다. 나는 종이 한 장을 펼치고 거기에 인물들과 사건들을 지도처럼 표시할 것이다. 김훈의 인물들은 정물화처럼 희맑지만, 나는 인물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여 현장에서 녹이고 남을 듯한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의 나머지 작품들을 읽는 것은 나의 선택이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담담함보다 치열함과 섬뜩함을 보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독자를 먹여살리는 것은 작가의 기록이 남긴 '의제'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치밀한 묘사가 아니라 인물들의 생생한 열전과 책이 일관되게 던지는 메시지다. 참으로 여민동락(與民同樂)할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07-05-2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분께 싸인 받았다. 나도 왠지 이 책은 그다지 끌리지는 않는데 그래도 전작주의 작가라 읽기로 했다.^^

승주나무 2007-05-2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스텔라 누나//나는 싸인은 받지 않았지만, 기회가 좋아 책을 얻게 되었어요. 처음 읽는 김훈이라 그런지 적응은 되지 않네요. 그래도 배울 것은 많은지라 읽기로 했죠~~
 
일본이라는 나라?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오구마 에이지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현재의 우리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시간적으로는 ‘역사’의 과정으로 통해서, 공간적으로는 각국의 ‘관계’ 혹은 ‘이해관계’를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감안해서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때의 다른 나라’가 되어 버린다. 다른 나라의 역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과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 대해서 이러한 원칙을 적절하게 지켰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국사』는 특정 시기의 역사를 서술할 때마다 ‘민족의 철천지원수’, ‘절멸시켜야 할 적’의 존재를 명확히 설정한 뒤, 이런 원수와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복종, 화합과 단결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데, 이런 대목에서 돋보이는 ‘상상 속의 적’은 역시 일본 제국주의이다. 이와 같은 식의 역사서술은 일본아 자신들의 전쟁을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책은 일본의 현대사가 주된 내용이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와도 겹칠 뿐만 아니라 세계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에서 현대사로 넘어오는 흐름의 중심에서 격변기를 보냈다. 공교롭게도 유교 중심적 전통주의에서 서방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일본이 아시아 최초였다. 만약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냉전의 시기를 거쳐, 민주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파악하려 한다면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구조를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 책의 서술 의도는 일본 지식인이 자국의 중고등학생에게 읽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체가 평이하며 매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화폐 1만엔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학문의 권장』이라는 저자이기도 한 후쿠자와가 자신의 책을 ‘원숭이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썼다’고 한 말은 오히려 이 책을 더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용으로 집필되었다고 해서 기본적인 교양서나 학습지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일본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이보다 명쾌하고 간결하게 소개한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이 책이 오히려 일반인에게 매우 유용한 점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일본은 국제정세에 가장 민감하게 움직였으며, 동시에 국제정세의 흐름에 가장 깊숙이 편승하고 있다. 이 편승은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세계사를 만들어낸 주된 흐름이기 때문에 일본이 얻은 이익은 패해 그 이상이다. 현대사는 일방통행이며,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은 바로 미국(서방)이 만들어놓은 유일한 길이다. 이 책은 몇 년도에 무슨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고리타분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사건이 함의하고 있는 ‘뜻’을 명쾌히 설명한다. 우리나라에도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읽는 한국사』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 역시 『뜻으로 읽는 일본 현대사와 한국, 그리고 세계의 현대사』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인에 의해서, 일본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저이 다르다. 즉 밖에서부터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일본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 관점을 우리 역사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잃어버린 현대사’를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덧 : 원제가  '일본이라는 나라?'여서 한국 제목도 그것을 따랐지만, '번안'이 아쉽다. 일본에 관한 시시껄껄한 소개서가 많은데, 이 책의 제목이 마치 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뜻으로 읽는 일본현대사' 같이 좀 기획력 있게 제목을 만들었으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5-20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0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관 2009-06-1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 보고 건너뛰었다가 목차 보고 구입합니다. 제목에 대한 지적 공감해요. 땡스투! (알지의 자유)
 
유쾌한 딜레마 여행 -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사고 실험 100
줄리언 바지니 지음, 정지인 옮김 / 한겨레출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딜레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잘 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최악인 상황. 갑자기 쓰러진 친구를 업고 병원에 가면 수업불참으로 선생님께 혼이 날 테고, 교실에 갔다가 병원에 가면 친구의 증상이 더욱 악화될 수 있는 상황. 누구나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딜레마에 대한 예행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사서 딜레마의 상황에 빠져보는 것이다. 잘만 연습하면 실제상황이 닥쳤을 때 후회없는 최선의 선택을 하거나,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논어』에서도 ‘멀리 사고하지 않으면 가까운 근심이 닥친다’(人無遠慮, 必有近憂)고 하지 않았나. 내가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거다. 공격은 최선의 수비니까.

『유쾌한 딜레마 여행』은 무려 100가지 딜레마를 제시한다. 그 중에서는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만나기 쉬운 상황들이 제시돼 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부터 영화 메트릭스에 이르기까지 흥미 있는 주제들을 실제 사례와 상황을 만들어 간략하게 제시하고 그와 관련된 책이나 이론들을 표시해 놓았다. 그 다음 저자의 간략한 설명과 내용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뒤따른다.

사고실험이라는 것은 실험도구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생각으로 진행하는 실험을 말한다. 실험에 필요한 장치와 조건을 단순하게 가정한 후 이론을 바탕으로 일어날 현상을 예측한다. 실제로 만들 수 없는 장치나 조건을 가지고 실험할 수 있다. 그야말로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다. 우리가 철학책을 읽기 힘든 이유는 ‘이론’이 긴 분량으로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려주지 않으니 우리로서는 중요성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가끔 철학책에서 일상의 예시를 들어 설명해 준다면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상황이란 그런 것이다. 상황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그 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심오한 주제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진리까지 포함되기도 한다. 우리가 『장자』라는 책을 오래도록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논술’의 주요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논술학습을 위해서도 유익하다. 논술은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 추상적 분석을 시도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유추하는 작업이다. 제시문에서 간단한 상황이 펼쳐지거나 일상의 사례가 소개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신의 사고력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은 100가지 상황에 대해 알기 쉽게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분석을 따라가면서 함께 배우거나 저자의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새로운 해석을 내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테마의 말미에 유사한 4가지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해서 생각해본다면 더욱 깊이 있는 사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100개의 딜레마를 정복하겠다는 욕심보다는 시간을 두면서 찬찬히 곱씹어보는 것이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딜레마는 좀처럼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