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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저런 유토피아에 빠져서 현재를 잃어버린 존재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개념에 대해서 한참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잠정적 유토피아' 개념은 스웨덴의 정치가 비그포르스가 창안한 개념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나왔다. 사회주의나 총파업 같은 파국적인 경로로 혁명적인 희망을 제시했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것은 '혁명적인 복불복'뿐이었다. 그 예측불가능하고 위험한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유예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같지만, 실제로 우리는 이런 저런 유토피아에 젖어 현재를 방기하고들 있지 않은가? 비그포르스는 스웨덴을 천년왕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스웨덴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들에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다. 1919년 예테보리 강령에는 구체적인 실행방안들이 제시되었다.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전국단위 의료보험, 출산 및 양육수당, 주택건설의 공공지원, 압도적인 누진적인 재산세와 상속세, 자본과세, 은행 및 보험사의 사회화, 산업현장의 노동자 경영참여 등등.


잠정적 유토피아 개념은 쉽게 말하자면 '현재 구하기'와 같다. 인간이 현재를 얼마나 허망하게 방기해버리는지는 철학자 파스칼이 날카롭게 꼬집었다.




허망한 우리는 이미 없어진 시간을 생각하지만 현존하는 유일한 시간을 무심히 놓쳐 버린다. 그것은 대체로 현재가 괴롭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를 외면한다. 그것은 현재가 참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현재가 즐거울 때에는 그것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애석하게 여긴다. 파스칼 『팡세』


미래에 휘둘리고 과거를 잊지 못하며 끌려다니며 현재를 살아갈 줄 모르는 인간들을 공자는 '비열한 인간의 삶'이라고 말했다.


공자가 말했다. 비열한 인간이 윗사람을 잘 섬길 수 있다고 하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그는 걱정인형이다. 갖고 싶은 것이 아직 손에 없을 때는 없다고 걱정하고, 설령 그것을 어찌저찌 손에 넣었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릴까 걱정한다. 잃어버릴까 걱정하는 게 정도를 넘어서니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도 저지르고 만다.

『논어』 「양화」 편



공자의 '잠정적 디스토피아'


공자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가장 의지했던 제자 자로가 귀신 섬기는 방법을 묻자 산 사람을 섬기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귀신 섬기는 방법을 배울 필요 있겠는가 하고 일갈했고, 말귀를 못 알아먹은 제자가 이번에는 죽음에 대해서 질문하자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배울 필요 있겠는가 하고 결정타를 먹인다. 위나라에서 공직 생활을 하고 있던 자로가 5.16 또는 12.12 같은 군사반란 조짐에 초조해 하면서 죽음과 귀신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었지만 공자는 자로가 사는 길에 더 집중하길 바란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잠정적 디스토피아 개념은 '차악의 시나리오'를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아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미 데미지를 받았다면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재아가 노나라 임금인 애공에게 자문을 하다가 실언을 한 적이 있다. 재아는 중국 고대의 신주(神主 : 위패를 뜻하며 '회사' 할 때의 '社'라는 글자의 뜻)를 만들 때 사용했던 나무의 뜻을 설명했다. 요즘 말로 비유하면 '꽃말' 같은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가장 오래 된 하후씨는 소나무를 썼고, 은나라 사람은 잣나무를 썼고, 바로 직전 제국인 주나라는 밤나무를 썼는데, 밤나무는 한자로 '율栗'이었다. 


이 글자가 '몹시 무섭거나 두려워 몸이 벌벌 떨림'이라는 뜻을 가진 전율(戰慄)과 비슷하기에 백성들을 두렵게 만들기 위해 밤나무를 썼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백성들이 왕에게 두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애공은 '공포정치'를 떠올릴 수 있었다. 공자는 제자의 실언을 인정하면서 더 이상의 논란을 만들지 않았다. 재아의 말을 넌지시 억누름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다.


이루어진 일이라 말하지 않으며, 끝난 일이라 논쟁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탓하지 않는다

『논어』 「팔일」 편


만약 공자가 제자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했다면 다른 방향에서 반론이 제기되면서 정치 논쟁으로 번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는 살얼음판 같아서 말이 어느 방향으로 튀는가에 따라서 정책 방향이 결정되고 국민의 운명이 큰 영향을 입기 때문에, 도지사는 '정무부지사'를 두고, 당대표는 '정무실장'을 두면서 메시지 관리를 한다. 공자 역시 일종의 메시지 관리를 한 셈이다. 공백료라는 사람이 노나라 제1실세 계손씨에게 자로에 대한 비방을 퍼뜨렸을 때도 공자의 잠정적 디스토피아가 실행되었다. 공직에 있었던 자복경백이 자신의 직권으로 공백료를 처형시키겠다고 말했지만 공자는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도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천명이며 도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천명이니, 공백료가 천명을 어떻게 하겠는가?

『논어』 「헌문」 편


만약 자복경백의 계획이 실행되었다면 디스토피아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이다. 물론 자복경백은 공백료를 처형함으로써 화근을 없앴다고 생각하겠지만 노나라 정가에서 그렇게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다. 공자는 공백료의 입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불리한 이야기가 퍼진 것에 대해서 일단 인정하고, 그것이 최악이 되지 않기 위해서 끊었다.



일상에서 '잠정적 디스토피아' 실천하는 방법


나는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와 공자의 잠정적 디스토피아 개념을 실생활에 적용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떨궜다. 내겐 정말 유용한 개념이었다. 만약 돈 100만원을 잃어버렸거나, 갑작스런 손해를 보았거나, 접촉사고가 나서 피해를 봤을 때 사고가 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사고로 인한 2차 3차 피해를 막는 것은 가능하다. 주식투자를 할 때 큰 손해를 보았다면 손절함으로써 2차 3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결국 매도 판단을 내리지 못함으로써 손해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휘둘리고 미래에 끌려가기 때문이다. 일단 벌어진 손해를 인정하고 그것이 '디스토피아'로 확대되기 전에 끊는 것이 잠정적 디스토피아의 핵심이다.


나는 잠정적 디스토피아 개념을 사람에게도 적용한다. 어떤 문제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특히 그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맥락이 존재한다면 캐릭터 분석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가 할 것이 예상되는 행동을 기정사실화하고 나의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예컨대 관계 개선이 이루어질 구멍이 어느 쪽에도 없다면 '지연시키기' 작전을 실행한다. 어차피 관계가 악화되는 것만 남아 있다면 악화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을 쓰는 것이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데에는 내 몫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에서 지연 작전을 쓰면 디스토피아로 치닫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디스토피아에서 갑자기 유토피아로 방향을 트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군가의 또다른 죽음이나 비극적인 사고를 통해서 전환점이 강제로 마련이 되지 않고서는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만약 나의 슬픈 예상이 틀렸다면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공자의 잠정적 디스토피아 개념은 '헛된 희망'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거꾸로 관계가 개선될 수 있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계산한다. 대개는 관계가 개선될 조건들이 거의 없다는 씁쓸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그 사람이 나이가 많을수록 변화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슬픈 시나리오는 현실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의 변화를 통해서 관계가 개선될 확률을 0%로 잡은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고 속도 편하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이가 어리다면 변화 가능성은 훨씬 많다. 그래서 나는 나이대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가 지금은 초등학생들과 주로 대화를 하고 있다.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 안에서는 '슬프지 않은 예감'을 경험할 수 있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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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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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의 인물됨을 물었는데, 자로가 대답하지 못했다. 공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 ‘그의 인물됨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분발하느라 먹는 것도 잊고, 이치를 깨달으면 즐거움에 빠져 근심과 늙음이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라고 말하지 않았니?

- 『논어』, 「술이」 편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오프닝 장면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부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즐거움에 빠져 근심과 늙음이 닥쳐오는 줄도 모른다'는 황홀경의 경지를 전할 수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특이하게도 뮤지컬이 원작이며, 소설은 뮤지컬과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침대 위에서 감전된 것처럼 춤을 추는 장면은 소설보다 먼저인 것이다. 황홀경을 느끼는 인생의 순간이 얼마나 될까?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어서 언저리를 불나방처럼 배회하다가 결국 불타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진정 황홀경의 순간은 시련, 그것도 극한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맹렬히 불탄다.


재키 아저씨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빌리는 발을 구르고, 도약하고, 회전하면서, 온몸을 불사르며 춤추었다. 확실히는 몰라도 그 춤은 대충 5분 가량 계속 되었고, 그동안 아저씨는 동상처럼 꼼짝않고 서 있었다. 아마 아저씨도 이전에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나랑 같았던 것이다. 나는 마구 소리치고 싶었다. 이봐요. 아저씨! 아저씨 아들을 보세요! 정말 놀랍지 않으세요?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분노는 나의 힘'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의 학살적인 노동자 탄압으로 인해 탄광 노동조합이 궤멸된 1984년 영국 뉴캐슬 지역이 작품의 배경이기에, 작품의 모든 곳에 '분노'가 다양한 에너지로 변주되고 있다. 아버지 재키 엘리어트는 '전향'하지 않은 탄광 노동자였기에 임금도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큰아들 토니 엘리어트는 강경파 노동조합원이었기에 경찰의 표적이 되어 더 큰 탄압을 받았다. 엄마가 있을 때에는 집안이 그럭저럭 굴러갔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집안의 구심점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매일 강한 놈들에게 당해 왔던 재키는 둘째인 빌리는 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권투를 시켰는데, 빌리는 발레에 빠져서 속을 썩힌다. 권투를 배웠으면 하는 아버지의 '강함'과 발레로 맞서는 빌리의 '강함'에 관해서도 토론이 가능하지만, 이번 글의 주제는 '감전'이기 때문에 감전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짚는 것이다.


공자는 왜 남쪽의 초나라에까지 굴러 가게 되었던 걸까? 세상을 바꿔보고 싶어서 국정농단을 일삼는 '삼환'이라 불리는 세 대부를 실각시키기 위해서 작전을 세웠지만 깨끗이 실패하면서 망명생활을 하게 된 이후에 가는 곳마다 냉대와 문전박대를 당하며 공자의 여행은 유쾌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남쪽의 오나라에서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전쟁 혁신으로 춘추시대의 낭만적인 전쟁이 아니라 대량학살이 일상화된 비현실적인 삶이 고통스러웠다. 공자가 초나라에 간 것은 섭공이라는 실권자의 요청도 있었지만 약소국인 자신의 나라를 살릴 길을 찾아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읽을 때는 노동조합 이야기와 1984년 영국의 상황, 노동자를 악마화하여 마녀사냥을 벌이는 정치 상황과 발레를 어떻게 연결했을까 의아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노동자 파업과 발레의 연관성을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감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분노라는 것은 무엇인가? 몸짓이라는 건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 본다면 감정과 정의와 설천과 정신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고, 그것은 삶의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빌리와 함께 '감전'될 수 있다면, 공자와 함께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다면, 나의 삶에 불꽃이 일어나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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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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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가 죽었다. 제자들이 성대하게 장례를 지내려고 했지만 공자가 반대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나를 아버지처럼 대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내탓이 아니라 너희들 때문이다.『논어』, 「선진」 편



안회는 신화적 인물이다. 안회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고 더군다나 요절했기 때문에 마치 역사적 인물보다 신화적 인물로 착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논어』에서 공자가 안회에 대한 엄청난 찬사를 남겼기 때문에 제자들도 넘버2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공자는 넘버1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선생께서 자공에게 물으셨다. 너와 안회는 누가 나으냐? 자공이 대답했다. 안회는 도저히 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데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렇다, 너뿐만 아니라 나도 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논어』, 「공야장」 편


처음에 인용한 『논어』 구절에서는 안회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공자가 안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과 제자들이 안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충돌하고 있다. 제자들은 왜 안회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려고 했을까? 안회라는 제자의 상징적인 의미와 '성대한 장례'가 가져오는 효과를 생각한 것이다. 장례라는 것은 세를 과시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성대한 장례를 통해서 공자의 제자들은 세를 과시하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공자는 소박하게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한다. 이것은 공자와 안회의 일이며, 두 사람의 문제이기 떄문이다. 공자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안회의 마음'이다. 안회는 "찬밥에 냉수를 마시며 골목 안 누추한 집에서 살"았고 보통 사람이 혐오하고 불평해마지 않는 가난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며 살았다. (논어, 옹야 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살았다면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을 지 모르겠지만, 공자는 부유하고 가난한 것이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란 사실을 알았기 떄문에 안회의 삶을 존중했다.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안회가 죽고 나서 갑자기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은 어쩌면 안회의 삶에 대한 부정이자 배신일 수 있다는 생각은 스승 공자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공자가 성인이고 훌륭한 인품을 가졌기에 제자들이 무조건 복종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논어』에는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반항과 논쟁, 다양한 이견으로 가득하다. 소박하게 장례를 치렀으면 좋겠다는 스승의 바람이 제자들에게 통할 리가 없다. 공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제자들 뒷담화와 푸념을 늘어놓는 것밖에 없다.


논어의 시선을 『어린 왕자』로 옮긴다면 "대상을 그 자체로 마주할 수 있는가?" 하는 중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논어에서 공자가 안회를 그 자체로 마주한 것처럼, 어린 왕자에서는 그 자체로 마주하는 것에 대한 장면들이 많다. 어린 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를 1909년 최초로 발견한 터키 천문학자는 자신이 입은 복장 때문에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터키의 독재자는 백성들에게 유럽식으로 옷을 입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명령해서 천문학자는 1920년 우아한 양복을 입고 논증을 다시 해서 비로소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소행성 B612와 천문학자는 변함이 없었지만 전통 복장을 서양식 양복으로 보정하는 작업을 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대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서양식 양복' 덕분이지 순수하게 B612를 마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린 왕자 역시 대상을 그 자체로 마주하지 못한 실수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장미 이야기다. "해님과 함께 태어났다", "호랑이 따윈 무서울 게 없다", "제가 떠나온 곳은" 같은 허영심 가득한 말들과 "저녁엔 유리 덮개를 씌워 줘요" "바람막이는요?" 같은 까다롭고 눈치 없는 요구 때문에 어린 왕자는 장미를, 장미의 사랑을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없었고 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바로 보지 못한 죄값을 치른다는 점에서, 어린 왕자의 여행은 어쩌면 '유형(流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 거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꽃을 판단했어야 했는데. 그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거기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어설픈 거짓말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챘어야 했는데.
『어린 왕자』


마지막으로 '뱀'과 관련해서 "대상을 그 자체로 마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절정에 도달한다. 지구에 내렸을 때 어린 왕자가 처음 만난 "손가락같이 가느다랗고..."이상한 짐승"은 "건드리기만 하면 자기가 태어난 땅으로 되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뱀이었다. 어린 왕자는 뱀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지구에서의 작별을 부탁한다. 뱀과의 마지막 일을 바라보는 어린 왕자와 비행사의 엇갈린 시선은 슬픔과 감동을 증폭시킨다. 비행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마음이 더 애절해진다.


"아저씨는 잘못한 거야. 마음이 아플 거야. 내가 죽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말 그런 건 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도 알 거야. 거긴 너무 멀어. 이 몸뚱이를 가지고 갈 수는 없어. 너무 무거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벗어 버린 낡은 껍데기나 같을 거야. 낡은 껍데기가 슬플 건 없잖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잠시 기운을 잃었다. 그러나 다시 안간힘을 썼다.
"참 포근할 거야, 아저씨도 알잖아. 나도 별들을 바라볼 거야. 별들이 모두 녹슨 도르래를 달고 있는 우물이 될 거야. 별들이 모두 내게 마실 물을 부어줄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즐거울 거야! 아저씨는 방울이 5억 개나 있고 나는 샘이 5억 개나 있고..."
그리고 그도 말이 없었다. 울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왕자』, 112~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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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1-25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오랜만이야. 잘 지내?
올해는 여기서 자주 볼 수 있는 거니? ㅎ
암튼 올해도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승주나무 2023-01-25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조금 여유가 있어서 간간히 글 남길 수 있을 듯합니다^^

바람돌이 2023-01-2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어의 장면이 이렇게 어린왕자의 장면과 만나기도 하는군요. 책읽기에서 어떤 질문을 던질것인가는 굉장히 고차원의 독서라고 생각하는데 이 글에서 그런 독서를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
오랫만에 저도 댓글 남기는거 같은데 반가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승주나무 2023-01-25 23:32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 님//오랜만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전에 교통방송 라디오에서 했던 논어와 문학의 콜라보에서 했던 원고를 리뷰 형태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일단 논어는 나에게 들어와 있으니까요, 그 눈으로 문학작품을 찬찬히 살펴보고 자주 글을 남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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