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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연못 - A Little Pon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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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현실을 바꿔놓다

살아 있는 SF영화의 전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1993년에 기존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영화 하나를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 영화가 <쉰들러 리스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한 폴란드의 어느 마을의 사업가 쉰들러가 독일군 장교에게 빼내는 사람 숫자대로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유태인들을 구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명단을 만드는 과정을 영화화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유태인 대학살을 공론화하는 데 기여한 이 영화로 98년 9월 10일 로만헤르초크 독일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독일 최고의 명예인-십자훈장을 받았다.


▲ 스티븐 스틸버그 자신이 "평생 동안 꿈꾸고 생각했던 영화"라고 했던 작품은 ET 같은 SF가 아니라 유태인 학살을 다룬 <쉰들러 리스트>이다. 자기 작품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감독에게도 소중한 꿈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소재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1995년  평화시장 청계 피복노조의 한 노동자였던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소재로 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박광수 감독)이 그러하다.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에 강제차출된 북파공작원 31명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다룬 영화 <실미도>도 역사적 사건을 원작으로 했다. 더욱이 영화 <실미도>는 관련자에 대한 명예회복 등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사회적 여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영화들은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


영화라는 타임캡슐을 만드는 사람들

"망각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면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사람들의 뇌리에 사라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 이후 "전두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전두환 시절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떤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급기야 '역사'도 선택과목으로 추락한 상황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 망각'이라는 공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문화'가 맡는 일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화와 책으로 소개된 <바시르와 왈츠를>은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 때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과 공조한 기독교도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3,00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참히 대량 학살한 것을 폭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만든 아리 폴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바시르>를 만드는 4년 동안 세 아이가 태어났다. 아마도 나는 내 아들들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 같다. 그들이 자라서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든가 하는 결정 말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개봉 이후 제66회 골든글로브시상식(2009)에서 외국어작품상 등 수많은 상과 찬사를 받았지만, 이스라엘 인들에게는 "조국의 배신자"라는 낙인을 받기도 했다.


▲ <바시르와 왈츠를>은 인류사의 부끄러운 기록 가운데 하나인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 (1982년 9월16일)를 학살에 참여한 당사자인 이스라엘 인의 눈으로 그린 것이 특색이다.  


영화인들, 노근리학살을 '헌정영화'로 만들다

올해가 한국전쟁 60주년이다.

1950년 7월, 노근리의 철교 밑 터널 (속칭 쌍굴 다리) 속으로 피신한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이 미군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무참히 살해된 ‘노근리 사건’이 60년만에 영화화되었다.

노근리 사건은 1999년, AP 통신 기자들을 통해 그 진상이 밝혀졌다. 그들은 비밀 해제된 미(美) 군사 문건을 검토, 사건 발생 당시의 미군 이동 경로와 현장에 주둔했던 미군부대를 찾아내고 당시 가해자인 미군과 피해자인 한국의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잊혔던 사건의 궤적을 맞춰내는 등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 ‘노근리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는데,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부끄럽게도 이 사건을 알리려는 노력은 해외에서 더욱 눈물겹게 이어졌다. AP통신의 보도 이후 2002년, 영국의 BBC 방송은 다큐멘터리 <Kill'em All>을 제작해 ‘노근리 사건’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알린다.

이에 자극을 받은 '대한민국' 영화인들이 <타임캡슐> 작업에 나섰다. 2003년부터 문성근, 故 박광정, 송강호, 문소리, 박원상 등 142명의 한국의 대표 배우들과 229명의 스탭들이 노개런티로 영화 작업을 했다. 특히 故 박광정에게는 <작은연못>이 유작이 되었다.

영화 <작은 연못>은 최상훈 기자를 포함한 AP통신 기자들의 ‘노근리 사건’ 특종보도 기사를 토대로 영화화를 검토하여 기획을 시작했다. 4년에 걸쳐 노근리 현지 답사와 생존자 및 유가족 인터뷰 등의 자료조사를 철저하게 진행했고, 2003년 국내에 번역본으로 출간된 ‘노근리 다리’와 노근리 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은용씨의 저서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원작으로 하여 3년여 간의 시나리오 작업, 6개월 간의 촬영 준비와 3개월 간의 촬영, 3년여 간의 후반 작업이라는 기나긴 공정을 거쳐 <작은 연못>은 완성되었다.


▲ 142명의 한국의 대표 배우들과 229명의 스탭들이 노개런티로 작업한 <작은 연못> 덕분에 40억원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영화를 10억원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영화인들이 헌정한 영화, 관객들이 받을 차례다

영화 제작과정 내내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문제는 영화 완성 이후이다. '작은 연못'은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리젠테이션에 초청돼 국제무대에 먼저 선보였지만, '좌파 논란'으로 초청작에서 제외될 뻔했다.

문제는 '배급'인데, CGV, 롯데시네마 등 공룡 배급사들이 장악한 한국 영화 시장에서 마땅한 배급사를 찾지 못한 것이다. <작은 연못> 제작진은 시민사회와 네티즌들과 "작은연못 배급위원회"를 조직해 전국 230개 상영관에서 1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를 전개하는 등 눈물 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4월15일 본 영화 개봉 이후 스크린이 확보되지 않아 영화가 조기 종영되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언론보도와 시민들의 프리뷰, 리뷰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고 있지만, 영화를 개봉해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작은 연못>이 단명한 영화가 될 것인가, 관객에게 사랑받는 영화가 될 것인가는 오로지 관객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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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10-03-2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보러갈 영화 리스트에 올렸어요. 아, 근데 맘이 너무 아픈 영화일 거 같아 걱정이어요.
 
박쥐 - Th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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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를 생각하면서 '박쥐'를 보면 재미없다.

박쥐라는 영화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박쥐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 화가 났다. "너무나 불친절한 영화"라고나 할까. 영화의 논리적 개연성이나 극중 인물의 콘텍스트(문맥)을 중시하는 나에게 '박쥐'라는 영화는 너무 뜬금없었다. 주인공이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이 너무 엉성해 '박찬욱 영화 맞아?'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었다. 상현(송강호)가 어떻게 해서 뱀파이어가 되었건 간에 뱀파이어가 된 이후에 살아가는 현실이 중요한 것이다. 하기야 나도 직장 잘 다니다 반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을 보고 "왜 그랬어?"라고 따지듯 묻는 지인들에게 "사연이 복잡해"라는 말 이외에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초반부 스토리에서만 '왜?'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영화 전체에서 '왜'는 마치 금칙어와 같다. 금칙어를 대신해서 차지한 개념은 '바로 지금'이다. 그것은 태주(김옥빈)의 돌변이다. 마치 조용한 연못에 파문이 일어나는 것처럼, 상현의 등장에 태주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한복집에서 말 잘 들으면서 조용하게 살아온 태주는 상현을 만나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조용히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현을 만나고 나서 인생의 섬광을 느꼈고, 섬광에 완전히 몸을 맡겼다. 태주의 돌변이 믿기지 않고 환타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황석영을 보라. 황석영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보다 극적인 변화는 언제든 누구에게서든 일어난다.

인생은 고요한 연못과 같다. 누군가 돌을 던지기 전까지는 다 그렇다. 돌을 맞고 파문이 일다가 다시금 고요히 잠잠해지기는 하지만 '파문'을 만나 파문 속으로 몸을 던지고 아예 해일이 되지 않으란 법이 어디 있을까?




캐릭터를 폭발하게 만드는 힘이 영화에는 있다

영화 <박쥐>를 보고 내내 못마땅하다가 떠오른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각각 캐릭터들이 너무나 강렬하다는 것이다. 소설가든 영화감독이든 가장 어려운 것이 캐릭터의 창조이고, 그 다음이 상황의 설정이다. 나머지는 이것들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박쥐>는 캐릭터가 살아서 날아다닌다. 그것은 단지 연기자들이 연기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니다. 연기력보다는 연기자들이 편안하게 연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극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고민 때문에 50명 중에 1명만 살아남는다는 신약 실험에 투신했지만 사실은 상현의 욕망을 숨기기 위한 기제였을 뿐이라는 것이 태주에 의해서 드러난다. 태주 역시 강우에게 학대를 받은 사실이 없지만 상현이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학대 받는 여자'가 되었다. 등장인물들이 빛이 날 때가 언제인가? 바로 '욕망'이 작용할 때다.

나는 박쥐의 부제를 <욕망의 저항사>라고 쓰고 싶다. 은폐하려는 자(상현)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 망각한 자(태주)로부터 깨어나려는 욕망. 하지만 욕망과 욕망의 부딪힘은 결코 신사적인 결말을 만날 수 없다.

"하나의 욕망은 더 큰 욕망에 의해서 제압될 뿐이다"(스피노자)

욕망의 이데아가 있다면 나는 태주의 욕망이야말로 욕망의 이데아라고 생각한다. 순수한 욕망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판타지적 욕망이다. 현실적 욕망은 상현에게서 찾을 수 있다. 상현의 욕망은 반거충이 욕망이다. 항상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욕망의 편에도 이성의 편에도 설 수 없는 <박쥐> 같은 존재가 바로 상현이다. 내가 제목에 도달한 길은 이와 같다.

상현의 캐릭터를 욕망과 이성의 대결구도로 본다면 상현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상현은 욕망의 이데아도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이성도 대표할 수 없다. 상현은 '갈등'과 '고뇌', '방황'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상현의 마지막 결단을 보면 이성이 욕망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과연 이성이 승리를 했을까. 이성은 욕망의 엄청난 힘에 눌려 '자폭'을 한 것뿐이다. 고뇌하고 갈등을 한다는 것은 이성이 받쳐줄 때의 일이다. 고뇌와 갈등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성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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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5-1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에서도 호평을 받았나봐요. 기사라 주르륵 떴어요.
-마치 조용한 연못에 파문이 일어나는 것처럼, 현상의 등장에 태주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앞부분에 모두 '현상'이라고 적혀 있어요. '상현'으로 고쳐야겠어요.^^

승주나무 2009-05-17 01:17   좋아요 0 | URL
박찬욱 감동의 인지도와 칸의 수상 내역.. 그리고 실제 영화를 접하면서 받는 느낌을 순수학 구획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해서 고민을 오랫동안 했지만, 칸의 수상 내역이 호평을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지도 모르겠지요. 확실한 것은 판에 박힌 독법으로 <박쥐>에 다가가면 열이면 일곱여덟은 실망을 하게 될 것이란 점입니다. <사이보그는..>필이 조금 나거든요^^

오탈자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 현상현이라고 할 걸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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