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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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나는 행복해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욕망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내 욕망을 잘라내면 나는 시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거라 믿었다.
이것이 삶에 대한 미련이었고, 그것이 다시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 얕은 바람조차도 번뇌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울 만큼 강력할 줄 미처 몰랐다.
생존 이외의 것은 사치라 느꼈다.
필수와 필요를 구분하기 시작한다.
절박하지 않으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삶의 무게는 모두가 주관적일 것이고, 그 무게를 감당해내기엔 지나치게 개인적이다.
덜어내기엔 내 것이 너무나 커 보였고, 작은 진동에도 나는 몸서리치기 시작한다.
나는 발걸음이 이렇게 무거운데, 너는 어찌 가벼울 수 있냐는 탄식마저도 흘러나온다.
독버섯처럼 가시가 내 몸에서 삐죽 나온다.
이거는 아닌데, 정말 아닌 것 같아 주섬주섬 틀어 막아보지만
이젠 방향이다.
방향성을 가진 것은 관성도 가진 것인가.
현상 유지가 인생의 목표치가 되버린 것이 잘못은 아닐진데,
삶에 애착을 가지고 말았다.
버틸 수 없는 불행만 아니면 된다는 막연한 낙관…
적응만 잘 해도…
계속 흐를 수만 있어도…
아마도 살만한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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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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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씨가 요즘 이슈가 되었다. 관심 없던 분야를 관심 가지게 만들어 주는 몇몇 언론이, 높은 산 여럿 오른 ‘세계 최초의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신나게 달아주더니, 정말로 정상에 올랐는가에 대한 진위여부의 공범자가 되는 과정을 또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산악계의 황우석이 될 것인가. 아직은 모르겠지만, 경마저널리즘의 폐단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과연 오은선씨의 문제이고,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촌극인가? 이 책을 보니까 꽤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논란임을 알 수 있다. 산에 오르는 인간이 많아지니 상업화 되어 돈만 있으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산악인들이 갖고 있는 기본정신마저 훼손하여 누가 먼저, 누가 많이, 누가 더 빨리, 올림픽 정신처럼 경쟁적으로 산을 타고 있다. 헬기에 탑승하여 중간부터 오르질 않나, 산소 마스크 착용 유무에 따른 ‘진골-성골 산악인’ 논란, 여러 등반 팀들이 벌이는 신경전과 등반 코스의 정체현상을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봐도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보면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소개가 된다. 잦은 기후변화와 추위와 희박한 공기 속에서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믿는 도덕성과 이성적 판단이 무너져버린 순간을 기록했다. 이 논픽션은 아무리 경험이 많고 뛰어난 산악인이라도 고산지대에서는 철저하게 무기력하게 되는 순간이 언제든지 찾아온다고 한다. 흔히들 산이 인간을 허락한다 하지 않은가. 상업화 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인 것이다. 스폰서가 없으면 산에 오를 수 없고, 스폰서가 있으면 무조건 올라야 한다. 비용과 인명을 바꾸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르파들은 이들보다 더욱 열악한 상황에서 오르고 또 오르다 참변을 맞이한다.

무엇을 위해 위험한 산을 오르는지 일반인은 이해 할 수 없었다. 산악정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특별했는지도 모른다. 오은선씨 논란을 보면서 이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 등반이 이미 수 많은 사람들에 이뤄졌다고, 더 많이 오르는 것으로 승부하려는 그들은 그저 호들갑 떠는 시시한 뉴스거리로 전락해 버린 사실을 알기는 알까. 명예는 커녕 무사귀환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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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3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뇌 속은 좀 다르다네요.
전두엽 부분이요...ㅎㅎ
그니까 산을 오르게 태어났다는 말이 되나?

라주미힌 2010-08-30 11:38   좋아요 0 | URL
흘흘... 범상치 않군용 ㅋ
 
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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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악인들이 기업체들로부터 계속 후원을 얻으려면 판돈을 자꾸 높여야 해요. 다음 등반은 먼젓번보다 좀 더 어려운 것이 되어야 하고 좀 더 극적인 것이 되어야 하죠. 그건 일종의 악순환 같은 것이 되어 결국에 가서는 더 이상 등산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돕니다. -61쪽

충분한 결단력만 갖고 있으면 어떤 바보라도 정상에는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중요한 건 살아서 돌아가는 겁니다.-214쪽

우리는 너무나 피로해서 도와줄 수가 없었어요. 9000미터 이상 되는 곳에서는 도덕적인 원칙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342쪽

우리 동료 네 명이 죽은 건 로브 홀의 시스템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에베레스트에서는 본질적으로 모든시스템이 철저히 붕괴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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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구판절판


띠지가 재밌다. "아시는가? 우리들은 애초에 서로를 끊임없이 죽이면서 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언제나 핵심은 총을 쏜 자가 아니라 총을 쏜 자 뒤에 누가 있느냐는 것이다." 스릴러 영화 포스터에 나올 법한...

기필코 행복하세요...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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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8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8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8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0인의 책마을 -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
김용찬.김보일 외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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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가이드에서 책을 냈다. 긴 산고 끝에 출산을 한 기분이랄까. 그곳 회원이 된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 만나는 이 책은 내 자식 마냥 신기하다. 한때 참여도 해 보다, 미뤄지고 어긋나다가 잊혀졌건만, 푹 익은 숙변 같은 프로젝트가 힘 하나 안들이고 갑자기 해결이 되다니!!(무관심의 힘). 소비자의 위치에서 생산자의 위치로까지 도약을 한 그들의 저력이 조금은 부럽다.

리더스가이드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했다.
1.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많이 읽어 본 사람들이 책을 잘 알 것이다.
2. 출판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 들 중에서 (효율적으로) 좋은 책만 골라 읽고 싶다.
인적 네트워크의 가능성과 힘을 빌려보고자 했던 나름 적극적인 독자였던 셈이다. 온라인에 널려 있는 게 리뷰이고 소개글이지만, 신뢰와 권위를 쉽게 부여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에 대한 불신이 긴 시간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안목을 갖추도록 강요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괜찮은 책들을 고르는 것 같긴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안다.’, ‘언제 읽어야 하는 지’, ‘왜 읽어야 하는지’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오로지 읽는 일만 남았으며, 이것은 매일 먹는 밥처럼 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요즘은 다이어트 중 ^^;)

이 책에는 꼭지마다 얼굴이 있다. 목소리가 있고, 지문이 있다. 사실 그들이 무슨 책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는 2차적인 문제이고, ‘그 사람’을 읽는다는 게 흥미롭다. 알게 모르게 이어지는 생각들, 삶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보아야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물리적으로 단절 되었지만, 맨탈을 확인하니 뭔가 유기적으로 연결 된 것만 같다. 민족, 성, 학연, 지연 따위는 인간을 그룹화하지만, 책 따위는 인간을 링크 해준다는 것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삶의 마디마디에 새겨진 문신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말을 피에르 부르디외가 했어’. 또는 홉스도 그런 주장을 했지. 레닌이 그랬어. 파울로 프레이리, 레비 스트로스…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람들의 책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거나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생각의 수염뿌리는 어느새 나에게까지 파고들었다. CSI가 조사하면 밝혀지는 범인을, 내 몸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책과 사람과 사상의 지문들… 추적하면 누가 나올 것인가.

이제는 흔한 래퍼토리가 된 책을 이야기하는 책… 이 책은 어떻게 요리를 할까. 다수의 저자가 써낸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얼마나 조화롭게 정리 되었을까. 조금은 우려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퀄리티가 높다.
편집이 보기 좋다. 글에 담긴 책들이 서재에 꽂힌 책처럼 둘러보기가 좋다. 이 책의 어느 꼭지부터 읽어도 좋고, 오히려 문학성, 인문학성 보다 실용성에 더 가치를 둬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재미는? 잘 모르겠다. 내 취향은 아니니까.
책 읽는 재미 말고, 사람 읽는 재미를 찾는 다면 어느 꼭지에선가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지만 프로 못지 않은 글을 발견하는 재미는 나름 쏠쏠하다.

내가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고 리뷰를 쓰는 이유는 아마도 부채의식이 있는 듯 하다. 딱히 받은 것도 없지만, 딱히 줄 것 없어서 생긴 나의 부채… 내게 의미 있는 사람들이기에 이 책도 의미가 있다.
책은 이렇게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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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8-28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냄새가 나는 리뷰군요. 잘 읽었어요.^^

라주미힌 2010-08-28 21:28   좋아요 0 | URL
제가 괜히 뿌듯하네용 ㅋ

2010-08-28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8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8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8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9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29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0-08-29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리더스가이드에서 정말 오래된(!) 회원이셨군요.
오랫만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옆에 계신 분도 무척 반가웠다고 전해주세요! ^^

라주미힌 2010-08-29 16:08   좋아요 0 | URL
넹...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