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지젝과 함께 한국문학을 읽다

*모잡지의 청탁을 받고 며칠 끙끙거리며 쓴 글이지만,  늑장을 부린 데다가 좀 '도취적'이어서 게재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각주를 모두 생략하고, 부분적으로 재편집해서 여기에 올려둔다.



 

 

 

1. 지젝, 혹은 우리시대의 엘비스

“마돈나가 싱글 앨범을 발표하는 것보다 더 정기적으로 책을 발표”하면서 끊임없이 지절대는 철학자이자 지식계의 스타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비단 그가 지난 2003년에 내한한바 있다는 전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50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국내에는 ‘지젝’이란 이름과 관련된 20권 가량 번역/소개돼 있다) 지젝은 특히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독일 관념론과 라캉 정신분석학의 접속을 주된 이론적 지반으로 하여 글을 쓰면서도 세계적인 명성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물론 그러한 인기/명성의 원인은 단순한데, 그건 그가 칸트와 헤겔을, 그리고 라캉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바로 ‘대중’이 말이다.

 

특히나 그의 이름은 일련의 ‘영화책’들 덕분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는데,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삐딱하게 보기>,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같은 책들에서 지젝은 라캉의 난해한 이론과 고급스런 정신분석 담론을 이해하는 데 히치콕이나 할리우드 안팎의 대중영화들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유용하며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21세기형 철학자’를 ‘MTV 철학자’라고도 부른다지만, 그런 포스트모던한 별명보다는 (다소 구닥다리 같더라도) 모던한 별명이 그에겐 더 어울려 보인다. ‘철학계의 록 스타’, ‘문화이론의 엘비스’ 같은.

 

모호한/난해한 아카데미 담론과 대중문화를 접속시켜줌으로써 지젝은 무슨 일을 하는가? 바로 아카데미 바깥의 대중들이 자신의 생활주변과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 속에서 철학을 발견할 수 있도록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사실 이러한 역할은 백인의 컨트리뮤직과 흑인의 리듬앤블루스를 결합시킨 록음악의 정신에 얼추 부합하지 않는가? 지젝과 ‘지젝 현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한 영화감독의 말대로, 지젝은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의 시대에 지성주의(intellectualism)란 게 얼마나 재미있고 활기차며 뻑적지근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는 ‘우리시대 엘비스’에 값한다(사실 그가 강연 등에서 보여주는 폭발적인 제스처는 역시나 폭발적인 엘비스의 무대매너를 연상시키는 바가 있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얼마나 열정적인 것인지!). 해서 말하건대, 지젝을 읽는 일은 엘비스의 <버닝 러브(Burning Love)>를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흥겨운 일이며 흥분되는 일이다(우리는 그들의 ‘불타는 사랑’에 후끈 달아오르는 ‘품행 불량한’ 헝크(hunk)이고 매스(mass)이다). 그 지젝, 혹은 우리시대의 엘비스와 함께 한국문학을 읽는다? 

  

2. 이데올로기의 하찮은 대상

지젝이 ‘철학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서구 지식사회에 등록하게 되는 건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발표함으로써이다. 지젝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왜곡된 의식’ 혹은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론만으로는 소위 ‘탈이데올로기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해명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본다. 오늘날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며 발견되고 폭로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한껏 비웃어주는 ‘냉소적 주체’이기에. 그리고 바로 그러한 현실이 우리가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환상을 부추긴다. 그것은 물론 ‘환상’이다.

 

 

 

 

 

 

 

 

지젝은 이데올로기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행동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것은 ‘앎’이 아니라 ‘행함’이다(“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아주 잘 알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행하나이다”). 우리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이데올로그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적 실천 속에서 가령, 변기에서 물을 내리는 것과 같은 ‘하찮은’ 일에서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지젝은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서의 세 가지 변기 사용법을 예로 든다.

 

전통적인 독일식 변기에는 물을 내릴 때 대변이 사라지는 구멍이 앞쪽에 있어서 우리가 대변 냄새를 맡고 무슨 병이 있는지 없는지 점검해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전형적인 프랑스 변기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구멍이 뒤쪽에 있다. 즉, 물을 내리자마자 대변이 눈앞에서 사라지도록 돼 있는 것이다. 끝으로 영국의 변기는 이러한 두 가지 방식의 통합형, 혹은 중재형이다. 즉, 물통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대변이 물속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점검까지 가능한 것은 아니다.

 

헤겔은 영·불·독이란 지리적 3항에서 세 가지 다른 실존적 태도를 최초로 읽어내고자 했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반성적 철저함’(=보수주의)과, 프랑스는 ‘혁명적 조급성’(=혁명적 급진주의), 그리고 영국은 ‘온건한 공리적 실용주의’(=온건한 자유주의)와 짝지어질 수 있는데, 이것은 세 가지 변기 사용방식과도 상응한다. 해서, 우리가 탈이데올로기 시대에 살고 있다고 탁상에서 떠들어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잠시 화장실에 들르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곧장 이데올로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예기치 않은’ 사례들과의 조우는 지젝을 읽으면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바이지만, 사실 우리의 ‘엘비스’는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가 제안하는바, 여성 음모(陰毛)의 세 가지 스타일에서 우리는 동일한 기호학적 3각형을 만나지 않을까? 무성하게 자란 헝클어진 음모는 자연적 자발성을 존중하는 히피(hippie)족 여성의 태도를 가리킨다. 반면에 여피(yuppie)족 여성은 잘 가꾸어진 ‘프렌치 가든’형을 선호한다(비키니 라인을 따라 양 다리쪽의 음모를 제거함으로써 중앙에 면도선을 따라 좁은 밴드 형태만 남겨놓는다). 그리고 펑크(punk)족 여성의 경우에는 질 전체를 면도해 버리고 (대개는 음핵에) 고리를 달아서 장식한다. 더불어, 이러한 3각형의 구도는 레비-스트로스의 기호학적 3각형 버전으로 말하자면, ‘날것’으로서의 무성한 음모, 잘 손질된 ‘구운’ 음모, 완전히 면도한 ‘끓인’ 음모에 대응하지 않을까? 이러한 사례들까지 동원하여 지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가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갖는 가장 은밀한 태도조차도 이데올로기를 ‘발언’하고 ‘실천’한다는 것. 그러니, 누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말하는가? 

 

3. 그토록 하찮은 문학

지젝이 제안한 바는 아니지만, 문학에 대한 ‘공공연한’ 태도에 있어서도 우리는 세 가지 태도를 대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민족문학’이라는 엄숙주의적 태도를 별개로 한다면, 우리는 히피적 태도, 여피적 태도, 펑크적 태도를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을 각각 자유주의, 유미주의, 반항주의에 대응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레비-스트로스의 분류를 가져오자면, 이들의 문학은 각각 ‘날 문학’ ‘구운 문학’ ‘끓인 문학’이 될 것이다.

 

‘민족문학’이 민족적/사회적 대의(大義)와 문학을 분리시켜서 사고하지 않는다면, ‘날 문학’으로서의 히피문학은 문학과 삶을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반면에 ‘구운 문학’으로서의 여피문학은 ‘잘 구은 항아리’, 한갓 ‘예술작품’으로서의 문학을 지향한다. 그것의 다른 이름이 ‘문학주의’이다. ‘끓인 문학’으로서의 펑크문학은 문학행위를 하위문화적/비주류적 (저항)정신의 등가물로서 사고한다. 이 세(네) 가지 태도/주의가 어쩌면 1990년대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한국문학을 규정지으며 분할해온 구도는 아닐까?(물론 발생론적인 순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오게 되는 것은 히피문학일 것이다. 여피문학과 펑크문학은 그 뒤를 따른다.) 

 

지난 세기 후반에 한국문학은 흔히 명시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준거로 하여 1980년대 문학과 1990년대 문학으로 대별됐었다. 90년대 문학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 과잉시대’로 규정된 전(前)시대, 즉 80년대와의 대척점에서 자신의 세대론적 의의와 문학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념이란 지주를, 혹은 ‘공룡’을 상실하거나 배제한 문학은 스스로를 ‘하찮은’ 것으로 간주하며 문학의 자리를 ‘그늘’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이 ‘풍금이 있던 자리’, 이념의 공백에서 시작된 새로운 세대, 젊은 작가들의 ‘사소한’ 문학은 80년대 집단적 주체를 대신하는 ‘개인 주체의 귀환’이면서 동시에 ‘비루한 것의 카니발’(황종연)이었다.

 

 

 

 

 

 

 

 

이 세대의 작가들은 환멸과 냉소를 삶과 세계에 대한 주된 태도로 갖는 탈이념적 주인공들을 문학사에 등록시켰고, 이 나르시시스트 주인공들은 자신의 사회적 소외를 감내하면서 거창한 이념으로부터,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도덕적 명령으로부터 도주하거나 달팽이처럼 자신의 내면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면서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의 ‘가난한’ 자유를 음미하고 향유했다. 이 히피주의 문학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정서’였으며, 그들의 물질적 가난조차도 그 정서의 빌미였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IMF시대를 통과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는 60년대 이래의 다소 유구한 전통을 지닌 자유주의 문학, 히피문학 대신에 보다 대극화된 문학과 대면하게 되는데, 그것이 여피문학과 펑크문학이다(김영하와 백민석은 두 전형이다). 물론 이들의 간극을 낳는 것은 경제적 심급이며, 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건 ‘가난’이 아니라 ‘빈곤’이다. 즉, 여피문학과 펑크문학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혹은 각기 다른 급으로 문학이란 ‘화장실’을 쓰는 것이다. 이 두 갈래의 문학이 결코 지양되지 않는 사회적 적대와 결코 봉합되지 않는 그 적대의 간극을 문학적으로 반영/반복하고 있다면, 우리는 ‘문학은 없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지젝도 자주 반복하고 있는, (사회적 적대관계에 의해서 빗금쳐져 있기 때문에) ‘사회는 없다’는 명제를 비틀어서 말이다. “우리는 문학으로 하나다”라는 식의 대문자 문학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어쩌면 문학의 가장 순진한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4. 초월적 상상력과 문학의 존재론

지난 계절에 나온 젊은 비평가들의 몇몇 비평문들은 지젝의 철학/정신분석학을 적극적/암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90년대와 21세기 동시대 작가들의 문학행위에 대한 ‘인지적 지도그리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도 김영찬의 <90년대 문학의 종언, 그리고 그 후>는 ‘90년대 문학’ 이후 한국문학의 지형과 향방에 대한 조감을 제공해주고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이 ‘종언’에 관한 이야기는 은희경의 신작소설 <비밀과 거짓말>(2005)로부터 시작되는데, 그것은 이 작품이 그 문학적 성과와는 무관하게 90년대 문학에 대한 ‘형식적 종결’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다분히 우연한 것으로 보였던 ‘90년대 작가’들의 변화에 사후적으로 개입하여 그것을 일정한 집합적 맥락으로 계열화하고 ‘1990년대 문학의 죽음’이라는 분명히 의식화된 지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밀과 거짓말>에 의해서 ‘90년대 문학의 죽음’은 상상적인 것에서 상징적인 것으로 이행한다. 그러한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허무의식’이다. 작가 은희경의 데뷔작인 <새의 선물>(1996)을 지배하는 주제의식은 ‘환멸’이며, 이 환멸은 자기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애착을 환멸의 예외적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만 작동한다. 부정적인 세계 바깥으로부터 침해당하지 않는 ‘나’를 온전하게 정립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그것은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밀과 거짓말>의 허무의식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이때 허무의 근원에는 세계와의 냉소적인 지적 거리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주체의 무력함에 대한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이러한 무력함/무능력이 소환하게 되는 것이 ‘죽은 아버지’이다. 그리고 ‘나’는 이 거대한 타자의 질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력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비극적 자각을 갖게 된다.

 

비록 그러한 자각이 ‘주체의 성숙’의 표지이면서 동시에 ‘주체의 위축’을 드러내는 증상일 수도 있지만, 주목할 것은 그러한 소환행위에 의해서 부정되는 것이 “나르시시즘적 자아의 상상적 절대화”라는 점이다. 즉, 90년대 문학의 근거가 부정되는 것이다. 90년대 문학의 개인 주체는 크게 보아 ‘상상적 주체’이며, 김영찬은 백민석, 김영하, 조경란, 배수아 등 ‘90년대 작가’들이 최근 보여주는 변화로 이 “상상적 주체의 미묘한 형질변화”를 꼽는다. 그리고 <비밀과 거짓말>은 “그동안 다른 작가들의 소설에서 단편적․분산적 징조로만 드러났을 뿐 완결되지 못한 변화의 가닥들을 하나둘 수렴해 그들을 대표하는 의미심장한 선언으로 완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90년대 작가들’의 행적과 미래에 대한 ‘반성적 알레고리’가 된다고 평한다.

 

이러한 구도는 아직 불확정적으로 구획돼 있는 90년대 문학과 2000년대 문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로우면서 유익하다. 하지만, 문학사적 흐름, 혹은 문맥을 <비밀과 거짓말>이란 작품을 기준으로 하여 소급해가고 있기 때문에, 즉 통시적으로 접근해가고 있기 때문에 공시적인 차원에서 젊은 작가들의 ‘상상적 주체’가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고 또 변모해 가는지에 대한 조명은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더불어, 문학 존재론의 근간이 되는 상상력을 나르시시즘적인 상상계와 거의 동일시하게 되면 문학이 초월적 상상력과 갖는 원초적인 관계양상을 제대로 규명할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지젝을 참조할 수 있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사실 칸트 철학에서 현상계와 예지계, 우리의 감성(=가슴)과 지성(=머리)을 매개해주는 것으로 도입되는 ‘초월적 상상력’의 곤궁 혹은 양면성에 대한 이해는 지젝의 철학적 주저들에서 자주 반복되며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현상계와 예지계 어디에도 환원되지 않는 상상력은 수용적인 동시에 정립적이며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이다. 그것은 흔히 감각에 주어지는 다양을 한데 모으는 종합의 능력을 지칭하는데, 이러한 ‘종합활동’의 이면에 놓여 있는 것이 상상력의 ‘부정적’ 특징으로서의 ‘분해활동’이다. 즉, 상상력은 우리의 감각에 주어지는 다양을 그대로 수용하여 종합하기 이전에 먼저 분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분해활동이 산출해내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세계의 밤’(헤겔)이다.


"인간은 이런 밤, 즉 모든 것을 단순한 상태로 포함하고 있는 이 텅 빈 무이다. 무수히 많은 표상들, 이미지들이 풍부하게 있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곧장 인간에게 속해 있지 않다. 이런 밤, 여기 실존하는 자연의 내부, 순수 자기(self)는 환영적 표상들 속에서 주변이 온통 밤이며, 그때 이쪽에선 피 흘리는 머리가, 저쪽에선 또 다른 흰 유령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또 그렇게 사라진다. 무시무시해지는 한밤이 깊어가도록 인간의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밤을 목격한다."

헤겔이 묘사하는 바대로 부정적·파열적·분해적 상상력이 하는 일이란 연속적 현실을 ‘부분대상들’로 해체하는 것이다. 즉 “상상한다는 것은 몸체 없는 부분 대상을, 모양 없는 색깔을, 몸체 없는 모양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이 산출하는 ‘세계의 밤’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지점에서의 초월적 상상력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러한 부정적 매개자로서의 상상력의 존재론적 지위가 ‘데카르트적 주체’의 그것과 상동적이라는 사실이다. 지젝에 따르면, 자연과 문화 상태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 곧 ‘사라지는 매개자’가 바로 근대의 ‘데카르트적 주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말하는 존재’로서 자신을 정립할 때 이미 자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문화도 아닌 상태를 창조해야 하는바 데카르트적 회의에서 이것은 전면적인 ‘자기로의 철회(withdrawal-into-self)’라는 제스처로서 나타난다. 지젝에 의하면, 이러한 제스처는 광기의 일종이다. 이 광기는 앞에서 헤겔이 ‘세계의 밤’이라고 부른 것에 대응하는데, 상징적 우주 혹은 문화적 세계가 형성되는 것은 오직 이러한 ‘세계의 밤’, 곧 ‘분해적 상상력’에 의해서 현실이 소거될 때, 그리하여 세계가 절대적 부정성으로서 경험될 때뿐이다. 데카르트의 ‘자기로의 철회’는 이러한 극단적 상실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 상실의 자리, 텅 빈 공간이 바로 주체의 자리이다.

 

주체와 상상력의 이러한 차원에 우리가 주목할 때, 우리의 90년대 작가들이 이념의 상실, 이념의 공백 상태에서 직면하게 된 것은 오히려 상상력으로서의 문학 본연의 ‘부정성’이 아니었을까? 종합적 상상력이 아닌 분해적 상상력 말이다. 그리고, 문학이란 이러한 분해적·종합적 상상력에 근거하며 특별히 문학적 주체란 그러한 상상력이 활성화된 주체인바, 시인/작가의 문학적 태도란 이 상상력, 특히 ‘세계의 밤’에 대한 태도로서 규정될 수 있지 않을까? 이 두려운 밤(=상상력), 혹은 견디기 어려운 텅 빈 ‘주체’를 어떻게 채워넣는가, 어떻게 ‘주체화’하는가 하는 차이로써 말이다(‘주체화’란 우리들 자신을 언어 등과 같은 상징적 질서에 종속시키는 과정이다).


5. 동물원과 미술관 사이

그렇다면, 문학적 상상력이란 동물원(=자연)과 미술관(=문화)을 매개해주는 것인바,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 유난히 동물 이미지가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사실은 자연스럽다. 대타자로서의 이념이라는 가로막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상상력의 밑바닥을 헤집으며 상상력의 부정성을 길어 올린다는 의미를 함축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신경숙의 초기 대표작 <풍경이 있던 자리>(1993)의 서두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동물의 행동>이란 책에서 인용된 동물원 풍경이었다. 코끼리 거북을 사랑했던 어느 동물원의 수컷 공작새 얘기 말이다. 이후에 ‘동물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대표적인 90년대 버전으로 우리가 꼽을 수 있는 것은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2000)과 배수아의 <동물원 킨트>(2003)일 것이다.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두 ‘펑크작가’에게서 “상상적 주체의 미묘한 형질변화”는 어떻게 비교될 수 있을까?

 

 

 

 

 

 

 

 

먼저, 백민석에 대한 젊은 비평가의 지적은 음미해볼 만하다. 즉 그의 소설들은 포스트모던 시대 상징계의 약화로 인한 오이디푸스의 위기와 이에 대해 ‘이상한 가역반응’으로 대처하는 ‘괴물’(‘포스트모던 리바이어던’)들을 주로 테마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엽기전>의 세계는 편집증이 무대화된 악몽의 체계이며, 그곳에서 사는 인간은 자연상태로 환원된 인간-동물이다.” 물론 체계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문학적 공격은 현실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체계는 그에 대한 위반을 허용하는 방식을 통해 가장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백민석의 전복적 서사가 비록 한국문학/문화의 지형도를 바꾸어놓는 데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은 이제 기성 질서와 체계를 위협하는 반란과 탈주가 아니라 오히려 기성 질서 자체가 허락하고 용인한 한도 내에서의 반란과 탈주라는 느낌이 더 짙다.” 즉, 펑크는 분명 기성의 질서나 체계에 시위하고 반항하지만, 그러한 시위/반항 자체가 오히려 체계의 정상성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순기능’을 담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돌파할 수는 없는 것일까? 혹은 그 한계는 ‘엽기전’ 전략이라는 내용층위의 전복 전략이 갖는 함정과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의혹을 갖게 되는 것은 ‘에세이스트’ 배수아의 또다른 펑크 전략이 대체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물원 킨트>에서 전면화되고 있는 배수아의 전략은 ‘야수의 탈’을 뒤집어쓰고 아이 유괴, 학대, 살인 등등을 피범벅으로 감행해야 하는 백민석의 전략보다 상대적으로 아주 단순한데, 그것은 순수하게 형식적 차원에서 문학을 일종의 ‘이방인 놀이’로 만드는 것이다. 즉, 자신의 모국어를 외국어로 말하는 것(“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보고 그런 식으로 말하고, 사고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방법이긴 하지만, ‘자기로의 철회’에 있어서 백민석의 경우보다 훨씬 더 철저하면서도 급진적인 효과를 낳는다. ‘동물원’이라는 이러한 철회의 과정을 경유하여 배수아가 도달하고 있는 지점이 ‘에세이스트’이고 <에세이스트의 책상>(2004)이다(‘에세이스트’야말로 배수아 식의 ‘데카르트적 주체’가 아닐까?). 이 작품의 진정한 의의는 ‘작가의 말’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가능하다면 다른 것을 쓰되, 사람들이 그것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는 그런 형태를 원했다.” 문제는 순수하게 ‘형태’적인 것이며,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무정형의 생성적 형식을 통해서 배수아는 문학주의라는 여피적 태도를 불편하게 만든다. 

 

‘엽기 소설’과 ‘에세이 소설’을 쓰는 두 펑크작가의 이러한 차이가 예시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90년대 우리문학이 비로소 바닥까지 발을 딛게 된 초월적 상상력에 대한 ‘다시 보기’의 필요성이다. ‘90년대 문학’ 혹은 ‘2000년대 문학’으로 ‘종합’될 수 있는 동질적인 문학장 속에는, 다른 한편으로 하찮은, 하지만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이질성들이 유령처럼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하찮은 차이들’에까지 주목하기 위해선 아마도 우리문학에 대한 재미있고 활기차며 뻑적지근한 사랑, ‘불타는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매개해줄 수는 있는 사랑 말이다. 지젝과 엘비스의 이런 노래처럼. “당신이 나에게 불을 놓았고, 내 머리는 불타고 있어요!”(You gonna set me on fire. My brain is fla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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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Werber

 

베르나르 베르베르...

 

영어로 읽으면 버나드 웨버?

 

오늘 알았어요      ㅡ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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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0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좀 그렇죠...

마늘빵 2005-08-06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원어 이름은 처음 보는데요? ㅋㅋㅋ

날개 2005-08-06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첨 알았네요..^^
 

http://wiki.sfreaders.org/SFReaders

 

SF ReadersSF Readers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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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06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라주미힌 2005-08-06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을 위한 페이퍼이지요 ㅋㅋㅋ
 

[휴고상 (Hugo Award)에 대하여     (1999년도 글) 
정년철(soram99@chollian.net)

SF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휴고상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네뷸러상, 존 켐벨 기념상, 주피터상과 함께 4대 SF문학상을 이루고 있으며, 무명의 작가를 자고 나니 유명해진 인물로 만드는데 톡톡해 기여해온 휴고상은 그만큼 국내의 독자들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저 젤라즈니 등 이른바 SF 문학의 거장들과 함께 해왔으며, 국내에 번역된 굵직굵직한 작품들의 소갯말에 잊지않고 얼굴을 내밀어온 휴고상은 SF 문학을 만들어온 주체들에게는 마땅히 주어져야할 위로와 격려였으며, SF를 중심으로 모여든 지지자들에게는 자신의 안목을 검증하고 수렴하는 실체적인 계기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올해로 벌써 휴고상은 47년째를 맞았다. 반세기에 이르는 긴 시간동안 누군가 SF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그 노력에 대한 주시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또한 위로와 격려를 통한 확대 재생산을 위해 또 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러한 일들을 수행해 왔을까?

하나의 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 받을 대상을 결정하고 또 수여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일 것이다. 누가 수여하는 상인가? 평가의 칼자루를 쥔 존재가 누구인가? 그것에 따라 상의 성격과 무게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며 그것은 작품의 성격과 가치, 무게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휴고상은 철저히 독자들에 의해 그 모든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휴고상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주체, 그것은 월드 사이언스 픽션 소사이어티 (World Science Fiction Society: 이하 WSFS) 라는 SF 팬들의 조직체이기 때문이다.

WSFS는 전세계 SF 팬들에 의해 조직된 비법인 문학단체이다. 1996년에 제정된 WSFS의 헌장에 의하면 WSFS의 주된 임무는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첫째는 휴고상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일, 그리고 두번째는 매년 열리는 SF 컨벤션(월드컨)이 열릴 장소와 위원회를 선택하는 일이다. 다소 싱거운 정의가 될 수 있겠지만 WSFS를 구성하는 회원들은 매년 개최되는 월드컨에서 회비를 납부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당해에 개최된 월드컨에서 회비를 납부하고 회원가입서에 서명을 한 사람에게는 누구나 WSFS의 회원이 될 자격이 주어지며 따라서 휴고상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투표에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경청한 사람이라면 벌써 휴고상에 대한 몇 가지 상식을 부상으로 획득했을 것이다. 첫째, 매년 수여되는 상이라는 것, 그리고 둘째는 WSFS에서 수상작을 결정한다는 것, 그래서 팬들에 의해 선택된 작품이 휴고상의 영예를 안게된다는 것까지.

이제부터는 휴고상의 대상과 작품의 선별과정 등에 대해 나머지 상식까지 거머쥐도록 해보자.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흔치 않은 법. 우선, 아래의 문항들에 대해 O, X 퀴즈를 해보자.

1) 휴고상은 원칙적으로 소설을 대상으로 한다.
2) 휴고상은 작품에 주어지는 것이며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3) 휴고상은 SF에 주어지며 판타지 작품은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4) 휴고상 후보작은 WSFS 회원들이 결정한다.
5) 휴고상 최종 수상작은 월드컨 위원회에서 결정한다.
6) 투표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한다.

정답은 역시 모두 X. 지금부터는 짓궂은 퀴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보기로 하자.

휴고상의 대상

1996년 제정된 WSFS의 헌장에 따르면 휴고상은 모두 12개의 분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것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최우수 장편소설 (Best Novel), 최우수 중편소설 (Best Novella), 최우수 중단편 소설 (Best Novellette), 최우수 단편 소설 (Best Short Story), 최우수 논픽션 (Best Non-Fiction Book), 최우수 드라마 (Best Dramatic Presentation), 최우수 전문 편집자 (Best Professional Editor), 최우수 전문 아티스트 (Best Professional Artist), 최우수 세미프로진 (Best Semiprozine), 최우수 팬진 (Best Fanzine), 최우수 팬 작가 (Best Fan Writer), 최우수 팬 아티스트 (Best Fan Artist).

물론 휴고상이 시작부터 위에서 열거한 열 두가지 분야에 대해 수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휴고상이 처음 수상된 곳, 195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11차 월드컨에서는 단 7개의 분야에 대해 휴고상을 수여했으며 그 분야도 현재와는 조금 달랐던 것이 사실이다. 즉 휴고상은 수십년의 역사를 통해 상의 대상을 조금씩 바꾸어 왔으며, 그 결과 현재의 12개 분야로 정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SF라는 분야의 역동성과 확장성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휴고상의 수상 범위는 더 넓어질 것이며 더 다양한 표현 장르, 예를 들면 음악과 행위예술까지도 그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지나치게 성급한 것일까?

휴고상의 대상이 비단 작품에만 한정되지 않는 다는 것은 위의 열두가지 분야를 살펴보면 금새 알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와 작가, 아티스트까지 휴고상은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제 1회 수상때부터 휴고상은 표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아티스트, 심지어는 Number 1 Fan Personality라는 분야를 통해 SF 팬에게 까지 수상의 영예를 맛보게 했다.

헌데 위에 열거한 것들 중 세미프로진이나 팬진과 같은 분야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SF의 발전사에서 매거진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 볼 때 휴고상에서 그 분야에 대해 트로피를 할애한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SF의 독자들은 바로 이 매거진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새로운 창작물을 읽으며, 비평에 귀를 귀울여왔고, 또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팬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비전문적이고 비상업적인 팬진은 1955년 미국 클리브랜드에서 개최된 클리벤션 (Clevention)에서부터 휴고상의 중요한 대상이 되어왔다. 물론 당시에도 전문 편집자가 상업적 목적으로 발간하는 SF 매거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Astounding이나 F&SF, If, Analogue 와 같은 주옥 같은 전문 매거진이 SF를 다루는 전문 매거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했었고, 또한 휴고상을 번갈아 수상할 정도로 SF 팬들에게는 중요한 매체의 하나로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아마추어 매거진이라고 할수 있는 팬진, 혹은 세미 프로진 등이 휴고상의 매거진 분야를 휩쓸기 시작했고, 이는 SF 팬들이 전문 매거진보다는 팬진이나 세미 프로진을 더 중요한 매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팬진 혹은 세미 프로진 분야에서 휴고상을 총 18회나 수상한 로커스 (Locus) 는 단연 최고의 SF 매체라고 일컬을 수 있으며, 세계의 수많은 SF 팬들에 의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휴고상의 대상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앞서 제시한 OX퀴즈의 3번 문항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첫째, 휴고상은 판타지 문학에도 그 수상작을 선정하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둘째, 헐리우드의 상업성 짙은 영화에도 상을 수여해 왔다는 것이다. 즉,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스타워즈와 같은 본격적인 SF물 뿐만 아니라 수퍼맨, 에이리언, 인디아나 존스, 가위손, 터미네이터 2탄, 주라기 공원과 같은 작품들도 휴고상을 수여해 온 것이다. 실재로 WSFS의 헌장은 휴고상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SF와 판타지를 동일한 무게로 취급하고 있으며, 소설과 매거진, 드라마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SF 또는 판타지를 다루는 이라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삽입해 두었다.

휴고상의 선정과정

휴고상의 후보작을 결정하는 일은 전적으로 월드컨 위원회(위원회는 그 해에 월드컨을 개최하는 도시의 회원들에 의해 구성된다) 의 몫이다. 위원회의 위원들은 모든 분야에 대해 다섯 작품 (혹은 사람)의 후보를 선정하도록 되어있으며, 그 결과를 후보들에게 통지하도록 되어있다. 물론 후보가 원치 않을 경우에는 거절할 수도 있으며, 이미 고인이 된 경우에는 유족이나 법적 후견인을 통해 수락여부를 통지 받아야 한다.

이렇게 후보작이 위원회에서 결정되면 모든 WSFS 회원들은 편지를 통해 투표용지를 받게된다. 투표 용지에는 이름과 서명, 주소, 회원 번호를 반드시 적도록 되어 있으며, 물론 수상작을 결정하는 란도 있다. 수상작은 다섯개의 후보작 중 하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작의 순서를 매기는 방식으로 되어 있으며, 회원들이 다섯개의 후보작들 중 쓸만한 작품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수상작 없음 (No Award)이라고 적을 수도 있다. 이것은 선정된 후보작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고자 하는 투표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소수의 팬들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작품이 억지로 당선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실재로 수상작 없음이 결정된 경우가 휴고상의 수상 역사에서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한다면 휴고상은 SF(판타지를 포함한)라는 장르에 걸쳐있는 다양한 작품과 사람들에게 주어지며 회원들에 의한 최종 투표에 의해 수상작이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휴고상의 역사를 간략하게 더듬어보기로 하자. 무릇 과거란 현재를 이해하는 지름길인 법.

1) 휴고상은 몇번이나 시상되었을까?

휴고상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5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 11차 월드컨에서 였다. 그렇다면 올해가 1999년이고 올해의 휴고상 시상식이 9월에 있었으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모두 47번인 셈이다. 그러나 정답은 46회. 왜냐하면 1953년에 처음 휴고상을 제정했을 당시만 해도 휴고상은 매년 시상하기로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1954년에는 시상식 자체를 하지도 않았고, 이듬해 1955년부터 매년 시상하는 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2) 휴고상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은?

로버트 하인라인이나 아이작 아시모프를 연상한 사람은 탈락. 최다 수상작은 팬진 혹은 세미 프로진 분야의 로커스 (Locus)로 총 18회나 수상하였다. 2등은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전문 매거진으로 사랑을 받아왔던 F&SF로 모두 8회 수상.

3) 최초의 휴고상 수상 소설은?

알프레드 베스터의 파괴된 인간 (The Demolished Man)이 최초 휴고상 수상작의 영예을 안았다.

4) 장편 소설 분야 최다 수상은 누구에게?

로버트 하인라인이 총 4회 수상함으로 최다 수상. 수상작들을 열거하면 1956년 Double Star, 영화로도 유명한1960년 수상작 스타쉽 트루퍼스, 1962년 Stranger in Strange Land, 1967년 The Moon is a Harsh Mistress가 그 주인공들이다.

만약 중편과 중단편, 단편까지 모두 합산한다면 누가 휴고상을 가장 많이 받았을까? 국내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로저 젤라즈니가 모두 6차례 휴고상을 수상하였다. 젤라즈니는 1966년 내 이름은 콘래드 (.And Call Me Conrad) 와 2년 뒤 신들의 사회 (Lord of Light)로 두번의 최우수 장편상을 두차례 수상하였고 1976년 최우수 중편 Home is the Hangman과 1982년 최우수 중단편 Unicorn Variation, 1986년 최우수 중편 Twenty-four Views of Mt. Fuji, 그리고 다음해인 1987년 최우수 중단편 Permafrost로 각각 휴고상을 수상하였다.

5) 올해의 휴고상은 누구에게?

1999년 9월 4일 오스트렐리아 멜버른에서 개최된 오시콘 (Aussiecon III)에서는 올해의 휴고상 최우수 장편소설로 코니 윌리스(Connie Willis) 가 쓴 To Say Nothing of the Dog을 선정하였다. 최우수 중편상은 그랙 이건 (Greg Egan)이 쓴 Oceanic에게 돌아갔으며, 중단편은 부루스 스털링 (Bruce Sterling)이 쓴 Taklamakan, 그리고 단편 분야는 마이클 스완윅 (Michael Swanwick)이 쓴 The very Pulse of the Machine에게 각각 수상하였다. 드라마부분에서는 파라마운트 사에서 제작한 트루만 쇼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세미 프로진 분야에서는 휴고상이라면 이골이 날법도 한 로커스가 다시 수상하였다.

글을 마치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휴고상은 SF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상임에 분명하다.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휴고상의 수상작을 주목하며, 자신의 선택을 실망시키지 않았던 휴고상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또한 휴고상은 세계적인 상과는 거리가 있다. 휴고상이 그어 놓은 근본적인 한계선, 영어라는 하나의 언어에 의해 창작된 (혹은 번역된) 작품만이 심사와 수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 전세계와 우주를 망라하는 SF의 장르를 생각해볼 때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휴고상이라면 제 3세계 언어로 창작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상 하나쯤은 생색을 낼 법도 한데, 월드컨과 휴고상은 철저하게 영미 SF외의 문학들은 배척해 온 것이다. SF의 영원한 주제인 과학기술이 철저하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 국가에서 주도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동양의 정신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에 기꺼이 휴고상을 선사한 WSFS의 회원들이 정작 동양의 언어로 쓰여진 작품들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일까?

마땅한 위로와 격려로서의 휴고상은, 그래서 더 부럽고 답답하다.
http://home.bawi.org/%7Esfwebzin/1999_10/spe_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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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류사 > 짜잔~~ 서평이벤트...

 
 
책은 공짜.. 그러나 읽은 소감은 꼭 써야지요.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딴지일보>기자, 의학박사 서민이 밝힌 현대 의학의 실태 

 그는 의사면허번호 46663호로 현재 단국대학교 기생충학과 교수로 있는 의사이다. 그러나 그는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의료 정보를 알려줌과 동시에, 의료계의 실상을 솔직, 담백하게 파헤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의료 정보와 의료계의 실상을 낱낱이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 딱딱한 실용서는 가라. 수필을 읽듯 가볍게 정보는 쏙쏙!

인터넷 서점 ‘알라딘’블로거 ‘플라시보’ 서평

독자들이 실용서에 바라는 것은, 너무 어렵지 않게 또 딱딱하지 않게 지식을 전달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서민 교수의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은 주목할 만하다. 그가 전하는 의학 상식들은 결코 가볍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저자 서민 교수 특유의 유머러스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히 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의학 상식의 홍수 속에 이 책은 정직한 등대와도 같다.

꼭 그래야만 한다고 겁을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무신경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식도 아닌 이 책은, 재미와 실용적인 지식의 전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훌륭하게 잡아냈다. 근래에 보아왔던 의학 상식 책 중에서 감히 장담하건데 아마도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아닌가 싶다.


지은이

서민, 1967년 서울 출생, 의사면허번호 46663

서울대학교 의대 재학 중 방송대본 '킬리만자로의 회충'을 쓰는 등 기생충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표명하다가 졸업 후 본격적으로 기생충학계에 투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몇 년 간 '기생충의 대중화'를 위해 집필에 전념, <기생충의 변명>이란 에세이집을 냈고 딴지일보 기자로 데뷔해 '건강동화'를 절찬리에 연재, <대통령과 기생충>이라는 소설로 엮었다.

2004년 CBS <저공비행>이란 프로그램의 '헬리코박터 프로젝트'에 6개월간 출연, 의료정보를 알려줌과 동시에 의료계의 실상을 솔직, 담백하게 파헤쳐 약간의 인기를 모았다.

현재 단국의대 기생충학과 교수로 재직, 기생충을 사랑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며 인터넷 사이트 등에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본문 중에서 몇 꼭지 발취해 보았습니다. ^^;;

 

무슨 과에 갈까 (41쪽)

서론

눈 다래끼가 난 친구, 안과를 가야하나 피부과를 갈까 고민하다 결국 병원에 안 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저절로 나아 버리고 말았는데,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증상에 따라 어느 과에 갈 것인지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과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의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의사는 배운 기간에 따라 구별되며, 그 구분은 다음과 같다.

(1) 의사

흔히 일반의라고 한다. 의대 6년 졸업을 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사람을 일컫는데, 아는 것은 순전히 암을 비롯한 위중한 병밖에 없고, 임상경험도 없어서 환자를 보기 어렵다. 이런 사람이 병원을 하면 링거만 꽂아서 돈을 벌기 십상이니 가벼운 감기 환자만 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라도 3년 정도를 버텼다고 하면 실력이 있는 의사로 인정해 주고, 신뢰를 보내도 된다. 그가 돌팔이라면 3년 안에 이미 사고를 내서 짐을 싸들고 도망갔을 테니까.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병과 그렇지 않은 병을 구분할 수만 있어도 좋은 의사겠지만, 대개 그렇지가 못하다. 폐암을 결핵이라고 우겨서 친구의 장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의사라든지, 림프종을 감기라고 우겨 오랜 기간 붙잡아둔 의사가 여기에 속한다.

(2) 인턴

고수에게 무술을 전도 받으려면 물을 길어야 하듯, 1년간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로 하는 일은 환자에게서 피를 뽑는 거다. 처음에는 서툴지만 나중에는 사람을 보면 혈관만 보인다니, 얼마나 혹독한 트레이닝이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엑스 - 레이 필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고, 수천 장의 필름 중에 필요한 사진을 찾는 걸 보면서 인턴의 존재 의의를 만끽한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불어 닥친 전산화 바람 때문에 더 이상 엑스 - 레이를 찾을 일이 없어져 버렸다.

업무의 반이 날아가 버려 허탈해진 인턴들이 병원 안에서 삼삼오오 모여 방황을 하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눈에 초점이 없이 얼쩡거리는 사람에게 “혹시 인턴이세요?”라고 말하면 거의 적중한다.

옛날보다 편해졌다는 거지, 그렇다고 인턴이 노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수술장에서 레지던트와 교수를 돕는 일인데, 이거 역시 허드렛일이다. 간을 수술할 때는 몇 시간 동안 당기고 있는다던지, 환자가 엎드려 수술할 때 두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있어야 하는 등, 머리 쓰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을 주로 한다. 내 친구는 인턴 때 4시간 동안 간을 당기고 있어야 했는데, 그가 조는 바람에 간의 일부가 찢어져 수술장에서 쫓겨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인턴의 장점은 거의 모든 과를 섭렵하기 때문에 어떤 증상을 호소해도 커버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인턴을 마친 의사가 개업을 했다면 어느 정도 믿어도 된다.

(3) 레지던트

교수에게 배정되지 않은 환자를 본다. 1990년 그 이전만 해도 레지던트 기간이 3년이었는데, 의사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취업이 어려워져 ‘보다 전문적인 의사를 양성한다’는 취지에 따라 4년으로 늘어났다.

너무 한 과만 보다보니 지나친 전문성을 갖게 된 나머지 다른 과를 물어보면 무조건 모른다고 하는 것이 단점이다. 레지던트를 마치고 나면 전문의 시험을 보는데, 대략 90% 이상이 합격해 전문의가 된다.

(4) 펠로우

원래 취지는 이런 거였다. 서울대학교 병원의 소화기내과가 담낭*에 금박을 씌우는 기술이 아주 유명하다고 치자. 다른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며 전문의를 땄지만 저 기술은 꼭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돈을 조금 덜 받더라도 그 병원에 가서 환자도 보면서 그 비법을 배우겠다고 우겨가면서 1~2년간 그 병원에 있는 것, 이것이 펠로우의 본질이다.

하지만 그게 변질되어 교수로 가고 싶은데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집합소가 되어 버렸다. 병원 측에서 보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레지던트 월급 정도를 주면서 거느릴 수 있으니 대단한 이익, 결국 모든 과에서 펠로우를 2년간 하는 게 의무가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병원에서는 싼 값에 사람을 부려서 좋고, 교수들은 대부분의 일을 펠로우에게 맡기고 음주, 가무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좋고. 심지어 월급을 안 줘도 되는 무급 펠로우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데 생활고에 찌든 얼굴을 한 사람에게 혹시 펠로우냐고 물어보라.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느냐고 할 것이다.

(5) 교수

온갖 역경을 이기고 자리를 차지한 사람을 일컫는다. 교수가 되면 레지던트를 거느린 채 폼도 잡을 수 있고, 수술을 할 때도 레지던트들이 배를 다 열어놓으면 그 때 중요한 부위만 싹둑 자르면 되니 아주 편하다. 배를 닫는 건 다시 레지던트의 몫. 예전에는 환자만 보면 됐지만 지금은 연구도 하고 논문도 써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지긴 했다. 그래도 펠로우의 등장으로 별 어려움이 없다.


아아, 뱅상! (99쪽)

 

프랑스에 사는 열아홉 살 뱅상 왕베르는 소방서에 근무하는 건실한 젊은이였다. 일직 근무를 서던 일요일 저녁, 급한 일이 있다는 동료 때문에 한 시간 더 소방서에 머무르는 와중에 전화가 왔다. 여자친구였다. 영화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안 오고 뭐하냐는 것. 서둘러 소방서를 나와 집으로 가는 시골길을 달리던 뱅상 앞에 대형 트럭이 나타났다. 차를 피하려 갓길로 올라선 순간 타이어가 터졌고, 뱅상의 차는 트럭의 트레일러 뒷바퀴에 부딪힌다.

구조대원들이 ‘이송이 끝날 때까지 환자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을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은 뱅상은 병원 측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목숨을 건진다. 의사의 말은 이랬다.

“회복이 된다고 해도 식물인간으로 남아야 한다.”

그 뒤 뱅상은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어야 했는데, 9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는다. 하지만 의식만 있을 뿐 움직일 수도, 볼 수도 없는 상태는 여전했는데, 뱅상과 비슷한 처지의 자식을 둔 다른 부모들은 엇갈리는 반응을 보인다.

“뱅상 엄마는 운이 좋소. 정신이 멀쩡하니 대화도 할 수도 있잖아요.”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난 우리 아들이 제 정신을 찾는다면 못 견딜 거예요. 그 애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하지만 환자 가족에게 있어서 의식을 되찾는 건 희망을 품게 해주는 일, “의식 회복에 대한 진단이 틀렸다면 나머지도 맞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환자 가족들은 뱅상이 두 발로 딛고 침대를 걸어 나오는 것까지 기대를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뱅상의 회복은 거기까지였다. 딱 하나,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하지만 엄지손가락의 회복은 불가능하게 보였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줬다. 이런 식으로.

[환자의 엄지와 중지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은 후, 천천히 알파벳을 불러줌. 맞는 철자가 나오면 뱅상이 손가락을 누를 것임. 그러면 그 철자를 다시 한번 불러 뱅상에게 ‘예’ 와 ‘아니오’로 확인을 받음.]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서 글자 수만큼 알파벳을 불러야 하는 지루한 작업, 뱅상이 처음으로 만든 문장은 이거였다.

“엄마, 난 엄마가 곁에 계셔서 좋아요.”

당연한 얘기지만 엄마는 그 문장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환자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가족들에게 그 메시지가 얼마나 큰 감동을 줬을까. 하지만 그런 것도 한 두 번이지, 3년을 침대에만 누워 있다 보면 환자는 물론이고 보호자도 지친다.

“그 사람들(간호사)이 알기나 할까. 십분도 못 참겠다는 것을.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는 것을. 숨쉬기도 고통스럽다는 것을…”

고통에 지친 뱅상은 결국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내가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천국은 나를 맞이할 하얀 천국이다. 매일매일 나는 그 곳을 생각한다. 미치도록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곳에 갈 수 있으려면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

의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왜 의사들은 악착스레 내 목숨을 연명시키려 하는가? 무슨 권리로? 나를 살린 것은, 어떻게든 목숨만 건져내고자 운명을 비튼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는 죽고자 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안락사가 금지된 나라, 뱅상은 할 수 없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다.

[저는 대통령님께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내려달라고 청원합니다. 대통령님만이 제게 마지막 기회를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편지는 언론에 공개되었고, 뱅상은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의 청을 거절한다.

“당신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수가 없군요. 대통령에게 그러한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맞다. 법은 대통령이 만드는 게 아니며, 네덜란드처럼 안락사를 인정하도록 법이 바뀌지 않는 한 대통령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뱅상의 어머니를 만난 자리에서도 대통령은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아버지로서 하는 말입니다. 삶의 의욕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해 주세요. 이건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이라고 전해주세요.”

대통령이 뭔가 해줄 줄 알았던 뱅상은 그 말을 듣고 의욕을 되찾기는커녕,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런 뱅상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네가 원한다면 네가 죽는 걸 도와줄게.”

그 남자는 에이즈 환자로,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터였다. 살아생전 좋은 일을 해본 적이 없던 그는 ‘단 한번이라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바람에 그 일은 수포로 돌아간다. 죽는 것만이 소원이었던 뱅상은 어머니를 설득해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한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이들은 분명 슬퍼할 것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마침내 떠날 수 있게 되어 내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제발 알아주기를!”

어머니는 설득에 못 이겨 그의 청을 수락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어머니가 내게 해주실 행동은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증거일 것이다.”

결국 뱅상의 어머니는 링거에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투입하여 아들의 긴 고통을 잠재웠다. 그녀는 지금도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상은 뱅상 왕베르가 병상에서 쓴, 《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 빗살무늬》의 내용이다. 식물인간이 되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생각, 웬만한 사람이면 다 한번씩 해볼 것이다. 하지만 남의 도움 없이는 죽지도 못할 상황에서 죽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사정하는 것밖에 없고,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은 사회적 현실은 그의 소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과연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세계 최초로 동성간의 결혼이 합법화된 나라답게 네덜란드는 안락사를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안락사는 불법이다. 미국의 잭 케보키언Jack Kevorkian 박사를 기억할 것이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주장한 그는 1990년 6월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한 여성을 안락사 시킨 것을 시작으로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죽음을 선사했는데, 폐암 말기로 케보키언의 100번째 안락사의 주인공이 된 환자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신 같은 의사가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보키언은 2급 살인 혐의로 유죄평결을 받아야 했는데, 이 사례는 안락사를 금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안락사는 시술 방법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누어진다. 뱅상의 어머니나 케보키언처럼 호스에 독극물을 주입해서 생을 단축시키는 게 적극적 안락사라면, 생명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환자를 죽게 하는 것이 소극적 안락사다.

우리나라는 소극적 안락사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데, 심지어 앞에서 이야기 했던 보라매병원 사건의 의사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시킬 정도다. 인간의 생명을 마음대로 단축시킬 수 없다는 종교계의 반대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논리라면 신이 정해놓은 죽음의 시간을 무시한 채 산소 호흡기를 달아매어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 역시 반대해야 옳지 않겠는가?

케보키언이 한 것 같은 적극적 안락사를 당장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면, 소극적 안락사 정도는 인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죽음 뒤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고, 삶에서 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인간은 누구나 죽는 존재, 이왕이면 고통의 순간을 조금 줄이고 죽음을 맞겠다는 마지막 소망을 외면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안락사, 무조건 막는 게 옳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에서도 소극적 안락사는 인정되는 분위기다. 다음 기사를 보자.

[미국 연방대법원은 24일, 1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지탱해온 테리 시아보(41세)의 급식 튜브를 다시 연결시켜 달라는 시아보의 부모 쉰들러 부부의 청원을 기각했다. 이로써 지난 18일 급식 튜브가 제거돼 서서히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시아보의 회생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료진은 ‘시아보에게 탈수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1~2주 안에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급식 튜브 제거를 주장해온 남편 마이클의 변호인은 ‘시아보는 평화롭게 죽음을 맞을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마이클은 “시아보가 의식이 있을 때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며 안락사를 주장해 왔다.

시아보는 1990년 사고로 심장 박동이 잠깐 멈추면서 뇌에 치명적 손상을 입어 급식 튜브로 생명을 연장해왔다. 그는 겉보기에는 웃음을 짓고 눈도 깜박이는 등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반사적 행동일 뿐 실제로는 두뇌활동을 상실해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게 의료진의 평가다. 그러나 시아보의 부모는 ‘딸의 의식이 돌아올 수 있다’며 안락사에 반대했다. <인터넷 한겨레 200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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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08-0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책이니 재미는 보장되겠네요. 많이들 보셔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