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지식 상업적 독점의 벽을 깨라


△ 상업 저널의 ‘지식 상업화’에 맞서 2000년 과학자들 스스로 만든 무료저널인 ‘공중과학도서관’(PLoS)의 포스터. 그림 안 영문은 “저널, 당신은 논문을 쓰고, 그 논문을 심사했는데…. 왜 논문을 읽기 위해 돈을 내야 합니까?”라는 의미이다. 제공


과학자들에겐 두가지 고민이 있다.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날은 1996년 7월5일,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7년 2월27일이다. 국내 첫 복제 송아지인 ‘영롱이’가 태어난 것은 1999년 2월12일, 탄생이 알려진 것은 2월19일이었다. 왜 공표기간이 영롱이는 7일 만이고, 돌리는 7개월일까?

돌리의 ‘아버지’ 이언 윌머트 박사는 돌리의 탄생을 <네이처>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황우석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곧바로 알렸다.

과학자들의 첫번째 고민은 저널이나 학회지를 통해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는 두달 동안 전자저널을 볼 수 없었다. 해마다 10%씩 증가하는 저널 구입비용을 학교 예산이 따라가지 못해서다. 카이스트가 지난해 구입한 학술논문 비용은 1100여종의 인쇄저널에 11억원, 5천여종의 전자저널에 6억원이었다. 우리나라 대학도서관 평균 도서구입비용은 연간 7억여원이다. 카이스트는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인 셈이다. 실제로 유명 저널인 <사이언스> <셀>은 비영리 학술기관의 경우 인쇄본 구독료를 지난해에 비해 올해 각각 5%, 10%씩 올렸다. <네이처>는 무려 121%가 올랐다. <사이언스>의 전자저널 연간 구독료는 지난해 1380달러에서 올해는 1791달러로 30%가 비싸졌다. 과학자들의 두번째 고민이다.

<사이언스> <네이처> 등 ‘지식의 상업화’에 맞선 ‘카피 레프트’ 바람이 과학자들에게 고충 해결의 희망을 주고 있다.

17세기 중반 이래 과학자들은 저널이나 학회지를 통해 논문을 배포하고, 주로 도서관과 다른 연구자들이 이를 구독해왔다. 영화나 책, 음악과 달리 학술논문은 생산자와 이용자가 동일하다. 일반 저작자들과 달리 연구자들은 저작물을 통해 영리를 얻기보다 가능한 한 널리 이용되고 인용되기를 바란다. 과학자들이 저널이나 학회지에 게재료를 내가며 기고를 하는 이유다.

연구자들은 여러 사람에게 배포할 목적으로 학회나 출판사에 논문을 넘기지만, ‘저작권 이양 동의서’는 논문의 자유로운 이용에 족쇄를 채우는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상업저널들은 자신들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자들에게 이른바 ‘잉겔핑거의 법칙’이라는 이중 게재 금지와 엠바고 등에 대한 각서까지 받는다.

‘오픈 액세스’ 98년 미국서 시작

상업 저널에 대한 저항운동은 미국 대학에서 시작됐다. 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을 중심으로 결성된 대학도서관 연맹체인 스팍(SPARC)은 연구자들에게 자신의 논문에 대한 저작권 양도를 유보하고 출판사에는 이용 허락(라이센스)만을 주도록 권고하고 나섰다. 이 자유로운 학술정보 유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통칭해 ‘오픈 액세스’(정보공유)라고 불린다. 이상호 한국과학정보연구원 정보포털실장은 “국가에서 연구자들에게 연구하라고 돈을 주고, 연구결과물을 보라고 또다시 돈을 주는 상황에 대한 반성이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픈 액세스 활동은 2002년 2월 ‘부다페스트 선언’(BOAI), 2003년 6월 ‘베데스다 선언’, 같은해 10월 ‘베를린 선언’ 등이 잇따라 공표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들 선언의 공통점은 출판 때 온라인 상에서 정보를 즉시, 무료로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공공저장소에서 영구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 미국 의회에는 ‘과학에 대한 공중접근’ 법안이 제출됐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04년 공공기금으로 제작된 연구데이터에 대한 자유로운 이용을 장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네이처’ ‘사이언스’등 유명한 저널들은
과학자들한테 게재료를 받으면서
구독료까지 매년 크게 올리고 있다
이중게재 금지와 엠바고 각서까지 받는다
‘지식의 상업화’에 대한 저항이 불붙고 있다
과학논문은 인류 전체의 업적이므로
모두가 거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픈 액세스 운동의 실천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무료 저널이다. 1989년 노벨 의학상 수장자인 해롤드 바무스 박사와 미국 스탠퍼드대의 패트릭 브라운 박사, <셀> 편집인 출신 비비안 시겔 박사는 2000년 10월 ‘공중과학도서관’(PLoS)을 온라인 상에 설립해 모든 논문을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창간사에서 “인류 전체의 업적인 과학논문은 혈액처럼 유통돼야 하며 과학의 성과를 모든 과학자 및 일반인들과 공유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들은 과학잡지 산업이 연간 100억달러의 막대한 이윤을 올리며 과학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막아 이익을 취하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공중과학도서관은 2003년 과 2004년 을 잇따라 창간했다.

무료저널 · 셀프아카이빙 추구

대표적 오픈 액세스 저널 출판사인 ‘바이오메드 센트럴’(BMC)은 생물학·의학 등 154종의 저널을 발행하고 있다. 스웨덴 룬드대학도서관이 운영하는 오픈 액세스형 저널 디렉토리(DOAJ)에는 1380종의 무료 저널이 알파벳 순과 주제별로 정리돼 있다.

오픈 액세스의 두번째 형태는 지식저장소(디시플리너리 레포지토리)다. 연구자의 ‘셀프아카이빙’에 의해 지식이 저장되는 방식이다. 셀프아카이빙이란 연구자가 기관저장소나 오픈 액세스 이니셔티브(OAI) 기반 저장소에 자신의 저작물을 올리는 행위를 말한다. 지식저장소의 가장 대표적이고 성공적인 것은 ‘아카이브’(arXiv.org)다.

아카이브는 1991년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폴 진스파그 박사(현 코넬대 교수)가 처음 시작한 오픈 액세스 인터넷 전자서고다.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출발해 지금은 물리학 전반과 수학, 컴퓨터과학, 비선형과학, 생물학 쪽으로 분야가 확대됐다. 아카이브는 코넬대가 미국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11일 현재 32만3142건의 논문이 실려 있다. 하루 접속 건수가 11만~13만회에 연간 1300만건의 논문이 다운로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물리학연구정보센터가 1996년부터 아카이브서버의 미러사이트를 운용하고 있으며, 국내 물리학자들도 한달에 1천여건의 논문을 기고하고 있다.

미러사이트 운영을 처음 시작한 민동필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한국학술진흥재단 본부장)는 “‘정통파’ 물리학계에서는 7~8년 전까지만 해도 <사이언스>나 <네이처> 등에 논문을 내지 않았다”며 “많은 물리학자들이 연구실에 들어서면 아카이브 접속부터 시작해 전세계에서 진행되는 연구상황을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디스페이스(Dspace)는 대학 구성원들이 생산한 연구 및 강의콘텐츠를 보관하는 디지털 서고로, 세계 어디에서나 누구라도 모든 강의 내용을 볼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

영향력 점점 커져

오픈 액세스 저널은 전세계 학술지 2만여종의 6%에 불과하고, 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SCI)에 등록된 8700여 종의 학술지 가운데 191종(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향력은 작지 않다. 네덜란드 엘스비어출판사의 유료 디렉토리인 ‘사이언스 디렉토리’에서는 논문의 연간평균 다운로드 건수가 28건인 데 비해 ‘바이오메드 센트럴’은 89배인 25000건이 다운로드되고 있다. 무료 저널인 <저널 오브 메디슨 러닝 리서치>의 영향력 지수(IF·임팩트 팩터)는 3.818로 인공지능 분야에서 1위, <비엠시 퍼블릭 헬스>는 0.294로 공중보건분야의 87로, 저널의 유·무료와 임팩트 팩터에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용어설명

●잉겔핑거의 법칙=<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의 편집자였던 프란츠 잉겔핑거가 다른 곳에 이미 게재됐던 논문은 자신의 잡지에 실을 수 없다고 공표한 데서 비롯된 학계의 불문율.

●과학기술논문 인용 색인(SCI)=미국 학술정보전문 민간기관인 과학정보연구소(ISI)가 해마다 학술적 기여도가 높은 과학기술분야 학술지를 엄선해 이들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의 색인을 수록한 데이타베이스다. 국내에서는 20여개의 저널이 등록돼 있다.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어떤 저널에 게재된 논문들이 SCI급 저널에 실린 다른 논문들에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가를 나타내는 지수. 계산은 ㄱ저널에 2002~2003년 2년 동안 논문이 1000편 발표되고, 이 논문들이 2004년 한해 동안 2000번 인용됐다면 ㄱ저널의 임팩트 팩터는 2000/1000=2.0이 된다.


도움말 주신 분=민동필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정현식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상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정보포털실장, 황혜경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지식정보센터 선임연구원,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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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환생? 저렇게 큰 것이 새라고?
[한국일보 2005-06-17 13:26]    

'Shoebill stork', 'Storklike Bird', 'Balaeniceps rex', 'Whalehead', '하시비로 코우', '넙적부리황새' 이 모든 명칭이 이 새 하나에 지칭되는 이름들이다.

최근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1m가 넘는 새의 사진이 유포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 네티즌이 일본 우에노 동물원에서 찍어온 '하시비로 코우'라는 이 새는 우리나라에서는 '넙적부리 황새'라고 불려진다.

키는 1m정도이고, 중부아프리카의 습지대에서 서식한다.

'하시비로 코우' 사진 보러가기

하시비로코우는 부리가 넓은 황새라는 의미로 완전히 성장하면 54인치, 122cm~150cm, 주로 개구리를 잡아먹는데, 악어새끼도 곧잘 먹는다.

잦은 활동은 하지 않지만 물고기가 올때면 일순간 부리로 물고기를 잡는다.

덩치가 크지만 잘난다.

날때는 목을 접어서 등뒤로 땡겨 붙인 다음에 난다. 일본 우에노 동물원에서는 한쌍이 사육되지만 사진은 수컷이다.

텔레비전에 출연했을때 40분이상 이새가 움직이지 않고 있어 비디오의 고장으로 의심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새 사진을 본 많은 네티즌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룡인줄 알았다. 꿈에 볼까 무섭다" "정말 이런새가 있는거야? 생긴 것이 꼭 조폭같다, 익룡을 보는듯해서 어지럽다" "참 만화적으로 생겼다! 이세상 동물이 아닌 것 같다" "신기하다, 정말 보고싶다" 등의 소감을 피력했다.

대한조류협회 관계자는 "과천 서울대공원을 비롯해서 우리 나라 동물원에는 이런 새를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한국아이닷컴 뉴스부 reporter@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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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6-1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짠가요???

라주미힌 2005-06-1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이라 믿을만한거 같긴 한데... 새가 아니라 괴물같네요 ㅋ.ㅋ 암튼 인간에 의해 멸종이나 되지 않았으면....
 



맛은 없겠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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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6-1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놀랍군요...

날개 2005-06-1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익이예요? 먹기엔 아깝군요...
 

히피 옷 입고 글 쓰는 '문단의 괴짜'
[조선일보 2005-06-08 03:04]    
첫 단편집 '카스테라' 낸 소설가 박민규씨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

“제 꿈이 히피가 되는 거였습니다.”

문단의 괴짜 스타일로 화제를 모았던 소설가 박민규(朴玟奎·37)씨는 거침이 없다. 평범한 듯 작은 목소리 속에는 엄청난 반역이 깃들어 있다.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그해 장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또 한 차례 평단의 스포트라이트를 모았다.

첫 단편집 ‘카스테라’(문학동네)를 내놓은 그를 7일 만났다. 지난 7년 동안 길러 무릎까지 내려오던 로커 스타일의 검은색 장발을 싹둑 자르고, 금색으로 물들인 펑키 스타일이었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히피들의 안경까지 구해 썼다.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 스타일로 했습니다. 헨드릭스는 데뷔 앨범에 10곡을 담았고, 저도 첫 단편집에 10편을 실었습니다. 집에서도 히피들이 입었던 옷과 장신구를 걸치고 글을 씁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지난날을 말하는 방식도 거침없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 1~15등급까지 있었고, 전 15등급이었습니다. 담임이 ‘넌 반평균 떨어뜨리는 놈’이라며 6개월 동안이나 괴롭혔습니다. 중앙대 문창과는 커닝해서 들어갔습니다.”

해운회사 영업사원, 뉴트렌드의 문학월간지 프리랜서 등을 거쳐 소설가가 되었다. 평단이 그에게 주목했고, 원고 청탁이 넘쳤으며, 어느 달에는 거의 전 문예지가 그의 작품을 싣고 있었다. 지난 3년간 그의 출현은 문단에서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감각적인 문체’, ‘만화적 상상력’, ‘B급 영화를 압도하는 장면묘사’가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였다. 그러나 외부 평가에 대한 본인의 반응은 의외다.

“저는 남들이 하는 말에 신경을 안 쓰는 편입니다.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도 안 갖습니다. 저랑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입니다. 평론가들이 문예지에 제 평을 쓰면 예의상 읽어보긴 하는데, 마치 고교 때 맨 뒷자리 앉아 수업 듣는 느낌입니다. 뭔지는 모르겠고, 그냥 공부겠지 하는 느낌입니다. 그들이 쓰는 용어를 모르겠어요.”

그는 소설가 이외수와 박상륭을 아이콘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외수는 개업의(開業醫) 같고, 박상륭은 연구의(硏究醫) 같다”는 것이다. 그는 치매에 걸린 홀어머니, 그리고 일곱살 난 아들과 아내가 한가족이다. 지금껏 어떤 원고 청탁도 사양해 본 적이 없다.

“아, 있습니다. 원고료가 너무 적을 때는 절대 안 씁니다.”

그는 문단 친구과 술 먹고 여행 다니는 교류가 거의 없다. “밥 먹고 글만 쓰기 때문에 다작(多作)”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재떨이로 머리를 맞는 수모까지 견뎠던 영업사원 시절처럼”, 회사 근무시간만큼은 어떻게든 앉아서 소설을 쓴다. “교류를 가지면 어머니를 모시기 힘들어요. 선셋 증후군까지 있으셔서 해만 지면 우울해지시거든요.”

(글·사진=김광일기자 [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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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deviantart.com/view/17908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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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6-1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판으로 저런걸 그릴수 있다구요? +.+ 헉~

깍두기 2005-06-1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인가요? 우와~(설마 라주미힌님이 그리신 건 아니겠죠?^^)

라주미힌 2005-06-12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전 꿈에서는 무지 잘그리는데.. 쭈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