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깍두기 > 성교육은 어려워(2)

어제 후배와 그 일곱살 난 딸이 주고받는 수작을 옆에서 본 후, 난 소현이에게도 확실하게 성교육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1>

엄마 : 소현아, 너 어떤 어른이 니 몸을 허락없이 만지려고 하면 어떡할 거니?

소현 :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급소를 차 주지.

엄마 : (허걱!) 급소가 어딘데?

소현 : 꼬추.

이게 과연 성교육을 너무 잘 받아서 그런 것일까. 아님 얜 태어날 때부터 과격한 걸까.

 

<대화2>

엄마 : 근데 소현아, 급소를 차주기 전에 말로 "만지지 마세요!"라고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소현 : (단호하게)아니, 그런 아저씨는 혼 좀 나야 돼. 

아무래도 난 아마존의 여전사를 데려다 키우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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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똑같다고? 어, 희한하네!" - 새 흑백 착시현상
 
과학전문지 '네이처' 소개
이충환 기자
2005년 3월 18일 cosmos@donga.com
주변 배경에 따라 달라보여요 뿌연 안개가 덮고 있는 검은 원반(왼쪽)과 검은 구름이 덮고 있는 하얀 원반. 양쪽 원반들은 동일한 것이다. 사진제공 네이처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우리 눈에 대한 강한 믿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하지만 착시라는 현상을 접하면 우리 눈을 한번쯤 의심하게 된다. 사람이 사물을 볼 때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로’ 보기 때문이다.

착시는 사물의 색깔, 운동, 깊이, 흑백도(lightness) 등이 주변 요인에 의해 실제와 다르게 파악되는 현상이다. 흑백도는 희거나 검은 정도를 말한다. 사람이 희고 검은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현상이 ‘흑백도 착시’다.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3일자 표지논문으로 새로운 흑백도 착시 현상을 소개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심리학부 바튼 앤더슨 박사팀은 논문을 통해 똑같은 물체가 배경의 밝기에 따라 희거나 검게 파악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연구팀은 희고 검은 얼룩이 포함된 4개의 원반을 두고 주변 배경의 밝기를 바꿔 가며 원반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조사했다. 원반들은 흰 얼룩이 밝은 배경의 흰 부분과 자연스레 연결되도록 하자 놀랍게도 흰 안개에 가려진 검은 원반들처럼 보였다. 이번엔 원반들의 검은 얼룩이 어두운 배경의 검은 부분과 어울리게 하자 똑같은 원반들이 검은 구름에 뒤덮히는 것처럼 파악됐다.

앤더슨 박사는 우리 뇌가 눈에 들어온 시각 정보를 여러 요소로 분리해내다가 착시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물체를 비추는 빛의 양인 조명, 물체 표면에서 반사하는 빛의 양인 반사율, 물체와 우리 눈 사이에 놓여 있는 매개물의 투명도 등이 이런 요소다. 연구팀은 매개물의 투명도를 적절히 바꿈으로써 똑같은 원반이 희거나 검게 보이는 착시가 일어나도록 만든 것이다.

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 감기택 연구교수는 “흑백도 착시는 주변에 비교대상이 없거나 그림자 효과가 끼어들 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짜 같은 색이에요? 앞면 그림자 속의 가운데 있는 '주황색' 조각은 윗면 가운데 고동색 조각과 같은 색이다. 사진제공 옵티컬 일루전
하늘에 떠 있는 달이 희게 보이는 현상도 흑백도 착시다. 주변에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어 태양빛을 받아 혼자 밝게 빛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주선을 타고 가서 달 옆에 거대한 흰색 천을 펼쳐 놓는다면 달은 어두운 회색으로 보일 것이다.

또 그림자 효과는 극적인 흑백도 착시를 일으킨다. 검정색과 흰색 조각으로 구성된 바둑판의 적당한 곳에 원기둥이 그림자를 드리운 그림을 보자. 그림자 속에 있는 ‘흰색’ 조각과 바깥쪽의 검정색 조각을 비교해보라. 사실 같은 것이다. 믿을 수 없다면 두 조각을 잘라 직접 비교해보라.

감 교수는 “두 조각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은 동일하다”며 “하지만 그림자 속의 조각은 원래 더 밝은 색이었다고 뇌에서 해석해 이 같은 착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림자 효과는 색깔 착시도 일으킨다. 다양한 색 조각으로 이뤄진 육면체 그림을 보자. 윗면 가운데의 고동색 조각과 앞면 가운데의 ‘노란색’ 조각을 찾아 비교해보라. 두 조각만 따로 잘라 보면 같은 색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감 교수는 “색은 표면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에 따라 결정된다”며 “뇌에서 그림자가 지면 반사되는 파장이 달라진다는 걸 감안하고 색깔을 해석하기 때문에 다른 색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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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3-18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정말 놀라운데요? +.+
 
 전출처 : 바람구두 > 신화를 통해 살펴본 인간과 자연의 조화

신화를 통해 살펴본 인간과 자연의 조화
- “베르툼누스와 포모나, 셀레네와 엔디미온, 수로부인,  김현감호”를 중심으로

- 바람구두


신화란 무엇인가? “아무도 묻지 않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데, 누가 물어서 설명하려고 하면 당황하게 된다.”성 오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서 시간이라는 집어 말하기 어려운 범주와 씨름하면서 위와 같이 쓴바 있다.(K.K.Ruthven, 1987, p.1) 이제 그것은 “신화를 통해 살펴본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발제를 맡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하는 처지이다.

신화적 사고’로 바라보기 위해

“신화와 서사” 강좌는 신화적 사고로 신화를 바라보고, 신화라는 서사구조 속에 담긴 핵심(메시지, 통찰)을 찾아내기 위한 훈련을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신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신화 전문가들이 보증하는 신화에 대한 정의들은 무엇인가? 그러한 정의가 몇 개 있다. 1) 신화는 제의(祭儀)의 언어적 양상이며 제의가 전해 주고 있는 바의 의미다. 2) 신화는 상상력이 기본적인 지적 이미지를 연결하고 명령하는 바의 언어다. 3) 신화는 계시의 양식과 궁극적인 실제의 표현이며, 예를 들면 사건의 진술이 아니라 가치의 진술이다. 4) 신화는 문학에 대한 유추적인 구조이며, 문학과 같이 의식과 무의식에서 이 양자에 만족할 만한 방법에 있어서 조정적인 미적 창조다. 5) 신화는 그 원천이나 본질에 있어서 비합리적이고 직관적인 이야기거나 서사물이다. 그리하여 신화는 추리적, 논리적 또는 체계적인 것하고는 본질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이것들에 선행한다.(신동욱 외, 1992, p.18)

신화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뮈토스(mythos)'는 사람이 하는 얘기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뮈토스는 로고스(logos)에 대립한다. 문명화된 종교들은 로고스를 에토스로 지니고 있어서 인간과 신, 성과 속, 이승과 저승, 선과 악을 이원화하는데, 신화(무속을 포함해서)는 뮈토스를 에토스로 지닌 것으로 자연과 신, 사회, 인간 등이 분화되지 않고 단일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피에르 그리말은 “로고스와 뮈토스는 말의 양면이며, 양자 다같이 정신생활의 기본적 기능이다. 논증으로서의 로고스는 올바르고 논리에 닿을 경우는 진실이지만 뭔가 속임수가 있을 경우는 허위가 된다. 그러나 뮈토스는 오로지 뮈토스 외에 아무 목적도 없다.”(불핀치, 1995, p.468),고 말한다. 이상의 정의에 따라 “베르툼누스와 포모나, 셀레네와 엔디미온, 수로부인, 김현감호”를 중심으로 하되, 부분적으로 위의 신화와 서사 구조상 흡사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된 참조자료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다음의 요약본은 주교재로 선택된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베르툼누스(Vertummnus)와 포모나(Pomona)

나무(숲)의 요정(님프)들 가운데 하나인 요정 포모나는 숲이나 강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사과가 열리는, 손질이 잘된 과수원과 그 나무만을 사랑했다. 포모나는 나무를 가꾸는 일에만 전념한 나머지 아프로디테의 일(연애)에는 무관심했다. 포모나는 연애는커녕 혹 남자들이 침입할까봐 늘 과수원 입구에 자물쇠를 채워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파우누스(들의 신)와 사티로스(숲의 신, 반인반수)들은, 포모나 하나만 차지할 수 있다면 가진 것을 누구에게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실바누스(삼림과 농정을 관장하는 로마 신)도 솔잎관을 쓴 판도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포모나를 가장 사랑한 이는 베르툼누스(‘계절이 바뀐다’는 뜻의 라틴어, 곧 계절의 신)였다. 베르툼누스는 변신 능력을 이용해 포모나의 주변을 배회했으나 먼발치에서 포모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따름이었다.

어느 날 베르툼누스는 노파로 둔갑해 포모나 앞에 나타났다. 노파는 포도덩굴과 느릅나무의 비유를 들어 현재 포모나가 나무에만 열중하여 남자와 사랑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무익한 행위란 것을 일깨우려했다. 노파는 베르툼누스의 장점들을 이야기하며 포모나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노파는 다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징벌을 강조하며 아낙사레테와 이피스의 일화를 예로 든다. 가난한 집 청년이었던 이피스가 지체 높은 가문의 딸인 아낙사레테를 보고 한눈에 반했으나 이피스의 사랑과 열정에 무관심했던 아낙사레테는 이피스를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아낙사레테 역시 복수의 여신에 의해 벌을 받고 석상이 되어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본모습으로 돌아온 베르툼누스에게 포모나는 사랑에 빠져 그를 받아들인다.

과일의 님프 포모나와 계절의 신인 베르툼누스의 사랑 이야기는 그리스․로마신화에 존재하는 여러 사랑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그리스의 신 가운데는 사랑의 신 에로스와 더불어 형제인 안테로스(사랑에 대해 사랑으로 보답하지 않는 자를 벌하는 신)가 존재한다. 그리스신화는 이처럼 사랑에 민감하다. 특히 베르툼누스가 예시하고 있는 사랑을 거부한 나머지 아프로디테 혹은 다른 신에게 복수당하는 대표적 이야기로는 “에코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벌핀치, 1996, pp.172-177)가 있다. 아르테미스의 사랑을 받던 아름다운(말이 많기는 했지만) 님프 에코는 어느 날 헤라에게 잘못을 저질러 남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말의 뒷부분만 되풀이하는 형벌을 받는다. 우연히 나르키소스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진 에코는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나르키소스는 에코와 다른 여자(님프)들에게도 무정했던 죄로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저주를 받는다.

이외에도 “키벨레와 아티스”(미하엘 쾰마이어, 1999, pp.108-119)에서 키벨레의 사랑을 알아채지 못한 아티스는 미쳐서 스스로를 거세한다. 아르테미스를 숭배한 히폴리투스는 여자들의 사랑(그 가운데는 의붓 어머니인 파이드라)을 거절한 죄로 포세이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프레이저, 1995, pp.39-41). “알페이오스와 아레투사”(이경덕, 2002, pp.40-47)의 이야기는 “아폴론과 다프네”, “판과 쉬링크스” 이야기와 많은 유사점을 갖지만 한 가지 차이를 지닌다. 샘물이 된 아레투사를 사랑한 알페이오스는 역시 강이 되어서까지 아레투사와의 사랑을 원했고, 결국 이 둘은 물이 됨으로써 서로의 사랑을 이룬다.
사랑이 너무 과한 나머지 사랑을 맺어준 아프로디테에게 감사하는 것을 잊은 “아탈란테와 히포마네스”(벌핀치, 1996, pp.236-239)는 석상이 되어 사랑의 결실을 얻을 수 없었다. 반대로 피그말리온의 지극한 사랑은 상아조각상을 인간으로 변모시키기도 한다.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의 이야기 속에서 포모나가 속해있는 하마드리아스(숲)은 농업을 위해 개간되지 않은 땅, 혹은 개간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숲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포모나가 판(로마인들은 숲의 신인 실바누스와 동일하게 생각)이나 실바누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과수원을 사랑한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판((판이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 솔잎관, 솔방울은 남성다움의 상징)은 달의 여신인 셀레네에게 희고 아름다운 양털을 주어 숲으로 유혹한 신이며 님프 쉬링크스를 연정을 품고 쫓아다니다 갈대로 만들기도 했다.(이윤기 편역, 2001, pp.63-64)

어쨌든 포도덩쿨과 느릅나무의 비유가 의미하고 있듯, 포모나가 베르툼누스와 맺어지기(클린턴에 의하면 'sexual relationship') 전엔 재생산의 활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피스가 아낙사레테의 대문에 건 화환은 성스러움과 다산의 상징으로, 청혼(사랑)은 풍요와 다산, 재생산을 의미한다. 자연의 모든 작용을 신들이 하는 일로 보아왔던 고대인들에게 있어 신(자연)과 인간의 사랑(조화) 즉, 사랑과 풍요는 일치하는 것이었으므로 동일시되었다. 재생과 풍요를 위해 사랑은 거부되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사랑의 거부는 곧 신의 징벌을 받아야 하는 죽음의 죄이기도 했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숭배자가 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신들도 숭배자를 필요로 했는데, 신들은 인간의 가축을 늘려주거나 대지를 풍요롭게 해주고, 그 은혜의 일부로 공물을 되돌려 받기를 원했는데, 공물이 없으면 신들 역시 굶주려야 했기 때문이다. 배를 채우지 않고는 신들 역시 재생산의 활력을 회복할 수 없었다. 아탈란테와 히포마네스가 벌을 받은 이유는 그들이 공물을 바치는 것을 깜박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반대로 사랑을 쫓아 강이 된 알페이오스의 이름을 메마른 그리스 대지의 젖줄이 된 강에 붙였고, 그 강을 “사랑의 강”이라 불렀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욕심쟁이 거인”에서 아이들을 출입 금지시키고, 문에 자물쇠를 채운 거인의 정원에 봄이 찾아오지 않고, 겨울만 계속된다는 이야기는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신화의 문학적 변용으로 볼 수 있다.

셀레네(Selene)와 엔디미온(Endymion)

엔디미온은 라트모스 산에서 양을 치는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어느 맑고 조용한 밤,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정확하게 말하면 셀레네)는 하계(인간세상)을 내려다보다가 잠들어 있는 이 젊은 청년이 눈에 띄었다. 젊은이의 아름다움은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아르테미스의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녹였다. 결국 이 처녀 신은 젊은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그에게 입을 맞추고는 자고 있는 그를 지켜주었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제우스가 이 엔디미온에게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잠을 엮어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이 같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서 엔디미온에게는 이렇다 하게 기록될만한 모험담이 하나도 없다. 전설에 따르면 아르테미스는 젊은이가 매일 잠이나 자다가 재산을 잃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그의 가축 수를 늘려주고, 야수가 양떼를 해코지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청년이 여신의 사랑을 받아 영원한 청춘의 잠을 잔다는 내용이므로 엔디미온의 이야기는 사실 길지 않다. 다만 엔디미온과 관련된 신화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우선, 엔디미온이 목동이 아니라 엘리스의 왕이었으며, 크레타인의 왕 클리메노스를 올림피아에서 추방하여 그 땅을 자기 영토로 삼았다고도 한다. 엔디미온에게는 아이톨로스, 파이온, 에페이오스 세 아들이 있었다고도 한다.(M.그랜트 ․ J.헤이즐, 1993, pp.198-299)

어느 밤 잠들어 있는 엔디미온에게 반한 셀레네는 제우스에게 엔디미온이 언제까지나 젊고 멋있는 모습을 간직하도록 영원히 잠들어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제우스는 셀레네의 소원을 받아들여 동굴 속에서 영원히 늙지 않은 채 계속 잠들어 있게 했다. 엔디미온은 꿈속에서 팔에 달을 안고 있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꿈이 아니었는지 셀레네는 그에게 오십 명의 딸을 낳아 주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를 닮아 창백하고 아름다웠으며, 아버지처럼 잠만 잤다.(에드거 파린 돌레르 ․ 인그리 돌레르, 2000, p.86)

여신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다른 신화도 있다. “에오스와 티토노스”(이윤기 편역, 2001, p.112)의 이야기에서 에오스(새벽의 여신, 셀레네의 동생이기도 하다)는 티토노스를 사랑한 나머지 그를 납치한다. 에오스는 제우스를 설득하여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달라고 간청했는데, 실수로 영원한 젊음을 약속받지 못했다. 티토노스는 영원히 살기는 했지만 늙어갔고, 에오스는 참다못해 그를 매미(일설엔 메뚜기)로 변하게 한다.

불사의 생명을 지닌 여신과 한정된 수명의 인간 사이의 사랑 이야기는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프레이저에 따르면 매년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아도니스의 이야기엔 가을에 죽고, 봄에 소생하는 자연과 연관된 고대인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운명적인 죽음을 맞는 신과 불사의 여신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이성(異性)간 결합이 자연의 풍요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여신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봄에 그 탄생을 기뻐하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페르세포네와 아도니스).

잠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신화는 중국의 창세기라 할 수 있는“숙(儵)과 홀(忽) 그리고 혼돈(混沌)”의 이야기일 것이다. 남해 천제 숙과 북해 천제 홀은 종종 중앙 천제인 혼돈에게 놀러가 융성한 대접을 받곤 했다. 숙과 홀(또한 빠른 시간을 의미한다)은 혼돈의 대접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두 천제는 “사람은 모두 다 눈, 코, 입 등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음식을 먹고 하는데, 혼돈에게는 구멍이 하나도 없으니 뭔가 부족함이 있지. 우리가 가서 그를 위해 구멍을 몇 개 뚫어주는 것이 어떨까”하여 도끼와 끌 등을 가져다 하루에 하나씩 이레 동안 구멍을 뚫어 주었다. 그러나 불쌍한 혼돈은 친구들이 구멍을 뚫어주자 도리어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혼돈이 영원히 잠들게 되자, 혼돈의 뒤를 이어 우주와 세계가 탄생한다.(위앤커, 1999, pp20-21) 잠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창조를 알리는 것이다.

엔디미온과 관련해 낭만주의 시대(1798-1832)의 영국 시인 존 키이츠(1795-1821)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이 짤막한 신화에 불과한 엔디미온이 누리는 생명에는 그의 이름을 시집 제명으로 채택한 키이츠의 영향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1818년 엔디미온을 디아나 여신의 연인으로 등장시킨 동명의 시집 『엔디미온』은 당시엔 혹평을 받았으나(M.H.에이브럼즈, 1998, pp. 122-134) 후세에 이르러서는 서정적 구절들로 인해 도리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이 시의 첫 구절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ever)”은 가장 유명하다. 시인 키이츠 자신도 33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 것을 떠올려볼 때, 엔디미온의 영원한 청춘과 잠은 공상의 세계에서 영원한 불멸의 창조를 꿈꾼 시인의 몽상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김현감호(金現感虎) -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

원성왕 대의 화랑 김현(金現)은 밤이 깊도록 흥륜사의 전탑을 돌다가 한 처녀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하였다. 김현은 억지로 처녀의 집까지 따라갔는데 그곳은 호랑이들의 거처였고, 처녀는 호랑이가 현신한 것이었다. 때마침 난폭한 호랑이 세 마리가 들이닥쳐 김현이 위험에 처했을 때 호랑이들이 남의 생명 빼앗길 즐겨하니 한 놈을 죽여 악행을 징계하겠다는 하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처녀가 나서 나머지 호랑이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이 대신 벌을 받을 테니 김현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청한다. 처녀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 김현은 다음날 성내에서 난폭하게 구는 호랑이를 찾아 간다. 처녀는 다친 사람들을 치료할 방법을 일러준 뒤 김현의 칼을 뽑아 스스로 찔렀다. 김현은 호랑이가 일러준 데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서천 가에 절을 세우고 호원사라 하였다. 스스로는 항상 범망경을 강론하여 호랑이의 명복을 빌고, 스스로를 희생하여 어짊을 이루어 준 은혜를 갚았다.

신라 원성왕 시기를 전후하여 산 사람인 김현이 젊은 시절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다가 만난 범이 현신한 처녀를 만나 정을 통하였는데, 그 범이 목숨을 버리면서 그를 도와 큰 벼슬을 얻게 되었다. 김현은 그 뒤 죽은 범을 위하여 경주에 호원사(虎願寺)를 지어 명복을 빌었고, 임종에 임하여 과거 범과의 신이한 일을 적어 세상에 전하게 되었으며, 그 책의 이름을 ‘논호림(論虎林)’이라고 하였다는데, 그와 관련된 이와 같은 설화는 『수이전(殊異傳)』에 수록되었고, 그것을 『삼국유사』에서 재수록하여 지금껏 전하게 되었다.( p.87) 실제 존재했던 사찰인 호원사의 연기설화(緣起說話) 구실도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민담설화에 무수히 등장하는 호랑이, ‘변신설화’에 해당한다. 우리 사찰은 불교의 전통 가람 양식에는 존재하지 않는 칠성각(七星閣, 치성광여래, 북두칠성을 모시는 전각)이나 산신각(山神閣, 우리 고유의 토속신인 산신), 독성각(獨聖閣) 등이 존재(이를 합쳐 삼성각이라 함)하는데, 이는 불교가 민속신앙을 불교 신앙 내부로 받아들인 건축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허균, 2003, p.237)

김현이 처녀를 만난 것이 흥륜사 탑돌이 중이었던 사실은 산신인 호랑이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비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처의 영험함에 이미 굴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녀가 일으킨 호환에서 다친 사람들의 치료법 역시 흥륜사 간장을 이용하고 있다. 호랑이는 김현과 정을 통한 뒤 하늘의 목소리에 따라 자기 몸을 희생하고, 김현을 출세시킨다. 호랑이가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은 역시 불교적 윤회에 따르면 후생을 기약하는 것이다. 김현이 현세에서 벼슬을 얻고, 출세하는 것은 기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호랑이의 죽음은 기복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불교 신앙이 추구하는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영원한 삶으로 향하는 정토신앙적인 측면을 지닌다.

민속신앙에서 모든 자연은 몸이며,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생명체는 모두 영혼이나 다름없다. 동물과 자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영육(靈肉)의 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인식하는 까닭에, 자연이라는 동일한 몸의 영혼을 이루는 인간과 동물도 공생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전통 민속에서 인명과 가축을 해치는 호랑이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를 퇴치하려 들기보다 오히려 마을을 지켜주는 산신으로 섬김으로써 호랑이와 화해하고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임재해, 2002, p.275) 그런 점에서 김현과 호랑이는 정을 통할 수 있었다. 우리의 많은 민간설화에서 은혜를 갚는 짐승의 이야기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인간과 동물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김현감호는 애니미즘에서 불교 신앙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수로부인

성덕왕 대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여 가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옆에는 바위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는데, 높이가 철길이나 되었고,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그것을 보고서 “누가 내게 저 꽃을 꺾어 바치겠는가”하며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도저히 사람이 오를 수 없는 곳이라 모두가 난색을 하고 수로의 말에 응하지 않았다.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와서 가사도 지어 함께 바쳤으나 그 노인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자주빛 바위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다시 이틀째 길을 가다가 또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는데, 바다의 용이 갑자기 부인을 낚아채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정공이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다시 한 노인이 말하길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고 했으니, 이제 바다 속 짐승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하며 경내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며 지팡이로 강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공이 그 말에 따르니 용이 부인을 모시고 나와 바다에서 나와 바쳤다. 공이 부인에게 바다 속의 일을 물으니 부인이 답하길 일곱 가지 보물로 꾸민 궁전에 음식들은 맛이 달고 매끄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 세상의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의 옷에도 색다른 향기가 스며있었는데, 이 세상에서는 맡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수로부인은 절세미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가를 지날 때마다 신물에게 빼앗겼으므로 여러 사람이 해가를 불렀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아내를 약탈해간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약 거역하고 내다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쳐 잡아서 구워먹으리라.

존 키이츠가 그리스 로마신화를 가지고 “엔디미온”을 썼다면 서정주는 삼국유사에서 모티프를 따온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수로부인의 얼굴”이란 작품인데, “암소를 끌고 가던/ 수염이 흰 할아버지가// 그 손의 고삐를/ 아조 그만 놓아 버리게 할 만큼,// 소 고삐 놓아 두고/ 높은 낭떠러지를/ 다람쥐 새끼같이 뽀르르르 기어오르게 할 만큼,// 기어 올라 가서/ 진달래 꽃 꺾어다가// 노래 한 수 지어 불러/ 갖다 바치게 할 만큼”수로 부인의 미모가 뛰어났음을 이야기한다.

수로부인 이야기는 우리 설화 가운데서도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수많은 해석들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대목이 꽃을 꺾어다 바친 노인의 존재를 두고 행해지는 것들이다. 혹자는 그를 도교의 신선, 불교의 선승으로 보고, 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두고 물욕에 사로잡힌 노인으로 보기도 한다. 수로부인 역시 아름답기만 한 보통 부인이 아니라 무당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또 혹자는 수로부인의 납치설화와 “해가”를 권력자에 의한 납치로부터 민중이 단합하여 순정공의 아내를 되찾아준 이야기를 은유한 것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리스인들은 천국은 온통 수선화로 뒤덮여 있다고 믿었고, 중국인들은 이 세상에서 산 여자들 하나하나를 위해 다음 세상에서 하나씩 꽃이 피어난다고 상상했다. 꽃은 이렇듯 여성의 상징으로 중심으로부터 외부로 향해 진행되는 에너지를 담고 있는 창조를 상징해 왔다. 수로와 노인에 대해선 많은 이견이 있지만 꽃을 꺾는다는 행위가 성 행위를 의미한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 하다. 수로 부인이 꽃을 꺾어달라는 제안을 할 때, 수로 부인의 남편인 순정공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만약 순정공의 성적 불능을 의미한다면, 수로 부인이 이후 용신을 비롯한 여러 신물들의 납치를 경험하는 것과 연계시켜 생각해볼 여지가 커진다.

우리 전통 설화에서 물은 여성(생명, 죽음, 정화)을 상징한다. 박혁거세, 동명성왕, 작제건 등은 모두 물의 여성과 맺어짐으로 새로운 왕업을 잇는다. 그러나 순정공은 이런 수로 부인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고, 결국 수로 부인의 생명력과 풍요는 기능할 수 없었다. 천길 위의 절벽이라는 것, 즉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하늘을 의미하고, 노인이 그것을 꺾어왔다는 것은 그가 인간의 능력 이상(神性)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수로 부인이 노인과 정을 통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유추해볼 수는 있다. 이건우(서울대 불문과 교수)는 “모든 남성 신들이 주권여신의 선택을 받아 세계를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의 왕 역시 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여왕의 선택을 받아 여왕과 혼인하고, 이를 통해 주권을 이양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이건우, 2003, p271)

백제 왕자 서동이 신라 공주 선화를 얻기 위해 서동요를 지어 불렀던 것처럼, 헌화가를 지은 노인(동일인?)은 동해의 용에게 빼앗긴 수로 부인을 되찾고자 한다면 해가를 부르라고 순정공에게 간언한다. 간신히 되찾아온 수로 부인이지만 이후에도 신물의 탈취(혹은 수로부인의 가출)가 계속된 것은 어쩌면 여신의 권위(모계)가 점차 축소되던 것을 느낀 수로 부인의 의도된 일탈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신화적 사고에서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의미하겠으나 때마침 성덕왕 대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이 시기에 유교적 정치질서가 강화되고, 북방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강릉 북방에 2,000여 장정을 동원해 장성을 축조한 사례 등을 보았을 때 점차 모계의 전통에서 일탈하여 가부장적 사회로 전환되면서, 여신의 지위가 축소되던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결론 : 신화적 사고로 바라본 자연(神性)과 인간의 조화

신앙의 시작은 자연을 섬기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사람들이 섬김의 대상으로 삼았던 자연은 하늘과 땅, 해와 달, 별처럼 우주의 천체와 함께, 바람과 구름, 비 등 기상현상 및 산과 강, 바위, 나무 등 자연물들을 두루 포괄한다. 인간은 여러모로 나약하고 한 번 죽으면 되살아날 수 없으나, 자연은 변함없이 꿋꿋할 뿐 아니라 계절의 순환에 따라 생생력을 발휘하여 생명을 반복적으로 지속한다. 한정된 수명을 지닌 인간에 비해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사라지는가 하면 다시 나타나고 죽었는가 하면 되살아나는 힘을 지녔다. 해는 서쪽으로 지는가 하면 동쪽에서 다시 뜨고, 달은 그믐에 죽었는가 하면 초사흘에 초승달로 다시 살아나며, 너무들 또한 겨울이 닥쳐 잎을 떨어뜨리고 죽었는가 하면 봄을 맞아 싹을 틔우며 되살아나는 힘을 지녔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생생력(生生力)이자 순환적 생명력이다. 일생의 삶을 단 한 차례만 누리는 사람들로서는 이러한 자연현상이 초월적 생명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세상을 처음 볼 때 자연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커다란 경이이자 큰 공포였으며, 그것은 불가사의이자 영원한 신비였다.” 산과 바위 또는 강과 바다와 같은 자연물들은, 나서 자라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과 달리 항상 변함없이 거기 그대로 꿋꿋하게 존재한다. 나서 죽는 유한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에 비하여 처음과 끝도 없이 무한하게 지속되는 자연물은 초인적인 존재로 인식되게 마련이다.

신화적 사고는 인지력이 결여된 미개 사고가 아니며, 신화적 사고는 근대의 과학적 사고 못지않게 지적이고 논리적이다. 원시인이나 고대인들의 자연에 관한 지식과 근대인의 과학적 지식에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후자처럼 자연을 대상화하고 객관화하는 지식이 아니라, 인간이 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지혜이다. 인간은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 자연의 질서와 오묘한 섭리에 귀 기울여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야 함을 일깨워주는 지혜인 것이다. 이렇듯 신화적 사고로 바라본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다룬 뮈토스를 통해 자연은 인간이 마음껏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물질적 대상의 천연자원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은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동일 유기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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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네티즌들이 가장 예쁜 지폐로 꼽은 네덜란드의 50굴덴

 
△네델란드 (등대와 네델란드 지도로 보입니다)

 
△가봉 (마치 동화책 속 그림 같네요)


 
△남아공 (남아공의 지폐 주인공은 모두 동물이래요)


 
△스웨덴 (닐스의 모험 중 한 장면이 지폐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깊습니다)


 
△벨기에 (색소폰 발명가인 아돌프 색스라고 합니다)


 
△스위스 (유명 건축가 꼬르뷔지에와 작품 도안.)



△호주의 지폐들. 플라스틱 재질로 된 특수 종이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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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3-0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사용되는 돈이란 말입니까? +.+ 이쁘기도 하지....

울보 2005-03-08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갈게요......참 이쁘네요///

라주미힌 2005-03-0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같죠? ㅋ.ㅋ
 

[프리] [3월에 가볼만한 곳] 관광공사 4選
[한국일보 2005-03-03 20:25]    

▲ 전남 장흥-장천재 동백과 여다지 해변

장흥의 천관산은 굽이굽이가 명소로 장천재 계곡을 따라 형성된 동백 군락지에는 동백이 선연하게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동백길을 달려 장흥의 바다로 나서면 머드팩과 해수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다지 해변과 남포마을의 소등섬을 볼 수 있다. 장흥군청 문화관광과 (061)860-0208

▲ 충남 서천- 연인과 떠나는 감동여행

서울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2시간30분 가량 타고 서천IC에서 빠지면 영화 JSA의 촬영지인 신성리 갈대밭이다. 6만여 평의 광활한 갈대밭이 금강의 물결과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금강 하구둑에서 철새를 감상하고 서해안 해변길을 오르면 다사항 마량포 홍원항 등 전형적인 서해의 한적한 포구들을 만난다. 서천군청 문화관광과 (041)950-4208

▲ 전북 익산- 백제의 잔향이 깊게 배어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해체 작업중이라 탑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왕궁면에는 세계 각국의 보석 10만여 점이 전시된 보석박물관이 있다. 금강을 끼고 있는 웅포 곰개나루에서는 멋진 해넘이와 함께 익산의 명물 우어회를 맛볼 수 있다. 익산시청 문화관광과 (063)850-4120

▲ 경남 거제-봄꽃ㆍ바다가 멋진 해안도로

거제도의 3월. 서서히 물러가는 동백의 빈자리에 분홍색의 진달래와 노란 유채가 대신한다. 거제의 꽃물결이 다른 곳보다 아름다운 것은 바다 위에 떠있는 많은 섬들 때문이다. 야트막한 산길에서 내려다 보는 포구는 정답기 그지없다. 거제시청 관광진흥과 (055)639-3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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