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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것 같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장르소설이 폭주하고 있다. 지난 달에만 사들인 책이 몇 권인데(상당히 절제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등 떠밀 듯 책들을 뿜어내고 있는데다 예정된 책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 내가 아는 것만 그렇다는 것이니 준비를 도대체 얼마나 하고 있다는 말일까?

한 번쯤 몰아닥칠 장르문학 붐은 예상한 바였지만 이런 식의 폭주는 오히려 걱정스럽다. <다 빈치 코드>를 기점으로 장르소설에 관심을 갖는 독자와 출판사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마냥 행복한 비명을 질러도 되는 걸까? 매체들이 장르문학을 정당한 눈으로 올바르게 평가할 준비가 덜 되었다는 점, 그리고 짧은 기간에 온갖 장르문학이 쏟아져 나와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점을 나는 걱정한다.

르 귄의 헤인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의 <게임의 이름은 유괴>, <나는 전설이다>, <망량의 상자>, 덱스터의 모스 경감 시리즈, 딜비쉬 연대기,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 <800만 가지 죽는 방법>, <붉은 인형의 집>, 챈들러 선집, 스티븐 킹 전집, 아야츠토 유키토의 관 시리즈, <비잔티움의 첩자>..... 이외에도 장르 독자라면 한 번은 읽어보고 싶은 수많은 타이틀들이 있다.

또 나올 책들은 어떤가.
러브 크래트프 선집,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과 <이유>, 어스시의 마법사 4권,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블레이드 러너>), 닐 게이먼의 American Gods(제목을 뭘로 할는지..), 키리노 나츠오의 책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외 몇 권, 제브리 디버의 몇 타이틀, 팔코 시리즈,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뷰>......


요즘 뒤를 돌아보니, 요 몇 달 새 읽은 것의 팔 할이 장르다. 연재하는 원고들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책들은 이사니 뭐니 시간에 쫓기어 읽지 못한 탓이겠지만 출간 속도에 떠밀려 내 읽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터 내가 장르소설을 이렇게 탐닉했을까? 사실 난 '마니아'로 불릴 정도의 장르소설 독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재밌는 건 뭐든 읽는다!"는 전방위 무대뽀 독자였을 뿐. 내가 다른 마니아들처럼 원서를 뒤적이는 것도 아니요(물론, 십몇 년 전에는 찔끔찔끔 사기도 했지만), 오히려 신화책들을 더 탐닉하는 편에 속했는데 말이지. 그때는 별로 나오는 책이 없었고, 나오는 책은 어지간한 건 전부 읽는다...주의였.....호...혹시...이게 마니아? OTL

아무튼, 최악으로 돈이 궁한 요즘 이렇게 밀어닥치는 책들은 조금(실은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단 말이지. 위에서 말한 걱정들도 있고. 이러다가 또 갑자기 쑥 사그라들어 존재도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하는. 소문으로만 듣던 책들이 실제로 눈앞에 *두둥* 나타나니까(그것도 무더기로) 실감이 잘 안 난다. 우웅... 책값 줄이기로 했는뎅. 쟤네들이 나를 발바닥부터 갉아먹는구나. 에라, 그래, 나올 테면 나와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읽어 주마! -虎-

 

출처 : www.readordi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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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7-1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꺼만 출처에서 퍼갑니다^^
 



운이 많이 작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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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레벨9 입니까? +.+ 저는 8레벨까지밖에는.....

라주미힌 2005-07-0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중독성이 심하죠. 단순한게 가장 매력적인거 같아요. 흐흐
날개님/ 11까지도 가봤어요. 초당 타임바가 1cm가 없어져요 ㅡ.ㅡ;;;;; 2~3줄을 지워야 제자리를 유지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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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인어뱃살 > 오역의 문화와 함께 비평의 문화도 한번 돌아봤으면
문화의 오역
이재호 지음 / 동인(이성모)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알라딘으로부터 이 책을 받아 읽는 순간 10분도 안되어서 나는 이 책에 대해 실망했다. 미리 서점에서 한번 만 봤더라면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번역서를 접하면서 오역에 대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출판계에는 오역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의 오역'으로 '오역의 문화'가 일상화되었다면, 그에 대한 비평도 뼈아프지만 애정 어린, 미래 지향적인 비평이 되었어야 했다.

내가 기대했던 책의 내용은 그간 '문화의 오역'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발전적 대안이 포함된 책의 내용이었다. 즉 우리 영어 교육의 문제, 번역 작업의 학술 성과로서의 인정 문제, 번역가 양성 과정에서 나오는 문제, 오역 나올 수밖에 없는 번역가에 대한 대우 같은 제반 사항이 포함된 내용 말이다. 아마 책 제목만 보고 말한다면 누구나 이런 식의 기대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내용이 없다. 저자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잘못 번역된 내용들만 나열되어 있다.  이 내용도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Queen이 여왕과 왕비로 모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영어가 그다지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여왕이라고 번역해야 할 곳에 왕비로 왕비라고 번역해야 할 곳에 여왕이라고 쓰인 경우가 무수히 많다는 것은 이미 안정효씨의 <영어 길들이기>에서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이 내용에 대한 예를 무러 18페이지나 들고 있다. 이건 지면 낭비가 아닐까?

저자는 오역만 찾다보니 오역이 제대로 고쳐져 사용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나 보다.

* 올더스 헉슬리의 Brave New World가 <용감한 신세계>로 오역되어 있는데 <멋진 신세계>가 맞다는 것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알라딘에 검색창을 한번 사용해 보시길 바란다. 요즘도 <용감한 신세계>로 제목을 다는 경우가 있는지..

* A Man For All Season이 <팔방미인>이 아니고 <4계절의 사나이>란다. 미안하지만 이 영화 제목은 오래 전에 <명화극장>에서 방송할 때도 그렇고 각종 영화 잡지에도 그대로 <4계절의 사나이>로 번역되고 있다.

* 코페르니쿠스의 On the Revolution of Celestial Orbit가 <천체의 혁명에 관하여>가 아니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란다. 그러면서 오역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책이 1963년 판 <세계문화사>이다. 골동품 수준의 책에 실린 오역을 소개하기에 앞서 한번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1998년에 서해문집에서 이미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 같은 예로 토마스 핀천의 The Cry of Lot 49는 저자가 지적을 안해도 이미 <49번지의 비명>이 아니라 <49호 품목의 경매>로 번역되어 있다.

저자의 오류도 눈에 뜨인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원 제목은 Lost In Translation. 저자는 Translation은 '번역/통역'이 아니란다. 왜냐하면 Translation의 동사형 translate는 '황홀하다'라는 뜻이 되고 명사형인 translation은 '황홀경' 정도(Translation이 '황홀경'이라고 영어 사전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translate에서 유추해서 다시 명사화 시킴 ). 'be lost in~'은 '~에 홀리다'. 즉 Lost In Translation은 '황홀경에 빠지다'라는 뜻이라는게 저자의 주장. 영화 제목 하나 설명하기 위해서 고차 연립 방정식을 푸는 것 같다.

저자의 주장대로 Translation이 '황홀경'이라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이 영화의 감독 소피아 코폴라의 인터뷰에 의하면 translation은 '번역'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 외국 영화 리뷰에도 '황홀경'이 아니라 모두 '번역'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영화에서 일본인들이 '통역' 때문에 애를 먹지 남녀 배우 두 사람은 모두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통역'에 문제가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통역'과 무관하다는 단순 논리. 하지만 우리 식으로 의역을 하지 않고 영어 원제로 하자면 <번역 속에 사라지다>(Lost In Translation) 정도가 적절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 소통 속에 사라진 의미를 향수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저자도 '오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에게 진심으로 충고를 하고 싶다.  '요런 의미가 있는 건 몰랐지?'하는 반박을 위해 두꺼운 영어 사전을 몇권 씩 뒤지기 보다는  <씨네 21> 실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해석하는 두 가지 키워드'라는 김소영 교수의 글을 읽기를 권한다. 왜 tanslation이 '번역'의 의미로 쓰였는지를 저자에게 차근 차근하게 알려 줄 것이며 제목 트집 잡다가 놓친 영화의 주제를 친절하게 안내해 줄 것이다. 그러면서 단어에 국한된 번역이 아니라 '문화'의 번역'이 뭔지를 그 글을 통해서 한번 깨달아 보시길 바란다. 

 이 책의 2/3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장미의 이름> 등으로 알려진 이윤기씨에 대한 비평이다(솔직히 비평이라기 보다는 비난이나 험담이 더 어울린다)
저자는 마치 영어 선생님처럼 "니가 한 이 번역은 이래서 틀렸고 저건 저래서 틀렸어.."하며 이윤기씨를 몰아세운다. 보기에 참 민망하다.
저자의 지적 중에 일면 타당한 것도 없지 않지만 이윤기씨가 자신의 관점에서 "이건.. 이런 식의 의미로 보인다"라고 해석한 부분을 '마치 자기가 세계적인 신화학자가 되는 것처럼 함부로 해석한다'라는 글로서 험담을 해댄다. 신화의 해석은 세계적인 신화학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신화가 그들의 손에서만 해석되어야 한다면 신화는 얼마나 밍숭맹숭했을까.(난 개인적으로 이윤기씨나 이 책의 저자 이재호씨에게 한번 물어 보고 싶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금전 채무 문제로 다툼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왜냐하면 이재호씨는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저자들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이윤기씨만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물고 늘어지니 말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는 책 제목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이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이는 그의 관점에서 현대식으로 해석해보겠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도 않은채 자기 관점에서만 벗어나면 무조건 오역이라는 건 문제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이 책은 2천년전에 쓰여진 신화이다. 신화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전승과 관점이 있다는 것을 왜 인정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이윤기씨의 오역과 저자인 이재호씨의 주장을 모두 인정한다 하더라도 '문화의 오역'을 단지 저자 몇 사람을 골라서 인민재판식으로 몰아 붙인다고 해결될까? '문화의 오역'에는 그만큼 우리 번역 문화가 미성숙했음을 보여준다.이 문제는 한 개인의 능력에 국한시킬 문제가 아니라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비평을 위한 비평, 비판만 난무하는 비평을 넘어선 성숙한 번역 문화를 만들 수 있을것이다. 

오역이 있으면 오역을 지적하고 오역을 한 사람은 타당한 지적이면 수용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핏대 올리면서 남을 폄하할 필요도 없고 주눅이 들 필요도 없으며 오역을 찾아냈다고 우쭐해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한 작품에 대한 번역의 수준은 한 번역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 많은 오류와 수정 속에 번역은 새롭게 바뀌어지고 시대적 관점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번역은 단 한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구' 번역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길러지는 것은 번역 과정에서 쌓여지는 것이 우리 문화의 수준이며, 그 번역 문화에는 번역가의 문제와 번역을 지적하는 비평가의 수준 역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는 진정한 번역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학계가 지금껏 '오역의 문화'를 양산해 왔다면, 저자는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문제일까? 과연 이재호 교수 책을 잡고 이 잡듯이 잡으면 오역이 보이지 않을까? 비평을 하는 사람 자신 역시 번역문화라는 큰 테두리에서는 비평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차라리 자신의 그간 번역 과정에서 쌓여온 고충이나 노하우를 점잖게 소개하는 것이 옐로우 저널리즘식 글쓰기 보다는 우리 번역 문화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저자에게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 책은 '명예교수'라는 '명예'와 전혀 걸맞지 않는 비평이다. 이건 자신의 '명예'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비평에 불과하다. (만약 저자식의 비아냥거림이 허용된다면 저자에게 이런 식으로 돌려주고 싶다)  "이런 식의 비평은 네이버 댓글에서 한 페이지마다 수두룩하게 찾을 수 있는 공해 수준의 글이다."

번역이 오역이라고 해서 똑같은 수준의 비평이 용납될 수 없다. 어쩌면 수준 높은 번역 문화는 수준 있는 비평이 자리잡을 때 가능할지도 모른다.

군소리)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말씀드린다. 이재호 교수를 비판했다고 '이윤기씨의 측근' 이런 식의 황당한 편가르기 식의 소리를 하지 말기 바란다.  우연찮게 두 사람의 책을 다 읽은.. 책 읽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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