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와 <올드보이>의 흥행에 더해 지난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으로 박찬욱(42) 감독은 명실공히 한국 영화의 간판 감독이 됐다. 그 스스로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말하는 <친절한 금자씨>의 개봉(29일)을 앞두고 영화평론가인 김소영(43)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가 박 감독을 인터뷰했다.(둘은 서강대 영화 동아리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분노, 죄의식 등 박 감독의 영화에 반복돼 등장하는 모티브의 개인적인 연원을 묻는 질문에서 박 감독의 대답은 비껴가는 듯 했지만 <친절한 금자씨>의 음악 사용과 동화적 표현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소영=박찬욱 감독은 지금 한국 영화계의 가장 ‘핫’한 위치에 있는 감독 중 한명이다. 이런 위치가 영화를 만들 때나 관객을 의식할 때 어떤 영향을 끼치지 않는가.

박찬욱=전혀 안 끼친다. 나는 영화 한편 만드는 데 시간도, 돈도 꽤 드는 타입이기 때문에 정말 내면의 절실한 욕구나 동기가 없다면 못 버틸 정도로 지친다. 흥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늘 생각해온 것이라 내면화돼서 특별히 더 의도할 필요도 없다.

=영화를 만들게 하는 힘을 절실함, 또는 맺힌 것이라고 표현한다면 박 감독 작품에는 이런 맥락에서 꾸준히 표현되는 것들이 있을 거다. 비교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김기덕 감독 경우 누가 봐도 그의 내면에 맺힌 것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는데 박감독에게 이런 것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이야기한다면 뭘까?

=음…(한참, 고민). 내 영화에는 어떤 어리석은 짓,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사람들은 거기서 원래의 순결한 상태로 돌아가려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사용된 용어로 하자면 영혼의 구원을 얻으려 하고 그것이 대개는 좌절되지만 어쨌든 노력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대답이 된 건가?

=박 감독의 인생에서 유년의 트라우마라거나 또는 첫번째 실수라고 기억하는 것들 중에 현재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치거나 모티브로 작동하는 것이 있나.

=개인적 체험이라는 게 너무 범위가 좁고 평범하기 때문에 거기서 나올 만한 건 별로 없다. 떠올릴 수 있는 거라야 가톨릭 가정에서의 성장 정도? 그렇지만 한국 가톨릭이라는 게 유럽처럼 죄의식을 강요한다거나 하는 보수적 전통도 강하지 않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친절한 금자씨>는 금자씨가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도 속죄하고 싶어하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강조하면서 매우 섬세한 윤리적 부분을 건드린다.

=금자는 고지식하고 유치한 면이 있지만 뻔뻔한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각본 초기 단계에서 논란이 많았다. 명색이 복수극이라면 아이가 죽는다거나 15년 동안 감금됐다거나 하는 더 강력한 동기가 부여돼야 하는데 금자에게는 그만큼 강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절한 금자씨>는 바로 거기서 출발한 이야기다. 꼭 자기가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되는 죄의식을 자청한 사람, 남보다 그런 문제에 민감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복수 3부작의 완결편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전작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데 <복수는 나의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주저함이나 가차없이 탁 베면서 끝이 났고, 그게 평론가들이 그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거기에 비하면 <친절한 금자씨>의 결말은 무자비하지 않다. 그런 부분들이 비평적으로는 좀 의아하다.

=금자는 잘못된 방식으로 속죄를 시도해서 스스로 후회도 하고 죽은 아이의 용서를 얻지도 못했지만 그 노력이 가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고 실속도 없지만 애쓰는 것에 대해서 예쁘게 봐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결말이 결국 평화를 되찾았다거나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마지막에서 딸과 끌어안는 게 감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 생각으로는 안정된 결말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능하는 소품이 흰 두부와 흰 케익이다. 흰 두부가 우리사회의 전통적 가치체계를 상징한다면 금자가 직접 만들어서 먹는 흰 케익은 서구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한국사회는 두 가치체계가 혼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속죄나 구원같은 영화의 질문들은 내재된 절실함에서 나왔다기 보다 외부로부터 부가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 만드는 입장에서 이게 어디서 왔던 간에 실제로 한국에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라는 거다. 누구든지 살면서 실수하고 그러고 나서 괴로워하고 되돌리고 싶어하고, 그건 현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도사같은 인물을 통해서 기독교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제제기 자체가 기독교적인 사유의 회로 안에서 이뤄지고 해결과정도 그걸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박 감독만의 독특한 시각과 정교함으로 한국의 현실을 탁월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를테면 <복수는 나의 것>에서 아나키즘을 통한 해방적 결론에 비하면 폐쇄회로 안에 갖혀있는 것같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웃음). 특정 종교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관념이 어디에서 왔든지 지금 한국에서 매우 현실적인 문제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복수 3부작이라는 맥락에서 볼때 1편 <복수는 나의 것>이나 2편 <올드 보이>에서는 계급이 중요한 문제였고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젠더 문제가 결합한다. 구체적으로 착취당한 여자의 되갚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두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같다. 1,2편에서는 없었던 약간의 위안이나 희망을 주고 캐릭터, 사운드 사용 방식 등을 통해 여성성에 대한 공감이나 친밀함을 보여주는 게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작들이 끝까지 밀고갔던 것과 달리 여성성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을 것같다.

단편 ‘심판’ 만들며 영화인행 극적으로 바뀌어

=여성 주인공을 앞세우면 결국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거라 생각했다(웃음). 내가 여성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여성주의적으로 가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바랬던 건 능동적, 독립적인 여성이 주인공으로 홀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정도였다.

=금자가 두부를 던지고 꽃잎 모양의 아름다운 케익을 만드는 모습은 박 감독이 웰메이드를 지향하는 태도와 친연성이 있는 것같다.

=웰메이드라는 표현은 좀 거북하다. 내 영화는 툭툭 튀는 구석이 많고 거칠기도 하고 엉뚱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내가 알아왔던 웰메이드와는 거리가 멀어도 많이 멀다. 윌리엄 와일러 같은 감독이 정말 흠잡을 데 없고 보편적인 웰메이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내 영화에는 그런 보편성도 없고.

=옳은 지적이다. 박찬욱 감독에게 웰메이드라는 건 프로덕션 세트 디자인 완성도 같은 데 한정해서 생각해야 할 것같다. 오히려 두부와 웰메이드처럼 보이는 케익 사이에서의 주저함에서 박 감독 영화의 힘이 있는 것 같다. <공동경비구역 JSA> 때부터 외부로부터 감독을 보는 인지도가 바뀌었는데 실제로 본인에게도 그 영화 만들면서 또는 만든 뒤에 변화가 생겼나.

=영화 경력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공동경비구역 JSA> 직전에 만들었던 단편 <심판> 때였다. 일단은 단편이기 때문에 무보수로 배우를 기용하는 상황이었고 배우들이 기주봉씨같은 연극계 고참이었다. 보수도 없이 형님들 모시고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맘대로 시키기보다는 의견을 듣고 설득하면서 촬영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배우들과의 의사소통이 뭔지, 이 소통이 영화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또 배우들이 얼마나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들인지도 알게 됐다. 서서히가 아니라 극적으로 바뀌었고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였다.

=박 감독과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대학 때 함께 동아리에서 영화 공부했던 게 생각난다. 그때 박 감독은 바바리 코트를 자주 입었고 아웃사이더처럼 주변에 개입하지 않고 눈에 띄려고 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스타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같이 영화 공부하던 사람들보다 수줍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많이 주저했다. 리더십이나 적극성, 저돌성이 요구되고 때로는 일전불사하는 자세로(웃음), 터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겁을 많이 먹었다. 막상 들어와 보니까 진짜 그렇더라(웃음). 그래서 적응하기 참 힘들었다. 일하면서 조금씩 내 성격도 변했다. 지금도 터프하지는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잘 달래고 설득하고 칭찬해주고 그러면서 끌어간다.

=다음 작품은 뭔가.

=씨제이엔터테인먼트의 에이치디(HD) 프로젝트 중 한 작품인데 지금까지 내 영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영화다. 그동안의 영화가 넓은 의미의 스릴러였다면 이번 작품은 보통 드라마다. 자기가 사이보그라는 망상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춘기 소녀가 환자들과 의사들을 만나고 사랑에도 빠지면서 자신의 병을 인식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판타지적 요소가 매우 강하다.

=<친절한 금자씨>에도 판타지나 그로테스크한 구전동화적 요소가 곳곳에 드러난다.

=맞다. 한참 공부하던 80년대 초중반을 지배했던 담론이나 당시의 리얼리즘 논의가 나한테는 언제나 좀 답답했다. 그렇지만 지배당했던 의식이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친절한 금자씨>처럼 만들 생각을 못했던 건데 차츰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같다.

정리·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자기들끼리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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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7-20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개봉도 안했는데 자기들끼리 보고 벌써 리뷰를 쓰면 어쩐대요...?

릴케 현상 2005-07-20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들끼리만 보고...ㅋㅋ
 

CCTV로 범죄 미리 막는다
[SBS TV 2005-07-19 22:06]

<8뉴스><앵커>런던 테러사건에서 그 위력을 입증한 CCTV, 이제 사후에 범인을 밝혀내는데 그치지 않고미리 범죄를 예방하는 역할까지 가능하게 됐습니다.

김우식 기자입니다.

<기자>예지력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범죄를 미리 막는다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입니다.

언제, 누가, 어디서 범죄를 저지를 지 미리 알고 예방한다는 것인데,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어느정도 가능하게 됐습니다.

누군가 지하철역에 의심스런 가방을 놓고 사라집니다.

시간이 20초쯤 지나자 가방이 빨간색으로 바뀝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걷는데 반대로 걷는 이 사람은 색깔이 다르게 표시됩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속에서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하는 이 사람 역시 초록색으로 표시됩니다.

영국 킹스톤대에서 개발한 이 소프트웨어는 CCTV와 컴퓨터를 연결해 수상한 사람이나 행동을 잡아낸 뒤 관리자에게 통보합니다.

사람의 움직임과 사진의 화소를 분석해 비정상적인 상황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이 CCTV는 이미 런던 리버풀역에 설치됐고 곧 영국 모든 지하철역에 배치될 예정입니다.

CCTV가 앞으로는 범죄예방기능까지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사생활 침해가 빈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장난하냐. '사람의 움직임과 사진의 화소를 분석해 비정상적인 상황'을 가려낸다?
뭐가 비정상인데....
대중을 잠재적 범죄자로 두려는 세력이야말로 국가적 범죄자들 아니었던가?

누가 만든 폭탄으로 누구를 위해 파괴되고 있는지 전쟁은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그들만 못 듣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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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7-2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려했던 상황이... 지하철에서 친구 기다리느라 몇 개 보내면 저도 찍히겠죠? 흠... 무서운 놈들.
 

친절한 감독, 비정한 영화
  [프리뷰] 박찬욱의 신작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
  2005-07-18 오후 7:40:06

  잔혹한 장면묘사로 박찬욱에게 종종 거부감을 느껴 왔다는 사람들도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할 말을 잃을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에 이어 일명 복수 3 부작의 완결편에 해당하는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영화미학의 정점이자 완성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이번 영화로 상업영화의 미학과 작가영화의 실험성 모두에서 최고의 평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는 너무나 완벽해서 할 말이 없다. 논쟁도 있을 수 없다. 비판도 있을 수 없다. 평단에선 그래서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하 생략... 
더 알면 영화 보는 맛이 떨어져요.

 

기대 기대...  벌써 저런 격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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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7-1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더보고 싶어요!!! >.<
 

    <신 시티>의 비주얼에 관해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완벽을 위해 아무 것도 짓지 않고 모든 것을 그려낸 비주얼에 무슨 허점이 있겠는가. <신 시티>의 도시 베이신 시티는 한마디로 허구의 엑기스다. 순도 100퍼센트의 가상의 도시. 무(無)의 장막 위에 그려낸 전지전능의 도시. 공허한 마천루에서부터 괴기스러운 교회를 거쳐 절대권력자의 황폐한 농장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낸 도시. 느와르적인 너무나 느와르적인 해가 뜨지 않는 도시. 흑과 백,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콘트라스트의 대척, 그 첨예한 대립 위로 너무도 선명하게 내리 찍히는 원색의 액센트들. 피사체를 압도하는 여백의 위력과 입체를 추진하는 평면의 괴력. 그 무한의 우주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초현실적 캐릭터들. 아무리 애둘러 말하려 해도 <신 시티>의 공간과 인물은 기묘하고 소름끼치는 그로테스크의 정점이다. 더불어 영화도 만화도 아닌듯하지만 그 둘을 동시에 끌어안는 비주얼의 신천지를 <신 시티>는 당당하게 제시하고 있다. 감독이 배짱을 부릴만도 했다. 오죽했으면 만화를 영화로 각색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놓겠다고 했을까. 감독과 원작자의 요구가 이처럼 완벽하게 수용된 비주얼은 이 영화 이전에도 없었고 이 영화 이후에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의 비주얼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을 삼가자.

    로드리게즈의 반골 기질과 프랭크 밀러의 펄프 총론, 거기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기이한 농담이 가세해 탄생시킨 영화 <신 시티>는 미국 사회 전반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반항과 비아냥의 파노라마다. 종교도, 정치도, 법도 이 영화가 난도질하는 사회악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자체가 악의 근원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에서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계급과 문화가 공존하는 이상적 국가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 하나의 거대한 게토에 불과하다. 인체 해부도만큼이나 복잡할 것 같은 나라가 미국이지만 알고 보면 미국은 단세포 국가다. <신 시티>의 도시 베이신 시티는 그 자체로 미국의 메타포이고 뉴욕의 캐리커쳐다. 단지 거주자가 100명도 채 안될뿐이다. 위선과 명분, 범죄와 처벌만이 존재하는 나라. 슈퍼맨이 또는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이 그 사회의 영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단순졸렬한 국가정체성 덕분이다. 영웅이 없으면 한시도 지탱이 되지 않는 나라, 영웅을 내세워 눈가림을 하지 않으면 추악한 몰골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나라 미국. <신 시티>는 이에 덧붙여 말하기를 '폐물이건, 쓰레기건 마음만 먹으면 영웅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라고 공언한다.

    이처럼 미국의 위상이 곤두박질 친 만큼 <신 시티>의 남성들도 졸렬하기 그지 없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악의 화신 아니면 제멋에 설쳐대는 얼치기 마초이거나 위험을 끌어들이는 화근일 뿐이다. 하티건, 마브, 드와이트, 그들 모두 과분한 진지함으로 목소리를 내리 깔지만 목소리의 무게에 비해 존재감은 한정도 없이 가볍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영웅이나 해결사가 아니라 꿩대신 닭이거나 혹은 반신반의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 어떤 남성도 완벽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 이 도시 베이신 시티에서 정의는 그나마 책임감있는 은퇴 직전의 늙은 경찰도 아니고, 흉악한 몰골로 주먹을 앞세우는 마초도 아니고, 올드 타운의 매춘부 자경단에 협조하는 느끼한 고독남도 아니다. 이 도시의 정의는 여성이고,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탁월하게 그 정의를 실천하고 있다. 그녀들이 그물 스타킹 아래 탱탱한 엉덩이를 절반이나 내놓고 있다하더라도 음흉한 시선으로 훑어보지 말지어다. 미호의 일본도는 철판도 뚫는 신검이니.

    몇 번을 - 한 번은 극장에서 너댓번은 부적절한 경로로 - 다시 봐도 <신 시티>는 매력적이다. 압도적으로 황홀한 비주얼보다 시궁창 냄새 물씬 풍기는 스토리가 더 매력적이다. 스토리보다 몇배는 더 황홀한 캐릭터의 향연. 부패한 도시에서 한국산 라면마냥 저 혼자 부패하지 않은 늙은 경찰보다, 돈 주고도 섹스를 할 수 없는 털빠진 고릴라같은 지진아 마초보다, 제법 지능적인척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얼빵한 올드타운의 느끼남보다, 다리가 잘리고 남은 몸땡이가 개밥이 되어도 야릇한 미소를 잃지 않는 케빈이 더 매력적이고, 남성의 보호를 거추장스러워 하는 게일의 무리들이 더 매력적이다. 하티건과 마브와 드와이트가 그 많은 대사들을 독백으로 남발하는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눈빛과 칼로 끝장을 보는 미호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색체의 왜곡없이 찍어졌더라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보게 만드는 잔혹한 변조의 위력. 미키 루크는 <신 시티>와 로드리게즈에 대해 평생 보은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만일 그를 마브로 탈바꿈시키지 않았더라면 어느 영화에서 그가 이 만큼 활개를 칠 수 있었겠는가. 배우를 재창조한 영화.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매체는 이 영화에 '영화의 미래'라는 영광스런 호칭을 수여했다. 그것은 아마도 시스템의 독재에 휩쓸리지 않고 연출의 독립성을 쟁취한 로드리게즈의 결단에 대한 예우 차원의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예견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는 과학의 발전이 미진했던 시대에 문화의 주류를 독식했던 모든 문화 양식들 - 예를 들자면 문학, 음악, 회화, 연극 기타 등등 - 을 굴복시키고 나아가 그들을 자기 연방의 일부로 복속시킨 과학시대의 문화양식의 제국이다. 그런데, 그 위대한 제국의 미래를 만화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이 한편으로 결론짓는다는 건 성급해도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테크날러지의 위력이 아무리 막강하다한들 영화 그 자체의 아이덴티티를 정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영화는 영화의 미래가 아니라 영화 제작의 새로운 방식과 그 방식으로 완성된 하나의 스타일을 제시할 뿐이다. 굳이 이 영화를 '영화의 미래'와 연관짓는다면 이 영화가 제시한 미증유의 제작방식이 유일하다. 영화는 - 그 아닌 무엇이든 -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호들갑은 삼가 주시라.



2005. 07. 17. 山ZIGI VIN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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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7-19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아, 저도 거시기한 경로로만 보고 있는데, 극장가서 봐줘야겠죠? 이런 영화는.

라주미힌 2005-07-19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영화일 수도, 별로인 영화일수도 있는데... 스타일이나 비쥬얼 쪽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감각적인 영화로 만족하실 것 같아요. 전 특징이 뚜렷한 영화들이 좋드라구요. ㅋ.ㅋ

마늘빵 2005-07-1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 참 맘에 들었어요~
 

생각보다 인터넷에 많지 않네요. 못찾아서 그런가.. 다크엔젤 tv에서 방영 좀 하지..



고글끼고, 오토바이를 타고 댕길 때가 제일 폼나지요...





















이 놈은 알바를 낚아 챈 악당의 중의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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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18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옷~~! 퍼갑니다..^^*
예전에 저도 다크엔젤 사진을 몇 장 저장해놨던듯 한데..... 찾아보고 있으면 올릴께요..ㅎㅎ

하이드 2005-07-1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당중의 악당! 너무 좋아요~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