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 중 약간 난감해지는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람돌이씨는 집에 가면 뭐해?"란 질문이다.

 

이 질문이 나오는 건 항상 전날의 TV프로그램 얘기를 하는 중일 경우인데, 문제는 내가 TV를 보지 않는다는 거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같이 점심을 먹거나, 잠시 틈을 내어 수다를 떨 때 화제의 90% 이상은 항상 TV 드라마거나, 예능이거나, 뉴스거나, 스포츠거나 어쨌든 TV다. 역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건 당연히 드라마고.....

매일 얼굴 보고 사는 사람들한테 매일 아 못봤어요. 안봤어요라고 하다보면

결국 저 질문 "넌 집에 가서 도대체 뭐하고 노냐"라는 질문이 나오는거다.

 

대답이야 "저는 집에 가면 쉬는 시간에 책봐요."인데........

문제는 이렇게 대답할 때 사람들의 대응이 참 묘하다는 거다.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한데 집에 가서 책이 봐지니?", "tv드라마 그 재밌는걸 어떻게 안보니?" "너 참 훌륭하구나." "우와! 대단하다" 등등 여기까지는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이고, 가끔은 "집에 가서까지 책 읽으려면 머리 안아파?" 내지는 약간은 아니꼽다는 표정도 있다. 진짜로..... ㅎㅎ

 

여기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저  모든 반응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퇴근 후 책을 읽는 행위가 휴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tv드라마를 안 보는 것은 뭔가 대단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도 한 때는 tv드라마 빠순이였다. 한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일드와 미드까지 손을 뻗친 적도 있었다.

다만 어느 날 그 드라마와 예능 프로들이 그냥 재미없어진 것 뿐이다.

 tv가 시시해진 순간, 이전 tv와 책이 나눠가지던 나의 시간을 온통 책이 차지한 것 뿐이다.

 

 

 드라마보다 재밌는 책은 너무 많다.

책을 읽는 것은 특별히 고상한 행위가 아니며, 뭔가를 결심하고 각잡고 해야 하는 행위도 아니다.

공부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고 즐거워서 책을 읽는 일이 내게는 훨씬 많다.

책을 통해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좋고, 내 주변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도 좋고, 나에게 다른 생각과 시선을 알려주는 것도 신선해서 좋다.

재미없는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앞부분 30여페이지만 보면 판가름 난다. 그냥 구석으로 슬쩍 밀쳐놓으면 된다.

아무도 나에게 그 책을 읽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최근에 읽은 책 중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못자고 새벽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던 이야기들.

결국 이 글은 이 책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거였는데 하다보니 쓸데없는 서론만 잔뜩인 글이 되어 버렸다.

 

 

 

 

 

 

 

 

 

 

 

 

 

 

 

스티븐 킹의 신작 <인스티튜트 1, 2>

킹 아저씨는 정말 재미난 이야기꾼이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하는게 맞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이 아저씨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오는 책마다 화제가 될 리가 없을테니까....

요 근래에는 킹아저씨의 책 중  탐정 빌호지스 시리즈와 느닷없는 휴먼 소설 <고도에서>를 봤는데, 약간은 아 이건 킹아저씨가 아니야?

왜  외도를 하세요. 제발 제일 잘하는걸 해주세요라고 빌기도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책 <인스티튜트>가 나왔다.

기관 단체 학회의 뜻을 가지는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이 소설 속 악의 축인 어떤 기관을 가리킨다.

이 기관 또는 학회에서는 약간의 초능력을 가진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서 그들을 훈련시키고 정치적 내지는 모종의 목적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다. 주인공격인 루크라는 소년도 그렇게 납치된 아이들 중 하나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뒤쪽이 미칠 정도로 궁금하다면 그 책은 훌륭하게 성공한 책이다.

 

도대체 루크를 잔혹하게 납치한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들의 진짜 대단치 않은 초능력은 과연 어떻게 그들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

(정말 대단치 않다. 주인공 루크의 초능력은 염동력인데 그 정도가 겨우 빈 피자팬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피자가 있으면 안된다. 무거워서.... ^^ )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다음으로 가는 저 뒷편의 시설에는 과연 무엇이 있으며 이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아 루크는 도대체 언제 탈출하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독자는 물론 주인공인 루크가 탈출할 것을 당연히 알고 있으며, 또 다른 등장인물인 팀과 만나 어떻게든 이 사건을 해결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 나오는 기본 전제가 허구임 또한 알고 있으며 말도 안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의 힘은 바로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보이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스티븐 킹은 가히 천재적이다.

 

책 전체에 비해 결말의 임팩트가 약간 떨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광기 또는 잘못된 신념이 습관적 관행이 되었을 때 그것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나름의 현실적인 결말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다.

너무 재밌는 책을 만나면.....

 

또 하나 요 며칠 째 나를 확 열광하게 한 책

 

 

 

 

 

 

 

 

 

 

 

 

 

 

 

 

 

<시녀 이야기>의 뒷편이 나와주었다. 무려 34년만에!!!!

34년이라니?

책 속의 시간도 겨우 15년 후인데, 실제 시간으로 34년 뒤라니.....

작가는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던 걸까?

34년간 묵힌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즘만으로 후덜덜이라는 말이 안나올 수가 없다.

34년만의 후일담이라는 것만으로도 안 읽을 수가 없는 책이다.

그것도 <시녀이야기>의 후속편이잖아.

<시녀 이야기>를 읽은지 10년도 훨씬 넘은 것 같고, 책장에 있던 내 책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고.....

그럼에도 <시녀 이야기> 속 길리어드라는 가상국가의 충격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상태.

 

사실 나에게 <시녀 이야기>는 엄지 척 하고 싶은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다.

옛 기억에 어렴풋하지만 뭔가 2% 부족한 듯한....

그래도 2%만 부족한게 어딘가? 98% 부족한 책도 천지에 널렸는데.

그렇게 <증언들>의 독서를 시작

근데 정말 <시녀 이야기>보다 훨씬 더더더 좋은거다.

작품은 15년후 각자 다른 입장의 3인 - 길리아드 공화국의 여성정책을 전담 집행하는 기구의 리디아 아주머니(여기서 아주머니는 계급), 길리아드에서 체제 순응적으로 귀한 꽃 - 그래봤자 아이를 낳을 도구에 불과하지만 -으로 자란 아그네스, 그리고 인접국가 캐나다에서 자라고 있는 소녀 데이지의 증언들을 모아놓았다.

 

이 중 가장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인물은 리디아 아주머니였다.

길리어드 공화국이 만들어질 때 지식인 여성들이 어떻게 공격당하는지,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모든 정치 사회적 행위에서 배재시키고 말 잘듣는 고분고분한 도구, 꽃으로 만드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책의 서사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서사만 따라가도 흥미진진하고 한편의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층민 가정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판사까지 되었던 강한 자존감을 소유한 리디아라는 권력에 굴복하는 과정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책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나라면 어떨까를 생각하는데 절대로 무조건 무너질 수 밖에 없을거다 싶다.

예전에 본 책 중 어딘가에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의외로 어떤 순간에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자신을 가꾸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못먹고 굶으면 육체가 죽지만, 최소한의 물과 화장실 시설 등이 주어지지 않아 최소한의 위생이 유지될 수 없으면 인간의 자존감이 무너진다.

분비물의 냄새와 흔적을 온 몸에 묻히고 나와 타인이 모두 서로에게 악몽이 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죽는 것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길리아드의 남자들을 보면서 이 체제가 만들어진 과정, 이유, 그리고 몰락의 이유까지 이해가 갔었다.

그런 인간의 바닥까지 치고 갔던 리디아가 끝내 복수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그것이 인간의 신비라고 항상 생각한다.

누구보다 비굴한 것이 인간이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고 고귀한 것이 또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의 밑바닥을 겪고도 일어설 수 있는 인간의 존재

<증언들>이라는 이 책을 한 순간도 손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강력한 리디아 아주머니라는 캐릭터의 힘이었다.

 

이 책에서는 또 한명의 인상적이 여성이 나온다.

그 여성은 단역이다.

단 한장면, 단 한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여성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복수와 죽음을 택하는 여성이다.

스타티움에서 동료를 살해하라고 명령받았을 때 그 명령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어느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

그런데 참 역사를 보면 늘 그런 사람들이 있어왔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을 그래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준다.

 

 

소설이 가지는 흡입력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2권의 책으로

나는 역시 드라마보다는 책읽기가 더 즐겁다는 것을 한 번더 확신한다.

책 읽는게 뭔가 특별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높여 알리고 싶다.

드라마만큼 아니 드라마보다 더 재밌어서 보는게 책이라고....

책을 읽는다는건 뭔가 그리 거창한 행위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아주 똑똑한 것도 아니며,

그저 아주 많이 즐거운 행위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에 나와 같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좀 많아졌으면,

휴식시간에 드라마 얘기 말고 책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싶을 뿐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09-24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퇴근하면 티비 보는 대신 책을 보는데요, 책이 너무 재미있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저에겐 휴식 시간이에요. 업무 모드, 근무 모드의 저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요. 그래서 저는 책읽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자기 전에 책을 한 장이라도 읽어야 뭔가 오늘 하루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썼구나, 하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제겐 휴식입니다.

증언들 갖춰놓기만 하고 안봤는데 얼른 보고 싶네요.
그리고 스티븐 킹이 이야기꾼이라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바람돌이 2020-09-24 16:03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좋아서 하는 일이 휴식이죠. 저는 좀 변화한거 같아요. 책이야 늘 좋아해서 옆에 두기는 하지만 열렬하게 좋아하는 것들은 조금씩 변화해왔어요. 영화에서 드라마로 여행으로..... 그리고 요즘에 이르러 그 열렬함이 책으로 좀 옮겨갔다는 느낌이 들어요. ㅎㅎ

증언들 빨리 보세요. 재밌어요. ㅎㅎ 제 생각에 다락방님도 리디아 아주머니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실듯해요. ㅎㅎ

stella.K 2020-09-24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드라마든 책이든 좋아서 빠져 들면 좋은 거죠.
둘 다를 좋아하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저는 젊었을 땐 드라마가 시큰둥했습니다.
근데 나이들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드라마도 괜찮은 게 많아요.
저는 드라마를 보느라 영화가 좀 멀어졌어요.
이러다 또 언젠가 책이 좋아지고, 영화가 좋아지는 날이 오겠죠.

저는 뭐하느라 킹 아저씨 책을 못 읽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킹 아저씨의 색다른 도전이 저는 좀 궁금하네요.
암튼 글을 너무 잘 쓰셔서 소개해 주신 책 다 읽어 보고 싶군요.
그러고 보면 바람님은 책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 저는 요즘 ebs에서 하는 강연 프로 졸면서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어떤 강연은 내 분야가 아니라 좀 듣기 힘든 것도 있는데
자꾸 듣다 보면 어느 날 책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머리에 들어 오든 안 들어 오든 그냥 듣고 있습니다.ㅋ

바람돌이 2020-09-24 16:24   좋아요 1 | URL
드라마 마지막 본게 김혜수 나오던 시그널이네요. ㅎㅎ
아 저 드라마 진짜 재밌었어요.
올 여름에는 네플릭스 드라마 막 추천받고 그랬는데, 한편을 보고 나도 뒷편이 안 궁금하더라구요. ㅎㅎ
그냥 이게 싸이클이 있는거 같아요. 돌고 도는게 인생이듯, 취향도 돌고도는듯... 아 유행가 가사같다. ㅎㅎ

제가 제일 못하는게 강연듣기예요. 귀가 모지리예요. ㅎㅎ
강연 듣고 있으면 최소 3분의 1은 못알아듣습니다. 딴 생각하다가요. ㅎㅎ

stella.K님도 언젠가 킹아저씨를 만나시기를요. 재밌어요. ㅎㅎ진짜루요. ㅎㅎ

파이버 2020-09-2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티비는 잘 안봅니다.... 집에 티비가 없기도 하지만 영상물은 정보가 귀와 눈으로 한꺼번에 들어오다 보니 피곤😪하더라구요ㅠㅠ

스티븐 킹은 영화로만 접했는데 항상 소재가 신선한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리뷰 덕분에 언젠가 소설책도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바람돌이 2020-09-24 22:49   좋아요 1 | URL
시실 우리들 대부분이 tv와 책을 다 즐길만큼 시간이 안되는게 문제인 것같아요. 전 나중에 퇴직하면 tv와 책을 다 껴안고 살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킹의 소설은 아 피곤하다 스트레스 쌓이네싶을 때 읽기 좋은 것 같아요. 읽다보면 책 말고는 다 잊어버리거든요. 그럼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도 시간이 좀 흘러 거리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지요. 어쨌든 결론은 재밌다입니다. ^^

문화향유자 2021-06-28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전 TV를 전혀 안 보는건 아니고, 본방사수는 안합니다. 보고 싶은거는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아서 봐요. 그게 항상 보는게 정해져 있어요. 영화는 많이 보지만 드라마는 잘 안 봅니다. (2시간이면 끝날이야기를 쭉쭉 늘려서 짧게는 10회, 길면 20회 넘게 봐야하는 시간이 아까움)
저도 TV프로그램 잘 모르고, 드라마도 잘 모르니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많이 당했어요. 안보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모르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그것말고도 할게 많은데, TV보는거 말고는 다 쓸데없는 일로 보이는거 같아서 의아하더라구요.

바람돌이 2021-06-29 09:15   좋아요 0 | URL
가끔은 tv를 안봐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나? 이런 느낌 있죠. ㅎㅎ 근데 또 알고보면 그 사람들 대부분이 저한테 별 관심없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그냥 가만 있습니다. ^^ 책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모임이 딱히 많지 않다는게 가끔 좀 외롭기는 해요. 그래서 여기 서재에서 계속 놀고있는듯요. ^^
 

모든 것은 기다리는 여자의 차지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뒷굽은닳는다. 인내심은 미덕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이 고색창연한 지혜의 말들이 언제나 진실인 건 아니지만 가끔은맞는다. 여기 언제나 옳은 말이 하나 있다. 모든 건 타이밍에 있다.
농담이 그렇듯.
- P361

너무나 평화롭다. 거리들은, 너무나 고요하고, 너무나 정연하다. 그러나 기만적으로 평온한 표면 아래로, 전율이 흐른다. 고압선 근처에 있는것처럼, 우리 모두는, 가늘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우리는 진동한다. 우리는 떨고 있다. 우리는 항상 경계를 놓지 않는다. 흔히 공포정치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확히 말해 공포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대신 공포는 마비시킨다. 그렇게 해서 부자연스러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 P398

그때까지는 길리어드 신앙의 정당성을, 특히나 그 진실됨을 심각하게 회의한 적이 없었어요. 내가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을수는 있으나, 그건 내 잘못이라고 치부하고 말았거든요. 그러나 길리어드의 손에 무엇이 변화되고, 무엇이 덧붙여지고,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알았을 때는, 자칫 믿음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여러분은 믿음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실거예요. 그건 마치 가장 친한 친구가 죽어 가는 느낌이에요.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지는 느낌,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는 느낌이에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추방당한 느낌이에요. 타비사가 죽었을 때 내가 느꼈던 그런 감정이에요. 세상이 품고 있던 의미가 싹 비워지고 있었어요. - P433

그 경우, 나는 내가 이토록 힘겹게 쓴 이 페이지들을 파괴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당신도 파괴해야 할 것이다. 내 미래의 독자여, 성냥불을 화르르 붙이면 당신은 사라지리라. 한 번도 존재한적 없고, 영영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싹 지워지고 말 것이다. 내가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리라. 얼마나 신과 같은 기분인가! 절멸의 신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흔들린다. 나는 흔들린다.
그러나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
- P4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는 현재에서 나는 전설이다. 살아 있으나 산 것 이상이고죽었으나 죽은 것 이상이다. 나는 교실을 가질 만큼 신분이 높은 여자애들의 교실 뒤편에 액자로 표구되어 걸려 있는 머리로서, 음침한미소를 띠고 말없이 설교한다. 나는 하녀들이 어린애를 겁줄 때 쓰는 귀신이다. 착하게 굴지 않으면, 리디아 아주머니가 와서 잡아갈거야! 나는 또한 본받아야 할 완벽한 도덕성의 모범이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네가 어떻게 하면 좋아하실까? 그리고 상상 속의 모호한 종교재판을 주재하는 판관이자 입법자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이런 경우에 뭐라고 하실까?
물론 나는 권력으로 한껏 부풀었으나 또한 그로 인해 성운처럼 모호하다. 형태도 없거니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나는 어디에나있고 아무 데도 없다. 심지어 나는 사령관들의 마음속에도 심란한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떻게 나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정상적인 내 크기로, 평범한 여자의 크기로 다시 줄어들 수 있을까?
- P49

사라진 나의 국가에서, 상황은 수년째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홍수, 화재, 토네이도, 허리케인, 가뭄, 물 부족, 지진, 이건 모자라고저건 넘치고, 퇴락하는 하부구조.…. 어째서 너무 늦기 전에 누군가 그 원자력 발전소들의 가동을 중단하지 않았던가? 침몰하는 경제, 실업, 추락하는 출생률.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그러다가 분노했다.
실행 가능한 요법의 부재. 원망할 사람을 찾는 탐색.
나는 그런데도 왜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너무 오래 들어 왔기 때문이었으리라. 하늘 한 덩어리가 제 머리에 떨어질 때까지는 아무리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못믿는 법이다.
- P99

나는 울지 않았어요. 울 만큼 울었으니까요. 진실은, 그들이 크리스털을 개복 수술해 아기를 꺼냈고, 그 과정에서 크리스털을 죽였다.
는 것이었어요. 그건 크리스털의 선택이 아니었어요. 고결한 여성의명예를 지키다가 죽거나 빛나는 모범을 보이겠다고 자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도 그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 P153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심하게 자책했다.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삶, 자유, 민주주의 운운하는 온갖 입에 발린 소리를 모두 믿었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믿음도 법대에서 흠뻑 들이켜 심취했다. 이런 가치는 영원한 진실이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것들을 수호하리라 믿었다. 무슨 마법의 주문에 홀린 듯, 그 믿음에 철저히 의지했다.
- P170

요. 우리는 장례식에 갈 때 말고는 그곳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어요.
망자의 이름이 묘석에 새겨져 있어서, 잘못하면 읽기로 이어지고,
나아가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읽기는 여자에게 맞지 않는일이었어요. 읽기의 힘을 감당할 정도로 강한 건 남자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아주머니도요. 그들은 우리와 달랐으니까.
- P2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니체가 그리는 마지막 인간은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마지막 인간이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고말하면서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현대인은 행복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창 미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꿈을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거의예외 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의 낱말로 귀결된다. 행복, 행복하게 사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차라투스트라는 마지막 인간의 삶이라고 조롱한 것일까?
- P193

이런 철학은 연구실에 앉아 책 속으로 파고든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니체의 실존적 실험 철학은 오직 자신과의 대화로서만가능하다. 니체는 당시의 철학과 관계를 끊는다.
진리에의 의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서양 철학은 근본적으로삶에 적대적인 도덕 철학이었다. 이성은 우리의 이면인 감정과 본능을 죽이고, 도덕은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봉쇄한다.
- P211

니체는 이 등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우리의 내면은 이성과 욕망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지의 상호 투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만약 이성이 추구하는 진리가 이미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 역시 또 다른 의지일지도 모른다. 진리에의 의지도 결국 권력에의 의지다. 우리 내면을권력에의 의지가 활동하는 공간으로 보면 우리는 삶을 훨씬 더 역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 P248

도덕적 평가 자체를 재평가하려면, 우리는 도덕의 계보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니체에 따르면 도덕의 기원은 본래 ‘거리두기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다. 고귀하고 강하고,
높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저급한 사람, 비속한 사람, 천민적인 사람에게 갖는 우월의 감정이 바로 도덕의 기원이다. 왜냐하면 거리두기의 파토스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가치의 이름을 정하는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P267

무엇인가를 금욕한다는 것은 목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상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금욕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로 고통스러워 한다. 우리는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가? 우리가 고통의 의미나 목적을 알수만 있다면, 우리는 고통을 바라고 고통 자체를 찾으려 들지도 모른다. 지상에서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병든 몸을 이끌고 숲과 도시를 방랑한 니체는 어쩌면현대의 고행자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금욕주의는 바로 우리의 삶이다.  - P274

니체가 심리학적으로 해부한 진리에의 의지는 기만하지 않으려는 의지다. 나 자신까지도 기만하고 싶지 않다는 정신을 기독교적믿음에 철저하게 적용하면, 아무런 전제가 없는 신앙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는다. 우리는 진리가 삶에 유용하다고 전제한다.
니체는 여기서 강력한 의심을 표명한다. "삶이 가상 위에 서 있는것으로 보인다면, 다시 말해 삶이 오류, 기만, 위장, 현혹, 자기기만에 기초하고 있다면"(『즐거운 학문), 우리가 자기 자신을 기만하지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기독교적 신은 일상적 삶을 허위의 세계로 폄하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참된 세계로 평가하지만, 기독교가하나의 허구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는 신과 진리의 관계를 재평가해야 한다.
- P295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교의 진짜 역사에 대해 말해보겠다. ‘그리스도교‘라는 말 자체가 벌써 오해이며, 근본적으로는 오직한 사람의 그리스도교인이 존재했었고, 그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복음‘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렸다. (…) 신앙‘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믿음에서 그리스도교인의 표지를 찾는 일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잘못된 것이다. 오로지 그리스도교적 실천만이, 즉 십자가에서 죽었던 그가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만이 그리스도교적이다.
『안티 크리스트,
- P300

이성의 지배, 인간의 해방, 역사의 발전과 같은 거대 서사에 대한믿음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실험적으로 시도되는 시대, 우리는 이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다. 진리에의 의지를 하나의 우화로 폭로하고, 근대 철학의 확고부동한 토대로 여겨온 ‘나는 생각한다‘는근본 명제마저 회의하고, 인간의 본성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는 동물에 불과하다고 말한 철학자가 바로 니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니체가 온갖 포스트모더니즘을 빚어내는회전반이라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니체를 전환점으로 하여서양 철학은 ‘탈현대로 진입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서양 형이상학의 근원을 회상함으로써 모더니즘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적 태도이며 사상적 운동이다. 서양 허무주의가 문화의 디오니소스적 근원으로부터 소외되어 지나치게 이성을 강조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시작했다고 최초로 인식한 철학자는 니체다.
- P335

주체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주체를 구성하고 형성하는 것은 수많은 힘들의 권력 유희다. 그렇다면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본래의 자기가 되는가?" 니체를 광기에 이를 정도의 극단적인 사유로 몰아넣고, 우리를 니체의 마법에 걸리게 만든 핵심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이 지속되는 한 니체의 영향은 영원할 것이다.
- P3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해 고2인 둘째 딸
엄마 오늘 모의고사 국어시험치는데 시가 너무 슬퍼서 눈물이 막 나오는거야.
그래서 좀 울었어

시험문제속 시는 아래 기형도 시인의 바람의 집-겨울판화 1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 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 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음...... 시가 진짜 슬프네.....


근데 딸아 사실 엄마도 쬐끔 울었다.
시 말고 네 성적 때문에..... 에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ini74 2020-09-1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1등급을 받고 행복해졌단다. 라고 하면 따님이 화내시겠죠 ? ㅎㅎㅎ

바람돌이 2020-09-19 15:25   좋아요 1 | URL
하하하.... 아마 경멸의 눈초리가 날아올걸요. ㅎㅎ